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있는 지중해 신화와 전설(그리스 신화와 영웅들) - 사진 자료 및 참고 자료는 제가 편집해 올린 것입니다. 제4장 올림포스 신 시대 및 그 외 신들 14. 헤스티아 헤스티아(Hestia, Vesta)는 난로 혹은 화덕의 불을 지배하는 여신으로 로마에서는 베스타라 하여 각별히 모셨다. 크로노스와 레아의 맏딸로 제우스, 헤라와는 남매간이다. 부엌의 화덕 또는 벽난로의 불을 보호하는 여신인데 시대가 지나면서 가족, 시족 더 나아가 나라의 안녕을 수호하는 신이 되었다. 태고에는 불 붙이기가 매우 어려웠고 불을 꺼뜨리지 않는 일이 참으로 중요한 생활의 근원이었다. 또한 불은 마력을 지닌 것으로 간주되었으며 신앙적인 모티프와 더불어 생명으로 경외되었다. 따라서 도시국가에서는 물론 신흥 식민도시가 건설될 때는 난로를 설치하여 모국의 난로에서 불씨를 가져다가 붙였다. 로마에서는 광장 아래의 비아 사크라에 신전이 있어 끊임없이 성화가 타 올랐다. 이 성화는 여신을 모시는 베스타 처녀 6명이 보살폈고, 로마인들은 베스타 여신을 어머니로 모시며 존경하였다. 여신의 축제 베스탈리아는 6월 9일에 열렸는데 이 때는 여신의 동물인 나귀를 쉬게 하며 나귀에 제비꽃 화환과 빵을 달아맨 줄로 치장하였다. 또한 6월 7일부터 15일까지는 베스타 신전을 개방하여 로마의 부인들이 여신에게 공양할 수 있게 하고 그 기간에는 모든 공무도 중지하였다. 로마력으로 새해 초하로인 3월 1일에는 성화를 다시 태양광선에 의하여 새로 붙였다. 난로가 있는 곳에서 여신에게 공양을 하는 신전은 많지 않으나 모든 신에 대한 축제에서는 이 여신이 제일 첫 번째로 공양을 받는 영예를 안았다. 헤스티아는 포세이돈과 아폴론으로부터 구혼을 받은 바 있으나 자신의 역할을 지키기 위하여 거절하였고, 제우스 신은 그녀의 의지를 존중하여 영원히 처녀신으로 머물게 하고 갖가지 영예를 받게 하였다. 또한 헤스티아는 올림포스 12신에 속하지만 언제나 내부에 조용히 자리하고 난롯불을 보호하므로 세계 각처를 돌아 다니는 다른 신들과는 달리 전승되는 이야기가 별로 없다. 그러나 난로, 가정 및 시족의 안녕을 지켜주는 의인신으로서 계속 존중되었다. 베스타 신전은 원형이며, 여신 조각상은 길게 늘어진 옷과 베일을 쓰고 있으며 한 손에는 등불이나 두 귀 달린 단지를, 또 한 손에는 투창이나 성상을 지니고 있다. 천문에서는 화성과 목성 사이에 있는 작은 행성 하나를 베스타라 한다. 15. 이아페토스 이아페토스(Iapetus)는 우라노스와 가이아의 아들로 티탄족의 한 명이다. 그러므로 제 1세대 신족에 속하며 크로노스의 형이 된다. 헤시오도스에 의하면 티탄족은 티타니스를 처로 삼는 것이 관례인데 이아페토스는 이 관례를 개고 오케아노스와 테튜스의 딸인 크류메네를 아내로 맞이하였다. 그녀와의 사이에 아틀라스, 메노이티오스, 프로메테우스 및 에피메테오스의 네 아들을 두었는데 신족과 인간의 중계자가 되었다. 프로메테우스의 아들 데우칼리온은 대홍수를 치른 후 인류의 아버지가 되었고 장손인 헬렌에게서는 많은 후손이 생겨나 그리스인이 되었다. 이에 연유하여 그리스인은 스스로를 헬레네라고 부르고 있다. 