내 마음이 강해야 내 소원도 이루어진다. - 잭 캔필드, 마크 빅터 한센 1. 소원성취는 마음먹기 나름 세계 평화를 요청한 소년 - 마크 빅터 한센 헌팅톤 해변가의 우리 교회 주변에 사는 한 작은 소년이 '어린이 은행'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나를 찾아왔다. 그는 나에게 악수를 청한 다음 이렇게 말했다. "저는 토미 타이예요. 이제 일곱 살인데, 어린이 은행에서 돈을 빌리고 싶어요." 나는 물었다. "토미, 그 돈으로 뭘하고 싶니?" "나는 네 살 때부터 세계의 평화를 이루겠다는 꿈을 가졌어요. 그래서 '평화, 평화를! 우리 어린이들을 위해서 평화를 지키자. 토미타미올림'이라는 자동차 범퍼 스티커를 제작하고 싶어요. 그러기 위해서 일천 장의 범퍼 스티커 인쇄비 454달러가 필요해요." "내가 그 돈을 빌려주마." 일단 범퍼 스티커가 인쇄되자, 토미의 아버지가 내 귀에 대고 속삭였다. "저 녀석이 대부금을 갚지 못하면, 자전거를 압류할 겁니까?" 토미는 아버지를 설득해서 로널드 레이건의 집에 데려다 달라고 했다. 토미가 초인종을 누르자, 문지기가 나왔다. 토미는 2분간에 걸쳐 거절할 수 없는 판매술을 펼쳤다. 문지기는 지갑을 꺼내 토미에게 1달러 50센트를 주고 말했다. "자, 내가 그것을 하나 갖고 싶구나. 여기서 기다리려무나. 내가 전 대통령을 모셔 올게." 그 다음에 그는 범퍼 스티커 한 장을 1달러 50센트짜리 계산서와 동봉하여 미하일 고르바쵸프에게 보냈다. 고르바쵸프는 그에게 돈과 함께 '평화를 위해 나아가세요, 토미군. 미하일 고르바쵸프 대통령'이라고 사인한 사진을 보내 줬다. 토미의 평화 계획이 시작된 후, <오렌지 카운티 메지스터>신문의 일요일 판에 토미에 대한 기사가 실렸다. 마티 쇼는 토미를 여섯 시간동안 인터뷰하고 멋진 기사를 썼다. 마티는 토미에게 세계 평화를 위해서 어떤 영향을 끼칠 수 있느냐고 물었다. 토미는 이렇게 대답했다. "나는 큰 일을 하기에는 아직 어려요. 아무래도 여덟 살이나 아홉 살이 되어야 이 지구상의 전쟁을 모두 막을 수 있을 것 같아요." 누군가 죠안 리버스에게 토미의 인터뷰 기사를 보냈다. 그녀는 그 이야기가 마음에 들었기 때문에 당장 토미에게 전화를 걸었다. "토미, 네가 내 TV쇼에 나와 줬으면 좋겠구나." "좋아요!" "너에게 3백 달러를 주마." "좋아요! 그런데, 나는 겨우 여덟 살이기 때문에 혼자 여행할 수 없어요. 아줌마가 우리 엄마의 경비도 대주실 구 있어요?" "좋아!" "내가 방금 본 '부자와 명사의 생활 방식'이라는 프로에 의하면 뉴욕에 가면 트럼프 플라자에서 자야 한 대요. 아줌마가 그렇게 해 주실 수 있어요?" "그래." "또 뉴욕에 가면 엠피이어 스테이트 빌딩과 자유의 여신상을 필히 봐야 한다던데요. 우리 입장권을 구해 주실 수 있어요?' "그럴께..." "좋아요. 참, 우리 엄마가 운전을 못한다는 말을 했던가요? 그러니 우리가 아줌마의 리무진을 이용할 수 있을까요?" "그럼." 죠안이 말했다. 토미는 '죠안 리버스 쇼'에 출연했고, 죠안과 스텝을 비롯한 스튜디오 방청객과 TV시청자를 사로잡았다. 그는 매우 매력적이고 설득적이었기 때문에 방청객은 즉석에서 지갑을 꺼내 범퍼 스티커를 샀다. 쇼가 끝날 무렵에 죠안이 물었다. "토미야, 너는 네 범퍼 스티커가 이 세상에 평화를 가져올 수 있다고 정말 믿니?" 토미는 자신만만한 미소를 지었다. "내가 일을 시작한 지 이 년도 되지 않았는데 벌써 베를린 장벽이 무너졌잖아요 그만하면 잘하고 있는 거죠?"
