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랑새 짐슴이름 “새야새야 파랑새야 녹두밭에 앉지 마라/ 녹두꽃이 떨어지면 청포 장수 울고 간다// 새야새야 파랑새야 우리 논에 앉지 마라/…/ 새야새야 파랑새야 우리 밭에 앉지 마라.” 애절한 사연과 노랫가락이 가슴으로 젖어든다. 갑오개혁 때 일본군에 맞서 나라를 지키려던 전봉준의 동학군을 풍유적으로 나타냈다. 여기 파랑새는 파란 군복을 입었던 일본군, 녹두꽃은 녹두장군 전봉준 또는 농민군들이다. 달리 파랑새의 ‘파랑’은 전봉준의 전(全) 자를 푼 팔+왕(八王)을 소리 내면 ‘파랑’이 되니까 전봉준을 가리킨다고도 한다. ‘파랑새’ 아닌 ‘녹두새’로 된 노래도 있다. 외세 침탈을 받지 않고 평화롭게 살기를 바라던 흰옷 입은 백성들 …. 노벨문학상을 받았던 모리스 마테를링크의 <파랑새>(L’Oiseau bleu)는 어떤가? 날아간 파랑새를 찾아 어린 남매가 산을 넘고 물을 건너 길을 떠나지만 어디에도 파랑새는 없었다. 지친 나머지 집에 돌아와 보니 그토록 간절하게 찾아 헤맸던 파랑새가 집안 새장에서 노래하며 어린 친구들을 기다리고 있지 않은가. 이레 명상수도 끝에 파랑새의 도움으로 관음굴에 들어가 수행하니 연꽃이 피고 관세음보살이 나타나 그 자리에 홍련암을 세웠다는 의상의 이야기도 큰 흐름은 같다. ‘프랑스’와 소리가 비슷하여 ‘파랑새’와 연관짓기도 한다. 이름 짓는 이들이 먼저 주목하는 게 빛깔을 보는 것이다. 그런데, 모두 제 눈에 안경이다. 정호완/대구대 명예교수·국어학
뒷담화 외래어 사람들은 자기 몸만 돌보는 비겁한 사람보다는 정의로운 사람을 좋아한다. 성격이 급한 사람보다는 느긋한 사람을 더 좋아한다. 그런데 정작 많은 이들이 자기가 바람직하다고 여기는 것보다 덜 정의롭고 덜 느긋하다. 여전히 ‘옳은 것’을 마음으로라도 중시하기에 인간 사회가 유지되는 게 아닐까. 오래지 않은 과거에 등장한 말로 ‘뒷담화’가 있다. 이는 많은 남성들의 기억으로는 당구할 때 사용하던 ‘뒷다마’(를 까다, ‘다마’는 일본말)가 그 본디 모습이다. ‘뒷다마를 까다’에는 두 가지 뜻이 있다. 말 그대로 앞뒤로 놓인 공 가운데 뒤쪽 공을 맞히는 것을 이르거나, 의도적이든 아니든 당구봉에 맞은 공이 당구대를 돌다가 다른 공을 맞힐 때 앞으로 맞히지 않고 돌아서 뒤를 맞히는 것을 이른다. 그러다가 일상생활에서 ‘어떤 사안에 대해 떳떳하게 당장 말하지 못하고 나중에(뒤에) 왈가왈부하다’, 또는 ‘일이 끝난 뒤에 이러니저러니 다시 언급하다’라는 속어가 됐다. 이것이 일종의 순화 과정을 거쳐 ‘뒷담화’가 된 것이다. 뜻에서도 ‘뒷이야기’ 정도의 쓰임이 덧붙었다. 원래 이런 용도의 표현으로는 ‘뒷공론’, ‘뒷말’이 이미 있었다. 따라서 ‘뒷담화’는 어찌 보면 불필요하게 만들어진 새말이다. 그러나 심심찮게 등장하는 것은 아마도 어원인 ‘뒷다마’가 지녔던 냉소적이면서 풍자적인 요소가 떠오르기 때문이 아닌가 한다. 김선철/국어원 학예연구사
