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를 뒤흔든 여인들 - 구석봉
제 6부 독부와 현부
추녀가 거둔 임란의 승리 -양씨 부인
장지연의 <일사유사>에는 양씨 부인을 김천일의 아내로 기록하고 있으나 이는 잘못된 것 같다. 양씨 부인은 임진한 때의 의병장 김면의 아내였다. 김면. 조선 선조 때 사람. 그의 자는 지해요, 아호는 송암이다. 본관은 고령. 경원 부사 세문의 아들. 어려서 학업에 뜻을 두었으며, 정술 등과 막역한 친구였고, 성리학을 연구하여 후진을 가르치는 데 힘썼다. 관직에 뜻이 없고 조용히 산야에서 소일하던 중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분연히 떨쳐 일어나 조종도, 곽준, 문위 등과 거창, 고령 등지에서 의병을 규합하여 군량 조달에 많은 성과를 거두었다........ 김면에 대한 기록은 이렇게 시작되고 있는데, 문제는 그의 군량 조달에 얽힌 일화에 양씨 부인의 힘이 작용되었다는 데 있었다. 김면은 원래 가난뱅이였다. 몸에 걸치는 옷은 누더기가 고작이었고, 그야말로 밥 굶기가 예사였다. 그렇게 가난한 잡안이라 누가 딸을 주려고 들지를 않았고, 그 때문에 김면은 나이 스물이 훨씬 넘을 때까지 장가를 들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나 아무리 가난한 집 젊은이라지만 하늘은 젊은 김면을 혼자 살게 내버려두지를 않았다. 그에게도 마침내 혼처가 나섰던 것이다. 색시될 사람에게 흠이 있다면 나이가 역시 스물을 넘긴 노처녀라는 점이었다.
"나이가 많으면 어떠냐 살림 잘하고 아들 딸 쑥쑥 잘 낳으면 되는 거지." 김면의 부모는 며느리를 기다리다 모해 지쳐 있던 참이라 여자의 나이가 스물을 넘었다는 데도 감지덕지한 기분이었다. 혼사는 빠른 속도로 진행되었다. 대삿날도 받았다. 이제 남은 것은 여자를 데려오는 일밖에 없었다. 색시될 사람의 성이 양씨라고 했다. 그까짓 성이야 개씨나 소씨성이면 어떠랴 했다. 김면은 노총각의 설레임을 안고 대삿날을 기다렸다. 초조한 마음이란 이런 때를 두고 하는 말인 성싶었다. 대삿날이 다가왔다. 가난하지만 그런대로 초례청은 들떠 있었고, 약간은 흥청거리기까지 했다. 초례가 끝났다. 흥분 때문에 신랑은 신부의 얼굴이나 옆모습 한번 찬찬히 바라볼수가 없었다. 밤이 되었다. 신방에 불이 켜지고 그제서야 비로소 신랑 김면은 신부 양씨 부인을 찬찬히 살펴보기 시작했다. " ? " 신랑의 눈이 신부를 맞는 설레임으로 빛나기에 앞서 눈 가득히 놀라움을 나타내었다. 이게 신부인가 싶었다. '이렇게 못난 여자도 이 세상에 있었던가?' 못난 정도를 지나쳐서 신부의 모습은 추하기까지 했다. 그러한 아내를 데리고 평생 동안 한집에서 살아가야 할 것을 생각하니 벌써부터 맥이 빠지는 것 같았다. 그래도 그는 자기의 우울한 심회를 달래는 수밖에 없었다. 이것이 내 팔자인가 보다 하고 체념하기로 했다. 얼굴 생김이 못난 부인은 하는 일마다 또한 못난 짓만 골라 했다. 양씨 부인은 매일 낮잠이었다. 무엇 손가락 하나 까딱하려 들지를 않았다. 양씨 부인은 시집 온 지 며칠이 되지 않아서 남편 눈밖에 든 것은 물론이요, 시아버지한테서도 여러 차례 꾸지람을 들었다. 