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왕조 오백년의 선비정신 (하) - 편저자 : 강효석, 역자:권영대, 이정섭, 조명근
1. 예론이 당쟁으로
앞을 내다보고 난세에 신중한 처신을 한 신정
신정(?~?)의 본관은 평산이고 자는 인백, 호는 분애다. 신흠의 손자다. 인조 26년(1648)에 진사가 되고, 현종 5년(1644)에 문과에 급제했다. 이 때 공서파 김자점은 인조의 후궁 조씨와 결탁하여 손자인 김세룡을 조씨의 딸 효명옹주에 장가 들여 왕실의 외척이 되었다. 병조판서, 우의정을 거쳐 좌의정에 올라 낙홍 부원군에 봉해져 굉장한 세도를 누리는 것을 신정은 의구심을 가지고 바라보았다. 이 때 신정의 누이동생이 조씨의 자부가 되자 신정과 그의 아버지 신익전은 처신을 더더욱 조심하였다. 1651년 김자점이 역모에 걸려 인조의 후궁 조씨와 더불어 처형될 때, 신정의 종형인 신면이 김자점과 친밀하다는 이유로 곤장을 맞고 심문 도중에 죽었으나 신정의 집안은 안전할 수 있었다. 사람들은 앞을 내다보고 신중하게 처신한 그의 사려 깊은 행위에 모두 감탄하였다.
그러나 신정은 결코 틀에 얽매인 답답한 유학자가 아니었다. 느긋한 마음으로 세상을 넌지시 구경하는 여유 자적한 그는 방외지인 같은 멋을 지니고 있어 풍류가 넘치는 멋도 있었다. 그의 시 중에는 매우 뛰어나다는 평을 받는 작품이 적지 않으며, 그가 병석에 누워 있을 때 문장의 대가인 호곡 남용익(1628~1692) 이 내방하여 다음과 같은 말을 주고받았다.
"공께서 곧 "기아"를 간행하신다고 들었는데 그 책을 저의 시도 한 편 들었는지요?" 신정의 물음에 남용익이 답하였다. "아니, 아직 넣지 못했네." 그러자 신정이 다음과 같이 말한 후에 시 한 수를 읊었다. "제가 영남에서 매화 한 그루를 갖고 온 적이 있어 이렇게 한번 지어 보았는데 한번 보아주시지요."
조그만 매화 한 그루 고개 넘어 나 따라왔네 내가 앓아 누운 줄 알지 못하고 내 베갯머리를 향해 꽃을 피웠네
눈을 지그시 감고 몇 번이고 읊조리던 남용익은 돌아가서 이 시를 "기아"에 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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