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할 땐 별이 되고 - 이해인 새가 있는 언덕길에서 4 10년 가까이 사회와 격리된 높은 담장 안에서 자유를 그리며 라면 박스로 만든 서가에 <꽃삽>이란 나의 책도 꽂아 두고 본다는 대철의 글을 약간은 슬프게 새소리를 들으며 읽었다. `오늘은 한 주일 동안 쌓인 빨래는 하는 날. 우중충한 세면장에 덩그라니 혼자 앉아 양말을 빨고 있는데 창 밖에 웬 참새소리가 그리 요란한지. 재잘재잘재잘... 하도 시끄럽길래 일어나서 내다보았더니 잎이 파란 삼나무 한 그루 외엔 아무것도 안 보이는 것입니다. 아마도 놈들이 그 안에 숨어서 지절거리는 것이겠지요. 갑자기 한 놈이 후두둑하고 튀어나오더니 십여 마리가 뒤따라 나와 저쪽 취사장 쪽으로 날아가 버리데요. 재잘재잘하는 여운만 남겨 놓은 채. 문득 `살아갈수록 가볍고 싶은데 살아갈수록 내가 무겁구나` 하는 수녀님의 .새에 대한 단상이 떠올랐습니다. 그러고보니 저렇게 새처럼 가볍게 지절거려 본 일이 또 지절거림을 들어 본 일이 얼마나 되었던가요? 밖에서였더라면 남자답지 못하다고 핀잔이나 받았을 조잘거림이 왜 이리 그리운지요. 기분같아서는 누군가 옆에서 하루 종일 조잘거린다 해도 다 들어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꽤 무거운 저는 오랜 격리생활 때문에 더욱 무거워진 것 같습니다. 아, 새처럼 공기처럼 가벼울 수 있다면...` 5 비 내리던 오늘 아침. 미사와 기도시간 뒤에도 종다리의 노래를 들었다. 빗속에 듣는 새소리는 더욱 잊을 수 없다. 참으로 밝고 명랑한 새들의 합창을 들을 때면 사소한 일로 우울하고 어두웠던 내 마음을 훌훌 털고 이내 명랑해져야겠다는 의무감마저 생겨 새들에게 고마운 인사를 보낸다. 홀로가 아니라 여럿이 함께 부르는 새들의 노랫소리는 얼마나 멋지고 흥겨운지! 6 자신의 내면에 깊숙히 숨겨져 있는 동심과 향수를 자극하는 그림들로 여겨져 그 아름다움에 끌려 장욱진 화백의 회고전에 다녀왔다는 석영이란 독자가 특별히 나를 생각해서 보내 준 화집을 나는 요즘 거의 매일 들여다보며 즐거워한다. `까치` `비상` `나무와 새` 등등 그의 그림에 많이도 등장하는 새들의 모습에서 난 시를 읽고 음악을 듣는다. 새가 그려진 엽서. 달력, 우표, 손수건 그리고 아름답고 멋진 그림들을 몇개 갖고 있는 것만으로도 나는 부자로구나.
