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風文  Nov 02 2022
이태원관련 계약 해지 예정 고지 - 윤영환 이태원관련 계약 해지 예정 수 신 : 윤석열 발 신 : 윤영환 사건번호 : 20221030 내 용 : 이태원에 뜬 별 1. 안녕하시거나 말거나 며칠 전 이태원에서 수없는 별이 떠오르는 걸 보고 본 통지문을 발송합니다. 살다가 별 그지 같은 경우를 대함에 상당히 짜증이 밀려오며 동시에 슬픔이 치밀어 해결책을 모색하다가 본 통지문를 이용하게 됐으니 너그러이 양해하지 마세요. 2. 앵간하면 제가 말장난을 안 하는데 댁이 나를 건드렸으므로(신경도 안 쓰겠지만) 심히 유감을 표합니다. 사건 당일은 본인의 생일이 3일이 지난 날짜로 축하의 기운이 남아 매우 즐거운 하루하루를 보내던 때 주변인의 전화가 심상치 않아 TV를 켠 결과 눈썹이 마구 쳐지며 눈썹과 눈물이 같이 내려가는 희귀한 증상이 발생하였음을 고지합니다. ‘멘붕상태’라 불리는 희소병입니다. 원하지 않던 증상이 당신으로 인해 발생하였으며 이에 아래와 같이 보상을 청구합니다. 3. 나는 그리고 저 아름다웠던 분들은 당신과 계약을 맺고 원하시는 대로 살았으며, 세금도 원하시는 대로 냈고, 의무교육도 원하시는 대로 마치고, 이제 사회로 진출하려는 부푼 꿈을 안고 살고 있었습니다. 그건 당신이 생명과 재산을 지켜준다기에 맺은 계약으로 강제 계약이었습니다. 그런 억울함을 참아 견디며 눈보라를 헤치며 열심히 살았으나 이게 뭐요? 그리고 당신과 당신의 주변인들이 책임이 없다는 말만 되풀이하는 꼬라지를 보고 박그네가 떠오릅디다. 박그네의 명언을 아시오? 세월호 시절 “구명조끼를 입었는데 구하기가 그렇게 힘듭니까?” 하던 명언이 확~ 떠오릅디다. 내심 이번엔 당신이 뱉어낼 명언을 기다리는 중이요. 당신은 살벌하게 계약을 어겼고 아무런 문자나 통보 없이 계약을 해지했소. 이에 따라 나도 당신과의 계약을 해지하는 바요. 4. 당신이 취임하고 벌어들인 세금을 뱉어내길 바라오. 보니 용산으로 이사 간다고 포장이사 비용에 많은 돈을 뿌리고, 일본하고 노느라 유흥비도 전투기나 군함에 많이 사용한 것으로 알고 있소. (기름이 남아도냐?) 뿐만 아니라 국민의 동의 없이 어째 일장기에 대한민국 국군이 경례하도록 명령을 한단 말이오. 미국까지 가서 욕질은 왜 그리 많이도 했소? 아무튼 당신은 교양이 철철 흐르는 나의 지도자로 탈락이요. 다른 분들이야 당신을 존경하겠지만 나는 널 재수 없어 하고 있소. 세금을 돌려주시고 월급을 반납하시오. 집도 대궐 같아 먹고 사는 데는 지장이 없을 줄 아오. 하인들에겐 세경 밀리지 말고 꼬박꼬박 주길 바라오. 마누라 간수 좀 잘하시오. 뭐가 그리 시끄럽소? 넙데데한 얼굴 TV에 들이밀지 말고 되도록 라디오를 이용하길 권고하는 바이오. 뉴스 보다가 밥이고 국이고 모조리 토했소. 지금 겔포스로 살고 있소. 5. 더 이상 당신을 지켜보기가 두렵소. 또 어디 가서 사고를 치고 올지도 불안하고 선조들께서 목숨을 걸고 이루어낸 탄탄한 대한민국인데 너 때매 쪽팔려 잠도 안 오오. 