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강이 사람이름 정조 8년(1784년), 살인사건이 일어나 주검의 상한 곳을 살펴보니 옆구리 아래 사타구니 위에 상처가 있었다. 피해자 어머니 유씨와 동생을 불러 물으니 ‘큰발강이’가 가슴을 발로 막고 ‘잔발강이’가 수없이 밟았다고 하였다. 두 번째 검시에서 상한 곳을 살펴보니 배는 땡땡해지고 창자가 불거져 나오고 사타구니 위에 피멍이 있었다. ‘발강’은 발간(빨간) 빛깔이나 물감이다. 발간빛을 띠는 것과 잉어 새끼를 ‘발강이’라 한다. 물고기의 새끼를 이르는 말에 여러 가지가 있다. 명태 새끼는 ‘노가리’. 충남 보령 지역에서 ‘간재미/갱개미’라 일컫는 가오릿과 생선은 가오리 새끼쯤 된다. 숭어 새끼는 어느 고장에선 밀치라 한다. 부산 자갈치시장에서 물으니 밀치는 숭어 비슷한 가숭어라 하고, 숭어 새끼는 ‘모치’라 한다. ‘모치’는 ‘모쟁이’의 고장말이며, ‘모치/모티’가 든 사람이름에 ‘골모티·돌모치/돌모티’도 있다. 경상도말 ‘모티’는 모퉁이를 이른다. 웅어 새끼 ‘모롱이’, 돌고래 새끼 ‘가사리’도 이름에 보인다. 발강의 센말은 ‘빨강’ 또는 ‘벌겅’이다. 이데올로기 시대를 지나면서 ‘빨갱이’란 말에는 아주 각별한 의미가 더해졌다. 적색에 잇닿은 말조차 꺼리게 하는 집단 트라우마를 형성하기도 하였다. 하필이면 물고기 새끼 이름을 사람이름에 썼을까? 귀엽기는 마찬가지이기 때문일까? 최범영/한국지질자원연구원 책임연구원
겁나 고장말 ‘겁나 싸가지가 없드만!’ ‘겁나’는 표준어 ‘굉장히’와 대응하는, 주로 전라도에서 쓰이는 고장말이다. ‘겁나’는 ‘아주 많다’는 뜻의 형용사 ‘겁나다’의 어근이 형태 변화 없이 부사로 쓰인 것이다. “여자는 하늘같이 훌륭한 것 같고 남자는 겁나 못난 것 같고 그라도만.”(<한국구비문학대계> 전남편) ‘겁나다’는 명사 ‘겁’(怯)과 ‘-나다’가 결합된 동사 ‘겁나다’에서 유래한 형용사인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겁나다’는 ‘무섭거나 두려운 마음이 생길’ 만큼 많다는 말이다. 뭇사람들이 갑자기 엄청난 돈을 갖게 되면 좋다는 생각보다는 두려움이 앞서는 것과 마찬가지로 고장말 ‘겁나다’는 사물에 대한 인간의 의식 세계를 고스란히 담아내는 말이다. 이런 사실은 ‘겁나’나 ‘겁나게’가 ‘많다’와 함께 쓰일 때 분명하게 드러난다. “학생 갸들도 매년 봄이 되면 핵교서 선거를 허는 모양인디 그 선거에 드는 돈이 겁나게 많답디다.”(<남도 기행> 홍성원) ‘겁나게’는 ‘겁나다’에 어미 ‘-게’가 결합되어 부사로 굳어진 고장말인데, ‘겁나’와 같은 의미다. “보육원 갸들, 영락없는 말벌떼맨치로 겁나게 무서운 패거리였잖어?”(<소라단 가는 길> 윤흥길) ‘겁나’와 대응하는 또다른 형태는 ‘겁찰게’인데, 주로 전남 동부에서 쓴다. “하늘 아래가 지와집이 겁찰게 지어져갖고 있드랍니다.”(<한국구비문학대계> 전남편) 이길재/겨레말큰사전 새어휘팀장
