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돌이 사람이름 조선 때 벼슬아치가 임금께 올리는 글을 상소(上疏), 일반 백성이 임금께 올리는 글을 상언(上言)이라 했다. 안산 사는 ‘박차돌’(朴次乭)의 아내 바독이(所獨)가 정조 임금께 상언을 하였다. 호조의 종이던 남편이 병신년에 이미 숨졌는데 여태껏 ‘신공’을 바치고 있으니, ‘탈급’받게(면제받게) 해 주십사 하였다. ‘신공’은 노비가 ‘구위’(관아) 또는 ‘항것’(상전)에게 신역(노동) 대신 베나 쌀·돈 따위로 치르던 구실(구위실·세)이다. 사람이름에 ‘차돌이·차돌히’가 함께 쓰인다. 차돌은 대개 석영(또는 규석)을 이른다. 석영의 결정이 수정이며, 뜨물을 주면 큰다는 장독의 수정은 ‘고석’이라고도 부른다. 한의서에 ‘차돌’은 방해석, ‘곱돌’은 ‘납석’을 이르나 본디 석영과 활석이다. 식당에서 쓰는 곱돌솥은 대개 반려암이다. 장석은 ‘질돌’, 운모는 ‘돌비늘’이며, 돌비늘에는 ‘검은돌비늘’(흑운모)과 ‘흰돌비늘’(백운모)이 있다. 광물이름에 ‘돌솜’은 석면, ‘싸락돌’은 아라고나이트, ‘납돌’은 방연석이고, 한약 재료인 ‘산골’과 ‘무명이’는 이황화철과 수지석(덴드라이트)이다. 힘들고 고달플 때 마음을 차돌멩이처럼 굳건히 다잡고자 하곤 한다. ‘차돌이·찰이·차쇠·차녜·찹쇠’의 부모도 그런 마음이었을까? 차돌 맥 따라 금이 생산되곤 한다. 금가루 섞인 붉은 차돌을 ‘수수돌’이라 한다. 최범영/한국지질자원연구원 책임연구원
먹어 보난 고장말 ‘-으난/-난’은 표준어 ‘-으니까’에 대응하는 제주말이다. ‘-으나네’도 그렇다. “마악 빌레 동산 잔솔밭에 당도해연 ‘내려다보난’ 묵은 구장네 집허구 종주네 집이 불붙어 있입디다.(<순이 삼촌> 현기영) “집의서는 밀축(밀죽)을 ‘먹으나네’ 허연 촐(꼴)을 갖다 주나 아이 먹엄수다.”(<한국구비문학대계> 제주편) 표준어 ‘-으니까’에 해당하는 대표적인 고장말 형태로는 경기·강원·충청 쪽 ‘-으니깐두루’, 전라 ‘-응개/응깨’, 경상 ‘-으이까네’(으이까/으이까네/으이께네 등), 함경 ‘-으이까디’(으이까/으이까데/으니까디 등), 평안 ‘-으니꺼니’(으니까니/으니께니 등)들이 있다. “근데 제 어머니가 딱 ‘죽으니깐두루’ 갖다 묻어야겠단 말야.”(위 책 경기편) “내 ‘보이까디’ 일하는 체만 하더꾸마.”(함경) “어제 놈들의 신문을 ‘보니꺼니’ 딕장에 나가던 사람들은 모두 딕장으루 나오라구 했드군.”(<남과 북> 홍성원) “숭은 무신 숭, 하도 맛나게 잘 ‘묵응께’ 이뻐서 허는 소리제.”(<태백산맥> 조정래) ‘ㄴ’이 탈락한 ‘-으이까’ 유형은 백두대간 동쪽 함경·경상도에서만 쓰이며, ‘-으니께’는 제주를 뺀 전국에서 쓰인다는 점이 특징이다. “허구헌 날 놀고만 먹으니께 천하태평인 모양이지.”(<개나리> 최인욱) “걱정을 하고 누웠으이까 그 어떤 사램이 잉어를 한 마리 가와여.”(<한국구비문학대계> 경북편) 이길재/겨레말큰사전 새어휘팀장
