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롱이 사람이름 인조 3년(1625년), 이성구는 사옹원(司饔院)에서 올린 말을 임금께 아뢰었다. “서강의 어부 ‘강어배추·최허롱돌·김업산·이단향·문죽사리·김더퍼리·최허롱쇠·차보롬동이’ 등이 일찍이 어려운 속사정을 털어놓기에 이곳저곳에서 세금을 거두는 일을 그만 멈추도록 사옹원에서는 공문(계)을 돌렸습니다. 그러나 성균관에서는 여전히 세금을 거두므로 더는 침징(위세를 부려 불법으로 거두어들임)하지 말도록 다시 공문을 보냈습니다” 하였다. 사옹원은 대궐 안의 음식을 맡은 부서다. <승정원일기>를 보면 강어배추에서 ‘어배추’(於倍秋)를 ‘업배추’(業陪秋)로도 적었다. 여기 나온 어부 이름 가운데 ‘허롱돌·허롱쇠’가 있다. ‘허롱’(許弄)이 든 이름에 ‘허롱이·허롱개·허롱손이·허롱졍이’도 있고, 비슷한 이름에 ‘허룡이’도 있다. 요즘 말에 ‘허룽댄다/허룽거린다’는 말이 있다. 말이나 행동을 다부지게 하지 못하고 실없이 자꾸 가볍고 들뜨게 한다는 뜻이다. 요즘엔 허룽댄다는 말보다 ‘해롱댄다·해롱거린다’로 더 쓴다. ‘허룽허룽’은 그런 모습을 이르는 어찌씨다. 요즘 모든 분야에서 살림살이가 무척 어렵다고들 한다. 서로 아옹다옹하느라 문제를 제대로 풀지 못할 때가 적잖다. 더 누려온 이들이 자신의 이익만 챙기지 말고 공통선을 위해 역사의 수레바퀴를 함께 굴리려 한다면 허룽댈 일도 적어질 터이다. 최범영/한국지질자원연구원 책임연구원
먹지 말앙 고장말 ‘-앙’은 표준말 ‘-고서’에 해당하는 제주말로, 한 사실이 뒤에 생긴 일의 원인이 됨을 나타낸다. “어머님 공 못 갚앙 저승 가는 불효식 …”(<한국구비문학대계> 제주편) ‘-앙’은 ‘-어서’의 뜻으로도 쓰인다. “그놈들이 다 물러가면 우리대로 잘 살곡 마음대로 해산물도 잡앙 팔곡 헐 수 있는 거 아닙니까.”(<껍질과 속살> 현길언) ‘-앙’의 또다른 형태는 ‘-어근’과 ‘-엉근’이다. ‘-엉근’은 ‘-엉’에 ‘-근’이 합친 말로, ‘-근’은 표준어 ‘-서’에 대응하는 제주말 ‘-근에’의 ‘근’과 같은 것으로 보인다. ‘-어근’은 ‘-엉근’의 ‘ㅇ’이 떨어져 생긴 말이다. “할마님이랑 받다 남은 거 웃제반(제사상에 올린 각 제물을 처음 조금씩 걷어 모으는 일) 걷어근 동이용궁 아방국데레 모도 지울리곡 ….”(<한국구비문학대계> 제주편) 제주말에는 ‘-고서’ 형태가 쓰이지 않는다. 이는 표준어 ‘-고’와 대응하는 제주말 ‘-곡’이 둘 이상의 사실을 단순히 늘어놓는(물이 맑고 차다.) 구실만 하기에 ‘-곡’과 ‘-서’가 합친 ‘-곡서’가 인과 관계를 나타내기 어려운 탓으로 보인다. 표준말 ‘-고서’의 다른 고장말은 ‘-구서’다. ‘-구서’는 전라·경상·제주를 뺀 대부분의 지역에서 쓰인다. “영감 죽구서 무엇 맛보기 첨이라더니!”(<태평천하> 채만식) “사람이 살구서 볼 일이지.”(<등대> 리북명·북녘) 이길재/겨레말큰사전 새어휘팀장