어느 날 양씨 부인이 역시 낮잠을 자고 있는데 느닷없이 시아버지의 고함소리가 고막을 때렸다. "이것 봐! 낮잠으로 세월을 보내면 하늘에서 밥이 떨어지나 죽이 떨어지나. 자고로 아녀자란 집안 살림을 도맡아 재산을 모으는 일에 밤잠두 안 잔다는데 너는 어찌하여 허구헌날 낮잠으로 다 넘겨 버리는 게야?........." 양씨 부인은 부시시한 얼굴로 눈을 비비며 시아버지 앞에 나아가 앉았다. "내 얘기가 귀에 들어가는 거야, 안 들어가는 거야?" 시아버지의 노기는 쉽사리 누그러들 것 같지 않았다. 그러자 양씨 부인, 숙였던 고개를 들어 시아버지를 쳐다보며 "전 낮잠을 자고 싶어서 자는 것이 아니예요, 아버님."하고 불만처럼 말했다. "뭐, 낮잠을 자구 싶어 자는 게 아니라구?" "예, 저두 비록 가정을 돌보면서 치산을 하려구 했지만 무슨 밑천이 있어야 말이죠." "밑천이 있다면 가산을 모으는 일에 힘쓰겠다, 이 말이렷다!" "암은요!" 시아버지는 할 말이 없었다. 가난한 집. 경원 부사까지 지낸 터수에 가난이 등에서 떨어질 줄을 모르는 김세문 영감. 영감의 집 며느리로 들어온 양씨 부인이 매일처럼 낮잠으로 세월을 보내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그러나 시아버지는 부사를 역임한 양반이다. 몇 명의 노비와 기십 석의 양곡은 있는 몸이다. "내 그럼 너에게 벼 30석과 노비 너댓 명과 소 몇 마리를 갈라 줄터이니 이것을 밑천으로 치산을 해 보거라." 시아버지는 비장해 두었던 벼 30석을 순순히 내놓는 것이었다. 그날부터 양씨 부인의 생활에 변화가 왔다. 방안에 틀어박혀 오직 학문에만 전념하는 남편은 그냥 그대로 두고 양씨 부인이 소매를 걷고 나선 것이다. 시아버지로부터 약간의 재산을 물려받은 이튿날 양씨 부인은 하인 하나를 불러 들였다. "옛다 석 냥!" 양씨 부인이 던져 주는 은자 세 냥을 받아 들고 하인은 어리둥절하여 서 있었다. "이 돈으로 무얼 사오라굽쇼 마님?" "말을 사오는 게야 그 돈으루." "에게게 은자 석 냥으로 어떻게 쓸 만한 말을 사옵니까요?" "아따 여러 소리말고 이 길로 장터로 나가거라." "장터라굽쇼?" "오냐, 장터에 나가면 웬 허름하게 생긴 젊은이가 비리비리한 말 한 필을 몰고 와서 팔려구 할게다." "마님두, 비리비리한 말을 사다가 무엇에다 쓰게요! 공연히 말송장 치시려구 그러십니까요?" "글쎄, 잔소리 말구 내 시키는 대로 하란 말이다." 양씨 부인의 분부는 추상같았다. 하인은 은돈 세 냥을 들고 급히 장바닥으로 달려갔다. 하인이 장바닥에서 몰고 온 말은 아무리 뜯어봐도 쓸모가 없는 병든 말이었는데 양씨 부인은 오래 사귀어 온 애마나 되는 것 처럼 극진히 보살피는 것이었다. 부인은 손수 침을 놓아 주기도 하고 쑥을 뜯어다 퍼주기도 했다. 다 죽어 가던 말이 부인의 손길이 닿으면서부터 하루하루 달라져 갔다. 말은 살이 찌기 시작했고, 눈빛이며 거동이 민첩해져서 제법 준마의 기품이 스며들기 시작한 것이다. 양씨 부인은 처음 장바닥에서 사올 때보다 월등히 좋아진 말을 남편 김면에게 선사했다. 김면은 짬나는 대로 그 말을 길들여 갔고, 양씨 부인은 또다시 다른 계획에 몰두하기 시작했다. 