일 벌이고 치르고, 생기고 만들고, 있고 없고, 되고 안 되고 … 하는 말들과 두루 어울린다. 일이 담고 있는 뜻갈래가 열이 넘지만, 실제 우리 사회에서 일(직업)의 가짓수는 헤아릴 수 없이 많다. 그런데도 일자리가 귀한 시절이다. 나랏일·집안일·회사일, 큰일·작은일, 궂은일·좋은일, 날일·삯일, 흙일·논일·들일·물일·막일 … 들을 보면, 그 앞에 놓인 말에 따라 일의 성질이나 규모, 품질이 달라짐을 알 수 있다. 일에서 비롯된 이런 일컬음(지칭)은 시대에 따라 사라지고 새로 생기기를 거듭한다. 식모나 애보개 대신 파출부·아줌마·베이비시터란 말이 쓰이더니 요즘은 아기돌보미·가사도우미가 널리 쓰인다. 공장일 중에서 힘들고 위험한 기피 업종은 외국인 노동자가 대신 하며, 그나마 품삯이나 땅값이 싼 나라로 공장이 옮아간다. 공돌이·공순이 같은 얕잡는 말을 쓰지 않은 지도 오래다. 어떤 일을 하는 사람을 가리키는 뒷가지로 ‘쟁이·장이·꾼’을 쓴다. 대체로 그 사람을 홀하게 일컫는 구실을 한다. 날일꾼·삯꾼·장사꾼·씨름꾼 …, 옹기장이·미장이, 글쟁이·풍물쟁이·양복쟁이 …. 다행인 건 ‘꾼’ ‘쟁이’ 홀로 그 방면의 ‘전문가’를 일컫는 말로 쓰이는 조짐이다. 사람한테 일이란 힘이요 보람이다. 말을 바꾼다고 일거리나 일터를 가리기는 어렵다. 최인호/한겨레말글연구소장
갈가지 짐승이름 “앞니 빠진 갈가지 앞도랑에 가지마라. 잉어새끼 놀랜다./ 뒷니 빠진 갈가지 뒷도랑에 가지마라. 붕어새끼 놀랜다./ 애꿎은 할머니만 못살게 굴었네. 어여쁜 아가야. 아무리 칭얼대도/ 우리 할미 얼굴에 함박꽃 웃음만 퍼지네. 아이구 강생이 다 컸구나.”(‘앞니 빠진 갈가지’에서) 갈가지가 여기저기 가리지 않고 먹잇감을 찾아 갈개질을 하는 것처럼 아이가 조심성 없이 아무데나 다님을 걱정하는 할머니의 마음을 노래하는 글이다. 여기서 갈가지는 어린아이를 귀염성 있게 가리킨다. 할머니에게는 어린 손자가 꽃이요 웃음이 아니겠는가. ‘갈가지’는 송아지·강아지·망아지의 ‘아지’를 연상하여 호랑이의 새끼로, 강원도에서는 ‘개호주’라 이른다. 고기를 밝히는 사람을 ‘고기 호주’라 하듯이 개를 먹잇감으로 좋아하는 짐승이라는 이야기다. 갈가지의 ‘갈’(葛)을 칡과 관련하여 풀이하기도 한다. 그런데 북한에서는 표범을 갈가지라 한다. 표범은 재빠르게 나무 위에 기어오를 수 있으며, 사냥한 먹이의 일부를 나뭇가지에 걸어 둔다. 표범은 작은 쥐부터 사슴까지 잡을 수 있는 짐승은 모두 잡아먹는다. 먹을 만큼 잡는 게 아니고 보이는 건 닥치는 대로 죽이는 습성이 있다. 호랑이는 먹을 만큼만 잡지만. 갈개질을 하며 저보다 약한 짐승을 잡아 죽인다는 특성을 살려 갈가지라 한 것이다. 요즘은 ‘달러 호주’들이 판을 치는 자본주의 세상이다. 정호완/대구대 명예교수·국어학