어눅이 사람이름 1443년, 조선 세종 때 명나라에 주문사로 갔던 정분이, 제주에서 바람을 만나 중국으로 표류한 조곽실리 등에 대하여 우리나라 사람인지 본국에 확인하였다. 중국말로 적은 것은 ‘조궈시리·강관투·문톄마니·김사이송이·오젠뭐디·김아나지’(趙郭失里·江官土·門帖麻尼·金賽松義·吳眞莫弟·金阿那吉)인데, 확인하니 ‘조괴실이·강권토·문뎨만·金草松(김새송이)·오준모디·김어눅이(金於訥只)’였다. 우리나라 사람임이 확인된 뒤 이 사람들은 제주로 돌려보내졌다. 한자 이름에서 草(풀 초)를 써 ‘새’(사이)를 적고 있는데, 이는 땅이름에서도 보이는 표기법이다. ‘새’(新)로 시작하는 이름에 ‘새돌이·새돌히·새저니’도 있다. ‘괴실이’의 ‘괴’는 고양이로, ‘괴불이·괴쇠·괴똥이·수고이’와 같은 이름에도 보인다. 준모디에 쓰인 밑말 ‘준’은 ‘준이·준대·준돌이·준비’와 같은 이름에서도 확인된다. ‘어눅이’는 무엇일까? 사람 이름에 ‘어늑돌이·어늑비’가 있다. ‘어늑’이 ‘으름’을 이르는 고장말임을 볼 때 ‘어눅’은 어늑과 같은 말로 보인다. 실록에는 표류 기사가 적잖다. 우리나라 사람이 류큐(오키나와) 또는 중국 양주까지 표류하기도 하고, 중국인이 충남 비인의 ‘도둠곶’에 이르기도 했다. 떠밀려온 세계경제 위기로 국내 경제도 어렵다. 이 거친 표류는 언제나 멈출까?
전운 언어예절 점잖고 범상한 말보다 자극적이고 낯선 표현이 판친다. 말깨나 한다는 이도 찌르고 깨뜨리고 부추기는 말을 쓰기 일쑤다. 이를 일삼는 선수가 정치·언론 동네 사람들이다. 당을 대변할 사람이 인민을 빌미로 상대당 치기와 꼬집기에 열중하니 말이 조잡하고 거칠어질 수밖에 없다. 당쟁을 즐겼던 이들의 후손답지 않다. 그야말로 말글로 먹고사는 동네가 언론이다. 이른바 저격수·총잡이·나팔수·이빨 …들 싸움꾼 말을 크고작은 글자로 뽑아 독자를 호리면서도 짐짓 말이 거칠어져 가는 사회를 걱정한다. 이로써 사람들을 불편하고 각박하게 한다. 지난 연말 거대여당 원내대표 홍아무개는 법안 심의·통과를 독려하면서, 끝내 삼가야 할 법안전쟁·입법전쟁이란 말을 썼다. 야당에는 선전포고요, 언론으로선 바라던 홍시를 얻은 셈이었다. 결국 야당의 저항과 반대여론으로 ‘순리’가 한판을 땄지만, 마음 다친 사람들이 많다. 무엇보다 정의가 바탕이 돼야 할 입법을 전쟁하듯 몰아쳐서야. 언론도 뒤질세라 전초전·신경전·속도전·탐색전·점거·탈환 …따위 말로 관전평을 한다. 더하고 덜한 쪽이 어딘지 가리기 어렵다. 대통령은 땅굴에서 비상경제대책회의를 하며 ‘선제 작전’을 벌이고, 북쪽은 모든 군사·정치 합의는 무효라며 소리를 높인다. 경찰은 작전 끝에 용산 철거민 참사를 낳고, 마침내 종교계마저 ‘거룩한 분노’를 외친다. 감도는 전운한테나 메마른 땅에 비 뿌려 주길 바랄 뿐이다. 최인호/한겨레말글연구소장