어느 날 양씨 부인은 부리던 하인들을 한자리에 모아 놓고 소와 곡식을 꺼내었다. "너희들은 오늘부터 이 집을 떠나 무주 구천동 산골짜기로 들어가 사는거다." 모여선 하인들이 이 뜻하지 않은 양씨 부인의 명령을 듣고 어리둥절해하였다. "이 집을 떠나 구천동에 가서 살라굽쇼?" "음. 그 곳에 닿는 대로 나무를 베어 집을 지속 이 곡식으로 양식을 삼아 부지런히 화전을 일구어 농사를 짓는 거다. 그리하여 가을철에는 화전에서 나온 곡식이 얼마나 되는지 나한테 와서 알릴 일이며, 곡식을 저축하기를 해마다 그렇게 하라. 알아들었느냐?" "예." 하인들은 감히 양씨 부인의 엄명을 거역할 수도 없는 노릇이어서 소 잔등에 곡식을 싣고 그 길로 무주 구천동 살골로 들어갔다. 그 일이 끝나자 양씨 부인은 또 새로운 착상에 몰두했다. 양씨 부인이 사는 마을 남쪽에는 전부터 넓은 벌판이 있었다. 해마다 장마철이 오면 이 들판은 물바다로 변하곤 했다. 물만이 아니었다. 거센 흙탕물이 벌판을 가로질러 흘러서 모래와 자갈이 쌓여 가기만 했다. 그러니 곡식을 심어 먹기란 생각조차 할 수가 없었고, 황무지로 버려진 채 몇십 년을 그대로 방치해 둘 수밖에 없는 노릇이었다. 양씨 부인이 생각은 바로 이 아무도 돌보지 않은 채 버려져 있는 황무지를 어떻게 개간해 볼 수 없을까 하는 것이었다. 부인은 우선 남편 김면에게, "여보 당신이 나서서 동리 사람을 모아 보세요, 품삯은 두둑히 줄터이니까 와서 일좀 해 달라구 그러세요." "응해 주다마다요. 품삯을 두둑히 주겠다는데 어느 누가 반댈 하겠어요?" 그러나 양씨 부인은 일꾼을 모으는 첫단계에서 벽에 부딪치고 말았다. "미친년 같으니라구. 아, 무슨 재주로 자갈밭을 걷어 낸다고 그래?" "아--- 니 그 강바닥을 밀어내어 거기다 논을 치겠대면서? 하늘에다 모를 심는 게 낫지, 그 짓을 인력으로 하누?" "그러게 미친년의 짓이라는 게지." 마을 사람들은 저마다 한 마디씩 내밷었다. 일을 하기는커녕 미친년의 미친 짓을 구경이나 해 보겠다는 심사들이다. 그러나 남편 김면은 아내의 지모를 믿었다. 비록 못나기는 했어도 마음이나 슬기까지 못나 빠진 여자는 아니라고 남편은 믿고 있었다. 그래서 김면은 마을 사람들의 설득 작업에 발을 벗고 나섰다. "여보게들. 내 칠불출의 하나라는 걸 알면서 아내 자랑 좀 해야겠네. 그 사람은 선견지명이 있는 여잘세. 내가 타고 다니는 말을 보게나. 처음에 병이 들고 비쩍 말라빠진 말을 보게나. 처음에 병이 들고 비쩍 말라빠진 말을 단돈 석 냥에 사다가 준마로 길들여 놓은 내 아내 솜씨 좀 보라구. 집에서 부리던 종들을 무주 구천동으로 보내어 농사를 짓게 한 것도 우리 집사람 머리에서 나온 방책일세. 구천동에서 매년 거두어들이는 곡식이 얼마나 되는지 자네들 알기나 하는가? 이것저것 합쳐서 수십 석이나 된다네." 확실히 남편의 설득 작업은 효과가 있었다. 마을 사람들은 하나 둘 벌판 개간 작업장에 얼굴을 들이밀었다. 그런데 이 무슨 변인가? 멀쩡하던 하늘에서 비가 퍼붓더니 삽시간에 벌판을 뒤덮을 기세였다. 마을 사람들은 그것 보라는 듯 또다시 제각기 한 마디씩 늘어 놓았다. "흥, 선견지명이 있는 여자가 하는 짓이 이런 식이라니까." "공연히 헛돈 쳐 들여서 없는 재산에 알거지 되지 말고 일을 중단하라구 그래." 