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 ‘고양이 앞에 쥐 꼴’, ‘고양이 목에 방울 달기’, ‘고양이에게 생선가게를 맡긴 격’ 등은 고양이를 소재로 한 대표적인 속담이다. ‘고양이’(猫)는 15세기 문헌에서는 ‘괴’로 나타난다. 이 ‘괴’에 ‘작은 것’을 뜻하는 뒷가지 ‘-앙이’가 연결되어 ‘괴양이>고양이’가 된다. ‘고양이’는 17세기에 보이며 19세기부터 많이 썼다. ‘고양이’는 방언에서 매우 다양하게 쓰인다. 그 부류를 크게 나누어 보면 ‘괴·고양이·고니’로 나눌 수 있다. ‘괴’는 중세국어의 형태를 쓰는 것으로 지역에 따라 ‘고이·괴·궤·귀’로 발음한다. ‘고양이’는 ‘고앵이·고얭이·귀앵이·귀얭이·괴양이·괴앵이·광이·괭이·괘이·궤이’로 발음한다. ‘고니’(鬼尼)는 12세기 문헌인 <계림유사>에 보이는 어휘로 ‘고니’에 뒷가지 ‘-앙이’가 연결되어 ‘고냉이·고넹이·고냥이·꼬냥이·고넁이·개냉이·고내기·괘내기·귀내기·괴대기’로 발음한다. 소설 <토지>의 “니내 할 것 없이 사우는 고내기 새끼, 다 마찬가지 아니겄소”란 문장에서 이 방언을 볼 수 있다. 그 밖에도 ‘새깨미·살찡이’ 등을 쓰고 있다. 북쪽에서는 위에서 제시한 것 외에도 ‘고내·고냬·고내이·고애·고얘·공애·공얘’ 등의 발음을 사용하고 있다. ‘고양이’는 매우 다양한 발음으로 고장에서 쓰고 있다. 마치 오늘날 우리 사회의 다양한 모습을 보는 듯하다. “약빠른 고양이 밤눈 어둡다”는 속담이 떠오른다. 이태영/전북대 교수·국어학
울과 담 “울도 담도 없는 집에 시집 삼 년을 살고 나니 …” 이렇게 비롯하는 ‘진주난봉가’는 지난 시절 우리 아낙네들의 서럽고도 애달픈 삶을 그림처럼 노래한다. ‘울’이나 ‘담’이나 모두 삶의 터전을 지키고 막아주자는 노릇이다. 이것들이 있어야 그 안에서 마음 놓고 쉬고 놀고 일하며 살아갈 수가 있다. 울도 담도 없다는 것은 믿고 기대고 숨을 데가 없이 내동댕이쳐진 신세라는 뜻이다. ‘울’은 집이나 논밭을 지키느라고 둘러막는 것이다. ‘바자’나 ‘타리’로 만드는 것 둘이 있다. ‘바자’는 대·갈대·수수깡·싸리 따위를 길이가 가지런하도록 가다듬어 엮거나 결어서 만든다. 드문드문 박아둔 ‘울대’라고 부르는 말뚝에다 바자를 붙들어 매면 ‘울바자’가 된다. ‘타리’는 나무를 심어 기르거나 베어다 세워서 만든다. 탱자나무·잔솔나무·동백나무 같은 나무를 심어서 기르면 저절로 자라서 ‘생울타리’가 되고, 알맞게 자란 나무를 베거나 가지를 쳐서 세우고 울대 사이로 새끼줄로 엮어서 묶으면 그냥 ‘울타리’가 된다. ‘담’은 논밭 가를 막는 데는 쓰지 않고, 오직 집을 지키느라고 둘러막는 것이다. 흙에다 짚 같은 검불을 섞어서 짓이겨 쌓는 흙담, 흙과 돌을 층층이 번갈아 섞어서 쌓는 흙돌담, 오직 돌만으로 쌓는 돌담이 있다. 흙담·흙돌담은 반드시 위에 짚으로 이엉을 이거나 기와로 덮어서 눈비를 막아야 한다. 그러니까 눈비가 많고 비바람이 무서운 고장에서는 돌담이 아니면 견디기가 어렵다. 김수업/우리말교육대학원장
