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고의 가치 일고(一考)라는 말은 한번 고려해 본다는 말이다. 그런데 이 말은 “일고를 해 보다”와 같이 긍정적으로 쓰이는 경우보다는 “일고의 가치도 없다”는 식으로 부정적인 맥락에서 자주 쓰인다. 상대의 주장이나 의견을 뿌리째 부정하는 말이다. 겉으로는 격조 있는 표현 같으면서도 대단히 결기 있고 서슬이 퍼런 말이다. 그러나 이 말은 단호한 태도를 보이기에는 적절할 수 있겠지만 대화의 끈을 이어나가는 데에는 오히려 자승자박이 된다. 대화를 이어나갈 여지를 전혀 남기지 않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외교적으로나 정치적으로 협상의 여지를 남겨두어야 할 경우에는 쓰기에 적절치 못하고, 좀 완고해 보이는 선비들이나 타협의 여지가 전혀 없는 외골수 사상가들이 쓴다면 그럴듯할 것 같다. 이보다 좀 유연해 보이는 표현이 “더 이상 드릴 말씀이 없다”는 말이다. 대개 융통성이나 자율권이 별로 없는 공직자들이 자주 쓰는 것 같다. 이러한 표현도 지속적인 대화에는 큰 도움이 되지는 않는다. 그러나 일고의 가치도 없다는 말보다는 약간의 여유 공간이 엿보인다. 이럴 경우에는 제삼자의 중재를 거치면 타협의 실마리가 생길 수도 있을 것이다. 최근 들어 정치권에서는 ‘협치’라는 말이 꽤 많이 사용된다. 정치적 이해관계에 협애하게 빠져 있지 말고 좀 통 큰 ‘공동체 정치’를 하자는 뜻일 것이다. 그러한 협치를 하려면 가장 중요한 것은 대화의 통로를 지속적으로 확보해두는 것이다. 곧 상대방의 발언이나 주장에 대해 최소한 일고의 가치는 인정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배수진이니 되돌아갈 다리를 불사른다느니 하는 것은 무인의 용맹함을 드러내는 전투적인 말에 지나지 않는다. 민주주의와 협치를 위해서 최소한으로 공유해야 할 요소는 바로 ‘일고의 가치’이다. 김하수/한겨레말글연구소 연구위원·전 연세대 교수
할 말과 못할 말 문법에 맞는다고 모든 말을 늘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윤리적으로나 정치적으로나 ‘차마’ 못할 말들이 있다. 내뱉을 때는 후련하겠지만 그 후환도 걱정되기 때문이다. 특히 공공기관이나 보도매체들은 감성이 담겨 있는 말들을 적절히 순화해 발표하거나 전달할 필요가 있다. 제발 하지 말라고 당부도 위협도 했건만 북한은 또 핵실험을 했다. 충분히 예측되는 격앙된 반응들이 나왔다. 흥분하고 울분을 터뜨리는 반응은 댓글이나 길거리 시민들의 것으로도 충분하다. 이럴 때 공공기관과 보도매체들은 대중의 흥분을 토닥이는 것이 더 옳다. 감정을 추스르지 못하는 일반 대중이 판세를 정확하게 인식하도록 하기 위해서라도 침착한 대응이 중요하다. 그런데 오히려 먼저 불을 지르고 다니는 형국이다. 그러는 중에 가관은 무슨 ‘참수 작전’이라는 말이 떠돌아다니는 것이다. 기사를 잘 읽어보면 누가 그런 발언을 했는지도 불분명하다. 당국 같기도 하고 어느 공직자의 스치는 듯한 발언일 수도 있다. 그런데 일부 매체들은 그것을 거르지 않고 아예 제목으로 뽑아 쓰고 있다. 여러 해 전에 중동에 갔던 어느 청년이 그곳 테러단체에 잡혀 그런 방식으로 살해당했을 때 우리는 얼마나 놀랐던가? 입장의 옳고 그름을 떠나서 그런 방식의 일 처리를 끔찍해하지 않았던가? 