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소리 짐승이름 토굴 안에는 어미 곁에서 오소리 새끼가 끙끙대며 울고 있다. 원효가 애처롭고 슬퍼 목탁을 치며 염불을 하고 있는데, 대안이 돌아와 원효를 보고 물었다. “뭐 하는 거냐?” “새끼가 어미의 죽음으로 울고 있기에 염불을 합니다.” 대안이 혀를 차며, “배고플 때는 밥이 염불이여!” 하며 동냥해 온 젖을 주는 게 아닌가. 원효는 말을 잊었다. 오소리 새끼를 통해서 원효가 깨달음을 얻는 속내를 푼 얘기다. 오소리는 ‘오수리, 오수’라고도 한다. 임실 ‘오수’(獒樹)에 가면 ‘의견비’가 있다. ‘오’(獒)는 개, 곧 ‘크고 억센(敖) 개’란 뜻을 담고 있다. 어느 장날 ‘김개인’이 술에 취해 길에서 자고 있는데, 주변에 불길이 다가오고 있었다. 오수는 털에 물을 묻혀 주인 주변의 풀을 적셨다. 찬물 덕에 술에서 깨어나 보니 옆에서 오수가 숨져 있었다. 개무덤을 만들어 장사를 지내고 사람들은 의로운 오수를 기려 빗돌을 놓고 ‘의견상’을 세웠다. 몸은 작고 다리도 짧지만 송아지보다 큰 순록도 사냥감이 되고, 독사도 잡아먹는다. 그러고는 겨울잠에 든다. 털이 무성하며, 독사한테 물려도 죽지 않는다. 한번 물면 그만인 통이빨이다. ‘오소-오사-오수’를 낱말 짜임으로 풀이하면 ‘옷’의 변이형으로 볼 수 있다. 옷은 몸에 두르는 것인데, 오소리들은 넉넉한 털로 옷을 둘렀으니 …. 털옷이 그 이름의 알맹이라고나 할까. 정호완/대구대 명예교수·국어학
노트·노트북 외래어 정보통신 환경이 세계 최고라는 우리나라지만, 경기침체로 이를 활용하는 각종 기기들의 개발과 소비가 많이 줄었다고 한다. 그런 기기의 대표 격인 ‘노트북’에 얽힌 얘기를 살펴보자. ‘영어가 타지에서 고생한다’는 우스갯소리와 함께 우리말에서 달리 쓰이는 영어 가운데 ‘노트’(note)가 있다. 그 자체로 ‘공책’이라는 뜻으로 쓰이거나, ‘노트하다’라고 해서 뭔가를 적어둔다는 뜻으로도 쓰이는 이 말은, ‘공책’이라는 뜻일 때는 영어에서 ‘노트북’(notebook)이라고 한다. 영어에서 이름씨로서의 ‘노트’에는 ‘공책’이라는 뜻은 없고, 이런저런 종류의 ‘적발’(쓴 것)을 뜻할 뿐이다. 반면, ‘노트북’은 우리말에서 ‘공책’을 가리키는 일은 없이 공책처럼 얇다는 뜻의 ‘노트북 컴퓨터’(notebook computer)만을 뜻하는데, 영어권에서도 노트북 컴퓨터를 줄여 ‘노트북’이라고 일컫기도 하므로 콩글리시는 피하였다. 한편, 영어권에서 노트북 컴퓨터를 이르는 가장 흔한 표현은 ‘랩톱’(laptop)인데, 이는 ‘랩톱 컴퓨터’의 준말이고 무릎에 올려놓고 쓸 수 있다는 뜻이 들어 있다. 이런 점을 고려하면 ‘컴퓨터’야 너무 오래 써와서 우리말로 바꾸기가 늦었다 할지라도, ‘노트북 컴퓨터’는 뭔가 기발한 표현으로 바꿔 쓸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아니면 이제 막 퍼지기 시작한 ‘넷북’(netbook)을 바꿔 보면 어떨까. 김선철/국어원 학예연구사
