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참 가슴 찡한 이야기 - 황지니 미친 양반의 본심 고려말 신돈이 세력을 부리고 있던 시대에 경상도 영천에는 최원도라는 양반이 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최원도가 반쯤 미쳤다는 소문이 마을에 퍼졌습니다. 실제로 그는 한 끼에 밥 세 그릇을 먹어 치우고 방 안에서 용변을 보고 또 자기 방 근처엔 아무도 얼씬하지 못하게 하는 등 증세가 자못 심각했습니다. 아무렇지도 않았던 사람이 갑자기 미쳐 버리자 그의 아내는 이를 수상쩍게 여길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의 아내는 남편의 수발을 들고 있는 제비라는 계집종을 조용히 불러 남편의 행동을 감시하여 그 이유를 밝혀 내라고 지시했습니다. 결국 제비는 상전이 벽장 속에 낯선 두 사람을 숨겨 두고 밖에 알려지지 않게 하려고 일부러 미친 척한 것임을 알아냈습니다. 최원도가 미친 척하면서까지 숨겨 준 그 사람은 다름 아닌 이색, 정몽주와 더불어 고려말 소문난 충신인 광주땅에 사는 이집과 그의 아버지 이당이었습니다. 신돈의 포악한 정치를 조정에 상소했다가 신돈의 비위를 거슬려 이집은 곧 목숨이 위태로운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그래서 이집은 아버지를 업고 멀리 아버지의 친구인 영천땅의 최씨 집까지 피신을 했던 것입니다. 그 후 이집과 그의 아버지는 2 년여 동안 벽장 속에서 숨어 살았으며, 최원도는 그동안 미치광이 노릇을 계속하였습니다. 또한 최원도의 아내는 그 사실을 알고, 사실을 염탐한 여종 제비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그 비밀을 누설할까 걱정을 하게 됐고 제비는 주인마님의 걱정을 알아채고는 자신에게 사약을 내려 달라고 간청하였습니다. 그래서 최씨의 아내는 울면서 사약을 내렸고 제비는 큰절을 하고는 기꺼이 그것을 마셨습니다. 이렇게 진실한 친구의 우정과 여종의 절의로 이집은 살아남아 당대의 정신적 지주로 이름을 날렸습니다. 조센징은 틀린 말입니다. 일제 말엽 일본의 동경에서 유학하고 있던 한 학생이 자그마한 약속을 지켜 줌으로 해서 우리 민족의 신의를 인식시켜 준 실화입니다. 김군은 동경의 모 전문학교를 졸업하기 직전에 고향으로부터 어머니가 위독하시다는 전보를 받게 되었습니다. 그는 일본인 목사가 경영하는 기숙사에 묵고 있었는데 짐을 쌀 때 그 목사에게 배낭 하나를 빌려서 대충 필요한 생필품과 책자 몇 권만을 넣고 고향으로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고향에 돌아오자 그의 어머니는 이미 세상을 떠나셨고 태평양 전쟁은 막바지에 다다른 상황이었습니다. 일본은 폭격을 받게 되고 관부 연락선도 일 주일에 한 번 정도 내왕하게 되었습니다. 결국 그는 집안 사정과 차편으로 인해 일본으로 돌아갈 수 없게 된 것입니다. 다만 그가 걱정한 것은 일본의 기숙사에 두고 온 많은 자기 물건보다도 목사의 배낭을 보내지 못하는 것이었습니다. 어느 날 김군은 기차 안에서 동경으로 건너가는 상업학교 학생 한 명을 우연히 만나게 되었습니다. 처음 만나는 사람이었으나 그는 그 학생을 믿고 목사에게 배낭을 전해 달라는 부탁을 했습니다. 한두 달 뒤에 그는 모 중학교 교사로 취직이 되었습니다. 그 무렵, 배낭을 부탁했던 그 학생이 돌아왔습니다. 배낭을 잘 전달했음은 물론 그의 졸업장까지도 찾아왔습니다. 