똥금이 사람이름 <동국신속삼강행실 열녀도>에 이런 기사가 있다. “김제 사람 ‘똥금이’(同叱今)는 향리 이당(李堂)의 계집이라. 지아비 죽거늘 몸이 마치도록 상복을 벗지 아니하고 아침저녁 한결같이 살아 있을 적처럼 상식(上食)을 하니라. 공희대왕조(중종)에 정려하시니라.” ‘똥’은 동물이 먹은 것을 삭혀 밖으로 내보낸 것, 쇠붙이가 녹고 남은 찌꺼기(쇠똥), 먹물이 말라붙은 찌끼(먹똥)도 이른다. 사람이름에도 ‘똥’은 널리 쓰였다. 사내 이름에 ‘똥이·똥가이·똥갈이·똥노미·똥딘이/똥진이·똥삼이·똥손이·똥쇠·똥수·똥지기’들이 있고, 계집 이름에도 ‘똥개·똥비·똥지·금똥이’들이 있다. ‘개똥이·말똥이·쇠똥이’는 요즘까지도 잘 알려진 이름이다. 남의 말을 잘 안 들어주는 사람을 ‘말똥 같이 된 사람’이라고 한다던가? ‘괴똥이’는 고양이똥이다. 쥐똥나무는 ‘주똥나무’라고도 한다. ‘주똥이’는 ‘쥐똥만한 이’란 뜻인 모양이다. 몽골에서는 태어난 아이에게 험한 이름을 지어주고, 두 살에서 다섯 살이 되어서야 머리 깎는 의식에서 제 이름을 지어 주는 풍속이 있다고 한다. 우리 겨레에게도 마찬가지 풍습이 있었을 것으로 보기도 한다. 하지만 ‘똥금이’를 비롯한 이름들은 이미 어른이 된 이들의 이름이어서 저런 풍속과 어울리는 이름으로 들출 보기는 아닌 듯하다. 최범영/한국지질자원연구원 책임연구원
디려놓곡 내여놓곡 고장말 ‘-곡’은 표준어 ‘-고’에 대응하는 제주말이다. ‘-고’는 주로 두 가지 이상의 사실을 단순히 나열하거나(물이 맑고 차다), 어떤 한 사실이 후에 일어난 사실의 원인이 됨을 나타내는 말이다.(비가 오고 날씨가 추워졌다) 그런데 제주말에서는 앞쪽의 뜻으로만 ‘-곡’이 쓰인다는 점이 표준어의 ‘-고’와는 다르다. “그놈들이 다 물러가면 우리대로 잘 살곡 마음대로 해산물도 잡앙 팔곡 헐 수 있는 거 아닙니까.”(<껍질과 속살> 현길언) “너의덜 말을 들어서 오라민 오곡 가라민 갈 것이냐!”(<한국구비문학대계> 제주편) 제주말 ‘-곡’은 이미 500여 년 전인 15세기에서부터 쓰이던 말로, 현대에 와서는 오로지 제주 지역에서만 살아남은 고장말이 되어버렸다. 15세기 당시 ‘-곡’은 ‘-고’를 강조하여 말할 때 쓰는 말이었다고 한다. “어마니미 니D샤Q 너희 出家N거든 날 F리곡 머리 가디 말라.”(<석보상절>) 표준어 ‘-고’에 대응하는 또다른 고장말은 ‘-구’이다. ‘-구’는 ‘-고>구’와 같은 변화를 겪은 고장말인데, ‘-고>구’의 변화는 ‘삼촌’을 ‘삼춘’, ‘고모’를 ‘고무’라고 발음하는 것과 같은 현상이다. ‘-구’는 제주도와 경상도, 전라도(전북의 전주 이북 지역 제외)를 제외한 대부분의 지역에서 쓰이는 말이다. “처먹어라 … 너 생각허구서 배 고푼 것두 안 먹구 애꼈다가 갖구 왔다!”(<쑥국새> 채만식) “간밤에는 집을 비여놓구 친구허구 색주가엘 가서 술 먹구 기집 끼구 놀구 그랬으니까 …”(<속 천변풍경> 박태원) 이길재/겨레말큰사전 새어휘팀장