세밑 언어예절 신령을 밝히던 은밀한 촛불이 겨울 거리에서도 꺼지지 않는다. 흥청거림이 잦아든 대신 오가는 말속엔 세밑 인사보다 억지와 원망, 부정과 저주가 일상화한 느낌이다. “갑이 을에게 심수(深讐)가 있어 이를 갚으려 하면 힘이 부족하고 그만두려 하면 마음이 불허하는지라, 이에 그의 화상을 향하여 눈도 빼어 보며, 그 목도 베어 보고, 혹 을의 이름을 불러 ‘염병에 죽어라, 괴질에 죽어라, 벼락에 죽어라, 급살에 죽어라!’ 하는 등의 저주다. 얼른 생각하면 백 년의 저주가 저의 일발(一髮)을 손(損)하지 못할 듯하지만, 1인 2인 … 100인 1000인의 저주를 받는 자이면 불과 몇 년에 불그을음이 그 지붕 위에 올라가며 …. 거룩하다 저주의 힘이여, 약자의 유일 무기가 아니냐?” 단재 선생(금전·철포·저주)이 일제 초기, 돈과 총칼에 눌려 누구 하나 제대로 ‘저항’하지 못하는 현실을 한탄한 글귀다. 그 약자의 ‘유일 무기’가 요즘엔 힘센자와 집단, 가진자와 못가진자 가리지 않고 휘두른다는 점이 유별나다. 하지만 말이 바로서지 못한 상태에서는 어떤 말도 헛수고다. 이땅에서 좌·우는 점차 ‘친일·친미·독재’ 우익보수, ‘반일·반미·빨갱이’ 좌익진보로 갈리는 듯하다. 참된 좌·우라면 저런 가름이 못마땅할 터이다. 자주·민주·정통·내림·통일은 어느 편일까? 어려운 세밑에 말이라도 제대로 세워 무작하고 겉도는 짓을 삼감으로써 두루 마음 덜 다치게 했으면 좋겠다. 최인호/한겨레말글연구소장
해오라기 짐승이름 “까마귀 싸우는 골에 백로야 가지마라/ 성난 까마귀 흰빛을 새오나니/ 창파에 조이 씻은 몸 더럽힐까 하노라”(백로가) 포은 정몽주 선생의 어머니께서 아들을 백로에 비기고 상대 무리를 까마귀에 비겼다. 썩 풍자적이다. 포은을 기리고자 세운 영천 임고서원, 오백년 넘은 은행나무는 잎은 다 졌으나 드높은 기상은 예나 다르지 않다. 해오라기에는 알락해오라기와 덤불백로가 있다. 앞엣것은 황갈색 해오라기를 모두 이르고, 뒤엣것은 주로 미주 지역에 사는 텃새로 작은 해오라기를 두루 이른다. ‘백로’는 우리말로 ‘해오라기’다. 경상도 말로는 ‘해오라비’다. 백로의 백(白)과 해오라기의 ‘해’는 같다. ‘해맑다-해끔하다-해사하다-해쓱하다-해말쑥하다-해반드르르하다 …’에서 ‘해’는 분명 희다는 뜻을 알맹이로 한다. 그럼 ‘오라기’는 무엇인가? 더러 해오라기를 ‘해오리’라고도 부른다. 아주 시사적이다. ‘오리’의 짜임은 ‘올+이’로서 오리(鴨)와 같은 말로 보면 좋을 것이다. 물 위에 떠다니며 물고기를 잡아먹고, 때로는 하늘 높이 날아 고고한 자태를 드러낸다. 옛말로는 ‘하야로비’(鷺·훈몽자회), ‘하야루비’(백련초해), ‘해오리’(청구영언)다. 이 가운데 가장 해오라기와 가까워 보이는 게 ‘해오리’로, 준말로 다루기도 한다. 세밑을 맞아 겉 희고 속 검은 일은 없는지 되돌아볼 일이다. 정호완/대구대 명예교수·국어학
꽃사지 외래어 경기가 얼어붙어 숱한 젊은이들이 결혼마저 미룬단다. 따뜻한 봄이 오면 행복한 결혼 생활을 꿈꾸는 젊은이들의 열망이 열매를 맺을 수 있기를 빈다. 혼례 때 신랑신부 또는 그들의 부모가 가슴에 다는 꽃을 그냥 ‘가슴에 다는 꽃’으로 말하던 때가 있었다. 물론 이런 꽃이 혼례식에만 등장하는 것은 아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지 ‘꽃사지’라는 표현이 등장하였다. ‘꽃’은 이해가 되나 ‘사지’가 무언지 쉽게 알기 어려운데, 그 말 전체가 영어 ‘코사지’(corsage)의 차용어일 가능성이 높다.(영어 ‘코사지’도 프랑스말 차용이라는 게 정설이다) 꽃가게 같은 곳에서 외국어에 능통한 어느 분이 ‘코사지’라고 부르거나 그렇게 일컫는다고 알려주니, 이게 와전되어 ‘꽃사지’까지 간 것 아닐까 상상하게 된다. 