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스물일곱 살 때까지 남자의 성기를 본 적이 없었어요. 어린 아이의 고추는 믿을 수 없어요. 튀어나온 목젖이나 겨드랑이 털처럼 성인의 성기도 어린아이의 것과 다를 거라고 생각했죠. 꿈을 꾸면 남자의 성기는 매번 다른 모습이었어요. 바나나처럼 보이기도 하고 주전자의 주둥이, 피리, 하모니카 등으로 나타나기도 했죠. 그것이 내 몸에 들어와 물을 뿌리기도 하는가 하면 피리를 불기도, 때론 내 몸에서 하모니카 선율을 들으며 새벽잠을 깨기도 했지요... 황홀한 꿈들이었어요. 그런데 어느 날 건달 하나에 붙들려...... 그 이후로 이상하게 하모니카 소리를 들을 수 없었어요. 끔찍한 실체만 자리하더군요. 마치 돼지 다리처럼 털이 부숭부숭하고 숯검정이 묻은 듯한...... 전 그때 알았어요. 감춤은 은폐만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꿈을 뜻한다는 사실을요..." "드러내려는 성과 억누르려는 권력은 항상 대치 상태에 있는 게 아니에요. 오히려 대치 상태에 있다고 믿게 하는 게 검열(권력)의 이데올로기적인 조작이지요. 때에 따라 둘은 상호 의존적이죠. 야누스처럼 외면한 두 얼굴이 한 몸에 붙어 있어요." "그 일탈이라는 것도 저들이 근래 새로 포장해 놓은 샛길일 따름 이라구요. 아주 상투적이고 아늑한 길이죠. 길의 속성을 간파하지 못하는 것은 그 눈에 번뇌가 없기 때문이에요." 엄창석,<색칠하는 여자>
Board 추천글 2008.02.28 바람의종 R 11937
너, 윤곽선이 지워진 세계의 비극이 뭔지 아느냐? 뿌리를 뽑는다는 것. 그래, 잡초를 뽑으며 나는 뿌리를 뽑는다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를 새삼 확인할 수 있었다. 지난 십 년, 내 자신이 잡초처럼 척박한 땅에다 뿌리를 내리고 살아왔으니 손놀림이 모지락스러워지는 것도 결코 무리는 아닐 터였다. 그러니 잡초가 아니라 가슴에 응어리진 자기 혐오를 뽑아 내기 위해 나는 정신없이 땅을 파헤치고 있는 건지도 모를 일이었다. 내 스스로 뿌리를 내렸으나 내 스스로 거두지 못한 끈질긴 비관과 절망의 뿌리, 그것들은 지금 내 영혼의 어느 암층에까지 뻗어나가 있을가. 스물일곱에서 서른일곱 사이. 세월의 수레바퀴에 실려 간 꿈은 이제 아쉬움의 대상이 아니었다. 필요한 것은 적멸이 아니라 소멸, 그리고 또 다른 길을 향한 준비이거나 출발일 뿐이었다. 그러므로 십 년 세월 저쪽, 꿈과 무관한 길을 떠나던 시절의 기억은 부정이나 타파의 대상이 될 수 없었다. 그것이 원하던 길은 아니었지만, 어쨌거나 그 시절의 나를 부정하고 지금의 나를 인정할 수는 없는 법이었다. 원하는 길을 가기 위해 원치 않는 길을 에돌아가는 것, 그것을 통해 오히려 강화되거나 견고해질 수 있는게 꿈이라면 지금의 나를 무슨 말로 변명할수 있으랴. 꿈을 위해 꿈을 잠재우는 과정. 세상이 꿈꾸는 자의 것이라는 말은 세상이 결코 꿈꾸는 자의 것이 될 수 없다는 걸 역으로 반영하는 말일 뿐이었다. "인생이 극도로 불투명하게 느껴질 때가 있죠. 내가 살아온 이유와 살아갈 이유, 그런 것에 아무런 확신도 가질 수 없을 때......그러니까 혼자인 게 당연하고 혼자일 수밖에 없는 시간 같은 거요. 아마 나는 지금 그런 시간을 지나가고 있는 것 같아요......" 박상우 <말무리반도>
Board 추천글 2008.02.27 바람의종 R 11022
나의 아버지는 내가... 네살 때 - 아빠는 뭐든지 할 수 있었다. 다섯살 때 - 아빠는 많은 걸 알고 계셨다. 여섯살 때 - 아빠는 다른 애들의 아빠보다 똑똑하셨다. 여덟살 때 - 아빠가 모든 걸 정확히 아는 건 아니었다. 열살 때 - 아빠가 어렸을 때는 지금과 확실히 많은 게 달랐다. 열두살 때 - 아빠가 그것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건 당연한 일이다. 아버진 어린시절을 기억하기엔 너무 늙으셨다. 열네살 때 - 아빠에겐 신경 쓸 필요가 없어. 아빤 너무 구식이거든! 스물한살 때 - 우리 아빠말야? 구제불능일 정도로 시대에 뒤졌지. 스물다섯살 때 - 아빠는 그것에 대해 약간 알기는 하신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은, 오랫동안 그 일에 경험을 쌓아오셨으니까. 서른살 때 - 아마도 아버지의 의견을 물어보는 게 좋을 듯하다. 아버진 경험이 많으시니까. 서른다섯살 때 - 아버지에게 여쭙기 전에는 난 아무 것도 하지 않게 되었다 마흔살 때 - 아버지라면 이럴 때 어떻게 하셨을까 하는 생각을 종종한다. 아버진 그만큼 현명하고 세상 경험이 많으시다. 쉰살 때 - 아버지가 지금 내 곁에 계셔서 이 모든 걸 말씀드릴 수 있다면 난 무슨 일이든 할 것이다. 아버지가 얼마나 훌륭한 분이셨는가를 미처 알지 못했던 게 후회스럽다. 아버지로 부터 더 많은 걸 배울 수도 있었는데 난 그렇게 하지 못했다. <마음을 열어주는 101가지 이야기 中 '앤 랜더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