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있는 지중해 신화와 전설(그리스 신화와 영웅들) - 사진 자료 및 참고 자료는 제가 편집해 올린 것입니다. 제2장 동방신화 8. 이슈타르 이슈타르(Ishtar) 여신을 고대 수메르인은 인안나, 아카디아 및 바빌로니아 아시리아에서는 야슈타르, 페니키아인 등은 아스타르테라 부르고 사랑.아름다움.생식.풍작.전쟁의 여신으로 숭배하였다. 그리스의 신으로는 아프로디테 여신에 견줄 수 있다. 이슈타르는 천공의 신인 아누 또는 달의 신인 신의 딸이라 한다. 아누의 딸이라 할 때는 그 속성을 사랑.생식.식물 생명의 소생등 지모신으로 인식하고, 신의 딸이라 할 때는 전쟁의 여신으로 외경하며 해신 샤마시(수메르의 우투)와는 오누이간이다. '전쟁터의 귀부인'이라는 별칭을 가진 최고로 용맹한 정의의 여신 이슈타르는 아시리아의 주신 아슈르와 마찬가지로 직접 원정 전투에 뛰어들어 적에게 공포를 불어넣었다. 일곱 마리 사자가 끄는 전차를 몰고 손에는 활을 지닌 상징상으로 표출되는 이 여신에 대해 니네베와 아르벨라(이라크 Erbli)에서는 각별히 예배하며 숭배하였다. 이러한 그녀의 속성은 바빌로니아 아시리아 시대에도 변함없이 그대로 유지되며 메소포타미아 세계에서 수천 년 간 신앙의 대상으로서 숭배되었다. 한편 이슈타르를 여성신으로 인식하는 바빌로니아 아시리아인과는 달리, 아랍인들의 경우는 그녀를 아트타르라 하여 남성신으로 인식하여 차이를 보여준다. 도시를 넘어 전 메소포타미아 지역으로 전파되어 오랫동안 지배적 신앙으로 자리잡은 이슈타르 숭배는 기원전 600~500년에는 유대인에게 받아들여져 예루살렘에 탐무즈 비의가 성행하였다. 이슈타르와 유사성이 짙은 이름들, 예컨대 아스타르테나 아슈타르 혹은 아트타르는 모두 '별'이라는 뜻을 갖고 있으며 이슈타르 여신은 스스로 "나는 새벽의 샛별, 저녁의 샛별이다"라고 하여 금성의 인격화된 신이 되었다. 바빌로니아 성전에서는 이슈타르를 '세계의 광명', '만군의 지휘자', '자궁을 여는 자', '율법을 정하는 입법자', '여신 중의 여신', '힘을 주는 승리의 여신', '죄를 용서하는 자'로 호칭하고 있다. 또한 하르(그리스의 호라이)라는 칭호도 있으며 여신 스스로 '지혜가 풍부한 창부'라고 칭하고도 있다. 성왕으로 선택된 남성은 창부 여사제와 성교의식을 통하여 여신과 영적 교류를 하고 여신에게 희생공양되었다. 길가메시 왕은 이 때문에 최고의 여신인 이슈타르에게 애인들에 대해 잔인하다고 핀잔을 주었다. 바빌로니아의 이 최고 여신인 이슈타르에게 올리는 기도문은 후대에 유대 사제들에 의해 그대로 모방되어 신에게 올리는 찬사 및 예배문으로 도용되었다. 구약성경의 '하늘 여신'(에레미아 44:19)이란 이슈타르를 지칭한 말이며 그 밖에도 아슈토레트, 아나트, 아쉐라 혹은 에스테르라고도 호칭하였다. 신약성서에서는 '큰 바빌론', '창녀의 어머니'라 하여 혐오와 신랄한 비난을 보내고 있다(요한 계시록 17:5). 이슈타르 여신의 지하세계 행차 신화는 사람들 사이에 널리 회자되는 이야기로 신앙 차원에서 중요하다. 가장 널리 받아들여지는 판본에 의하면 다음과 같다. 지하세계를 다스리는 여왕은 성미가 악독한 에레슈키갈로 이슈타르의 언니였다. 이슈타르는 명계로 간 애인 탐무즈(수메르에서는 두무지)를 만나보기 위하여 지하세계에 가기로 하고 신들에게 동의를 구하였다. 신들은 마음이 내키지 않았지만 이 요청을 마지못해 들어주었다. 여신은 시녀 닌슈부르에게 만약 3일이 지나도 돌아오지 않을 경우 해야 할 일들을 지시해 놓고 길을 떠났다. 성미 급한 이슈타르는 저승으로 들어가는 문 간지르에 닿자마자 문을 격렬히 두드리며 열지 않으면 때려 부수겠다고 소리쳤다. 수문장 네티가 여왕 에레슈키갈에게 아름다운 동생이 찾아왔다고 알리자 전혀 반가워하는 기색 없이 "그 아이의 마음을 나한테 쏠리게 한 게 누구지? 무엇이 그 아이 마음을 여기에 끌여들였을까?"하며 "그 아이가 명계의 법도를 따를 경우에만 들여보내라"고 명령을 내렸다. 그런데 지하세계로 들어가는 문은 일곱 개가 있고 문을 통과할 때마다 일곱가지 상징적 권위를 하나씩 버려야 했다. 죽은 자들은 지상에서 누리던 권세의 흔적과 재물을 모두 버리는 것이 규칙이었던 것이다. 이슈타르는 먼저 왕관을 벗어 놓고 첫문을 들어선 후 차례로 문을 통과할 때마다 보석장신구를 비롯하여 몸에 지닌 것을 하나하나 풀어놓고 마지막 일곱 번째 문앞에서는 입은 옷마저 벗어 완전히 알몸이 되었다. 문안으로 들어서자마자 사악한 언니는 동생을 보며 "여긴 무엇하러 왔느냐"며 소리쳤다. 에레슈키갈은 지하계의 신들인 아눈다(천상의 신들은 이기기라 한다)를 시켜 죽은 자들의 죄를 처벌하는 형벌(60가지 질병)을 안겨 주라고 하였다. 이에 따라 이슈타르는 형벌의 고통으로 초죽음이 된 채 축 늘어져 갈고리에 매달린 신세가 되었다. [이슈타르] 한편 이슈타르가 명계에 있는 동안 지상의 농작물은 전혀 자라지 않았으며 모든 동물의 생식작용도 정지되었다. 남자들은 더 이상 여자들에게 씨를 뿌리지 않았으며 소나 말 또한 마찬가지였다. 사흘 밤과 사흘 낮이 지났는데도 이슈타르 여신은 나타나지도 않았고 소식 또한 깜깜하였다. 그래서 닌슈부르는 여주인이 떠나기 전 지시한 대로 일을 진행하였다. 그녀는 먼저 니푸르의 엔릴(대기의 신으로 우주 창조신) 신전을 찾아갔다. 그러나 엔릴 신은 분노에 차 있어서 도움을 주기는커녕 지하세계까지 지배하려는 이슈타르의 욕심을 저주하며 지하세계의 권력을 탐내는 자는 누구든 지하계에 머물러야 한다고 호통을 쳤다. 