슬리퍼 외래어 뒤축이 없이 발끝만 꿰게 만든 신을 ‘슬리퍼’(slipper)라 한다. 슬리퍼는 유럽에서 14세기께 신기 시작한 ‘팬터플’(pantofle)이란 신발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그러다 중세 말기에 이탈리아의 베네치아에서 고급 신발 위에 덧신는 ‘뮬’(mule)이라는 덧신이 발명되었고, 이것이 영국으로 건너가 16세기 엘리자베스 1세 시절에 ‘슬리퍼’라 일컫게 되었다. 이렇게 슬리퍼는 원래 실외화로 만들어졌다가 세월이 흘러 18세기에는 실내화가 되었다. 우리나라에서는 집 안에서 주로 슬리퍼를 신는데, 거실에서는 천으로 된 것, 욕실이나 마당에서는 플라스틱이나 고무로 만든 것을 신는다. 물론 집 밖으로 나갈 때도 신는데, 단정하다는 느낌을 주지는 못하는 것 같다. 그래서인지 수년 전에 슬리퍼를 다듬은 말은 ‘실내화’다. 다만, 거실에서 신는 것은 ‘슬리퍼’인데, 플라스틱이나 고무로 만들어서 집 밖에서도 신는 것을 일본말 ‘스릿파’(スリッパ)에서 꼴이 바뀐 ‘쓰레빠’라고 하는 경향도 없지 않다. 이런 두 가지 용도에 따른 낱말의 갈라짐을 하나의 다듬은 말로 포괄하는 바람직한 경우가 북녘에서 보인다. 북녘에서는 이를 ‘끌신’이라고 한다. 원래 ‘슬리퍼’가 발을 미끄러뜨려서 신고 벗을 수 있는 신발이라는 뜻으로 생긴 말이다. ‘끌신’은 신을 끌고 다닌다는 뜻으로 이해되므로 그 부리는 모양에 따른 단 하나의 이름으로 부족함이 없어 보인다. 김선철/국어원 학예연구사
신청·청구 언어예절 말도 본디 귀천과 높낮이가 없다. 사람이 말을 구분하고 차별하여 다루다 보니 달리 보이고 그렇게 쓰일 뿐이다. 대감과 상감을 두고 글자 뜻으로는 어느 쪽이 높은지를 따지기 어렵지만 임금을 상감이라고 하니 높아 보일 뿐인 것도 그렇다. 반대말들도 서로 맞서는 사물 따라 붙인 이름일 뿐이다. 법률 언어, 행정 언어를 규제하는 틀이 법률이다. 어떤 분야든 법률에서 용어나 이름, 지칭들이 정해지면 실천하고 행사하는 쪽에서는 이를 따르기 마련이다. 행정문서에서 쓰는 서식이나 용어들이 거의 그렇다. 일반에서도 외래어 쓰기가 늘어나지만, 법령이 이에 앞장서기도 한다. 새로 법령을 만들 때 한번 외래어를 쓰게 되면 다른 말로 고치기가 쉽지 않다. 지하철역에 가면 철로와 승강장 사이를 가로막는 시설이 있다. 이를 ‘스크린도어’라고 법령에 박아 놓아 ‘안전문’이라고 해도 될 걸 잘 고쳐 쓰지 못한다. 기관 따라 구분해 쓰는 말에 신청·청구가 있다. 형사소송법에서, 범죄 혐의자를 붙잡거나 구속하고자 할 때 “사법경찰관은 검사에게 신청하여 검사의 청구로” 관할 지방법원 판사한테 체포영장이나 구속영장을 떼어받도록 했다. 말뜻으로는 신청이나 청구나 구분이 안 되지만 특정 계층에서 쓰이는 계급이 다른 셈이다. 최인호/한겨레말글연구소장