Board 추천글 2022.08.28 風文 R 1686
사랑할 땐 별이 되고 - 이해인 흰구름 단상 18 그동안 노환으로 고생하시던 수녀님 한 분이 우리가 지켜보는 가운데 평온히 선종하셨다. 안구 기증을 하시고 나니 시신이 되어서도 하얀 붕대로 두 눈을 가리시고, 흰옷 차림으로 백장미 향기 속에 고요히 누워 계셨다. 약간은 푸른빛을 띤 얼굴. 십자고상과 묵주를 든 차가운 침묵의 손. 수녀님은 이제 오래 계속될, 누워 있는 침묵 자체였다. 깊고도 긴 침묵. 이 침묵 앞에서 우린 대체 누구이며 무엇인가? 조종을 치고 모든 장례 예절을 질서정연하게 진행하던 우리였지만 입관, 하관 예절을 할 때는 울지 않을 수 없었다. 특히 "17통 1반인 우리 수녀원의 세대주이기도 했던 순애 수녀님의 그 이름을 지우려니 참으로 서운합니다."라고 한 총원장의 슬픈 고별사를 들을 때는 가슴이 미어지는 것 같았고, 여기저기서 흐느끼는 소리가 들려 왔다. 19 나는 오늘 `하관`이란 시 한 편을 썼다. 삶의 의무를 다 끝낸 겸허한 마침표 하나가 네모난 상자에 누워 천천히 땅 밑으로 내려가네 이승에서 못다 한 이야기 못다 한 사랑 대신하라 이르며 영원히 눈감은 우리 가운데의 한 사람 흙을 뿌리며 꽃을 던지며 울음을 삼키는 남은 이들 곁에 바람은 침묵하고 새들은 조용하네 더 깊이, 더 낮게 홀로 내려가야 하는 고독한 작별인사 흙빛의 차디찬 침묵 사이로 언뜻 스쳐가는 우리 모두의 죽음 한평생 기도하며 살았기에 눈물도 성수처럼 맑을 수 있던 노수녀의 마지막 미소가 우리 가슴속에 하얀 구름으로 떠오르네 20 가까운 이들이 이 세상을 떠났을 때의 그 느낌을 시로 쓰고 나면 며칠은 시름시름 몸이 아프고 마음은 태풍에 쓰러진 나무와 같다. 간밤엔 때아닌 추위가 느껴져 꽁꽁 싸두었던 이불을 다시 꺼내 덮고 잤다. 슬픔을 일으켜 세우는 건 언제나 슬픔인가.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고 안으로 안으로 실컷 슬픔을 풀어내고 나면 나는 어느새 용감해져서 일상의 길을 걸어 들어가 조금씩 웃을 수 있다. 죽은 이들은 말이 없으니 그들을 위해 시를 쓰는 것은 어리석은 일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그러나 어찌 보면 그렇게 해서라도 약간의 위로를 받고 싶은, 살아 남은 자들의 조그만 욕심인지도 모른다. `수녀님도 하느님 만나실 그날까지 예쁜 일 많이 하시다가 깊은 잠 자는듯 그렇게 떠나십시오` 라고 어느 지인은 내게 글을 보냈지만 죽음에 대해서만은 정말 아무 계획도 미리 세울 수가 없다는 것을 임종하는 이들 곁에서 절감한다. 21 예년보다 더디 오는 가을을 반기며 오늘 내 마음을 스쳐갔던 흰구름 단상. 가을바람은 어디에 숨어 있다가 이제야 달려오는가. 함께 있을 땐 잊고 있다가도 멀리 떠나고 나면 다시 그리워지는 바람. 처음 듣는 황홀한 음악처럼 나뭇잎을 스쳐 가다 내 작은 방 유리창을 두드리는 서늘한 눈매의 바람. 여름 내내 끓어오르던 내 마음을 식히며 이제 바람은 흰옷 입고 문을 여는 내게 박하내음 가득한 언어를 풀어내려 하네. 나의 약점까지도 이해하는 오래된 친구처럼 내 어깨를 감싸안으며 더 넓어지라고 하네 바다로 달려가는 바람처럼 더 맑게 더 크게 웃으라고 하네 - 나의 시 `바다로 달려가는 바람처럼`
Board 삶 속 글 2022.08.27 風文 R 438
