덩어쇠 사람이름 임진왜란 때 궁궐이 거의 불탔다. 광해군 때 많은 궁궐이 다시 지어졌다. 창덕궁이 폐위된 단종과 연산군이 있었던 곳이라 하여 광해군은 매우 꺼렸다. 이에 경복궁 서쪽 인왕산 아래에 새로이 궁궐을 지으니 바로 인경궁이다. 1622년, 광해군은 인경궁을 지은 도편수 ‘이덩손’(李加應孫)을 만났다. “종묘와 궁궐을 지을 때 공로가 많았는데 이제 보니 많이 늙었구려. 당상관으로 벼슬을 올리고 군직을 주도록 하겠소” 하였다. ‘덩’(加應)이 든 이름에 ‘덩이·덩기·덩뇽이·덩복이·덩어리·덩어쇠·덩쇠·덩이쇠·덩지·덩지쇠’도 있다. 크게 뭉쳐서 이루어진 것은 ‘덩어리’, 작게 뭉쳐서 이루어진 것은 ‘덩이’라 한다. 두 말은 ‘골칫덩어리/골칫덩이·심술덩어리/심술덩이’처럼 이를 때도 쓰인다. 오랑캐 사람이름에 ‘덩거리’가 있는데 ‘덩어리’의 고장말에 해당한다. ‘덩지’는 ‘덩이/덩어리’의 부피, ‘덩치’는 몸집을 이른다. 사람이름 ‘덩지’는 ‘덩치’ 뜻으로 쓰인 듯하고 ‘덩지쇠’는 덩치가 있었던 모양이다. ‘덩어쇠’(加應於金)는 ‘덩어리’와 ‘쇠’가 더해진 ‘덩얼쇠’에서 ‘ㅅ’ 앞에서 ‘ㄹ’이 떨어져 나간 결과다. 요즘 제련된 쇠는 긴 판을 만들어 코일(롤)로 판다. 삼국 때는 가운데가 잘록한 쇠판(=철정=판상철부=덩이쇠) 여러 개를 한 덩어리로 묶어 팔았다. ‘덩어쇠·덩쇠’는 덩이쇠와 비슷한 말인 듯하다. 최범영/한국지질자원연구원 책임연구원
돈놀이 언어예절 돈이 으뜸인 시절, 곧 자본주의 세상이 한창이어도 자못 업신여김을 받는 말이 있다면 ‘돈놀이’일 성싶다. 이 말은 국어사전에서 ‘돈을 빌려주고 이자 받는 일’이란 바탕뜻에서 나아가 뜻갈래를 몇 개는 벌였을 법한데, 그렇지 못한 형편이다. 내림으로 돈을 멀리해 온 심성도 작용했겠으나 그보다는 말이 너무 쉽고 노골적인 데서 비롯된 바가 많을 성싶다. 돈 마다는 이가 드문 걸 보면 ‘내림’은 이제 작용을 멈춘 듯하다. ‘변놀이’라고도 하나 거의 쓰지 않고, 변·이자는 토박이말로 ‘길미’다. 따지고 보면 일차적인 노동과 생산을 빼고서는 돈놀이 아닌 경제활동이 거의 없다. 저마다 잘살고자 벌이는 활동들, 금융사의 저축·대출 등 여러 업무, 주식·편드·부동산 투자 …들도 마찬가지다. 그로써 가지친 물건들도 ‘돈놀이 상품’임은 말할 것도 없다. 이는 조건 따라 스스로 불어나거나 졸아들어 사람들을 울리고 웃긴다. 이에 쏟는 조바심이야 들추어 뭘 하랴. 미국식 금융 경영이 거덜 나 하루아침에 세상 돈값이 가뭇없이 사라졌다고 난리다. 우리도 나라·개인 살림, 기업 두루 곤욕을 치르는 마당이다. 이젠 ‘구제금융’이 낯설잖은데, 그래도 돈놀이는 계속될 것이고 탈을 바꿔 쓴 ‘상품’들도 이어질 터이다. 돈놀이를 하면서 이를 마냥 업신여길 일은 아니겠다. 이참에 숱한 낯선 말을 새로 만들고 빌려 쓰는 수고도 좀 줄였으면 좋겠다. 최인호/한겨레말글연구소장
