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신벗고 눈 덮인 산으로 가셨을 것” 마지막 가는 길 지킨 류시화 시인 “서귀포를 떠나기 전 죽음이 무엇인가 하고 묻자 법정 스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우레와 같은 침묵으로 돌아가는 일이다.’ 아마 육신을 벗고 맨 먼저 강원도 눈 쌓인 산을 보러 가셨겠지요.” 11일 법정 스님의 마지막 길을 지킨 류시화 시인은 자신의 공식 홈페이지(www.shivaryu.co.kr)를 통해 깊은 애도의 뜻을 전했다. 법정 스님과 ‘산에는 꽃이 피네’ 등의 책을 함께 내기도 한 류 시인은 스님과 각별한 인연을 쌓아 왔다. 류 시인은 스님이 서울의 병원에 입원해 있던 때 “강원도 눈 쌓인 산이 보고 싶다”고 했다면서 지난해 스님의 폐암이 재발한 이후부터 “이 육체가 거추장스럽다”는 말을 자주 했다고 전했다. 시인은 “스님이 산소호흡기에 의지하다 11일 오전 의식을 잃고 입적한 사실을 두고 법정 스님과 어울리지 않는 마무리라고 하실 분들도 있겠지만 그것이 한 인간의 모습이고 종착점입니다. 어디에서 여행을 마치는가보다 그가 어떤 생의 여정을 거쳐왔는가가 더 중요함을 우리가 알지 못할 이유가 없습니다”라고 말했다. 류 시인은 스님이 입적 며칠 전에 한 “만나서 행복했고 고마웠다”는 말을 그대로 스님에게 돌려주며 “사람은 살아서 작별해야 합니다. 그것이 덜 슬프다는 것을 오늘 깨닫습니다”라는 말로 글을 맺었다. 김은진 기자
Board 추천글 2010.03.12 바람의종 R 30133
1 .. ... 어제 성주- 화원 유원지 주변의 강정보 현장에 다녀 왔습니다. 지난 가을 마지막으로 이곳을 찾고 다시 내려서고 싶지 않은 땅이었습니다. 이곳에 서면 슬픔과 분노, 그리고 나약해지는 자신을 참을 수가 없기 때문이었습니다. ... 지난 봄까지 이곳은 아름다운 숲이었고 푸른 보리밭이었으며 낚시꾼들이 가장 많이 찾는 강변이었습니다. 이곳에서 매몰되어 가는것은 드넓은 모래벌과 둔치만이 아니며 죽어가는 것은 나무와 물고기 뿐이 아니고 떠나는 것이 새와 고라니만이 아닙니다. 강가에 섰던 우리들의 추억과 삶도 매몰되어 가고 있습니다. .. 어제 팔달 유기농 농민들이 강제로 연행되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연행되어 끌려가는 현장에서도 그분들은 외치고 있었습니다. "우리는 끝까지 싸우겠다"고, 아마 그분들은 연행되는 그 순간까지도 꿈에도 상상 조차 해본 일이 없었을 것입니다. 이 전쟁같은 상황들을....최소한 국가가 나서 생명줄기를 끊고 농민들의 생존권을 빼앗는 일은 생각치도 못했을테니까요. 생태계의 자궁으로 뭇생명을 길러온 강과 습지가 파괴되고 일생 땅과 함께 살아온 농민들을 연행해가는 현장에 지금 우리는 서있습니다. 강은 우리의 조상이었고 우리를 키운 부모였으며 우리의 미래입니다. 그러하기에 저는 그분들과 함께 미래를 지키기 위해 끝까지 싸울것입니다. 언제 어디에 있던...........제 모든 기도와 발원과 실천으로 . 