Board 삶 속 글 2022.09.02 風文 R 495
한국대표수필 - 김동리 외 9명 "양주동편" 양주동(1903~1977) 시인, 국어 국문 학자. 호는 무애. 경기도 개성 출생. 일본 와세다 대학 영문과 졸업. 문학 박사. 일찍이 향가의 해독에 큰 공격을 세운 바 있으며, '국보'라는 별명과 함께 변설에 비상한 재능을 보였다. 지적이면서도 해학이 넘치는 수필이 많으며 문장은 건축감이 있어 선명한 인상을 준다. 몇 어찌 내가 중학교의 전 과정을 단1년 간에 수료하는 J중학 속성과에 입학한 것은 3.1운동 이듬해였다. 그 때까진 고향에서 한문학에 몰두하고 있었다. 한문학이라면 노상 무불통지를 자처하는 나였으나, '처녀작','삼인칭' 같은 신식 말 때문에 크게 고심하던 중이어서, 나는 참으로 부푼 가슴을 안고 신학문을 배우러 들어갔던 것이다. 나는 개학 전날, 교과서를 사 가지고 하숙에 돌아와 큰 호기심을 가지고 훑어보았다. 그러던 중, '처녀작', '삼인칭'에 못지않은 참 기괴한 또 한 단어를 발견했는데, 그게 곧 '기하'라는 것이었다. '기하'의 '기'는 '몇'이란 뜻이요, '하'는 '어찌'란 뜻의 글자임이야 어찌 모르랴만, 이 두 글자로 이루어진 '기하'란 말의 뜻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기하'라? '몇 어찌'라는? 첫 기하 시간이었다. 나는 자리를 정돈하고 앉아서 선생님을 기다렸다. 이윽고 선생님께서 들어오셔서 우리들의 예를 받으시고, 막 강의를 시작하려 하실 때였다. 맨 앞줄에 앉았던 나는 손을 번쩍 들고, "선생님, 대체 '기하'가 무슨 뜻입니까? '몇 어찌'라뇨?"하고 질문을 했다. 선생님께서는 이 기상천외의 질문을 받으시고, 처음에는 선생님을 놀리려는 공연한 시문으로 아셨던지 어디서 왔느냐, 정말 그 뜻을 모르느냐 하고 물으셨다. 그러나 곧, 나에게 아무 악의도 없음을 알아채시고, 그 말의 유래와 뜻을 가르쳐 주셨다. 가로되, 영어의 '지오메트리(측지술)'를, 중국 명나라 말기의 서광계가 중국어로 옮길 때, 이 말에서 '지오(땅)'를 따서 '지허'라 음역한 것인데, 이를 우리는 우리 한자음을 따라 '기하'라 하게 된 것이라고. "알겠느냐?" "예." "너, 한문은 얼마나 배웠느냐?" "사서삼경, 제자백가 무불통지입니다." "그런데, '기하'의 뜻을 모른다?" "한문엔 그런 말이 없습니다." "허허, 그런데, 너 내일부터는 세수 좀 하고 오너라." "예." 사실 나는 '기하'란 말의 뜻과 그 미지의 내용을 생각하는데 너무 골똘했던 나머지, 세수하는 것도 잊고 등교했던 것이다. 나머지 시간은 일사천리로 강의가 계속되어, '점, 선, 면'의 정의를 배우고 '각, 예각, 둔각, 대정각'을 배우고, '공리, 정리, 계'란 용어를 배웠다. 하숙에 돌아온 나는 또, '정리란 증명을 요하는 진리다.'와 같은, 참으로 기괴한 문장을 뇌까리면서, 다음 기하 시간을 초조하게 기다렸다. 다음날의 기하 시간이었다. 공부할 문제는 '정리 1. 대정각은 서로 같다.'를 증명하는 것이었다. 나는 또 손을 번쩍 들고, "두 곧은 막대기를 가위 모양으로 교차, 고정시켜 놓고 벌렸다 닫았다 하면, 아래위의 각이 서로 같을 것은 정한 이치인데, 무슨 다른 '증명'이 필요하겠습니까?"하고 말했다. 선생님께서는 허허 웃으시고는, 그건 비유지 증명은 아니라고 하셨다. "그럼, 비유를 하지 않고 대정각이 같다는 걸 증명할 수 있습니까?" "물론이지. 음, 봐라." 선생님께선 칠판에다 두 선분을 교차되게 긋고, 한 선분의 두 끝을 A와 B, 또 한 선분의 두 끝을 C와 D, 교차점을 O,그리고 ...AOC를 a, ...COB를 b, ...BOD를 c라 표시한 다음, 나에게 질문을 해 가면서 칠판에다 식을 써 나가셨다. "a+b는 몇 도?" "180도입니다." "b+c도 180도이지?" "예." "그럼, a+b=b+c이지?" "예." "그러니까, a=c 아니냐." "예. 그런데, 어찌 됐다는 말씀이십니까?" "잘 봐라, 어떻게 됐나." "아하!" 멋모르고 "예, 예." 하다 보니 어느덧 대정각(a 와 c)이 같아져 있지 않은가! 그 놀라움, 그 신기함, 그 감격, 나는 그 과학적, 실증적 학풍 앞에 아찔한 현기증을 느끼면서, 내 조국의 모습이 눈앞에 퍼뜩 스쳐감을 놓칠 수 없었다. 현대 문명에 지각하여, 영문도 모르고 무슨 무슨 조약에다 "예, 예." 하고 도장만 찍다가, 드디어 "자 봐라, 어떻게 됐나,"의 망국의 슬픔을 당한 내 조국! 오냐, 신학문을 배우리라. 나라를 찾으리라. 나는 그 날 밤을 하얗게 새웠다. 나는 지금도 첫 강의 시간에는 대개, 위에 적은 이야기를 학생들에게 들려 주고, 중학교에 들어가서 기하를 처음 배울 때, 그 말의 뜻을 묻는 학생이 과연 몇이나 되느냐 하고 농담삼아 질문을 한다. 그리고, 이러한 '발의심'과 새 세계에 대한 '경이감'을 잃지 않았기에, 알량하나마 학적 저서 약간 권을 이룩했노라고 말한다.
