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하얗게 눈에 덮여 숨죽여 고요한 현장에서 새해 첫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지금 부터 제가 시작하는 이야기는 어쩌면 너무 무거울 수 있습니다. 제 눈이 보고 있는 것들에 대한 답을 쉽게 찾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고개를 돌리고 외면해버리지 않는다면 우리는 좀더 이 현장의 안쪽으로 들어갈 수 있을 것입니다. 좋은 질문을 가진다는 것이 좋은 답을 구하는 방법이라고 믿기 때문입니다. . 이 이야기는 마을주민들이 오리섬이라고 부르는 곳에서 일어나고 있는 이야기입니다. . 생태공원 조성사업이라는 이름의 에드벌룬이 떠있는 이곳에서 불과 몇일 사이에 수백그루의 나무들이 베어졌고 슬픔을 느낄 겨를도 없이 강바닥을 파올린 모래로 나무들의 무덤을 덮고 있습니다. 이곳에 깃들었던 생명붙이들이 모래 위에 남긴 발자국들도 이제 서서히 지워져 가고 있습니다. . 600리 물길을 안고 흐르는 오리섬 상부에도 공사는 진행되고 있습니다. . 아래 이곳의 조감도를 보면 이곳에 깃들던 생명 붙이들이 단 한종도 살아남을 가망이 없어 보입니다. . 저는 결코 이곳을 잊지 않을 것입니다. 그들이 어떤 선택을 했으며, 우리가 어떤 선택에 함께하고 있는지를....... . 지율의 전선(戰線), 낙동강을 따라 걷다 [1월9일- 10일] - 위 풍경속을 함께 걸었던 찬돌님이 쓴 순례기 한편 올립니다. 세밑에 부랴부랴 야학사 정리를 끝내고 지난 주말 그 동안 숙제처럼 미뤄왔던 낙동강 순례길을 나섰다. 허리가 좋지 않아 어쩔까 망설이기도 하였는데 댜행히 큰 아이가 선뜻 동행하겠다고 나서주니 힘이 된다. 이 날 마침 진보신당 사람들과 동행하게 되어 일행 일곱은 구포역에서 영주행 새벽 완행열차를 탔다. 오랜만에 스님 만날 생각에 마음이 조금 설레기도 한다. 아니나 다를까. 상주 버스터미널에 맞으러 나온 스님은 “뭐꼬, 인제 오고.” 하시며 반가이 손을 내민다. ‘그래, 저 손을 맞잡으러 왔지.’ 전국 각지에서 온 40여명의 사람들을 관광버스에 싣고 이제 ‘낙동강 숨결 느끼기 순례’를 할 모양이다. 잠수교인 강창교에서 내려 상주보 물막이 공사가 한창인 강뜰로 나섰다. 스님은 연신 사진기 셔터를 누르면서 하나라도 그냥 지나칠세라 일행을 재촉해가며 가늘고 높은 특유의 톤으로 안내에 여념이 없다. ‘스님, 맨날 와도 사진 찍을게 보이세요’ ‘방문객에게는 정경으로 보이겠지만 나에게는 이 곳이 전선(戰線)이어요’ (전선이라는 말을 못 알아들어 몇 번이나 되물으니 주위사람들까지 사오정 취급을 한다) ‘전선’이라, 그제서야 스님이 입고 있는 낡고 추레한 장삼이 예사롭게 보이지 않았다. (키가 훤출한 비구스님의 옷이라며 러시아 병사 외투같다고 깔깔거리신다) 스님에게는 저 옷이 전투복이며 어깨에 걸머진 카메라와 배낭에 든 캠코더와 노트북이 개인화기인 셈이다. 강뜰의 모래와 흙을 파뒤집어 반대편으로 둑길을 넓히고 경사를 다지는 모습을 학살의 현장이며 사체를 쌓아놓은 것이라 하신다. 