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음이 묻어나는 편지 - MBC 예술단 엮음 셋 - 사랑으로 풀어내는 웃음보따리 인간 물침대의 비극 지금 저는 분위기를 바꿔 조용히 지금껏 살아온 지난날을 회상하면서 이렇게 펜을 들었어요. 제가 지금이 1/4쪽을 만난 것(남들은 이럴 때 다들 반쪽이란 표현을 쓰더군요. 하지만 남편 말을 빌리자면 우린 반쪽+반쪽이 아닌 3/4쪽인 저, 1/4족인 자기가 결합된 거라나요? 기가 막혀서..!) 우쨌든 우리의 첫만남은 쬐끔 독특했어요. 8년 전이었어요. 첫직장을 그만두고 아는 분 소개로 다른 직장을 다니게 되었지요. 첫직장은 많은 남직원에 여직원 딸랑 저 혼자라 공주꽃인 양 팔랑거리고 다녔는데, 옮긴 직장은 사정이 좀 틀리더군요. 남직원들은 늘 미니스커트인 내숭뭉탱이 은자에겐 야들야들 간들어지는 목소리로, "미스 방-." 너무나도 몸과 마음이 솔직한 저에겐 투박한 큰소리로, "이양-!" 이렇게 호칭부터 차이를 두니 저의 스트레스는 가슴을 뚫고 나와 미친 듯이 날뛰었고, 첫출근부터 예전의 공주꽃인 전 향단이 신세로 전락하고 말았습니다. 치사한 인간들, 방양이 막대걸레로 청소라도 할라치면 "미스 방-, 개미허리로 무슨 일을 합니까? 그냥 쉬고 저한테 걸레 주이소." 미스 리인 제가 청소할 때면 "어이, 이양요. 내 발밑에 와 안 밀고 그냥 갑니까? 그라고 이 휴지통도 좀 비워주이소." 방양이 덥다고 한마디만 해도 "미스 방-, 에어컨 캐주까요?" 미스리가 더워 에어컨 바람 쐬고 있으면 "이양, 에어컨 바람 그 덩치로 다 막지 말고,저 - 짝 저게 선풍기나 쐬소." 뭐 매번 이런 식이니 한때 공주꽃인 제가 가만 당하고만 있겠습니까? 저는 우째든지 이 만행으로부터 벗어나야만 했어요. 그래서 결심을 했지요. '그래 어쩔 수 없지. 이 황금 같은 지방들을 잠시 하늘에 맡기는 수 밖에..' 그래도 24년 동안이나 비좁은 땅에 옹기종기 모여 살아왔던 살들인테 빼야만 될 숙명이라 생각하니 눈물이 앞을 가렸어요. 지방!! 나보다 더 높은 곳에 니가 있을 뿐... 사후에 다시 만날 걸 약속하며 살 빼는 방법들을 모색하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쉽게 살이 빠진다는 모든 약들의 유혹을 뿌리치고 운동으로 결정을 했습니다. 젊은 나이에 하늘로 올라갈 지방들 보기 미안해서라도 쉽게 내 한몸 힘들이지 않고 편하게 살 뺄 순 없었거든요. 집 근처 에어로빅 학원 앞까지 갔다가 학창시절 무용기피증이 도질 것 같아 포기하고 회사 근처에 위치한 헬스장엘 가기로 했어요. 퇴근후 간단한 운동복을 들고 그곳의 문을 여는 순간 숨이 막힐 듯 모조리 절 쏘아보는 시선들을 몽땅거리 하나로 모아 오독오독 씹어먹고 용감하게 운동복으로 갈아입고 보란 듯이 하나하나 가르쳐주는 대로 아주 아주 열심히 최선을 다했습니다. 한 며칠을 죽자살자 아무 생각 없이 했지만 곧이어 약간의 착오를 가져오게 하는 인물이 생겨났어요. 