우르의 난나(엔릴이 닌릴에게서 낳은 소생)의 대답 또한 마찬가지였다. 그러자 이번에는 지혜의 신 엔키를 찾아갔다. 엔키는 이슈타르가 지하계로 떠나기 전에 그녀의 간청으로 방책을 일러준 바 있었던 신이다. 엔키는 두 허수아비 피조물 쿠르 가르 라와 갈라 투르 라를, 혹은 일설에는 거세한 남자피조물로 지상에서 가장 잘 생긴 아수슈마미르를 만들어 딸려 보내며 동시에 생명을 소생시키는 약초와 약수를 주어 이슈타르의 삶을 확실히 소생시키는 방법을 알려주었다. 이렇게 해서 지하세계로 들어오니 이곳은 알몸인 채로 중노동에 시달리는 모든 죽은 자들이 내는 비탄의 소리로 가득차 있었다. 에레슈키갈은 지상에서 온 이들이 가지고 온 선물이 자신을 매우 즐겁해 해 주는 선물임을 알고 자신도 그 보답으로 선물을 내려 주겠다고 하였다. 그러나 그들은 하사품을 사양하고 대신 이미 숨이 끊어진 이슈타르의 시신을 넘겨줄 것을 부탁하였다. 돌려받은 이슈타르의 시신에 자신들이 가지고 온 약수를 뿌리고 약초를 먹이니 놀랍게도 그녀의 생명이 소생하였다. 이슈타르가 다시 살아난 것에 놀란 명계의 신들 아눈다는 "지하세계에서 이런 일이 일어난 적은 아직껏 없었다. 더구나 살아 일어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고 항의하며 그녀를 붙들고 만약 이 곳을 떠나려면 대신할 자를 내놓으라고 요구하였다. 몰인정하고 적의에 찬 귀신들도 다시 소생한 이슈타르의 뒤를 따르며 대신할 자를 요구하였다. 그때 이슈타르의 눈에 먼저 띈 것은 바로 누더기를 둘러쓰고 그 속을 기어오는 닌슈부르였다. 그러나 자신을 대신할 사람으로 이 충실한 시녀를 아귀다툼하는 귀신들에게 넘겨줄 수는 없는 일이었다. 그러던 참에 자신의 목숨까지 내놓고 찾아헤매던 그녀의 애인 탐무즈가 눈에 띄었다. 그는 쿨라브 들판에 있는 사과나무 거목 아래 찬란한 의상을 걸친채 옥좌에 앉아 있었다. 이 무정한 애인에 격분한 이슈타르는 귀신들에게 탐무즈를 넘겨줘 버렸다. 놀란 탐무즈가 처남이자 해신인 샤마시(야간에는 지하세계로 이동하여 빛을 비춰 주고 죽은 자들을 양육한다. 수메르의 우투)에게 구해 달라고 애원하여 뱀으로 변신, 도피하지만 결국 귀신들의 추격으로 붙잡히고 말았다. 그 다음 이야기는 단편만 남아 있어 확실치 않으나 추측에 의하면 이슈타르 혹은 에레슈키갈이 개입하여 탐무즈는 한 해의 6개월은 명계에서 지내고 나머지 반은 탐무즈의 자매 게슈틴안나가 맡도록 하였다. 어쨋든 이슈타르는 이로써 명계를 벗어나 지상으로 나올 수 있었다. 이 때는 지하세계로 들어갈 때와 반대로 첫문을 나와 옷을 돌려받고 다음 문을 나와서는 팔찌와 발찌를, 그 밖의 소지품도 문을 나올 때마다 다시 돌려받아 마지막 지상으로 통하는 문을 나왔을 때는 왕관을 쓰고 일곱 가지 신권을 모두 되찾았다. 마침내 이슈타르가 지상으로 돌아오자 모든 생명체는 다시 생기를 되찾아 열매를 맺고 암수 동물은 생식을 위하여 한 쌍이 되고 남녀는 사랑하여 모든 생물은 지상의 풍요를 구가하게 되었다. 지하세계를 다녀와 저승의 힘을 획득한 그녀는 이렇게 하여 삶과 죽음에 영향력을 지닌 월등한 존재로 부상하게 되었다. 그러나 자하세계의 지배권은 여전히 에레슈키갈에게 있었다. 그런데 이슈타르의 간지르(저승문)까지의 여정은 지하가 아니라 지평 이동이며 지상의 여러 곳을 가로질러 지하세계 입구로 왔으며, 그녀는 수메르 여러 곳의 신전을 버리고 지하세계로 갔다고 한다. 예컨대 부켈라티의 추정 여정표에 의하면 그녀는 에레크, 바드티비라, 자발람, 아다브, 니푸르, 키시 및 아카드의 7개 도시를 거쳐갔다. 마지막 목적지는 지하계의 왕 네르갈(에레슈키갈의 남편)의 왕도 쿠투였다고 한다. 이것과는 달리 위 내용이 신화적 여정이기보다는 실제 신앙의식의 순례행차라는 설도 있다. 예컨대 아카디아 서판에는 명백히 지하세계는 쿠투(혹은 쿠루)로 되어 있고 그 문을 들어서자 수문장은 그녀에게 "귀부인이여 어서 오소서! 쿠투는 귀부인으로 인해 기뻐하게 되나이다"라 인사하며 환영하고 있다. 쿠투가 지하세계를 의미하지 않음을 생각할 때 이는 도시기능을 상징한 것이라 할 수 있고, 그렇다면 여정은 종교적인 신앙의식의 행차가 된다. 위에서 살펴본 것처럼 이슈타르의 첫 번째 지하계 원정은 실패하였으나 저승의 권력을 직접 탐지하는 데는 일단 성공을 거두었다. 그녀가 명계 여왕의 왕권을 찬탈하는 데 실폐한 것은 우선 명계의 문을 통과할 때 지상의 힘을 모두 상실했기 때문이며, 이는 라이벌 에레슈키갈의 만만치 않은 전략을 엿보게 한다. 그러나 이슈타르는 다음 단계에서 닌슈부르에게 지시한 대비책을 통해 목적을 달성하였다. 그녀의 승리는 '돌아나올 수 없는 땅'에서 돌아나온 데 있고, 따라서 지하계 왕 네르갈의 힘을 얻은 것이다. 즉 명계의 핵심 세력의 저항을 극복하고 한 번 들어가면 누구든 붙잡혀 있어야 하는 곳에서 다시 살아나온 것이다. 원래 죽음의 지배권이라 저승 신들에 속하는 것으로 누구든 함부로 넘겨 볼 수 없다. 누구나 가야 하는 정승에서 다시 이승으로 나왔다는 것은 그야말로 있을 수 없는 중대한 사건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 아무도 성공하지 못한 이 죽음의 수수께끼를 이슈타르가 마침내 탐색하고 부활을 체득한 것이다. 명계의 신들 아눈나의 말을 들어보자. "누가 지하계에서 일어났단 말인가! 누가 언제 지하세계에서 살아 일어났단 말이냐?" 따라서 이슈타르의 부활을 인정하면서도 그들은 자신의 특권을 간단히 양보하려 들지 않았고, 이 때문에 그녀에게 "이 곳을 떠나려면 대신할 자를 내놓으라"고 한 것이다. 