한국대표수필 - 김동리 외 9명 "김진섭편" : 김진섭(1930~?) 수필가, 독문 학자. 호는 청천. 전남 목포 출생. 일본 호세이 대학 졸업. 서울대 교수. 6.25사변 때 납북됨. 저서로 "인생예찬" "생활인의 철학" 등이 있다. 한국 수필 문학의 개척자. 생활의 예지와 감흥을 가지 넘치는 생활 철학의 발견으로까지 발전시켰다. 생활인의 철학 철학을 철학자의 전유물인 것처럼 생각하고 있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그러나 그렇게 생각하는 것도 무리한 일은 아니다. 왜냐 하면 그만큼 철학은 오늘날 그 본래의 사명-사람에게 인생의 지식을 교시하려 하는 의도를 거의 방기하여 버렸고, 철학자는 속세와 절연하고 관외에 은둔하여 고일한 고독경에서 오로지 자기의 담론에만 경청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철학과 철학자가 생활의 지각을 완전히 상실하여 버렸다는 것은 참으로 슬픈 일이다. 그러므로 생활 속에서 부단히 인생의 예지를 추구하는 현대 중국의 '양식의 철학자' 임어당이 일찍이 '내가 이마누엘 칸트를 읽지 않는 이유는 간단하다. 석 장 이상 더 읽을 수 있었을 적이 없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는데 이 말은 논리적 사고가 과도의 발달을 성수하고 전문적 어법이 극도로 분화한 필연의 결과로서, 철학이 정치, 경제보다도 훨씬 후면에 퇴거되어, 평상인은 조금도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고 철학의 측면을 통과하고 있는 현대 문명의 기묘한 현상을 지적한 것으로서 사실상 오늘에 있어서는 교육이 있는 사람들도, 대개는 철학이 있으나 없으나 별로 상관이 없는 대표적 과제가 되어 있는 것을 부정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나는 물론 여기서 소위 사변적, 논리적, 학문적 철학자의 철학을 비난, 공격하는 것이 목적이 아니다. 나는 오직 이러한 체계적인 철학에 대해 인생의 지식이 되는 철학을 유지해 주는 현철한 일군의 철학자가 있었던 것을 알고 있으며, 그러한 의미에서 철학자만이 철학을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요, 어느 정도로 인간적 통찰력과 사물에 해한 판단력을 가지고 있는 이상, 모든 생활인은 그 특유의 인생관, 세계관, 즉 통속적 의미에서의 철학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을 다음에 말하고자 함에 불과하다. 철학자에게 철학이 필요한 것과 같이 속인에게도 철학은 필요하다. 왜 그러냐 하면, 한 가지 물건을 사는 데에 그 사람의 취미가 나타나는 것같이 친구를 선택하는 데 있어서도 그 사람의 세계관, 즉 철학은 개재되어야 할 것이요, 자기의 직업을 결정하는 경우에도 그 근본적 계기가 되는 것은 물론, 그 사람의 인생관이 아니어서는 아니 되겠기 때문이다. 가령, 우리들이 결혼이라는 것을 한번 생각해 볼 때, 한 남자로서 혹은 여자로서 상대자를 물색함에 있어서 실로 철학은 우리들의 상상할 수 있는 것보다는 훨씬 지배적이고도 결정적인 역할을 하게 됨을 알 수 있을 것이요, 우리들이 어떠한 방식으로 생활을 설계하느냐 하는 것도 결국은 넓은 의미에서 우리들이 부지중에 채택한 철학에 의거하여 실행하게 되는 것이다. 우리들이 생활권 내에 취하게 되는 모든 행동의 근저에는 일반적으로 미학적 내지 윤리적 가치 의식이 횡재하여 있는 것이니, 생활인의 모든 행동은 반드시 어느 종류의 의미와 목적에 대한 관념을 내포하고 있다. 모든 사람은 소위 이상이라는 것을 가지고 있고, 그러한 이상이 각인의 행동과 운명의 척도가 되고 목표가 되는 것은 물론이려니와, 이상이란 요컨대 그 사람의 철학적 관점을 말하는 것이며 그 사람의 일반적 세계관과 인생관에서 온 규범의 한 파생체를 말하는 것이다. '내 마음이 선택의 주인공이 된 이래 그것이 그대를 천 사람 속에서 추려 내었다.'고 햄릿은 그의 우인 호레이쇼에게 말하였다. 