서울시장 시절 당신은 예언처럼 이야기했지요. "힘을 가지고 일을 추진한다면 처음엔 효율적일 지 모르지만 더 큰 부작용을 가져올 수 있다, 힘을 가지고 할 수 있었다면, 일은 어떻게 됐을지 모르지만 결과적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마음의 상처를 줬을 것이다.모두를 만족시키고 모두가 기쁘고 모두가 참여했다는 기쁨이 있어야 한다." 고 그런 의미로 당신은 힘과 편법으로 추진하고 있는 이 사업의 실패를 누구보다도 먼저 느끼고 있을 것입니다. 설마 전봇대 마다 세워진, 의미없는 문구로 치장 된 휘날리는 휘장으로 그 비감을 가리려고 한것은 아니겠지요? . 우수가 지나고 매운 추위도 물러가는 듯합니다. 강이 풀리듯 힘든 시간들이 풀려 나갔으면좋겠습니다. 4대강 개발문제에 대해서 종교계와 학계를 중심으로 각계에서 많은 활동들을 하고 있습니다. 힘이 모이지 않는 것은 그 라운드가 너무 크기 때문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3월 4일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4대강 개발, 다른 대안은 없는가>라는 주제로 심포지엄이 있습니다. 오랫동안 준비해온 심포지엄이고 대안을 찾기 위해 고민하는 자리이기에 많은 분들의 참여를 부탁드립니다. 참여안내 : http://cafe.daum.net/chorok9/IJMM/99 ▶어찌 이곳을 흐트리려 합니까 http://cafe.daum.net/chorok9
Board 추천글 2010.02.26 바람의종 R 29116
1 지난 화요일 낙단보 부근에서 맞닥트린 한 언론사의 취재 현장에서 "진실은 없다. 다만 주관적 사실이 있을 뿐이다"라고 했던 니이체의 말이 문득 떠올랐다. 언론과 언론인이 취할 수 있는 주관적 사실을 통해 객관적 진실이 드러나는 일은 아주 드믈게 실현되는 일이라는 것을 알고는 있었지만 ..... mbntv의 주민 인터뷰 현장 - 우산을 받쳐들고 계신분은 공사현장의 소장이다.(사진을 클릭하면 촬영 당시 영상과 뉴스영상을 볼수 있다.... 필독) 다음날 mbn tv의 12시 메인뉴스로 이 현장은 보도되었다. 물론 우산을 들고 비껴서 계신 현장 소장은 화면에 나오지 않았고 헤드라인에는 최근 제기되고 있는 오니문제에 대응하 듯 "오염방지 최선"이라는 표제가 걸렸다. 보도 내용 역시 [현장점검] 이라는 주제를 벗어나 정부가 내놓은 화려한 청사진을 홍보하는 내용으로 일관하고 있었다. 최근 가장 많이 듣게 되는 이야기 중 하나가 '홍보' 혹은 '언론장악'이라는 말이다. 나는 천성산을 통해 여론조작이 정치적으로 뿐만 아니라 더 많은 유인으로 작용하고 있음을 보았다. 그들은 결코 적대적이지 않으며 우리의 시스템 속에서 우리와 함께 호흡하고 번식하며 살아가는데 아무런 장애도 없다. 가장 절망적인 것은 진실이 드러 날 때 조차도 그 중독에서 헤어나기 어렵다는 것이다. 아래는 상주보에 조감도에 실려있는 청사진이다. 당황스럽긴 하지만 이 황당한 청사진이 시사하는 지점에 우리가 놓여있는 것은 아닐까 반문하지 않을 수도 없다. .. 강을 파괴하고 그 위에 세워진 시멘트 기둥을 자연과 신의 선물로 부르는 사람들에 의해 4대강 사업은 계획되고 진행되고 있다. 그리고 그것을 거부하지 않은 더 많은 사람들의 무관심 속에 우리의 강은 원형을 잃고 파괴되고 있는 것이다. 녹색의 그믈망에 덮여 있는 저 베어진 나무들은 얼마전 까지 우리와 함께 호흡하며 바로 이 강가에 서있던 생명들이었다. 