다른 전설에 의하면 이아페토스의 아내는 오케아노스의 다른 딸인 아시아라 하고 또 다른 설에서는 아소피스, 심지어 리비아라고도 한다. 그리스인들은 이아페토스를 인류의 선조라 하고 고대인을 이아페티, 이아페토스의 아들을 이아페티오니데스라 하였다. 헤스페리아 그리스 시문에서는 이탈리아와 스페인을 합쳐서 헤스페리아(Hesperia)라고 불렀다. 이 용어는 헤스페르(Hesper:서쪽 저녁별 특히 금성) 혹은 베스페르(Vesper:저녁)에서 유래하며 그리스인이 이탈리아 헤스페리아라 칭한 것은 해가 지는 쪽 또는 서쪽에 위치하였기 때문이다. 마찬가지 이유로 같은 이름을 로마에서는 스페인에다 적용시키고 있다. 또한 신화에서는 아프리카쪽 큰 섬을 헤스페리아라 하는데 아마존 여인족의 정착지였다. 호메로스가 말하는 헤스페리아는 큐클로페스에게 쫓겨나기 전 파이시아인이 살던 고장이었으며 이탈리아를 의미하였다. 일설에는 아틀라스의 형제인 이아페토스의 아들 헤스페로스가 이탈리아로 가서 정착하였기 때문에 그 곳을 헤스페리아라고 칭하게 되었다고 한다. 이아페토스에게서 난 헤스페리스라는 딸은 아틀라스와 결혼하여 7명의 딸을 두었는데 이들을 아틀란티데스 혹은 헤스페리데스라 하며 그 각각의 이름은 다음과 같다. 마이아, 엘렉트라, 타유게테, 아스테로페, 메로페, 알큐오네, 켈라이노. 또한 신화에서 황금사과 밭을 지키는 4자매를 헤스페리데스라 하며 아폴로도로스에 따른면 이들의 이름은 아이글레, 에류티아, 베스타 및 아레투사라 하였다. 황금사과는 헤라와 제우스의 혼인을 기념하여 그 어미인 가이아가 준 것으로 라돈이라는 괴물용을 주어 4자매에게 지키게끔 하였다. 이들 자매는 신성을 가진 요정으로 시문에 따라 뉵스, 에레보스, 포르큐스와 케토, 아틀라스와 헤스페리스 또는 제우스와 테미스의 딸들이라고도 한다. 16. 큐클로페스 단스는 큐클로프스라 하며, 그리스 신화에서는 서로 다른 3종의 큐클로페스 (Cyclopes)가 등장한다. 첫째는 크로노스에게 거세당한 우라노스가 흘린 핏방울이 땅(가이아)에 떨어져 태어난 큐클로페스, 둘째는 오듀세우스가 활약하던 때 폴류페모스를 왕으로 하는 시칠리아의 큐클로페스, 셋째는 숙련공(석공 혹은 야금공)인 큐클로페스이다. 첫 번째 큐클로페스는 브론테스(천둥, 우레), 스테로페스(번개), 및 아르게스(벼락)의 3형제로 초기의 거인족이다. 이마에 한 개의 눈을 가진 외눈박이로 힘이 엄청나게 세고 솜씨가 매우 뛰어났다. 이들은 자신들에게 공포를 느낀 우라노스에 의해 모두 타르타로스에 유폐되었고, 크로노스가 우라노스의 신권을 쟁취할 때 풀려나 승리에 도움을 주었으나 그 후 다시 유폐되었다. 그리고 다음 세대의 제우스가 거신족과의 전쟁 때 큐클로페스의 도움을 받아야 승리를 할 수 있다는 신탁에 따라 석방됨으로써 비로소 자유의 몸이 되었다. 지상에 나온 큐클로페스는 제우스에게 천둥과 번개 및 벼락을, 포세이돈에게는 삼지창 무기를, 하데스에게는 남의 눈으로부터 모습을 감춰주는 요술모자를 주었다. 이 무기로 올림포스의 신족은 티탄족과의 싸움에서 승리를 거두고 패배한 티탄족을 타르타로스에 몰아넣었다. 그 후 가미된 전설에서는 큐클로페스가 계속 제우스에게 벼락을 대 주었기 때문에 아폴론의 분노를 샀다. 즉 죽은자를 살려내는 능력을 가진 아스클레피오스가 제우스의 벼락에 맞아 죽자 그 아비 아폴론은 제우스에게는 복수할 수 없어 대산 벼락을 공급한 큐클로페스를 모두 살해해 버렸다. 