그러니까 매일 수천, 수만의 아군이 몰살되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삼강에서 사벌로 경천대로 상주보로 통곡의 소리를 전하는 것이며 내성천으로 회룡포로 하회마을로 병산과 마애로 고스란히 학살을 기다리는 스스로 그러한 저 원형의 삶들을 어찌할 것인가 묻고 있는 것이다. (스님은 어느 인터뷰에서 ‘무엇을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싶은가’하는 물음에, 할 수만 있다면 ‘내 눈을 빼서라도 직접 보고 느낀 것을 전하고 싶다’고도 하였다) 그러니까 왜 순례길인지. 왜 답사가 아닌 순례이며 왜 ‘숨결 느끼기’인지 어렴풋이 알 듯도 하다. 그곳에서 무엇을 보기보다 뭔가를 느껴야 하나보다. 그곳을 통하여 보다 근원적인 또는 본질적인 어떤 것에 가닿고자 함인 모양이다. (종교란 으뜸의 가르침이라 하였던가) 그러니 그 흔한 피켓이나 깃대 하나 못들게 하면서 눈쌓인 모래사장으로, 어둠이 깔린 강둑 위로 조용히 강바람 소리를 듣고 강의 호흡을 느끼게 하려한 것인지 모른다. 순례 이틀째의 해뜨기 전 부용대에서 맞은 눈덮인 물도리[河回]동의 정경과 물안개 피어오르는 하회나루의 온통 새하얀 누리에 빼꼼하게 얼굴 내미는 붉은 햇살 (누군가 달력 사진이라 하였다), 눈덮인 동양화 한폭을 눈 닿는 데까지 곧추 세운 듯한 병산의 절경에 마음을 빼앗겨도 스님이 보여 주려한 그림이, 느끼기를 바랜 풍광이 그게 다였을까. 병산에서 이른 점심을 먹은 후 순례객들을 풍산으로 가는 버스에 싣고 다시 내려서 한 시간 가량을 걸어 들어간 마애 습지와 선사유적지의 모습에서 실마리를 붙들 수 있었다. 산과 강과 바다가 제 모습을 정하고 수백만, 수억년을 살아온 물의 역사가 단층을 이루며 켜켜이 각인된 흔적을 보란 듯이 드러내면서 그냥 흘러가는 강물이 아니라 그렇게 강이 만들어지고 흐르는 것임을 느끼게 하고 싶은 것이다. 거기에 수십만년 전이라는 선사시대 구석기 유물을 같이 보여줌으로써 이처럼 인간 이전부터 인간이 유래한 뒤까지 공간과 시간을 더불어 한 것임을 알아차리게 해주고 싶은 것이다. 그 속에 아직도 원형을 지닌 채 스스로 그러한 야생의 목숨부치들이 떼를 이루어 살고 있음을 일러주기 위함일 것이다. 스님은 이를 지혜라 하였다. 그리고 부디 도회의 삶으로 돌아가더라도 잊지 말기를, 주위 사람들과 나누기를 당부한 것이다. 그래서 스님은 쉼없이 순례객들을 걷고 또 걷게 하는 것인지 모른다. 힘들여 얻은 것, 제 발걸음을 통하여 힘들여 보고 느낀 것만이, 그러한 자각 속에서 건져 올린 것만이 제대로 된 감정이고 느낌이라는 것을 알게 하려는 것인지 모른다. (당신은 한 마리의 자벌레처럼 강가를 걷고 있을 뿐이라고 하였다. 비록 아무 것도 할 수 없다 하더라도 걷고 절망하기를 멈추지 않을 것이라 하였다.) 스님은 얼마 전의 인터뷰에서 세상에 절대 안되는 일은 없다고도 하셨다. 4대강 살리기든 죽이기든 두 개의 힘이 같이 가는 것이며 당장에 막을 수도 돌이킬 수도 없는 일임에 아픔의 땅에서 함께 아플 수 있어서, 그렇게 당신을 강으로 오게하고 강에서 소리를 듣게 하고 강에서 들은 소리를 전하게 하려고 더욱 귀 기울이게 해준 인연이 고맙다고도 하였다. 그리고 그 속에서 아픔을 치유하는 힘, 에너지가 생겨남을 느낀다고 하였다. 그래서인지 스님의 모습은 많이 유해져 있었고 넉넉함이랄까 여유랄까 쉼없이 재잘거리며 자연 앞에서 자유로운 모습 그대로다. 그리하여 이틀간의 순례길은 맛난 밥과 마음맞는 이들과의 재담과 낙동강의 풍광이 어우러진 길 위의 교실이고 놀이터였다. (이틀간의 걷기 수행을 버텨준 내 부실한 허리와 옆에서 지켜봐준 지윤에게도 고마운 마음 전한다) 그러니 이제 세상사람들은 두 부류로 나뉘어도 좋겠다. 