떨려나다 ‘생활고, 생활난, 불경기 …’ 같은 말들, 곧 외환위기 이후 일자리가 줄고, 그나마 직장 다니던 사람들도 갖가지 이유로 물러난 이들이 늘면서 살림살이가 어려움을 뜻하는 말들이 자주 쓰인다. ‘실업’은 ‘일할 뜻도 힘도 있는 사람이 일자리를 잃거나 일할 기회를 얻지 못하는 상태’를 이른다. 스스로 직장에서 물러나는 상황은 드물므로 ‘직장에서 물러나는 상황’과 관련된 고유어에는 피동접사 ‘-리-, -기-’가 결합된 말이 많다. ‘내몰리다, 잘리다, 쫓겨나다’ 등이 그렇다. ‘면직당하다, 모가지 당하다’처럼 ‘당하다’가 붙어 쓰이기도 한다. ‘내몰리다’, ‘잘리다’와 비슷한 말이면서 큰사전에 오르지 않은 낱말로 ‘떨려나다’가 있다. “불경기로 말미암아 직공을 추리는 사품에 한몫 끼어 떨려나고 말았습니다.”(김유정 <아기>) “그들이 미군 부대에서 떨려나 몇 군데 한국 기관의 말단 노무직을 전전하다가 ….”(박완서 <이별의 김포공항>) “그들은 결국 뭇매에 쫓겨나듯 그 공사판에서 떨려나고 말았던 것이다.”(이문열 <사람의 아들>) 여기서 ‘떨려나다’는 ‘어떤 장소나 직위에서 내쫓김을 당하다’를 뜻한다. ‘스스로 물러남’의 뜻으로 ‘퇴임’, ‘퇴직’이라는 말을 쓰는데, 외환위기 전후로 ‘희망퇴직’이라는 해괴한 말이 쓰인다. 대부분이 어쩔 수 없이 물러나는 상황인데, ‘희망’과 ‘퇴직’이라는 말을 붙여 상황을 왜곡하는 말의 하나다. 한용운/겨레말큰사전 편찬부실장
말다듬기 “‘나이타’가 뭔지 아십니까?” 성인들이 듣는 강의에서 이렇게 물었을 때 아는 이가 없는 걸 보면 이 말은 사라진 말임이 분명하다. ‘나이타’는 프로야구가 처음 생겼을 때 밤에 하는 경기를 일컫는 말이었다. 일본식 야구말인 이 말이 방송을 타자 시청자들이 항의했고 그 대신 ‘야간 경기’라는 말을 쓰기 시작했다. 새말은 이렇게 언중의 필요 따라 자연스레 생겨나는 게 바람직하다. 그런데 언중들이 새 물건과 함께 개념이나 외국어가 따라 흘러들 때 이에 해당하는 새로운 우리말을 만드는 게 쉽지 않고, 또 만들어도 두루 쓰이는 경우는 드물다. 국립국어원에서 무분별하게 쓰이는 외국어 어휘를 우리말로 바꾸고자 노력하고 있으나 만들어진 말의 전파가 쉽지 않다. 모두가 함께하는 우리말 다듬기 사이트(malteo.net)를 통해 언중과 함께 만들어낸 말들 중에 널리 쓰이는 새말은 그림말·댓글·누리꾼·대중명품·경로도우미 등 소수에 불과하다. 정착에 성공한 새말과 실패한 말들의 면면을 보면 앞으로 새말을 만들 때 어떤 점에 유의해야 할지가 눈에 보인다. 우선 말의 길이가 본디 말보다 길면 성공하기 어렵다. 유행어 ‘유시시’(UCC)를 ‘손수제작물’로 바꿨는데 뜻은 살렸지만 말이 길어 잘 쓰이지 않는다. 이미지 문제도 있다. ‘웰빙’을 다듬은 ‘참살이’는 ‘참살’(慘殺)이라는 부정적 의미가 떠오른다는 이도 있으니, 말다듬기가 쉽지 않은 일임을 절감한다. 모쪼록 여러분의 적극적인 참여를 바란다. 김한샘/국립국어원 연구사