악플 외래어 인터넷도 희로애락이 깃드는 한 공간이 되었다. 떨어져 사는 친인척이 만나거나 동호인들끼리 정을 주고받기도 하고, 다툼질도 벌어진다. 그런 점에서 그곳도 우리가 살아가는 한 공간이다. 그러나 얼굴이나 이름을 감출 수 있다는 점에서 크게 다르기도 하다. 입말 아닌 글말로 소통한다는 점도 다른데, 이런 특성이 때에 따라 장점으로 작용할 수도 있을 터이다. 아직은 단점이 더 많아 방치할 수 없다고 하기도 하고, 자정 능력이 있으니 좀더 지켜볼 필요가 있다고 하기도 한다. 순기능을 높이고자 선플(善+‘리플’의 ‘플’) 달기 운동도 해 보지만, 오히려 역효과를 낳는 구석이 있다는 얘기도 나온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무조건적인 선플이 아니라면, 제대로 짚어주는 ‘정플’(正+플)은 어떨까? 영어 ‘리플라이’(reply)를 줄여 ‘리플’이라는 말을 만들어 냈는데, ‘악플’이 생기면서 ‘플’이 마치 ‘말하다’나 ‘대꾸하다’는 뜻을 지닌 우리말이나 한자어인 것처럼 활용됐고, ‘선플’이 가세하면서 그 느낌이 심해진 듯하다. 그러면서 애써 정착시킨 ‘댓글’이 조금은 무색해졌다. 대상을 가리지 않는 악플과 같은 언어의 가시 돋침은 말하는 이의 마음가짐에서 비롯된다. 언어 그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는 말이다. 국어가 갑자기 다른 언어로 바뀐다고 가시가 무뎌지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간혹 이를 깨닫지 못하고 국어를 문제 삼는 이가 있어 안타깝다. 김선철/국어원 학예연구사
무거리 사람이름 세종 25년(1443년), 개성부의 ‘묵디’(無叱知)는 사람을 죽였고, 전옥서의 기매는 남의 묘를 파헤쳐 옷을 훔쳤으니 모두 교수형에 처해야 한다고 형조에서 임금께 아뢰었다. 無叱知는 ‘뭇디/묵디’를 적으나 ‘묵지’(납을 끓여 만든 덩어리 따위)라는 말이 있으므로 ‘묵디’가 옳은 듯하다. 중종실록에는 ‘묵디금이’란 이름도 보인다. 곡식 따위를 빻아 체에 쳐서 가루를 내고 남은 것도 ‘묵지/무거리’라고도 한다. 담뱃대는 ‘물부리·설대·담배통’ 세 부분으로 나뉜다. 물부리는 고장 따라 ‘대묵지·무추리·물초리’라고도 한다. ‘무거리·무초리’도 사람이름에 보인다. ‘초리/추리’가 든 이름에 ‘너초리/너추리·늦초리·망추리·부초리·수초리·엇초리/엇추리·이초리/이추리’도 있다. ‘부출’(부초리)은 가구 네 귀퉁이에 세운 기둥, 뒷간 바닥에 까는 널빤지다. 사람이름을 살피면 ‘뒷간이’도 모자라 ‘부초리’까지 보인다. 옛사람들은 아이가 태어난 곳은 어디든 신성하게 여겼던 것일까? 이름으로 말미암은 ‘무거리’(왕따) 취급과 차별이 없는 사회라면 아무 문제도 되지 않았으리라. 이로 보면 전통사회는 무한 경쟁 사회와 썩 달랐던 것 같다. 옛말에서 문틀은 ‘문부출/문얼굴’, 목덜미는 ‘목부출’, ‘묵지/구년묵이’는 여러 해 묵은 것, 어떤 일에 오래 종사한 사람을 이르기도 한다. 최범영/한국지질자원연구원 책임연구원