그렇지만 양씨 부인은 일을 중단하기는커녕 빗속에서도 일을 강행하고 나섰다. 양씨 부인은 하늘에 대고 빌었다. 여기서 기적이 일어난 것이다. 하늘은 어디까지나 양씨 부인 편이었다. 며칠을 내리 퍼붓던 비는 홍수를 내고 말았지만 해마다 그 벌판으로 밀어닥치던 물은 신기하게도 방향을 꺾기 시작했다. 그리하여 양씨 부인이 논을 치려고 작업을 계속하던 그 벌판으로 물이 흐르는 것이 아니라 맞은편 둑을 무너뜨리고 새로운 물줄기를 형성하게 되었던 것이다. 두말 할 것도 없이 양씨 부인의 작업장은 얼마 안 가 일등 호답으로 변하였고, 마을 사람들은 그제서야 양씨 부인의 지모에 놀라 찬탄의 소리를 늘어놓게 되었다. 창고마다 곡식이 가득가득 채워져 가고 무주 구천동에서는 매년 푸짐한 곡식들이 역시 그 곳에 지어 놓은 창고를 메워 나갔다. 그런데도 양씨 부인은 어떻게 된 셈인지 만족하려 들지를 않았다. 양씨 부인은, 이번에는 남편을 이용해서 곡식을 얻어 들이려는 계책을 꾸몄다. "여보, 남자가 수중에 전곡이 없으면 백 가지 일 중에 하나도 성공하기가 어려운데, 내가 듣자니까 동네 안의 어느 부자는 수만금의 재물을 쌓아 놓고 그 성품이 도박을 매우 즐긴다고 합디다." "음, 그런 사람이 건넛마을에 한 사람 살고 있지........." "헌데 당신은 어째서 그 부자를 찾아가서 그의 천석 노적가리를 노름으로 따볼 생각을 하지 않는 거예요?" 남편에게 노름 하기를 권하다니 아무튼 별난 부인이었다. 남편은 그 말을 듣고, "헹, 그 사람은 국수로 이름난 사람인데 내가 어떻게 그 사람하구 내가 바둑에서 이기기를 바란단 말요."하고 고개를 가로젖는다. "그런 걱정 마시고 오늘부터 저한테 바둑의 묘술이나 배워 두구려." 양씨 부인은 즉시 바둑판을 내려서 남편 김면과 마주앉는다. 김면은 원래 재주가 있는 사람이라 며칠이 안 가 아내가 가르쳐주는 바둑의 묘기를 모두 통달하고 말았다. "됐어요, 이제. 내일은 건넛마을 부자를 찾아가서 대국을 청하세요." "승부는 어떻게 결정하는 것이 좋을까?" "삼판 양승으로 작정하고 첫판은 당신이 져 주되 2국, 3국은 근근히 이기는 식으로 해서 곡식을 취하도록 하세요." "그 다음엔?" "틀림없이 그 사람은 분한 나머지 다시 내기를 하자고 덤빌 터이니, 그 때는 비로소 신묘한 수법을 써서 그 사람이 다시는 대항치 못하도록 하시구려." "알았소." 이튿날 내기 바둑은 양씨 부인의 예상대로 그녀의 남편 김면의 승리로 돌아갔다. "허허, 당신 말대루 하니까 승리는 내 것이 되었거니와 당신은 대체 그 많은 곡식을 무엇에다 쓰려구 그려우?" 김면은 그게 궁금해서 묻지 않을 수 없었다. "무엇에다 쓰다뇨? 군자로서 친지들 중에 가난하고 의자할 데 없는 사람이 있으면 그런 사람을 도와 주구요........" "옳지, 옳지........" "혼사나 장사에 능력이 없는 사람은 또 그들을 도와 주어서 귀천과 원근을 가리지 말고 적당한 양을 베풀어 줄 것이며, 혹 기걸한 사람, 지혜나 용기가 뛰어난 사람이 있거든 그들과 더불어 깊이 사귀고 그들이 집에 오거든 술과 음식으로 후히 대접하는 데 쓰지요."
