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무기 짐승이름 “어서 이목이를 내 놓으라. 처형하러 왔노라!” 보양이 배나무를 가리키며, “둔갑한 이목입니다”라고 말하자 벼락이 나무에 떨어져 나무 허리가 잘리곤 조용해졌다. 마루 밑에 숨겨주었던 이목이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바로 배나무를 만지니 되살아났다.(삼국유사) 신라 때, 논밭이 거북등이 돼 물 한 모금 구하기가 어려웠다. 보양이 절 옆 깊은 못에 사는 이목이에게 비를 내려 달라 부탁하니, 딱하게 여긴 이목이가 하늘의 시킴을 어기고 비를 뿌린 것이 문제의 빌미였다. 목숨을 건 일이다. 배나무와 관련지어 이목(梨木), 그 소리가 바뀌어 이무기가 됐다. 물론 전설이다. 이두식으로 읽으면 이목의 ‘이’가 뱀을 이른다. 이무기는 천년을 기다려야 뜻을 이룬다는 큰 뱀으로 알려졌다. 심형래씨가 감독한 영화 <디 워>에서 부라퀴는 하늘을 주름잡는 용이다. 세상이 어렵고 보니 한번 크게 바꿔 놓았으면 하는 소리 없는 아우성이 들리는듯. 여기 부라퀴는 곰으로 치자면 불곰이다. 몹시 야물고 암팡스러우며 이로운 일이면 기를 쓰고 덤비는 사람을 이른다. 우리가 사는 길목에서 그렇지 않은 사람이 몇이나 될까. 영화 끝자락에 아리랑이 나오는 것으로 보아 한민족의 쓰라린 한에 대한 씻김굿 같은 그런 느낌을 주기도 한다. 이무기는 나와 우리의 이야기요, 무의식이란 연못에서 끝없이 때를 기다리는 저마다의 영상인 것을. 정호완/대구대 명예교수·국어학
와인 외래어 국적과 분야를 떠나 노력이 열매를 맺는 데 대해 누구에게나 축하할 일이지만, 팔이 안으로 굽는 건 인지상정인가 보다. 지난 주말에는 외국에서 활약하는 두 운동 선수가 한꺼번에 기쁜 소식을 전했다. 지난해 일이고 분야도 다르긴 하지만, 아시아 최초로 영국 ‘와인마스터’(Master of Wine) 자격을 딴 분이 있다는 소식도 있었다. 수많은 외국 자격증 중 ‘와인마스터’가 소개된 것은 근래 광풍 수준의 와인 유행 때문이 아닌가 싶다. 이를 깊이 있게 다룬 만화와 책이 꽤 읽혔고, 고급 양식집에서 와인 서비스를 전문으로 하는 ‘소믈리에’(sommelier)라는 프랑스말이 알려진 것도 이때였다. 와인 냉장고가 따로 나와 꽤 팔리기도 한다. ‘와인’의 우리말은 ‘포도주’인데, 포도에 설탕과 소주를 부어 포도주를 많이 담갔던 시절에는 혼동할 우려가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그런 토속 과일주를 찾아보기가 쉽지 않으니 서양식 포도주를 굳이 ‘와인’이라 하지 않고 그냥 ‘포도주’라 하면 될 듯하다. 고유 명칭이라 할 ‘와인폰’과 같은 상품명은 예외로 하더라도, ‘와인색’ 대신 ‘포도주색’, ‘와인 글라스’ 대신에 ‘포도주잔’, ‘와인 냉장고’ 대신 ‘포도주 냉장고’, ‘레드 와인’과 ‘화이트 와인’ 대신 ‘적포도주’와 ‘백포도주’라는 우리말 표현을 쓰더라도 포도주 맛이 이상해지지는 않을 것 같으니. 김선철/국어원 학예연구사