그때 계절이 한창 더운 찜통 같은 날씨인 여름이라 운동으로 인해 아름다운 물방울로 생을 마감한 지방들의 흔적, 다시 말해 근적거리는 땀들을 씻지 않고는 그 먼 집까지 도저히 갈 수가 없겠더라구요. 그래서 헬스장 내의 샤워실을 이용하게 되었지요. 남자들이야 여럿이 함께 하겠지만 저야 그럴 수 있습니까? 문 잠가 놓고 혼자 했습니다. 그러다보니 제가 샤워실을 사용할 땐 남자들이 양보도 해주고 기다렸다 하는 사람도 있었어요. 근데 언제부터인지 누군가 일부러 저보다 5분 더 빨리 선수쳐 샤워실을 점령하더군요. 제가 누굽니까? 질 수 있습니까? 저는 다음날 5분 더 빨리, 그러니깐 본래 운동시간은 10분 단축된 셈이고 그 누군가의 샤워시간 5분전에 다시 탈환을 했죠. 그 인간도 다시 저의 작전을 읽었는지 서서히 모습을 보이더군요. 제가 윗몸일으키기를 하고 있을 때였어요. "아줌마 저녁시간에 집에 아이들 밥 굶기지 말고 저녁이나 해주지, 남자들 버글버글한 데는 뭐한다고 옵니까? 그라고 고것도 윗몸일으키기라고 합니까? 아줌마는 감각적으로다 뱃살만 접치믄 다 올라왔다 싶겠지만은요, 옆에서 보니 정말로 딱합니다. 하기사.., 이해는 됩니다. 모가지만 쑤그리도 뱃살이 접치는 걸 우짜겠습니까? 열심히 해보이소." "아저씨요, 지금 뭣이라고 했는데요? 아줌마가 어떻고 모가지, 뱃살? 그러는 아저씨는 그 키에 그 몸에 뭐한다고 이런 데 와서 돈 뿌립니까? 그 돈 있시믄 불우이웃돕기나 하지 그럽니까?" 그와 난 이날 이후 더 치열한 샤워실 선제공격을 해댔습니다. 그러다보니 1시간은 해야 될 운동시간이 5분씩 앞당겨져 삼사십 분이 되지않겠어요. 그래서 일부러 5분씩 늦추면 그 인간도 늦추고... 그러던 어느 날 제 생애 최대의 사건이 터지고야 말았습니다. 저는 여느 때처럼 운동을 하고 샤워실로 향했지요. 문 걸어놓고 땀에 절은 운동복을 벗으며 밖에서 한발 늦었다며 땅을 치고 있을 그 인간 생각에 몹시도 즐거웠더랬습니다. 저는 룰루랄라 노래를 부르며 수도꼭지를 틀려는데 어디서 이상야릇한 소리가 들리지 않겠어요? 무슨 소리인지 고개를 돌리기도 전에 연이어 들리는 소리 '드르렁-.' 세상에 그 인간이 저 구석에서 발가벗고 웅크려 졸고 있는 게 아니겠어요? 저는 순간 너무너무 놀라 있는 소리 없는 소리 다 질러댔고, 얼떨결에 자다 놀란 그 역시 반쯤 감긴 눈으로 더듬거리며 올누드 자세로 일어났어요. "뭐, 뭐, 뭐꼬?" 여전히 반쯤 잠속에서 헤매는 그의 놀라운 행동에 저는 더 놀라 목이 터져라 소리를 찔러 댔어요. 그런데 그렇게 소리를 질러대면서도 왜 그렇게 저의 시선은 한쪽으로 쏠리는지요? 그제서야 상황을 파악한 그는 앉았다. 섰다, 등돌렸다, 옆으로 돌겼다. 호들갑이었어요. 근데 저는 어떻게 하고 있었냐구요? 지금 생각하면 차라리 그 자리서 쭈그려 앉았으면 괜찮을 걸 손에 들고 있던 수건으로 가린다고 가렸는데 그게 어디 말처럼 쉽습니까? 수건 한장으로 해결될 몸매였으면 제가 이 헬수장을 찾았겠어요? 쭈그려 앉는 게 백번 나았겠죠. 샤워실 내의 한바탕 사건도 끔찍한데 샤워실 밖에서 들려오는 웅성대는 사람들의 관심도 미칠 것 같았습니다. 그가 먼저 나가고 저는 고개 푹 숙여 말도 못한 채 거의 뛰는 것도 모자라 제 몸매에 알맞은 몸통구르기로 그 자릴 빠져나왔어요. 