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르다와 틀리다 사뭇 다른 말인데 요즘 너나없이 헷갈려 쓴다. 이는 국어사전 탓이 아니다. 사전들은 헷갈리게 풀이하지 않았다. 이것을 헷갈리도록 한 것은 내것을 팽개치고 남것만 좇아서 살아온 우리네 삶이지만, 국어교육 탓도 들추지 않을 수 없다. 국어교육이 줄곧 우리말의 노른자위인 토박이말을 제대로 가르치지 않고 엉뚱한 일에 매달려 왔기 때문이다. ‘다르다’는 드러나는 모습을 서로 견주어 풀이하는 그림씨 낱말이고, ‘틀리다’는 해놓은 일을 과녁에 맞추어 가늠하는 움직씨 낱말이다. “한 가지에서도 아롱이 조롱이가 열린다더니 같은 부모한테 난 언니 아우가 어찌 저리 다를까?” “아니, 어제 내가 다시 해놓은 계산에서도 틀린 데가 있었습니까?” 보다시피 ‘다르다’는 언니와 아우의 모습을 서로 견주면서 쓰고, ‘틀리다’는 해놓은 셈을 사실이라는 과녁에 맞추면서 썼다. 두 낱말이 헷갈리는 데는 까닭이 있다. 둘 다 견주기를 하기 때문이다. ‘다르다’도 견주기를 해서 나타나고, ‘틀리다’도 견주기를 해서 가려낸다. 그러나 ‘다르다’는 두 가지를 서로 견주어 나타나고, ‘틀리다’는 과녁이나 잣대와 견주어 드러난다. 아무런 잣대도 없이 두 가지를 나란히 견주면 ‘다르다’와 ‘같다’로 갈라지고, 어떤 과녁이나 잣대를 세워놓고 거기에 견주면 ‘틀리다’와 ‘맞다’로 가려진다. 이런 뜻가림을 내버리고 요즘은 덮어놓고 ‘틀리다’고만 한다. 그만큼 마음은 무뎌지고 삶도 거칠어진 것이다. 김수업/우리말교육대학원장
개보름 음력으로 그 달의 열닷새째 되는 날을 ‘보름’ 또는 ‘보름날’이라 부른다. 일 년에 열두 보름 중 대표적인 것이 정월 대보름과 팔월대보름이다.정월 대보름에는 새벽에 귀밝이술을 마시고 부럼을 깨물며 묵은나물과 오곡밥 따위를 먹는다. 팔월 대보름은 ‘한가위·추석’이라 부르는데, 햅쌀로 송편을 빚고 햇과일 따위의 음식을 장만하여 차례를 지낸다. 둘 다 명절이어서 선조들은 다른 날보다 정성스레 음식을 장만하여 배불리 먹었다. 정월 대보름과 관련된 말로 ‘개보름’이라는 말이 있는데, 큰사전에는 아직 오르지 않았다. “어허, 까딱했더라면 농민군들 보름이 개보름이 될 뻔했는디, 충청도 큰애기 덕분에 보름 한 번 걸게 쇠어 보겄네.”(송기숙 〈녹두장군〉) “게다가 농촌에까지 신정을 쇠어 봐라. 그야말로 대보름이 개보름이지?”(이문구 〈산 너머 남촌〉) “당신 안 가면 개보름 쇨까 싶어 그래?” 하고 퉁명스럽게 말했다.”(한승원 〈해신의 늪〉) ‘개보름’은 ‘남들이 다 잘 먹고 지내는 날에 변변히 먹지도 못하고 지내게 된 것’을 비유해 이르는 말이다. 지난날, 정월 대보름날에 개한테 음식을 먹이면 그해에 파리가 끓는다고 여겨 개를 매어 두고 음식을 먹이지 않던 풍습에서 나온 말이다. 이번 팔월대보름은 윤칠월로 늦들어 햇곡식 햇과일이 풍성한 한가위였다. 한용운/겨레말큰사전 편찬부실장