한 나무들의 봄은 우리의 봄이었고 그 나무들의 여름은 우리들의 여름이었다. 그 나무들의 죽음은 바로 계절의 죽음이며 강의 죽음이며 우리들의 죽음이다. 만일 4대강 개발사업이 계획대로 진행된다면 강물에 그림자를 드리웠던 단 한그루의 나무도 살아남지 못할 것이다. 한그루의 나무는 1만 그루의 나무들에게 생각과 느낌을 전달하고 1만그루의 나무는 다른 만그루의 나무에게 생각과 느낌을 전달한다고 하는 판도라 행성의 이야기에 공감했던 천만의 관객들에게 호소하고 싶다. 우리의 나무를 지키기 위해 강으로 가자고........ . . ▶어찌 이곳을 흐트리려 합니까 http://cafe.daum.net/chorok9
Board 추천글 2010.02.12 바람의종 R 30404
암 투병 이해인 수녀님께 띄우는 입춘편지 [오마이뉴스 조호진 기자] ▲ 부산에 잠시 머무시던 어머니와 첫 시집 < 민들레의 영토 > 30주년 기념식에서….(2005년 11월12일) ⓒ 이해인 수녀 홈페이지 Ⅰ. 행복한 인사 오늘 아침엔 땀 흘리며 층계 청소를 하고 있는데 지나가는 이들이 활짝 웃으며 내게 건네는 아침인사가 백합처럼 순결하고 정겨웠습니다. 나도 "좋은 하루 되세요"하고 응답하는데 문틈으로는 치자꽃 향기가 날아오르고 숲에서는 뻐국새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아, 행복해." 나도 모르게 중얼거리며 '오늘 하루도 좋은 생각, 좋은 말, 좋은 행동을 할 수 있게 도와주십시오' 하는 기도 말이 절로 튀어나왔습니다. - 이해인 수녀의 글 가운데 '일부' "안녕하세요! 오서오세요!" "행복한 하루가 되세요!" 서울 시내버스가 감동스럽게 달라졌습니다. 구체적으로 표현하면 버스운전사들이 매우 친절하게 변했는데, 그 친절 덕분에 버스를 이용하는 일이 매우 즐거워졌습니다. 승차할 때뿐만이 아니라 하차할 때도 승객의 행복한 하루를 빌어주는 상쾌한 그 인사로 인해 지친 몸을 억지로 일으킨 일상이 이슬 머금은 아침처럼 싱그러워지면서 '오늘도 행복한 하루를 시작해보자!'고 부추기게 됩니다. '네, 감사합니다. 기사님도 행복한 하루가 되세요!' 기사님의 다정한 인사에 이렇게 화답하고 싶어진 적이 한두 번이 아닙니다. 그런데 생각과 달리 표정은 굳어져 있기 일쑤고 입술은 옴짝달싹도 하지 않습니다. 대다수 승객들이 기사님의 인사를 못 들은 귀머거리처럼 혹은 벙어리처럼 묵묵부답인데 괜히 혼자서 화답했다가 우스개가 될까 봐 저도 모르게 마음을 닫고 마는 것입니다. 저의 이 부끄러운 고백에 대해 '저는 그렇지 않아요! 저는 행복한 인사를 나누거든요!'라는 사람이 많았으면 좋겠습니다. 차가운 마음은 묵힐지라도 따듯한 마음은 꺼내는 게 좋겠습니다. 따듯한 마음을 나눌 수 있는 안식처를 서로 제공하면서 의지가지 할 때 외로울 수밖에 없는 사람들은 쓰러지지 않을 것이며, 차가워진 마음을 속히 데울 때에야 서로의 상처를 보듬을 수 있겠지요. 따듯한 인사를 나누지 않고서는 따듯한 밥을 나눌 수 없고, 따듯한 밥을 나누지 않고서는 화평의 세상을 나눌 수 없으니 우리의 불안한 세상을 보살피기 위해서라도 따듯한 인사를 나누어야 하겠습니다. 그럼에도 마지못한 인사치레로 하루를 마치고는 이런 부끄러운 질문을 던져봅니다. 