물론 당연히 그 헬스장엔 발도 안 붙이게 되었고, 혹시나 헬스장 다니는 사람들이랑 오며가며 만날까봐 회사도 그만뒀어요. 그리고 며칠 뒤 헬스장에서 연락처를 알았다며 그가 집으로 연락을 해왔습니다. 대뜸 책임지라는 그의 말대로 지금은 한 아파트의 욕실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결혼 전에는 제 몸에 붙어 있는 건 하나의 작품이라며 절대 살을 못 빼게 하더니 신혼여행 첫날 지나고 부터 전 또 다시 처녀 적 고민이 시작되었어요. 달콤했던 신혼 첫날밤을 지낸 다음날 아침, 하도 숨쉬기가 거북하고 온몸에 압박감이 느껴져 눈을 뜨니 글쎄 이 사람이 제 몸위에 엎어져 자고 있는 거예요. "자기야." 불러봤더니 제 옆에 있던 자기 베개를 껴안으며 이러는 겁니다. "자기 벌써 일어났어? 자기야, 호텔이라는 게 참말로 좋은 곳인갑네. 이 침대만 해도 마치 물침대마냥 아주 편안하고.... 이것 봐, 스트링이 움직거리는 게 말로만 듣던 인체공학 침대인갑다. 그자? 우리도 나중에 돈 벌면 이런 침대 사자. 알겠제." 세상에 저는 힘들어 죽겠구만 심장 뛰는 소리를 인체공학 설계에 의한 스프링의 진동이라 설명하는 그가 정말 미웠습니다. 신혼 둘째밤을 보낸 다음날 아침, 저는 어제 아침을 떠올리며 머리 위까지 이불을 뒤집어쓰고 잤죠. 근데 자꾸만 배꼽을 찔러대는 게 아니겠어요. "자기는 와 자꾸 배꼽을 찔러대노?" 전 짜증섞인 투로 물었어요. 그런데 곧이어 들리는 남편의 대답은 절 비참하게 했어요. "자기야, 정말 미안해. 나는 말이지 사람의 똥침을 한다는 게 그렇게 됐어. 내는 이불 속에서 불룩 솟은 게 엉덩인 줄 알았어. 내 생각이 짧아 여기까진 생각을 못했어. 정말 미안해 자기야." 마지막 신혼밤을 보내게 될 셋째날 밤. 그가 먼저 샤워하고 저는 적당량의 향수를 부린 채 샤워를 마치고 나왔지요. 욕실 문앞에 서 있던 남편은 뭔가 큰 결심을 한 것 같은 표정으로 말하더군요. "자기야, 오늘은 우리 신혼 마지막 밤이니께니 내가 여짝에서부터 저 침대까지 들어 안아서 갈게." 앞에서 밝힌 바와 같이 저는 3/4쪽, 남편은 1/4쪽이니 제가 걱정이 안되게 생겼습니까? "자기야, 그라지 말고 그냥 내가 자기 안아서 가자." "자기는 무슨 소리고? 내도 남잔데 이거 하나 못 할까봐." 저는 굉장히 불안한 마음으로 그의 목에 두 팔을 감았어요. 하지만 20분이 지나도록 그 이상의 진척이 없었어요. 해도해도 안되는지 저보고 그 자리서 누우라고 하더군요. 저는 시키는 대로 했지요. 곧이어 취하는 남편의 자세란 저의 두 다리를 자신의 양쪽 옆구리로 가져가더니 이건 무슨 송장 끌고 가듯 질질 침대까지 끌고 가는 거 있죠. 낭만적인 밤을 만들어주겠다는 그의 뜻과는 전혀 상관없이 저의 잠옷은 질질 끌려간 탓에 배꼽위까지 '때구르르르'말려 올라간 채 침대까지 아니 침대매트에 두 다리만 걸쳐진 자세로 도착할 수가 있었어요. 그래도 지금 이렇게 예전을 떠올려보면 그때가 그립습니다. 지금은 이런 시도도 안한다니깐요.
