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붕 위에 지붕(옥상가옥) <표준사전>에 ‘지붕 위에 지붕’(옥상가옥)을 “지붕 위에 또 지붕을 만든다는 뜻으로, 흔히 물건이나 일을 부질없이 거듭함을 이르는 말”이라고 했다. 중국 육조시대의 송나라에 <세설신어>라는 책이 나왔는데, 후한 말기에서 동진 시기에 걸쳐 병사들의 말, 덕행, 문학 따위에 얽힌 숨은 이야기(일화)를 수록한 그 ‘문학편’에 ‘지붕 아래 지붕’(옥하가옥)이라는 말이 있다. 동진의 경중초가 그때의 서울 건강(지금의 난징=남경)의 아름다움을 기리어 지은 ‘양도의 글’은 서울 종잇값을 끌어올릴 만큼 평판이 좋았다. ‘양도’는 건강의 딴이름이다. 그러나 베스트셀러가 항상 명작인 것은 아니다. 사안은 “이것의 평판이 좋은 것은 그때 가장 두드러진 권력자 경량이 일가친척이어서였을 뿐이다. 실제는 ‘지붕 아래 지붕’(옥하가옥)으로 거의 선배의 작품을 흉내낸 것일 뿐, 옹졸하다”고 평했다. 그렇다면 이미 있는 지붕(작품) 아래에 그와 비슷한 지붕을 만든다는 것으로, 지금 우리가 쓰는 ‘지붕 위에 지붕’(옥상가옥)과는 겉이 다른 것 같지만 속은 그렇지도 않다. 위에 하나 더 만드나 아래 하나 더 만드나, 하나 더 만들기는 같다. 그리고 만드는 물건이나 일이 똑같아야지 다르면 문제가 다르다. 정재도/한말글연구회 회장
손발 놀림(일거수일투족) 한유(768~824)는 당나라 시인이며, 옛글을 다시 일으킨 선구자로 알려져 있는 산문(줄글: 수필·기행문·소설·희곡 따위) 작가다. 이 한유의 “과거 시험에 응할 때 보내는 글”이라는 것이 있다. 당나라 때에는 과거 시험을 보는 사람이 시험관에게 글을 보내서 그 역량을 알아 두게 하는 습관이 있었다. 한유의 이 글도 시험관에게 보낸 편지다. 그 내용은 대강 다음과 같다. “큰 바다나 큰 강 언저리에는 괴물이 살고 있다고 함. 그것은 물을 만난 때에는 비바람을 불러 하늘에까지 오르지만, 물 있는 곳에 이르지 못하면 말라빠져 천하의 웃음거리가 됨.” 결국, 자기는 보통 일반 사람이 아니고, 그 괴물이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실력자인 당신이 이 나의 궁상을 어여삐 여겨, 물 있는 곳까지 날라, 시험에 급제하게 해 줄 것을 바람. 그것은 당신에게는 ‘손발 한 번 놀리는 수고’에 지나지 않는 것임.” 이 글은 사방득이 편찬한 <문장궤범>에도 실려 있다. 이로써 알다시피, 이 ‘손발 놀림’(일거수일투족)이라는 말은 살짝 한 번 손발을 움직인 것일 뿐, “매우 작은 수고”라는 뜻으로 쓰이고 있다. 그런데 지금은 그것이 “그의 일거수일투족이 주목의 표적이 되어 있다.”는 양상이 되어 ‘손짓 발짓’과 같은 뜻으로 쓰이게 된 것 같다.(<상식백과>) 정재도/한말글연구회 회장