시라손이 사람이름 1470년, 뇌물을 받은 이들의 실정을 사헌부에서 임금께 아뢰고 그들을 벨 것을 청하였다. 김정광에게 뇌물을 바친 이들을 살펴보면 ‘김검동’은 무늬 비단 두 필, 명주 한 필, 지초 닷 말, 덩이쇠(철정) 100매, 술 한 동이, 굵은베 55필을 바쳤고, ‘김독대’는 모라(모직) 평량자 하나와 어물, 굵은베 세 필, ‘김어부개’는 기와 2천 장, 무명베 20필, 땔나무 세 수레 등을 갖다 바쳤다. ‘시라손’은 흰 패랭이(초립) 하나, 오매영자(갓끈을 다는 고리), 피륙 두 필, 좋은 베 네 필, 명주 두건 한 벌, 먹거리와 굵은베 14필을 바쳤다. 그 밖에 ‘이검불이·갯디·쇳디·숑아지·논동이·김반야·김부헙이·김타내·문미동이·듕손이’ 등이 있었다. 살쾡이 닮고, 귀 끝에 길게 자란 센 털로 다른 짐승과 구별이 되는 고양잇과 동물은 ‘스라소니’이며, 옛말로 ‘시라손’(土豹=토표)이라 했다. 1458년, 첨지중추원사 ‘이걸더개’의 동생 ‘시라손·저저’가 ‘우디거족’에게 붙잡혀 갔다. 신숙주가 경원에 있을 때 그들을 찾아가 데려오라고 ‘유텅거’에게 말했다. 이듬해, ‘우디거족’은 ‘오랑캐족’과 친하게 지내기로 하고 포로를 풀어주었다. 한반도 사람이름에 ‘걸다개’도 보인다. <용비어천가>에 보이는 ‘컬더거’와 비슷하다. 동물원에 가면 ‘스라소니’를 볼 수 있을까? ‘시라손이’란 옛사람을 그려보고 싶다. 최범영/한국지질자원연구원 책임연구원
삐리라 고장말 ‘삐리다’는 표준어 ‘버리다’에 대응하는 말이다. ‘불다’(뿔다)가 주로 경상·전라, ‘번지다(뻔지다)·분지다(뿐지다)’가 전라(충청 일부)에서 쓰이는 말이라면, ‘삐리다’는 경상·전라에다 충청·강원·평안 쪽에서도 쓰인다. “펀뜩 안 하마 죽어 삐리예 ….”(<전쟁과 다람쥐> 이동하) “에이참, 성님의 찔벅거리는 바람에 괘얀시 내 저녁밥만 절딴나 삐렸네!”(<완장> 윤흥길) “낸(아내)이 저고리를 벗어 주느꺼니 범이 개지구 어데메루 가 삐렀다.”(<한국구전설화> 평안편) ‘뻐리다’는 한반도 대부분 지역에서 쓰인다. “사람 되여 본다는 풍신이 아주 버린 늠 되엿 뻐리니 ….”(<관촌수필> 이문구) ‘뻐리다, 삐리다’는 ‘F리다>버리다>뻐리다>뻬리다>삐리다’로 이어지는 고장말로, ‘뻬리다’는 충청·경상·전라에서 쓰이나, ‘삐리다·뻐리다’보다는 덜 쓰인다. “우린 그저 차나 바꿔 타 뻬리면 그걸로 그만이지만 ….”(<살아 있는 늪> 이청준) ‘비리다’는 ‘F리다>버리다>베리다>비리다’와 같은 변화를 보이기도 하는데, 자주 쓰이지 않는 편이다. “어장께나 하는 사람은 부산으로 어디로 머 다 살러 나가 베리제.”(<한국구비문학대계> 경남편) “아 뛔들어서 근너 간다구 허우적거리다 죽어 베렸네.”(위 책, 충남편) “때려 죽여 비렸다.”(위 책, 전북편) ‘베리다, 비리다’는 경상·전라와 충청 일부에서 쓰인다. 이길재/겨레말큰사전 새어휘팀장