낙동강을 느껴본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 그리하여 낙동강이 아름다우냐고 물어본다면 그렇다고 대답할 밖에, 세상에 이렇게 아름다운 곳을 봤느냐고 물어본다면 낙동강이 제일이라고 대답할 밖에, 그러니 낙동강이 무지막지한 개발과 건설의 만행으로 파괴되고 생명줄이 끊어지도록 내버려둘 수 없지 않느냐고 물어본다면 결코 내버려 둘 수 없다고 대답할 밖에. ▶어찌 이곳을 흐트리려 합니까 http://cafe.daum.net/chorok9
Board 추천글 2010.01.14 바람의종 R 23847
1 크리스마스를 연휴한 지난 주말, 상주를 중심으로 영주, 괴산, 안동, 서울, 부산, 대구,구미, 창원, 남지 등 각처에서 오신분들과 함께 낙동강 물길을 따라 걸었습니다. 1 겨울에는 배를 띄우지 않는다시던 사공님께서 순례단을 위해 특별히 배를 대주셨습니다. 강바람은 차고 매서웠지만 뱃길에 부딪혀 오던 물결의 고요한 철석임을 잊지 못할 것입니다. . 출발 전에 "걷는다고 뭐가 달라질까" 하고 묻는 분들이 계셨지만 걸으면서 그런 물음은 잦아들었습니다. 간혹 현수막이나 피켓을 만들어 가지고 오신 분들도 계셨지만 그 펼침막은 가슴에 접어 두자고 부탁을 드렸습니다. 우리의 가슴에 있는 이야기를 꺼내기 전에 먼저 아픈 산하가 우리에게 들려주는 이야기에 귀 기울여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 아래글은 괴산에서 순례에 함께했던 친구가 카폐에 올린 글입니다. 순례에 함께하지 못하신 분들께서도 이 순례의 의미에 동참해주시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옮겨봅니다. ..............................1박 2일 낙동강 순례기................................ 글쓴이 : 퉁풀 연말인데도 불구하고,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함께 했습니다.많으면 30명 남짓의 사람들이 순례에 참가했는데, 이번에는 뭔 일인지 100여명이 넘는 사람들이 참가하는 바람에 순례프로그램을 진행하는 사람들도 정신이 없었던 듯 합니다. 시선이 마주치는 어느 풍경 하나가 가슴을 설레지 않겠습니까! 걸어가는 발걸음 어느 한걸음에 이땅의 숨결이 느껴지지 않겠습니까! 참 아름다운 길과 풍광속에서 헤메이고 또 헤메이던 1박2일의 짧고도 긴 순례길이었습니다. 첫날 저녁에 그 많은 사람들이 한 방에 모여 삼삼오오 짝을 지어 서로의 마음을 나누던 그 시간은 온갖 군상의 무질서 안에서 서로의 한마음을 확인 할 수 있는 귀한 시간이었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한 이야기중에 유독 마음에 들어온 어느 한 단어를 나누는 시간도 좋았습니다.어느 말보다 더 가슴에 다가온 말은 말 중에 쏟아나온 한 줄기의 눈물입니다.마음은 입보다 눈이 더 가까운 듯 합니다. 따스하고 넓은 장소를 한 마음에 내어준 소장님의 짧은 말 한마디도 가슴에 남습니다."이 공간을 내어줄 때 저는 아무 바램이 없습니다" 라는 짧은 한절의 문구가 오래동안 훈풍이 되어 차가운 마음자리 위를 맴돌았드랬습니다. 이틀날 이른 아침 나룻배가 강을 건너오는 모습은 평생 잊을 수 없을 듯 합니다. 아직 날아가지 못한 물안개의 흔적이 물의 흐름을 쫓아 흘러가는 그 공간을 나누며 들어오는 뱃머리의 풍경은 사람을 실어나르는 일이 어떤 일인지를 알게 해 줍니다. 