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음이 묻어나는 편지 - MBC 예술단 엮음 셋 - 사랑으로 풀어내는 웃음보따리 망신살 부른 세계화 대망의 1992년 12월 25은 저에게는 아주 뜻깊은 날이었습니다. 지난 8년간 숱한 유혹을 뿌리치고 한 남자를 기다렸고 드디어 그 남자와의 결혼식이 있었던 그해 그날! 사실 이 남자와의 결혼은 축복 속에 치러졌습니다. 저는 그렇다 치고, 우리 엄마는 눈에 무엇이 씌었는지, 학교를 졸업도 안한 남자와 그것도 대기업 공채 시험에 번번이 서류전형에도 미끄러지는 사위를 맞이하려고, 곱게 키워 고등학교 때는 우등상도 타면서 비록 지방이지만 비싼 등록금 내가면서 명문 사립대를 졸업하고, 그대는 취직도 해서 월급도 타는 저를 사위 정말 괜찮다고 소문 내면서 결혼을 시켰습니다. 우리 남편 자랑이지만 그 당시는 졸업학점도 좋았고 영어실력도 괜찮아 보였고, 직장은 안 간 거지 못 간 것은 아니라고 강변할 정도로 자신 만만하던 시절이었으니까 우리 아버지도 반할 만했거든요. 결혼식장에서 신부 예쁘다는 소리보다는 남편 잘생겼다는 소리를 더 많이 듣는 결혼식은 처음이었으니까요. 8년간의 연애는 꿈 많은 소녀에게는 참 많은 것을 가르쳐 주었습니다. 남편 말에는 복종해야 한다. 남편은 똑똑하다. 남편은 영어회화실력은 누구 못지 않게 좋다. 추진력하나는 끝내준다 등등. 그래서 저도 열심히 남편 따라 공부를 해야 했고, 남편이 영어실력이 좋으면 아내는 일어실력이 좋아야 한다.는 지상명령에 따라 남편 군대간 사이 저는 열심히도 일본어 공부를 했습니다. '세계화를 외치면서!' 신혼여행도 많은 고민 끝에 우리는 일본으로 가기로 했습니다. 제가 우겼죠, 세계화해야 한다고. 그것도 10박 11일. 장난이 아니었습니다. 결혼식이 중요하지 않고 신혼여행이 중요했던 이유는 일본으로의 배낭 신혼여행. 보잘 것 없는 남편의 기를 팍 죽이고 주도권을 잡으려면 신혼여행지에서 잡으라는 선현들의 말씀을 되새기며 해외여행 그것도 신혼여행으로 제가 잘하는 일본어가 통하는 일본으로 10박 11일이나. 호호호. 이해를 돕기 위하여 남편은 백수니까 그렇다 치고 신부는 직장인 인데 하고 의아해 하실까봐 설명해드릴게요. 10박 11일은 신정연휴 3일에다 결혼휴가 일주일. 가장 중요한 건. 제가 없어도 별로 타격을 입지 않는 회사였으니까 그렇게 오래도록 휴가를 가도 부도 유예결정 같은 거 안 나고 버텼다는 사실! 참고 하시기 바랍니다. 어쨌든 일본에 도착을 했습니다. 제가 먼저 공항 외국 심사 대에 올랐죠. 일본어로 무언가를 물어보는데 영 감이 오질 않데요. 분명 젊은 여자가 화장을 짙게 하고(신부화장)있으니 술집에 일자리 구하러 오는 걸로 착각한 모양입니다. 멍하게 있으니까, 이번엔 영어로 "캔 유 스픽 잉글리쉬(영어할 줄 아세요)?"라고 하더군요. 그래서 전 남편을 불렀습니다. 