그로부터 얼마 뒤엔 일본인 목사로부터 편지가 왔습니다. "기차 안에서 만난 초면인 사람을 믿고 배낭을 부친 그대나 그것을 이 전란 중에 가지고 온 사람이나 모두 나를 감탄케 했습니다. 이런 신의 있는 사람들인데 어째서 우리 일본 사람들은 당신들을 '조센징'이라고 나쁘게 평하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습니다. 아마도 이것은 우리 일본 사람들이 섬사람이라서 마음이 좁기 때문일 것입니다." 일본인 목사는 그 얼마 되지 않는 고물 배낭이지만 잊지 않고 돌려보낸 김군이나, 그것을 먼 곳까지 찾아가 전달한 상업학교 학생의 태도에 탄복한 것입니다. 한 사람의 작은 신의가 온 민족의 명예를 드높일 수 있는 감동의 이야기입니다. 나는 진정으로 일본이 망하기를 원치 않고 좋은 나라가 되길 원한다. 이웃인 대한 나라를 유린하는 것은 결코 일본의 이익이 아닐 것이다. 원한 품은 이천만을 억지로 국민 중에 포함하는 것보다 우정있는 이천만을 이웃 국민으로 두는 것이 일본의 득일 것이다. 그러므로 대한의 독립을 주장하는 것은 동양의 평화와 일본의 복리까지도 원하는 것이다. (안창호)
Board 삶 속 글 2022.01.12 風文 R 1047
작은 이야기 2 - 정채봉, 류시화 엮음 1. 평범한 행복 2 50번째 상자 속 - 박인희 아침 방송을 끝내고 막 현관문을 나서려는데 누군가 나를 보며 웃고 있었다. 처음 만났으면서도 어디선가 늘 마주치던 모습처럼 환한 웃음을 띤 얼굴이었다. 경비원 아저씨가 말했다. "이렇게 추운 날씨에 아침 일찍 찾아와 지금까지 여기 서서 기다렸어요. 꼭 만나 보고 싶다고..." 아무 말도 없이 그녀는 작은 상자 하나를 내게 내밀었다. 어디에 살고 있는지, 이름이 무엇인지 아무것도 알 길이 없었다. 성냥 갑만한 작은 상자를 받아 들고 어설픈 인사를 나눈 채 급한 약속이 있었던 나는 그대로 자리를 뜨고 말았다. 차 속에서 궁금하던 상자를 열어 보았다. 손으로 곱게 접어 만든 종이 상자였다. 상자를 열면 또 하나의 하얀 상자가, 그 상자를 열어 보니 또 다른 상자가... 놀라움과 긴장으로 하나하나 풀어본 상자는 오십 개나 되었다. 마지막, 새끼손가락만한 작은 상자 속에 가느다랗게 돌돌 말린 종이 하나가 들어 있었다. 깨알만한, 그러나 또박또박 정갈하게 씌어진 글씨가 확 눈에 들어왔다. (God bless you(신의 은총을)!) 갑자기 신의 은총을 나 혼자 다 받은 듯 가슴이 뜨거워졌다. 이름도 주소도 모르는 여자가 내게 준 그 선물은 겨울 내내 나를 따뜻하게 해주었다. (방송인) 바다같이 넓어라 - 박대인 미국 고향친구가 생각난다. 그 사람은 어렸을 때 바다를 무척 좋아했다. 우리는 젊은 시절에 같이 배를 많이 탔다. 여름이면 매일 수영도 같이 했다. 그는 나중에 음악 공부를 많이 했고 철학을 전공해 대학원까지 나왔다. 한때 철학을 가르치기도 했지만 바다 생각이 너무 간절해서 교실을 떠나 바다로 돌아갔다. 그리고 지금은 자기의 작은 배로 평범한 어민 생활을 하고 있다. 고기 잡는 철학가. 지금은 50대의 가장이지만 그 친구야말로 젊은이의 매력을 그대로 간직한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미국인, 감리교 신학대학장 역임)
Board 삶 속 글 2022.01.12 風文 R 448