결국 이슈타르 여신은 이 모든 것을 극복하고 지상으로 돌아와 그의 신앙을 세계적 신앙으로 확장시키고 이승에서 저승까지 위력을 떨치는 위대한 종교혁신을 완수하게 된다. 탐무즈 탐무즈(Tammuz)는 원래 고대 수메르에서 시작된 농경부족의 숭배신앙으로, 천상의 생식의 여신 이슈타르(혹은 인안나)에게 곡물과 포도의 풍작을 기원하기 위하여 남신 탐무즈를 희생공양하는 의식을 치렀다. 이슈타르는 대창부 또는 대성창으로 호칭되고 남자들은 여자제와 성교의식을 통해서 여신과 영적 교류를 하였다. 유대인들은 바빌론 유수기에 이 숭배를 받아들여 예루살렘 신전에서 매년 탐무즈를 어버이로서 또는 애인으로 보살피는 여인들에게 성왕으로 희생시켜 여신 이슈타르에게 공양하였다. 이는 대지를 피로 적시면 지상의 생산력이 회복된다는 풍요의식의 하나이며 따라서 탐무즈는 구세주가 된다. 탐무즈는 그리스의 디오뉴소스, 로마의 리베르(바쿠스의 별칭으로 포도주에 의한 자유로운 상태, 혹은 포도주 자체를 의미하기도 한다), 또는 아도니스 등의 히브리판이다. [이슈타르와 탐무즈의 결혼. 출처 : 구글]
Board 추천글 2023.04.25 風文 R 2087
웃음이 묻어나는 편지 - MBC 예술단 엮음 셋 - 사랑으로 풀어내는 웃음보따리 바지를 좀더 내리세요 살면서 참으로 민망하고 부끄러운 일을 많이 겪기도 하겠지만, 이런 경험을 해보셨는지요? 2년 전, 저는 지독한 독감에 걸려 아주 죽도록 고생한 일이 있었습니다. 콧물이나 두통같은 건 참을 수 있었지만, 마치 속을 다 뒤집어 놓으려는 듯 튀어나오는 기침은 정말 참기 힘들었죠. 밥을 먹다가도, 잠을 자다가도, TV를 보다가도 그놈의 기침은 절 그냥 두는 법이 없이 마구마구 나오더군요. 밤잠을 설쳐가며 기침에 시달린지 어언 석달이 지났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기침을 할 때마다 옆구리에 심한 통증이 느껴지는 게 아니겠어요? 제가 얼마나 놀랐는지 모르실 거예요. '아니 옆구리가 왜 아플까? 혹시 기침이 심해 폐에 무슨 이상이라도... 아니면 늑막염이 된 건 아닐까?' 걱정이 태산 같았죠. 평소, 한국 표준 여성보다 몸무게로 보나 키로보나 월등히 우량했던 저를 건강 그 자체로만 여기시던 부모님께서도 사태의 심각성을 느끼셨던지 병원에 가 보라며 아주 걱정스런 얼굴을 하시는 거 있죠. '아! 얼마 만에 가보는 병원이냐...' 너무 건강하다 보니 오랜만에 가보는 병원은 차라리 반갑더군요. 내과에 가서 만난 의사 선생님께서는 점잖게 생기신 중년 신사였는데, 진찰을 받고 이차저차 증상을 얘기하니 심각한 얼굴로 늑막염이 되었을지도 모르겠다는 거였습니다. 자세한 진찰을 위해 방사선과에 가서 X-ray를 찍어오라고 하시기에 전 떨리는 가슴을 안고 방사선과로 갔습니다. 몇 년 전 늑막염을 앓고 있던 친구에게서 뼈에 고인 물을 빼기 위해 갈비뼈에 주사기를 꽂는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기에 전 아주 얼어 있었습니다. 방사선과에 있는 선생님은 아주 젊은 분이셨는데 저는 그 와중에도 '어머, 참 참한 총각이네.'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죠. 그 잘생긴 총각이 저에게 약간은 사무적인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일단 골반부를 찍어야 하니까, 침대에 누우시죠." 침대에 누워 제 배위로 이상하게 생긴 거대한 카메라 같은 것이 왔다갔다 할 때에도 전'참한 총각과 저의 늑막염'생각으로 정신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윽한 목소리로 그 남자가 말했습니다. "바지를 조금 내리세요" 전 조금 의외였지만 그냥 찔끔찔끔 바지를 허리 조금 아래까지 내렸죠. 그랬더니 그 남자가 절 냉정한 눈으로 쏘아보더니 말했습니다. "더 내리세요." '어머, 어머, 이 남자가 왜 이러나.' 전 조금 당황하여 그 사람을 쳐다보았습니다. 더 안 내리면 안된다는 시선에 전 그야말로 주눅이 들어 바지를 조금 더 내렸습니다. '아! 빠금히 내보인 내 배꼽!' 부끄러웠지만 참았습니다. 그런데 이 남자가 갑자기 소리를 버럭지르며 이러는 거예요. "내 참! 아, 허리띠를 풀어서 바지를 엉덩이까지 내리세요." 아니 이 무슨 시집도 안 간 처녀에게 날벼락 같은 소립니까? 외간 남정네 앞에서 바지를 내리라니... 전 눈을 똥그랗게 뜨고 그 사람을 쳐다보았습니다. "아, 바지를 벗어야 단추랑 허리띠가 X-ray에 안 나타날 것 아닙니까."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생각 좀 해보세요. 제가 바지를 내리면 바로 뭐가 나옵니까. 그 자리에서 제 팬티가 노출되는 거 아니겠어요. 전 설마 저 사람이 진정으로 저런 소리를 하나 싶어서 다시 그 사람을 봤지만 그는 제가 아주 못마땅한 듯 마구마구 째려보고 있었습니다. '어머니 용서하세요. 불초소녀, 건강관리 잘못하는 바람에 외간남자 앞에서 팬티를 보이고 마는군요.' 전 눈을 찔끈 감고 바지를 내렸습니다. 촬영은 30초도 안되어 끝났지만 전 그 시간이 영원과도 같았고, 그 이후에는 아주 정신이 빠져서 흉부촬영시 가운을 입고는 속옷도 벗지 않고 목걸이도 빼지 않아 그 '참한 총각'을 다시 한번 화나게 하고 말았답니다. 촬영이 끝나고 그는 제 필름을 점검하고 있었습니다. 저는 애써 태연한 척하며 애교스럽게 물었습니다. "어때요? 별 이상 없죠?" 