피죽새 짐승이름 “바위 암상에 다람이 기고 시내 계변에 금자라 긴다. 조팝나무에 피죽새 소리며, 함박꽃에 벌이 와서 몸은 둥글고 발은 작으니 제 몸에 못 이겨 동풍이 건듯 불 때마다, 이리로 접두적 저리로 접두적, 너흘너흘 춤을 추니 긘들 아니 경일러냐.”(백구사) 자연을 즐기던 선인들의 흥이 녹아든 노래다. 조팝나무에 ‘피죽새’ 소리가 나온다. 피죽도 먹지 못한 양 힘없이 운다고 피죽새란다. 하필이면 조팝나무에. 조밥(조팝)이라도 실컷 먹었으면 원이 없어서인가. 피죽은 뭔가? 피로 쑨 죽이다. 피는 논에 나는 잡풀로서 씨앗은 새의 먹이로 쓰이고 흉년이 들었을 때는 사람이 먹기도 한다. 고려 때 <계림유사>에 보면 사람들은 피쌀 곧 패미(稗米)로 짓는 피밥이나 죽을 먹었고, 쌀은 나라에서 정한 대로 관혼상제 같은 특별한 일이 있을 때나 먹도록 했다. 그러니 피죽 한 그릇도 못 얻어먹은 사람 같다는 말이 생겼을 법하다. 피죽새는 흔히 밤꾀꼬리(夜鶯)라고도 이른다. 밤이 되면 배고픈 사람처럼 구슬피 운다고 한다. 야래향(夜來香)이 피면 밤꾀꼬리가 운다. “남풍이 시원하게 불어오고/ 밤꾀꼬리는 구슬피 웁니다./ 오직 야래향만이 향기를 내뿜습니다./ 나는 아득한 밤의 어둠을 사랑하고/ 밤 꾀꼬리의 노래도 사랑하지만/ 꽃 같은 꿈은 더더욱 사랑합니다.” 피죽새 우는 봄밤을 누구와 함께 깊은 속을. 정호완/대구대 명예교수·국어학
귀성 외래어 많은 이들이 한꺼번에 움직이니까 명절에 고향을 찾아가는 길은 으레 막히고 밀리기 마련이었는데, 눈이 많이 온 지난 설에는 특히나 고생스러웠다. 서울에서 그리 멀지 않은 서해대교를 건너는 데 15시간이 넘게 걸렸을 정도니 말이다. 이웃 중국도 우리나라 못지 않게 난리를 치렀다니 동병상련인지 친밀감마저 든다. 명절에 고향을 찾아가는 일을 ‘귀성’(歸省)이라 하는데, 왜 ‘귀향’(歸鄕)이라고 하지 않을까? ‘귀성’은 현대 일본어에서도 흔히 쓰이는 말이어서 그쪽 한자어가 들어온 게 아닐까 싶지만, 그렇지는 않은 듯하다. 왜냐하면 우리나라 옛 문헌에서는 고려 사람 이색(1328~1396)의 시에 이미 등장하기 때문이다. 중국 쪽 기록을 보면 당나라 때 인물인 주경여(797~?)의 시에서부터 쓰인 기록이 나온다. 그런데 중국어 사전에서 ‘귀성’은 ‘고향에 돌아가 부모님을 살핀다’(回鄕省親, 回家探親)는 뜻이므로, 성(省)은 ‘마을’이나 ‘고향’이 아니라 ‘(부모님과 조상의 묘를) 살핀다’는 뜻으로 쓰였음을 알 수 있다. 명절이라고 단지 고향에 가는 것으로 그치지 않았다는 것이다. 예부터 타향에 나가 사는 사람은 정기적으로 고향에 가서 부모님과 조상의 묘를 돌보았다. 조선 때 관료들도 기일과 명절에는 공식 휴가를 얻어서 귀성하였다고 한다. 이런 전통을 받들어 우리 민족의 귀성 행렬은 꿋꿋하게 이어졌던 것이다. 김선철/국어원 학예연구사