교과서 언어예절 10여년 전 ‘새로운 역사 교과서를 만드는 모임’이 일본 역사 교과서에 ‘자학사관’이 묻어나는 내용이 많다며 다시 쓰라고 주장한다. 이는 최근 독도가 일본땅이라고 교과서에 박게 된 데로 이른다. 이 땅에서도 ‘교과서 포럼’을 비롯해 대통령, 정부 부처, 경제단체까지 나서서 교과서가 잘못됐다고 난리다. 자학사관·친북좌경, 반시장 …. 일본 쪽보다 한술 더 뜨는 셈이다. 교과서 집필자는 교과과정에 걸맞게 작성한 집필 지침을 따르고, 심사자는 담은 내용·범위·용어·표현을 엄밀히 따진다. 말하자면 지침과 손질(교열)하는 과정이 엄격하기 짝이 없다는 얘기다. “신문기사는 살아 있는 교과서”, “교과서대로 하면 된다” “협상의 모든 것을 정리한 협상학 교과서” …처럼 ‘교과서’란 말은 긍정적으로 쓰일 때가 많다. 현실과 거리가 있는 내용, 원론·원칙적인 이야기, 판박이로 통할 때도 있다. 아무튼 소동 덕분에 고등학교 <한국근현대사>가 유명해졌다. 이번에 잘못됐다고 들춘 내용 가운데 그럴듯한 게 별로 없었는데, 이런 것은 우습기까지 하다. ‘대외 개방정책’ 서술 부분에서, “‘외자를 도입한 것’을 ‘외자를 끌어들인다’는 비학술적 용어로 표현함으로써 대외 개방 노력을 부정적으로 묘사했다”는 이야기다. ‘끌어들인다’와 ‘도입하다’를 두고 학술 잣대를 들이대는데, 제 나라 말에 몹시 서투른 이가 아니고는 할 수 없는 얘기다. 최인호/한겨레말글연구소장
니자테 너인테 고장말 ‘-자테’는 표준어 ‘-한테’나 ‘-에게’에 대응하는데, 주로 경상·전남 쪽에서 쓰인다. “공부도 니자테 뒤떨어지고 뭣을 해가 니자테 이겨 볼라고 애를 썼다 이기라.”(<한국구비문학대계> 전남편) “도사자테 그래 물으이까네.”(<한국구비문학대계> 경남편) ‘자테’는 ‘곁’과 조사 ‘-에’가 결합된 말로, ‘겨테>져테>저테>자테’와 같은 변화를 겪었다.(‘길>질’, ‘기름>지름’과 같은 현상) 그래서 ‘자테’는 ‘곁에’라는 뜻으로도 쓰인다. “저그 할마이가 어떠쿰 거시났던지(사납던지) 당채 자테(곁에) 가지 못 하는기라.”(위 책) ‘-한테’와 대응하는 고장말로 ‘-인데’, ‘인테’, ‘-항께’, ‘-신듸’ 등도 있다. ‘-인데’는 경상·함북·만주, ‘-인테’는 강원·충북·경상·만주, ‘-항께’는 경상, ‘-신듸’는 제주에서 쓰인다. ‘-인데’는 ‘있다’의 활용형 ‘있는데’가 조사로 굳어진 것이며, ‘인테’는 ‘인데’와 ‘한테’가 합친 말이다. “자가 말있는데(말에게) 채서 허리를 다챘심더.”(<조선 언어학 시고> 김병제) “남인테 좋치 못한 일을 한 기 아니냐?”(<한국구비문학대계> 강원편) “동생항께 쥑이 삔다고 말했심더.”(위 책 경상편) “개인테는 고기를 주고 저 쫓아 온 사람한테는 가죽을 줘라.”(위 책 충북편) “어멍이 몬저 알아가지고 아달신듸 전달을 하여 불었어.”(제주) 이길재/겨레말큰사전 새어휘팀장