남편은 아주 자신만만하게 대답했습니다. "예스, 아이 캔 스픽 잉글리쉬(영어 하죠)." 이러한 남편의 모습에 전 속으로 '역시 백수라도 미래가 보여.'하고 생각했는데 뒤따라 들려오는 말 "티켓 플리즈."티켓을 달라는 거예요. 전 그때 생각했습니다. '티켓이 뭐지.?' 남편도 멍하니 저를 쳐다보더군요. 우리는 고민을 했습니다. 왜 하필 저와 남편의 머릿속에 그 당시 유행했던 영화가 생각났던지. 남편은 또 영어로 말했습니다. "왓져 티켓(티켓이 뭐예요)?" 그 일본관리 역시 멍하니 쳐다보며 옆으로 비켜 쭈그리고 앉아 있게 하데요. 완전히 불법취업자 취급하듯이. 모든 사람이 입국심사를 통과할 때까지 우리는 그 문제의 티켓이 무엇인지 알지 못했습니다. 온갖 상상을 다했습니다. 일본에서 한국의 지하철 표가 왜 필요하지, 극장표를 달라고 하는 건가, 일본에도 한국의 티켓이라는 영화가 상영 되었는가, 하며 해외여행이 처음인 신혼부부는 그렇게 다른 나라의 차가운 바닥에 않자 일본관리의 처분을 기다려야 했습니다. 알고보니 티켓은 돌아올 항공권을 보여 달라는 거였는데. 남편은 입국 심사 대를 빠져 나오며 혼잣말로 말하더군요. "비행기표를 보여달라고 하지 괜히 티켓을 달라고 해." 그렇게 우리는 일본에서의 신혼여행을 손짓 발짓으로 기차 안에서 심야버스에서 두 손을 꼭 잡고 잠을 자면서 행복해 했습니다. 티켓으로 영어실력이 들통난 남편의 기를 죽여가면서. 마지막으로 우리는 동경의 디즈니랜드를 갔습니다. 일본 국민성이 워낙 친절해서 그런지, 종업원들의 우리가 구경하려고 줄만 서면 "남매데스까? 남매데스까?"하는 거예요. 저는 싱긋 웃으며 "이이예, 부부데스, 남매가 아니고 부부예요." 했죠. "부부는 닮는다고 하는데 일주일 만에 우린 많이 닮았나봐. 남매냐고 묻는 걸 보면." 천생연분임을 과시하며 티켓사건도 잊어버리고 일본어와 한자는 같으니까, 또 어느 정도 일본에서 생활한 게 있다고 아주 자랑스럽게 '부부데쓰'를 외치고 다녔죠. 그런데 이상한 게 아주 친절하게 "남매데쓰까?" 하며 묻던 사람들이 "부부데쓰." 라고 대답만하면 모두 고개를 갸우뚱하는 거예요. 웃고 떠들며 우린 외국인인데 아는 사람도 없고, 전문용어로 익명성이 철저히 보장되는 사회에서 '부부데쓰'를 외치며 다니는데 웬걸 뒤에서 "저 한국에서 오셨어요?" 하는 소리가 얼마나 반갑던지, 외국에 나오면 다 애국자가 된다고 우리 동포를 만나 반가움에 손이라도 덥석 잡으려고 하는데, "저,아가씨. '남매데쓰까'는 몇 명이냐고 묻는 거예요." 하는 겁니다. 남편은 저를 보고, 저는 쥐구멍을 찾고, 그렇게 일본의 신혼 배낭여행은 끝이 났습니다. 5년이 지난 지금 2명의 아이까지 낳고 잘 살고 있습니다. 직장일로 9번정도 일본을 더 다녀왔는데 아직도 '남매데쓰까?'하면 '부부데쓰'가 엉겁결에 나옵니다. 남편도 그날 이후 살아 있는 영어공부를 한다고 뛰어다니더니, 좋은 직장을 구했고, 영어실력 보여주겠다고 해외여행 가자고 큰소리치고 있습니다.