생명을 실어나르는 일이 얼마나 운치있는 일인지를 알려줍니다. 생명을 만지고, 들어올리는 일은 예술이어야 합니다.그 예술을 이해하기도 힘들겠지만, 그 예술을 통해 문명을 일구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새삼 느껴지기도 하고, 이 어리석은 자본의 문명에 대한 연민도 새롭습니다. 여지없이 파괴되어 가는 모습을 쫓느라 정신없이 다녀온 순례길인 듯 합니다. 생각도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시선도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발걸음도 정신을 차리지 못 한 듯 합니다. 돌아오는 자리에서 네번째는 우리가 무엇을 할까를 논의 하고 싶었는데, 참 쉽지 않았습니다. 무엇을 할까라는 생각이 떠 오르지 않으면 더 많은 것을 할 수 있을텐데, 강이 무너지는 것을 보고 있는 이 조급함이 이웃을 동지를 몰아 세우는 것 같아 참 그렇습니다. 그냥 느낌 나누기를 합니다. 좋았다. 좋았다.. 좋았다... 운명을 건 한판과 같은 부담감으로는 다시 이 순례길을 찾기는 힘들 것 같다. 너무 짧은 시간 힘들게 강이 파헤쳐지는 장소를 급하게 돌아본 듯 하다. 순례를 다녀오는 동안 타 올랐던 이 마음이 꺼졌다 켜졌다 되지 않게 마음자리를 다잡으려고 합니다. 한번 내어진 마음이 아닌 그 마음을 다지고 다지는 일에 힘을 쏟아야 되겠다. 지속적으로 순례가 진행되었으면 한다. 좀 가볍게 우리 주위의 이웃들과 예술적 그림과 사진으로 만났던 그 풍경에 발을 담그고 흘러가는 강물과 이웃하는 생명의 인드라망속에 내 마음이 드러나 흘러가는 생명의 시와 노래와 마음 나눠지는 자리를 만들자.. 그리고 각자가 할 수 있는 일들을 올리고, 제안 할 수 있는 on-line에서의 소통활동을 열심히 하자. 나누는 중에 함께 할 수 있는 생활을 찾게 됩니다."낙동강 순례 느끼기 1박 2일" 이라는 타이틀 대신 "우리 저 강에서 노올자"라는 이름으로 강가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놀꺼리(?)를 만들어, 저 강에 자주 모여 놀면서 우리의 생활속에 정체된 마음과 몸이 흘러가는 강물이 전하는 치유의 메시지를 통해 내가 흐르고, 가족이 흐르고, 이웃이 흐르고, 지역이 흐르고, 대한민국이 흐르고, 아시아가 흐르고, 지구가 흐르고,우주가 흐르게 되는 그날 까지 지속되기를 바라고, 생활하려 합니다. 돌아오는 날도 출발한 날과 같이 눈이 날려 쌓였습니다. 시작과 끝이 한 풍경이니 시작도 없고 끝도 없습니다. 아래 사진은 윗글을 쓴 퉁풀님의 부부입니다. 백일도 안된 아가야를 캥거루 처럼 배에 넣고 영하의 칼바람을 맞으면서도 산을 넘고 강을 건너며 저리 밝게 웃을 수 있기에 희망은 우리에게 있습니다. 그날 밤 엄마 포대에 싸여 있던 아기가 울기 시작하자 형아들은 걱정스러운 듯 관심을 가지고 모여 듭니다. 자신보다 약하고 어린 사람에 대하여 인애하는 마음이 사람의 본성이기 때문이겠지요..... ▶ 1박2일 낙동강 숨결 느끼기 순례는 2010년에도 계속 됩니다 (참가신청)
Board 추천글 2010.01.06 바람의종 R 23033