먹고 잪다 고장말 ‘잪다’는 표준어 ‘싶다’에 대응하는 말로, 주로 경상·전라 쪽 고장말이다. “너 이년 별당마님이 되고 잪은 모양이구나?”(<완장> 윤흥길) ‘싶다’는 ‘먹고 싶다/ 죽고 싶다’와 같이 바람을 나타내기도 하고, ‘비가 오는가 싶어’처럼 추측을 나타내기도 한다. ‘잪다’는 바람 뜻으로만 쓰이며, 추측은 ‘싶다’가 쓰인다. “외줄타기 목숨은 한 가닥인디 외나무다리 건너가다 뒤퉁그러져 그 잘난 뼉다구 박살나까 싶응게.”(<혼불> 최명희) ‘잪다’의 또다른 형태는 ‘젚다, 짚다’와 ‘잡다’다. “오늘은 눈도 설설 오고 우짠지 오매가 보고 젚다.”(<한국구비문학대계> 경남편) “밤마다 목매달아 죽고 짚은 맘이야 열두 고개를 더 넘지마는 차마 죽지 몬하고 ….”(<불의 제전> 김원일) ‘젚다’는 충청에서도 쓰이는데, 바람·추측 두루 쓰인다는 점이 다르다. “배가 고프구 이렇게 잘 자시덜 못할 텐디 젚운 생각이 있어서 ….”(<한국구비문학대계> 충남편) ‘젚다’와 ‘짚다’는 경상·전라에서 두루 쓰이고, ‘잡다’는 전라에서만 나타난다. “여봇시요, 내가 먹고 잡어서 먹소. 애기 젖 많이 난당께 먹제.”(위 책, 전남편) 또한 ‘잡다’는 ‘먹고 자와서, 먹고 자워서’와 같이 활용하기도 한다. “즈그 여자가 보고 자워서 어짤 중을 몰라.”(위 책, 전남편) “아 여그 오실 적으 머 작은아씨가 오시고 자와서 지 발로 걸어오셌능가요?”(<혼불> 최명희) 이길재/겨레말큰사전 새어휘팀장
선비 언어예절 사내 중심 사회 때 성하던 말들도 빛이 바랬다. 남아·장정·재사·수재·장자·대인 …들에, 거사·처사·생원·유사·학생·선생을 비롯해 왕조시대의 숱한 벼슬이름과 지칭·호칭들이 그렇다. 추려 쓸 만한 말은 없는가? 학생·선생은 쓰임새가 많이 번졌고, 사내·선비·머슴 가운데 머슴은 가끔 ‘공복·공무원’의 비유로 살아난다. 오래된 말 선비는 태학·국학·성균관·향교 따위에서 배워 글과 활에 통한 두뇌집단 또는 개인을 일컬으며 시대 따라 표상이 바뀐다. 선비를 500년이나 길렀던 조선 말에는 유학에 사무친 쪽으로 졸아들며 식민지를 맞았다. 통상, 글 읽은 사람 배운 사람이 선비란다면 요즘 이땅 거의 모든 사람이 선비 반열에 든다. 사내·계집 가를 것도 없다. 다만 많이 배우고 높은 학교에 다녀 넘치는 게 탈이다. 전인 교육을 지나 글로벌 인재를 들먹이는 시절이지만, 그렇다고 죄 고위직이나 선량·군인·학자·전문가·경영인에 국제기관 종사자가 되기는 어렵다. 선비든 배운이든 궂은 일을 하지 않으려는 게 문제다. 일자리 찾기가 하늘의 별따기라지만 좋고 궂은 일 안 가리면 일거리는 많다. 떳떳이 생업에 애쓰면서 집안·나라 사랑에 더하여 널리 인간에 이바지하고자 하는 선비라면 더할나위 없겠다. 험한 일이라고 마냥 이민노동자, 기계·로봇이 하도록 내버려 두기도 그렇다. 어차피 그렇게 다양한 선비들의 나라로 가게 돼 있는 것 같다. 최인호/한겨레말글연구소장
굴뚝새 짐승이름 “입을 벌리고 잠을 자는 것은 인간뿐/ 삶이 그만큼 피곤하기 때문이다./ 굴뚝 속에는 더 이상 굴뚝새가 살지 않는다./ 보라, 삶을/ 굴뚝새가 사라진 삶을/ 모든 것이 사라진 다음에/ 오직 인간만이 남으리라/ 대지 위에 입을 벌리고 잠든 인간만이”(류시화·‘굴뚝 속에는 더 이상 굴뚝새가 살지 않는다’) 겨울철에 집안 굴뚝이나 울타리 주위를 맴돌며 산다고 굴뚝새라 부르는 이 새는 참새의 일종이다. 깃털이 진한 다갈색에 검은 가로무늬가 간간이 놓였는데, 거미나 벌레들을 잡아먹으며, 여름철에는 주로 산에서 산다. 옛날 마음씨 착한 형과 욕심 많은 아우가 한집에 살았다. 