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망졍이 사람이름 전라 좌수영의 ‘김개동·이언세’ 등은 손죽도 싸움에서 왜노(倭奴)에게 붙잡혀 남번국(마카오 일대)에 팔려 갔다가 중국으로 도망쳤다. 1588년, 김개동이 이르기를 “沙火同(사화동)이란 사람이 있는데 왜노에게 붙잡혀 가 온갖 충성을 다하고 있습니다. 그가 있는 오도에는 사로잡아 온 사람이 수도 없고 배도 500여척이나 됩니다” 하였다. 沙火同/沙乙火同(사을화동)은 ‘살블동이’인 듯하다. 1596년, 왜에 붙잡혀 갔다 도망쳐 온 ‘길갓티’가 이르기를 “관백(도요토미)은 62∼63살로 몸이 가냘파 별로 용맹하거나 건실하지도 않은데 중원을 쳐들어간다며 정예 병사를 뽑고 무기·배·화약을 만들어 군사훈련을 일삼는데 사람들의 원성이 자자합니다” 하였다. ‘살’이 든 이름에 ‘살마·살사·살부리·살턱아기·살망졍이’도 있다. 1728년, 역적 미구의 가족은 모두 노비가 되었다. 손녀 ‘큰아기’·손자 ‘살턱아기’가 있다. 1759년, 형조판서 신회가, 평양 사는 김탁이 이현보를 죽인 일에 대해 임금께 아뢰었다. 김탁을 ‘살망졍이’와 대질시키니 대꾸도 제대로 못하는 것을 보아 김탁이 주범이고 살망졍이는 곁에서 지켜보았을 뿐이라고 민백상이 아뢰었다. 하필이면 고운 이름 두고 ‘살망졍’일까? 비록 곤궁하게 살망정 살블동이처럼 민족 반역하며 살진 않겠다는 다짐이었을까? 최범영/한국지질자원연구원 책임연구원
마름질 언어예절 문무(文武)를 보통 붓과 칼로 견준다. 실제로는 붓과 칼이 같이 놀 때가 많다. 말글을 부려 쓴다는 일이 칼질·난도질·가위질 그 자체인 때가 많은 까닭이다. 이름을 짓고 사물을 정의하고 판단하는 일이 칼질이자 마름질이며, 살을 쏘는 일과 닮았다. 어떤 사안을 두고 재단한다거나 마름질한다고 하면 옳고 그름을 헤아리고 이를 바탕으로 판단하는 걸 이른다. 재고 자르고 깁고 하는 바느질꾼·재단사의 일을 빗댈 수 있다. 찧고 까불고 이러쿵저러쿵하는 일들도 마찬가지다. 말에 가시(뼈)가 들었다, 화살을 날린다, 날이 섰다, 말이 날카롭다고 하는 비유들에서도 붓과 칼이 같이 놂을 볼 수 있다. 남의 얘기를 듣지 않거나 두루 살피지 않고 속내를 모르는 처지에서 올바른 진단·판단을 하기 어렵다. 하물며 부드럽고 화합하는 말을 어떻게 바라랴. 마름질에도 틀(본)이 있어야 하고, 잘라낸 베를 대어 깁는 일도 중요하다. 특히 이치를 세우고 엮는 논문·재판·해석 들에서 쓸모 있는 방식이지만, 일상 대화에서 각별히 따져서 확인할 때를 빼고서는 함부로 마름질하기를 삼갈 필요가 있다. 판단이 그릇될 수 있는데다, 자칫 오해나 감정을 사기 쉬운 까닭이다. 바라지도 않는 자리에서 배 놔라 감 놔라 하는 식의 간섭이나 훈수가 되기 십상이다. 최인호/한겨레말글연구소장
능소니 짐승이름 “옛날 한 사내가 연미산에 나무하러 갔다 길을 잃었다. 배가 고파 바위 굴 속에 쉬던 중 한 처녀를 만나 부부의 연을 맺게 되었다. 하지만 여인의 정체가 곰임을 안 사내는 놀라 도망가려 했으나 헛일. 이제 아이 둘을 낳았으니 도망가지 않으리라 안심한 암곰이 굴을 나간 사이 사내는 강을 헤엄쳐 도망을 갔다. 암곰은 새끼 곰을 안고 금강에 빠져 죽고 만다. 그 뒤 강을 건너는 나룻배가 풍랑에 뒤집히는 일이 많아 사람들이 나루 옆에 사당을 짓고 곰의 넋을 위로했다.”(고마나루 전설) 이 전설과 관련하여 고마나루로 부르다 한자화되는 과정에서 미화해 비단 금(錦)자를 써서 금강이 되었다. 더러는 비단가람이라 일컫기도 한다. 곰 새끼를 능소니라 한다. 능(能)은 한자로 곰을 가리킨다. 자라를 이를 때는 ‘내’, 별을 이를 때는 ‘태’로 읽는다. 팔공산에 가면 능성재가 있다. 본디의 우리말로는 곰재(熊峴)다. 곰 웅(熊)의 바탕이 능(能)이다. 능력이 있어야 산다고 할 때, 능력의 상징적인 뿌리는 곰에서 말미암는다. 둔해 보이지만 재주를 잘 부린다. 사람처럼 일어섬은 물론, 나무에 잘 기어오르며 헤엄도 잘 친다. 재주꾼을 ‘능꾼’이라 함도 곰에서 멀지 않다. 딴청을 부리며 다른 사람을 속일 때 우리는 ‘능청’ 부린다고 한다. 그 밑바탕에 깔린 의미는 능소니가 재주를 잘 부린다는 데서 뿌리를 내리고 있다. 정호완/대구대 명예교수·국어학