확실히 우인의 선택은 임의로운 의지적 행동이라고는 하나, 그러나 그것은 인생 철학에 기초를 두는 한, 이상의 지배를 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햄릿은 그에 대하여 가치가 있는 인격체이며, '천지지간만물'에 대한 이해력을 가지고 있으며, 그리하여 이 인생 생활을 저 천재적이나 극히 불운한 정말의 공자보다도 그 근본에 있어서 보다 잘 통어할 줄 아는 까닭으로, 호레이쇼를 우인으로서 택한 것이다. 비단 이뿐이 아니오, 모든 종류의 심의 활동은 가치관의 지도를 받아 가며 부단히, 그리고 결정적으로 그 운명을 형성하여 가는 것이나, 적어도 동물적 생활의 우매성을 초극한 모든 사람은 좋든 궂든 하나의 철학을 갖는 것이다. 사람은 대개 이 인생에 대하여 무엇을 요구해야 할까를 알며, 그의 염원이 어느 정도로 당위와 일치하며, 혹은 배치될지를 아는 것이니, 이것은 실로 사람이 인간 생활의 의의에 대하여 사유하는 능력을 갖기 때문에 오직 가능할 수 있는 것이다. 두말할 것도 없이 생활 철학은 우주 철학의 일부분으로서 통상적인 생활인과 전문적인 철학자와의 세계관 사이에는, 말하자면 소크라테스와 트라지엔의 목양자의 사이에 볼 수 있는 것과 같은 현저한 구별과 거리가 있을 것은 물론이나, 많은 문제에 대하여 그 특유의 견해를 갖는 점에서는 동일한 철학자인 것이다. 나는 흔히 철학자에게서 생활에 대한 예지의 부족을 인식하고 크게 놀라는 반면에는, 농산어촌의 백성 또는 일개의 부녀자에게 철학적인 달관을 발견하여 깊이 머리를 숙이는 일이 불소함을 알고 있다. 생활인으로서의 나에게는 필부필부의 생활 체험에서 우러난 소박, 진실한 안식이 고명한 철학의 난해한 글보다는 훨씬 맛이 있다는 것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원래 현실적 정세를 파악하고 투시하는 예민한 감각과 명확한 사고력은 혹종의 여자에 있어서 보다 더 발달되어 있으므로 나는 흔히 현실을 말하고 생활을 하소연하는 부녀자의 아름다운 음성에 경청하여, 그 가운데서 또한 많은 가지가지의 생활 철학을 발견하는 열락은 결코 적은 것이 아니다. 하나의 좋은 경구는 한 권의 담론서보다 나은 것이다. 그리하여 언제나 인생의 지식인 철학의 진의를 전승하는 현철이 존재한다는 것은 고마운 일이다. 그래서 이러한 무명의 현철은 사실상 많은 생활인의 머릿속에 숨어 있는 것이다. 생활의 예지-이것이 곧 생활인의 귀중한 철학이다.
내 마음이 강해야 내 소원도 이루어진다 - 잭 캔필드, 마크 빅터 한센 1. 소원성취는 마음먹기 나름 남 따라한 시도가 가져온 성공 - TV 프로듀서 카를라 모건스턴 당신이 할 수 있는 무엇이든 시도하고, 당신이 꿈꿀 수 있는 무엇이든 시작하라. 대담속에는 힘과 마법이 존재한다.-괴테 나는 항상 프로듀서가 되고 싶었고, 끊임없이 프로듀서가 된 내 모습을 그려 왔다. 나는 진정으로 그것을 원했다. 어느날 아침, 나는 일찍 일어나서 '오늘의 LA'프로를 봤다. 마침 글로리아 스테이넘이 출연해서 '비범한 행동, 그 일상의 반란'이라는 저서를 홍보했다. 그녀는 모든 이가 바로 오늘 비범한 일을 하겠노라고 스스로에게 다짐하면, 세상은 훨씬 더 살기 좋아질 거라는 말로 끝을 맺었다. 세시간 후, 나는 비범해지기로 결심했다. 나는 전화 수화기를 들고 글로리아의 사무실로 전화해서 그녀와 만날 약속을 했다. 20대의 풋내기에 불과한 내가 그런 어마어마한 일을 해낸 것이다. 나는 글로리아 스테이넘에게 말했다. "저는 당신이 아침 프로그램에 출연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녀는 내 말에 동의했다. 그 다음에 나는 그 당시 '투데이 쇼'의 제작국장이었던 스티브 프레드맨을 찾아가 글로리아가 아침 쇼의 고정 출연자가 되는 아이디어를 팔았다. 우리는 2년 동안 그 쇼를 맡았고, 나는 그렇게 프로듀서로 첫발을 내딛었다,