그리고 가끔 코털이 삐져나와 있던데 그런 거 누가 얘기 안 해줍디까? 거울 좀 보고 외출하길 바라오. 70년대 통바지 좀 그만입고. 마누라도 비싼거 잘 하고 다니더만 넌 벌어다 어디 쓰세요? 다른 나라도 널 보지 않소. 6. 이런 고지서를 많이 받은 걸로 알지만 날 우습게 보지 마시오. 너를 SNS에서 매장할 수 있소. 요즘 많이들 감옥에 수감하더만 나도 한번 처넣어보시길 바라는 바요. 너는 나한테 찍히면 일생이 괴로움인 걸 새삼 체험할 수 있고 신기한 고통을 즐길 수 있소. 상기 내용을 잘 숙지하고 이행에 차질이 없도록 하시길 바라오. 보니 밑에 애들이 머리가 어리바리하니 네가 직접 지시하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내가 반말과 존댓말을 섞어 쓰는 게 기분이 나쁘면 너도 그렇게 하세요. 점심에 파스타 약속이 있는데 넘어갈지 모르겠소. 총총 이만 줄인다 XX. 추신 : 이참에 이태원으로 이사를 하는 건 어떤지 검토하시오. 윤태원으로의 개명도 추천하는 바이오. 박그네도 박세월로 고친다는 소문이 자자하오. 그리고 오늘 이후 과거시험에 응시하지 않았으면 하오. 맞춤법 걸고 넘어지지마 일부러 그런겨. 심심하면 일베에서 잘 노시길 바라는 바이오. 너가 믿는 도사한테 물어봤는데 거기가 당신 적성에 맞는 직장이랍디다. (도사이름이 뭐더라? 너 미국갈 때 따라간 애 있잖소.) 참 조 : 행정안전부 장관, 경찰청장, 조선일보, 너를 따르는 검사들, 기타 너 주변 떨거지들 발 송 일 : 2022.11.02.
風文  Oct 18 2022
성당에 가다 오랜 시간 병원 안에서만 지내고 바깥을 구경하지 못했다. 가족도 없어 문병도 없는 정말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냈다. 같은 병실을 쓰는 사람들과 친해져도 봤지만 먼저 퇴원해버리니 더 이상 병실 안에서도 사람 사귀는 일이 귀찮아졌다. 그러다 보니 마치 죄수가 풀려날 만을 기다리듯 퇴원할 날만 기다리며 퇴원 후, 하고 싶은 일을 계획하게 됐는데 그 첫 번째가 성당을 내 발로 걸어가는 일이었다. 용기를 내봤지만, 몸이 싫다는데 어쩌나. 마트에서 집까지 배달도 해주니 앉아서 장보기 일쑤였고 귀찮아 휠체어를 벗어나지 않으려는 게으름이 붙었다. 그러다 자원봉사 제안이 들어왔다. 나도 누군가를 도울 수 있지 않을까? 마냥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는 건 미안타. 키가 188cm에 몸무게가 90kg나 나가니 돕는 사람도 힘들 것임에 틀림이 없었다. 그래도 해군 중사 출신인데 훈련받던 정신력이면 가능하지 않겠나? 생각했다. 책들을 조금 접고 걷기 시작해 목발에서 지팡이로 지팡이에서 두 발로 발전했다. 편의점까지 걸어가서 아이스크림 사는 일에 성공하자, 이 중생은 기고만장해져 드넓은 집 앞 공원에서 산책을 시작했고, 지금은 조금 거리가 되는 성당까지 오고 갈 수 있다. 아싸~! 얼마 만에 가보는 성당인가! 마치 42.195km를 뛰고 온 마라톤 선수처럼 헉헉대면서도 감동했다. 