내 마음이 강해야 내 소원도 이루어진다 - 잭 캔필드, 마크 빅터 한센 1. 소원성취는 마음먹기 나름 경험을 통해 배운 남자 - 하브 에커 나는 플로리다 포트 로데르데일에 위치한 비디오 도매점에서 판매사원으로 일하던 중, 내 인생에서 가장 큰 교훈을 배웠다. 당시 우리는 판매 수수료를 받았다. 텔레비전과 비디오 카메라 같은 기계류는 수수료가 적은데 반하여, 배터리와 가방을 비롯한 기타 선택 부속품의 수수료는 많았다. 어느날, 한 남자가 허둥지둥 들어왔다. 그는 가족과 함께 여행을 가는 중인데 비디오 카메라 한대를 달라고 했다. 그리고 가족이 차에서 기다리고 있으니 물건을 빨리 달라고 했다. 그는 나를 믿고 이렇게 말했다. "자, 여기 천 달러가 있으니 나에게 적합한 비디오 카메라를 골라주게. 지금 당장 사용할 수 있는 것으로." 그래서 나는 그에게 비디오 카메라의 기종을 추천하고 그 작동법을 보여줬다. 이미 말했다시피, 비디오 카메라의 수수료는 낮았기 때문에 나는 그 거래에서 별 이익을 보지 못했다. 나는 속으로 '이 손님은 굉장히 바쁘니까'하고 생각하고 다른 선택 부속품을 권하지 않았다. 그리고 사흘 후 그 손님이 몹시 화가 나서 다시 찾아왔다. 그는 나를 원수처럼 노려보며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나는 자네를 믿었네. 내가 이곳에 오자마자 천 달러짜리 수표를 써 줬잖아. 그랬으면, 자네가 나를 생각해 줬어야지. 나는 처음으로 가족과 함께 디즈니랜드에 갔는데, 촬영을 시작한 지 단 이십 분만에 비디오 카메라의 배터리가 나가 버렸단 말일세. 자네가 신경을 써서 여분의 배터리를 팔았어야지!" 내가 말했다. "하지만 손님께서 너무 서둘러서요." "자네는 내 휴가를 완전히 망쳐 버렸어!" 나는 몸둘 바를 몰랐다. 그리고 그 후로 다시는 다른 사람의 생각을 읽거나, 그들에게 무엇이 필요한지 지레 짐작하는 잘못을 저지르지 않았다. 나는 '여분의 배터리가 필요하지 않으십니까?'라는 단 2초짜리 질문을 던지고 고객에게 결정권을 줬어야 했다. 결국 나는 고객뿐 아니라 소중한 수수료까지 날린 셈이었다. 이제 나는 항상 고객에게 선택권을 주고, 그 유용성의 여부를 그들의 판단에 맡기고 있다.