아폴론은 이 죄의 대가로 아드메토스의 양치기가 되어 속죄를 하게 되었다. 이 때의 큐클로페스는 불사신이 아닌 존재로 각색되어 있다. 알렉산더 시대의 시인은 큐클로페스를 단지 신들을 위하여 무기를 만드는 대장공 혹은 장인으로 상상하였다. 예컨대 헤파이스토스의 지도를 받아 아폴론과 아르테미스의 활과 화살, 아테나의 갑옷을 만들었다고 한다. 그들은 아이올리아 섬 또는 시칠리아 섬에서 살았는데, 이 곳 지하에 대장간을 차려 늘 시끄러운 소리를 냈으며 또한 그 대장간의 불로 에트나 산정을 붉게 물들였다고 묘사하고 있다. 그러나 다른 전설에 따르면, 제우스와 아테나가 에트나 산을 떼어 덮쳐 묻어버린 튜폰과 엔켈라도스가 죽지 않고 그 아래에서 몸부림치고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다음으로 오듀세우스 일행이 만난 큐클로페스는 난폭하고 야만적인 기간테스로 포도를 재배하고 목축을 하는 부족인데 나폴리 근처에 사는 무서운 힘을 지닌 외눈박이 거인이다. 오듀세우스의 일행 12명은 그들의 왕 폴류페모스를 찾아갔다가 매일 하나씩 잡아먹히고 6명만 남게 되었다. 오듀세우스는 배에 있던 포도주로 폴류페모스를 만취시키고 불에 달군 통나무가지로 눈을 찔러 앞을 못 보는 사이 탈출에 성공하였다. 폴류페모스가 살던 이 땅은 트라키아 남쪽에 위치한 이스마로스로, 키콘족 나라의 수도라고 하며 양질의 포도주로 이름이 높고 디오뉴소스를 주신으로 섬겼다. 그들 부족은 동굴에서 살며 도시를 건설할 줄 모르는 집단이었다. 일부 전설에 의하면 이들은 사튜로스 같은 호색적 성향을 갖고 있으며 요정 갈라테이아를 열렬히 사랑하여 그녀가 좋아하는 목동 아키스를 박살내었다. 아키스는 에트나 산에 흐르는 개울로 화신한다. 또 한 부족은 리시아에서 내도한 큐클로페스인데 그리스 유사 전 모든 기념 구조물은 이들이 구축하였다고 한다. 시칠리아나 그 외 지방의 인간의 힘으로는 엄두도 못 낼 거석 구조물도 이들이 축조한 것이라 하며 티륜스의 성벽은 '큐클로페스 성벽'이라 하였다. 아르고스 성 또한 이들의 축조물이라고 전한다. 이 큐클로페스의 별칭은 가스테로케이레스로 '위에서 손이 자란 자'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는데, 같은 형제간인 헤카톤케이레스(백수거인)를 상기시킨다. 레아(고대 그리스어)는 그리스 신화에서 대지의 여신이다. 우라노스와 가이아 사이 태어났다. 그리스 신화에 따르면 남편 크로노스가 자신의 자식들을 모두 먹는 것을 안 레아는 꾀를 내어서 돌을 아기라고 거짓말 하여 돌을 먹게 하였다.이 돌이 가장 강력한 신 제우스이다. 레아는 크로노스의 누나이자 아내이며, 순서대로 여섯 자녀, 즉 헤스티아 · 데메테르 · 헤라 · 하데스 · 포세이돈 · 제우스를 낳았다. 그러나 레아는 크로노스와 사랑에 빠졌고 정말 멋진 자녀들을 낳았다. 헤스티아, 데메테르, 황금 신발을 신은 헤라를 낳았다. 그리고 강인한 하데스를 낳았는데, 그는 가슴에 인정사정이 없으며 대지 아래에 거주한다. 그리고 엄청난 굉음을 일으키면서 대지를 흔드는 자를 낳았다. 그리고 지혜로운 제우스를 낳았는데, 그는 '온갖 신들과 인간들의 아버지(father of gods and men)'로, 그의 천둥은 광활한 대지를 뒤흔든다. 