일반인이야 이런 것쯤이야 하겠지만 나로서는 거대한 도전이었다. 아파트 입구 편의점까지만 갔어도 그렇게 기분이 좋았는데, 성당까지 오게 되니 마치 백두산 정상에 오른 듯한 기분이었다. 구역장과 다른 분들도 내가 죽은 줄 알고 있었다고 못 찾아가 미안타고들 한다. 하기야 이게 몇 년 만이던가. 나의 무호흡을 겪었던 장애인 활동가도 불안불안 총총 따라왔지만 난 도움받지 않고 가고 싶었다. 혼자 힘으로 오롯이 가고 싶었다. 성전에 앉아 기도하며 고해성사를 마치고 미사까지 드리고 나오니 몸이 더 가벼워져 뛸 것만 같았고 세상이 달리 보였다. 늘 보던 하늘도, 둘레길보다 멋진 성당 가는 숲길도 예뻤다. 하늘에 있는 아내도 얼마나 기쁘겠나. 하필 주말이 성당 생일인 ‘본당의 날’이라 주말엔 같이 어울려 마당에서 식사도 하고 장기자랑도 하고 즐겁게 놀며 추억 속의 나를 떠올려보기도 했다. 추수가 끝나 논들은 대머리가 되어있고 밭들엔 곧 거두어들일 배추들이 보였다. 추운데도 아직 길가엔 내가 좋아하는 꽃들이 살랑거렸다. 나무들 사이사이 새들이 노래하는 가로수길을 지나 집에 오니 편안 했다. 커피를 내리며 음악을 켜고 앉으니 알 수 없는 미소가 번졌다. 이젠 책들과 노는 것보다는 밖으로 좀 나가보려 한다. 걷고 사색하며 무한히 아름다운 단어들과 문장을 떠올리며 살자. 좋아하는 일을 하며 새들과 대화하며 나는 행복한가를 묻고 살자. 시간표를 집어 던지고 배고프면 먹고 졸리면 자자. 자연스러운 일들을 거부하지 말고 자연스럽게 살자. 품었던 것도 풀어 헤쳐 짐을 덜어 보고 새로움이 어색해도 웃자. 그렇게 성자처럼 다짐해본다. 2022.10.18. 15:19 風文
風文  Sep 15 2022
그건 그렇고 48호 : 프린터를 사다 이런 이야기 있다. 어느 선비가 문필가로 유명하신 분을 찾아가 어찌하면 그렇게 명문장을 쓸 수 있냐고 물으니 이 양반이 “나는 붓을 들면 한 번에 글을 완성하지. 글이 끝나면 그제야 붓을 놓지.” 하고 너스레를 떨었다. 그런데 뒷간을 다녀온다고 자리를 비운 사이 이 양반 방석을 보니, 밑에 이리저리 줄을 긋고 수정한 탈고 뭉치가 있는 게 아닌가. 자신이 천재라고 자랑해놨지만, 사실은 수도 없는 탈고의 과정이 있었다는 이야기다. 퇴고는 작품이 완성되는 마지막 단계가 아니라 시작 단계라고 봐야 할 것이다. 초고는 늘 실수투성이고 읽어내리기에도 쑥스럽다. 나 같은 경우는 한 달쯤 후에 퇴고하는데 오글거려 환장할 때도 많다. 으~~~ 그건 그렇고 글은 일기를 빼고는 모두 남에게 보여주기 위해 쓰는 것으로 생각한다. 따라서 독자를 고려해 내 이야기를 하는 것이다. 인류는 수천 년을 글을 써왔지만 지금도 글은 멈추지 않고 써댄다. 모든 예술은 진행 중이다, 그 오랜 세월이면 웬만한 건 다 썼을 듯싶은데 사람들은 아직도 글쓰기를 멈추지 않으니 대단하지 않나? 한 인간을 우주로 표현하기도 한다. 우주를 써야 하는데 끝이 어디에 있겠나. 나 하나의 삶만 쓰나? 모두의 삶이 글로 흘러나온다. 모두의 삶의 과정이 다르고 생각이 다른데 오죽 방대하겠나. 