Board 추천글 2022.09.02 風文 R 1322
Board 고사성어 2022.09.02 風文 R 884
효녀 노릇 ‘효자, 효녀’ 같은 뻔한 반대말도 맥락에 따라 쓰임새가 달라진다. 어떤 분야에서 큰 도움이 되는 역할을 빗대어 ‘효자 노릇’이라 하지 ‘효녀 노릇’이라 하지 않는다. 힘이 센 ‘효자’에게 대표 자격을 줬다. ‘코로나로 망친 섬유 수출, 마스크가 효자 노릇’, ‘소방 드론, 화재 현장서 효자 노릇’, ‘코로나로 주목받는 김치, 수출 효자 노릇 톡톡’처럼 성 중립적인 ‘마스크, 드론, 김치’도 모두 ‘효자’로 비유된다. 이런 남성 대표어가 여성 영역까지 대표하면 야릇해진다. 코로나로 아이들이 집에 있는 시간이 많아졌다. 아이들이 인터넷이나 게임에 빠져 지내는 게 싫은 부모들이 딸들에게는 인형을 많이 사줬다고 한다. 그 여파로 바비 인형 매출이 급등했다. 신문에서는 ‘바비 인형이 해당 업체의 제품 중 가장 많이 팔리며 효자 노릇을 톡톡히 했다’고 보도했다. 일부 커뮤니티에서는 ‘아름다운 여성=마른 백인 여성’이라는 인식을 심어준 바비 인형이 다시 잘 팔린다는 소식도 탐탁지 않은데, 그마저 ‘효녀 노릇’이 아닌 ‘효자 노릇’이라고 하니 더 분통을 터뜨렸다. 그러고 보니 8회 연속 올림픽 금메달을 따도 여자양궁은 여전히 ‘효자 종목’이고, 화장품을 팔든 란제리를 팔든 수익률만 높으면 다 ‘효자 종목’이다. 반면에 ‘효녀 노릇’은 제자리다. 부모 섬기는 일을 넘어서지 않는다. 비유적 쓰임에서도 성 역할의 낙차를 느낀다. 말에는 사회적 무의식이 담겨 있어서 곱씹지 않으면 알아차릴 수 없다. 글 제목을 ‘효녀 노릇’이라 달아 ‘효녀’의 의미가 약진하기를 바라는 얕은꾀를 쓴다. 생각보다 군더더기 말 때문에 속내를 들키는 경우가 많다. 나/우리의 ‘속내’는 온갖 판단과 부조리와 모순과 욕망과 이기심과 열등감과 속물근성과 허세로 가득하다. ‘진솔함’은 이 추악한 속내를 남김없이 쏟아내는 게 아니다. 그걸 없애는 일의 어려움(불가능함)과 실패를 실토하는 거다. 세상은 추악한 속내를 숨기질 못하고 실행에 옮기는 자들 때문에 추해진다. 말을 할 때 이런 ‘속내’가 드러나지 않도록 머뭇거리고 조심해야 한다. ‘생각보다’라는 말은 나도 모르게 자기 속내를 드러내는 표현이다. 상대에 대해 미리 어떤 기대나 예측, 평가를 하고 있었다는 뜻이다. ‘생각보다 못생겼더라’, ‘생각보다 일을 못 해’, ‘생각보다 안 어울리네’처럼 부정적인 평가는 말할 필요도 없다. ‘생각보다 일을 잘하는군’, ‘생각보다 멋있네요’처럼 겉보기에 칭찬으로 들리는 말도 상대에 대한 애초의 기대가 별로였음을 몰래 감추고 있다. 그냥 ‘일 잘하는군’, ‘멋있네요’라고 하면 된다. 마음속 생각과 입 밖으로 끄집어낼 말은 같을 수 없다. 생각과 말이 일치할 때 도리어 문제가 생긴다. 