가을하다 들판에 가을이 그득하다. 이제 가을걷이를 할 때다. 오곡 가운데 으뜸인 벼를 거둬들이고 콩을 타작하는 철이 된 것이다. 시장에는 제철 사과와 배, 밤이 그득하고, 단감과 통통하게 살 오른 대추들도 나와 있다. ‘추수’(秋收)의 의미를 지니는 고유어가 ‘가을’이다. ‘가을걷이’를 줄여서 ‘가을’이라고 하고, ‘가을걷이하다’는 줄여서 ‘가을하다’로 말한다. ‘가을’의 중세국어 형태는 이다. 고장말에서 ‘가실하다’를 많이 쓰는데, 이는 옛말 흔적이 많이 살아 있는 형태다. 전날엔 받침 ㅀ의 ㅎ소리를 살려 ‘가을카리’도 인정해 썼으나 요즘엔 비표준어로 친다. 준말 ‘갈카리’도 그렇다. 그러나 이 역시 고장말들엔 살아 쓰인다. ‘가을하다’는 ‘가을일하다, 가을걷이하다, 가을거두다, 가을걷어들이다, 가을추수하다’ 등으로도 쓰는데, 이때 ‘가을’은 지역에 따라 ‘가실, 갈’로도 쓴다. ‘가을하다’는 경기도를 비롯하여 전국적으로 쓰이고, 준말은 ‘갈하다’다. ‘가실하다’는 충청 이남에서 많이 쓰는데, 제주도에서는 ‘ㄱㆍ실하다’로 쓴다. 북쪽도 거의 비슷하게 사용하고 있다. 우리말인 ‘가을일’은 ‘가을에 곡식을 거두어들이는 일’이며, ‘가을일하다’는 동사가 된다. ‘가을걷이’는 ‘가을에 곡식을 거두어들임’이라는 뜻이다. ‘가을’은 ‘익은 곡식’을 의미하므로 ‘가을을 걷다’는 표현에서 ‘가을걷이’가 나온 것이다. 고장말에서는 한자어인 ‘추수하다’는 별로 쓰지 않고 ‘가을일하다, 가을걷이하다, 가을하다’를 많이 쓴다. 이태영/전북대 교수·국어학 ***** 윤영환님에 의해서 게시물 카테고리변경되었습니다 (2008-10-14 00:05)
막바로 같거나 유사한 형태가 겹쳐 만들어진 합성어를 ‘첩어’, 또는 ‘반복 합성어’라 한다. 이런 첩어에는 ‘꼭꼭’ ‘바로바로’, ‘차츰차츰’처럼 완전히 동일한 꼴이 반복된 짜임이 있는가 하면, ‘머나멀다’, ‘좁디좁다’처럼 형태의 일부가 다른 것도 있다. 단독으로 쓰일 때보다 겹짜이면 그 의미가 뚜렷해지거나 강조되는 특징을 지닌다. 한편, 첩어는 아니지만 비슷한 의미를 지닌 형태가 반복되어 그 의미가 더욱 뚜렷해지는 합성어도 있다. ‘곧바로’, ‘막바로’ 등이 그것인데, ‘곧바로’는 큰사전에 올랐지만 ‘막바로’는 찾아볼 수 없다. “여주에는 당도하였지만, 남의 눈도 있고 하여 막바로 창골에 들어갈 수는 없었다.”(황석영 <장길산>) “하지만 이번에도 … 의견을 물어 본다거나 하는 일 없이, 막바로 통고와 다름없는 방식을 취했다.”(최일남 <누님의 겨울>) “그러자 … 태인댁의 시선이 막바로 부월이한테 돌려졌다.”(윤흥길 <완장>) ‘막바로’는 ‘(지체 없이) 지금’의 뜻을 지닌 ‘막’과 ‘그 즉시’의 뜻을 지닌 ‘바로’가 합쳐서 만들어진 말이다. ‘막’과 ‘바로’의 비슷한 의미가 반복되면서 ‘막’이나 ‘바로’가 단독으로 쓰일 때보다 ‘강조’된 뜻이 생기게 되었고, 더불어 이와 유사한 다른 의미도 더 생기게 되었다. 그 결과 ‘막바로’는 ‘바로 그 즉시에’, ‘다른 곳을 거치거나 들르지 아니하고’, ‘멀지 아니한 바로 가까이에’의 뜻을 나타내게 되었다. 한용운/겨레말큰사전 편찬부실장