얼굴이 왜 이렇게 돌처럼 굳어졌을까? 마음이 왜 이렇게 폐쇄된 문처럼 닫혔을까? 인사가 왜 이렇게 인색해져서 안부조차 못 나누는 걸까? Ⅱ. 감사기도 ▲ 종신서원 무렵 사람들은 이 사진을 '모나리자' 그림과 비교하곤 했다고 한다. 이 무렵, 첫 시집 < 민들레의 영토 > 가 출간됐다. ⓒ 이해인 수녀 홈페이지 기도하면서부터 불안한 마음에 평안이 찾아왔습니다. 기도로 인해 이 세상과의 오래된 불화를 수습할 수 있었고 밴댕이 소갈머리 같던 마음이 점차 도량(度量)으로 변하고 있습니다. 나의 나 됨이 나에게 있지 아니하고 나를 지켜주시는 그 임의 은혜라는 것을 깨달으면서 이 세상 또는 사람들과 옥신각신하는 일이 잦아들었습니다. 기도는 평안이고 화평이고 은혜임을 깨달으면서 아내와 함께 새벽기도를 다녀오기도 하고 잠자리에 들기 전에는 하루치의 평안과 화평을 허락하신 그 임께 감사기도를 드리기도 합니다. 제 손은 기도하는 손이 아니라 싸우는 손이었습니다. 울퉁불퉁 세상사에 걸려 쓰러져서는 제 탓이 아니라 불공평한 세상 때문이었노라고 그 책임을 추궁하며 종 주먹질을 했었습니다. 그럼에도 속이 풀리지 않을 때는 악에 받친 분노와 증오로 대거리를 하다가 그 쌓인 응어리로 살촉을 만들었습니다. 하지만 쏜 살은 과녁을 맞히기는커녕 부메랑이 되어 제 살에 파고들었습니다. 그렇게 숱한 상처와 고통에 지치면서 인생은 꽃 피지도 못한 채 질 뻔 했었던 것입니다. 그나마 악질이 아니었던 것은 다행이었습니다. 악악거릴 힘조차 부쳐서 만신창이 된 몸뚱이를 내려놓았습니다. 예배당 지하 기도실의 기도는 기도가 아니라 울부짖음이었습니다. 울부짖음의 기도를 통해 깨달았습니다. '아, 사람에게 토해낸 아픔의 덩어리는 흉한 생채기로 떠돌 수 있지만 간구의 기도는 하늘에 새겨져서 그 언젠가 치유의 날을 맞는다'는 것이었습니다. 울부짖음과 신음의 기도, 기도할 힘조차 없었던 망연자실의 기도와 묵묵히 기다려야 함을 깨닫고 드린 묵상의 기도…. 그 기도의 힘으로 구곡간장(九曲肝腸)을 헤쳐 쉰 줄에 접어든 인생이 마침내 감사기도를 드리고 있습니다. 제 기도의 대부분은 가족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사랑하는 아내와 딸, 두 아들에 대한 축복의 기도인데 신기한 것은 축복기도는 그 어떤 샘물보다 맑고 깊어서 날마다 두레박 가득히 퍼서 올려도 마르지 않을 뿐만이 아니라 오히려 더 융성(隆盛)해지는 것입니다. 그 기도의 능력으로 인해 가족과 가정에 사랑과 평안의 꽃이 피었습니다. 그 꽃이 시들지 않도록 날마다 감사기도를 드리는데, 몸이 곤하여 새벽기도를 못 드린 날은 버스 안에서도 드리고, 가두에서도 드립니다. '이제, 그만해라! 너와 내 가족의 행복도 귀하지만 아픈 이웃과 세상을 위해 두 손 모아다오! 이웃이 안녕치 못하거든 네 가족도 평안할 수 없는 세상이니 이웃과 세상의 안녕을 위해서도 두 손을 모아다오!' 제 가족만을 위해 기도하는 것을 하늘은 기뻐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다급한 시절이 지났음에도 두 손과 입술은 습관처럼 기도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임의 경고를 지나치지 않고 회개하는 게 옳겠습니다. 