어차피 모든 말에는 말하는 사람의 생각이 드러난다. 굳이 평소에 어떤 생각을 품고 있었는지 시시콜콜 보여줄 것까지는 없다. 진정한 행복은 ‘속 시끄러운’ 생각을 멈추는 데에서 시작된다. 하지만 마음속에 있는 시끄러운 소리는 그것대로 놔두더라도 밖으로 드러나는 말은 매 순간 있는 힘을 다해 조심해야 한다. 편협한 자신이 드러나고 상대에게 상처 주는 말이라면 더 조심해야 한다. 생각은 자유롭게 하되, 표현은 절제해야 한다. 김진해 / 한겨레말글연구소 연구위원·경희대 교수
사랑할 땐 별이 되고 - 이해인 새가 있는 언덕길에서 1 새야, 네가 앉아 있는 푸른 풀밭에 나도 동그마니 앉아 있을 때, 네 조그만 발자국이 찍힌 하얀 모래밭을 맨발로 거닐 때 나도 문득 한 마리 새가 되는 느낌이란다. 오늘은 꽃향기 가득한 언덕길을 오르다가 네가 떨어뜨린 고운 깃털 한 개를 주우며 미움이 없는 네 눈길을 생각했다. 지금은 네가 어느 하늘을 날고 있는지 모르지만 내가 주운 따스하고 보드라운 깃털 한 개로 넌 어느새 내 그리운 친구가 되었구나. 넌 이해할 수 있니? 늘 가까이 만나 오던 이들도 어느 순간 왠지 서먹해지고, 처음 대하는 이도 오랫동안 알고 지냈던 것처럼 정답게 느껴질 수 있는 사람의 마음을 말이야. 네가 무심히 흘리고 간 한개의 깃털이 나의 시집 갈피에서 푸드득 날개소리를 내듯이 내가 이 땅에 흘려 놓은 시의 조각들이 어디선가 날개를 달고 하늘로 올라갈 수 있다면 얼마나 기쁘겠니? 아니 하늘로 영원히 오르기 전에 사랑하는 누군가의 가슴속에서 이미 새가 될 수 있다면... 너를 조용히 생각하는 오늘밤은 나의 삶도 더욱 경이롭게 느껴져 잠이 오질 않는구나. 내 삶의 숲에는 아직도 숨어 있는 보물들이 너무 많아 나는 내내 콩새가슴으로 설레이는구나. 2 해질녘, 수녀원의 언덕길과 돌층계 위에서 수평선을 바라보면 내 마음에 새가 되어 날아드는 어린 시절의 동무들. "나하고 놀자" "소꼽놀이 하자"고 불러내던 눈매 고운 소녀도, 학교 갈 때면 내가 보고 싶어 목을 길게 빼고 우리 동네 쪽을 바라보며 걷는다고 얘기했던 마음 어진 소년도 수평으로 앉아 있다가 파도 모양을 그리며 천천히 날아오네. 깊은 뜻도 잘 모르고 전에 자주 되풀이했던 그립다는 말, 보고 싶다는 말. 이젠 너무 오래 안 듣고, 안하고 살았더니 문득 어린 시절의 동무들이 날아와 나를 부르네. 3 친구야, 네가 너무 바빠 하늘은 볼 수 없을 때 나는 잠시 네가슴에 내려앉아 하늘냄새를 파닥이는 작은 새가 되고 싶다. 사는 일의 무게로 네가 기쁨을 잃었을 때 나는 잠시 너의 창가에 앉아 노랫소리로 훼방을 놓은 고운 새가 되고 싶다. 모든 이를 다 불러모을 넓은 집은 내게 없어도 문득 너를 향한 그리움으로 다시 짓는 나의 집은 부서져도 행복할 것 같은 자유의 빈집이다.