Board 삶 속 글 2023.05.26 風文 R 938
암중모색(暗中摸索) 暗:어두울 암. 中:가운데 중. 摸:더듬을 모. 索:찾을 색. [준말] 암색(暗索). [동의어] 암중모착(暗中摸捉). [유사어] 오리무중(五里霧中). [출전]《隋唐佳話》 어둠 속에서 손으로 더듬어 찾는다는 뜻으로, 어림짐작으로 찾는다(혹은 추측한다)는 말. 중국 역사상 유일한 여제(女帝)였던 즉천무후(則天武后:690~705) 때 허경종(許敬宗)이란 학자가 있었다. 그는 경망한데다가 방금 만났던 사람조차 기억하지 못할 정도로 건망증이 심했다. 어느 날, 친구가 허경종의 건망증을 비웃자 그는 이렇게 대꾸했다. “자네 같은 이름 없는 사람의 얼굴이야 기억할 수 없지만 조식(曹植)이나 사령운(謝靈運) 같은 문장의 대가라면 ‘암중모색’을 해서라도 알 수 있다네.” [주] 조식 : 조조(曹操)의 셋째 아들. 뛰어난 시재(詩才)를 시기하는 형 문제[文帝:후한을 멸하고 위(魏)나라를 세운 조비(曹丕), 220~226]의 명을 받고 지은〈칠보시(七步詩)〉는 특히 유명함. 사령운 : 남북조 시대 남송(南宋)의 시인. 별명 사강락(謝康樂). 여러 벼슬을 지냈으나 치적(治積)을 쌓지 못하자 그의 글재주를 아끼는 문제(文帝:424~453)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사임. 이후 막대한 유산으로 연일 수백 명의 문인(文人)들과 더불어 산야(山野)에서 호유(豪遊)하다가 반역죄에 몰려 처형됨. 서정(抒情)을 바탕으로 하는 중국 문화 사상에 산수시(山水詩)의 길을 열어 놓음에 따라 ‘산수 시인’이라 불리기도 함.《산수시》《산거적(山居賊)》 등의 시집을 남김.(385~433).
Board 고사성어 2023.05.26 風文 R 988
‘이’와 ‘히’ 다음 중 맞는 것을 골라 보시오. 솔직이/솔직히 깊숙이/깊숙히 곰곰이/곰곰히 꼼꼼이/꼼꼼히 초등학생 시절, 헷갈리는 ‘이’와 ‘히’ 때문에 받아쓰기 백점의 문턱에서 좌절했던 기억은 나만의 경험일까? 아나운서가 된 지금도 누군가 물어 올 때면 잠시 머뭇거리게 된다. 부사화 접미사 ‘이’와 ‘히’를 쉽게 구분하는 가장 쉬운 방법은 ‘하다’를 붙여 보는 것이다. ‘하다’를 붙일 수 있으면 ‘히’가 되고, 그렇지 않으면 ‘이’가 된다. ‘꼼꼼하다’는 말이 되고 ‘곰곰하다’는 말이 되지 않기 때문에 ‘꼼꼼히’ ‘곰곰이’가 되는 것이다. 따라서 ‘말끔히’ ‘쓸쓸히’ ‘조용히’에는 ‘히’가 붙고 ‘간간이’ ‘번번이’‘헛되이’에는 ‘이’가 붙는다. 그렇다면 ‘깨끗하다’이니까 ‘깨끗히’가 되어야 하는 게 아닌가? 어근이 ‘ㅅ’으로 끝나는 말들은 ‘이’가 붙는다. ‘깨끗이’ ‘번듯이’ ‘느긋이’ 등과 같다. 여기까지는 그래도 쉽다. ‘깊숙이’와 ‘깊숙히’는? ‘끔찍이’와 ‘끔찍히’는? 