험담 언어예절 사람들은 대놓고든 돌아서서든 남을 욕하거나 헐뜯기를 좋아한다. 그래선지 우리에겐 좋든 나쁘든 아예 남 얘기를 하는 걸 금기로 여겼다. 할일 없고 쓸데없는 소리라는 것이다. 집안·가족 단위에서 말조심을 하도록 하던 밥상머리 내림이다. 이런 내림은 가족이 흩어져 사는 요즘은 찾아보기 어려워졌는데, 말길을 통제한다는 점에서 악덕일 수도 있겠다. 하지만 집안에서 바깥 얘기나 남 얘기를 입에 올리는 것이 ‘미덕’이 아니라는 점을 일러 주는 본보기라 하겠다. 대개 남 얘기를 하다 보면 흉이나 욕으로 번지는 까닭이다. 요즘 인터넷상의 악성댓글·뒷얘기·뒷말들도 헐뜯거나 욕·비난으로 나타나는데, 찧고 까분다는 말처럼 이 역시 악덕임에는 틀림없다. 특히 사생활 문제에서는 그 사람의 명예와 잇닿을 때가 많다. 하지만 정당한 비판은 권장할 일이다. 거기서 발전이 나오는 까닭이다. 매체가 인터넷이든 공공 언론이든, 그 내용이 정치·윤리든, 법적인 것이든 정당한 비판을 처벌할 일은 아니다. 공인이거나 유명세를 타는 사람은 갖가지 비판에서 벗어나기가 어렵다. 책임이 무겁고, 관심의 대상이 되는 까닭이다. 괴롭지만 비판을 넘어 헐뜯는 말까지도 받아들이고 감내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말하는 쪽에서 조심할 일은, 사물의 옳고 그름을 가려 판단하거나 밝히는 일과 헐뜯기·험담·비난이 구분이 안 될 때가 많다는 점이다. 비판은 사람을 살릴 때가 많지만 험담은 사람을 죽일 때가 많다. 최인호/한겨레말글연구소장
비둘기 짐승이름 어느 해 겨울이었다. 월출산 구림 마을 성기천 가에서 어여쁜 처자가 빨래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뭔가가 자꾸 빨래에 와 부딪쳐, 처자는 기겁을 하며 방망이로 밀어낸다. 밀어내면 밀어낼수록 이상한 물체가 자꾸 달려든다. 호기심이 생긴 처자는 그것을 건져냈다. 커다란 오이였다. 먹음직스러워 별생각 없이 오이를 먹었다. 그날 이후 처자에게 태기가 있었고, 달이 차서 아이를 낳았다. 어이없고 부끄러운 일. 부모와 상의한 끝에 남몰래 뒷산 대밭에 아기를 버렸으나 어미 정을 어쩔 수가 없었다. 이레째, 처자는 남몰래 아기 버린 곳을 찾아갔다. 그런데 비둘기가 감싸고 학이 주는 먹이를 받아 먹으며 아기가 살아 있는 게 아닌가. 비로소 하늘이 내린 아기라고 깨달아 집으로 데려와 키웠다. 이 아이가 자라 신라 말 이름난 스님이자 학자였던 도선 국사가 되었다. 비둘기는 본디 ‘비다리’(弼陀里·계림유사) 혹은 ‘비두로기’(유구곡), ‘비두리’(월인석보)였다. 비두로기에서 소리가 줄어 비둘기가 되어 오늘에 쓰인다. 비둘깃과에 드는 새를 모두 일러 비둘기라 한다. 풀이에 따라서는 소리를 흉내낸 ‘비둘’에 뒷가지 ‘-이’가 붙어 된 말로 본다. 더러는 앞가지 ‘비’(非)에 ‘다라’(鷄·닭)가 붙어 이뤄진 말로 보기도 한다. 닭과 비슷하나 같지 않은 새들을 일러 비둘기로 불렀을 수도 있겠다. 정호완/대구대 교수·국어학
