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왕조 오백년의 선비정신 - 강효석
1. 창업의 문
춘추를 잘 외워 하루아침에 대사간이 된 구종직
구종직(1424-1477)의 본관은 평해이고 자는 정보이다. 세종 26년(1444)에 문과에 급제하였다.
어느 날 성종이 밤에 경회루에 나아갔더니 어떤 사람이 경회루 곁에 엎드려 있었다. 성종이 누구냐고 물었다.
"교리 구종직입니다" "어떻게 여기에 왔는가?" "초야에 있던 신이 일찍이 경회루의 요지는 천상의 선계란 말을 들었사온대 마침 대궐에 입직하였다가 감히 몰래 구경하고 있었습니다" 성종이 앞으로 나아 오도록 하여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대는 노래를 부를 줄 아는가?" "촌사람의 노래가 어찌 가락에 맞겠습니까?" 성종이 시험삼아 부르도록 명하니, 구종직이 목청을 길게 뽑아 한 곡조 불렀는데 지붕이 진동하는 듯하므로 성종이 매우 즐거워하였다. "경전을 외울 수 있는가?" "'춘추'를 대강 기억합니다" 성종이 외우도록 명하니 물이 흐르듯 막힘 없이 외웠다. 성종이 술을 내려 주도록 명하고 그 자리를 파하였다. 이튿날 특별히 구종직을 대사간으로 임명하자 삼사(사헌부,사간원, 홍문관)에서 번갈아 가며 글을 올려 적극적으로 불가함을 논하였으나 성종이 허락하지 아니하였다. 며칠이 지나자 성종이 삼사의 관원을 모두 불러다 입시 하게 하고 또 구종직도 오도록 명하여 그 자리에서 대사헌 이하에게 '춘추'를 외우게 하였는데, 한 구절이라도 제대로 기억하는 자가 없었다. 성종이 구종직에게 외우도록 명하여 제1권을 다 외우고 또 다른 권에서 뽑아 질문을 하였으나 그 자리에서 대답을 못하는 것이 없을 정도로 환하게 알고 있었다.
"경들은 한 구절도 잘 외우지 못하면서 오히려 청직에 올라 있는데 구종직과 같은 사람이 어찌 대사헌에 합당하지 않단 말인가?"
성종이 삼사의 관원을 둘러보며 말하자 모두들 황공하고 부끄러워하면서 물러났다. 구종직은 벼슬이 찬성에 이르렀으며, 시호는 안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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