쇠를 녹이다 세상 문제를 진지하게 논의하다가도 “그까짓 것 아무리 떠들어 봐야 뭐하나? 공연히 입만 아프다”는 말로 이야기판을 마감하기 일쑤였다. 말해 봤자 아무런 반응이 없으면 자신이 대화의 상대조차 못 된 처지라는 것을 깨닫고 입을 다물게 된다. <삼국유사>에 나오는 신라 시대 이야기이다. 당시에 이름난 미인이었던 수로부인이 일행과 함께 동해안을 지나는데 돌연히 용이 나와 부인을 바닷속으로 채어갔다. 남편과 일행이 당황해할 때 지나가는 노인이 “예로부터 많은 사람의 입은 쇠를 녹인다고 했습니다. 바닷속의 용인들 어찌 여러 사람의 입을 두려워하지 않겠습니까. 백성을 모아 노래를 지어 부르면서 지팡이로 땅을 치면 마땅히 부인을 되찾을 것입니다”라고 했다. 그래서 그대로 하니 용이 부인을 되돌려줬다고 한다. 여럿의 입’이 쇠를 녹인다.(중구삭금)고 하는 말은 주술적으로 해석되기도 하지만 상징적으로는 매우 복잡한 사회적 함의를 품고 있다. 수많은 사람들이 외치고 고함치면 불가능해 보이는 일도 이루어진다는 뜻이다. 또 어찌 여럿의 입을 두려워하지 않겠냐는 말도 많은 사람들이 함께 외치면서 행사하는 힘의 위력을 무시해선 안 된다는 경고이다. 최근 여섯 주일에 걸쳐 우리 국민은 끈질기게 여럿의 목소리를 모아 거리에서 외쳤다. 그리고 무쇠처럼 단단해 보이던 권력을 일단 물러서게 만들었다. 여럿의 입이 얼마나 큰 힘을 낼 수 있는지를 직접 체험한 것이다. 지금까지 ‘여럿의 입'이라고 하면 그저 중구난방이라는 말로 평가절하되어 왔다. 이제는 대중의 목소리가 오히려 민주 정치의 기본 토대가 되도록 해야 할 것이다. 다중의 말이 가진 힘을 체감한 귀중한 시기였다. 한데 모여 소리치면 누군들 두려워하지 않겠는가? 김하수/한겨레말글연구소 연구위원·전 연세대 교수
지도자의 화법 문장을 쓸 때엔 문법에, 말을 할 때는 화법에 각별히 주의를 해야 한다. 문법은 일정한 규칙으로 체계화되어 있고, 표준 문법을 학교에서 배운다. 그러나 화법이란 것은 그렇게 표준화하기 어렵고 다양한 경우에 맞추어 판단할 수밖에 없다. 화법은 맞느냐 안 맞느냐가 아니라 주로 적절한가 적절치 못한가로 평가를 받는다. 그러다 보니 친구 사이에, 부부간에, 또 동료 간에, 낯선 사람에게, 이성에게, 외국인에게 등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적절한 화법’이라는 경우의 수가 생긴다. 문법이 틀리면 우스꽝스러운 말이 되지만 화법이 적절치 못하면 노여움을 살 수도 있다. 특히 지도자나 공직자들의 말은 각별히 적절해야 한다. 그렇지 못하면 공인되었던 권위나 존중이 삽시간에 무너져 버린다. 어느 사회에서든지 ‘지도자의 말’에는 중요한 가치를 둔다. 나라의 안위와 국민의 관심사, 이웃나라와의 관계 등의 문제에 많은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그래서 정치 지도자의 말에는 법적으로, 제도적으로 강한 권위와 높은 위계를 허락한다. 이렇게 보장받은 ‘말의 힘’은 당연히 개인적 목적이 아니라 국민의 이익과 공의를 위한 것이다. 특히 구구한 자기변명, 슬그머니 의제 바꿔치기, 남탓하기, 떠넘기기 등은 지도자의 화법으로 적절치 못하다. 사람들은 지도자의 화법에 유난히 감동도 받고 용기도 얻는다. 미국의 오바마 대통령 내외, 독일의 바이츠제커 대통령과 같은 이들의 화법은 매우 정연하고 감동적이다. 그런데 우리의 대통령이 벌써 세 번이나 같은 사안을 두고 국민에게 담화문을 발표했는데도 감동과 교훈은커녕 반발과 비판이 그치지 않는다. 그 까닭은 지도자다운 화법을 쓰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것이 반복되면 국민은 그다음의 생각을 할 수밖에 없다. 지도자에게 허락한 지도자의 화법을 회수하는 것 말이다. 김하수/한겨레말글연구소 연구위원·전 연세대 교수