한 그물 싹쓸이(일망타진) ‘일망타진’이라는 말을 자주 듣는다. ‘범죄와의 전쟁’에 잘 나타난다. 이 말은 1000년쯤의 역사가 있다. 중국 송나라 제4대 황제 인종(재위 1022~1063) 때에는 뛰어난 인재들이 많았다. 그러나 그들은 사이가 좋지 않았다. 인종이 하송을 추밀사(군대 총사령관)로 임명하고, 그때 혁신파였던 한기와 범중엄을 추밀부사(부사령관)로 임명하고, 간관(임금에게 옳지 못한 일이나 잘못하는 일을 고치도록 말하는 벼슬)으로 구양수를 임명했다. 구양수가 하송을 무능하고 간사스럽다고 공격했다. 하송이 쫓겨나고 청렴강직한 두연이 갈음했다. 하송이 두연 들을 파벌을 만드는 무리라고 비난했다. 이에 맞서 구양수는 <붕당론>이라는 책을 써서 황제에게 바쳐 “한길을 함께 가는 군자들의 무리와, 이익만을 좇는 소인들의 무리는 구별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되받아쳤다. 하송은 머쓱하여 기회를 노리고 있었다. 그러자 두연의 사위 소순흠이 공금으로 신불에게 빌고 굿을 했다. 하송 무리와 한통속인 어사중승(검찰청 차관)으로 있는 왕공진이 재빨리 소순흠 무리를 탄핵하여 그 일당을 모조리 내쫓고 나서 “나, 한 그물로 싹 쓸어버렸다.”고 좋아했다. 이 이야기에서 남을 해치면 반드시 그 화를 입는다는 것을 알게 된다. 정재도/한말글연구회 회장
둘러대기 말(견백동이변) 〈중문대사전〉에서 ‘견백’을 찾아보면 “주의와 절조가 굳어서 변하지 않음”이라고 되어 있다. 이것은 <논어>에 있는 말이다. 그런데 그 ‘견백’이 엉뚱하게 쓰인 말이 있다. ‘견백동이’는 ‘둘러대기’고, ‘둘러대기 말’(견백동이변)이라는 것도 있는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전국시대 조나라 공손룡이 부르짖은 둘러대기(궤변). ‘견백’은 눈으로 돌을 볼 때에는 빛깔이 희다는 것은 알 수 있으나, 그것이 단단하다는 것은 알 수 없다. 손으로 돌을 만질 때에는 그것이 단단하다는 것은 알 수 있으나, 희다는 것은 알 수 없다. 따라서 단단흰돌(견백석)은 한꺼번에 이루어질 수 없는 개념이라고 하는 논법을 써서 옳음을 그름으로 나타내고, 같은 것을 다르다고 우기는 말재주. ‘동이’는 같은 것을 다르다 하고, 다른 것으로 하여금 같지 않으면 안 되게 하는 일이다. 곧 해오라기를 까마귀라 하고, 까마귀를 해오라기라고 하는 따위.” ‘흑백분명’이라는 말과는 정반대되는 말이다. 국립국어원 <표준사전>에서 ‘공손룡’을 찾아보면, “중국 전국시대 조나라 사상가(?B.C.320~?B.C.250). 자는 자병. ‘백마비마론’과 ‘견백동이’의 궤변으로 알려져 있다”라고 되어 있다. 정재도/한말글연구회 회장
범탄 힘발(기호지세) 중국 남북조시대에 북위가 동서로 갈라선 뒤 서기 557년에 서위의 우문각이 세운 나라 ‘북주’를 무너뜨리고 수나라를 세운 문제 양견(589~604)의 황후 독고씨는 사내같이 헌걸찬 사람이었다. 북주의 황제 선제가 죽고 나이 어린 정제가 황제 자리에 앉자, 양견이 북주의 궁중에 들어가 대권을 대행했다. 이때 독고씨가 남편인 양견에게 “대사(큰일)가 이미 그렇게 되었습니다. ‘범탄 힘발’(기호지세)입니다. 이제 내릴 수도 없습니다. 이 일을 힘쓸 수밖에요. 큰일, 곧 천하를 취한다는 모양새(형세)가 이미 이루어져 있습니다. 이것은 범의 등에 올라타 버린 모양새 같은 것으로서, 내리려고 해도 내리는 따위 짓은 되지 않으므로, 그 큰일을 밀어붙이십시오”라고 말했다. 중국 이십오사의 하나로, 당나라 때 위징 들(등)이 황제의 명을 따라 펴낸 수나라 정사(정통적인 역사 체계로 서술된 역사)인 <수서>에는 이것이 ‘짐승탄 힘발’(기수지세)로 되어 있다. 이 책이 엮어진 것은 수나라 때가 아니라 당나라 때이기 때문이다. 당나라 고조 이연의 할아버지가 이호이므로 호(범)자를 피하여 ‘호’를 ‘수’(짐승)라고 한 것이다. ‘범탄 힘발’은 우리가 ‘엎지른 물’이라고 하는 말과 비슷하다. 정재도/한말글연구회 회장