Board 삶 속 글 2023.05.27 風文 R 844
양금택목(良禽擇木) 良:어질/좋을 량. 禽:새 금. 擇:가릴 택. 木:나무 목. [동의어] 양금상목서(良禽相木棲). [출전]《春秋左氏專》〈衷公十八年條〉,《三國志》〈蜀志〉 현명한 새는 좋은 나무를 가려서 둥지를 친다는 뜻으로, 현명한 사람은 자기 재능을 키워 줄 훌륭한 사람을 가려서 섬김의 비유. 춘추 시대, 유가(儒家)의 비조(鼻祖)인 공자가 치국(治國)의 도를 유세(遊說)하기 위해 위(衛)나라에 갔을 때의 일이다. 어느 날, 공문자(孔文子)가 대숙질(大叔疾)을 공격하기 위해 공자에세 상의하자 공자는 이렇게 대답했다. “제사 지내는 일에 대해선 배운 일이 있습니다만, 전쟁에 대해선 전혀 아는 것이 없습니다.” 그 자리를 물러 나온 공자는 제자에게 서둘러 수레에 말을 매라고 일렀다. 제자가 그 까닭을 묻자 공자는 ‘한시라도 빨리 위나라를 떠나야겠다’며 이렇게 대답했다. “현명한 새는 좋은 나무를 가려서 둥지를 친다[良禽擇木]고 했다. 마찬가지로 신하가 되려면 마땅히 훌륭한 군주를 가려서 섬겨야 하느니라.” 이 말을 전해들은 공문자는 황급히 객사로 달려와 공자의 귀국을 만류했다. “나는 결코 딴 뜻이 있어서 물었던 것이 아니오. 다만 위나라의 대사에 대해 물어 보고 싶었을 뿐이니 언짢게 생각 말고 좀더 머물도록 하시오.” 공자는 기분이 풀리어 위나라에 머물려고 했으나 때마침 노(魯)나라에서 사람이 찾아와 귀국을 간청했다. 그래서 고국을 떠난 지 오래인 공자는 노구(老軀)에 스미는 고향 생각에 사로잡혀 서둘러 노나라로 돌아갔다.
Board 고사성어 2023.05.27 風文 R 1009
도긴개긴 여자 친구의 짜증과 국민연금의 공통점은? ‘개그콘서트’ 에 따르면 왜 내는지 모르겠다는 점에서 ‘도찐개찐’ ‘오십보백보’란다. 인기 개그 프로그램 덕에 ‘도찐개찐’은 모르는 사람이 없는 유행어가 되었다. ‘표준국어대사전’에도 이 말의 원말인 ‘도긴개긴’이 새 표제어로 수록되게 되었다. ‘도긴개긴’은 윷놀이에서 상대편의 말을 ‘도’로 잡을 수 있는 거리나 ‘개’로 잡을 수 있는 거리가 별반 차이가 없다는 데서 유래한다. 조그마한 차이는 있으나 본질적으로는 엇비슷한 일을 빗대어 이를 때 쓴다. 여기서 ‘긴’은 윷놀이에서 남의 말을 쫓아 잡을 수 있는 거리를 뜻하는 순우리말이다. 앞 말을 잡게 됐을 때 ‘긴이 닿았다’라고도 하고, ‘걸 긴’이니 ‘윷 긴’이니 하는 말로 앞선 말과의 거리를 표현하기도 한다. 오늘날에는 윷놀이를 즐겨 하지 않게 되면서 이런 말들이 점점 잊혀져 가고 ‘도긴개긴’만 남아 비유적으로 사용된다. ‘백수오나 이엽우피소나 도긴개긴’ ‘생수 가격이나 석유 가격이나 도긴개긴이다’처럼 쓰인다. '도찐개찐’은 ‘도긴개긴’의 방언형으로 보인다. ‘긴’이 ‘진’이 되는 것은 ‘길’을 ‘질’로 발음하거나 ‘기름’을 ‘지름’으로 발음하는 등 우리말 방언에서 광범위하게 나타나는 현상이다. 이것을 입말로만 접한 사람이 ‘도찐개찐’으로 방송에서 쓰게 되면서 갑자기 온 국민들에게 익숙해지게 된 것이다. 국어사전에서는 이 말을 예전에는 ‘도 긴 개 긴’이라는 각각의 명사들의 결합으로 보아 따로 표제어로 수록할 필요가 없다고 보았다. 최근 이 말이 널리 쓰임에 따라 하나의 명사로 굳어졌다고 판단하여 표제어로 수록하고 붙여 쓰도록 한 것이다. 정희원 국립국어원 어문연구실장