까마귀 짐승이름 신라 아달라왕 4년, 연오랑과 세오녀는 동해 바닷가에 살고 있었다. 어느 날 연오는 바위를 타고 일본으로 건너가 임금이 된다. 기다려도 돌아오지 않는 남편을 찾아간 세오녀는 연오가 벗어놓고 간 신발을 보고 그 바위에 오르니 그를 태운 바위는 일본으로 건너간다. 세오녀는 왕비가 된다. 이 무렵 신라에는 해와 달이 빛을 잃어 세상이 깜깜해진다. 임금은 사람을 시켜 일본으로 건너가 두 사람을 오라고 한다. 그러나 연오는 하늘 뜻을 따라서 와 임금이 되었으니 돌아갈 수가 없다고 답한다. 그 대신에 해와 달의 정기를 모아 세오가 짠 비단을 내주며 돌아가 이 비단을 제물 삼아 제단을 모으고 제사를 올리라고 이른다. 그대로 하였더니 해와 달이 빛을 되찾았다. 오늘날에도 영일의 석동 일월지(日月池)는 제사를 올렸던 곳. 옛말로 까마귀는 ‘가마괴’(능엄경언해)였다. ‘가마괴-가마귀-까마귀’로 바뀌어 쓰였음을 알 수 있다. 가마괴의 ‘-괴’를 ‘고이-고리’로 보아 ‘고리’를 새로 풀기도 한다. 그러나 -접미사 ‘이’가 붙어 된 짐승이나 새 이름이 많음을 고려하면, ‘가막’에 ‘-위’(이)가 붙어 만들어진 것으로 볼 수 있다. 까마귀는 검다. 일본에서는 까마귀를 ‘가라스’라 이른다. 여기 ‘가라-구로’는 검은색을, ‘-스’는 새의 변이형으로 보는 풀이가 있다. 우리에게 까마귀는 별로지만 일본에서는 길조라 여긴다. 겉으론 웃으면서 속 검은 건 어인 일. 정호완/대구대 교수·국어학
카디건 외래어 하늘 높고 말이 살찐다는 가을이 완연하다. 책읽기에다 운동이나 휴식하기도 좋은 철이다. 아침저녁으로 바람이 차져 장롱에 걸어 둔 긴소매 옷을 하나둘 꺼내 입게 된다. 머잖아 눈발 날리는 겨울이, 또 봄, 여름, 가을이 스쳐갈 터이다. 가을에 제격인 옷으로 ‘카디건’(cardigan)이 있다. 털로 짠 얇은 겉옷의 하나로, 앞자락이 트여 단추로 채우게 돼 있어 가을 날씨와 분위기에 어울린다. ‘카디건’을 우리는 ‘가디간’ 또는 ‘가디건’으로 일컫는데, 아마도 일본식 발음 ‘가디간’(カ―ディガン)을 받아들인 결과로 보인다. ‘카디건’(cardigan)은 본디 ‘샌드위치’(sandwich)처럼 서양 사람의 이름이었다. 1853년 제정 러시아가 흑해로 진출하고자 터키·영국·프랑스·사르디니아 연합군과 벌인 크림 전쟁 당시 이 옷을 고안하고 즐겨 입은 영국의 카디건 백작(Earl of Cardigan)의 이름에서 비롯되었다. 재빨리 입고 벗을 수 있고, 걸치면 따뜻하기도 해서 카디건은 매우 빠른 속도로 퍼졌다고 한다. 목숨이 위태로운 전쟁터에서 실용적이지 않으면 쓸모가 없기에 그랬을 것이다. 군용으로 개발된 물품이지만 지금 카디건은 군인이 입지 않는 대신 인기 있는 패션 상품이 되었다. 크림 전쟁 당시에 이럴 것을 미리 알았을까. 이처럼 세상에는 미리 알 수 없는 것이 많은데, 그렇지 않다면 사는 재미는 매우 줄어들 것 같다. 김선철/국어원 학예연구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