Board 추천글 2022.08.27 風文 R 1159
풍성학려(風聲鶴唳) - 겁을 먹은 사람이 하찮은 일에도 놀람의 비유. 《出典》'晉書' 謝玄傳 동진(東晉)의 명장 사현(謝玄)은 진왕(秦王) 부견(符堅)이 직접 이끌고 내려온 백만에 가까운 군사를 맞아 겨우 10분의 1밖에 안되는 적은 군사로써 이를 회하(淮河) 상류인 비수에서 거의 전멸시키다시피 한 대승리를 거두었다. 사현(謝玄)이 대승을 하게 된 내력은 다음과 같다. 진(晉)의 재상 사안(謝安)은 동생 사석(謝石)과 조카인 사현(謝玄)을 선봉으로 삼아 8만의 군사로 서진(西秦)의 백만 대군을 맞이했다. 그리고 사현은 적의 총지휘관인 부융(符融)에게 사자를 보내 이렇게 청했다. "귀하의 군대를 조금만 뒤로 후퇴시켜 주시오. 그러면 우리가 물을 건너가 한 번 싸움으로 승부를 하겠습니다." 군사의 수(數)를 믿고 상대를 깔보고 있던 부견과 부융은 얼마 안되는 적이 물을 반쯤 건너왔을 때 기습작전으로 간단히 이를 해치울 생각으로 사현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부융의 북군이 후퇴를 개시하고 남군이 강을 건너기 시작했을 때 북군 내에서 뜻하지 않은 혼란이 일어났다. 그것은 물러나라는 명령을 받은 북군은 남군이 강을 건너오는 것 을 보자 싸움에 패(敗)해서 물러나는 것으로 오인하고 앞을 다투어 달아나기 시작했기 때 문이다. 뒤쪽에 있던 군사들은 앞의 군사가 허둥지둥 도망쳐 오는 것을 보자 덩달아 겁을 먹고 정신없이 달아났다. 이리하여 북군은 자기 군사가 모두 적군으로 보이는 혼란 속에서 서로 짓밟으며 달아나 다 물에 빠져 죽는 자가 부지기수였다. 남은 군사들은 갑옷을 벗어 던지고 밤을 새워 달아나며 바람소리와 학의 울음소리만 들어도 진(晉)나라 군사가 뒤쫓아 온 걸로 알고 길도 없는 가시밭 속을 헤매며 한데서 밤을 보냈다. 거기에다 굶주림과 추위까지 겹쳐 죽은 사람이 열에 일곱 여덟은 되었다. 청각적인 착각과 아울러 산천의 풀과 나무까지 다 적의 군사로 보였다는 초목개병(草木皆兵)이라는 시각적인 착각도 이 고사에서 나온 말이다. 堅衆奔潰 自相答藉 投水死者 不可勝計 ?水爲之不流 餘衆棄甲宵遁 聞風聲鶴? 皆以爲王師已至 草行露宿 重以飢凍 死者十七八.
Board 고사성어 2022.08.27 風文 R 697
짧아져도 완벽해 캡슐의 발명으로 가루약 먹기가 쉽듯이, 장바구니 하나면 여러 물건을 한 손에 들 수 있듯이, 단어도 문장이나 구절로 흩어져 있는 걸 한 그릇에 담을 수 있다. 그래서 사람들은 축약 방식의 단어 만들기에 욕심을 부린다. 순간순간 벌어지는 무수한 일들을 하나의 이름으로 움켜쥐고 싶은 마음. 날아가는 새를 잡았다는 느낌. 전에 없던 개념 하나를 탄생시켜 세계를 확장시켰다는 뿌듯함. 부질없는 만큼 매력적이니 멈출 수가 없다. 문장은 단어를 나열하여 사건이나 상태를 설명한다. 단어가 많아지면 기억하기가 어렵다. ‘하늘이 흐려지는 걸 보니 내일 비가 오려나 보다’라는 문장을 한 달 뒤에 똑같이 되뇔 수 있을까? 이걸 ‘하흐내비’라 하면 쉽다. 매번 속을 까보지 않아도 되는 캡슐처럼 복잡한 말을 단어 하나에 쓸어 담는다. 게다가 이전에 없던 개념을 새로 만든다. ‘시원섭섭하다’, ‘새콤달콤하다’ 같은 복합어가 별도의 감정이나 맛을 표현하듯이 ‘웃프다’, ‘소확행’, ‘아점’도 전에 없던 개념을 선물한다. ‘갑툭튀, 듣보잡, 먹튀, 낄끼빠빠, 엄근진(엄격+근엄+진지)’ 같은 말로 새로운 범주의 행태와 인간형을 포착한다. 애초의 말을 원상회복시켜도 뜻이 같지 않다. 발음만 그럴듯하면 독립한 자식처럼 자기 갈 길을 간다. 