거대한 크로노스는 이들 자녀들이 각각 모태로부터 그의 어머니(즉, 크로노스의 어머니, 즉 가이아, 즉 대지)의 슬하로 나올 때마다 이들을 삼켰는데, 이것은 하늘(즉 우라노스)의 자랑스러운 자식들 가운데 [자신을 제외한] 그 어느 누구도 불멸의 신들 사이에서 왕의 지위를 가지지 못하게 하기 위한 것이었다. 왜냐하면 그는 대지(즉 가이아)와 별이 총총한 하늘(즉 우라노스)로부터 자신이 자신의 아들에 의해 패배당할 운명이라고 들었기 때문이었다. 비록 그가 강하지만 위대한 제우스가 어떻게든 그를 이기게 될 것이라고 들었기 때문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결코 관찰을 게을리 하지 않았으며 항상 주시하다가 자신의 자식들을 꿀꺽 삼켰다. 이로 인하여 레아는 끊임없는 커다란 슬픔과 비탄에 잠기게 되었다. 그러나 그녀가 '온갖 신들과 인간들의 아버지'인 제우스를 출산할 때가 되었을 때, 자신의 사랑스런 아이의 출생이 숨겨질 수 있도록 하기 위하여, 그리고 크로노스가 그 자신의 아버지(즉, 우라노스)[에게 반역했던 것에 대한 복수]를 위해서 그리고 또한 그가 삼킨 자녀들[에 대한 복수]를 위해서, 이 거대하고 교활한 크로노스에게 강력한 응징을 가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하여 그녀는 그녀의 사랑하는 부모들인 대지(즉 가이아)와 별이 총총한 하늘(즉 우라노스)에게 어떤 계책을 짜내 줄 것을 간청하였다. [ 돌덩이를 강보에 싸서 크로노스에게 건네는 레아 ]
Board 추천글 2023.06.06 風文 R 1654
웃음이 묻어나는 편지 - MBC 예술단 엮음 셋 - 사랑으로 풀어내는 웃음보따리 아, 땡기고 싶어라! 제남자 친구 얘기예요. 저흰 스물 여섯 동갑내기구요. 대학 3학년 때 설악산 수학여행에서 만났지요. 전 여대에 다녔기 때문에 딴 학교 남자아이들이랑 단체로 조인트해서 갔는데, 그때 그 애랑 한 조였어요. 여행 처음부터 끝까지 조단위로 움직였는데, 뭐 밥도 조끼리 먹고, 어디 다닐 때도 그랬고, 그러니까 싫든 좋든 어쩔 수 없이 4일 내내 같이 다닐 수 밖에 없었지요. 근데 이 인간이 어쩌나 저한테 추근대던지. 짜식 눈은 높아가지고... 제 머릿결이 좋다는 둥. 자긴 저처럼 화장 안해도 예쁜 여자만 보면 가슴이 벌렁벌렁 한다는둥, 다른 친구들 보기가 민망할 정도였으니까요. 여행 마지막날 밤. 나이트 갔었지요. 근데 이 인간, 제 옆에 껌처럼 딱 달라붙어서 부어라 마셔라 혼자서 분위기 썰렁하게 만들더니, 급기야는 알코올 냄새 푹푹 풍기면서 쉰소리를 하더군요. “지연아, 우리 부르스 추자. 응?” 나참 가가 막혀서. 제가 합격 통지서 받고 나서 젤 먼저 결심한 게 뭔지 알면 감히 이런 막말은 못하죠. 뭐냐구요? 장학금? 흠, 꿈도 안꿔요, 그럼 미팅? 이미 중학교 때 두루두루 섭렵했어요. 그럼 도대체 뭐냐구요? ‘절개 지키는 여자, 지조있는 여자가 되자.’ 고등학교 졸업반 때 대입시험 끝나고 그간 공부하느라 쌓인 스트레스 몽창 날려 보내준다면서 언니가 데려간 그곳, 나이트에서 전 봤지요. 그때 언니 친구들 몇명도 함께 있었는데, 저번에 언니 성적표 몰래 훔쳐봤더니 별로 공부 때문에 힘들었을 거 같지도 않은데 뭐 그렇게 맺힌 게 많았는지, 정작 그날의 주인공인 전 제쳐두고 언니 혼자 올 무대를 누비더군요. 