사이드카 외래어 최근 우수한 성적을 내고 귀국한 한 피겨스케이팅 선수가 어떤 행사에 참석하는 과정에서 ‘경찰 사이드카가 동원되었다’는 기사가 나온 적이 있다. 그러나 정말 국어사전에 있는 대로 ‘오토바이 따위의 옆에 사람이나 물건을 싣도록 달린 운반차’나 ‘그것이 달린 오토바이’가 등장했을까. 십중팔구 아닐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가 흔히 ‘사이드카’라고 하면 흰색에 육중하게 생겼고 묵직한 소리를 내는 교통경찰용 오토바이 자체를 이르기 때문이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 경찰 오토바이가 특정 행사를 치를 때 오른쪽에 사이드카를 장착하고 등장한 데서 ‘사이드카’가 경찰 오토바이를 일컫는 말이 되었을 것이다. 만약 일반 시민들도 이런 오토바이를 흔히 가지고 있었다면 ‘사이드카’가 경찰 오토바이를 뜻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한편, ‘사이드카’는 전문 분야에서 다른 뜻으로도 쓰인다. 경제용어로서는 ‘선물가격이 전일 종가 대비 5% 이상 상승 또는 하락하여 1분간 지속될 때 발동하여, 발동하는 순간부터 주식시장 프로그램 매매 호가의 효력을 5분 동안 정지하는 제도’를 일컫는다. 이는 주가지수 선물시장을 개설하면서 만든 것인데, 선물시장이 급변할 경우 현물시장에 나쁜 영향을 끼칠 수 있어 그 영향을 누그러뜨림으로써 현물시장을 안정적으로 운용하기 위해 도입하였다고 한다. 술로서는 ‘브랜디, 퀴라소, 레몬즙 따위를 섞어서 만드는 칵테일의 한 종류’를 이른다. 김선철/국어원 학예연구사
더하고 빼기 언어예절 가르는 말이 있고 모으는 말이 있다. 누구나 이런저런 생각이 깃들어 갈피를 잡기 어려워한다. 나누고 따지고 부추기고 차별하는 생각이 같은 묶음이며, 더불고 합치고 덮고 맺고 모으는 일이 한묶음이다. 이는 죽임과 살림, 부정과 긍정으로 나타난다. 빼기와 가르기를 부정적인 것으로 보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거품은 빼야 하고, 부풀려진 것은 제모습을 찾도록 해야 한다. 썩은 데는 도려내고, 나쁜 것은 골라내야 한다. 그래야 병이 낫고 새살이 돋으니까. 하나를 여투어 둘을 먹게 하고, 괴로움·기쁨도 나누면 짐이 가벼워지고 기쁨은 더한다. 그러니 더하고 빼고 곱하고 나누는 일 어느 하나 긴하지 않은 게 없다. 슬기로운 이는 막힌 것을 트고 뜻을 통하며 산다. 울타리와 벽을 치게 하는 종자가 있다. 시기·질투·무시·원망·체념·질림·싫증 … 들이다. 자기만 옳다거나 못났다고 여기는 마음도 벽이요 울타리다. 마음을 트는 데는 대화가 기본이다. 여러 지수가 있지만 우리 사회의 의사소통 지수도 만들어 볼 만하겠다. 최고의 틈은 인정을 베푸는 것이다. 대체로 가르는 말은 매몰차며 싹싹한 맛이 없고 옹골지고 표독스럽다. 이런 말은 듣는 이로 하여금 마음을 다치게 하고 원망을 품게 한다. 이때는 얘기를 하지 않는 게 낫다. 우리 사회에서 벽을 치고 사람을 가르는 말은 색깔론·지역감정·차별의식·학벌숭상 … 들에서 나온다. 최인호/한겨레말글연구소장