1 이 길에 마음을 담고 있느냐 그렇다면 이 길은 선하고 좋은 길이다. 1박2일이 주었던 충격 - 지율스님과 함께한 낙동강 순례 후기 출처 : 여행에 관한 인문학적 탐험 http://blog.naver.com/profounddeep/40096230714 간단하게 쓰도록 하겠습니다. 한 마디로 충격이었습니다. 이렇게 좁은 땅덩이리에, 이렇게 멋진 구석이 있었다는 것하고요, 이렇게 멋진 구석을 지금까지 제가 모르고 있었다는 사실에 대해서요. 그리고 추가로 저는 인간 시회에서 다양함에 대한 인정이 얼마나 소중한 덕목이지에 대해서도 새삼스럽게 깨닫게 되었고요. 제가 다녀왔던 곳은 상주와 예천, 그리고 안동 부근이었습니다. 그렇게 산업화의 물결에도 여전하게 자신의 모습을 지니고 있는 강의 모습을 바라보면서 내 땅도 제대로 돌아보지 못했다는 자괴감이 절로 들었습니다. 지율 스님의 말씀처럼 제대로 제 땅도 밟아보지 못했으면서 이러컹저러쿵으로 우리의 산하에 투덜을 달았구나라는 생각으로 부끄러웠습니다. 가슴으로 꽉 차 들어오는 강을 바라보면서 가슴이 벅찼습니다. 긴 말을 하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무조건 다녀와야 합니다. 보아야 합니다. 가슴에 담아내야 합니다. 마음을 온통 강물로 적셔야합니다.저의 충고에 따라 직접 가서 보신다면 여러분의 가슴은, 마음은 자연스럽게 강물의 흐름에 담아내어지고 적셔질 것입니다. 강물의 그토록 유유자적한 흐름이 여러분의 온 몸을 휘감아 돌 것입니다. 거기에다가 지율스님같은 안내자를 만난다면 덤으로 인생의 무게까지, 아니 어쩌면 인생의 무게를 털어버리는 날개를 달지도 모릅니다. 최소한 강물의 기를 가슴에 쓸어 담아내는 상당한 내공을 요구하는 팁을 거의 공짜로 얻어낼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우리가 인간이라면 강이 주는 그 자체로, 보는 것 그 자체로 여러분은 반은 득도의 경지에 저절로 도달하게 될 것입니다. 장담합니다. 저는 지금까지 좁은 땅에 태어난 것이 억울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근데 정작 억울한 것은 우리의 강이었습니다. 산하였습니다. 이 땅에서 살고 있는 모든 살아 있는 생명체이고 인민이었습니다. 보는 것만으로도 저의 마음에 자본주의의 개발 논리에 대한 분노가 솟아올랐습니다. 바로 성지였던 것입니다. 룸비니였고 베들레헴이었으며 메카였던 것입니다. 어디 이것이 비단 낙동강 뿐이겠습니까? 철책으로 담장이 들러진 순진한 모습의 임진강을 따라 올라가 보십시오. 섬진강의 구비구비를 김용택의 성경을 옆에 끼고 걸어보십시오. 득도요? 믿음의 체험이요? 장담합니다. 여러분의 가슴에 성령의 역사가 일어날 것입니다. 예수가 왜 요단강에서 세례를 받았는지 이해하실 것이며, 왜 요단강에서 하늘문이 열렸는지 충분히 이해할 것입니다. 길어지고 있네요. 그랜드캐년 멋집니다. 알프스도 죽여줍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의 산하도 멋지고 죽여줍니다. 똑같이 하늘님이 창조하신 피조물입니다. 하늘님의 영이 깃들인 창조물입니다. 청컨대 제발 창조물이 창조물을 주제넘게 학대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제가 눈에 담았던 그토록 멋진 모습을 저의 손자의 눈에도 담겨졌으면 합니다. 정말로 안타깝습니다 [출처] 1박2일이 주었던 충격 - 지율스님과 함께한 낙동강 순례 후기|작성자 glimpseoflife . 아침에 부엌에 나가보니 주인집 할머니께서 부뚜막에 밭죽 한그릇을 가져다 놓고 가셨습니다. 