말소리의 억양 우리는 낯선 사람이 하는 말을 듣고 그 사람의 고장을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다. 독특하게 쓰는 낱말을 통해서도 알 수 있지만, 대개는 말씨에 나타나는 억양으로 알 수 있다. 억양이란 문장에 얹히는 소리의 높낮이를 말하는데 억양은 그 말의 특징을 구별해 주는 구실을 한다. 억양을 통해 사투리를 분간할 수 있는 것은 우리말뿐만 아니라 여러 말에서도 마찬가지다. 영어에서 영국영어, 미국영어를 분간하고, 미국영어 가운데서도 인종간의 언어 차이를 분간하는 데 억양이 그 몫을 한다. 그런데 억양은 문장의 문법 기능을 구별하는 데도 쓰인다. 우리말에서 보면, 똑같은 문장을 두고 끝 억양을 올리느냐 내리느냐에 따라 문법 기능이 달라진다. ‘이 책 읽었어요’를 끝을 내려 말하면 ‘읽었다’는 서술의 뜻이고, 끝을 올려 말하면 ‘읽었느냐’란 의문의 뜻이다. 영어에서도 ‘You are reading the book’을 올려 발음하면 묻는 문장이 된다. 대부분 언어에서 서술문은 문장 끝에 내림 억양이 놓이고 의문문은 문장 끝에 올림 억양이 놓인다. 문장이 아니더라도 한 낱말로 된 말도막도 억양 따라 뜻이 구별되는 경우가 많다. 영어 ‘What’은, 억양을 올리면 앞에 한 말을 되풀이해 달라는 요구이며, 내리면 내가 잘 듣고 있다는 뜻이고, 높은소리로 말하면 절망과 불신을 나타낸다. 이처럼 억양은 모든 언어에서 말씨의 특징을 나타내기도 하고, 문법적 기능을 구별해 주기도 한다. 권재일/서울대 교수·언어학
쇠죽 겨울을 농한기라고 하지만 한편으로 일손이 바쁠 때가 있다. 소를 먹이고자 겨울 양식인 여물을 장만해야 한다. 겨울에 소가 가장 좋아하는 여물은 벼를 거두고 남은 짚이다. ‘여물’은 마소를 먹이려고 말려서 썬 짚이나 마른풀이다. 사전에는 ‘소여물, 말여물’이 나온다. 벼를 베고 난 논에 짚을 뭉친 짚동·짚뭇이 놓여 있는데 이것이 바로 여물감들이다. ‘쇠죽’은 소먹이로 짚·콩·풀 따위를 섞어 끓인 죽이다. 쇠죽을 끓일 때 넣는 쌀겨는 ‘쌀을 찧을 때 나오는 고운 속겨’인데 쇠죽을 죽처럼 만들어준다. 콩을 넣는 것은 단백질을 공급하기 위해서다. ‘쇠죽’은 지역에 따라 ‘소죽·세죽·쇠죽·시죽’으로 발음하는데, 전국적으로 고루 분포되어 있다. 제주도에서는 ‘쉐죽·쉐석’이라고도 한다. ‘쇠죽’은 복합어로 ‘소/쇠(牛) + 죽(粥)’의 구조를 가지고 있다. 또한 ‘쇠물·세물·소물·쇠물·시물’이라고도 하는데, ‘쇠물’은 ‘쇠여물’을 줄여서 말한 것이다. 북쪽에서는 ‘쉐머리·쉐모리·쉐어리’라고 발음한다. 쇠죽을 끓일 때, 작두로 짚을 썰어 ‘쌀겨, 콩’과 함께 가마솥에 넣은 뒤, 음식물 찌꺼기가 담긴 구정물을 넣는다. 다 삶고 나서 나무로 만든 쇠죽바가지로 떠다가 구유에 넣어주면 뜨거운 김이 무럭무럭 나는 쇠죽을 먹으려고 긴 혀를 날름거리면서 소가 다가온다. 소가 쇠죽을 먹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구수한 냄새를 느낄 수 있다. 겨울이면 생각나는 시골집 풍경이다. 이태영/전북대 교수·국어학 ***** 윤영환님에 의해서 게시물 카테고리변경되었습니다 (2008-10-14 00:05)