더구나 이런 내용을 먼저 언론에 털어놓은 것 자체가 실제의 작전이 아닌 말폭탄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실토하고 있다. 정말로 그런 작전이 있다면 시치미를 떼고 있어야지 이렇게 말을 거르지 않고 마구 해대는 것은 알아서 피하라는 말이거나 내가 이런 말을 할 수밖에 없는 고충을 이해해 달라는 신호가 아니겠는가? 분단 70년은 우리가 상식적으로 말하는 방법조차 잃어버리게 한 것 같다. 김하수/한겨레말글연구소 연구위원·전 연세대 교수
계륵(鷄肋) 무엇을 취해 봐야 이렇다 할 이익은 없어도 버리기는 아까움의 . 《出典》'後漢書' 楊修傳 삼국 정립 시대가 나타나기 1년 전, 유비(劉備)가 익주(益州)를 점령하고 한중(漢中)을 평정한 다음 위(魏)나라 조조(曹操)의 군대를 맞아 한중 쟁탈전을 벌이고 있었다. 싸움은 여러 달에 걸친 장기전 양상을 띠고 있었는데 유비의 兵站은 제갈량(諸葛亮)의 용의주도한 확보로 넉넉한데 반하여 조조는 兵站을 소홀히 하여 내부의 질서가 문란하고 거기에 다 탈영병이 속출하여 공격도, 수비도 불가능한 상태에 있었다. 막료 한 사람이 현황을 보고하고 후퇴 여부를 묻자 닭고기를 뜯고 있던 조조는 닭갈비[鷄肋]를 들었다 놓았다만 했다. 그 막료가 어리둥절한 마음으로 나오는데 주부(主簿)인 양수(楊修)가 듣고 長安으로 귀환할 준비를 서두르기 시작했다. 다른 참모들이 놀라 그 까닭을 묻자 양수는 "닭의 갈비는 먹으려 하면 먹을 것이 없고 그렇다고 내버리기도 아까운 것이오. 한중(漢中)을 여기에 비유한 것은 승상께서 군대를 철수하기로 작정하신 것이 아니겠소?(修獨曰 夫鷄肋 食 之則無所得 棄之則如可惜 公歸計決矣)"라고 답했다. 과연 양수의 예상대로 조조는 그 이튿날 철수 명령을 내렸다. 이때 조조는 이익이 없다고 하여 한중에서 후퇴하고, 그곳을 확보한 유비는 스스로 한중왕(漢中王)이 되었다. 그러나 이윽고 위(魏)나라는 촉한(蜀漢)과 오(吳)나라를 멸망시키고, 천하를 통일하기에 이른다. 이 이야기는《後漢書》楊修傳에 실려 있으며, 오늘날 <닭의 갈비[鷄肋]>는 그다지 쓸모있는 것은 아니지만, 버리는 것은 아까운 일이라는 비유로 쓰여지고 있다.
Board 고사성어 2021.12.01 風文 R 1799
공적인 말하기 어떤 모임에 가보면 사회자의 첫인사가 “이렇게 많이 와 주셔서 감사하구요, 곧이어 회장님의 개회사가 있겠습니다.”라는 식으로 표현하는 경우를 자주 보게 된다. ‘-요’라는 어미는 존대의 기능을 하는 것이고, 감사하다는 말과 개회사가 있겠다는 말이 ‘-고’라는 연결어미를 통해 이어진 것이다. ‘-고’라는 어미가 무척 다양한 쓰임새를 가지고 있기는 하지만 이런 식의 표현은 매우 기이하다. ‘-고’로 두 홑문장을 연결하려면 그 두 서술어 사이에 일정한 의미 관계 혹은 기능 관계가 있어야 한다. 동작의 순서이든지, 수단이나 상태를 가리키든지 하는 것을 말한다. 그런데 ‘감사하다’와 ‘개회사가 있겠다’의 경우는 그러한 관계가 안 나타난다. 흔히 ‘반갑구요’라든지 ‘죄송하구요’와 같은 말들이 이런 현상을 이끌어낸다. ‘감사하다’나 ‘반갑다’가 이런 식으로 연결되면 그 의미가 잘 살아나지 않는다. 다시 말해서 감사한 마음이 잘 전달되지 않고 그다음의 말에 희석이 되어 버린다. 