가엾은 제 인생에 자비를 베풀어달라고 긍휼의 기도를 올렸던 숱한 이들에게 감사기도 드리면서 이제서야 그들의 이름을 외워봅니다. 그리하여 부끄러운 마음을 가다듬으며 어려운 이웃을 위해 수고하는 이들과 그 어려움에 처한 이들의 이름을 외우며 중보(仲保)기도를 올립니다. 하늘로 떠나신 맹인 할아버지와 스스로 장애인이면서 장애인을 돕다가 하늘로 돌아간 청년을 받아주신 임이시여 이 땅에서 가난했음으로 인해 하늘의 임을 알지 못했고 세상을 떠났더라도 그 가엾은 영혼들도 긍휼히 여겨주소서. 신장을 기증한 믿음의 아버지인 목사님의 기도와 명도소송으로 쫓겨날 처지가 되자 전세금 일부를 걷어준 성도들의 도움을 갚지 못했으니 용서하여주시고 그들에게 하늘의 축복을 내려주소서! 이주노동자와 다문화가정을 위해 수고하는 목사님, 겸손한 마음으로 장애인들을 돕는 장로님, 경제적 어려움에 시달리는 이웃들, 마음의 거처를 정하지 못해 힘겨워하는 청년, 실직과 생계의 어려움에 처한 수많은 가장들, 따듯한 마음을 나누기 위해 날마다 두 손을 모으며 참 도량의 기도를 올리는 아름다운 손들에 하늘임의 위로와 은혜가 넘치게 하소서! Ⅲ. 이해인 수녀님, 부활의 꽃이어야 합니다! ▲ 수녀원 정원에서 ⓒ 조호진 지금은 긴 말을 하고 싶지 않아요 당신을 만나 되살아난 목숨의 향기 캄캄한 가슴 속엔 당신이 떨어뜨린 별 하나가 숨어 살아요 당신의 不在조차 절망이 될 수 없는 나의 믿음을 승리의 향기로 피워 올리면 흰 옷 입은 천사의 나팔 소리 나는 오늘도 부활하는 꽃이에요 - 이해인 수녀의 '백합의 말' 전부 이해인(65) 수녀님, 입춘이 어제(4일)였습니다. 이제 곧 꽃들의 향기가 언 들녘을 녹일 텐데 그 들녘만이 아니라 사람들의 언 마음도 녹였으면 참 좋겠다는 희망을 가져봅니다. 무엇보다 수녀님의 몸 깊숙이 박힌 암(癌) 뿌리조차도 녹아서 마침내 몸속에는 꽃 뿌리만이 가득해서 이 세상 아픈 사람들에게 희망의 꽃과 향기를 나누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살아 있는 것 자체가 희망이고 옆에 있는 사람들이 다 희망이라고 내게 다시 말해주는 나의 작은 희망인 당신 고맙습니다. 그래서 오늘도 나는 숨을 쉽니다." - 이해인 수녀의 시 '희망은 깨어 있네' 일부 민들레, 수선화, 천리향, 치자꽃, 파꽃, 백목련, 튤립, 채송화, 달개비꽃…. 수녀님께서 꽃을 주제로 해서 쓴 시의 이름을 불러봅니다. 그렇게 부르는 꽃 이름으로도 향기로운 입술이 되는군요. 현상적으론 사람이 꽃이 될 수 없고, 꽃 또한 사람의 옷을 입을 순 없지만 서로를 그리워할 때 사람이 꽃보다 아름답다는 노래를 부르며 위로할 수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러니 병마를 속히 떠나보내시고 꽃의 노래를 불러주십시오. 세 번째 시집 < 오늘은 내가 반달로 떠도 > 중에서 '백합의 말'을 [백합시편]의 첫 번째 시로 선택했습니다. 그것은 수녀님의 백합 향기를 나누기 위해서였습니다. 다만 저 스스로 시인이란 칭호를 사용하지만 시를 잘 모르는 시인이라는 점에서 오독(誤讀)의 실수를 저지르지는 않을까? 하는 조심스러움은 어쩔 수 없습니다. 사람의 말을 사용하는 예술 분야 가운데 가장 아름다운 분야가 '시(詩)'라고 하지만 요즘의 제 느낌은 그렇지만은 않습니다. 