닮은 구석이 있어도 이젠 스스로 완전체이다. 언어를 파괴한다는 항의와 말을 알아들을 수 없다는 호소가 있지만 축약어 만들기를 막을 도리는 없다. 말이 있는 한 사라지지도 않을 것이다. 걱정이라고? 말은 지켜야 할 성곽이 아니라 흐르는 물. 지키거나 가둬 둘 수 없다. “999 대 1” 어떤 언어든 ‘반드시’ 표시해야 하는 게 있다. 프랑스어는 모든 명사에 남성, 여성 중 하나를 꼭 표시해야 한다. ‘사과’는 여성, ‘사과나무’는 남성. ‘포도’는 남성, ‘포도나무’는 여성. 독일어는 남성, 여성, 중성 셋이다. ‘태양’은 여성, ‘달’은 남성, ‘소녀’는 중성! 이곳 사람들은 명사에 성 표시하기를 피할 수 없다. 페루의 어떤 원주민은 과거를 최근 한 달 이내, 50년 이내, 50년 이상 등 세 가지 기준으로 나눠 쓴다. 셋 중 하나를 반드시 골라 써야 한다. 이렇게 반드시 표시해야 하는 요소들은 어릴 때부터 마음의 습관으로 자리 잡는다. 한국어에는 단연 ‘높임법’. 만만하면 반말, 두렵다면 높임말. 위아래를 항상 따져 묻는 사회, 위계 표시가 습관인 언어이다. 하지만 사회적 다수가 쓴다는 이유로 습관처럼 잘못 자리 잡은 것들도 많다. 이런 말들도 무조건 반사처럼 자동으로 튀어나온다. 의식하면 알아챌 수 있고 다른 언어를 쓰는 의인을 만나면 고칠 수도 있다. 책 한 권 써서 출판하는 수업에서 있었던 일. ‘애인’을 쓰겠다는 남학생을 예로 들면서 ‘여친’이라고 부른 것이 문제였다. 한 학생이 내게 꾸짖기를, “당신은 그 단어가 자연스럽게 떠올랐겠지만 성소수자들은 ‘남자의 애인’을 곧바로 ‘여친’으로 치환하는 게 매우 불편하다. 999명에게는 자연스러운 ‘추리’지만 1명에게는 ‘배제’의 말이다. 그런데 그게 우리가 만나는 일상이다. 일상언어는 매 순간 우리를 소수자라고 확인시켜 준다.” 말에 반드시 표시해야 할 건 의외로 적다. 대부분은 통념과 편견. 김진해 / 한겨레말글연구소 연구위원·경희대 교수
사랑할 땐 별이 되고 - 이해인 흰구름 단상 15 아무리 애를 써도 결코 억지로는 짜낼 수 없는 시. 그러나 안 써지는 것 역시 즐거워하기로 한다. 시가 어려워도 시를 포기하지 않는 많은 사람들로 하여 세상은 더욱 아름다우리. 보석처럼 열심히 갈고 닦은 빛나는 시인들을 나는 죽을 때까지 질투하며 부러워하리라. 16 르완다의 뼈만 남은 어린이들의 그 퀭한 눈들이 자꾸 나를 쳐다본다. 북한의 배고픈 겨레에게 우리 정부는 너무 무심하고 냉랭하다. 오늘도 태연히 밥을 먹는 게 부끄럽다. 눈물을 글썽인다고, 기도한다고 그들에게 힘이 될까? 우리 나름대로 절식을 해서 그 몫을 떼어 돕는다지만 어쩐지 답답하다. 이웃의 아픔과 불행에 그냥 속수무책인 것만 같은 나의 위치가 가끔 괴로울 때가 있다. 수도자의 가난이란, 마음뿐 아니라 물질적으로도 돕고 싶은 가난한 이들에게 자기 개인의 뜻과 이름으로 베풀고 싶은 원의조차 포기하는 가난함에 있다. 온전한 순명, 철저한 고독에 나 자신을 내맡기는 신앙과 용기가 내겐 아직도 무척 부족하다는 생각이 든다. 17 암세포가 온몸에 퍼져 항암치료를 받는 C수녀님 방에 그분이 좋아하는 풀꽃 한 묶음 들고 갔더니 매우 기뻐하셨는데 그 모습을 보니 나도 기뻤다. 아름다운 꽃은 중환자들에게도 아름다운 위로가 됨을 다시 보았다. 생사의 갈림길에 있는 환자의 입장에서는 오히려 귀찮은 것일지도 모른다고 속단하는 것은 잘못인 것 같다. "거듭 생각해도 고마운 것이 너무 많고, 고마운 이들이 너무 많아요. 전에 큰 수술을 받았을 때는 이만하면 됐으니 데려가 달라는 기도가 나오던데, 이번에는 이상하게 조금만 더 생명을 연장시켜 달라는 욕심을 부리게 돼요. 그분이 다 알아서 잘해 주시리라 믿고 싶어요." 하는 수녀님의 야윈 모습을 지켜보며 나는 할말을 잃었다.