Board 말글 2023.05.27 風文 R 2722
웃음이 묻어나는 편지 - MBC 예술단 엮음 셋 - 사랑으로 풀어내는 웃음보따리 인간 물침대의 비극 지금 저는 분위기를 바꿔 조용히 지금껏 살아온 지난날을 회상하면서 이렇게 펜을 들었어요. 제가 지금이 1/4쪽을 만난 것(남들은 이럴 때 다들 반쪽이란 표현을 쓰더군요. 하지만 남편 말을 빌리자면 우린 반쪽+반쪽이 아닌 3/4쪽인 저, 1/4족인 자기가 결합된 거라나요? 기가 막혀서..!) 우쨌든 우리의 첫만남은 쬐끔 독특했어요. 8년 전이었어요. 첫직장을 그만두고 아는 분 소개로 다른 직장을 다니게 되었지요. 첫직장은 많은 남직원에 여직원 딸랑 저 혼자라 공주꽃인 양 팔랑거리고 다녔는데, 옮긴 직장은 사정이 좀 틀리더군요. 남직원들은 늘 미니스커트인 내숭뭉탱이 은자에겐 야들야들 간들어지는 목소리로, "미스 방-." 너무나도 몸과 마음이 솔직한 저에겐 투박한 큰소리로, "이양-!" 이렇게 호칭부터 차이를 두니 저의 스트레스는 가슴을 뚫고 나와 미친 듯이 날뛰었고, 첫출근부터 예전의 공주꽃인 전 향단이 신세로 전락하고 말았습니다. 치사한 인간들, 방양이 막대걸레로 청소라도 할라치면 "미스 방-, 개미허리로 무슨 일을 합니까? 그냥 쉬고 저한테 걸레 주이소." 미스 리인 제가 청소할 때면 "어이, 이양요. 내 발밑에 와 안 밀고 그냥 갑니까? 그라고 이 휴지통도 좀 비워주이소." 방양이 덥다고 한마디만 해도 "미스 방-, 에어컨 캐주까요?" 미스리가 더워 에어컨 바람 쐬고 있으면 "이양, 에어컨 바람 그 덩치로 다 막지 말고,저 - 짝 저게 선풍기나 쐬소." 뭐 매번 이런 식이니 한때 공주꽃인 제가 가만 당하고만 있겠습니까? 저는 우째든지 이 만행으로부터 벗어나야만 했어요. 그래서 결심을 했지요. '그래 어쩔 수 없지. 이 황금 같은 지방들을 잠시 하늘에 맡기는 수 밖에..' 그래도 24년 동안이나 비좁은 땅에 옹기종기 모여 살아왔던 살들인테 빼야만 될 숙명이라 생각하니 눈물이 앞을 가렸어요. 지방!! 나보다 더 높은 곳에 니가 있을 뿐... 사후에 다시 만날 걸 약속하며 살 빼는 방법들을 모색하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쉽게 살이 빠진다는 모든 약들의 유혹을 뿌리치고 운동으로 결정을 했습니다. 젊은 나이에 하늘로 올라갈 지방들 보기 미안해서라도 쉽게 내 한몸 힘들이지 않고 편하게 살 뺄 순 없었거든요. 집 근처 에어로빅 학원 앞까지 갔다가 학창시절 무용기피증이 도질 것 같아 포기하고 회사 근처에 위치한 헬스장엘 가기로 했어요. 퇴근후 간단한 운동복을 들고 그곳의 문을 여는 순간 숨이 막힐 듯 모조리 절 쏘아보는 시선들을 몽땅거리 하나로 모아 오독오독 씹어먹고 용감하게 운동복으로 갈아입고 보란 듯이 하나하나 가르쳐주는 대로 아주 아주 열심히 최선을 다했습니다. 한 며칠을 죽자살자 아무 생각 없이 했지만 곧이어 약간의 착오를 가져오게 하는 인물이 생겨났어요. 