말의 아름다움과 향기를 나누기는커녕 고문실에 갇힌 언어의 비명을 듣습니다. 시인은 더 이상 언어의 연금술사가 아니라 언어도단의 장본인이며 언어의 해부학자로 전락한 것 같습니다. 물론 시집은 팔리지만 시집을 팔아서 먹고사는 시인이 별로 없는 것이 그나마 다행이라면 다행스러운 일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럼에도 시는 아름답고 향기롭습니다. 이 황량에 광야에 핀 '백합의 말'을 입속으로 낭송하면서 하늘의 뜻에 따르기 위해 애쓰는 수녀님의 순종을 읽습니다. 그렇다면 목숨이 향기로우려면 도대체 어찌해야 하는 걸까? 살아도 죽기 일쑤인 이 위태로운 목숨의 항해에서 어찌하면 되살아나 귀항할 수 있는 걸까? 아무리 눈을 크게 뜨고 둘러보아도 안개는 걷히지 않는 허무와 난망의 무진기행(霧津紀行)은 언제쯤 끝나는 걸까요? 병마의 고통 속에서도 향기로운 별 하나 간직한 이해인 수녀님! 하늘의 그 임을 믿고 의지하며 인생항로의 우고(憂苦)를 견뎌내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닌 것 같습니다. 손잡아 주지도 않는, 애원해도 응답하지 아니하시는, 눈물로 얼룩질 때도 손수건 내밀지 않으시는 그래서 벼랑 끝에서 몰린 채로 '우린 버림받은 것이 아닐까?' 의문과 불신 끝에 고아처럼 울부짖는 그 질고의 날들을 겪었다면 '백합의 말'은 그냥 '백합의 말'이 아니라는 것을…. "나 자신이 모태신앙이기 때문에 내가 원하지 않았는데 세례를 받았고, 그런 것들이 걸림돌이 될 때도 있었지만 지금은 너무 행복하게 모든 것을 섭리로 받아 안으면서 신앙도 나무처럼 자라는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평화방송 라디오 '열린 세상 오늘, 이석우입니다'에서 출연한 이해인 수녀님의 말 일부) 당신은 부재하는 듯합니다. 당신은 손잡아주지도, 응답하지도, 손수건 내밀지도 아니하시니 오감에 의지하며 그것이 전부인양 믿어 의심치 않는 인간의 한계는 그 정도의 믿음으로 도리를 다하고 마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당신을 향한 믿음은 계속되어서 마침내 승리의 향기를 피어 올리게 하고 흰 옷 입은 천사들은 나팔소리로 견뎌 이긴 자에게 축복의 향연을 베풀고 끝내 부활의 꽃으로 피게 합니다. 지금은 긴말을 하고 싶지 않아요. 백합의 말이 아니라 수녀님이 말인 것 같습니다. 사람의 말이 부질없을 때가 종종 있으므로 지금은 묵상할 때라고 말하십니다. 생로병사의 질고 속에서도 하늘을 향한 지고지순한 믿음이 마침내 부활의 꽃을 피우게 한다고 심어주신 그 믿음 그대로 수녀님은 부활의 꽃으로 다시 피어나셔야 합니다. 갈급한 영혼들은 여전히 두레박으로 퍼 올려 주시는 샘물이 필요합니다. 이 세상의 꽃들은 여전히 수녀님이 빚은 아름다운 시로 인해 향기로워지길 기대하고 있습니다. 지친 영혼을 치유하는 일이 수녀님의 사명이니 그 십자가 사명을 다하기 위해서라도 부디 부활하셔야 합니다. 이해인 수녀님! 당신은 부활하는 백합꽃이어야 합니다.
Board 추천글 2010.02.06 바람의종 R 3383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