어근이 ‘ㄱ’으로 끝나고 ‘하다’와 결합하는 경우에 ‘깁쑤키’ ‘끔찌키’와 같이 격음으로 발음하는 사람들이 많다. 따라서 ‘깊숙히’ ‘끔찍히’라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어근이 ‘ㄱ’으로 끝날 때에는 ‘이’가 붙는 경우도 많다. ‘깊숙이’ ‘끔찍이’라고 쓰고 ‘깁쑤기’ ‘끔찌기’라고 발음해야 옳다. ‘수북이’ ‘촉촉이’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솔직히’‘엄격히’에는 ‘히’가 붙는다. 애석하게도 ‘이’와 ‘히’의 구분에 있어 규칙이 모든 단어에 적용된다고 보기는 어렵다. 번거롭더라도 일일이 살펴볼 수밖에. 솔직히/솔직히(○) 깊숙이(○)/깊숙히 곰곰이(○)/곰곰히 꼼꼼이/꼼꼼히(○) 임수민 KBS 아나운서실 한국어연구부장
Board 말글 2023.05.26 風文 R 3203
웃음이 묻어나는 편지 - MBC 예술단 엮음 셋 - 사랑으로 풀어내는 웃음보따리 농자천하지대본 - 이진숙(여.서울 노원구 하계동) 안녕하세요. 어렵게 살던 어린시절, 저희 친정 아버지는 잘 먹는 사람을 좋아하셨지요. 근데 자식이라곤 저와 남동생 단둘인데, 우린 둘 다 약골이었어요. 잘 먹지를 못했거든요. 끼니 때마다 밥상을 놓고 고사를 지내는 우리 남매에게 울화가 치민 아버진 툭하면 당신 베개를 내던지시곤 하셨지요. "왜 푹푹 안 퍼먹냐 인석들아 엉!" 그러다가 어느 날부터인가 아버진 우리에게 식전 막걸리 한 잔씩을 먹이셨지요. 술기운이 돌면 식욕이 좋아져서 밥을 잘 먹을 수 있다시더라구요. 그것은 베개 던지시는 것보다 효과가 있었죠. 문제는 아침부터 취해서 학교에 간다는 거지만요. 어느 날은 제법 취기가 올라서 교실에 앉아있는데, 교실 전체가 뱅 그르르 돌더라구요. 집에 돌아와서 말했습니다. "아버지, 수업 2교시까지 취해서 책상에 누워만 있었어요. 막걸리는 그만 먹을 거예요." 그러자 아버지의 말씀은 이러하셨습니다. "그깟 공부가 밥을 멕여주냐? 옷을 주냐? 그저 건강이 최고랑께." 그래서 우리 남매는 매일 삼시 세 끼마다 강제로 반주를 한 잔씩 했습니다. 그러던 중 초등학교 5학년 때였어요. 한번은 친구들이 우리집에 놀러왔는데 한참을 놀다보니 배가 고프더라구요. 먹을 걸 찾으니 있어야지요. 그래서 라면 몇 봉지를 외상으로 사다가 끊였습니다. 상을 차리다 보니 막걸리 생각이 났어요. 친구들에게 우리집 식사문화를 말했더니, 모두들 한 잔씩 걸치자고 하더라구요. 그래서 한 잔씩 마셨는데 그만 친구들이 뻗은 거예요. 뒤늦게 친구부모님들이 이 사실을 알고 집단으로 몰려와 우리 부모님께 자식 교육 좀 잘 시키라고 호통을 치셨는데, 우리 아버지 눈 하나 깜짝 안하시고 이러시더군요. "아따, 똑같이 먹구 우리 아인 멀쩡한디, 나자빠지긴... 