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마음이 강해야 내 소원도 이루어진다 - 잭 캔필드, 마크 빅터 한센 2. 거절을 두려워하지 말라 인생에서웃기는 점은 최고가 아닌 것을 거절하면 결국 최고를 손에 넣게 된다는 사실이다. - 서머셋 모음 101가지 소원 목록을 만들어라 - 바바라 드 안젤리스 원하는 것을 모른다면, 그것을 요청할 수 없다. 세상의 많은 이들은 스스로 무엇을 원하는지 모른다. 혹은, 자신의 가치보다 훨씬 못한 것을 원한다. 무엇보다, 당신 자신이 원하는 것을 알아내야 할 필요가 있다. 둘째, 스스로 그것을 청할 가치가 자신에게 있음을 결정해야 한다. 셋째, 그것을 얻을 수 있음을 믿어야 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그것을 요구할 수 있는 배짱을 지녀야 한다. - 잭 캔필드와 마크빅터 한센 존 고다드는 15살 때 소원 목록을 만들었다. 그의 아버지는 성공한 사업가로 매주 금요일마다 저녁식사에 친구를 초대했다. 어린 존 고다드는 그 식사 시간에 엿들었던 대화에 깊은 감명을 받았다. 그의 아버지와 손님들은 미처 시작도 하지 못했던 일에 대해 아쉬움을 털어놓곤 했다. 그러던 어느날, 존은 아버지와 그 친구들과 같은 나이에 그들과 똑같은 후회를 하지 않겠노라고 결심했다. 존은 방으로 가서 127가지의 소원 목록을 하나씩 적어 내려갔다. 이제 나이 60에 접어든 존은 그 127가지의 소원 중에서 무려 115가지나 성취했다. 그 목록은 그의 전 생애의 기초가 되었고, 그에게 수백여 나라를 방문하고 교황을 포함한 여로 세계 지도자를 만나고 수많은 꿈을 달성하도록 채찍질했다. 그는 중국의 만리장성을 구경하고, 나일강을 탐험하고, 로즈 볼 퍼레이드에서 말을 타고 행진하고, 48가지 기종의 비행기 조정법을 익혔다.
Board 추천글 2022.09.04 風文 R 1212
화룡점정(畵龍點睛) - 가장 긴요한 부분을 끝내어 완성시킴.《出典》'水衡記' 남북조(南北朝)시대, 남조(南朝)인 양(梁)나라에 장승요(張僧繇)라는 사람이 있었다. 우군장군(右軍將軍)과 오흥태수(吳興太守)를 지냈다고 하니 벼슬길에서도 입신(立身)한 편이지만, 그는 붓 하나로 모든 사물을 실물과 똑같이 그리는 화가로도 유명했다. 어느날, 장승요는 금릉(金陵:南京)에 있는 안락사(安樂寺)의 주지로부터 용을 그려 달라는 부탁을 받았다. 그는 절의 벽에다 검은 구름을 헤치고 이제라도 곧 하늘로 날아오를 듯한 네 마리의 용을 그렸다. 물결처럼 꿈틀대는 몸통, 갑옷의 비늘처럼 단단해 보이는 비늘, 날카롭게 뻗은 발톱에도 생동감이 넘치는 용을 보고 찬탄하지 않는 사람이 없었다. 그런데 한 가지 이상한 것은 용의 눈에 눈동자가 그려져 있지 않은 점이다. 사람들이 그 이유를 묻자 장승요는 이렇게 대답했다. "눈동자를 그려 넣으면 용은 당장 벽을 박차고 하늘로 날아가 버릴 것이오." 그러나 사람들은 그의 말을 믿으려 하지 않았다. 당장 눈동자를 그려 넣으라는 성화독촉(星火督促)에 견디다 못한 장승요는 한 마리의 용에 눈동자를 그려 넣기로 했다. 그는 붓을 들어 용의 눈에 '획'하니 점을 찍었다. 그러자 돌연 벽 속에서 번개가 번쩍이고 천둥 소리가 요란하게 울려 펴지더니 한 마리의 용이 튀어나와 비늘을 번뜩이며 하늘로 날아가 버렸다. 그러나 눈동자를 그려 넣지 않은 용은 벽에 그대로 남아 있었다고 한다. 張僧繇於金陵安樂寺 畵四龍於壁 不點睛 每曰 點之則飛去 人以爲誕因點其一 須臾雷電破壁 一龍乘雲上天 不點睛者見在.