삐라·찌라시 외래어 신문·방송이 지금처럼 발달되지 못했을 때는 벽보가 관청이나 민간의 주된 홍보 수단이었다. 그것이 가장 기본적인 수단이라고 생각해서인지, 아니면 전통이 돼서인지 국회의원, 대통령 선거를 보더라도 아직 벽보가 꽤 중요한 구실을 한다. 그런데 더 널리 또는 시급하게 알려야 할 것은 자동차나 비행기가 벽보보다 작은 종이에 내용을 담은 이른바 ‘삐라’를 뿌려 알리기도 했다. 비행기가 뿌려서 하늘에서 펄럭이며 내려오는 삐라는 모처럼 구경거리를 연출하여, 철없는 아이들이 서로 더 많이 주우려고 난리법석을 떨기도 했다. 삐라와 비슷한 낱장 형태로 된 ‘찌라시’도 있다. ‘삐라’는 쓰인 지 꽤 오래 된 탓에 웬만한 국어사전에 실렸지만, ‘찌라시’는 요 근래에 들어온 말인지 국어사전에서 찾기 어렵다. ‘삐라’는 영어 ‘빌’(bill)이 일본말에서 ‘비라’(ビラ)가 된 다음, 우리말로 넘어와 다시 꼴이 바뀐 모습이다. 이는 주로 정치적인 선전문을 담는 것으로 여기는 듯하다. ‘찌라시’는 선전지나 광고지를 뜻하는 일본말 ‘지라시’(散(ち)らし)가 변한 말로서, 우리에게는 상업적인 광고를 담는 것을 뜻하는 쪽으로 한정되는 분위기다. 이와 달리 일본 사전에는 ‘비라’와 ‘지라시’를 거의 같은 뜻으로 풀이했다. ‘삐라’와 ‘찌라시’ 두 가지를 한꺼번에 일컫는 한자말은 ‘전단’(傳單)이며, 근래에는 ‘전단지’라고도 한다. 김선철/국어원 학예연구사
샹재 사람이름 이름표기에 ‘佐’(도울 좌)가 적잖이 쓰였다. 말끝에서는 ‘재’, 앞이나 중간에서는 ‘자’로 읽는다. 사람이름 ‘가재·자귀·오자미·자태’에 ‘佐’가 쓰였다. ‘자이덕/재덕’은 伊(이)를 더하여 ‘佐伊德’으로 적었다. 오자미는 콩·팥 따위를 넣고 기운 헝겊주머니다. 서울의 북가좌동·남가좌동은 본디 ‘가재울’(←가재+골)로, 한자로는 ‘加佐洞’(가좌동)이라 하였다. 한자로 적은 이름 ‘上佐·相佐’(모두 상좌)는 <사리영응기>(김수온)의 ‘샹재’에 해당된다. 어버이나 ‘할어버이’(조부모)가 돌아가셨을 때 모시는 맏아들을 ‘맏상제/맏상주’라고 부른다. ‘큰샹재·쟈근샹재’와 같은 이름을 보면 ‘큰샹재’는 요즘의 맏상제다. ‘상제’(喪制)는 ‘장례 제도’와 ‘상주’를 이르는데 ‘샹재’의 소릿값을 보고 재해석하여 한자로 ‘상제’라 한 듯도 하다. 절집에서 ‘상좌’(上佐)는 스승을 이을 첫번째 되는 스님, 불도를 수도하는 행자를 이른다. 두만강 우디거 족에 ‘샹자’가 있었는데 ‘샹재’와 멀지 않다. 1488년, 가뭄이 심하자 임금(성종)은 사람들의 원한부터 풀어주라 하였다. 형(고문)을 받고 옥에 갇히는 것이야말로 더한 원한이 없다며 죄 없이 오래 갇힌 ‘번재’(番佐)를 풀어주라 하였다. 번재는 어루동(어우동)의 딸이다. 함께 지내던 외할머니는 이미 누군가에게 목숨을 빼앗긴 터였다. 최범영/한국지질자원연구원 책임연구원