당신의 삶이 글로 표현되면 우린 마주 보지 않아도 공감 능력이 발동한다. ‘이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 어? 나와 비슷하네!’ 하면서 의문도 갖는다. 웃기도 하지만 울기도 하는 묘한 문자들의 배합은 신비롭다. 그건 그렇고 프린터를 샀다. '복합기' 라고 하나? 어쨌든 살림에 타격이 크다. 손가락만 빨고 살지도 모르겠다. 되도록 안 사려고 했는데 영 궁금해서 참을 수가 없었다. 지금은 디지털시대라 화면으로 읽기도 하지만 뭔가 부족한 생각에 만족스럽진 않다. 그래도 책장을 넘기는 재미가 있어야 하고, 미소가 번지는 책 냄새가 좋다. 이사 가면 단골 도서관부터 찾아 찜한다. 좋은 책이 낚시질에 걸리는 날에는 기분이 좋다. 신간이나 인기 도서도 좋지만, 무한히 쌓인 책들을 다 내 것이라 상상하면 커피가 무지 달다. 쓰고 나면 종이로 꼭 확인하는 버릇이 있는데, 화면에서 못 보던 잘못 쓴 부분이 바로 눈에 들어온다. 예술인은 이런 생각을 한다. ‘과연 내 작품을 보려고 사람들이 주머니에서 돈을 꺼낼까?’ 이런 생각을 조금이나마 덜어보려 인쇄해서 독자로 돌아가 읽어본다. 그때가 탈고의 시작이다. 그래서 인터넷으로 프린터를 샀는데 손에 쥐고 있는 마우스가 덜덜 떨렸다. 죽기 아니면 까무러치기! 에잇! 그건 그렇고 그러면 프린터를 샀다는 건 뭘 쓰겠다는 것인데 뭘 쓰나? 몇 년 전 사회생활을 할 때는 그래도 내가 쓴 글이 월간지나 공공단체가 발행하는 책자에 한두 편 실리는 걸 봤는데 지금이야 뭐 개털이니 막막하기도 하다. 얼마 전 지인의 딸이 책을 냈다고 한 권 가져왔는데 학교생활을 정리한 수기와 여행 소감들이 실려있다. 요즘은 ‘1인 출판시대’라는 말이 와닿았다. 정말 좋은 세상이다. 블로그에 몇 자 적어도 책으로 내준다는 곳도 있고 여럿이 한편씩 원고를 내어 한 권으로 출판물이 나오기도 한다. 공인 서적은 아니지만, 종이 위에 내 작품이 실려 출판되는 뿌듯함은 소주를 부른다. 예전에는 글이 잘 나와도 소주, 못 나와도 소주였던 기억이 새록새록 하다. 몇 푼 안 되는 원고료도 소주로 탕진하고 나서 반지하 소굴로 터덕터덕 걸어오다, 골목 어귀에서 쳐다보는 나처럼 지친 가로등이 다시 펜을 잡게 했던 낭만의 시절. 지금도 조금은 보이지만 철학에 빠져 헤어 나오지 못하던 반항심 많은 녀석이 나였다. 100만 원에 월세 10만 원에 살던 몇 평 되지도 않는 반지하 단칸방 곰팡이가 왜 그리도 포근했는지. 그건 그렇고 예전에 내 홈페이지 배너로 쓰려고 명언(?)을 하나 남겼는데 ‘책이 사람을 만들지만, 사람이 책을 쓴다.’라는 말을 했던 기억이 난다. 나의 책사랑은 유별나서 어머니가 친구들에게 빌려온 책을 가져다 주시며 쥐어박던 생각이 난다. 나가서 좀 놀라고 잔소리에 잔소리를 하셨지만, 어르고 달래도 학교 도서관은 내 것이었다. 왜 그랬을까? 감성이 풍부해서? 상상력이 뛰어나서? 며칠 전 안산에 있는 대동서적이라는 서점에서 무려 17만 원이 넘는 책을 샀다. 상품권이 생겨 과소비 한 번 했다. 물론 내 돈도 조금 들어갔지만…. 예전이라면 많았을 텐데 몇 권 안 된다. 그만큼 책값이 오른 것이다. 