Board 고사성어 2022.09.04 風文 R 918
일타강사 학원이나 인터넷 강의(인강)에서 제일 잘나가는 ‘1등 스타강사’. ‘1번 타자’가 갖는 공격성을 부여한다. 학원 홈페이지, 버스나 전철 광고 맨 앞자리에 사진과 함께 이름을 올린다. 이 반열에 오르면 아이돌급의 수입과 인기를 누린다. 일타강사는 가르칠 내용을 찰지게 요리하는 건 기본이고, 판서, 외모, 입담(말발)도 빼어난 만능 엔터테이너이다. 승자독식의 법칙이 철저히 작동해서 경쟁이 치열하다. 진정한 배움은 선생을 흉내 내는 데에서 시작한다. 말을 배울 때에도 그랬고, 헤엄치기, 젓가락질을 배울 때에도 그랬다. ‘배움’이란 자신이 앞으로 무엇을 배울지 이해할 수 없는 시점에, 무엇을 가르쳐 줄지 알 수 없는 사람 밑에서, 무언지 알 수 없는 것을 배우는 이상한 구조를 갖는다(우치다 다쓰루). 그래서 배움은 기능을 미리 알고 사는 상품 구매와 다르다. 깨달음을 향한 기다림이자 투신이다. 스스로 물에 뜨는 순간이 올 때까지 잠자코 선생의 자세를 흉내 내야 한다. 가르치는 사람은 노예에 가깝다. 의존적이고 무기력하다. 같은 걸 가르쳐도 배우는 사람이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떤 상황에 처해 있느냐에 따라 결과는 하늘과 땅 차이다. 가르침과 배움의 동시성과 상호 의존성을 강조하는 말(줄탁동시, 교학상장)이 있지만, 아무래도 교육은 학생이 주인이다. ‘배움’이 벌어지지 않는다면 ‘가르침’은 가치를 갖지 못한다. 그렇다면 일타강사를 찾는 열정만큼이나 ‘누가’ ‘무엇 때문에’ 배우는지도 물어야 한다. 하물며 지금의 교육이 배움을 배반하고 있다면, 선생이 아니라 학생한테 눈을 돌려야 한다. ‘일’의 의미 단어는 고립되어 쓰이지 않는다. 단어는 한 사회가 자연스럽고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는 지배적 신화에 기대어 산다. 이를테면 다음 두 목록에 함께 쓰인 ‘일’과 ‘돈’이 각각 어떤 의미로 쓰이는지 생각해보자. 1) ㄱ. 집, 먼지, 창고, 냄비, 일 ㄴ. 임금, 출퇴근, 노조, 노무관리, 일 2) ㄱ. 음식, 옷, 차, 집, 돈 ㄴ. 이율, 은행, 주식, 투자, 돈 (1ㄱ)의 ‘일’은 몸과 직접 관계가 있다. 쓸고 닦고 고쳐야 하는 몸의 구체적인 움직임과 노력이 필요하다. 반면에 (1ㄴ)의 ‘일’은 매매되는 노동이다. 돈으로 환산되고, 정해진 규약에 맞는 행동을 해야 한다. (2ㄱ)의 ‘돈’은 사는 데 필요한 것을 교환할 수 있는 것이지만, (2ㄴ)의 ‘돈’은 그 자체를 축적하거나 스스로 이윤을 창출하는 추상적인 존재다. 수치의 등락 자체가 전부다. ‘일’과 ‘돈’에 대한 지배적 신화는 (1ㄴ, 2ㄴ)의 맥락에서 일어난다. 