싸늘하게 식은 것을 보니 아마 어제 저녁에 두고 가신듯 합니다. 면에서도 마을에서도 제게 집을 내준 일 때문에 걱정이 많으시다는데 그래도 할매는 남모르게 계절과 끼니를 챙겨주십니다. 그제는 경노당에 가셔서 무슨 이야기를 들으셨는지 "역적이 될지 충신이 될지 나는 모르니더만 ..." 라며 혼자말처럼 하시더니 그래도 김치며 장이며 그릇그릇 챙겨 주시고 '몸 얼리고 다니지 말라'시며 뗄나무도 모아다 주십니다. 제게 닫는 눈길을 측은한 마음으로 걷워주시는 분들이 계시기에 두 눈을 얼리는 강가에 서는 일이 그리 두렵지만은 않습니다. 달력에남은 날이 그리 많이 남지 않았습니다. 문득 떠나보고 싶은 분들께서는 편안한 마음으로 순례에 함께해주세요 ▶ 1박2일 낙동강 숨결 느끼기 순례 참가신청
Board 추천글 2009.12.22 바람의종 R 25283
http://www.kyosu.net/news/articleView.html?idxno=19481 2009 올해의 사자성어 ‘旁岐曲逕’ 교수 216명 설문조사…正道로 복귀하기 바라는 소망 반영 2009년 12월 19일 (토) 05:44:56 박수선 기자 susun@kyosu.net 휘호 友山 송하경. 휘호를 쓴 송하경 성균관대 명예교수(儒學)는 성균관대 유학대학장, 유학동양학부 서예문화연구소장, 한국동양철학연구회 회장, 한국서예학회 회장 등을 역임했다. 송 교수는 新俗美主義 서예를 강조하면서 21세기 서예의 변화를 추구해 왔다. 2009년 한해를 정리하는 ‘올해의 사자성어’에 ‘샛길과 굽은 길’이라는 ‘旁岐曲逕’(방기곡경)이 선정됐다. <교수신문>이 지난 8일부터 14일까지 교수신문 필진, 일간지 칼럼니스트, 주요학회장, 전국대학 교수(협의)회 회장 등을 대상으로 설문을 실시한 결과 응답자 216명 가운데 43%가 ‘방기곡경’을 올해의 사자성어로 뽑았다. <2009 '올해의 사자성어' 설문조사 결과> 설문 결과 의 미 방기곡경(旁岐曲逕) 43% 샛길과 굽은 길로서 많은 사람들이 다니는 큰 길이 아니라는 뜻. 일을 바른 길을 좇아서 정당하고 순탄하게 하지 않고 그릇된 수단을 써서 억지로 함을 비유하는 말 중강부중(重剛不中) 19% 삼중으로 겹쳐진 강이 서로 옳음을 주장하지만 중도를 얻지 못한다는 뜻 갑론을박(甲論乙駁) 12% 서로 논란하고 반박함. 소모적인 논쟁을 거듭했다는 의미 서자여사(逝者如斯) 10% 가는 세월이 물과 같다 흘러가는 것이 이와 같구나. 밤낮을 두고 그침이 없구나. 포탄희량(抱炭希凉) 10% 숯불을 안고 있으면서 서늘하기를 바란다. 목적과 행동이 다른 경우에 사용하는 말. '방기곡경'은 일을 정당하고 순탄하게 하지 않고 그릇된 수단을 써서 억지로 하는 것을 비유하는 말로 주로 쓰인다. 조선 중기 유학자 율곡 이이가 『동호문답』에서 군자와 소인을 가려내는 방법을 설명하면서 소인배는 ‘제왕의 귀를 막아 제 이익을 도모하기 위해 ‘방기곡경’의 행태를 자행한다’고 말한 데서 비롯됐다. ‘방기곡경’을 올해의 사자성어로 추천한 안대회 성균관대 교수(한문학)는 “정치권과 정부에서 세종시법 수정과 4대강 사업, 미디어법의 처리 등을 비롯한 여러 정치적 갈등을 안고 있는 문제를 국민의 동의와 같은 정당한 방법을 거치지 않고 독단으로 처리해온 행태를 적절하게 비유한다”면서 “한국의 정치가 올바르고 큰 길로 복귀하기를 바라는 소망까지 반영한 사자성어”라고 이유를 밝혔다. 응답자들도 정부가 굵직한 정책을 추진하는 과정과 국정운영 방식에 아쉬움을 지적하면서 ‘방기곡경’을 올해의 사자성어로 선정했다. 