그는 제 흉부필름과 골반필름을 차례로 점검하더니 아주 묘한 미소를 띠우며 내과를 다시 가 보라더군요. '어머, 미소의 참 의미는 뭘까?' 저는 혼자서 예쁜 척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내과로 와서 그 점잖은 선생님 앞에 앉았습니다. 그 선생님도 제 필름을 검토하고 계셨습니다. "어때요, 선생님?" 제 물음에 선생님께서는 필름을 잘 살펴보라시며, 불이 들어온 판위에 필름을 끼우셨답니다. 그때 제 눈에 들어온 커다란 검은 덩어리! '아니, 저게 무엇이란 말인가! 아, 난 죽나 보다. 저건 무슨 암세포덩어리가 아닐까...?' 무식한 제 머릿속엔 온통 제가 죽는다는 생각만 날 뿐이었습니다. 그 암울함, 그 섬뜩함... 두 분 이해하시겠어요? 제가 얼마나 무서웠는지... 그때 한 줄기 햇살과도 같은 의사 선생님의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기침으로 인해 폐가 많이 손상되긴 했지만, 약을 먹고 병원에 좀 다니면 괜찮겠군요. 됐습니다. 처방전을 줄테니 약 받아가고, 주사 한대 맞고 가세요." 선생님은 금세 아무일 없다는 듯 다음 환자를 맞이할 준비를 하시더군요. 전 조금 어리둥절해서 물어봤습니다. "선생님, 저 괜찮은 거 맞아요?" 그런 절 의아한 듯 바라보시더니 말하셨습니다. "그럼요. 괜찮습니다." "그럼 저 시커먼 건 뭐예요? 무슨 혹 같은데..." 전 두근거리는 가슴을 진정시키려 애쓰며 물어보았죠. "아- 저거요?" 선생님은 아까 그 참한 총각과 거의 비슷한 미소를 지으며 말씀하셨어요. "아가씨, 변비 있죠? 저거 변비에요. 말 난 김에 변비약도 처방해 줄까요?" 아! 이 무슨 망신입니까? 저는 얼굴이 홍당무가 되어 인사도 하는 둥 마는 둥 허겁지겁 병원을 나왔습니다. 귓불과 등줄기가 후끈후끈 한 것이 그날 어떻게 집엘 왔는지... 그 참한 총각의 묘한 미소도 이해가 되는 순간이었습니다.
Board 삶 속 글 2023.04.25 風文 R 812
수석침류(漱石枕流) 漱:양치질 수. 石:돌 석. 枕:베개 침. 流:흐를 류. [동의어] 침류슈석(枕流漱石). [유사어] 견강부회(牽强附會), 아전인수(我田引水), 추주어륙(推舟於陸), 궤변(詭辯). [참조] 영천세이(潁川世耳), 청담(淸談). [출전]《晉書》〈孫楚專〉 돌로 양치질하고 흐르는 물을 베개로 삼는다는 뜻. 곧 ① (실패를 인정하려 들지 않고) 억지를 씀. 억지로 발라 맞춰 발뺌을 함. ② (남에게 지기 싫어서 좀처럼 체념을 안하고) 억지가 셈의 비유. 진(晉:265~317)나라 초엽, 풍익 태수(馮翊太守)를 지낸 손초(孫楚)가 벼슬길에 나가기 전, 젊었을 때의 일이다. 당시 사대부간에는 속세의 도덕/명문(名聞)을 경시하고 노장(老莊)의 철리(哲理)를 중히 여겨 담론하는 이른바 청담(淸談)이 유행하던 때였다. 그래서 손처도 죽림 칠현(竹林七賢)처럼 속세를 떠나 산림에 은거하기로 작정하고 어느 날, 친구인 왕제(王濟)에게 흉금을 털어놓았다. 이때 ‘돌을 베개삼아 눕고, 흐르는 물로 양치질하는 생활을 하고 싶다[枕流漱石]’고 해야 할 것을, 반대로 ‘돌로 양치질하고, 흐르는 물을 베개로 삼겠다[漱石枕流]’고 잘못 말했다. 왕제가 웃으며 실언임을 지적하자 자존심이 강한데다 문재(文才)까지 뛰어난 손초는 서슴없이 이렇게 강변했다. “흐르는 물을 베개로 삼겠다는 것은 옛날 은사(隱士)인 허유(許由)와 같이 쓸데없는 말을 들었을 때 귀를 씻기 위해서이고, 돌로 양치질한다는 것은 이를 닦기 위해서라네.”
Board 고사성어 2023.04.25 風文 R 1038
개양귀비 요즘 강변이나 공원에 나가보면 선홍빛으로 무리지어 핀 양귀비꽃을 쉽게 만난다. 절세미인 양귀비의 이름을 딴 꽃이라서 인지 바람에 하늘거리는 모습이 무척 아름답다. 그런데 이 꽃의 정확한 이름은 양귀비가 아니라 개양귀비다. 양귀비는 열매가 아편의 재료로 쓰이기 때문에 재배가 금지되어 있다. 우리말에는 개양귀비뿐 아니라 개나리, 개살구, 개연꽃 등 이름에 ‘개’가 붙어있는 식물이 많다. 접두사 ‘개’가 꽃이나 열매 이름에 붙을 때는 야생이거나, 짝이 되는 본래의 식물보다 질이 떨어지거나, 혹은 그와 비슷하지만 다른 것이라는 뜻이다. 개나리는 들에 저절로 피어나는 나리를 가리킨다. 개연꽃은 연꽃만큼 탐스러운 꽃을 피우지 못해서, 개살구는 새콤달콤한 살구와 달리 시고 떫은 맛이 나서 그런 이름이 붙었다. 오죽하면 ‘빛 좋은 개살구’란 말이 다 있을까. 어쨌거나 이름에 ‘개’가 들어가면 보잘것없거나 변변치 못하단 뜻이다. 개양귀비는 왜 그런 이름을 갖게 됐을까? 양귀비만큼 예쁘지가 않아서? 꽃의 크기나 모양에서 둘은 크게 다르지 않다. 오히려 개양귀비가 색깔이 더 곱고 아담해서 집 주변에 심어두고 보기엔 더 낫다. 다만 옛 사람들은 약재로서의 효능 때문에 양귀비를 소중히 여겼다. 약이 귀했던 시절에는 열매뿐 아니라 줄기까지도 복통 치료제로 요긴하게 쓰였다. 그에 비하면 개양귀비는 별 쓸모가 없으니 ‘개’가 붙었을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엔 양귀비 덕을 볼 일이 거의 없다. 금지 작물보다는 오히려 가까이에서 아름다운 꽃을 보게 해주는 개양귀비가 훨씬 소중하다. 그래선지 요즘엔 개양귀비 대신 꽃양귀비라고 부르는 이들이 늘고 있다. 같은 사물이라도 관점에 따라 이름이 달라진다. 정희원 국립국어원 어문연구실장
Board 말글 2023.04.25 風文 R 3674