몸놀림이나 사람과의 관계라는 맥락에서 탈피해 있다. ‘일’은 수량화할 수 있고 측정할 수 있게 되었다. ‘돈이 돈을 번다’. 그러니 가만히 놔두지 말고 굴리고 투자해야 한다. ‘다행히(!)’ 지구적 위기 상황은 우리에게 ‘일’의 의미를 다시 묻는다. 평소라면 임금, 초과이윤율, 사회적 평판을 기준으로 구분했을 거다. 지금은 어떤 노동이 사회의 유지와 존속에 필수적인지를 묻는다. 보건의료와 돌봄노동 종사자, 배달업 노동자, 청소·경비 노동자, 그리고 농민. 이러한 ‘필수노동’에 대한 논의와 함께 ‘도대체 내 손과 발로 직접 할 수 있는 일은 뭔가’도 묻게 된다. 김진해 / 한겨레말글연구소 연구위원·경희대 교수
한국대표수필 - 김동리 외 9명 "양주동편" 양주동(1903~1977) 시인, 국어 국문 학자. 호는 무애. 경기도 개성 출생. 일본 와세다 대학 영문과 졸업. 문학 박사. 일찍이 향가의 해독에 큰 공격을 세운 바 있으며, '국보'라는 별명과 함께 변설에 비상한 재능을 보였다. 지적이면서도 해학이 넘치는 수필이 많으며 문장은 건축감이 있어 선명한 인상을 준다. 면학의 서 독서의 즐거움! 이에 대해서는 이미 동서 전비들의 무수한 언급이 있으니, 다시 무엇을 덧붙이랴. 좀 과장하여 말한다면, 그야말로 맹자의 인생 삼락에 모름지기 '독서, 면학'의 제 4일락을 추가할 것이다. 진부한 인문이나 만인 주지의 평범한 일화 따위는 일체 그만두고, 단적으로 나의 실감 하나를 피력하기로 하자. 열 살 전후 때에 논어를 처음 보고, 그 첫머리에 나오는 "학이시습지 불역열호?" 운운이 대성현의 글의 모두로 너무나 평범한 데 놀랐다. "배우고 때로 익히면 또한 기쁘지 아니한가?" 이런 말씀이면 공자 아닌 소, 중학생도 넉넉히 말함직하였다. 첫 줄에서의 나의 실망은 그 밑의 정자인가의 약간 현학적인 주석에 의하여 다소 그 도를 완화하였으나 논의의 허두가 너무나 평범하다는 인상은 오래 가시지 않았다. 그랬더니 그 후 배우고, 익히고, 또 무엇을 남에게 가르친다는 생활이 어느덧 2, 30년, 그 동안에 비록 대수로운 성취는 없었으나, 몸에 저리게 느껴지는 것은 다시금 평범한 그 말의 진리이다. "배우고 때로 익히면 또한 기쁘지 아니한가?" 정씨의 주는 워낙 군소리요, 공자의 당초 소박한 표현이 그대로 고마운 말이 아닐 수 없다. 더구나 현세와 같은 명리와 허화의 와중을 될 수 있는 한 초탈하여, 하루에 단 몇 시, 몇 분이라도 오로지 진리와 구도에 고요히 침잠하는 여유를 가질 수 있음이, 부생 백년, 더구나 현대인에게 얼마나 행복된 일인가! 하물며, 난후 수복의 구차한 생활 속에서 그래도 나에게 삼척안두가 마련되어 있고, 일수의 청등이 희미한 채로 빛을 내고 있으니, 얼마나 다행한 일인가! 