Board 삶 속 글 2022.09.01 風文 R 452
한국대표수필 - 김동리 외 9명 "양주동편" 양주동(1903~1977) 시인, 국어 국문 학자. 호는 무애. 경기도 개성 출생. 일본 와세다 대학 영문과 졸업. 문학 박사. 일찍이 향가의 해독에 큰 공격을 세운 바 있으며, '국보'라는 별명과 함께 변설에 비상한 재능을 보였다. 지적이면서도 해학이 넘치는 수필이 많으며 문장은 건축감이 있어 선명한 인상을 준다. 질화로 촌가의 질화로는 가정의 한 필수품, 한 장식품일 뿐만 아니라, 그들의 정, 그들의 사랑의 용로이었다. 되는대로 만들어진, 흙으로 구운 질화로는, 그 생김생김부터가 그들처럼 단순하고 순박하건마는, 지그시 누르는 넓적한 불돌 아래, 사뭇 온종일 혹은 밤새도록 저 혼자 불을 지니고 보호하는 미덥고 덕성스러운 것이었다. 갑자기 확확 달았다가 이내 식고 마는 요새의 문화 화로와는 무릇 그 본성이 다른 것이다. 이 질화로를 두른 정경은 안방과 사랑이 매우 달랐다. 안방의 질화로는 비록 방 한구석에 있으나, 그 위에 놓인 찌개 그릇은 혹은 '에미네'가 '남정'을 기다리는 사랑, 혹은 '오마니'가 '서당아이'를 고대하는 정성과 함께 언제나 따뜻했다. 토장에 무를 썰어서 버무린 찌개나마 거기에는 정이 있고, 말없는 이야기가 있고, 글로 표현하지 못할, 그윽하고 아름답고 정다운 세계가 있었다. 누가 식전의 방장을 말하는가. 누가 수륙의 향연을 이르는가. 진실로 행복된 점에 있어서야, 진실로 참된 정에 있어서야, 우리 옛 마을 집집마다 그 안방에 놓였던 질화로의 찌개만하랴. 마음에서 소년은 '서당아이'라 불리었다. 혹은 사략 초권을 끼고, 혹은 맹자를 들고 서당엘 다니기 때문이다. 아잇적, 서당에 다닐 때 붙은 서당아이란 이름은, 장가를 들고 아들을 본 뒤까지도 그냥 남아서, 30이 넘어도 그 부모는 서당아이라고 불렀다. 우리집 이웃의 늙은 부부는 늦게야 아들 하나를 얻었는데, 자기네가 목불식정인 것이 철천의 한이 되어서, 아들만은 어떻게 해서든지 글을 시켜 보겠다고, 어려운 살림에도 아들을 서당에 보내고, 노상 '우리 서당애' '우리 서당애' 하며 아들 이야기를 했었다. 그의 집 단칸방에 있는 다 깨어진 질화로 위에, 점심 먹으러 돌아오는 애의 서당아이를 기다리는 따뜻한 토장 찌개가 놓였음은 물론이다. 그 아들이 천자문을 읽는데, '질그릇 도, 당국 당'이라 배운 것을 어찌 된 셈인지 '꼬끼요도, 당국 당'이라는 기상천외의 오독을 하였다. 이것을 들은 늙은 '오마니'가, 알지는 못하나마 하도 괴이하여 의의를 삽한즉, 영감이 분연히, "여보 할멈, 알지도 못하면서 공연히 쓸데없는 소리 마소. 글에 별소리가 다 있는데, '꼬끼요 도'는 없을라고."하였다. 이렇게 단연히 서당아이를 변호한 것도 바로 질화로의 찌개 그릇을 둘러앉아서였다. 얼마나 인정미 넘치는 태고연한 풍경이냐. 사랑에 놓인 또 하나의 질화로는 이와는 좀 다른 풍경을 보이었다. 머슴, 소배들이 모인 곳이면, 신삼기, 둥우리 만들기에 질화로를 에워싸 한창 분주하지마는, 팔씨름이라도 벌어지는 때에는 쌍방이 엎디어 서로 버티는 서슬에 화로를 발로 차 온 방 안에 재를 쏟아 놓기가 일쑤요, 노인들이 모인 곳이면, 고담책보기, 시절 이야기, 동네 젊은 애들 버릇 없어져 간다는 이야기들이 이 질화로를 둘러서 일어나는 일이거니와, 노인들의, 입김이 적어서 꺼지기 쉬운 장죽은 연해 화로의 불돌 밑을 번갈아 찾아갔었다. 그리하여, 기나긴 겨울밤은 어느덧 밝을녘이 되는 것이다. 돌이켜 우리집은 어떠했던가? 나도 5, 6세 때에는 서당아이였고, 따라서 질화로 위에는 나를 기다리는 어머니의 찌개 그릇이 있었고, 사랑에서는 밤마다 아버지의 담뱃대 터시는 소리와 고서 읽으시는 소리가 화로를 둘러 끊임없이 들렸었다. 그러나 내가 다섯 살 되던 해에 그 소리는 사랑에서 그쳤고, 따라서 바깥 화로는 필요가 없어졌고, 하나 남은 안방의 화로 곁에서 어머니는 나에게 대학을 구수하시게 되었다. 그러나 어머니마저 내가 열두 살 되던 해에 그 질화로 옆을 길이 떠나가시었다. 그리하여 서당아이는 완전한 고아가 되어, 신식 글을 배우러 옛 마을을 떠나 동서로 표박하게 되었고, 화로는 또다시 찾을 수 없는 어머니의 사랑과 함께 영영 잃어버리고 말았다. 질화로의 찌개 그릇과 또 하나 질화로에 깊이 묻히던 장죽, 노변의 추억은 20년 전이 바로 어제와 같다.