뭐 거기까진 괜찮았어요. 근데 드디어 부르스 타임! 그쯤하고 자리로 돌아올 줄 알았던 우리 언니, 도대체 어디서 그런 정열이 솟구치는지... 대근 오빠가 선전하던 ‘힘과 정열을 그대에게’그 드링크를 마셨는지 어쩐지 아무튼 남자친구들 3명과 번갈아 가며 땡기더군요. 아무리 그냥 친구 사이라지만 그래도 남잔대, 외간 남자 품에 덜퍼덕 안겨서 스텝 밟으면서 빙글빙글 도는 언니 모습에 순진한 전 충격을 받고 말았지요. 집에 돌아오는 길에 어니한테 물었어요. “언니, 아까 춤출 때, 영민 오빠(언니애인)한테 미안하지 않았어?” “영민이? 뭐가?” “사랑하는 사람 놔두고 딴 남자 품에 안겨서 춤추는데, 죄책감 같은 거 없었냐고?” “얘가 무슨 소리야. 그동안 앉아서 책만 보더니 얘가 책이랑 현실이 구분이 안되나 보네. 내가 무슨 조선시대 춘향이니? 춤도 내 맘대로 못 추게. 나랑 난 지금 여기 1991년 자유 대한민국 서울에 있는 거라고 , 알았어?” 전 그때 결심했죠. 언니랑 차별화 하자! 절개 있고 지조 지키는 여자가 되기로. 여기저기 다니면서 이 춤 저 춤 심지어 막춤까지 다 춰도 절대로 부르스만큼은 아무하고나 추지 말것. 딱 한 남자, 내 모든 것을 줘도 하나도 아깝지 않은 내 남자하고만 찐하게, 끈적하게, 그리고 느끼하게 땡길 것! 20세기 새롭게 부활한 논개인 제가 처음 본 그 인간하고 부둥켜안고 부르스? 어림없는 소리지요. 그랬더니 이 인간 횡설수설하면서 옆 테이블로 건너가더니, 그쪽의 술을 축내기 시작하더군요. 즐거운 추억이 되었어야 할 여행이 완전히 망가져 버리고, 거기에다 K대학과 S여대 조인트 사상 최고의 추한 커플로 뽑혀, 서울로 돌아오는 버스 맨 앞자리 지정석에 나란히 앉아, 사회자의 강요로 어쩔 수 없이 노래로 함께 노래 제끼는 망신도 당했지요. “영감, 왜 불러, 뒤뜰에 매어놓은 병아리...” ‘으윽!’ 그러나 악몽은 끝나지 않아어요. 여행에서 돌아와서도 거의 매일 학교 앞에 찾아와서 절 기다리고, 집에 전화하고 정말 괴롭더라구요. 그래서 그랬죠. “난 싫다. 너 가라. 내가 제일 싫어하는 남자가 너 처럼 끈적대는 남자다. 이제 곧 여름인데, 너만 봐도 난 숨이 턱턱 막힌다. 가라." 참, 여기서 빠뜨리고 넘어가면 안되는 아주 중요한 얘기 하나가 있습니다. 이 인간 외모요, 제가 왜 그리도 이 인간을 거부했는지 아마 절 이해하실 수 있을 거예요. 무지 튀는 얼굴이거든요. 그렇게 잘생겼나구요? 그랬음 제가 왜 그렇게 튕겼겠어요. 그럼, 별로 잘나지도 못한 이 남잘 미남미녀 넘쳐나는 세상에 그렇게 확 튀어 보이게 하는 게 뭐냐구요? 있죠. 점이요. 점 없는 사람 어디 있냐구요? 사실 저도 점 많아요. 콧등엔 수도 없이 많고, 왼쪽 허벅지에도 만만치 않아요. 점이 새끼를 치는지 매년 늘어나는 추세구요. 근데 왜그러냐고요? 점도 점 나름이고, 그 위치나 빛깔도 중요하지 않겠어요?이 인간 오른쪽 코 옆에 이따만한 꼭 제 엄지손톱 2개 뭉쳐 놓은 것만한 대빵 큰 왕점이 있지요. 색깔도 불그스름한 게 이마에 흰 끝 하나 질끈 동여매년 영락없는 조선시대 머슴이죠. 그런데 이 인간 술 몇 잔 걸치고 이러더군요. "내가 이 점 때문에 그렇지 나도 이 점만 없으면, 톰크루즈, 케빈코스트너가 울고 가는 얼굴이라고. 