일전 어느 문생이 내 저서에 제자를 청하기로, 나는 공자의 이 평범하고도 고마운 말을 실감으로 서증하였다. 독서란 즐거운 마음으로 할 것이다. 이것이 나의 지설이다. 세상에는 실제적 목적을 가진, 실리 실득을 위한 독서를 주장 할 이가 많겠지마는 아무리 그것을 위한 독서라도, 기쁨 없이는 애초에 실효를 거둘 수 없다. 독서의 효과를 가지는 방법은 요컨대 그 즐거움을 양성함이다. 선천적으로 그 즐거움에 민감한 이야기야말로 다생의 숙인으로 다복한 사람이겠지만, 어렸을 적부터 독서에 재미를 붙여 그 습관을 잘 길러 놓은 이도, 그만 못지않은 행복한 족속이다. 독서의 즐거움은 현실파에게나 이상가에게나, 다 공통히 발견의 기쁨에 있다. 콜럼버스적인 새로운 사실과 지식의 영역의 발견도 좋고, '하늘의 무지개를 바라보면 내 가슴은 뛰노나.'식의 워즈워스적인 영감, 경건의 발견도 좋고, 더구나 나와 같이, 에머슨의 말에 따라, '천재의 작품에서 내버렸던 자아를 발견함.'은 더 좋은 일이다. 요컨대, 부단의 즐거움은 맨 처음 '경이감'에서 발원되어 진리의 바다에 흘러가는 것이다. 주지하는 대로 '채프먼의 호머를 처음 보았을 때'에서 키츠는 이미 우리의 느끼는 바를 대변하였다. 그때 나는 마치 어떤 천체의 감시자가 시계 안에 한 새 유성의 헤엄침을 본 듯, 또는 장대한 코르테스가 독수리 같은 눈으로 태평양을 응시하고-모든 그의 부하들은 미친 듯 놀라 피차에 바라보는 듯-말없이 다리엔의 한 봉우리를. 혹은 이미 정평 있는 고전을 읽으라, 혹은 가장 새로운 세대를 호흡한 신서를 더 읽으라, 각인에게는 각양의 견해와 각자의 권설이 있다. 전자는 가로되, "온고이지신." 후자는 말한다. "생동하는 세대를 호흡하라." 그러나 아무래도 한편으로만 기울어질 수 없는 일이요, 또 그럴 필요도 없다. 지식인으로서 동서의 대표적인 고전은 필경 섭렵하여야 할 터이요, 문화인으로서 초현대적인 교양에 일보라도 낙오될 수는 없다. 문제는 각자의 취미와 성격과 목적과 교양에 의한 비율뿐인데, 그것 역시 강요하거나 일률로 규정할 것은 못 된다. 누구는 '고칠 현삼제'를 취하는 버릇이 있으나, 그것도 오히려 치우친 생각이요, 중용의 좋다고나 할까? 다독이냐 정독이냐가 또한 물음의 대상이 된다. '남아수독오거서'는 전자의 주장이나, '박이부정'이 그 통폐요, '안광이 지배를 철함'이 후자의 지론이로되, '나무를 보고 숲을 보지 못함'이 또한 그 약점이다. 아무튼, 독서의 목적이 '모래를 헤쳐 금을 캐어 냄'에 있다면, 필경 '다'와 '정'을 겸하지 않을 수 없으니, 이것 역시 평범하나마 '박이정' 석 자를 표어로 삼아야 하겠다. '박'과 '정은 차라리 변증법적으로 통일되어야 할 것-아니, 우리는 양자의 기념을 궁극적으로 초극하여야 할 것이다. 소인의 다음 시구는 면학에 대해서도 그대로 알맞은 경계이다.