요즘 웹툰이 인기라고 해서 뭔 내용인지 만화도 몇 권 샀더니 집안 거덜 나게 생겼다. 그건 그렇고 프린터로 처음 인쇄할 글을 쓰고 있다. 젊은 놈이 무슨 할 말이 그렇게 많은가 싶지만, 일기나 잡글이 아니면 나름 신중하게 생각하는 편이다. 떠오를 때 항상 메모하기에 가방엔 항상 펜과 종이가 있다. 외출할 땐 휴대전화 다음에 챙기는 것이 펜이다. 그것들이 모이면 포화상태가 되고 정리할 때가 온다. 버릴 것은 버리고 가져다 쓸 놈은 쓴다. 문장 건지기다. 괜찮은 글도 있지만 대부분 잡글이고 그림도 있다. 잘 정리하다 보면 하나의 글이 이뤄지는데 인쇄하면 탈고가 시작되는 것이다. 그런 과정의 반복이 나의 일상이고 습관이다, 날짜나 양을 정해 놓고 쓰면 안 써지는 경우가 많지만 중간중간 쓰면 연결되는 경우가 많다. 그건 그쯤 한가지 생각에 꽂혀있다는 뜻이다. 이런 문장 건지기는 시간이 아주 빠르게 흐른다. 그건 그렇고 프린터의 기능을 봤는데 전선도 필요 없는 WI-FI 가 되고 핸드폰으로 그 자리에서 인쇄된다. 이젠 사진을 찍자마자 인쇄가 되는 시대다. 기가 찬다. 알아서 양면인쇄도 하고 신분증만 넣어도 앞뒤 복사를 스스로 한다. 팩스만 안 되고 다 된다. 예전 도트프린터로 어머니 교재를 만들 땐 찍찍거리며 한참을 인쇄했는데 지금은 복사기 수준이다. 기술은 빠르게 변하고 인간은 더더욱 편한 길로 걸어간다. 인쇄도 없어진다는데 종이책이 보물 될 날이 오지 않을까? 손편지가 뭉클한 것과 달리 기계가 찍어내는 활자는 빠르지만 건조하다. 그만큼 초고를 보기 위해 빨리 쓰게 되고 탈고과정이 길지 않게 됐다. 아는 분께 선물을 하나 준비했는데 말 나온 김에 손편지 하나 넣어 드려야겠다, 뉴스와 달리 내가 선물을 준비할 만큼 세상엔 좋은 사람들 천지다. 이런 분들께는 인쇄하지 말고 손으로 편지를 써보자. 쓰는 사람이 더 행복하다. 2022.0915 10:09 風文
風文  Sep 12 2022
그건 그렇고 47호 : 과잉 진료 아침에 병원에서 준비하고 있는데 간호사가 와서 대변은 잘 봤냐고, 언제 봤냐고 묻는다. 매번 그렇지만 참다 참다 한마디 했다. “아침에 그게 첫인사라면 하지 마세요. 이상이 있으면 제가 말을 하겠습니다.” 이상이 있어도 대학병원 응급실 가란 이야기 외엔 대처 방법도 없는 병원의 태도와 진료 정책에 나는 불만이다. 모든 것은 책임회피에서 시작하고 끝난다. 자신들의 병원에서 불상사가 일어나는 일은 그 어떤 의사도 바라지 않는다. 기계적으로 대하는 의미 없는 진료는 내겐 필요가 없다. 차라리 “아침 식사는 하고 오셨어요?”라고 묻는 게 더 좋지 않을까? 새벽에 얼굴을 보자마자 화장실 이야기는 무리가 아닌가 싶다. 뾰족한 수도 없는 데서 반복적인 의무적 질문은 상당히 거슬린다. 한 달에 반 번 찍는 X-ray도 찍지 말라 했다. 찍어봐야 뭐가 좋아지나. 방사능에 노출될 뿐 아무런 효과도 없을뿐더러 대학병원에서 정기적으로 찍잖는가. 대학병원도 마찬가지다. 가끔 응급실에 실려 가면 피검사부터 CT까지 모조리 검사한다. 당연히 답은 안 나온다. 하지 말아야 할 진료를 다 한다. 