손주경 고려대 교수(불문학)는 “긴 안목으로 진정 국가와 국민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과연 모든 이의 희망을 실현할 수 있는 올바른 길로 가고 있는지, 물리적 이익을취하려다 정신의 풍요로움을 이룰수 있는 요소를 버리지 않았는지를 성찰하지 않았던 한 해”라고 밝혔다. 조상식 동국대 교수(교육학)는 “정부의 신뢰를 저버리는 정책 추진으로 인해 현재 갈등이 증폭되고 있다”고 꼬집었다. 이영석 광주대 교수(영문학)는 “4대강 사업, 미디어법 등 여러 현안들을 진솔하고 정정당당한 방식으로 접근하지 않고 임기웅변 식으로 모면하려는 인상이 강했다”면서 “올해 우리 사회가 겪은 사회적 혼란은 정부와 집권 정당의 이런 자세 때문에 심화됐다”고 지적했다. 서로 옳음을 주장하지만 중도를 얻지 못한다는 ‘重剛不中’이 19%, 소모적인 논쟁을 거듭했다는 의미의 ‘甲論乙駁’이 12%로 뒤를 이었다. 가는 세월이 물과 같다는 ‘逝者如斯’와 숯불을 안고 있으면서 서늘하기를 바란다는 뜻으로 목적과 행동이 다른 경우에 사용하는 ‘抱炭希凉’은 각각 10%를 기록했다. 한편 올해 가장 안타까웠던 일로 전직 대통령 두명과 김수환 추기경의 서거를 꼽은 응답자가 가장 많았다. 김연아·신지애 선수 등 스포츠 선수들의 활약이 가장 기뻤던 일이었다. 의미 있는 실천을 한 사람으로는 故김수환 추기경을 선정한 답변이 많아 눈길을 끌었다. 박수선 기자 susun@kyosu.net
Board 추천글 2009.12.21 바람의종 R 23539
1 지난 주말 1박 2일의 낙동강 숨결 느끼기 순례를 끝내고 그 길로 마산 트리피스 수녀원에 다녀왔습니다. 벽을 만지면 침묵이 물처럼 흐른다는 봉쇄수도원이었기에 수도원에 도착하기 전까지 출가하기 위하여 집을 나섰을 때 처럼 마음이 두근거렸습니다. 창원 터미널에서 마중 나오신 원장수녀님과 함께 구불구불 한 산길을 달려 도착한 곳은 붉은 벽돌의 3층 건물이었습니다. 1 그 안으로 안내를 받고 들어서면서 저는 깊이 마음의 기도를 드렸습니다. "부디 이곳에 거친 제 슬픔이나 분노를 옮겨놓치 않게 하시고 저로 하여금 평화의 말을 하게 하소서" 지역기자님 몇 분과 지역주민들께서 오셨지만 제 강의는 봉쇄 기도원 안쪽에서 진행되었기에 그분들은 두 시간 이상을 문밖에서 기다리셔야 했습니다. 그 두시간 동안 침묵의 수도자들과 함께 나누었던 이야기들과 그분들의 눈빛을 말로 전하는 일을 저는 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제가 침묵의 벽을 넘어 가고 그분들이 그 벽을 넘어 오신 이 시대를 역사는 기록 할 것입니다. . 지거쾌더 작 <제자들의 발을 씻기는 예수님> ▶ 이번주 1박2일 낙동강 숨결 느끼기 순례행사는 내성천 답사 관계로 쉽니다. 12월 26일 1박 2일의 낙동강 숨결 느끼기 순례에 동참하실 분들은 아래 카폐를 통하여 신청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http://cafe.daum.net/chorok9 ▶ 위 카폐에서는 알림을 확대하고 정보를 공유하며 유사시 공동의 행동을 통하여 국토 지키기에 참여 할수 있는 cafe, biog 동맹을 만들어 가고 있습니다. 또한 이번주 부터 초록 공명, 메일 추천기능을 넣습니다. 번하한 일이지만 지금 강에서 일어나고 있는 상황의 위급함들을 조금이라도 더 알리기 위함입니다. 참여 부탁드립니다.