아버지가 물려 준 안채에 살던 형은 시름시름 앓다가 세상을 먼저 뜨게 된다. 임종 전 바깥채에 사는 아우를 불러 아내와 아이들을 부탁한다. 아우는 걱정 말라고 하고서도 조카들한텐 일만 시키고 먹을 것도 제대로 주지 않는다. 큰조카가 겨울날 추위를 이기려고 부뚜막에서 자다가 아예 아궁이로 들어가 잠을 잔다. 깨어보니 불을 지폈는지 연기가 매워 구들 밑을 지나 굴뚝으로 기어오르니 더욱 견딜 수가 없었다. 마침내 죽어 굴뚝새가 되었단다. 굴뚝 주위를 맴돌며 저 집은 우리 집인데 삼촌이 빼앗아 갔다며 온갖 소리로 지저귄다니, 어렵게 살아가는 이들의 몫을 마구 집어 삼키는 가진자들이 있다면, 이 어렵디어려운 세계적 봄 불황을 맞아 뉘우칠 일이겠다. 정호완/대구대 명예교수·국어학
오부리 외래어 대중음악 혹은 고전음악 연주에 종사하거나 거의 전문 수준에 이른 사람들이 쓰는 말 중에 ‘오부리’가 있다. 이는 악보 없이 반주를 즉석에서 하는 일, 곧 ‘즉석 반주’를 뜻한다. 그러나 뜻이 더 번져서 밴드가 나오는 유흥주점 반주나 혼례식 음악 연주를 일컫기도 한다. 노래방이 생기기 전에는 ‘오부리 밴드’가 성행했는데, 이제 많이 사라졌다고 한다. 한편, 노래 반주이건 아니건 연주 사이사이 악보 없이 생각나는 대로, 느낌대로 하는 즉흥 연주를 뜻하는 말로는 ‘애드리브’(ad lib)가 있다. ‘오부리’의 어원은 흔히 이탈리아말 ‘오블리가토’(obbligato)로 알려졌다. 이것이 일본말에서 ‘오부리’가 되어 우리에게 전해졌다는 것이다. 여기엔 미심쩍은 면이 있다. 본디 이 말은 ‘꼭 해야 되는’, ‘반드시 있어야 하는’ 정도의 뜻인데, 음악용어로서는 ‘피아노 또는 관현악 따위의 반주가 있는 독창곡에 독주적 성질을 가진 다른 악기를 곁들이는 연주법’, ‘꼭 연주해야 하는 악기 선율’을 뜻한다. 이런 말이 어떻게 ‘즉석 반주’를 뜻하게 됐는지를 이해하기가 쉽지 않다. 일본말을 통해 왔다는 생각은 말 꼬리를 없애면서 ‘ㄹㄹ’을 살리지 못하는 ‘오부리’라는 꼴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일본말 사전에는 이 말이 없는데, 우연이 아니라면 ‘카브라’처럼 유래가 분명하지 않아 어디서 온 말인지 밝혀지지 못할 가능성이 있다. 김선철/국어원 학예연구사
송고리 사람이름 야인 이름에는 한반도와 일본 열도 사람이름과 비슷한 것들이 눈에 띈다. 야인 이름 가운데는 ‘오·로’로 끝나는 이름도 적잖다. ‘거여로·노화로·다하로·도보로·망가로·부가로·삼바로·샤로·소기로·아가로·모다오·야시우·옴소오’들이 보인다. 이런 요소는 일본사람 이름에도 보이는데, 야인 이름과 관계가 있을 법하다. 한반도의 ‘도로/되로·마로·미라로·보로·소로·야로·을소로’도 이런 보기일 것이다. 이름접미사에서 한반도의 ‘-수’는 야인의 ‘-소/-수와 잇닿아 있다. 야인 이름에 ‘갈수·굼소·볼고소·아라소·어부로소·얼수·이하소’가 보인다. 더불어 야인 이름 ‘몰오·솔오·숑고로·수구로’는 한반도의 ‘몰로이·솔이·송고리·수구리’와, ‘벌거·샹자·수사·수허·어부커·판차’는 한반도의 ‘벌개·샹재·수새·수허리·어부개·번재’에 해당된다. 이런 음운 대응을 살필 때, 이름접미사 ‘-소/-수’에 ‘ㅣ’가 더해져 ‘-쇠’가 되었거나, ‘-쇠’에서 ‘ㅣ’가 빠져 ‘-소/-수’가 된 듯하다. 두 지역어가 방언학적 연장선에 있었다 할 수 있다. 역사는 오랜 세월의 축적이다. 조선 초만 해도 고구려 후예인 야인들과 문화 연속체를 이루며 산 듯하다. 그러다 조선 왕조가 사대를 앞세워 그들과 공존하지 못하는 사이, 청나라를 세운 그들에게 조선은 무참히 짓밟히고 말았다.(병자호란) 최범영/한국지질자원연구원 책임연구원