살아있는 지중해 신화와 전설(그리스 신화와 영웅들) - 사진 자료 및 참고 자료는 제가 편집해 올린 것입니다. 제2장 동방신화 5. 바빌로니아 바빌로니아(Babylonia)는 티그리스 강과 유프라테스 강 유역 메소포타미아에서 기원전 3000년 전에 번영했던 도시 바빌론과 그 외 여러 도시의 문명을 총칭할 때 사용되는 용어이다. 좁혀 말할때는 바빌론 도시에서 흥망성쇠한 나라들을 지칭한다. 통일제국의 첫 시작은 수메르, 아카디아, 마리(현 탈알하리리) 등의 도시국가를 정복한 아모리인이 건국한 함무라비왕조(기원전 1894~1595년경)로, 특히 왕 함무라비(재위 기원전 1792~1759)는 불후의 업적을 남겼다. 그 하나가 함무라비 법전(기원전 1796년경)으로 당시로서는 놀랄 정도로 이성적이고 인도적인 관점에서 제정된 법전이다. 법전은 큰 섬록암 비석에 새겼는데, 비 상부에는 왕 함무라비가 오른손을 올리고 옥좌에 앉은 태양신 샤마시에게 법전의 편찬을 브리핑하는 장면을 부조하였다. 비문석 높이는 2.25m, 부조 부위의 높이는 0.71m로 파리의 루브르에 소장되어 있다. 또한 그는 역사상 가장 찬란한 도시 중 하나인 바빌론과 거대한 '바벨탑'을 건립하였다. 신의 문이라는 뜻을 가진 바벨(Ba-Bel)은 하늘세계로 가는 산, 즉 계단식 피라미드 신전이 지구라트이다. 이는 하늘에 천신이 내려와 대지모신과 교합하는 성탑으로, 이 곳을 생식기가 놓인 중심점으로 가장 신성한 장소로 간주하였다. 세계 7대 불가사의로 유명한 '공중정원'은 이 지구라트 계단 7개에다 세계를 7개로 나눈 상징도시와 신전을 각 7개씩 낭떠러지에 건립한 것으로 마치 공중에 결려 있는 것 처럼 보인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후대에 느부갓네살은 이 지구라트를 복원하였는데 세계를 7개로 구분, 7개의 동심원 모양으로 신전을 세웠다. 아름다운 수도 바빌론은 정치적.종교적.상업적 중심지로서 크게 번영하였다. 그 후 바빌로니아 제국은 카시트 왕조(1530~1150년경), 아람인 왕조(기원전 1100~1000년경)의 지배로 바뀌고 기원전 10세기부터는 아시리아 제국이 들어섰다. 이후 기원전 625년 바빌론의 영주 나보폴라사르(재위 기원전 626~605)가 아시리아의 지배에서 벗어나 메데스에 가담하고, 기원전 612년아니라아의 수도 니네베는 함락당하였다. 영주의 아들 느부갓네살(재위 기원전 604~562)은 기원전 605년 카르케미시(히타이트 도시) 전쟁에서 이집트 군에게 승리를 거두고 바빌로니아 신제국(혹은 칼데아 제국)을 확립하였다. 신제국의 영역은 메소포타미아, 시리아, 팔레스타인 및 실리시아(터키의 옛 지명)까지 포함하는 대제국이었다. 바빌로니아는 전설적 영광의 절정시대를 맞이하고 이 때 이름난 공중정원도 출현하였다. 이처럼 고대 오리엔트인은 호전적이고 전제군주의 지배하에 찬란한 문명을 이룩하였으나 이어 잔인한 파괴로 멸망하고, 유달리 흥망성쇠가 자주 되풀이되었다. [함무라비 법전] [대 피터르 브뤼헐의 바벨탑] 6. 바빌로니아 창세시편 아시리아는 멸망과 함께 전화의 화염으로 전소되었다. 그리고 이 화염에 구워져 땅에 파묻힌 점토판 문서 하나가 2500년간의 긴 잠 끝에 발견되어 귀중한 역사사료가 되었다. 제국이 붕괴되기 직전 통치자 아슈르바니팔(재위 기원전 668~631)은 수도 니네베에 거대한 도서관을 세우고 여기에 방대한 수의 설형문자 문서판을 보관하였다. 점토판은 바로 이 도서관에서 출토된 것으로, 소위 '네누마 엘리시'로 알려져 있는 기원전 7세기의 바빌로니아 창세시편의 서판이다. 이 창세시편에 대해서는, 언어와 스타일로 보아 메소포타미아 남부에서 발견된 기원전 1000년 이전의 서판 단편보다 훨씬 더 오래 된 것으로 추정되기도 하며 학자에 따라서는 적어도 기원전 2000년 전의 원본 복사라 추측하기도 한다. 바빌론에서는 새해 축제기간인 11일 중 넷째 날에 신관이 반드시 이 '에누마 엘리시'를 암송하였다. 새해에는 매번 다시 창세되므로 자연과 사회가 새로워져야 한다는 생각 때문이었는데, 따라서 왕도 재취임 의식을 밟았다. 일부 창세시의 내용을 풀이하면 다음과 같다. 먼 옛날에는 하늘과 땅이라는 이름도 없고 신들조차 아직 존재하지 않았다. 무에서 원생 남성 아프수(담수, 지하수, 샘과 개울물)와 여성 티아마트(해수, 대지 주위 혼돈의 정령)가 나타나 만물을 생성시켰다. 담수와 해수가 뒤섞여 한 몸이 되어 낳은 것이다. 질서나 한계, 법도도 없이 신과 괴물이 출현하였다. 신족의 아들 라마와 딸 라하마도 출생하고 이들은 크기 전에 안샤르와 키샤르를 낳았는데 남매는 다른 누구보다도 지혜가 뛰어나고 명석하였다. 안샤르와 키샤르의 첫 아들 에아(또는 누딤무드)는 대지와 물의 신이고, 다음 아들 아누(혹은 안)는 천공의 신이었다. 그런데 날이 가고 해를 거듭하면서 아누는 윗세대와 대립하였다. 수메르 신화에서는 천공의 신 안(비빌로니아의 아누)과 대지의 여신 키(바빌로니아의 에아)가 결합하여 엔릴(대기의 신)을 낳는다. 엔릴은 우주를 하늘과 땅으로 분리시키는 공기의 신으로 바람의 주신이자 비와 폭풍의 신이다. 바빌로니아 신화에는 이 신을 지혜와 마술의 원초신으로 보며, 수메르의 엔키 또는 에아의 속성을 지니고 있다. 시간과 공간에 따라 신성은 변모해 갔다. 에아가 여신 니누르사그를 아내로 삼아 얻은 아들 마르두크는 자라면서 성격은 난폭하나 용맹하고 지혜가 출중하였다. 한편 신들의 수가 불어나게 되고 그들이 모여 춤추며 세상을 소란스럽게 하니 이에 화가 난 아프수가 이들을 파멸시키고자 하였다. 그러나 현명한 에아(수메르의 엔키)는 아프수(물)에 주문을 던져 조부신을 잠들게 한 후 아프수의 시종참모인 난쟁이 뭄무를 사로잡아 승리를 거두었다. 