Board 삶 속 글 2022.08.23 風文 R 497
한국대표수필 - 김동리 외 9명 "김진섭편" : 김진섭(1930~?) 수필가, 독문 학자. 호는 청천. 전남 목포 출생. 일본 호세이 대학 졸업. 서울대 교수. 6.25사변 때 납북됨. 저서로 "인생예찬" "생활인의 철학" 등이 있다. 한국 수필 문학의 개척자. 생활의 예지와 감흥을 가지 넘치는 생활 철학의 발견으로까지 발전시켰다. 매화찬 나는 매화를 볼 때마다 항상 말할 수 없이 놀라운 감정에 붙들리고야 마는 것을 어찌할 수 없으니, 왜냐 하면, 첫째로 그것은 추위를 타지 않고 구태여 한풍을 택해서 피기 때문이요, 둘째로 그것은 그럼으로써 초지상적인, 비현세적인 인상을 내 마음속에 던져 주기 때문이다. 가령 우리가 혹은 눈 가운데 완전히 동화된 매화를 보고, 혹은 찬달 아래 처연히 조응된 매화를 보게 될 때, 우리는 과연 매화가 사군자의 필두로 꼽히는 이유를 잘 알 수 있겠지만, 적설과 하늘을 대비적 배경으로 삼은 다음에라야만 고요히 피는 이 꽃의 한없이 장엄하고 숭고한 기세에는, 친화한 동감이라기보다는 일종의 굴복감을 우리는 품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니, 매화는 확실히 춘풍의 태탕한 계절에 난만히 피는 농염한 백화와는 달라, 현세적인, 향락적인 꽃이 아님은 물론이요, 이 꽃이야말로 이 세상에서 우리가 찾을 수 있는 가장 초고하고 견개한 꽃이 아니면 안 될 것이다. 모든 것이 얼어붙어서 찬 돌같이 딱딱한 엄동, 모든 풀, 온갖 나무가 모조리 눈을 굳이 감고 추위에 몸을 떨고 있을 즈음, 어떠한 자도 꽃을 찾을 리 없고 생동을 요구할 바 없을 이 때에, 이 살을 저미는 듯한 한기를 한기로 여기지 않고 쉽사리 피는 매화, 이는 실로 한때를 앞서서 모든 신산을 신산으로 여기지 않는 선구자의 영혼에서 피어오르는 꽃이랄까? 그 꽃이 청초하고 가향이 넘칠 뿐 아니라, 기품과 아취가 비할 곳 없는 것도 선구자적 성격과 상통하거니와 그 인내와 그 패기와 그 신산에서 결과된 매실은 선구자로서의 고충을 흠뻑 상징함이겠고, 말할 수 없이 신산한 맛을 극하고 있는 것마저 선구자다워 재미있다. 매화가 조춘 만화의 괴로서 엄한을 두려워하지 않고 발화하는 것은, 그 수성 자체가 비할 수 없이 강인한 것을 말하는 것으로, 이 동양 고유의 수종이 그 가지를 풍부하게 뻗치고 번무하는 상태를 보더라도, 이 나무가 다른 과수에 비해서 얼마나 왕성한 식물인가 하는 것을 알 수 있거니와, 그러므로 또한 매실이 그 독특한 산미와 특종의 성분을 가지고 고래로 귀중한 의약의 자료가 되어 효험이 현저한 것도 마땅한 일이라 할밖에 없다. 여하간에 나는 매화만큼 동양적인 인상을 주는 꽃을 달리 알지 못한다. 특히 영춘 관상용으로 재배되는 분매에는 담담한 가운데 창연한 고전미가 보이는 것이 말할 수 없이 청고해서 좋다.