왜 벌써 절망합니까 - 정문술 4. 선한 것이 경쟁력이다 - 도덕 경영 중소기업 콤플렉스 나는 중앙정보부에서 18년 동안 일했다 각계각층의 사람들을 겪으면서 나는 그들이 진심으로 나를 좋아하는 것으로만 생각했다. 1980년에 나는 강제해직을 당했다. 그 당시 나는 참으로 외로웠다. 각별하게 지내던 사람들과 술이라도 맘껏 퍼마시고 싶었다. 그렇지만 그들은 나의 직위 앞에서 웃었을 뿐, 인간 정문술 앞에서 웃었던 것이 아님을 그제서야 알게 되었던 것이다. 강제해직 후 내가 겪어야 했던 것은 배신감만이 아니었다. 나의 공직생활은 나름대로 정직하고 성실했다. 그런 거짓웃음을 흘리는 것만큼 권력에 대한 증오를 품고 있는 사람들에 의해서 나는 이후로도 숱한 고초를 겪어야 했다. 말 그대로 '도매금'이었다. 미래산업을 시작하면서 나는 결심했다. 정치나 권력의 냄새가 나는 곳을 향해서는 숨도 크게 쉬지 않겠노라고. 권력 앞에서 거짓웃음을 팔고 속으로는 권력을 증오하는, 그런 사람들을 지금도 나는 주변에서 자주 본다. '어쩔 수 없다'는 말을 입에 달고 다니면서 끝도 없이 권력 주변을 배회하는 사람들, 그들이 욕하는 권력과 하등 다를 바 없는 이중적이고 기만적인 사람들. 기업가들 중에는 특히 그런 사람이 많다. '어쩔 수 없다'는 표현도 옳긴 옳다. 도장을 가진 사람들이 바라니까 해줄 수밖에 없지 않은가. 그런 풍토에서 기업을 하자면 내심 증오가 생겨나지 않을 도리도 없다. 물론 지금은 많이 좋아졌다. 그러나 그 타성만을 고스란히 남아 있다. 내가 보기 싫은 것은 바로 그 타성이다. 특히나 중소기업 사장들은 매우 바쁘다. 대기업에도 수시로 들락거려야 하고 관청에도 풍방구리처럼 들락거려야 한다. 언제나 중소기업은 풍전등화 신세이기 때문에 그렇다. 수십 년을 전전긍긍 버티다가도 힘 가지 사람들의 비위에 맞지 않으면 한순간에 무너져야 한다. 그래서 무슨 날만 되면 중소기업 사장들은 몸살이 난다. 인사 챙겨야 할 곳이 실수 없이 점검하는 것 자체가 일단 큰 일이다. 중소기업 사장들 중에는 골프를 잘 치는 사람이 많다. 나처럼 골프 못 치는 사람을 만나면 아주 이상한 눈으로 쳐다본다. 얼마 전엔가는 정말 웃지 못할 이야기를 들은 적도 있다. "정 사장은 그렇게 골프를 못 치면서 어떻게 성공했어 그래." 악순환이라고 생각한다. 중소기업이 권력에 기대어 버티기 때문에 권력이 끊어지면 무너지는 것이다. 지금까지 그래왔다면 지금부터라도 바뀌어야 옳다. 기업은 기업행위로 승부 해야 한다. 유통업체는 물류혁신으로, 제조업체는 기술혁신으로 버텨야 한다. 어째서 자기가 가진 것은 도외시하고 남의 것에 기대어 버티려고 하는가. 중소기업 하는 사람들을 만나면 언제나 죽는소리다. 국가정책이 어떻고, 시장이 어떻고, 뭐가 어떻고, 뭐가 어떻고 마이다. 자기 회사에 대한 이야기는 하나도 없다. 무슨 탓이 그리 많은가. 어째서 자기 호사에 대해서는 아무런 고민이 없는가. 그럴 때마다 나는 반대로 말하고 싶어지는 것이다. '그렇게 골프를 잘 치니 맨 날 사업이 그 모양이 아닌가.'사지 않고 못 뱃길 물건을 만들면 국내 시장이 망가져도 외국에서 사준다. 환경에 문제가 있다면 무시하자는 것이 내 경영철학이다. 아스팔트에도 민들레는 피어난다. 나라가 밀어주지 않으면 죽어버리는 기업이 과연 기업인가. 무슨 놈의 자본주의가 그런가. 기업에 잉여가 있으면 퍼다 주면서 뒤로 욕할 것이 아니라, 기업에 재투자하고 직원들에게 분배하라. 기업은 여러 사람의 살뜰한 꿈들이 모여 굴러가는 유기적 생명체인 것이다. 사장은 그 꿈들을 책임져야 할 의무가 있다. 제발 이지, 중소기업 사장들이여, 정치하지 말고 경영하라. 기업의 목숨을 담보로 함부로 장난치지 말라. 이것이 내가 하고 싶은 말이다. 무슨 탓이 그리 많은가. 어째서 자기 회사에 대해서는 아무런 고민이 없는가. 그럴 때마다 나는 반대로 말하고 싶어지는 것이다. '그렇게 골프를 잘 치나 맨 날 사업이 그 모양인가'