그러자 조모신 티아마트는 정복자인 손자들에게 복수할 계책을 세워 큰 괴물 큉구와 혼인하고 그를 수장으로 삼아 군병을 지휘, 운명의 주사위를 맡겼다. 이에 겁을 먹은 에아는 자신의 왕권을 찬탈하여 눈밖에 난 아들 마르두크를 내세워 대항케 였다. 처음에는 티아마트 군이 에아의 연합군을 이겼으나 두려움을 모르는 호담한 아들 마르두크가 티아마트 군의 계략을 알아차리고 앞으로 나서서 티아마트에게 단둘이서 승리를 결판짓자고 싸움을 걸었다. 그리고는 분노에 차서 앞뒤 가리지 않고 성미 급하게 덤비는 티아마트를 죽여 그 몸을 조개처럼 두 쪽으로 갈라 한 쪽으로는 창공을 만들어 별들을 차렸고 나머지 반으로는 땅을 만들었다. 모든 신들이 마르두크의 승리에 경탄하고 환영하였다. 마르두크는 적군을 지휘한 큉구를 살해하고 그 피로 인간이라 부르는 꼭두각시를 만들어 신들의 생계를 보장하기 위하여 땅의 경작을 맡게 하였다. 이제 신들의 세계는 혼돈 상태에서 벗어나 질서와 평화를 되찾고 인간은 그들의 종으로서 신들에게 복종할 운명이 씌워졌다. 신들이 협력하여 바빌론에 신전을 세우고 모든 신은 마르두크를 최고의 영웅신으로 삼아 바빌론의 주신으로서 엔릴과 에아와 함께 숭배하였다. 그리고 마르두크에게는 50개의 빛나는 별칭이 붙여졌는데 엔릴이 마지막으로 붙인 별칭은 '지상의 지배자'였다. 대략적인 내용은 이와 같은데 지금까지 발굴된 설형문자의 기록이 적은데다 파손 및 결손으로 해독이 난해하여 밝혀진 것은 아직 일부분에 불과하다. 앞으로의 연구 과제로서 크게 주목된다 할 것이다. 7. 길가메시 길가메시(Gilgamesh)는 기원전 3000년 초반 주민을 혹사하여 최초로 둘레가 9.5km나 되는 성벽을 쌓아 우루크(에레크) 도시를 건설한 소아시아의 왕으로, 아카디아와 수메르 또는 메소포타미아 지방 서서시에 등장하는 반신반인의 영웅이다. 기록상으로는 니네베의 아슈르바니팔 서고에서 출토된 설형문자 점토서판으로 알려졌으나 그 이전부터 구전된 셈족의 이야기로도 알려져 있었으며 타지역 즉, 이라크나 시리아, 터키, 이집트에서도 흡사한 신화가 발견되었다. 여러 고대 건물기둥의 명에 '신 길가메시'라고 기록된 이 존제는 126년간을 통치한 초인간으로 알려져 있다. 그는 엔티두라는 야생인-전신에 털이 무성하고 머리칼은 여자처럼 어깨 아래까지 늘어뜨린 야수와 더불어 사는 자-의 도전을 받았다. 엔키두는 상류사회 창녀와 10여 일간 인간적인 생활을 경험하여 길들여졌고 야성의 티를 어느 정도 벗어나 있었다. 그가 성문에 들어서서 행패를 부리자 두 사나이는 서로를 꽉 쥔 채 황소처럼 붙어 싸우는데 성문의 문설주를 내려놓아 성벽이 흔들릴 정도였다. 싸움에 승부가 나지 않자 결국 두 사나이는 화해하고 길가메시는 예의도 알고 의협심도 있는 이 사나이에게 우정을 느끼고 서로 친해지게 되었다. 그리고는 함께 삼림에 사는 공포의 거인 훔바바를 토벌하러 나섰다. 이 거인은 폭풍과 같이 노호하며 입에서는 화염을 뿜어 죽음의 숨을 내뿜는 무서운 괴물이었으나 둘이 힘을 합쳐 해치우는 데 성공하였다. 길가메시의 영웅적인 용감성에 탄복하여 연정을 품은 여신 인안나(사랑, 성욕과 성행위, 다산 및 전쟁의 여신으로 셈족의 아스타르테, 아카디아의 이슈타르, 기프로스의 아프로디테와 동일시)는 그를 자신의 애인으로 삼기 위해 만찬장에 초대, 찬사를 아끼지 않으며 모든 행운을 약속하였다. 그러나 놀랍게도 영웅은 여신의 신의 없는 그간의 행실을 혹평하고 그녀의 구애를 거절하였다. 분통이 터진 인안나는 어버이인 최고신 아누(신들의 왕으로 천공의 최고신)와 왕비 안툼에게 이를 불평하니 길가메시와 대결할 '천공의 황소'를 보내주었다. 길가메시는 다시 엔키두와 협력하여 이 괴물 황소도 처치하였다. 결국 신들의 회의가 열리고 두 사나이 중 한 명에게 벌을 내리기로 하였다. 엔키두는 꿈에 신족의 총리 엔릴(바람과 폭풍의 신)에게서 죽음의 선고를 받았다. 비통해하는 엔키두에게 창부는 "사막에서 자고 성벽 그늘에 서 있게 되며, 가시와 찔레에 발을 찔려 상처를 입고, 술에 만취되어 갈증이 볼 속으로 엄습할 것이다"는 저주의 말을 전하였다. 태양신 샤마시는 고뇌하는 그를 위무하나 깊은 잠에 빠져 지하계로 가는 꿈을 꾼 엔키두는 가시에 찔려 그 통증이 점점 심해지고 죽음의 공포가 엄습하였다. 마침내 엔키두는 죽음을 맞이하고 길마메시는 통곡한다. 길가메시는 친구를 살리고 자신도 죽음에서 벗어나 영생하는 방도를 찾아나섰다. 그리하여 머나먼 마슈 산으로 가서 신들의 잔을 채우는 시두리 여신을 만나게 되는데 그의 사연을 들은 시두리는 신들에게서 엿들은 이야기를 차분히 들려주었다. 즉 신들은 인간에게 죽음을 붙여 놓고 영생은 자기들 마음대로 하도록 손아귀에 쥐고 있다며 "잔혹한 신들이 인간은 모두 죽어야 하는 존재로 결정하였기 때문에 찾고자 하는 영생은 찾을 수 없을 것이니 집에 가서 할 수 있을 때 인생의 좋은 것을 즐기시오"라고 충고하였다. 시두리는 끝으로 권하기를 "길가메시 님이여! 왕궁에 돌아가서 좋은 음식으로 배를 채우시고 밤낮없이 즐겁게 지내세요. 매일 잔치를 벌이고 밤낮 없이 춤추고 즐기세요. 깨끗한 옷으로 치장하고 머리 감고 목욕하며 당신 손을 잡는 귀여운 자식의 재롱을 보면서 품에 안긴 아내와 행복을 누리세요"라고 하였다. 그러나 길가메시는 흔들림 없는 결심으로 수많은 난관을 뚫고 지옥의 바다를 건너 영생의 비밀을 안다는 노인 우트 나피슈팀(홍수 신화의 주인공. 인간 중 유일하게 불사를 얻은 인물로서 구약성경의 노아)을 찾아갔다. 그리고는 정중히 인사를 올리고 영생하는 신족에 낄 수 있는 방법을 물었다. 