김면은 아내의 말대로 호남에서 호걸이란 사람들은 모조리 다 사귀었다. 그 뒤 선조 23년 신묘년 봄. 이 봄에 양씨 부인은 전에 없이 집안 일꾼들에게 엉뚱한 농사를 지으라 명하게 되었다. "다른 곡식은 그만두고 박 농사만 지어라!" 양씨 부인의 분부는 그런 것이었다. 양씨 부인은 자기 집 일꾼들에게만 그런 명령을 내린 것이 아니라 마을 사람들한테도 거의 강권하여 박 농사를 짓도록 했다. 이제는 양씨 부인의 지모에 연방 감탄을 금치 못하던 마을 사람들이었던지라 그녀의 말을 따르지 않는 사람이 없었다. 한해 농사를 오로지 박 농사만 짓게 하니 가을이 되자 온 동리는 온통 박 천지가 되었다. 양씨 부인은 그 중에서 크고 잘 익은 것들만 모두 거두어들여 옷칠을 해서 큼직한 광에 가득 쌓아 놓았다. 그리고는 또 대장장이에게 부탁하여 무게가 백여 근씩이나 되는 쇠박을 만들어서 역시 광 속에 넣어 두었다. 그 다음해는 임진년. 이른바 임진왜란이 일어나 왜군이 하룻만에 부산포를 함갈시키고 파죽지세로 밀어 올라오게 되었다. 실로 위기였다. 외로운 칼을 뽑은 자 모두 왜군의 창칼에 목숨을 잃었다. 혼란의 도가니였다. 이때, 양씨 부인은 비로소 남편을 잡고 말했다. "제가 평소에 당신에게 가난한 사람을 구제하고 영특한 사람을 사귀라고 한 것은 이런 난리가 있을 것을 미리 생각했기 때문이에요. 시부모님이 피란할 곳은 제가 이미 조처를 해서 무주 구천동에다 마련해 놓았으니 아무 걱정할 것이 없고, 저는 이곳에 남아 군사들의 양식과 그들이 입을 군복을 조달할 터이니 당싱은 속히 외병을 일으켜 나라를 위해 왜병을 막으세요!" "오호 장한 사람. 당신의 선견지명은 과연 하늘에서 계시받은 것처럼 빈틈이 없구려." 김면은 새삼스럽게 아내가 장하게 여겨졌다. 그는 아내의 말을 좇아 의병을 일으켰다. 멀고 가까운 데서 김면의 수하로 들어오는 장정이 5,000여 명, 김면은 그들의 대장이 되었다. 그리하여 이들 5,000의 군사들에게 모두 옷칠한 바가지를 가지고 싸움에 나갔다가 돌아올 때에는 쇠로 만든 바가지를 길에다 버리게 했다. 두말 할 것도 없이 그것은 모두 양씨 부인의 시킴에서였다. 싸움터에 나온 왜병들은 김면의 의병들이 길에 버린 쇠바가지를 보고 놀랐다. "아니, 조선 군사들은 쇠로 만든 이 무서운 철모를 쓰고 전쟁을 하는가? 힘이 장사들인가 보지?" 왜병들은 쇠바가지를 들어 보려 했으나 힘이 미치지 않았다. 그들은 겁을 먹기 시작했다. 쇠바가지를 마음대로 쓰고 다니는 김면의 군사와 마주쳤다가는 뼈도 못 추리겠다는 것을 알았다. 왜병들은 후퇴하기 시작했다. 그 바람에 김면의 군사들은 번번이 승리를 거두었다. 군량만 해도 양씨 부인이 몇 년 동안 모아 둔 것이 있어 아쉬울 것이 없었다. 일년의 세월이 흘렀다. 싸움은 아직도 끝나지 않았다. 그러나 김면의 의병들은 달이 갈수록 용기가 솟았다. 군량이 넉넉해서 배를 곯지 않고 싸움에 임할 수 있는 것만으로도 힘은 절로 솟았다. 임진란 당시 의병장 김면이 이렇게 왜병을 무찌를 수 있었던 것은 오직 양씨 부인의 조력이 주효했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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