꺼벙이 짐승이름 “아내가 분유를 타 보란다. 어리둥절한 일이긴 하였으나 누구의 부탁인데 아니라 할 수 있을까. 엉거주춤 분유통을 몇 개 겹쳐 놓고 위에 앉아서 이랴! 이랴! 난데없는 걸레가 날아든다. … 가수들은 노래를 부를 때 청중들이 손수건을 던지며 환호하면 행복해한다는데. 아내의 사랑에 눈시울이 젖어온다.”(‘어느 꺼벙이 남편의 일기’에서) 아이를 기르는 데서 남편과 아내의 구별이 있으랴. 아내가 바쁘면 남편이 아이를 돌보아야 함은 당연하다. 그래, 아내가 아이 줄 분유를 타보라 하여 어느 남편이 분유통을 깔고 앉겠는가. 꺼벙이의 본딧말은 ‘꺼병이’다. 꺼병은 꿩의 어린 새끼다. 일부에서는 꿩을 꺼엉이라 하는데, ‘꺼’에 병아리의 ‘병’을 합하여 꺼병이-꺼벙이라 했을 가능성이 높다. 꿩이 어릴 적엔 암수가 분명하지 않을 정도로 생김새가 우중충하고 못생겼음을 빗대어 외모나 활동이 어정쩡한 이를 ‘꺼벙이’라고 이른다. 가람 이병기 선생은 당호를 수우재(守愚齋)라 했다. 어리석음을 지키라는 뜻이다. ‘어리석음’의 본질은 ‘어리다’에 있다. 사리분별을 잘 못하니 어린 것이고, 뒤로 오면서 나이가 적다는 뜻으로 쓰인다. 그 본질은 ‘어리다’에 있다. 어린이는 어른의 아버지라 하였거니 조금은 어리석게 꺼벙하게 살면서 서로에게 정을 주고받을 수 있는 세상이라면 좋지 않겠는가. 정호완/대구대 명예교수·국어학
플래카드 외래어 천에 광고 문구나 구호, 선거 후보자 이름과 번호 같은 것을 적어 사람들이 잘 다니는 곳에 걸어 놓는 것을 ‘플래카드’라 한다. 주로 가로로 매다는데, 대개 가로수 사이나 관공서에서 정한 전용 장소에 허가를 얻어 설치한다. 건물 외벽에 세로로 달기도 한다. 말의 꼴로 보아 이것이 ‘카드’와 관계가 있을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으나 그렇지 않다. 이는 어원적으로 ‘붙이다’라는 뜻의 중세 프랑스말 ‘plaquer’에서 나왔으며, 거기에서 파생된 이름씨 ‘placard’가 영어로 들어가서 ‘플래카드’로 발음되었고, 그것이 우리에게 전해진 것이기 때문이다. 영어에서는 공공장소에 설치하는 게시물을 모두 플래카드라 이르므로 우리가 원래보다 좁은 뜻으로 쓰고 있다. ‘프랑카드’ 또는 ‘플랜카드’, ‘플랭카드’로 적는 경우가 있는데, ‘프랑카드’는 프랑스말 냄새가 나는 표기로서, 이 말의 어원이 프랑스말이란 것이 우연히 드러나는 듯하여 재미있다. ‘플랜카드’나 ‘플랭카드’는 ‘라’ 대신 ‘래’를 써서 프랑스말이 아닌 미국 영어 냄새를 풍기고자 하는 의도가 엿보인다. 플래카드는 우리말로 ‘현수막’(懸垂幕) 또는 펼침막이다. 그런데 현수막은 세로로 길게 드리운 게시물을 뜻하기 때문에 아무렇게나 걸 수 있는 플래카드와는 맞지 않는 면이 있다. 하지만 기능이 같다는 기준에서 서로 같은 말로 생각할 수 있다. 김선철/국어원 학예연구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