내 마음이 강해야 내 소원도 이루어진다 - 잭 캔필드, 마크 빅터 한센 1. 소원성취는 마음먹기 나름 끈질기게 세상에 요청한 남자 - 안토니 로빈스 여러 해 전, 나는 새 아내와 함께 추수 감사절 중에 뉴욕을 방문하게 되었다. 아내는 가족과 함께 추수 감사절을 보낼 수 없었기 때문에 시무룩했다. 예년 같으면 집에서 크리스마스 장식을 하고 있으련만, 올해는 여기 뉴욕의 호텔 방에 처박힌 꼴이 되다니. 나는 아내에게 말했다. "여보, 오늘은 죽은 나무 대신 살아 있는 이들에게 장식하면 어떨까? 먹을 것을 사서 추수 감사절을 축하할 수 없는 이들에게 나눠줍시다. 자, 우리 있는 그대로의 모습과, 우리가 할 수 있는 일과, 우리가 진정으로 베풀 수 있는 것을 환영하는 곳으로 갑시다. 할렘에 가서 굶주린 이의 배를 채워주는 거요, 어서 가자니까. 예닐곱 가구가 한 달 동안 배불리 먹을 수 있는 음식을 삽시다. 우리는 돈을 충분히 가졌잖소. 어서 시작합시다." 나는 우선 라디오 인터뷰를 해야 했기 때문에 내 동업자들에게 소형 트럭을 수배해 놓으라고 했다. 하지만 내가 돌아왔을 때 그들이 말했다. "소형 트럭이 없어요. 뉴욕 전체에 소형 트럭이라고는 한 대도 없더라구요. 렌트카 회사의 소형 트럭이 전부 임대중이라는 거예요. 도무지 차를 구할 수 없어요." 나는 말했다. "우리는 원하는 것을 뭐든 해낼 수 있다는 사실을 명심하시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행동을 위하는 거요. 뉴욕시에는 소형 트럭이 수천대도 넘게 있소. 그저 우리가 구하지 못했을 뿐이지. 나가서 한 대 구합시다." 그들은 반대했다. "이미 샅샅이 다 뒤져서 전화를 해봤지만, 소형 트럭은 한 대도 없다니까요." 내가 말했다. "거리를 내다 봐요. 저 소형 트럭이 뵈오?" 그들은 보인다고 했다. 나는 다시 말했다. "나가서 한 대 구합시다." 처음에 나는 도로로 뛰어들어 소형 트럭을 세우려고 했다. 그리고 그날 뉴욕 운전자들에 대해 한수 배웠다. 그들은 사람이 뛰어들면 차를 세우는 대신 오히려 속력을 높였다! 이제 우리는 전술을 바꿔, 보도에 서서 기다렸다가 신호등에 막혀 정지한 차 쪽으로 다가갔다. 우리는 공손하게 유리창을 두드렸고, 운전자가 창문을 내리고 의심쩍은 시선으로 내다보면 이렇게 요청했다. "안녕하세요, 오늘이 추수 감사절이 아닙니까. 그래서 사람들에게 음식을 나눠주려고 하는데, 우리를 할렘까지 태워다 주시겠습니까?" 매번 운전자는 얼른 시선을 피하고 재빨리 창문을 올린 후 꽁지가 빠져라 가버렸다. 그래서 우리는 다 효과적으로 요청하기 시작했다. "아시다시피, 오늘은 추수 감사절입니다. 우리는 일부 혜택 받지 못하는 사람들을 도와주고 싶은데, 당신이 뉴욕의 빈민가라고 생각하는 곳까지 우리를 태워다 주실 수 없을까요?" 그 방법은 좀 먹혀드는 것처럼 보였지만 여전히 실효를 거두지 못했다. 그 다음에 우리는 백 달러를 주겠노라고 제의하기 시작했다. 그것은 훨씬 효과적이었다. 하지만 할렘 이야기만 나오면 다들 한결같이 아무 말도 없이 차를 출발시켰다. 우리는 그렇게 스무 명의 운전자에게 시도했지만 전부 거절당했다. 내 동업자들은 거의 포기할 기색이었다. 내가 말했다. "확률의 법칙상, 승낙하는 사람이 있을 거야." 그리고 완벽한 소형 트럭이 달려왔다. 그 차는 큼지막해서 우리 네사람이 타고도 공간이 남을 정도였다. 