알바 ‘알바’는 독일어 ‘아르바이트’(Arbeit)의 준말이다. 아르바이트란 말이 처음 들어왔을 때 ‘부업’으로 순화해 쓰자고 했다. 그런데 최근 ‘아르바이트’가 ‘부업’보다 세곱절이나 많이 쓰이는 것으로 나타났다. ‘아르바이트’가 ‘주업이 아닌 부업’의 의미가 아니라 ‘등록금이나 용돈을 벌고자 학생들이 틈을 내어 하는 일’의 뜻으로 대학가에서 빠르게 퍼져나간 것이다. 그런데 인터넷상에서 ‘알바’는 이런 본디뜻과 다른 뜻으로도 쓰인다. 가상공간에서 ‘알바’는 ‘대가를 받고 인터넷상에서 여론몰이를 하는 사람’을 뜻한다. 인터넷에서는 ‘알바’처럼 여러 뜻으로 쓰이는 말들이 꽤 있다. ‘므흣하다’는 “너희가 사이좋게 지내는 걸 보니 므흣하구나”에서는 흐뭇하다는 뜻이지만 “밤이 되면 이 사이트에 므흣한 사진들이 종종 올라와요”에서는 야한 상상을 불러일으킨다는 뜻이다. ‘아?d?d하다’나 ‘즐’과 같은 말은 정반대 뜻으로도 쓰인다. 한 인터넷 사이트의 오타에서 출발했다는 ‘아?d?d하다’는 기분이 좋다는 말로도 쓰지만 ‘어이없다’의 뜻으로도 쓰인다. ‘즐’은 ‘즐겁다’에서 출발해 ‘즐감·즐팅’ 등에서 긍정적 의미로 쓰였지만 최근에는 ‘즐!’ 하면 상대 의견에 동의할 수 없다거나 더 대화하기 싫으니 빠져 달라는 말이다. 이처럼 인터넷 새말들은 처음 뜻과 다르게 부정적인 쪽으로 의미가 변하고 있다. 인터넷의 익명성과 비대면성 탓에 감정을 그대로 드러내며 상대를 맘놓고 비난하는 풍조가 자리잡은 탓으로 보인다. 김한샘/국립국어원 연구사
벵갈말 언어 대국, 인도 언어 중에 우리에겐 좀 낯설지만 인구 8%가 쓰는 벵갈말이 있다. 동부의 방글라주에서 주로 쓰며, 또한 방글라데시의 국어이기도 하다. 2억2천만명 가량이 쓰는데, 이는 아랍말 사용 인구수와 비슷하여 세계 5~6위를 다툰다. 벵갈말은 인도유럽어족의 한 갈래로 그 뿌리는 산스크리트이다. 산스크리트에서 갈라진 다른 말들보다 문법체계가 많이 단순해져 언뜻 뿌리가 다른 말처럼 보인다. 특히 우리말하고 비슷한 점이 있어, 우리말과 계통을 견주어 보려는 경우도 있다. 어순이 우리말과 같아서 주어 다음에 목적어가 놓이고 그 뒤에 서술어가 온다. 보조용언 구성도 매우 흡사하다. 우리말의 ‘-어 보다, -어 주다, -어 버리다, -고 싶다, -어야 되다’와 같은 표현도 벵갈말에 똑같이 나타난다. 명사에 조사가 붙어서 격을 나타내는 방식도 비슷한데, 그러나 벵갈말에는 관형격조사, 목적격조사, 처격조사만 있고 주격조사는 없다. 목적격조사는 사람을 나타내는 명사 뒤에만 붙는 특징도 있다. 이런 겉모습만 보고서 벵갈말을 우리말과 계통이 같다는 주장을 듣게 되는데, 비교언어학 방법을 엄밀히 적용해 보면 전혀 그렇지 않다. 우연히 얼굴이 닮은 두 사람을 따져 보지 않고 형제일 것이라고 말하는 것과 같다. 벵갈말로 된 문학작품 가운데는 세계적인 것들이 많다. 우리나라를 ‘동방의 등불’이라고 한 노벨문학상 수상자 타고르가 대표적인 시인이다. 권재일/서울대 교수·언어학