체력은 국력이라는 말도 있소. 막걸리 한 잔쯤이야 끄떡 안하는 장사로 키울 생각은 않구..." 하여튼 아버지의 갖은 노력으로 우리 남매는 점차 튼튼한 체력의 소유가가 되긴 했습니다. 막걸리도 더 이상은 마시지 않아도 되었구요. 하지만 막걸리와 저는 피하려해도 피할 수 없는 관계인가 봅니다. 저는 농과대학을 다녔어요. 근데 농과대학에서는 '농자천하지대본'을 내세워 농자는 맥주도 아닌 그렇다고 소주도 아닌 막걸리를 마실 줄 알아야 한다는 겁니다. 그래서 신입생 환영회 때부터 막걸리를 퍼마시게 하는데 막걸리엔 이력이 붙은 저인지라 주량이 대단했어요. 사발로 열 잔쯤은 문제도 없더라구요. 근데 막걸리 마시는 제 아름다운 모습을 은밀히 쳐다보는 시선이 있었지요. 2학년 선배였어요. 그가 술의 'ㅅ(시옷)'자만 들어도 얼굴이 빨개지는 알코올 알레르기 환자였기에 제가 아주 근사해보였나봐요. 우리는 연애라는 것을 하게 되었답니다. 데이트 장소는 주로 학교앞 주점이었는데 그는 따르고 저는 마시고, 그가 젓가락으로 안주를 집으면 제가 입을 벌려 먹는 식이었지요. 제가 워낙 마시는 편인지라 저만 가면 그 술집 아주머니는 엄청 좋아하는 겁니다. 무척이나 반기셨죠. 근데 나중에 듣자니 그 아줌마가 글쎄 저를 술집에 나가는 아가씨로 알았다는 겁니다. 어쨌든 우리는 잘되어 나갔지요. 근데 어느 날부터인가 이 남자가 요핑게 조핑계를 대며 미구라지처럼 살살 바져나가는 겁니다. 소문에 듣자니 더블 데이트라는 걸 하더라구요. 괴로운 마음에 마셨습니다. 락카페에 가서 맥주도 마시고, 소주방에서 소주칵테일도 마셨어요. 물론 완전히 갔지요. 그에게 다이얼을 돌렸습니다. "내 목소리가 이상하다구. 끄윽-. 좀 마셨지. 막걸리 1차,맥주 2차,소주 3차... 주태백이 이진숙도 취할 날이 있구려. 더블 데이트를 하신다구요? 끄윽-. 나는 일부일처제 나라의 국민이올시다. 끄윽-." 그러고 있는데 수화기 너머의 그의 목소리는 이렇게 말하는 겁니다. "진숙아 제발 좀 그만해! 이거 스피커폰이야. 우리 식구 모두 모여 네가 하는 소릴 듣는다구.." 끝이었습니다. 끝난 것이었습니다. 그 누가 주정뱅이 여자와 교제하는 걸 허락하겠어요. 이튿날 그가 조용히 저를 불러냈습니다. "할말이 있어. 우리 아버지가 며느리 될 여자 주량 구경 좀 하잰다." '이럴 수가, 이럴 수가! 시아버지가 아니라 하느님으로 모시겠습니다.' 그의 말을 듣고 저는 속으로 이렇게 맹세했다. 그리고 그 맹세는 지금까지 지켜져 오고 있습니다. 안주거리 될 만한 게 상 위에 오르면 시아버님은 제게 술 한 잔을 권하세요. 그 재미로 저는 매일 매일 안주도 되고 반찬도 되는 걸 선정하느라 고심하지만 나날이 늘어만 가는 주량 속에 행복이 솔솔 익는 냄새... 괜찮답니다.