이 점 나도 빼고 싶다구, 그치만집안 어른들이 이 점이 복점이라고 절대로 얼굴에 칼대면 안된다고 그러셔서 나도 힘들단 말이야. 응? 내가 이래봬도 우리집 4대독자 장손이거든, 4대독자 4대독자라구...." "참, 누가 물어 봤냐고, 누가 물어 봤어?" 추근대는 것도 그렇지만, 무엇보다도 제일 마음에 걸리는 건 역시 고놈의 머슴 점이었어요. 그렇지만 남의 외모 가지고 그러는 건 지성인이 할 일이 아니잖아요. 그 말만은 삼가했죠. 근데 그렇게 싫다고 무안을 주고 타박을 하고 본척도 안해도, 어찌나 꿋꿋한지 질기기가 말가죽, 뻔뻔하기가 완전 콘크리트 바닥이었어요. 무조건 제가 좋대요. 첫눈에 반한단 말을 이제야 믿게 되었대요. 그러면서 자기랑 안 놀아줘도 좋으니까 그냥 못 오게만 하지 말라는 거였어요. 인정 철철 흘러넘쳐 주체 못하는 저, 마음속 비단 같은 저가 어떻게 이 불쌍한 인간을 내치겠어요. "그래, 니가 아무리 불쌍을 떨어도 내 맘은 변할 리 없으니까, 니 맘대로 해라. 니 차비들이고 니 학점 펑크내서 졸업 못하면 니 손해지뭐. 내가 알 바 아이다. 대신 내 눈앞에서 걸리적거리지만 말아." 이렇게 말해 버린게 저의 실수였어요. 그것도 하루, 이틀, 같은말도 한두 번이지 이젠 그 인간 얼굴이 아니라 목소리만 들어도 몸이 부르르 떨릴 만큼 지겹더군요. 그래서 잔인한 여자가 되기로 했죠. "나, 딴건 어떻게든 다 참을 수 있는데, 너랑 다니면 꼭 내가 하녀가 된 기분이 들어서 싫어. 공주는 왕자랑 놀고, 머슴은 하녀랑 일하고, 너랑 나랑 다니면 사람들이 뭐라겠어. 그럴거 아냐, 방자랑 향단이가 끼리끼리 다닌다고...." 그 순간 자기 코 옆의 점을 어루만지던 그 친구 표정을 보지 내가 너무 심했구나, 후회도 됐죠. 사실 따지고 보면 그 친구 무슨 죄가 있겠어요. 죄라면 지 주제를 모르고 눈만 높았다는 거지요. 그리고 마음속 한편에선 엄마에게 기쁨의 원망을 했죠. '엄마는 왜 날 이렇게 이쁘게 나가지고 여러 인간 괴롭게 하는거야, 응--?' 그때 받은 충격 탓인지, 거의 매일 출근부에 도장찍던 그 친구 한동안 연락이 없었어요. 그래 나가 좀 가혹하지 했어도, 뭐 어쩔 수 없는일이었잖아요. 근데 몇 달 후에 나타난 이 인가, 꽃 한 다발 사들고 교문 앞에 서 있는데 그만 전 모르고 지나칠 뻔 했어요. 그 쪽에서 먼저 절 안 불렀으면 말이죠. 왜냐구요? 이 남잔 이 남자답게 이 남자의 심벌 불그레죽죽한 이따만한 왕 점이 없었거든요. 언제 그런게 붙어 있었냐는 듣 코 옆이 반들반들 한게. 진짜 완전 딴 사람인 거 있죠. 그때 술 먹고 한소리, 영 쉰소리 아니었나 봐요. 진짜 톰 크루즈 뺨치게 잘생겼더군요. 사실 만이 나왔으니 하는 말인데, 이 남자가 키도 180cm가 넘고, 제격도 단단하고 K대학까지 들어간 걸 보면 머리도 웬만큼 되는 거 같고, 참, 고놈의 머슴 점만 아니었음 뭐 어떻게라도 한번 해볼까 하는 맘도 있긴 있었거든요. 그때부터 그 남잔 머슴에서 순식간에 왕자님이 되어 원래부터 공주였던 저랑 좋은 물에서 배영, 접영, 때론 싱크로나이즈드까지 하면서 잘 놀았죠. 이 남자, 그때 제 말에 충격을 받고 며칠 밤낮을 고민했대요. '집안을 택하느냐, 사랑을 택하느냐.' 