값과 삯 ‘값’은 남 것을 내 것으로 만들 적에 내놓는 값어치다. 거꾸로, 내가 가진 것을 남에게 주고 받아내는 값어치기도 하다. 값을 받고 팔거나 값을 치르고 사거나 하는 노릇이 잦아지면서 때와 곳을 마련해 놓고 사람들이 모여서 팔고 샀다. 그 때가 장날이고, 그 곳이 장터다. 닷새 만에 열리는 장날에는 팔려는 것을 내놓는 장수와 사려는 것을 찾는 손님들로 장터가 시끌벅적하다. 값을 올리려는 장수와 값을 낮추려는 손님이 흥정을 할 수 있도록 미리 내놓는 값의 말미가 ‘금’이다. 금을 미리 내놓는 노릇을 ‘금을 띄운다’ 하고, 그렇게 띄워 놓은 금이 ‘뜬금’이다. 뜬금이 있어야 흥정을 거쳐서 값을 매듭지어 거래를 하는데, 금도 띄우지 않고 거래를 매듭지으려 들면 ‘뜬금없는’ 짓이 된다. ‘삯’은 내 것으로 만들며 치르는 ‘값’과는 달리 남 것을 얼마간 빌려 쓰는 데 내놓는 값어치다. ‘찻삯’이나 ‘뱃삯’은 차나 배를 타는 데 치르는 값어치, ‘찻값’이나 ‘뱃값’은 차나 배를 사는 데 치르는 값어치다. 삯에서 종요로운 것은 ‘품삯’이다. ‘품’이란 사람이 지닌 힘과 슬기의 값어치고, 그것을 빌려 쓰고 내는 것이 ‘품삯’이다. 품은 빌려주고 삯을 받기도 하지만 되돌려 받는 ‘품앗이’가 본디 제격이었다. 가진 것이 없어서 품을 팔아 먹고사는 사람을 ‘품팔이’라 하는데, 품을 빌리지 않고 사려면 ‘품삯’이 아니라 ‘품값’을 치러야 한다. 요즘 세상은 거의 모든 사람이 품을 팔아야 살게 되어서 ‘품값’ 때문에 세상이 온통 시끄럽다. 김수업/우리말교육대학원장
웃음 외국인들은 우리나라 사람들의 표정이 굳어 있으며 잘 웃지 않는다고들 말한다. 그러나 웃는 소리나 모습과 관련된 말에서 외국말들이 우리말을 따라올 수 없고, 또 무척 세분화돼 있다. 밝고 해맑게 웃는 모습만 해도 ‘방싯(빵싯), 방글(빵글), 방긋(빵끗), 방실(빵실), 생글(쌩글), 생긋생긋(쌩긋), 생긋방긋(쌩끗빵끗), 싱글벙글(씽글뻥글) 등 숱하고, 참으면서 웃는 소리·시늉으로 ‘키득키득, 킥, 킥킥, 비시시, 배시시’ 등 헤아리기 어렵다. 고까워하는 웃음·시늉으로 ‘샐쭉, 실쭉’ 등이, 그늘지게 웃는 ‘킬킬, 깰깰, 으흐흐, 후후’ 등 손꼽기가 숨가쁘고, ‘하하, 껄껄’ ‘호호’, ‘깔깔’ 등 남녀 구별이 있으며, 여럿이 웃는 소리로 ‘까르르, 와그르르’가 있고, 헛웃음·비웃음·눈웃음 …들도 있으니 ‘웃음’을 주제로 숱한 논문이 나올 법하다. 대소·폭소·미소 … 따위 웃음과 관련한 한자말도 적잖은데 재미가 적다. “산만하게 보일 수 있는 씨름부원들의 요절복통 캐릭터를 깔끔한 마름질로 정리한 것도 높이 살만하다.”(ㅎ일보 2006.8.31) “그 당황하고 혼란한 꼴은 요절복통할 지경이었다.”(이병주 〈지리산〉) ‘요절복통’(腰折腹痛)은 ‘허리가 끊어질 듯하고 배가 아플 정도로 몹시 웃음’을 뜻하는데, ‘포복절도’와 비슷한 말이다. 일부 국어사전에서 ‘요절복통하다’도 보인다. 우리말에 웃음을 나타내는 말이 무척 많은데, 실제 살아가는 현실에서 자주 웃을 수 있는 일들이 많았으면 더할 나위가 없겠다. 한용운/겨레말큰사전 편찬부실장