그때 계절이 한창 더운 찜통 같은 날씨인 여름이라 운동으로 인해 아름다운 물방울로 생을 마감한 지방들의 흔적, 다시 말해 근적거리는 땀들을 씻지 않고는 그 먼 집까지 도저히 갈 수가 없겠더라구요. 그래서 헬스장 내의 샤워실을 이용하게 되었지요. 남자들이야 여럿이 함께 하겠지만 저야 그럴 수 있습니까? 문 잠가 놓고 혼자 했습니다. 그러다보니 제가 샤워실을 사용할 땐 남자들이 양보도 해주고 기다렸다 하는 사람도 있었어요. 근데 언제부터인지 누군가 일부러 저보다 5분 더 빨리 선수쳐 샤워실을 점령하더군요. 제가 누굽니까? 질 수 있습니까? 저는 다음날 5분 더 빨리, 그러니깐 본래 운동시간은 10분 단축된 셈이고 그 누군가의 샤워시간 5분전에 다시 탈환을 했죠. 그 인간도 다시 저의 작전을 읽었는지 서서히 모습을 보이더군요. 제가 윗몸일으키기를 하고 있을 때였어요. "아줌마 저녁시간에 집에 아이들 밥 굶기지 말고 저녁이나 해주지, 남자들 버글버글한 데는 뭐한다고 옵니까? 그라고 고것도 윗몸일으키기라고 합니까? 아줌마는 감각적으로다 뱃살만 접치믄 다 올라왔다 싶겠지만은요, 옆에서 보니 정말로 딱합니다. 하기사.., 이해는 됩니다. 모가지만 쑤그리도 뱃살이 접치는 걸 우짜겠습니까? 열심히 해보이소." "아저씨요, 지금 뭣이라고 했는데요? 아줌마가 어떻고 모가지, 뱃살? 그러는 아저씨는 그 키에 그 몸에 뭐한다고 이런 데 와서 돈 뿌립니까? 그 돈 있시믄 불우이웃돕기나 하지 그럽니까?" 그와 난 이날 이후 더 치열한 샤워실 선제공격을 해댔습니다. 그러다보니 1시간은 해야 될 운동시간이 5분씩 앞당겨져 삼사십 분이 되지않겠어요. 그래서 일부러 5분씩 늦추면 그 인간도 늦추고... 그러던 어느 날 제 생애 최대의 사건이 터지고야 말았습니다. 저는 여느 때처럼 운동을 하고 샤워실로 향했지요. 문 걸어놓고 땀에 절은 운동복을 벗으며 밖에서 한발 늦었다며 땅을 치고 있을 그 인간 생각에 몹시도 즐거웠더랬습니다. 저는 룰루랄라 노래를 부르며 수도꼭지를 틀려는데 어디서 이상야릇한 소리가 들리지 않겠어요? 무슨 소리인지 고개를 돌리기도 전에 연이어 들리는 소리 '드르렁-.' 세상에 그 인간이 저 구석에서 발가벗고 웅크려 졸고 있는 게 아니겠어요? 저는 순간 너무너무 놀라 있는 소리 없는 소리 다 질러댔고, 얼떨결에 자다 놀란 그 역시 반쯤 감긴 눈으로 더듬거리며 올누드 자세로 일어났어요. "뭐, 뭐, 뭐꼬?" 여전히 반쯤 잠속에서 헤매는 그의 놀라운 행동에 저는 더 놀라 목이 터져라 소리를 찔러 댔어요. 그런데 그렇게 소리를 질러대면서도 왜 그렇게 저의 시선은 한쪽으로 쏠리는지요? 그제서야 상황을 파악한 그는 앉았다. 섰다, 등돌렸다, 옆으로 돌겼다. 호들갑이었어요. 근데 저는 어떻게 하고 있었냐구요? 지금 생각하면 차라리 그 자리서 쭈그려 앉았으면 괜찮을 걸 손에 들고 있던 수건으로 가린다고 가렸는데 그게 어디 말처럼 쉽습니까? 수건 한장으로 해결될 몸매였으면 제가 이 헬수장을 찾았겠어요? 쭈그려 앉는 게 백번 나았겠죠. 샤워실 내의 한바탕 사건도 끔찍한데 샤워실 밖에서 들려오는 웅성대는 사람들의 관심도 미칠 것 같았습니다. 