가입시더 고장말 ‘-입시더/-읍시더’는 경상도 말로, 아주높임·예사높임에 두루 쓰인다. 표준어 ‘-읍시다’와 ‘-오/-소’(가오·먹소)에 대응한다. “할매요, 밥 안 묵었으믄 함께 묵읍시더.”(<부르는 소리> 김향숙) “지발 당분간은 서로 못 본 듯 사입시더.”(<영웅시대> 이문열) ‘-입시더/-읍시더’는 행동을 같이할 것을 청할 때 쓰는데, ‘-입·-읍’이 탈락한 ‘-시더’가 경북 북부에서 쓰이기도 한다. “아이, 그 여 얼매 안 되니더. 여 바로 뒤에 있니더. 그럼 그리 가시더.”(<한국구비문학대계> 경북편) ‘-입시더/-읍시더’에 대응하는 다른 말은 ‘-읍세다’(습세다)와 ‘-읍주’다. ‘-읍주’는 제주에서 쓰인다. “무사마씀, 나도 가삽주.” “어수다(아닙니다). 나, 나 디(같이) 갑주 뭐, 무사 난 아니 갈 말이꽈?”(<한국구비문학대계> 제주편) ‘-읍세다’는 황해·강원을 뺀 북녘에서 두루 쓰이며, 재중동포들이 많은 만주 쪽에서도 흔히 찾아볼 수 있다. “제꺽 찍으시우, 그리구 새 집에 갑세다.”(<이사가는 날> 최학수·재북) ‘-읍세다’와 ‘-읍주’는 아주높임 자리에, ‘-읍세’는 예사높임 자리에 쓰인다. “날래 들어가서 아침이나 먹읍세.”(<고려백정의 사위> 김용식·재중) ‘-읍세’에 대응하는 전라말이 ‘-드라고/-더라고’다. “이, 돌른(훔친) 물건 아닝께 싸게 묵드라고.”(<태백산맥> 조정래) 이길재/겨레말큰사전 새어휘팀장
스스로를? 언어예절 ‘모두·서로’가 ‘어찌·어떻게’ 곧 부사로 쓰이는 게 자연스럽듯 ‘스스로’도 그렇다. ‘제 힘으로, 제(이녁) 뜻으로’ 행동함을 일깨운다. 이따금 ‘자기 자신’임을 강조하면서 명사·대명사꼴로 쓰일 때도 있다. 대명사적인 쓰임이 지난 세기 후반부터 잦아진 것은, 재귀대명사가 쓰인 영어 문장 해석이나 번역문에 쓰이다가 국어의 일상문투로 확장된 사례로 봐야겠다. 표현을 다양하게 한다는 점에서 외국어의 좋은 영향을 마달 것은 없다. 문제는 ‘스스로가·스스로를·스스로에게·스스로도 …’ 들이 양산돼 말이 순순하게 흘러가는 것을 방해한다는 점이다. 이때는 ‘저·자기·자신·당신·손수·직접 …’ 따위 주어 되짚기 구실을 제대로 하는 말이나 어찌씨 쓰임으로 바꿔야 말이 순순해진다. △버락 오바마 미국 44대 대통령 당선인은 스스로가 국경과 인종의 벽이 사라져가는 지구촌의 축약판이다→ ~ 당선인 자신이 바로 국경과 ~. △스스로의 문제→자신의 문제. △그 스스로도 훗날 자서전에서→그 스스로 훗날 자서전에서. △그들은 스스로를 보호해야 한다→자신들을 스스로 ~. △스스로에게 물어봅시다→자신에게 ~. △미국이 스스로의 숙명적인 짐인 인종차별을 극복했다는 점에서도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미국인 스스로 숙명적인 ~. △이들이야말로 스스로에 대한 자신감이 충만한 이들이다→이들이야말로 자신감이 충만한 이들이다. △그 스스로였다→그 자신이었다. 최인호/한겨레말글연구소장