진정서 언어예절 기록을 남긴다는 점에서 문서, 곧 적발을 중히 여기는데, 기록 역시 생각과 말의 갈무리다. 관청에서는 일이 주로 적발로 오간다. 그림·글·말·사진들도 디지털로 갈무리하는 데 이르렀지만 그 방식이 얼마나 안전하고 오래갈지는 모른다. 살다 보면 부탁할 일이 잦아진다. 부탁이나 당부로 안 되면 통사정을 한다. 관청을 상대할 때, 시비를 법으로 다투는 방식이 있고, 청원·탄원·진정·질의·건의·제안 … 들도 한다. ‘진정’은 같은 소리 다른 말이 열댓 가지가 넘는데, 실제 쓰이는 말은 서넛에 지나지 않는다. 흔히 ‘진정이 들어오다, 진정을 하다, 진정이 몇 건이다, 진정서를 내다’처럼 쓰는데, 이때는 진정(陳情)을 쓴다. ‘사정이 사촌보다 낫다’는 말처럼 개인이든 관청이든 사정도 잘만 하면 어느 정도 먹히는 까닭에 나온 말이다. 전문가를 거치지 않고 돈과 품을 덜 들이고 할 수 있는 일이 ‘진정’이다. 억울하고 답답할 때 관청에 적발로 하소연하는 것으로, 꽤 유용한 방식이다. 다만 염치·분수·의리·정분에 얽매여 참고 지내는 걸 미덕인 양 잘 활용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 그저 ‘누가·언제·어디서·무엇을·어떻게·왜’ 등 기본 얼개를 갖춰 사실을 더덜없이 엮으면 된다. 기사문체와 다를 게 없지만, 사정이나 억울함을 호소하는 점이 좀 특이하달까. 남에게 억울한 짓을 하지 말아야겠지만 그런 일을 당했을 때 참기만 해서는 사회가 맑아지지 않는다. 최인호/한겨레말글연구소장
스펙 외래어 젊은이들이 일할 곳이 없어서 힘들어하고 있다. 그나마 위안이 되는 것은 사회 전반으로 퍼져 나가고 있는 일자리 나누기 운동이다. 잔심부름이나 복사 같은 허드렛일을 하는 실습 사원(‘인턴 사원’을 다듬은 말) 자리나 늘리는 것은 장기적으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지적도 있다. 그래서 저마다 능력과 자질을 높이려는 노력도 계속 이어지고 있다고 한다. 취업을 준비하는 젊은이들이 ‘스펙을 높이다’라는 일종의 은어를 쓰는 경우가 있다. ‘스펙’은 영어 ‘스페시피케이션’(specification)이 본딧말인데, 줄여서 ‘스펙’(spec)이라고 하는 것을 우리가 그대로 쓰고 있다. 이는 어떤 물품을 구성하는 부품과 그 각각의 기능·성능 따위 세부 사항을 뜻한다. 그래서 ‘그 물건의 스펙이 어떻게 되느냐’고 묻는다면 크기·무게, 덧붙는 기능을 묻는 것이기도 하고, 처리 속도 따위의 성능을 묻는 것이기도 하다. ‘스펙을 높이다’가 앞서 말한 은어일 경우에는 물건 아닌 사람의 자질이나 능력이라는 뜻으로 쓰이는 것이다. 그래서 취업 준비생이 ‘스펙을 높인다’고 하면 학위·자격증을 더 따거나 또는 여러 어학 점수를 확보하는 일을 뜻한다. 이렇게 충분한 능력을 갖추고서 일을 하고자 해도 일할 곳이 없어 못하는 자신들의 처지를 물건에 빗대어 말하는 것은 눈물 섞인 자조적인 표현이어서 듣는 이가 그리 즐겁지만은 않다. 김선철/국어원 학예연구사