미루어 생각해 보건대 사사로이 감사를 표해 본 적은 있어도 여러 사람들 앞에서, 곧 ‘낯선 공중’을 향하여 ‘공적인 감사’를 표해 본 경험이 부족한 탓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다. 사적으로는 거두절미하고 감사하다고만 해도 그리 욕될 것이 없다. 그러나 공적인 감사에는 분명한 ‘공적인 명분’을 명시해야 한다. 먼저 공적으로 왜 이런 활동이나 행위가 의미 있는 것인지를 해석해 내고 나서 그에 합당한 (감사의) 표현을 한다. 그리고 상대방의 대응을 들어야 한다. 이렇게 함으로써 이 연속 행위는 완결된 공적인 언어 사용이 된다. 그렇게 하지 못하는 것은 말하는 연습과 생각하는 연습을 병행하지 않은 탓이다. 국어 공부는 그렇기 때문에 교과서를 뛰어넘어 사회 속으로 들어가야 한다. 김하수/한겨레말글연구소 연구위원·전 연세대 교수
더(the) 한국말 누구든지 한국말은 한국말다워야 한다는 주장에 충분히 공감할 것이다. 그런데 한번 반대로 생각해 보자. 한국말이 외국어다우면 어떨까? 우리 언어를 더 멋있게 만드는 일일까 아니면 망가뜨리는 일일까? 현실에서는 한국말을 마치 외국어인 듯이, 혹은 외국어가 우연히 한국어처럼 들리는 듯한 말을 만들어 내고 있다. 1970년대 한국에서 처음 나온 와인의 이름은 ‘마주 앉았다’는 의미를 풍기는, 그러나 듣기에 따라 외국어처럼 들릴 수도 있는 이름을 붙였다. 당시 국세청에서 외국어로 지은 술 이름을 허용하지 않아서 그렇게 지었다고 한다. 외래어 상표명이 인기를 누리는 상품은 주로 화장품, 음식, 패션, 건강용품 분야에 속한다. 그래서 그런지 ‘나들이’라는 말을 풀어적은 형태, ‘보드랍게’를 변형시킨 이름, ‘참 좋은’을 연상시키는 이름들이 주로 미용과 관련하여 사용된다. 또 ‘아리따움’을 알파벳으로 표기하여 마치 라틴어인 듯이, 또 달리 보면 한국어인 듯이 지은 점포명도 있으며, 더 나아가 아파트 이름마저 한국어의 ‘푸르지요’인 듯이, 아니면 마치 이탈리아에서 온 말인 듯이 사용되기도 한다. 외국어식 위장은 여기에 그치지 않고 이제는 영어의 정관사인 더(the)와 한국어의 비교급을 나타내는 부사인 ‘더’가 중첩된 듯한 표현들도 많아지고 있다. 어찌 보면 한국어의 부사 같고 또 달리 보면 영어의 정관사 같다. 영어의 ‘더(the)’는 명사의 앞에 붙고, 한국어의 ‘더’는 형용사 혹은 형용사적인 명사 앞에 붙게 되어 있다. 별개의 문법 구조를 섞어서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표현이 상업적으로 얼마나 큰 이익을 가져오는지는 알 수 없다. 단지 이를 보고 자란 어린이들이 나중에 영어를 배울 때는 혹시 온갖 명사 앞에 무조건 정관사만 붙이려고 하지 않을까 걱정일 뿐이다. 김하수/한겨레말글연구소 연구위원·전 연세대 교수
지명의 의의 아파트 이름에 다양한 외래어가 사용된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너무 다양하다 못해 이제는 그 이름을 헛갈리는 경우가 적지 않다. 특히 연세 지긋한 분들일수록 이러한 이름을 힘겨워한다. 아파트 이름 못지않게 다양한 외래어를 사용하는 경우가 특히 신도시의 도로명에서 눈에 띄기 시작한다. ‘에메랄드, 루비, 사파이어’ 등의 낯선 명칭이 붙은 것이다. 과거에 보석 광산이나 가공 공장이 있었던 곳이라면 이해할 만도 하지만, 참으로 지나치게 느닷없이 붙인 이름들이다. 지역과 지명의 필연적인 상관관계를 전혀 느낄 수 없다. 