가드랬수 고장말 ‘-드랬-’은 평안·황해의 ‘-댔-’, 제주의 ‘-어시-’와 마찬가지로 과거를 나타내는 토로서, 주로 평안·황해 쪽에서 쓴다. “넷날에 한 낸(아낙)이 늙두룩 아를 못나서 애타다가 갸우 아들을 하나 났넌데 이놈에 아레 아무것두 않구 먹기만 하는 믹재기드랬다.”(<한국구전설화> 평안편) 과거를 나타내는 ‘-었-’이 앞선 과거를 나타내려면 같은 형태를 겹쳐 쓰지만(-었었/았었-), ‘-드랬-’은 ‘-드랬드랬-’처럼은 쓰지 않는다. ‘-댔-’과 마찬가지로 ‘-었-’을 ‘-드랬-’ 앞에 쓴 ‘-었드랬-’이 앞선 과거를 나타낸다. “넷날에 떡돌이라는 아와 두터비라는 아레 있었드랬넌데 이 아덜 둘이는 여간만 친하딜 안했다.”(위 책) 경기·강원·경북 일부에서는 ‘-었드랬-’이 보인다. “모든 거이 정말 맘이 안 놓였드랬는지 오빠가 가시면서 ….”(<한국구비문학대계> 경기편) “그때에는 호랭이가 쌨드랬어요.”(위 책, 강원편) ‘-드랬-’은 단순히 있었던 일만을 나타낼뿐더러 과거에 어떤 일이 진행되고 있었음을 나타낼 수도 있다. “잠을 자드랬는데 아덜이 과티는(떠드는) 바람에 못 잤다.”(<조선 방언학 개요> 김병제) ‘-드랬-’과 ‘-었드랬-’의 또다른 형태는 ‘-더랬-’과 ‘-었더랬-’이다. “방금 밥을 먹더랬다.”(<평북방언사전>) “산골짝으루다 집이 띄엄띄엄 있더랬어요.” “떡 글방을 채리고 있었더랬어요.”(<한국구비문학대계> 강원편) 이길재/겨레말큰사전 새어휘팀장
여성 언어예절 시대 따라 말도 바뀐다. 구별이나 다름, 달리 여김은 말을 새로 만들게 하는 바탕들이다. 1970~80년대 품이 많이 들던 공산품 생산 일꾼을 홀하게 일컫던 공순이·공돌이는 산업과 일하는 방식이 바뀌면서 잘 쓰이지 않는다. 식모는 가사도우미나 파출부로 일컫고, 부엌이 주방으로 들면서 부엌데기란 말도 듣기 어렵다. 맞벌이 세태에 전업주부란 말이 새롭다. 전날엔 꼭 성별을 구별해야 할 때 ‘여성’을 썼으나 요즘은 흔히 ‘여자’를 ‘여성’으로 바꿔 일컫는 경향이 뚜렷해졌다. 동식물을 암·수, 암컷·수컷(자성·웅성)으로 나누는 것과 견준다면 즐겨 쓴다는 게 우스운 일이 될 수도 있다. 사내·계집이면 될 것을 버르집은 꼴이다. 커리어우먼, 슈퍼우먼 따위 외래어도 따지고 보면 성차별스런 언어다. 스무살 안팎의 젊은 계집을 일컫는 말로 묘령·묘년·방년 …들이 있다. 묘령(妙齡)은 묘랑(妙郞)과 짝을 이루는데, 성인 여성을 폭넓게 가리키는 쪽으로 잘못 쓰는 이가 있다. 한창때 곧, ‘꽃나이’를 일컫는 말이다. 재원(才媛)이라면 재주 있는 여자(재녀)인데, 흔히 남녀를 가리지 못하고 쓰는 이가 적잖다. 영부인이라면 대통령 부인한테만 쓰는 것으로 오해하는 이가 있다. 남편이 누구든 남의 아내면 ‘부인’으로 충분하다. ‘여사’(女史)도 권위적이긴 하나 이를 성명 뒤에 붙여 부르면 좋아하는 이가 적잖으니 쓸모가 말짱 사라진 건 아닌 셈이다. 최인호/한겨레말글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