Board 말글 2022.01.13 風文 R 2374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참 가슴 찡한 이야기 - 황지니 모질게 기르세요. 조이스 목사는 몇 년 전에 덩굴장미를 정원의 모퉁이에 심었습니다. 덩굴장미는 노란 꽃을 풍성하게 맺는 종자로, 꽃이 필 것을 기대하고 심어 놓은 것입니다. 그러나 몇 년이 지나도록 꽃이 한 송이도 피지 않았습니다. 이상하게 생각한 그는 그 장미를 사 온 원예농장에 가서 물었습니다. 그리고 그동안 온갖 정성을 기울여 자주 물도 주고 볕을 쪼였으며 둘레의 흙을 기름지게 만들어서 가꾸어 준 결과 나무는 무성하게 잘 자랐으나 풍성한 노란 꽃은 피지 않았다고 말했습니다. 원예사는 바로 그런 원인들이 꽃을 피우지 못하는 이유라고 설명했습니다. "그런 종류의 장미들은 정원에서 제일 기름지지 못한 땅에 두어야 합니다. 비료를 주지도 말고 불필요한 가지는 사정없이 쳐내고 잘라버리세요. 그러면 꽃이 필 것입니다." 조이스는 당장에 달려가 원예사가 이야기한 대로 해보았습니다. 그랬더니 얼마 안 있어 덩굴에서는 비길 데 없이 화려하고 커다란 노란색의 장미 꽃송이들이 수없이 피어나는 것이 아닙니까. 그것을 통해 조이스는 중요한 교훈을 깨달았습니다. 노란 덩굴장미는 인간의 삶과 어쩌면 그렇게 같을까요. 곤경은 영혼의 아름다움을 향상시키며, 괴로움을 딛고 일어설 때 비로소 풍요로워집니다. 시련은 시련 당하는 자를 아름다운 존재로 만들지만 안락과 풍요와 갈채는 그들을 다만 황폐하게 할뿐입니다. 정말 행복한 사람이라고 부를 수 있는 사람은 부자가 아니라, 신들이 주신 축복을 지혜롭게 이용할 줄 알며, 극심한 빈곤을 인내할 줄 아는 자이며, 죽음보다도 비천한 불명예를 무서워할 줄 알며, 사랑하는 벗이나 조국을 위하여 죽기를 두려워하지 않는 자이다. (호라치우스) 내 아들을 은과 바꿀 수 없어요. 조선시대 숙종 때의 학자 김학성이 입신 출세하게 된 것은 가난을 고귀하게 여긴 어머니에 의해 이루어진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의 어머니는 일찍이 과부가 되어 가난과 싸우지 않으면 안 될 처지에 이르렀습니다. 그녀는 삯바느질을 하여 살림살이를 꾸려 가면서도 두 아들은 좋은 선생에게 보내어 공부하게 했습니다. 하루는 방에서 바느질을 하고 있는데 비가 내리기 시작하더니 이내 처마에서 물이 밑으로 뚝뚝 떨어졌습니다. 그런데 물방울이 닿는 곳에서 들려오는 소리가 마치 땅 밑에서 쇠그릇이 울리는 소리와 같았습니다. 어머니는 호기심에 땅을 파 보았습니다. 그랬더니 땅 속에는 큰 가마가 들어 있었고 그 안에는 하얀 은이 가득 차 있었습니다. 그러나 어머니는 가난한 살림에 큰 보화를 얻었음에도 불구하고 기뻐하지 않고 도리어 남 모르게 흙으로 다시 그것을 묻어 버렸습니다. 이튿날 어머니는 오빠에게 부탁하여 집을 팔고 다른 곳으로 이사를 했습니다. 그 후 두 아들은 장성하여 과거에 급제, 학문을 인정받기에 이르렀고 그제서야 고향으로 돌아온 어머니와 두 아들은 아버지의 제사를 모셨습니다. 제삿날에 어머니는 오빠에게 말했습니다. "남편을 잃은 후 나는 이 두 아이를 맡아 기르지 못할까 봐 아침, 저녁으로 마음을 썼습니다. 그런데 이제 아이들의 학업도 진취되고 아버지의 뜻을 계승할 수도 있게 되었으니 이제 나는 이 세상을 떠나도 부끄럽지 않겠습니다." 그리고 지난날 자신의 앞마당에서 발견한 은가마를 버린 사연을 덧붙여 말했습니다. 깜짝 놀란 오빠가 이유를 묻자 어머니는 다시 말했습니다. "이유 없이 큰돈을 얻으면 반드시 의외의 재앙이 있을 것입니다. 사람은 마땅히 고생해야 되는 것인데 어려서부터 편안하게 되면 공부에 전력을 다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돈을 낭비하는 습관만 생기고 마음이 점점 게을러져 쓸모없는 사람이 될 것이므로 이를 떠나는 것이 화를 떠나는 일인 줄 알아 기꺼이 가난의 길을 택하였던 것입니다." 사람이란 근로하면 착한 마음이 생기고, 안일하면 교만한 마음이 일어난다. (정도전)
Board 삶 속 글 2022.01.13 風文 R 57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