Board 추천글 2009.12.18 바람의종 R 25164
경향신문 12월14일(월) 사설 [사설]역사 모르는 글로벌 인재양성 어불성설이다 역사학계가 단단히 뿔이 났다. 교육과학기술부가 지난 9월 발표한 ‘2009년 개정교육과정 시안’(이하 시안)이 화근이다. 역사학계는 시안대로 고등학교 역사 과목을 필수가 아닌 선택으로 돌리면 고교 역사교육을 붕괴시키게 될 것이라며 크게 반발하고 있다. 역사 관련 단체 36곳 대표들은 지난 주말 기자회견을 열고 성명서를 통해 정부의 역사교육 축소안 철회를 거듭 촉구했다. 지난 10월에 이어 두번째다. 정부가 시안을 올해 안에 확정하겠다며 밀어붙이려 하자 고교 역사교육의 고사(枯死)를 우려하는 역사학계가 목소리를 높이고 있는 것이다. 역사학계가 괜한 걱정을 하는 게 아니다. 시안대로라면 고교 3년 동안 한국사든 세계사든 역사를 전혀 배우지 않고 졸업하는 사태가 벌어질 수 있다. ‘글로벌 창의 인재를 위한 학교 교육과정 자율화’를 앞세운 시안은 현행 10년인 ‘국민 공통기본교육과정’을 9년으로 단축해 중학교까지만으로 하고, 고교 3년간은 선택중심교육을 한다는 내용이다. 이렇게 되면 고1의 역사(현행 국사) 과목은 필수에서 선택으로 바뀐다. 또 고교 2~3년생의 선택 역사 교과수도 3개에서 2개로 줄어든다. 이에 대해 국어·영어도 선택과목이기 때문에 문제가 없다는 게 교과부의 강변이다. 하지만 치열한 대입경쟁에 내몰린 학생들이 학습량도 많고 상대적으로 점수따기도 어려운 역사 과목을 ‘선택’할 가능성이 적은 게 엄연한 현실이다. 역사가 선택과목이 되어선 안되는 이유다. 시안은 2011년부터 시행될 2007년 개정교육과정에 대한 사회적 합의의 파기라는 또 다른 문제를 안고 있다. 한·일, 한·중 역사 분쟁을 계기로 역사교육을 강화한 새 커리큘럼이 만들어지고 있는 중에 정부가 거꾸로 가겠다고 나선 것이다. ‘좌편향’ 선동을 통해 고교 역사교과서를 입맛대로 직권수정한 정부는 아예 역사를 배워도 그만, 안 가르쳐도 그만인 과목으로 만들려는 모양이다. 역사를 가르치지 않는 글로벌 인재양성과 역사를 모르는 글로벌 인재가 어떻게 가능한가. 교과부의 시안은 학교의 자율성과 학생의 선택권을 넓히는 것이라고 하지만, 실상은 학교를 슈퍼마켓처럼 만드는 미국식 신자유주의 교육방향을 무분별하게 받아들인 데 지나지 않는다. 학교는 학생들에게 실질적인 필수 학습 프로그램을 제시해야 옳다. 글로벌 창의교육이 필수라면, 역사교육도 필수여야 한다. 역사를 선택에 맡기는 것은 교육현실도, 역사가 무엇인지도 모르는 몽매함일 뿐이다.
Board 추천글 2009.12.14 바람의종 R 237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