모하구로? 고장말 ‘모하구로 해’는 ‘무엇하게 해’와 같은 말이다. ‘모하구로’는 ‘모하다’(무엇하다)의 ‘모하-’에 ‘-구로’가 합친 말이다. ‘-구로’는 표준어 ‘-게’에 대응하는 고장말로, 주로 경상도 쪽에서 쓰인다. ‘-구로’는 “장구경 가구로} 하며 나를 재촉했다.”(<노을> 김원일), “왜놈들이 망하문 끌려간 사람들은 다 죽구로}?”(<수라도> 김정한)처럼 물음을 나타내기도 하고, 앞에서 말한 내용이 뒤에서 말하는 내용의 결과·방식·정도 등을 나타내기도 한다. “백지 우리 어데로 못 가구로 이웃드는(위협하는) 기다. 거짓말 하는 기다.”(<한국구비문학대계> 경남편) ‘-구로’의 또다른 형태는 ‘-거로’다. “한 새미에 물을 못 묵거로} 하는데 ….”(위 책) “사울 삼거로} 해돌라.”(위 책, 경북편) ‘-거로’는 ‘-게’와 같은 구실 말고도 앞에서 말한 사실이 뒤에 말하는 내용의 이유가 됨을 보이는 ‘-아서’와 같은 뜻으로 쓰이기도 한다. “아아가 하나 났는데, 그런께 자식이 없어서 애를 터잤다가 나 많거로}(많아서) 자슥을 가졌던 갑데.”(위 책) 또한 ‘-거로’는 ‘것으로’의 뜻으로 쓰이기도 한다. “음지가 양지 되고 양지가 음지 되고, 석이 어매가 이만하믄 살 거로}, 했일 때 야무 어매는 지지리 가난했는데, 야무 어매가 이만하믄 살 거로}, 그 참 석이 어매를 어쨌이믄 좋을꼬.”(<토지> 박경리) 이길재/겨레말큰사전 새어휘팀장
흥정 언어예절 말로 하는 일에 흥정 아닌 게 드물다. 집안·사회 두루 사람 관계가 그러하며, 회사·나랏일도 대체로 이로써 이뤄지고 발전한다. 이를 격식화한 것이 약속, 곧 법·기준이다. 그것도 바뀔 수 있으므로 임시방편이다. 그러니 공사간에 늘 새로운 흥정이 이뤄지기 마련이다. “흥정도 부조다” “흥정은 붙이고 싸움은 말리랬다”는 흥정을 좋게 여기는 속담들이다. 하지만 우리는 흥정을 ‘물건 값을 덜 주고 더 받으려는 수작’, ‘제 이익을 좀더 보려는 짓거리’로 좁히거나 낮잡아 쓰는 편이다. 이런 생각이나 풍토는 말을 가난하게 한다. 말의 가난은 그 말겨레의 정신을 가난하게 한다. ‘거래·협상·회담·상담·교섭·중개·수작 …’ 행위들을 싸잡아 ‘흥정’으로 일컫지 못할 게 없다. 흥정만큼이나 ‘장사’도 낮잡히는 경향이 있다. 사·농·공·상 차별이 사라진 자본주의 세상에서 ‘장사·흥정’을 값싸게 여기는 풍토를 어떻게 봐야 할까? 무슨 일자리 나누기와는 다른 결과를 부른다. 장사·흥정 자리는 ‘비즈니스·바겐·마케팅·로비 …’ 따위에 많이 내주었다. “정치적 흥정, 흥정거리, 흥정 대상, 장물 흥정, 더런 흥정, 총선용 흥정 ….” 그 앞에 고깔을 씌워서라도 흥정을 써먹는 걸 보면 쓸모가 증명된다. 흥정에는 본디 거간·중개·변호·외교·조정·협상 따위 온갖 갈래가 있다. 관련된 학문 분야도 여럿이다. 이를 뭉뚱그리면 ‘흥정학·거래학’이 된다. 최인호/한겨레말글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