점을 지 맘대로 뺐다간 집안어른들 후환이 두렵고, 그렇다고 그냥 두자니 절 놓쳐 못 살 거 같고.... 그러다가 과감히 집안을 버리고 사랑을 택하기로 결심했대요. 뭐 무슨 영국의 어느 왕도 나라를 포기하고 사랑하는 여자를 택했대나, 그러면서 남자에게 사랑만큼 중요한 게 어딨냐고, 자기는 지짜 진정한 사랑을 아는 이 시대 마지막 남은 유일한 로맨티스트라는 등.... 지가 지 얘길 하면서 혼자 감동을 받는 눈치더군요. 그냥 놔두면 어디까지 올라갈지 몰라 약간 찬물을 뿌렸죠. "근데 너 얼굴에 칼대면 집안에서 쫓겨난다며? 아무리 내가 좋아도 너 4대독자 장손이잖아?" "그래, 그래서 그거 때문에 고민하다 알아봤더니, 요즘은 칼 안대도 점 뺄 수 있다고 하잖아. 진짜 좋은 세상이야. 나 이거 레이저로 점 뺀 거야, 감쪽같지? 히히히." 얼마 전 일이에요. 평상시엔 청바지만 입고 다니던 애가 무슨 일인지 양복을 쫙 빼 입고 나왔더군요. 그 탓인지, 그날 따라 자꾸만 어색해지려는 분위기를 제 딴엔 한번 띄워 보려고, 별로 웃기지도 않은 얘길 해 놓고 혼자 푸하하하 오버를 하고 있는데, 얘가 갑자기 심각한표정으로 말하더군요. "지연아, 우리 부르스 출래?" "짜식, 유머라는 게 겨우 이 정도니..., 나나 되니 너랑 놀아주지. 쯧쯧." 불쌍해서 그냥 웃어줬죠. "됐다. 됐어. 무지 웃낀다. 근데 너 제비니? 왜 나만 보면 부르스 타령이냐? 일어나, 나가자. 나 배고파." "바보야, 앉아. 나 지금 너한테 프로포즈한 거란 말야. 니가 그랬잖아. 넌 아무하고나 부르스 안 춘다며? 딱 한 사람, 난 어때?" 그날 밤, 우리 둘 무지하게 땡겼조. 본전 확실하게 뽑고 나왔어요. 이 좋은 걸 모르고 그 동안 왜 지조 운운하면서 외면했느지.... 한 남자 넓은 가슴에 철퍼덕 안겨서 스테이지를 몇 바퀴 돌고 나니, 참, 세상이 달라보이데요. 참 좋드만요. 저희 가을에 결혼해요. 그리고 약속했어요. 결혼하면 부부 볼륨댄스반에 등록하고 함께 다니기로요. 근데 큰일이에요. 이젠 길 가다가도 스텝 밟기 괜찮겠다 싶은 뮤직만 흘러나오면 마음이 심란해요. 아, 또 땡기고 싶어라!
Board 삶 속 글 2023.06.06 風文 R 975
연목구어(緣木求魚) 緣:인연/인할 연. 木:나무 목. 求:구할 구. 魚:고기 어. [유사어] 지천사어(指天射魚). [출전]《孟子》〈梁惠王篇〉 나무에 올라 물고기를 구한다는 뜻. 곧 ① 도저히 불가능한(가당찮은) 일을 하려 함의 비유. ② 잘못된 방법으로 목적을 이루려 함의 비유. ③ 수고만 하고 아무것도 얻지 못함의 비유. 전국 시대인 주(周)나라 신정왕 3년(B.C. 318), 양(梁/魏)나라 혜왕(惠王)과 작별한 맹자(孟子)는 제(齊)나라로 갔다. 당시 나이 50이 넘는 맹자는 제후들을 찾아다니며 인의(仁義)를 치세의 근본으로 삼는 왕도정치론(王道政治論)을 유세(遊說)중이었다. 동쪽의 제나라는 서쪽의 진(秦)나라, 남쪽이 초(楚)나라와 함께 대국이었고 또 선왕(宣王)도 역량 있는 명군이었다. 그래서 맹자는 그 점에 기대를 걸고 있었다. 그러나 시대가 요구하는 것은 왕도정치가 아니라 무력과 책략을 수단으로 하는 패도정치(覇道政治)였으므로, 선왕은 맹자에게 이렇게 청했다. “춘추 시대의 패자(覇者)였던 제나라 환공(桓公)과 진(晉)나라 문공(文公)의 패업에 대해 듣고 싶소.” “전하께서는 패도에 따른 전쟁으로 백성이 목숨을 잃고, 또 이웃 나라 제후들과 원수가 되기를 원하시옵니까?” “원하지 않소. 