그가 먼저 나가고 저는 고개 푹 숙여 말도 못한 채 거의 뛰는 것도 모자라 제 몸매에 알맞은 몸통구르기로 그 자릴 빠져나왔어요. 물론 당연히 그 헬스장엔 발도 안 붙이게 되었고, 혹시나 헬스장 다니는 사람들이랑 오며가며 만날까봐 회사도 그만뒀어요. 그리고 며칠 뒤 헬스장에서 연락처를 알았다며 그가 집으로 연락을 해왔습니다. 대뜸 책임지라는 그의 말대로 지금은 한 아파트의 욕실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결혼 전에는 제 몸에 붙어 있는 건 하나의 작품이라며 절대 살을 못 빼게 하더니 신혼여행 첫날 지나고 부터 전 또 다시 처녀 적 고민이 시작되었어요. 달콤했던 신혼 첫날밤을 지낸 다음날 아침, 하도 숨쉬기가 거북하고 온몸에 압박감이 느껴져 눈을 뜨니 글쎄 이 사람이 제 몸위에 엎어져 자고 있는 거예요. "자기야." 불러봤더니 제 옆에 있던 자기 베개를 껴안으며 이러는 겁니다. "자기 벌써 일어났어? 자기야, 호텔이라는 게 참말로 좋은 곳인갑네. 이 침대만 해도 마치 물침대마냥 아주 편안하고.... 이것 봐, 스트링이 움직거리는 게 말로만 듣던 인체공학 침대인갑다. 그자? 우리도 나중에 돈 벌면 이런 침대 사자. 알겠제." 세상에 저는 힘들어 죽겠구만 심장 뛰는 소리를 인체공학 설계에 의한 스프링의 진동이라 설명하는 그가 정말 미웠습니다. 신혼 둘째밤을 보낸 다음날 아침, 저는 어제 아침을 떠올리며 머리 위까지 이불을 뒤집어쓰고 잤죠. 근데 자꾸만 배꼽을 찔러대는 게 아니겠어요. "자기는 와 자꾸 배꼽을 찔러대노?" 전 짜증섞인 투로 물었어요. 그런데 곧이어 들리는 남편의 대답은 절 비참하게 했어요. "자기야, 정말 미안해. 나는 말이지 사람의 똥침을 한다는 게 그렇게 됐어. 내는 이불 속에서 불룩 솟은 게 엉덩인 줄 알았어. 내 생각이 짧아 여기까진 생각을 못했어. 정말 미안해 자기야." 마지막 신혼밤을 보내게 될 셋째날 밤. 그가 먼저 샤워하고 저는 적당량의 향수를 부린 채 샤워를 마치고 나왔지요. 욕실 문앞에 서 있던 남편은 뭔가 큰 결심을 한 것 같은 표정으로 말하더군요. "자기야, 오늘은 우리 신혼 마지막 밤이니께니 내가 여짝에서부터 저 침대까지 들어 안아서 갈게." 앞에서 밝힌 바와 같이 저는 3/4쪽, 남편은 1/4쪽이니 제가 걱정이 안되게 생겼습니까? "자기야, 그라지 말고 그냥 내가 자기 안아서 가자." "자기는 무슨 소리고? 내도 남잔데 이거 하나 못 할까봐." 저는 굉장히 불안한 마음으로 그의 목에 두 팔을 감았어요. 하지만 20분이 지나도록 그 이상의 진척이 없었어요. 해도해도 안되는지 저보고 그 자리서 누우라고 하더군요. 저는 시키는 대로 했지요. 곧이어 취하는 남편의 자세란 저의 두 다리를 자신의 양쪽 옆구리로 가져가더니 이건 무슨 송장 끌고 가듯 질질 침대까지 끌고 가는 거 있죠. 낭만적인 밤을 만들어주겠다는 그의 뜻과는 전혀 상관없이 저의 잠옷은 질질 끌려간 탓에 배꼽위까지 '때구르르르'말려 올라간 채 침대까지 아니 침대매트에 두 다리만 걸쳐진 자세로 도착할 수가 있었어요. 그래도 지금 이렇게 예전을 떠올려보면 그때가 그립습니다. 지금은 이런 시도도 안한다니깐요.