먹거리와 먹을거리 ‘먹거리’는 세계식량기구에서 일하던 분이 1970년대에 영어 ‘food’처럼 사람이 먹을 수 있는 모든 것을 싸잡는 우리말이 없어 애태우다 찾아낸 낱말이다. 곡절을 거쳐 꽤 널리 쓰였는데, 90년대 우리말을 남달리 사랑하며 깨끗한 우리말을 살리려 애쓰던 분이 마땅찮다고 하자 ‘먹을거리’가 나타나 요즘은 두 말이 겨루고 있는 듯하다. ‘먹거리’가 못마땅하다는 까닭은 이름없는 백성이 널리 쓰는 낱말이 아니라는 것인데, 한때 전문 학회에서도 우리 조어법에 맞지 않는 말이라고 했다. 이름없는 백성이 널리 쓰느냐 아니냐와 우리 조어법에 맞느냐 아니냐는 둘이 아니라 하나다. 이름없는 백성이 두루 쓰면 조어법에 맞는 것이고 이름없는 백성이 두루 쓰지 않으면 조어법에 맞지 않기 때문이다. ‘먹거리’는 움직씨 ‘먹다’의 몸통 ‘먹’에 이름씨 ‘거리’가 붙은 말인데, 이런 조어법은 백성이 즐겨 써 왔다. ‘먹다’의 몸통 ‘먹’에 이름씨가 붙은 낱말로도 ‘먹보·먹새·먹성·먹쇠 …’ 들이 있다. ‘썩다’의 몸통 ‘썩’에 이름씨가 붙은 ‘썩돌·썩바가지·썩바람·썩살·썩새 …’가 있고, ‘꺾다’의 몸통 ‘꺾’에 이름씨가 붙은 ‘꺾낫·꺾쇠·꺾자·꺾창’도 있고, ‘막다’의 몸통 ‘막’에 이름씨가 붙은 ‘막내·막둥이·막말·막매듭·막물·막손·막차·막참·막창·막판’도 있다. 이 밖에도 널리 쓰이는 낱말로 ‘덮개·덮밥·솟대’, 마침내 ‘막가파’ 같은 낱말도 있다. 김수업/우리말교육대학원장
헛이름 우리말에서 ‘헛’은 일부 명사·동사 앞에 붙어 새 말을 만드는 접두사로 쓰인다. ‘헛걸음·헛고생·헛소문’은 명사 앞에, ‘헛디디다·헛보다·헛살다’는 동사 앞에 ‘헛’이 결합된 말이다. 여기서 ‘헛’은 ‘허’(虛)에 사이시옷이 결합된 꼴인데, 뒷말에 ‘이유 없는’, ‘보람 없는’, ‘잘못된’ 등의 뜻을 더한다. 따라서 ‘헛걱정’은 ‘쓸데없이 하는 걱정’, ‘헛고생’은 ‘보람없이 하는 고생’이며, ‘헛소문’은 ‘근거없이 떠도는 잘못된 소문’이란 뜻이 된다. 이런 ‘헛’이 결합된 말이면서 큰사전에 오르지 않은 말로 ‘헛이름’이 있다. “그는 헛이름만 높았지 훌륭한 장수라 할 수 없다.”(박종화 〈임진왜란〉) “나는 ○○학파라는 것이 헛이름은 아니라고 봅니다.”(한경, 2004.1.) “거룩하다는 이름도 구하지 말고 재물도 구하지 말고 영화스러운 것도 구하지 말고 그렁저렁 인연을 따라 한세상을 지내다가 옷이 해지거든 거듭거듭 기워 입고 양식이 없거든 가끔가끔 구하여 먹을지로다. 턱 밑에 세 마디 기운이 끊어지면 문득 송장이요 죽은 후에 헛이름뿐이다. 한낱 허황된 몸이 며칠이나 살 것인데 쓸데없는 일을 하느라고 내 마음을 깜깜하게 하여 공부하기를 잊어버리리요.”(경허 법어, 석명정 역 〈무심〉) ‘헛이름’은 ‘알려진 명성에 비해 보잘 것 없는 이름’을 뜻한다. 허명(虛名)과 같은 말이다. 경허 법어는 ‘헛이름’을 들추어 사전적인 뜻 외의 가르침을 준다. 한용운/겨레말큰사전 편찬부실장