노인은 긴 사연을 들려주는데 이야기가 끝나기도 전에 길가메시는 그만 졸음에 빠져 버리고 말았다. 얼마나 인간은 나약한가! 긴 잠에서 깨어난 그는 마침내 노인이 알려준 불로초가 있다는 곳으로 갔다. 불로초는 깊은 바다 밑에 있었으므로 무거운 돌을 발목에 묶고 바다 밑의 영초를 찾아 채취한 후 매어 놓은 끈을 잘라 돌을 버리고 물 밖으로 나왔다. 불로초는 자신의 나라로 돌아가 먹기로 결심한 길가메시는 이제 우루크를 향해 귀향길에 올랐다. 그런데 도중에 샘물에서 몸을 씻고 있는 사이 뱀이 나와 이 영초를 훔쳐 삼키고는 껍질을 벗고 다시 젊어져 사라져 버렸다. 불로초를 빼앗긴 길가메시는 아연질색, 주저앉아 통곡을 하다 이것이 운명이며 인간의 마음의 젊음이 중요하다는 점을 깨닫고 다시 고향을 향해 발길을 재촉하였다. 위의 신화로도 알 수 있듯이 옛 이집트인들은 저승에서 삶과 쾌락에 기대를 걸었던 데 비해 수메르.바빌로니아 사람들은 그렇지 않았다. 즐거움을 현세에서 찾았던 것이다. 아랍의 신비주의적 종파 수피즘 철학자는 시두리를 샤크티 여신과 같은 신격으로 숭앙하고 이슬람교 속에 성과 여성 숭배의 한 형태로 탄트리즘을 도입하였다. 탄트라교는 힌두교의 3대 신격의 하나인 파괴와 창조의 상징이자 인간의 운명을 지배하는 시바 여신과 여성의 생식력(기)이 인격화한 샤크티의 속성을 결합하여 궁극적인 진리에 도달하여 한 종교로 샤키즘과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 또한 시두리의 찰나주의 철학은 구약 전도서 9장에 전해 오는데 여기에는 '신의 말씀'으로 여러 가지 보복 또는 처벌을 가져온다는 내세를 부정하고 유대교.그리스도교의 신이 정의를 행하는 일은 없다는 식의 차원이 다른 이교적 사조를 전하였다. [루브르 박물관에서 소장중인 길가메시의 부조]
Board 추천글 2023.04.24 風文 R 1629
웃음이 묻어나는 편지 - MBC 예술단 엮음 셋 - 사랑으로 풀어내는 웃음보따리 사우나 고스톱 이종환씨, 지금부터 형님이라고 부르겠습니다. 저도 코가 좀 크걸랑요. 하지만 형님께 비하겠습니까. 이해해 주십시오. 오늘 소개 드리는 글은 자랑스러운 제 친구들에 관한 겁니다. 지금부터 시작하겠습니다. 저와 제 친구들은 논두렁 정기가 아닌 산좋고 물좋은 소백산 정기를 받고 단양이라는 곳에서 태어났습니다. 이렇게 정기가 좋으니 인생이 얼마나 잘 풀렸냐구요? 아닙니다. 그냥 정기만 좋았습니다. 그런데 형님, 혹시 백수 생활 해보셨습니까? 없으시면 다음에 한 번, 오래는 마시고 일정기간 해보는 것도 꼭 낭비만은 아니라고 생각됩니다. 한 번 해보시기 바랍니다. 때는 지금으로부터 약 15년 전, 그러니까 저와 제 친구들이 국방의 의무를 마치고 사회 초년생으로 출발하기 직전, 일부는 취업을 하고, 대부분은 '단백련(단양 백수 연합회)'의 일원으로 있을 때의 사건입니다. 등장인물은 전투지원 중대 출신의 저, 수색대 출신의 장씨, 경비대 출신의 엄씨, 그리고 오늘의 주인공 특공대 출신의 지씨. 모두 4명입니다. 사건이 있던 전날 평상시와 다름없이 백수들이 뭐 할 일이 있겠습니까? 고돌이나 잡으면서 소주잔도 기울이면서 이렇게 취업이 안되는 것은 문교부 정책이 잘못돼서 그렇다는 둥 말도 안되는 핑계를 대면서 시간을 죽였습니다. 결국 그날 밤도 늦게 잤으니 다음날은 늦잠을 자고 11시에 다시 모였습니다. 그리곤 할 일도 없으니 사우나나 가자고 장씨가 제의를 했습니다. 백수들을 모두 아무 이의없이 목욕탕으로 갔습니다. 가보니 여름이라 그런지 다른 손님은 아무도 없고 그저 우리들 세상이었습니다. 샤워를 하고 있는데 장씨가 또 제의를 하더군요. "야, 우리 아무도 없는데 사우나에 들어가서 고스톱이나 치자." 사우나에 들어가서 고스톱을 치자니, 거기가 어딥니까. 거기가 어딘데, 거기서 그걸 치자는 겁니까. 그런데, 하나같이 좋은 생각이라고 하면서 동의를 한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무식이 종점도 없는 고열'사우나 고스톱 경기'가 시작됐습니다. 형님, 사우나 안에서 고스톱 쳐본 적 있으십니까? 아주 절묘합니다. 없으시면 다음에 형님하고 맹씨하고 지금 밖에 있는 PD선생님하고 한번 도전을 해보십시오. 최유라씨는 미련이 많이 남겠지만, 아직 우리나라에 남녀 혼탕이 없잖습니까. 억울하지만 좀 참아주십시오. 게임의 조건은 체력으로 못 버티고 사우나 밖으로 나가는 사람이 해장국과 저녁때 소주를 사는 것이었습니다. 처음 15분 동안은 정말 재미있게 쳤습니다. "야, 대한민국에 사우나 안에서 고스톱 친 사람 있으면 나와보라고 그래." 요렇게 객기를 부렸습니다. 상상해 보십시오. 있는 거라곤 시청앞 분수대밖에 없는 놈들이 사우나 안에서 땀 삐질삐질 흘리며 신문지 깔고 고스톱 치는 모습을요. 정말 가관이었습니다. 형님,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못한 상황에서 돈을 따면 어떻게 보관해야 하는지 아십니까? 우선 지폐를 따면 앞가슴에 한 장 붙입니다. 또 따면 배에다 붙입니다. 많이 따면 어떻게 되냐구요? 어떻하긴 어떻합니까. 분수대에도 붙여야죠. 동전은 이마에다 붙이면 확실합니다. 절대 안 떨어집니다. 그러나 20분이 지나자 온몸에 열은 올라가죠, 화투는 땀에 젖어 잘 쳐지지도 않죠. 그래서 다시 합의를 봤습니다. 고스톱은 3명이 치니까 광을 팔거나 죽은 사람은 나가서 찬바람을 마시고 들어오기 말입니다. 그런데 재수없는 놈은 되는 게 없었습니다. 다들 교대로 나갔다 오는데 오늘의 주인공인 지씨만 사우나 제일 안쪽에 앉아서 계속 나가질 못한 겁니다. 왜냐구요? 