말 목숨 언어예절 마지못해 산다는 이가 많은데,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이가 있다. 오죽하면 그러리오마는, 어버이만 아니라 만인을 얼빠지게 하는 몹쓸 일이다. 자진하는 데는 말이 통하지 않는 까닭이 크다. 그로써 한 세월을, 또 그의 진실과 말을 속절없이 사라지게 한다. 숨을 타는 사물이 생물만 아니다. 사람이 사라지면 말도 사라진다. 얼마 전 배우 최진실이 자진해 한동안 사회가 떠들썩했다. 그에게 소통 부재를 일으킨 진실과 함께 다시는 그의 새로운 연기와 말을 만나지 못하게 됐다. 장차 할 말까지 송두리째 데려가 버린 탓이다. 특히 말과 영상을 다루는 방송작가나 연출가들의 상심이 무척 클 터이다. 가끔 글쟁이들이 붓을 꺾었다거나 다시 들었다는 얘길 한다. 말이 샘솟아 주체하지 못하는 글쟁이가 있는 한편, 억지로 자아내는 이도 있다. 붓을 꺾는 것은 적어도 자기 말과 이야기, 생각을 되돌아보고 쟁이는 구실을 한다. 말은 쓰기에 따라 사람을 살리기도 죽이기도 하지만 버림받기도 한다. 말겨레가 7천만 아니 1억이 있어도 제대로 거두어 쓰지 않으면 비틀리고 메마른다. 이는 죽임이다. 오래도록 써 온 말을 전혀 듣지 못하게 될 때가 있다. 불행히도 우리 시대 들어 그 도를 넘는 걸 뻔히 본다. 노인들만 남아 사는 시골이 걱정이다. 농사도 살림도 그렇지만 그나마 갈무리하고 베푸는 숱한 말과 풍습들이 그들과 더불어 사라질 걱정이다. 최인호/한겨레말글연구소장
먹 외래어 옛날엔 글씨를 쓰거나 그림을 그릴 때 붓과 먹물을 빼놓을 수 없었다. 먹물은 벼루에 물을 붓고 먹을 갈아서 만드는데, 먹은 나무를 태울 때 연기에서 생기는 검댕(그을음)을 모아 아교를 녹인 물에 푼 다음 굳혀 만든다. 먹은 중국 유물로 미루어 은나라 때부터 시작됐다고 한다. 당시는 지금과 같은 굳힌 먹이 아니라 목탄이나 석묵(石墨)을 물에 녹인 것 또는 주약(朱藥)을 썼고, 당나라에 들어서는 칠묵(漆墨)으로 글씨를 썼다고 전한다. 굳힌 먹의 시초는 소나무 연기 검댕으로 만드는 ‘송연묵’인데 한나라 적 유물이 나오며, 동이의 사신으로부터 황제가 선물을 받았다는 기록이 있다. 만약 ‘동이’가 배달겨레를 가리킨 것이라면 우리 조상이 동양 서예 문화에 크게 이바지한 셈이다. 요새 말로 하면 당시의 명품이었던 송연묵은 삼국 시대 주요 수출품이었다. 명나라 때 명품 먹 생산국 지위를 빼앗겼고, 지금 먹 만드는 이(묵공)도 거의 없어져서 먹 생산은 서너 곳에서 명맥을 이어간다. ‘먹’은 우리 토박이말이 아니라 차용어로 본다. 곧, 현대 중국어 ‘墨’에 해당하는 예전의 중국말이 유입되었고, 15세기 문헌에 이미 현대 우리말과 같은 ‘먹’으로 등장한다. 한자어 ‘묵’은 당나라 때 소리를 받아들인 결과로 보이며, 그 결과 우리 한자로는 ‘묵’, 어원 의식이 없는 말로서는 ‘먹’으로 존재하고 있다. 김선철/국어원 학예연구사
수구리 사람이름 ‘김수구리’(金禾九里)는 영조 때 진산에 근무하던 군사다. 늙고 몸도 약한데다 병도 있으므로 집에 돌아가라 하니 “할아버지가 머흐내(險川) 싸움에서 전사했소이다. 나라고 그리 마란 법 있소이까?” 하였다. 떠밀며 가라고 하니 분해서 눈물을 흘렸다. 얼마 있어 모친상을 당하자 상복을 입었는데, 고기를 권해도 끝내 먹지 않았다. 나라에서는 충효군에 넣어 일체 부역을 지지 않게 하고(급복), 벼슬을 향장관으로 올려주었다. ‘수구리’는 ‘전자리상어’로, 가오리를 닮은 바닷물고기다. 수구릿과에는 ‘동수구리·목탁수구리·범수구리’와 같은 것이 있다. 