묵어 불어 고장말 ‘불다’는 행동이 끝났음을 보이는 보조동사로, 표준말 ‘버리다’에 대응하는 말이다. ‘불다’는 ‘뿔다’와 함께 전라·경상 지역에서 흔히 쓰인다. “그라다가 참말로 묵어 불면 어쩔라고 그렇게 태평스럽소?”(<녹두장군> 송기숙) “야들 다 죽어 뿔겄네, 죽어 뿔어.”(<불놀이> 조정래) “그린디 그 닷 되 밥을 혼자 다 먹어 뻔져.”(<한국구비문학대계> 충남편) ‘불다/뿔다’는 ‘-었-’과 결합하면 ‘ㄹ’이 탈락하기도 한다. “그래서 어무임은 물론, 저한테 쪼맨큼 기대를 걸었던 주위 사람들을 실망시키고 말아 뿠지예.”(<노을> 김원일) 전라 쪽에서는 ‘번지다/뻔지다, 분지다/뿐지다’들도 쓰인다. ‘번지다/뻔지다’는 전북에서 많이 쓰고, 충남 일부에서도 쓰인다. “독을 가져가시오. 웃댕이 하나만 딱 내려놓고 다 가져가 뻔지라.”(<한국구비문학대계> 전북편) “그런 자식놈이 죄다 먹어 분진게 아 그 애기를 업고 묻을라고 갔다 그 말이여.”(위 책) “꾀 홀랑 벗고, 옷 죄다 벗어 뿐지고 요 이불 밑이서 이렇게 자먼 좋을 턴디 그 옷을 걍 입고 자서 그것 땜시 내가 성화를 댔소 잉.”(위 책) “아 즈 아버지 치상치고서는 그냥 내쫓아 번졌네.”(위 책, 충남편) ‘버리다’는 주로 동사 뒤에 쓰이지만, 전라 쪽에서는 일부 형용사 뒤에서 놀라움이나 강조를 나타내기도 한다. “으매 추워 분 거.” “오지게 좋아 불어.” 이길재/겨레말큰사전 새어휘팀장
덕분 언어예절 따지거나 욕을 들으면 부아가 난다. 일을 하다 보면 결과에 대한 책임을 묻거나, 원인·이유를 들추기 마련이다. 그런 때 탓·까닭·때문 … 같은 말을 쓴다. 본디 ‘까닭·때문’은 가치판단에서 중립인데, 특히 ‘때문’을 남발하는 이들이 많다. 그래서 말도 글도 딱딱해지게 된다. ‘탓’은 잘못된 일에서 그 원인·책임을 짚을 때 쓰며, 떠넘기기·핑계들과 어울려 쓰인다. “이웃 식당 때문에 장사 안 돼” “너 때문이야!” “뉴칼레도니아는 독립 때문에 논란을 벌이고 있다.” 여기서 ‘때문’은 ‘탓’에 가깝다. 그런 말투로는 문제를 풀기 어렵다. ‘독립 때문에’는 ‘독립을 두고, 독립 문제로’로 바꿔 쓸 일이다. 십수년 전 천주교 쪽에서 ‘내탓이오!’ 운동을 벌인 적이 있는데, 잘못된 일을 남 탓, 곧 네 탓으로 돌리는 풍토를 바로잡고자 벌인 갸륵한 운동이었다. 같은 말이라도 ‘이유·원인’보다는 ‘까닭’이 머리(이성)로 말하고 받아들이기에 성금이 있다. ‘그렇기 때문에’는 ‘그래서·그러기에·그러므로’처럼 다른 어찌말이나 ‘-에·-므로’ 따위 토씨로 대신하면 거슬리는 ‘때문’을 덜 쓸 수 있다. ‘덕분·덕택·덕’은 다소 과장되게 쓰더라도 사람을 편안하게 해 주는 말이다. “다 선생님 덕분입니다.” “덕분에 잘 다녀왔습니다.” 잘못된 일에까지 ‘덕분’을 쓴다면 반어법이 될 터인데, 이도 사심없이 쓴다면 탓할 게 없겠다. 최인호/한겨레말글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