도시를 개발하며 땅이 가진 부동산으로서의 가치를 높이기 위해서 유혹적인 상품명을 붙인다는 것이 이렇게 된 것이다. 역사적으로 지명은 지배자들이 지었다. 그러나 지배자와 무관하게도 일반 민초들은 자기 식대로 명명을 하기도 했다. ‘수릿재, 섶다리, 돌샘, 풋개’ 등의 지명은 그 공간에서 삶을 영위하던 백성들의 명명이었다. 오늘날은 일단 행정적으로 필요한 지명은 국가기관이 정한다. 그리고 그렇지 않은 민속적 명칭은 옛날 백성들이 쓰던 지명을 물려받아 쓰고 있다. 좀 더 넓은 문제를 한번 제기해 보자. 한국인들이 한반도에서 배타적인 ‘주권’을 가지고 살 수 있는 근거는 어디에 있는가? 이 땅을 우리만의 것이라고 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역사적 근거는 우리의 언어로 이루어진 지명들이다. 그것도 ‘역사적 연고와 연속성을 가진 지명’들이다. 그래서 옛날의 지배자들이 지은 지명이나 민초들이 지은 지명이나 모두 다 중요한 유산이다. 그러나 우리의 도시 개발과 토지의 상품화는 이렇게 쌓아온 우리의 권리와 이익을 스스로 무너뜨리고 있다. 시장에서의 이익과, 역사와 문화 속에서 스스로 지켜야 할 대의를 구분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김하수/한겨레말글연구소 연구위원·전 연세대 교수
유신의 추억 말의 원래 뜻은 전혀 다르지만 그 기능과 쓰임새가 같아서 비유 혹은 유추를 통해 유의어나 동의어처럼 쓰는 경우가 있다. 전혀 다른 의미의 ‘국가’와 ‘가족’을 유의어처럼 쓰거나 ‘하나님’과 ‘아버지’를 같은 반열로 유추하는 것 등이 그것이다.요즘 많은 사람들의 이해관계가 걸리는 복합적인 사건들이 생기니까 정부는 시끄러운 논란을 피하자는 뜻에서 ‘국론분열’을 걱정하고 남북 긴장 상태에 ‘남남갈등’만 도드라진다고 분개하기도 한다. 그러나 역사는 이러한 인식에 뼈아픈 교훈을 남기고 있다. 중세 독일에서는 ‘부르크프리덴’(Burgfrieden)이라는 전통이 있었다. 보통 ‘성내평화’라고 번역한다. 적과 대치할 땐 사적인 다툼, 결투, 분규를 금한 것이다. 공동체의 당연한 규범이기도 하지만 악용도 됐다. 제1차 세계대전이 터지자 독일 황제는 러시아에 선전포고하면서 바로 이 전통에 근거하여 다수당인 야당이 반대하지 못하게 성내평화를 주장했다. 원래 전쟁을 반대했던 야당, 사회민주당은 그 논리에 넘어가 전쟁에 협조했다. 자신의 강령 가운데 가장 중요한 대의를, 러시아가 민중을 탄압한다는 빌미로, 또 황제의 성내평화라는 미끼를 물고, 저버린 것이다. 그리고 패전을 했다. 이 ‘성내평화’라는 단어는 1970년대 유신시대의 ‘국민총화’라는 말을 유추하게 한다. 국가 안보를 위해 이러쿵저러쿵하는 논쟁과 쟁점을 만들지 말자는 것이 당시 정부와 여당의 요구였다. 시대와 지역은 다르지만 그 정략적 유용함은 독일의 황제에게나 한국의 독재자에게나 마찬가지였다. 추구하는 이상이 다를 때는 공동의 이해관계일지라도 서로 의견이 다를 수 있고 다툴 수도 있다. 그럴수록 서로의 쟁점을 좁혀가는 언어적 민주주의를 활용해야 한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유신의 추억이 아니라 유신의 교훈이다. 김하수/한겨레말글연구소 연구위원·전 연세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