지씨는 용감하게도 계속해서 1등을 하고 있었습니다. 3점, 5점, 나가리, 또 3점. 이런 식으로 점수가 나니 죽을 수도 광을 팔 수도 없었습니다. 지씨의 얼굴은 사색이 되어갔습니다. 호흡은 점점 거칠어지고, 땀은 비오듯하고 온몸에 붙어 있던 돈들도 다 떨어지기 시작했습니다. 오로지 악으로 버티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다른 친구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잃은 놈들은 따겠다고 그냥 버티고 있었습니다. 그때, 구세주가 한 분 나타나셨습니다. 다름아닌 목욕탕 주인아저씨였습니다. 보통때 같으면 20분이나 30분 만에 나오는 놈들이 1시간이 돼도 안 나오니까 궁금해서 들어온 겁니다. 그랬는데, 탕 안에 아무도 없으니까 이상할 거 아닙니까? 사우나를 보니 사경을 헤매는 놈들이 몸에다 돈을 붙이고 고스톱을 치고 있으니 정말이지 백수 같은 놈들이라고 욕을 했습니다. 이렇게 해서 끌려나온 우리들은 바로 탕바닥에 댓자로 뻗어버렸습니다. 그렇지만 그 다음날 저녁 우리들은 또 모였습니다. 인원 점검을 해보니 특공대 출신의 지씨가 안 나온 겁니다. 전화를 했더니 병원에 입원했다고 하더라구요. "짜식 특공대 출신이 그 정도 체력밖에 안돼!" 청취자 분들은 이렇게 얘기하시겠죠. 하지만 우리의 지씨는 그 정도밖엔 안됩니다. 우리 동네 특공대 출신이거든요. 마지막으로 형님, 명퇴 조퇴 황퇴가 횡횡하는 요즘 백수 여러분들께 너무 조급해 하지 말고 참고 기다리면 분명히 좋은 날들이 있을 것이라는 말씀 부탁드립니다.
Board 삶 속 글 2023.04.24 風文 R 882
수서양단(首鼠兩端) 首:머리 수. 鼠:쥐 서. 兩:두 량. 端:바를/끝/실마리 단. [동의어] 수시양단(首施兩端). [유사어] 좌고우면(左顧右眄). [출전]《史記》〈魏其武侯列傳〉 구멍에서 머리만 내밀고 좌우를 살피는 쥐라는 뜻.곧 ① 진퇴/거취를 정하지 못하고 망설이는 상태. ② 두 마음을 가지고 기회를 엿봄. 전한7대 황제인 무제(武帝:B.C. 141~87) 때의 일이다. 5대 문제(文帝)의 황후의 조카인 위기후(魏其侯) 두영과 6대 경제(景帝)의 황후의 동생인 무안후(武安侯) 전분은 같은 외척이었지만 당시 연장자인 두영은 서산 낙일(西山落日)하는 고참 대장군이었고, 전분은 욱일 승천(旭日昇天)하는 신진 재상이었다. 그런데 어느 날, 두영의 친구인 관부(灌夫) 장군이 고관 대작(高官大爵)들이 모인 주연에서 전분에게 대드는 실수를 범했다. 사건의 발단은 관부가 두영을 무시한 한 고관을 힐책(詰責)하는데 전분이 그를 두둔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관부가 한사코 사죄를 거부하자 이 일은 결국 조의(朝議)에 오르게 되었다. 양쪽 주장을 다 들은 무제는 중신들에게 물었다. “경들이 판단컨대 어느 쪽이 잘못이 있는 것 같소?” 처음에는 의견이 둘로 나뉘었으나 시간이 지남에 따라 두영의 추종자로 알려진 내사(內史:도읍을 다스리는 벼슬) 정당시(鄭當時)조차 우물쭈물 얼버무리는 애매한 태도를 취했다. 그러자 어사대부(御史大夫:감찰 기관의 으뜸 벼슬) 한안국(韓安國)도 명확한 대답을 피했다. “폐하, 양쪽 다 일리가 있사와 흑백을 가리기가 심히 어렵나이다.” 중신들의 불분명한 태도에 실망한 무제가 자리를 뜨자 조의는 거기서 끝났다. 전분은 화가 나서 한안국을 책망했다. “그대는 어찌하여 ‘구멍에서 머리만 내밀고 좌우를 살피는 쥐[首鼠兩端]’처럼 망설였소? 이 사건은 시비 곡직(是非曲直)이 불을 보듯 훤한 일인데…‥.”
Board 고사성어 2023.04.24 風文 R 1013
너무 언제부터인가 우리는 ‘너무’라는 말을 ‘너무’ 자주 하게 되었다. “너무 맛있어요” “너무 예뻐요” “너무 더워요” “너무 무서워요” 심지어는 “너무 고마워요”까지. 좋을 때도, 싫을 때도, ‘너무’라는 말을 빼면 내 기분이나 상태를 딱 맞춰 표현할 길이 없어 보인다. ‘너무’는 원래 ‘정도에 지나치게’라는 뜻으로, 부정적인 표현에 쓰인다. 긍정적인 표현이라면 아주/ 정말/ 대단히/ 상당히 등으로 바꾸어 쓰는 것이 바람직하다. 본래 뜻대로라면 “너무 더워요” “너무 무서워요”는 자연스럽지만 “너무 맛있어요” “너무 예뻐요” “너무 고마워요”는 앞뒤가 맞지 않아 보인다. 하지만 ‘너무’라는 말을 막기엔 ‘너무’ 늦은 감이 든다. 대다수의 사람들이 ‘너무’를 부정의 뜻을 넘어 긍정적인 뜻으로도 함께 사용하고 있다. 약간의 과장을 포함한 강조의 뜻으로, 긍정적인 의미로 널리 쓰고 있는 것이다. ‘너무’를 대체할 적당한 말이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많은 것 같다. 이제는 ‘너무’의 용법을 ‘너무’ 좁게 한정하기 보다는 확장시켜 인정할 때가 되었다. 국어학자들도 이를 인정하는 추세이다. 부정적인 뜻을 포함하는 대표적인 말로 ‘장본인’을 들 수 있다. 장본인은 ‘나쁜 일을 빚어낸 사람’이라는 뜻으로 부정적인 의미를 갖고 있다. ‘끔찍한 사건의 장본인’ ‘미담의 주인공’ 등으로 구분해 사용해야 할 것이다. “혹여 실패하더라도 낙심하지 말아라” “결코 이기지 못할 것이다” “끝내 이루지 못했구나” “절대로 승리하지 못한다”와 같이 ‘혹여’ ‘결코’ ‘ 끝내’ ‘절대로’ 등도 부정문에 어울리는 말이다. 임수민 KBS 아나운서실 한국어연구부장
Board 말글 2023.04.24 風文 R 37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