우리는 그 트럭으로 다가가서 창문을 두드리고 운전자에게 말했다. "우리를 빈민가로 데려다 주시겠습니까? 그 대가로 백 달러를 드리겠습니다." 운전자가 말했다. "돈은 필요 없습니다. 내가 기꺼이 여러분을 태워 드리겠습니다. 사실, 이 도시에서 가장 가난한 곳으로 모시지요." 그리고 그는 뒷좌석에서 모자를 집어 우리에게 공간을 비워 줬다. 그가 모자를 쓰는 순간, 우리는 거기에 '구세군'이라고 쓰여 있음을 알아차렸다. 그는 사우스 브롱크스의 구세군 대장 죤 론돌이었다. 우리는 환호하며 차에 탔다. 그가 말했다. "나는 여러분이 갈 생각조차 못했던 곳으로 데려가 드릴 겁니다. 그런데, 왜 여러분 같은 분들이 이런 일을 하고 싶어하는 겁니까?" 나는 그에게 내가 다른 이에게 받았던 호의를 갚고 싶다고 말해줬다. 론돌 대장은 우리를 사우스 브롱크스로 데리고 갔다. 그곳에 비하면 할렘은 비버리힐스처럼 보였다. 우리는 도착하자마자 상점에 가서 식료품과 바구니를 넉넉하게 샀다. 그리고 일곱 가구가 한달 동안 먹기에 충분한 음식 바구니를 만든 후에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기 시작했다. 우리가 방문했던 한 건물에서는 한 방에 여섯 명이 살았다. 그들은 추운 한 겨울에 전기도, 난방 시설도 없이 시궁창 냄새가 풍기는 곳에서 쥐와 바퀴벌레와 어울려 살았다. 사람이 이런 식으로 산다는 것 자체가 놀라울 뿐이었다. 그런 이를 위해 약소하게나마 베푸는 경험은 가슴 뿌듯하기에 충분했다. 여러분도 마음을 굳게 먹고 지속적으로 행동에 나서면 무엇인가를 해낼 수 있다. 그런 기적은 매일 일어날 수 있다. 심지어 소형 트럭이 없는 도시에서도.
Board 추천글 2022.09.03 風文 R 1316
호접지몽(胡蝶之夢) - 나비가 된 꿈이란 뜻. ① 물아(物我)의 구별을 잊음의 비유. ② 만물 일체(萬物一體)의 심정 ③ 인생의 덧없음의 비유. 《出典》'莊子' 齊物論篇 전국시대의 사상가 장자(莊子)는 맹자와 같은 시대의 인물로서 물(物)의 시비(是非) 선악(善惡) 진위(眞僞) 미추(美醜) 빈부(貧富) 귀천(貴賤)을 초월하여 자연 그대로 살아가는 무위자연(無爲自然)을 제창한 사람이다. 장자가 어느날 꿈을 꾸었다. 자신은 꽃과 꽃 사이를 훨훨 날아다니는 즐거운 나비 그 자체였다. 그러나 문득 깨어 보니 자기는 분명 장주(莊周)가 아닌가. 이는 대체 장주(莊周)인 자기가 꿈 속에서 나비가 된 것일까. 그렇지 않으면 자기는 나비이고 나비인 자기가 꿈 속에서 장주(莊周)가 된 것일까. 꿈이 현실인가, 현실이 꿈인가. 그 사이에 도대체 어떤 구별이 있는 것인가? 추구해 나가면 인생 그 자체가 하나의 꿈이 아닌가.《莊子》의 이런 우화(寓話)는 독자를 유현(幽玄)의 세계로 끌어들여 생각게 한다. 옛날에 莊周가 꿈에 나비가 되어, 나비가 된 것을 기뻐하였다. 스스로 즐겨서 뜻하는 대로 가고 있어, 자신임을 알지 못했다. 갑자기 깨달으니 곧 莊周가 되어 있었다. 알지 못하겠다. 莊周가 꿈에 나비가 된 것인지, 나비가 꿈에 莊周가 된 것인지를. 莊周와 나비와는 곧 반드시 구별이 있다. 이것을 자연(自然)이 된다고 말한다. 昔者莊周爲胡蝶 "然胡蝶也 自喩適志與 不知周也 俄然覺 則" 然周也 不知 周之夢爲胡蝶與 胡蝶之夢爲周與 周與胡蝶 則必有分矣 此之謂物化. [유사어】장주지몽(莊周之夢)