Board 삶 속 글 2023.05.24 風文 R 913
안서(雁書) 雁:기러기 안. 書:글쓸/편지/책 서. [동의어] 안찰(雁札), 안신(雁信), 안백(雁帛). [참조] 인생조로(人生朝露). [출전]《漢書》〈蘇武專〉 철따라 이동하는 기러기가 먼 곳에 소식을 전한다는 뜻으로, 편지를 일컫는 말. 한(漢)나라 소제(昭帝)는 19년 전, 선제(先帝)인 무제(武帝) 때(B.C. 100) 포로 교환차 사절단을 이끌고 흉노(匈奴)의 땅에 들어갔다가 그곳에 억류당한 중랑장(中郞將) 소무(蘇武)의 귀환을 위해 특사를 파견했다. 현지에 도착한 특사가 곧바로 흉노의 우두머리인 선우(單于)에게 소무의 석방을 요구하자 선우는 ‘소무는 벌써 여러 해 전에 죽었다’며 대화에 응하려 하지 않았다. 그날 밤, 상혜(常惠)라는 사람이 은밀히 특사의 숙소로 찾아와 이렇게 말했다. “나는 소무를 따라왔다가 흉노의 내란에 말려 일행이 모두 잡힌 뒤 투항한 사람 중하나요. 그런데 그때 끝까지 항복을 거부한 소무는 북해(北海:바이칼 호) 변으로 추방당한 뒤 아직도 그곳에서 혼자 어렵게 살아가고 있소.” 이튿날 특사는 선우를 만나 따지듯이 말했다. “내가 이곳에 오기 전에 황제께서 사냥을 하시다가 활로 기러기 한 마리를 잡았는데, 그 기러기 발목에는 헝겊이 감겨 있었소. 그래서 풀어 보니 ‘소무는 대택(大澤:큰 못) 근처에 있다’고 적혀 있었소. 이것만 봐도 소무는 살아 있는 게 분명하지 않소?” 안색이 변한 선우는 부하와 몇 마디 나누더니 이렇게 말했다. “어제는 제가 잘 모르고 실언을 한 것 같소. 그는 살아 있다고 하오.” 꾸며댄 이야기가 제대로 들어맞은 것이다. 며칠 후 흉노의 사자(使者)가 데려온 소무는 몰골이 말이 아니었으나 그의 손에는 한나라 사신의 증표인 부절(符節)이 굳게 쥐어져 있었다. 이 고사에 연유하여 그 후 편지를 안서라고 일컫게 되었다.
Board 고사성어 2023.05.24 風文 R 937
두꺼운 다리, 얇은 허리 ‘두꺼운 다리가 고민이라면? 여름이 다가오면서 두꺼운 다리로 고민하시는 여성분들’ 지하철역 주변에서 받은 광고지에 쓰인 문구다. ‘단순히 허리가 얇은 게 아닌, 팔의 길이나 유연성도 영향을 줄 수 있다고…’ 신문 기사의 일부다. 사람 다리가 두껍거나 허리가 얇을 수 있을까? ‘두꺼운 다리’ ‘얇은 허리’는 ‘굵은 다리’ ‘가는 허리’로 써야 한다. 두껍거나 얇은 것은 종이나 책, 헝겊 등이고 우리 몸통이나 팔다리는 굵거나 가늘다. 포털에서 ‘두꺼운’을 검색해보니 자동완성 기능으로 추천해 주는 말에 ‘다리 두꺼운 여자’ ‘발목 두꺼운 사람’등이 딸려 나왔다. ‘얇은’을 검색하려고 ‘얇’이라고 치자 기다렸다는 듯 ‘종아리 얇아지는 운동’ ‘허벅지 얇아지는 운동’ ‘얇은 머리카락’ 등이 검색어로 자동 추천되었다. 그만큼 많은 사람들이 ‘굵다’ 대신 ‘두껍다’를 ‘가늘다’ 대신 ‘얇다’를 쓰고 있다는 말이다. ‘굵다, 가늘다’는 길이를 가진 사물의 둘레가 어떠한지를 나타낼 때 쓴다. ‘두껍다, 얇다’는 부피가 있는 물체에서 앞뒤나 위아래 면 사이가 먼지 가까운지를 표현하는 말로, 보통 길이가 긴 사물에 대해서는 쓰지 않는다. 사람의 허리나 팔다리, 발목, 손가락 등은 모두 어느 정도의 길이가 있으므로 이것들의 둘레를 표현하는 말은 ‘굵다, 가늘다’이다. ‘굵은 팔뚝, 굵은 허벅지, 가는 손가락’ 등으로 쓴다. ‘머리카락’은 어떤가? 마찬가지로 길이가 긴 것이므로 ‘얇은 머리카락’ 대신 ‘가는 머리카락’으로 쓰는 게 맞다. 사람의 외모를 묘사할 때는 입술만 ‘두껍다’ 또는 ‘얇다’로 표현하고 나머지는 모두 ‘굵다, 가늘다’로 쓴다. 정희원 국립국어원 어문연구실장
Board 말글 2023.05.24 風文 R 31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