수구리와 비슷한 사람이름에 ‘수고리·수억고리·숫고리·수고이’도 있다. ‘-구리’가 든 이름에 ‘거구리·논구리·돌구리’가 있다. ‘동구리·둥구리’는 얼굴이 둥글었던 모양이다. ‘사구리’라는 이름은 일본 사람이름 ‘좌사구리’(佐沙仇里)와 닮았다. ‘-고리’가 든 이름 ‘개고리·두고리·마고리·머고리’는 요즘의 ‘개구리·두구리·마구리·머구리(개구리)’에 해당된다. ‘(약)두구리’는 본디 탕약 달일 때 쓰는 놋그릇이나, 약을 늘 달고 사는 사람을 이른다. ‘마구리’는 길쭉한 물건의 양 끝에 대는 것이다. 어려운 상황에서도 자신의 신념을 지키며 한 치도 어긋나지 않은 수구리라는 사람이 있었다. 그런 이들이 있어 이 나라가 지탱돼 온 건 아닐까? 최범영/한국지질자원연구원 책임연구원
죽으깨미 고장말 ‘-으깨미’는 표준어의 ‘-을까 봐’에 해당하는 고장말로, 주로 충청·전라 쪽에서 쓰이는 말이다. “아따, 돈 쓸 데 없으깨미 뼈다구도 사야 하고 …”(<샛강> 이정환) “미운털 백혀서 명대로 못 살깨미 잠도 안 온다.”(<완장> 윤흥길) “우리 할아버지가 저승이서는 혼자 죽으깨미서는 오던 질 도루 가지 말라구 했는디 …”(<한국구비문학대계> 충남편) ‘-으깨미’의 다른 꼴은 ‘-으까마, -으까미’인데, 이들은 ‘-을까 봐’가 ‘-으까 봐>-으까 바>-으까마>-으까미>-으깨미’와 같은 변화를 겪어 하나의 말처럼 굳어진 것이다. ‘-으까미>-으깨미’는 ‘학교’를 ‘핵교’, ‘호랑이’를 ‘호랭이’라 하는 것과 같다. “내가 모냐 가까마 지가 압장을 스드라고.” “하니나 네가 잡으까미 언능 네삐드라.”(<전남방언사전>) 또한 ‘-으까마’에 ‘-니’가 결합된 ‘-으까마니’는 전남에서만 보이는 말이다. “내가 진역 살리고 벌받게 하까마니 그케 우냐고 그람서 꺽쩡 말라고 했제.”(위 책) ‘-으까마니’가 전남에만 있는 반면, ‘-으까마니’의 ‘ㅏ’가 탈락하여 만들어진 ‘-으깜니’는 충청·전라 두루 발견된다. “막 눈만 흘겨도 찢어지게 생긴 도포를 찢어지깜니 살살 어트게어트게 입었어.”(<한국구비문학대계> 전북편) “애덜 눈깔 찔르깜니 고려장하러 가는 할머니가 막대기를 끊어 쌌더란다.”(위 책, 충남편) 이길재/겨레말큰사전 새어휘팀장
한테·더러 언어예절 때와 곳을 나타내는 표지로 토씨 ‘에’가 있다. ‘에게/께·한테·더러·보고’는 본디 사람에 한정해 쓰는데, ‘에게서·에게로·한테서·한테로 …’들로 가지를 친다. 이 토들은 동물에도 붙어 쓰인다. 사전 풀이에서 ‘사람이나 동물 따위’에 붙인다고 했다. ‘따위’의 범위는 어디까지인가? 식물한테는 붙이지 못하는가? ‘인격’을 기준으로 한다면 모든 의인화한 말에 붙일 수 있다는 얘기가 된다. 의인화까지 가지 않더라도 인격에 준하는 말들이 적잖다. 중산층·서민층 따위 계층, 사장·부장 따위 직책, 세력·집단 …. 아닌 게 아니라 이런 말들에도 ‘에게붙이’를 붙여 쓰는 경향이 많아졌다. 때로 한국·미국·일본, 대구·전남 따위 나라·자치단체, 회사·기구 이름에까지 ‘에게’를 붙여 쓰는데 지나쳐 꼴불견일 때가 많다. ‘한테·더러·보고’는 ‘에게’와 같이 쓰이지만, ‘에게’를 붙이기 어려운 동물·집단·단체에 어울린다. ‘에게’는 특히 ‘사람’에 한정해 쓰이는 토로 굳어진 반면, ‘한테·더러·보고’는 굳어진 세기가 덜한 까닭이다. 대중교통난이 다시 심화되면 그 피해는 (택시에게도→택시한테도) 미친다/ (시민단체에게는→시민단체로서는) 생명과도 같은 도덕성 …/ 은행들이 (기업들에게→기업들한테) 과연 필요한 돈을 제때 풀어주고 있는지 걱정된다/ … 분단 책임을 (대한민국에게→대한민국에) 전가하고/ (고양이에게→고양이한테) 생선가게를 맡긴 격이다. 최인호/한겨레말글연구소장