자백과 고백 자백이란 말과 고백이란 말은 생김새도 비슷하고, 같은 한자도 들어 있고 하니까 비슷한 말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이 말이 사용되는 맥락을 곱씹어보면 그 차이는 크고도 크다. 사용자의 태도와 심성, 사용되는 언어의 가치 자체가 근본적으로 다르기 때문이다. 잘못을 저지르고 나서 그것을 ‘자백’하는 사람들은 자신의 과오를 조금이라도 더 숨기거나 줄여보려고 한다. 죗값이 가벼운 쪽으로 저울질되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자백을 요긴하게 이용하려면 잘못의 주체를 ‘타인’으로 삼고 적당히 둘러대야 ‘법적’으로는 조금이나마 유리해진다. 신문을 당하며 조금만 살짝 자백하고 더 추궁당하면 또 찔끔 자백하고, 요리 빼고 조리 빼고 하면서, 신문자와 씨름을 하게 된다. 신문하는 사람이나 옆에서 보는 사람이나 분노를 느끼게 된다. 자백은 하면 할수록 스스로 추해진다. 자백이 아닌 ‘고백’은 신문하는 사람이 없다. 자기가 다 털어놓는 것이다. 그 안에는 자기 잘못도 들어 있으며 또한 잘못된 판단에 이르는 과정에 대한 진지한 반성과 성찰 그리고 뉘우침이 담겨 있다. 고백의 주체는 오로지 ‘나’이다. 그러니 고백에는 핑계와 둘러대기가 없다. 그럼에도 사람의 마음을 움직인다. 그러한 행위와 심정을 적은 고백문학이 값진 평가를 받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고백은 하면 할수록 스스로 맑아진다. 비록 윤리적으로, 법적으로는 문제가 있을지라도 많은 가르침을 남기기도 한다. 지금 이 나라의 대통령에게 국민이 요구하는 것은 자백이 아닌 고백이다. 그리고 그 고백에 마땅히 뒤따라야 할 올바른 후속 행위이다. 하루하루를 힘들게 견뎌가며 사는 이들에게 이렇게 정치적 불안정을 오래 강요하는 것은 대통령 자신과 국민 양쪽에 걷잡을 수 없는 불행을 불러온다. 시간이 그리 많지 않다. 국민이 한없이 기다릴 수는 없다. 김하수/한겨레말글연구소 연구위원·전 연세대 교수
오염된 소통 역사를 들여다보면 왕실의 외척이 문제가 되는 경우가 많다. 요즘의 정치 상황과 결부시켜 다시 보니 옛날의 외척은 요즘의 비선 조직이 아니었을까? 그들은 공적인 소통 통로를 사적인 연유로 혼란스럽게 만든다는 점에서 매우 유사하다. 시대를 달리하면서 일종의 유의 관계에 있는 셈이다. 모든 공적 조직은 공적인 소통의 통로를 가지고 있다. 그리고 비교적 개방적인 구조를 가지고 있다. 뿐만 아니라 그 통로를 통해 이루어진 온갖 대화를 문서로 남긴다. 그래서 공적인 언어는 재구성이 가능하다. 마찬가지로 사적인 관계도 사적인 소통의 통로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그 소통은 문서를 보존하는 경우가 드물다. 그래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재구성이 잘 안된다. 은밀하게 폐쇄적인 부분이 많기도 하다. 게다가 객관화가 잘 안되는 감성적인 부분도 많다. 많은 경우에 공적인 소통을 사적으로 오염시키기 쉽다. 공적 조직에서 사적인 이익 추구가 문제되는 것은 공적인 이익을 사적인 이해관계보다 하위 개념으로 만들기 때문이다. 따라서 공조직의 책임자가 진정 두려워해야 할 것은 외부의 눈초리보다 자신의 마음과 자신의 말이다. 공적인 업무에 사적인 그늘이 지게 되면 주저하지 말고 공적인 업무에서 손을 떼거나 사사로움과 단호하게 단절하는 것이 올바르고 안전한 자세이다. 대학에서 교수 자녀들이 같은 대학의 입시에 응시할 때면 당연히 출제와 채점 과정에서 해당 교수를 배제한다. 사적인 이익이 공적인 업무를 방해할 가능성이 생겼기 때문이다. 사실상 감금 상태에서 출제를 하는 것도 해당 교수를 공익의 울타리 안에 가두어 보호하기 위해서다. 만일 이 보호막에 구멍을 낸다면 당연히 그는 용의자가 될 수밖에 없다. 김하수/한겨레말글연구소 연구위원·전 연세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