영어로 건너가 ‘코사지’가 된 프랑스말 ‘코르사주’는 본디 서양에서 몸에 딱 붙게 입는 옷의 꽉 죄는 허리 부분을 일컫는 말이었다고 한다. 그러다가 14세기 르네상스 시기에 맵시를 내느라 겉옷과 속옷을 따로 입었는데, 속옷이 ‘코르셋’(corset)이고 겉옷이 ‘코르사주’(corsage)였다. ‘corsage’는 현대 프랑스말로 블라우스 같은 여성 상의 정도만을 뜻하며, ‘가슴에 다는 꽃’이라는 뜻은 영어에서 덧붙었다. ‘꽃사지’는 ‘가슴꽃’, ‘흉화’(胸花)라고도 일컬어지는 모양인데, 발음하기도 어렵지 않고 알아듣기 쉬운 ‘가슴꽃’이 더 나아 보인다. 김선철/국어원 학예연구사
검어솔이 사람이름 숙종 5년(1679년) 9월 열나흗날, 병조에서 올린 글을 들고 구음(具?)이 임금께 아뢰었다. “어제 단봉문을 지키던 군사들이 문을 잠그지 않고 있는 것이 눈에 띄었습니다. 게다가 황옥생은 순선을, 유태립은 자순, 조호업은 ‘놈이’, 이상흥은 ‘검어솔이’(檢於松)를 대신 번을 세웠습니다. 모두 달아났으니 잡아와야 합니다. 하나는 제대로 직숙도 않았습니다. 이들을 추문한 뒤 관청의 사목에 따라 멀리 유배를 보내소서.” 조선 때 자신의 업무를 다른 이에게 맡기는 것을 대립(代立)이라고 했으니 흔했던 일 같다. ‘검어솔이’는 달리 ‘黔於松’으로도 적은 것을 보면 ‘검어’는 검다는 뜻인 듯하다. ‘검어솔’은 무엇일까? 바닷가에 자라는 해송(흑송)은 고장에 따라 ‘곰솔/검솔’로 부르기도 한다. ‘검어솔’은 바로 ‘검솔/곰솔’을 이르는 듯하다. ‘검어솔이’와 비슷한 이름에 ‘거마솔이’도 있다. 이름 밑말에 ‘거마’도 쓰인다. 무슨 뜻인지 알려지지 않았으나 ‘검다’는 말과 잇닿은 듯하다. 이름에 ‘거마/거마이/거매·거마대·거마돌이·거마지’도 보인다. 더불어 ‘거모/검오·거모토이’도 있다. 야인이름 ‘거마투리’는 ‘거마’와 ‘토리’가 더해진 이름이다. 거센 바닷바람 맞고 사는 곰솔은 소나무보다 잎이 억세며 속심이 까맣고(흑송), 다른 식물이 꺼리는 곳에서도 잘 자란다. 최범영/한국지질자원연구원 책임연구원
묵음시롱 고장말 ‘-음시롱, -음서/음시로’는 표준말 ‘-으면서’에 상응하는 전라말이다. 강원·경기·황해의 ‘-으면선/으면섬’, 충남·전북 북부와 평안도의 ‘-으먼서/으멘서/으민서’, 경상 ‘-으멘설랑/으민설랑’, 함경 ‘-으민서리/으멘서리’, 제주 ‘-으멍’ 들도 ‘-으면서’에 해당한다. “그럼유, 사람이 늙어가면선 자식을 바라구 사는 건디.”(분례기·방영웅) “소잘직에 골빠지고, 배곯아서 골빠지고, 묵을 것 못 묵음서 허처난게 산 것만도 서럽고도 원퉁헌디 ….”(태백산맥·조정래) ‘-으멘서/으민서, -으멘서리/으민서리, -으멘설랑/으민설랑’ 들은 ‘면>몐>멘>민’과 같은 변화를 겪은 말이다. “우리덜은 그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서 다 죽으멘서 싸웠쉐다.”(동트는 하늘 밑에서·이범선) “너그 애비가 죽으민서도, 내 자슥들은 부디 돈 많이 벌어서 ….”(농무일기·김원일) “어데서드라 가께우동 먹으멘서리 …”(백부의 달·이순) “그적새는 이 도독눔이 자기 가주 댕기던 연장을 돌게다 놓고 뚜드리민설랑 ….”(한국구비문학대계·경북편) 표준어 ‘-으면서’에 대응하는 고장말들이 ‘-으면’과 ‘-서’ 또는 ‘-서리, -설랑’ 등이 결합한 형태라면, 제주말의 ‘-으멍’은 ‘-으면’이 바로 ‘으먼>으멍’과 같은 변화를 겪는다. “한집에 살멍 경(그렇게) 헌거, 무시거허레 따졈서?(협죽도·최현식) 이길재/겨레말큰사전 새어휘팀장