Board 삶 속 글 2023.05.26 風文 R 906
암중모색(暗中摸索) 暗:어두울 암. 中:가운데 중. 摸:더듬을 모. 索:찾을 색. [준말] 암색(暗索). [동의어] 암중모착(暗中摸捉). [유사어] 오리무중(五里霧中). [출전]《隋唐佳話》 어둠 속에서 손으로 더듬어 찾는다는 뜻으로, 어림짐작으로 찾는다(혹은 추측한다)는 말. 중국 역사상 유일한 여제(女帝)였던 즉천무후(則天武后:690~705) 때 허경종(許敬宗)이란 학자가 있었다. 그는 경망한데다가 방금 만났던 사람조차 기억하지 못할 정도로 건망증이 심했다. 어느 날, 친구가 허경종의 건망증을 비웃자 그는 이렇게 대꾸했다. “자네 같은 이름 없는 사람의 얼굴이야 기억할 수 없지만 조식(曹植)이나 사령운(謝靈運) 같은 문장의 대가라면 ‘암중모색’을 해서라도 알 수 있다네.” [주] 조식 : 조조(曹操)의 셋째 아들. 뛰어난 시재(詩才)를 시기하는 형 문제[文帝:후한을 멸하고 위(魏)나라를 세운 조비(曹丕), 220~226]의 명을 받고 지은〈칠보시(七步詩)〉는 특히 유명함. 사령운 : 남북조 시대 남송(南宋)의 시인. 별명 사강락(謝康樂). 여러 벼슬을 지냈으나 치적(治積)을 쌓지 못하자 그의 글재주를 아끼는 문제(文帝:424~453)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사임. 이후 막대한 유산으로 연일 수백 명의 문인(文人)들과 더불어 산야(山野)에서 호유(豪遊)하다가 반역죄에 몰려 처형됨. 서정(抒情)을 바탕으로 하는 중국 문화 사상에 산수시(山水詩)의 길을 열어 놓음에 따라 ‘산수 시인’이라 불리기도 함.《산수시》《산거적(山居賊)》 등의 시집을 남김.(385~433).
Board 고사성어 2023.05.26 風文 R 988
‘이’와 ‘히’ 다음 중 맞는 것을 골라 보시오. 솔직이/솔직히 깊숙이/깊숙히 곰곰이/곰곰히 꼼꼼이/꼼꼼히 초등학생 시절, 헷갈리는 ‘이’와 ‘히’ 때문에 받아쓰기 백점의 문턱에서 좌절했던 기억은 나만의 경험일까? 아나운서가 된 지금도 누군가 물어 올 때면 잠시 머뭇거리게 된다. 부사화 접미사 ‘이’와 ‘히’를 쉽게 구분하는 가장 쉬운 방법은 ‘하다’를 붙여 보는 것이다. ‘하다’를 붙일 수 있으면 ‘히’가 되고, 그렇지 않으면 ‘이’가 된다. ‘꼼꼼하다’는 말이 되고 ‘곰곰하다’는 말이 되지 않기 때문에 ‘꼼꼼히’ ‘곰곰이’가 되는 것이다. 따라서 ‘말끔히’ ‘쓸쓸히’ ‘조용히’에는 ‘히’가 붙고 ‘간간이’ ‘번번이’‘헛되이’에는 ‘이’가 붙는다. 그렇다면 ‘깨끗하다’이니까 ‘깨끗히’가 되어야 하는 게 아닌가? 어근이 ‘ㅅ’으로 끝나는 말들은 ‘이’가 붙는다. ‘깨끗이’ ‘번듯이’ ‘느긋이’ 등과 같다. 여기까지는 그래도 쉽다. ‘깊숙이’와 ‘깊숙히’는? ‘끔찍이’와 ‘끔찍히’는? 어근이 ‘ㄱ’으로 끝나고 ‘하다’와 결합하는 경우에 ‘깁쑤키’ ‘끔찌키’와 같이 격음으로 발음하는 사람들이 많다. 따라서 ‘깊숙히’ ‘끔찍히’라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어근이 ‘ㄱ’으로 끝날 때에는 ‘이’가 붙는 경우도 많다. ‘깊숙이’ ‘끔찍이’라고 쓰고 ‘깁쑤기’ ‘끔찌기’라고 발음해야 옳다. ‘수북이’ ‘촉촉이’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솔직히’‘엄격히’에는 ‘히’가 붙는다. 애석하게도 ‘이’와 ‘히’의 구분에 있어 규칙이 모든 단어에 적용된다고 보기는 어렵다. 번거롭더라도 일일이 살펴볼 수밖에. 솔직히/솔직히(○) 깊숙이(○)/깊숙히 곰곰이(○)/곰곰히 꼼꼼이/꼼꼼히(○) 임수민 KBS 아나운서실 한국어연구부장
Board 말글 2023.05.26 風文 R 314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