따오기 짐승이름 “보일 듯이 보일 듯이 보이지 않는/ 따옥따옥 따옥 소리 처량한 소리/ 떠나가면 가는 곳이 어디메이뇨/ 내 어머니 가신 나라 해 돋는 나라.” 그 따오기들은 어디로 갔을까. 아련한 노래의 추억만 남겨 놓고? 잃어버린 나라와 임에 대한 그리움으로 달랠 길 없는 고단한 이들의 마음 호수에 돌을 던지는 파문을 일으킬 법하다. 청원 오창에 가면 따오기재(鶩嶺)가 고개 이름으로 남아 있다. 한정동의 가사에 윤극영 선생이 빼앗긴 나라에 대한 애타는 안타까움을 바탕으로 지은 노래다. 조선 사람들의 정서를 드러낸다. 내용이 불온하다며 부르지 못하게 하였다가 광복과 함께 되살아 났다. 애절한 목소리로 조용필이 따오기의 대중화에 불을 지피고, 양희은과 한영애도 애틋한 마음을 노래해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는 국민 동요가 되었다. ‘눈물 젖은 두만강’이나 같다. 사랑하는 부모형제를 이별하고 눈보라 몰아치는 만주와 사할린, 하와이 등지로 쫓기듯 떠나갔던, 솟구치는 그리움을 목놓아 불렀던 노래요, 절규였다. 정작 따오기는 날아가 버린 지 오래. 따오기에 대한 아련한 유년의 추억만이 노래로 남아 있음을 어찌하랴. <동언고략>(1908·정교 엮음)에서는 기발하게도 ‘다옥’을 단복(丹腹)에다 끌어댔으나 엉뚱하다. 옛말로는 ‘다와기’ 혹은 ‘다옥이’였다. 다른 새들 이름에서도 그러하듯 울음소리를 흉내 내어 붙인 것이 많다. 정호완/대구대 명예교수·국어학
파스 외래어 발을 헛디뎌 관절을 삐거나 타박상을 입었을 때 쓰는 약품으로 ‘파스’가 있다. ‘파스’는 조금 어려운 말로 외용 소염진통제, 곧 살갗에 바르는 염증과 통증 완화 약인데, 예전에는 납작한 통에 가득 들어 있는 반투명 연고 또는 접착제 성분을 한쪽에 바른 손바닥만 한 하얀 천 두 가지 형태였다. 요즘은 그 형태와 종류가 무척 많아졌다. 벌레 물린 데 바르는 물파스가 있는가 하면, 축구 경기에서 주로 볼 수 있는 뿌리는 파스, 로션처럼 걸쭉한 파스도 있다. 요즘의 파스는 대개 시원한 것과 더운 것으로 나뉜다. 약품의 한 종류를 일컫는 ‘파스’는 독일말 ‘파스타’(Pasta)에서 끝의 ‘타’가 떨어져 줄어든 꼴이다. 혹시 줄임꼴을 좋아하는 일본말에서 온 것이 아닐까 싶어 찾아보니, 1950년대에 우리나라에 수입되어 팔렸던 일본의 유명 제품 이름에 ‘파스’가 쓰였다고 한다. 그 제품 이름은 ‘사롱파스’(サロンパス)였는데, 지금까지도 일본에서는 그 제품 이름 자체를 우리의 ‘파스’처럼 쓴다고 한다. 60년대부터는 일제 파스 못잖은 국산 파스가 생산되었고, 그 기업은 다행히 지금까지도 건재하다. 한편, ‘파스’라는 말은 ‘크레파스’의 준말로 쓰이기도 하고, ‘타이어가 파스 나다’처럼 유래를 알 수 없는 말로도 쓰인다. 또 예술·의약 용어로 각각 달리 쓰이고, 경기에서 공을 다른 선수에게 넘긴다는 뜻의 ‘패스’를 북한에서 이르는 말이기도 하다. 김선철/국어원 학예연구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