올빼미 짐승이름 올빼미의 울음소리는 뭔가 으스스한 느낌을 주는 것으로 받아들였다. 조선 선조 무렵 문신으로 활동한 이수광과 관련한 이야기가 전해 온다. 그가 안변의 원으로 일을 할 때였다. 관아에 있는 나무숲에서 올빼미가 울었다. 사람들은 놀라 걱정을 하였다. “관아에서 올빼미가 울면 고을의 관장이 자리에서 물러나게 된다.” 하지만 그는 오히려 사람들을 타일렀다. “올빼미 울음이 이상한 것이 아니라 그대들의 말이 이상하다. 나는 아무렇지도 않으니 걱정하지 말라”고. 우연의 일치라도 되는 듯 며칠 지나지 않아 그는 원님 자리에서 물러나게 되었다. 특히 겨울밤에 올빼미가 울면 어린아이들이 칭얼대며 우는 소리처럼 우울하게 들린다. 이로 미루어 올빼미가 밤에 자주 울게 되면 마을이나 집안에 돌림병으로 숨지는 사람이 생기거나 난리가 일어나기도 하며, 애써 지어놓은 곡식이 여물지 않는 일이 생긴다는 속설이 나온 것 아닌가 한다. 옛말에 올빼미는 ‘옫바미’(훈몽자회 梟)였다. 말의 짜임으로 보아 ‘옫밤’에 접미사 ‘-이’가 붙고 소리가 이어나 굳어진 말이다. 미루어 보건대, ‘옫-돗-올’은 하나의 낱말 겨레들이다. 여기서 ‘옫’을 주목하게 된다. 옫은 위(上)다. 그러니까 밤새 소리로 듣고 아주 희미한 불빛이라도 이용하여 먹이를 잡고 활동을 하므로 그리 부른 것으로 볼 수 있다. 매사는 눈 바로 뜨고 마음의 소리를 들음이 중요하지. 정호완/대구대 명예교수·국어학
펜치 외래어 큰 할인매장에 가보면 가족이 함께 들르는 진열대가 있기도 하지만 남녀가 따로 관심을 두는 곳도 있다. 예컨대 여성은 미용 용품, 남성은 자동차 용품이나 공구 쪽에 많이 들른다. 겨울이 지나고 만물이 생동하는 봄이 오면 공구 찾는 이가 많아질 터다. 가정용 공구 중 요긴한 것을 들라면 단연 ‘펜치’ 아닐까. ‘펜치’는 흔히 [뻰찌] 또는 [뻰치]라고 일컫는데, 모난 나사를 돌리거나 철사를 자르거나 눕혀서 못을 박는 등 쓸모가 많다. 이 말은 일본말 ‘펜치’(ペンチ)가 건너와 정착된 것으로 보이는데, 일본말 펜치는 영어 ‘핀서스’(pincers)가 바뀐 것이다. 영어에서는 펜치가 플라이어(plier)의 한 종류로 취급된다. 니퍼(nipper) 역시 자르기 전용 플라이어다. 영어 ‘플라이어’는 펜치나 니퍼, 롱노즈(long nose) 같은 집게붙이를 통틀어 이른다. 반면 우리말에서 플라이어는 대개 자동차에 딸린 공구로서, 자르기 기능이 빠진, 그리고 입 크기를 바꿀 수 있는 집게로 통한다. 한편, 속어로 ‘거절당하다’는 표현으로 ‘퇴짜 맞다’가 쓰이는데, 이보다 더 저속하게 느껴지는 ‘뻰찌(뻰치) 맞다’는 표현도 쓰인다. 일본말에서도 펜치와 거절 사이에는 특별한 관련이 없기에, ‘펜치 맞다’는 펜치로 꼬집힘을 당하는 듯한 아픔이 느껴질 정도로 거절당한다는 우리 나름의 과장 섞인 말이 아닐까 싶다. 김선철/국어원 학예연구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