내 마음이 강해야 내 소원도 이루어진다 - 잭 캔필드, 마크 빅터 한센 1. 소원성취는 마음먹기 나름 딱 한 번의 실천이 가져온 행복 - 클로디트 헌터 나는 자신감 세미나 중에 '청하고, 청하고, 또 청하는 연습'에 참가했다. 그 세미나 일주일 전에 내 딸아이 쟌나는 독일 교환 학생으로 선발되었다. 하지만 매년 들어가는 비용이 4천 달러나 됐다. 나는 홀몸으로 세 자식을 키우는 입장으로, 수중에 4천 달러는커녕 그 돈을 융통할 길조차 막막했다. 나는 근근히 벌어먹고 사는 형편이었다. 저금도, 신용카드도, 돈을 빌려줄 친척도 없었다. 나는 400만 달러를 구해야 하는 것처럼 눈앞이 캄캄해졌다. 그래서 그 연습을 하는 중에 내가 아는 모든 이에게 요청하고 싶었던 것은 4천 달러였다. 하지만 다른 참가자에게 그런 요청을 하기란 매우 어려웠다. 특히 그 세미나는 전부터 알고 지냈던 친구들에게 돈 문제에 대해 입을 떼기가 더욱 힘들었다. 하지만 그 연습이 막바지에 이르자, 나는 다른 이들에게 돈을 요청한다고 해서 그들이 나에게 품은 사랑과 관심을 잃지 않으리란 것을 깨달았다. 나는 세미나에서 배웠던 것을 행동으로 옮기기로 결심했다. 나는 전단을 만들었다. 거기에 쟌나의 사진과 함께 그녀가 독일로 가는 이유를 적고, 맨 아랫부분에 6월 1일까지 우리에게 수표를 보낼 주소를 쿠폰으로 만들어 떼어 가도록 했다. 나는 5달러, 20달러, 50달러, 100달러를 요청했다. 심지어 원하는 액수를 마음껏 적을 수 있는 공란까지 남겨뒀다. 나는 전단을 집집마다, 친구에게, 아는 이들에게, 지방 신문사 세곳에, 전 직장과 50군데의 자선협회에 보냈다. 나에겐 이제 두 달 남짓 남은 시간은 그렇게 많은 돈을 모금하기에는 너무 촉박해 보였다. 하지만 나는 세미나에서 당신에게 들은 말을 떠올리고 그대로 실천하리라 결심했다. 그래서 나는 내 인생의 모든 일을 창조하고 발전시키고 허락하므로 내 목표를 이룰 수 있다고 의식적으로 되뇌었다. 나는 긍정적인 표어를 썼다. "나는 6월 1일 쟌나의 독일 연수비로 4천 달러를 얻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 글을 내 화장실 거울에 붙여 놓고, 복사본을 지갑에 넣고 다니며 매일 틈만 나면 들여다봤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나는 진짜 4천 달러 수표를 써서 자동차 계기판위에 올려놓았다. 매일 운전으로 여러 시간을 허비하는 나에게 그 수표는 목표를 상기시켰다. 또, 백 달러 짜리 수표의 확대 사진을 쟌나의 침대 위 천장에 붙여 놓았다. 당연히 쟌나가 아침에 일어나서 제일 먼저, 그리고 밤에 제일 마지막으로 보는 것은 그 수표 사진이 되었다. 내가 쟌나에게 이 계획을 설명했을 때, 딸아이는 돈을 요청하는 일이나 긍정적인 표어를 쓰는 일에 내켜하지 않았지만 일단 시도해 보기로 동의했다. 우리가 처음 받은 선물은 5달러였다. 가장 많은 액수는 800달러였다. 하지만 대부분은 20달러나 50달러였다. 일부는 내가 아는 사람에게, 나머지는 낯모르는 타인에게 받았다. 우리는 모두 하나의 목적 아래에 똘똘 뭉친 것이다. 6월 1일 총 모금액은 3,750달러에 이르렀다! 우리는 흥분하고 전율에 떨었다. 이런 경이로운 사태에도 불구하고 나는 나머지 250달러를 어디에서 구해야 할지 막막했다. 하지만 6월 5일까지는 아직 시간이 남아 있었다. 마침내 6월 3일 전화 벨이 울렸다. 우리 동네의 자선협회에서 일하는 한 여성의 전화였다. "내가 시한을 넘겼다는 것은 알아요. 너무 늦었나요?" 그녀가 물었다. "아니에요!" 나는 대답했다. 그러자 그녀가 말했다. "사실, 우리는 쟌나를 정말 돕고 싶지만 고작 250달러가 전부에요." 우리는 총 33명의 개인과 두 군데의 자선 협회로부터 우리가 필요로 했던 금액을 받았다. 그것도 시한 내에! 이 사건은 나에게 '청하는 연습'의 놀라운 사례가 되었다. 나는 쟌나가 이 일생일대의 경험을 영원히 기억하고 그녀의 삶을 유익하게 하리라는 것을 안다. 그리고 나 역시 마찬가지다.
Board 추천글 2022.08.23 風文 R 128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