언어 대국, 인도 우리나라처럼 한 언어만 공용어로 쓰는 나라가 있는가 하면 여러 언어를 공용어로 쓰는 나라도 꽤 많다. 인도는 카스트제에 따라 계층방언이 발달된 데로 유명하지만, 민족과 지역에 따라 여러 언어가 함께 쓰인다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인도에서는 적어도 200~300여 언어가 쓰인다. “물은 닷새마다 바뀌고 말은 스무날마다 바뀐다”고 할 정도다. 인도에서 쓰이는 말은 대체로 인도유럽어족, 드라비다어족, 중국-티베트어족, 대양어족에 드는데, 오랜 세월 서로 접촉하며 영향을 끼쳤다. 그 중 인도유럽어족이 전체 73%를 차지하고, 드라비다어족은 24%를 차지한다. 인도의 고전어 산스크리트는 인도유럽어족의 아주 오래 된 옛말이기도 하다. 인도 헌법은 수많은 언어 중에서 18가지를 ‘인도 언어’로 지정하여 주마다 선택하여 공용어로 쓰도록 했다. 그 가운데 인도유럽어족에 드는 힌디어가 전체 국민 40%가 모어로 쓰는 가장 큰 언어다. 힌디어는 영어와 함께 국가 공용어다. 영어는 영국 식민지 때부터 지금까지 정치·문화·교육 언어 지위를 유지한다. 인도 서부 지역에서 쓰이는 구자라트말이 있는데, 간디의 고향말이기도 하다. 이 말의 글자가 우리 한글과 비슷하다 하여 한때 관심을 모은 적이 있었다. 그러나 그냥 모습만 비슷할 뿐 한글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음이 밝혀졌다. 권재일/서울대 교수·언어학
된장녀 “그 사람 참 된장처럼 구수하네”라고 하면 마음이 넉넉하고 푸근하다는 칭찬이다. 그런데 단지 ‘여(녀)’라는 말을 덧붙였을 뿐인데 ‘된장녀’는 젊은 여성 일부를 부정적으로 일컫는 말이 되었다. 일단 말이 퍼지기 시작하니 유행에 민감한 신문·방송이나 정치권에서도 입방아에 올린다. 새말을 만드는 방식도 유행한다. 최근 ‘-족(族), -녀(女), -남(男)’ 등을 붙인 말들이 눈에 띄게 늘었다. 전달하려는 핵심 의미를 나타내는 말 뒤에 ‘-족, -녀, -남’만 붙이면 그런 사람·여자·남자라는 말이 쉽게 만들어지니 그 방식도 유행하는 듯하다. 이런 말은 짝이 되는 말이 금방 생겨난다. ‘된장녀’와 비슷한 의미로 짝이 되는 ‘된장남’, 반대되는 의미로 짝이 되는 ‘고추장남’이 함께 돌고 있고, 몸을 격렬하게 떨면서 춤을 추는 ‘떨녀’가 등장하자 ‘떨남’도 나타났다. 쉽게 말을 만들었다고 하여 반드시 그 쓰임이나 뜻까지 이해하기 쉬운 것은 아니다. ‘몸보신족’이 건강에 좋은 음식에 관심이 많은 사람들을 일컫는다는 것을 금방 알 수 있지만 ‘면창족’이 퇴직 압력을 받으면서 별다른 업무가 없어 창밖만 바라보는 회사 임원급 사람을 뜻한다는 것을 금방 알아내기는 어렵다. ‘된장녀’라는 말만 보고 서양식 생활 방식을 동경하는 사치스런 젊은 여성을 가리키는 말이라는 것을 추론하기 어려운 것도 그렇다. 뜻을 알기 어려운 새말보다 부려쓰기 좋은 쉬운 새말이 많은 이들에게 오래 쓰이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김한샘/국립국어원 연구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