켄트지 외래어 어린이집에 다니는 어린이들은 크레파스와 스케치북을 처음 가져보게 되는 것이 보통이다. 유치원까지는 교실에 놓고 다니다가 초등학교에 진학하면 미술 수업이 있을 때만 이런 도구들을 가지고 다니게 되는데, 키가 작은 저학년 학생들이 자기 몸집의 절반만한 스케치북을 들고 다니는 것을 보면 조금 안쓰러움을 느끼는 분들이 계실 것이다. 초·중등학교 미술 시간에 스케치북(sketchbook) 대신 켄트지를 사용하는 경우가 있다. 스케치북에는 일반적인 도화지들이 묶여 있고, 그런 도화지를 흔히 켄트지라고 하는데, 사전적으로 도화지는 그림을 그리는 데 쓰는 종이를 통틀어 일컫는 말이다. 그래서 켄트지, 와트먼지(Whatman紙), 화선지, 닥종이, 조침지 같은 것들이 여기에 포함된다. 전문 분야에서 켄트지는 일반적인 도화지보다 더 질이 고급스러운 종이이다. ‘켄트지’(Kent紙)라는 명칭은 이 종이가 영국 동남부 켄트 지방에서 처음 생산되었던 까닭에 붙었으며, 1930년대의 사전에도 실렸으니 우리가 사용한 지는 꽤 오래된 셈이다. 켄트지도 고급품과 일반품으로 나뉘는데, 고급품은 무명이 원료이고 일반품은 화학 펄프로 만든다. 켄트지는 표면이 평평하고 매끄러워 연필로 가는 선을 그을 수 있고, 지우개로 지워도 보풀이 일지 않고 번지지 않으며, 습도에 의한 줄어듦이 적고 순백색이다. 그래서 그림 그리기뿐 아니라 제도용으로 적합하며, 잘라서 명함이나 카드 용지로도 쓴다. 김선철/국어원 학예연구사
가개·까까이 사람이름 태종 4년(1404년), 지영월군사 허조가 효자·열녀 집의 부역을 없애 달라고 청했다. “고을에 ‘김노개·김가개’ 형제와 ‘석노’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모두 아비 죽고 삼년상 기한이 이미 지났는데, 일로 관가에 왔기로 상복이 다 해지고 얼굴에 근심이 가득하여 물으니, 부모상은 대사이니 대사를 치른 지 한참 지난 뒤에는 상복을 다시 입을 수 없으므로 벗지 않고 있다고 하였습니다.” <훈몽자회>를 보면 ‘가개’는 시렁이나 선반(棚)뿐만 아니라 차양(凉棚)도 이른다. 달리 허름하게 얽어 지은 집도 ‘가개’라 하였다. <의궤>를 보면 행사를 위해 임시가옥인 ‘가가’(假家)를 짓는다. ‘가겟방·가겟집’의 ‘가게’를 한자말 ‘가가’에서 비롯되었다고 보는 견해도 있으나 이미 집의 뜻으로 ‘가개’가 있었던 점을 고려하면 ‘가가’는 ‘가개’의 이두 표기일 뿐인 듯하다. 선반이 많아 붙여졌을 ‘가겟방·가겟집’은 나중에 ‘가게’로만 부르게 된 것 아닐까? 프랑스 말 ‘비블리오테크’는 ‘선반’과 ‘도서관’의 뜻을 동시에 갖고 있다. ‘가개’는 야인 지역까지 쓰이던 이름이다. 1599년 2월, 누르하치는 글자에 대한 아이디어를 ‘에르더니 교수’와 ‘까까이 판관’에 일러 몽골 글자를 고쳐 만주말을 적을 수 있게 했다. ‘까까이’(G’ag’ai)는 ‘가개’(가가이)의 뒷시대 모습이라 할 수 있다. 최범영/한국지질자원연구원 책임연구원
민원 언어예절 행정기관은 물론이고, 국회·법원 비탈로 가는 민원도 숱하다. 가히 민원 공화국이라 할 만하다. 기업체에는 손님, 곧 소비자나 이용자 민원이, 언론사에도 독자들의 민원과 비판이 있다. 집단과 개인, 개인과 개인 사이에도 민원이 오간다. 심지어 부탁·당부·청탁·요청·요구·확인·청원·하소연 … 같은 말들을 제치고 민원이란 말을 쓰기까지 한다. 법무사·변호사·변리사·회계사·세무사 …들은 민원을 전문으로 풀거나 대행해 주는 직종들이다. 민원은 주민·소비자가 누릴 자연스런 권리인 게 대부분이어서 요청을 들어줘야 마땅하다. 법률이란 민원을 규제·보장하는 근거라고 정의할 수도 있겠다. 이를 해결하는 데 관청의 존재 이유가 있는 셈이다. 그래서 공무원을 머슴·공복으로 일컫기도 한다. 요즘은 주인을 ‘고객’으로, 모시는 일을 ‘서비스’로 바꿔 쓸 뿐이다. 민원 가운데는 말썽거리도 많은데, 따라서 민원이 발생할 소지가 큰 일은 벌이지 않으려 한다. 그 극단이 공무원의 복지부동이다. 민원 서류는 틀로 굳혀 쓰는 게 많지만, 글을 길게 써야 할 때도 적잖다. 대체로 상대·청자높임 말투·문투를 쓴다. 예컨대 국회에 내는 청원서를 보면 청원하는 글은 ‘합쇼체’지만, 이에 덧붙이는 국회의원의 ‘소개의견’은 ‘해라체’일 때가 많다. 이는 공적으로 굳어진 방식이라기보다 관습으로서, 부탁하는 쪽에서 합쇼체를 써야 호소가 먹혀들 것으로 여기는 데서 연유한 듯싶다. 최인호/한겨레말글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