말소리의 높낮이 우리는 같은 말소리라도 높은소리로 낼 수도 있고 낮은소리로 발음할 수도 있다. 그런데 세계 언어 가운데는 같은 소리를 높은소리로 내는 말과 낮은소리로 내는 말이 서로 다른 뜻으로 쓰이는 경우가 있다. 아프리카 가나말에는 높은소리와 낮은소리가 구별되어 쓰인다. [papa]라는 말을 살펴보자. 앞의 [pa]를 높게 내면 ‘훌륭한’이라는 뜻이 된다. 뒤의 [pa]를 높게 내면 ‘아버지’라는 뜻이 된다. 그런데 두 소리 모두 낮게 내면 ‘종려나뭇잎 부채’를 뜻한다. 이처럼 말소리의 높낮이에 따라 서로 다른 낱말이 된다. 이번에는 높은소리, 낮은소리에다 가운뎃소리까지 구별되어 세 단계로 쓰이는 말을 살펴보자. 나이지리아말에서 [kan]을 높은소리로 내면 ‘깨뜨리다’, 가운뎃소리로 내면 ‘맛이 시다’, 낮은소리로 내면 ‘도착하다’라는 뜻이 된다. 이처럼 높낮이가 낱말의 뜻을 구별해 주는데, 그 가운데 대표적인 말이 바로 이웃 중국말이다. 중국말에는 무려 네 가지 높낮이가 구별된다. 따라서 중국말로 대화할 때는 높낮이 발음을 정확하게 하지 않으면 뜻이 통하지 않는다. 우리말은 어떨까? 옛말에는 이런 높낮이 구별이 있었지만, 지금은 일부 고장말을 제외하고는 사라졌다. 15세기에 ‘꽃’은 낮은소리였고, ‘풀’은 높은소리였고, ‘별’은 낮았다가 높아가는 소리였다. 그러나 요즘은 ‘꽃·풀’은 짧은소리로, ‘별’은 긴소리로 바뀌었다. 권재일/서울대 교수·언어학
‘오빠 부대’ ‘오빠 부대’를 유행시킨 이는 가수 조용필씨가 아닌가 한다. 굳이 설명이 필요 없는 ‘오빠 부대’라는 말도 이제 세월의 뒤편으로 사라져 간다. ‘비 오빠 부대, 동방신기 오빠 부대’라는 말은 쓰이지 않는다. 요즘 등장한 ‘비빠, 동방빠’ 등의 새말에는 비난하는 태도가 드러난다. 여기서 ‘-빠’는 ‘오빠’의 뒷글자를 딴 말인데, 어린 여자가 손위 남자를 정답게 이른다는 뜻은 사라지고 어떤 대상을 맹목으로 지지하는 사람을 속되게 이르는 말이 된 것이다. ‘오빠’라는 말에 담긴 남성과 여성의 관계도 허물어졌다. 국가 대표팀을 열성적으로 응원하여 애매한 판정이 있었을 때 무조건 대표팀의 편을 드는 ‘국빠’나 일본 문화를 숭상하는 이들을 가리키는 ‘일빠’, 무조건 황우석 교수를 지지하는 ‘황빠’ 등의 새말은 젊은 여성들이 아니라 그런 특성을 지닌 사람들을 뭉뚱그려 일컫는다. 무조건 지지하고 응원하는 것도 문제지만 까닭 없이 헐뜯고 비난하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다. 남의 결함을 들추어 비난한다는 뜻의 ‘까다’를 줄인 ‘-까’는 ‘-빠’와 대칭을 이루어 어떤 대상을 이유 없이 헐뜯고, 한편으로 맹목적으로 지지하는 사람을 가리키는 말을 만들 때 쓰인다. ‘국까·일까·황까’ 등이 그 보기다. 말을 만들기가 쉽고 간단해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빠·~까’ 반열에 오른다. 속된 새말을 무분별하게 만들어 쓰는 것이 상대에게 상처를 줄 수 있다는 점도 잊지 말아야겠다. 김한샘/국립국어원 연구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