Board 고사성어 2022.09.03 風文 R 949
고유한 일반명사 유일하다. 하나밖에 없다. 무한한 우주를 뒤지고 억만 겁의 시간을 오르내려 보아도 언제나 하나밖에 없다. 사람이든 사물이든 하나밖에 없을 때 우리는 거기에 고유명사를 붙인다. 사람 이름을 비롯하여 산 이름, 강 이름, 별 이름, 동네 이름, 상호가 그렇다. 관심과 애정이 가는 대상에 ‘이름’을 붙인다. 애정이 있어 이름을 붙이지만 이름은 더 깊은 애정을 다시 부른다(집착과 함께). 잘 알려진 고유명사는 다른 대상을 비유적으로 표현하는 데 재활용되기도 한다. 이강인은 한국의 ‘메시’이고 독재자는 ‘히틀러’이며 과학에 재능을 보이는 아이는 꼬마 ‘아인슈타인’이다. 예쁜 산을 두고 한국의 ‘알프스’라 소개하는 안내문을 본 적이 있을 것이다. 고유명사의 확장이다. 반대편에 일반명사가 있다. 여러 사물을 하나의 이름으로 묶는다. 태백산이든 수유리 화단이든 앞집 계단이든 피어나면 모두 ‘꽃’이다. 절집이든 고물상 앞마당이든 산 너머든 멍멍 짖는 녀석은 ‘개’다. 낱낱이 가진 차이는 사라지고 그저 하나의 공통성으로 묶인다. 그런데 일반명사라 하더라도 각 사람에게 고유명사인 게 있다. 아무리 이 세상에 같은 이름의 대상이 널려 있어도 그 사람에게는 하나밖에 없다. ‘엄마’라는 말을 떠올려 보라. 세상 ‘모든 엄마들’이 아니라 ‘우리 엄마’만 떠오른다. 물건도 곁에 오래 두고 지내면 나에게 유일무이해진다. 나이를 먹는다는 것은 관계의 그물로 맺어진 인연과 체험에 따라 일반명사가 점점 고유화되는 걸지도 모른다. ‘고유한 일반명사’가 이 세상에서 사라질 때 그 이름은 그리움으로 바뀐다. 국가 사전 폐기론 ‘국가 사전’: 민간이 아닌 정부가 펴낸 사전. 1999년 국립국어원에서 발행한 <표준국어대사전>(표준사전)을 말함(비슷한말: 관변 사전, 관제 사전). 사전 뒤에는 사전 만든 사람이 몰래 숨어 있다. 중립적 사전은 없다. 사전 편찬자의 권한은 막강하다. 어떤 단어를 선택하고 배제할지, 그 단어를 어떻게 정의할지를 결정한다. 그 권한을 국가가 독점하는 것은 시대착오적이고 위험하다. 국가 사전을 없애자고 하면, 사전 출판 현실을 모른다고 타박하거나 말글살이에 대혼란이 올 거라고 겁을 낸다. 기왕 만들어 놓은 걸 왜 없애냐고 한다. 시민의 힘으로 권력을 교체할 만큼 사회적 역량을 갖춘 한국 사회는 유독 사전 앞에만 서면 작아진다. 국가란 본질적으로 명령의 집합체이자 일방적 힘을 행사하는 장치이다. 국가 사전은 그 자체로 명령과 통제의 언어이다. ‘다른 해석’을 허락하지 않는다. 다양성은 사라졌고 사람들은 이제 <표준사전>만 검색한다. 사전은 언어를 바라보는 다양한 철학과 기준들로 서로 경합해야 한다. ‘복수’의 사전이 계속 나와야 한다. ‘지원은 하되 간섭은 하지 않는다’는 문화 예술 정책의 기조는 사전 영역에도 고스란히 적용되어야 한다. 사전을 낼 만한 역량을 갖춘 출판사나 대학, 전문가 집단 몇 곳에 10년짜리 예산 지원을 해보라. 창고에 묵혀 두었던 사전 원고를 다시 꺼내고 사람들이 자주 쓰는 말들을 찾아나서 각자의 색깔과 향기에 맞는 사전을 만들 것이다. 그러다 보면 엄청나게 다양한 일본어 사전 못지않은 사전들을 보게 될 것이다. 국가 사전을 폐기하라. 김진해 / 한겨레말글연구소 연구위원·경희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