좌우 언어예절 사물 따라 밤낮, 암수, 앞뒤, 아래위, 길고 짧음, 옳고 그름, 안팎 …처럼 짝지어 이름을 붙인다. 하늘·땅·사람, 상·중·하, 동·서·남·북, 봄·여름·가을·겨울 …처럼 셋·넷으로 나누기도 한다. 성향이나 이념은 흔히 좌·우로 나눈다. 좌익·우익, 좌경·우경, 좌파·우파, 좌편·우편으로, 달리는 보수·진보, 강경·온건, 극좌·극우 …에다 앞뒤에 한정하는 말을 두어 가지를 치기도 한다. 한 이십년 거품이 많이 빠졌던 좌·우에다 최근 들어 새삼스레 힘을 싣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역사 교과서 파동에다 여러 정책·입법들에서 그런 행태가 두드러진다. 따지고 보면, 자본가·지주, 노동자·서민을 위하지 않는 정당이 어디 있는가? 강조점이 좀 다를 뿐! 맞선말(반대말)은 본질에서 다름보다 같음이 많다. 따로 떨어뜨려도 한몸이란 얘기다. 오른쪽이 없는데 왼쪽이 있겠는가? 작은 차이를 크게 튀겨 말하는 선동가가 있다. 이념을 극단으로 나누는 이런 방식이 편을 가르고 나라를 가르고 세계를 가른다. 보수당에도 노동당에도 좌·우가 갈린다. 그러나 좌우경 극단주의는 욕을 먹는다. 나뉜 것을 억지로 붙이기도 어렵지만 한몸을 억지로 나누려다 보면 사람이 다친다. 다름만 알고 같음을 모르는 애어른들이 많다. 여기에 감정과 저주가 곁들이면 눈이 뒤집힌다. 볼모를 달리하면 사물이 달리 보인다. 여러 모로 들여다도 보고 싸안아도 볼 일이다. 최인호/한겨레말글연구소장
카브라 외래어 흔히 ‘국적 불명의 외래어’라고 하는데, 언어에 국적이 있을 리 없으니 정확한 표현이라면 ‘어적(語籍) 불명의 외래어’라고 하겠다. 그러나 외래어라 일컬을 때는 어디선가 쓰이고 있다는 뜻이므로 생긴 데는 분명할 터이고, 그렇다면 ‘어적 불명의 외래어’란 말은 성립할 수 없게 된다. 어떤 말은 외래어란 느낌이 강하게 들면서 말밑(어원)을 알 수 없는 것들이 있다. 그 하나가 ‘카브라’ 혹은 ‘캬브라’다. 이는 바지 밑단을 만들 때 밋밋하게 하지 않고 조금 접어올려 만드는 모양을 일컫는다. 그 말밑이 궁금해 살펴봤는데, 어떤 사전에 막연히 일본말에서 건너온 것이라고만 돼 있었다. 그러나 일본말 사전에서는 비슷한 말을 찾을 수가 없었고, 실제로는 ‘다부루’(ダブル, double)라고 부른다는 예상치 못한 답을 얻었다. ‘카브라’ 또는 ‘캬브라’가 서양말스런 데가 있는데, 미국 영어로 ‘커프스’(cuffs), 영국 영어로는 ‘턴업’(turnup)이다. ‘커프스’가 그나마 ‘카브라’와 비슷한데, ‘머신’((sewing) machine)이 일본에서 ‘미싱’된 것과는 달리 형태가 너무 변한 것이어서 그게 어원인지 의심스럽다. 프랑스말 ‘카바레’(cabaret)를 ‘캬바레’로도 일컬으므로 그쪽 말인지도 살폈으나 해당되는 것은 ‘르베르’(revers)란다. 양복이 들어온 뒤 생겼을 ‘카브라’의 어원을 아는 독자께서는 꼭 알려주시기 바란다. 김선철/국어원 학예연구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