그러나 과인에겐 대망(大望)이 있소.” “전하의 대망이란 무엇이오니까?” 선왕은 웃기만 할 뿐 입을 열려고 하지 않았다. 맹자 앞에서 패도를 논하기가 쑥스러웠기 때문이다. 그래서 맹자는 짐짓 이런 질문을 던져 선왕의 대답을 유도했다. “전하, 맛있는 음식과 따뜻한 옷이, 아니면 아름다운 색이 부족하시기 때문이오니까?” “과인에겐 그런 사소한 욕망은 없소.” 선왕이 맹자의 교묘한 화술에 끌려들자 맹자는 다그치듯 말했다. “그러시다면 전하의 대망은 천하통일을 하시고 사방의 오랑캐들까지 복종케 하시려는 것이 아니오니까? 하오나 종래의 방법(무력)으로 그것(천하통일)을 이루려 하시는 것은 마치 ‘나무에 올라 물고기를 구하는 것[緣木求魚]’과 같사옵니다.” ‘잘못된 방법(무력)으론 목적(천하통일)은 이룰 수 없다’는 말을 듣자 선왕은 깜짝 놀라서 물었다. “아니, 그토록 무리한 일이오?” “오히려 그보다 더 심하나이다. 나무에 올라 물고기를 구하는 일은 물고기만 구하지 못할 뿐 후난(後難)은 없나이다. 하오나 패도를 쫓다가 실패하는 날에는 나라가 멸망하는 재난을 면치 못할 것이옵니다.” 선왕은 맹자의 왕도정치론을 진지하게 경청했다고 한다.
Board 고사성어 2023.06.06 風文 R 895
이 자리를 빌려 ‘이 자리를 00 감사를 드립니다’라고 할 때 ‘빌어’가 맞나요? ‘빌려’가 맞나요? 엊그제 어느 직장인으로부터 문의 전화를 받았다. ‘빌려’로 쓰는 게 맞다고 답했더니 “저도 그런 줄 알고 있는데, 사장님이 자꾸 ‘빌어’로 써야 한다고 하시네요”라는 답이 돌아왔다. 어떤 사정일지 짐작이 간다. 아마도 사장님은 적어도 50세는 넘으신, 연세가 지긋한 분이실 게다. 1988년에 표준어 규정의 개정으로 이 표현은 ‘빌어’에서 ‘빌려’로 바뀌었다. ‘빌리다’는 남의 돈이나 물건을 나중에 돌려주기로 하고 얼마 동안 가져다 쓰는 일을 뜻한다. 내가 다른 사람에게 빌려오기도 하고 남에게 빌려줄 수도 있다. 1988년 이전에는 빌려오는 것은 ‘빌다’로, 빌려주는 것은 ‘빌리다’로 구분해서 쓰도록 하였다. 즉 ‘친구가 나에게 책을 빌렸다’는 친구가 내 책을 빌려갔다는 뜻이고, 내가 빌렸을 때는 ‘친구에게 책을 빌었다’ 또는 ‘빌어왔다’라고 표현해야 했다. 그러나 차차 이 둘의 구분이 모호해지고 ‘빌려가다, 빌려오다, 빌려주다’로 구분해서 사용함에 따라 ‘빌다’와 ‘빌리다’의 구분을 없애고 모두 ‘빌리다’로 쓰도록 했다. 그러니까 ‘이 자리를 빌려 감사를 드립니다’로 쓰면 된다. 다만 ‘빌려오다’의 의미로 ‘빌다’를 더 이상 쓰지 않는 사람들 중에도 ‘이 자리를 빌어 감사를 드립니다’라는 말은 굳어진 표현으로 강하게 인식하고 있어 ‘빌어’가 맞는 것으로 종종 착각을 하는 경우가 있다. ‘빌다’는 ‘빌어먹다’에서처럼 ‘구걸하다’의 의미나 ‘소원이나 용서를 빌다’처럼 간곡히 청하는 행위를 나타낼 때에만 사용한다. 앞으로는 이 말을 혼동하는 사람들이 없기를 이 자리를 ‘빌려’ 간곡히 부탁드린다. 정희원 국립국어원 어문연구실장
Board 말글 2023.06.06 風文 R 34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