내 마음이 강해야 내 소원도 이루어진다 - 잭 캔필드, 마크 빅터 한센 1. 소원성취는 마음먹기 나름 공포와 맞서 요청한 남자 - 마크 빅터 한센 어느 주말에 벤쿠버 출신 말콤은 약혼녀와 함께 브리티쉬 콜럼비아의 북쪽 숲을 하이킹하고 있었다. 그들은 어쩌다가 어미곰과 새끼 곰과 맞닥뜨렸다. 어미 곰은 새끼를 보호하려고 그의 약혼녀를 서로 잡았다. 말콤은 겨우 165센티였고 곰은 거대했지만, 그는 용기를 내서 약혼녀를 구하려고 나섰다. 어미 곰은 약혼녀를 놓는 대신 그를 움켜잡고 온몸의 주요한 뼈를 으스려 뜨렸다. 그리고 날카로운 손톱으로 그의 얼굴에서 두개골 뒤쪽에 이르기까지 깊은 상처를 냈다. 말콤이 살아났다는 사실조차 기적이었다. 그는 8년 동안 회복 수술을 받았고, 의사들은 할 수 있는 모든 능력을 발휘해서 성형 수술을 했다. 하지만 그 결과는 그다지 좋지 않았다. 그는 추한 사내가 되었고, 더 이상 얼굴을 들고 세상에 나가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말콤은 어느 날 휠체어를 타고 병원 10층 지붕 위로 올라가 뛰어내릴 준비를 했다. 막 뛰어내리려는 절박한 순간, 그의 아버지가 나타났다. 그의 아버지는 '아들을 찾아가라'는 내면의 본능적인 소리를 듣고 달려온 터였다. 절대 절명의 순간, 그의 아버지가 계단 꼭대기에 나타나서 소리쳤다. "말콤, 기다려라." 아버지의 목소리를 알아들은 말콤은 휠체어를 돌려세웠다. 아버지가 말을 이었다. "말콤, 모든 인간은 내면에 깊은 흉터를 가지고 있단다. 우리 대부분은 미소와 화장과 좋은 의상으로 그것을 감추고 있지만, 네 흉터는 밖으로 드러났을 뿐이다. 그러나 흉터가 겉에 있든, 속에 있든 우리가 상처를 받았다는 점은 다 똑같아. 아들아, 우리는 모두 어떤 식으로든 깊은 흉터를 안고 살아간단다." 말콤은 도저히 그 건물에서 뛰어내릴 수 없었다. 그로부터 얼마 후, 한 친구가 그에게 동기 부여 테이프를 선물했다. 그는 그 테이프에서 폴 제퍼스에 대한 부분을 들었다. 폴은 42살의 나이에 청각을 상실했지만 이 세상에서 가장 뛰어난 판매 사원이 된 사람이었다. 말콤은 폴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시련은 평범한 사람을 비범하게 만들어 줍니다." 말콤은 그 자신에게 말했다. "바로 나잖아! 나는 비범해!" 말콤은 육체적인 추함 때문에 타인으로부터 거절당하리라는 공포와 맞서 싸워야 했다. 그래서 그는 보험 판매원이 되기로 결정했다. 그 일은 직업 성격상 하루에도 수없이 거절당했기 때문이다. 그는 잠재적인 약점을 하나의 자산으로 만들겠노라고 결심했다. 그는 사람들에게 그의 사진을 박은 명함을 나눠주며 이렇게 말했다. "보시다시피 제 외모는 추합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저를 알 기회를 가진다면, 저의 내면이 아름답다는 사실을 발견하실 겁니다." 그리고 1년 후, 말콤은 벤쿠버에서 최고의 보험 판매원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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