달팽이뿔 싸움(와각지쟁) <상식백과>에 “달팽이의 뿔 위에 있는 것 같은 만나라와 촉나라의 싸움. 다투어 얻으려고 하는 바가 잘고 시시한 것의 비유”가 ‘달팽이뿔 위의 싸움’이라고 했다. <장자> ‘칙양편’에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전한다. 위나라 혜왕(재위 기원전 369~기원전 319)이 제나라 위왕(재위 기원전 356~기원전 320)과 사이좋게 지내자고 굳게 약속을 했는데, 그 뒤 위왕이 약속을 어겨서, 자객을 보내 죽이려고 했다. 혜왕의 신하 공손연이 이 말을 듣고 당당히 군대를 파견하여 쳐야 한다 하고, 계자는 군대를 보내 백성을 괴롭혀서는 안 된다고 했다. 혜왕은 머뭇거렸다. 이를 본 대진인이 혜왕에게 “달팽이 왼쪽 뿔에는 촉나라가, 오른쪽 뿔에는 만나라가 있습니다. 언젠가 이 두 나라가 땅을 뺏으려고 싸웠습니다. 죽은 사람이 여러 만 명이었고, 도망치는 적군을 쫓아 보름 만에 되돌아왔습니다”라고 하니까, 혜왕이 “뭐야, 함부로 씨불이(지껄이기) 아니냐”고 하자, 대진인이 말을 이었다. “예, 그 ‘함부로 씨불이’의 알맹이를 보여 드리지요. 끝없는 우주 안의 나라들은 아주 작은 것입니다. 그 작은 나라 중에 위나라가 있고, 위나라 안에 서울이 있고, 그 서울 안에 임금님이 계십니다. 임금님과 달팽이 뿔 위의 나라와 얼마나 다를까요.” 정재도/한말글연구회 회장
우물 안 개구리(정중와) 〈후한서〉 ‘마원전’에 “정와·정저와: 우물 안 개구리, 견문이 좁은 사람의 비유. 세상 모르기”라는 말이 있다. <고사성어>에 ‘감정지와’가 있고, 우리 사전들에 ‘우물’이라는 낱말 그늘에 ‘우물 안 개구리’를 올리고, 그 한뜻말로 ‘감중지와, 정정와’ 들까지 올려놓았다. 일본 <상식백과>에 ‘우물 안 개구리’(정중와)가 자세히 소개되어 있다. 중국 전국시대의 사상가(?기원전 365~?기원전 270). 도가 사상의 중심인물로, 유교의 인위적인 예교를 부정하고, 자연으로 돌아가자는 자연철학을 부르짖은 사람인 ‘장자’가 지은 사상서인 <장자> ‘추수편’에 다음과 같은 빗댄 이야기(우화)가 있다. 황허의 신 하백이 처음으로 북해에 가서 그 넓고 큰 데에 놀라, 북해의 신 약에게 말했다. “나는 황허가 세계에서 가장 넓고 크다고 여기고 있었는데, 위에는 위가 있는 법인가 보오. 당신이 있는 이곳에 안 왔더라면 나는 도리를 아는 사람들의 웃음거리가 될 뻔했소.” 그랬더니 북해의 신 약이 말했다. “우물 안에 사는 개구리가 바다를 알지 못하는 것은 좁은 곳에 갇혀 있기 때문이오. 여름 벌레가 얼음을 모르는 것은 여름철밖에 모르기 때문이오. 본데(식견)가 좁은 인간에게 ‘도’를 말해도 모르는 것은 상식의 가르침에 묶여 있기 때문이오.” 정재도/한말글연구회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