오죽하면 청소하는 아주머니가 응급실이 병원 먹여 살린다고 하겠는가. 인수치를 낮추는 약이라 먹었던 약이 나의 치아를 세 개나 부러뜨렸다. 지금은 입에도 안 대지만 여전히 처방을 내린다. 그러면 나는 그 알약을 빼고 먹는다. 왜? 매우 정상적인 치수를 유지 하고 있으니까. 그 알약 덕에 다음 주에 하지 말아야 할 임플란트 예약이 걸려있다. 환자가 간경화라면 모조리 같은 처방을 내린다. 특정 병명이 나오면 처방의 기준서가 있어 그대로 처방하고 환자의 개개별 상황을 검사하지 않는다. “응 그래? 너 간경화지? 이거 먹어!”하는 식이다. 단순히 감기만 걸려도 사람 따라 다른데 어찌 그리 통일되어있는지 답답하다. 코로나에 걸려도 멀쩡한 사람이 있지만 죽는 사람도 존재한다. 왜 개별진료는 불가한가. 그건 그렇고 외래를 갔다가 교수가 말하길 병을 위한 약은 2~3% 정도의 효과만 주는 것이라 했다. 나머지는 먹는 음식과 환경이 치유한다고 했다. 나는 그 이야기를 듣고 많은 정보를 수집했고 식단에 대해 조심하고 있다. 확실히 먹는 것이 가장 중요한 처방이고 회복을 당기려면 운동이 좋다. 땀을 흘리지 않는 운동이 가장 좋다. 약에 의존하면 할수록 몸은 쳐지고 무능력상태로 진입하게 된다. 근육이 풀리고 힘이 없으며 쉽게 피곤해진다. 그런데 이것을 이겨내기 위해 또 처방받으러 가는 것이 우리나라 환자들의 암울한 현실이다. 약품 하나하나의 성분은 본인이 알아야 하고 주는 대로 받아먹는 것은 위험하다. 대부분 병원은 약국과 이해관계가 있고 매출에 신경 쓸 수밖에 없다. 내가 다니는 치과나 대학병원 신장내과는 처방을 되도록 피한다. 말기인데도 신장내과는 한 번도 내게 처방전을 발행한 적이 없다. 오로지 음식 처방이다. 이후의 수치들은 정상인으로 돌아가기 시작했고 치아 역시 튼튼해졌다. 사무실에 어떤 이가 “그래도 의사가 생각이 있으니 약을 주는 게 아닌가요?” 하는데 절대 그렇지 않다. 대꾸도 싫다. 본인 생각이 그렇다면 주는 대로 받아먹으면 될 일이다. 반드시 하나하나 약품의 성격과 효능을 알아보고 섭취할 일이다. 그건 그렇고 우리는 필요 없는 약품이나 건강 기능 개선 약품 등에 노출되어 있다. 100세 넘는 노인들이 TV에서 광고하는 오메가3 먹고 장수하던가? 먹어야만 하도록 광고하고 방송하며 먹지 않으면 마치 심각한 질병을 유발한다는 형식의 아침 방송이 줄을 잇고 있다. 단순하고 자연스러운 것에 등을 지고 약품을 종류별로 먹고 있는 우리를 바라보면 답답하다. 잘 먹고 운동하면 그만인데, 하지 말아야 할 것들을 하면서 문제가 생기기 시작하는 것이다. 스스로 환자를 만들어 내고 있고 공장에서 찍어나오는 약품에 취해서 산다. 약을 먹지 말라는 것이 아니라 알고 먹으란 이야기다. 간이면 “간류”, 위장이면 “위장질환류”로 단순 구분해 발행하는 처방전 행태는 사라져야 한다. 개별 특성이 모두 다르며 부작용 역시 다르다. 가장 똑똑해야 하는 것은 환자고 그만큼 몸에 실수했으면 상응하는 공부를 해야 할 일이다. 그건 그렇고 지인의 도움을 받아 “화성의료복지시회적협동조합”이라는 긴 이름의 사무실에 다니고 있다. 병원에 가지 않는 시간은 대부분 이곳에서 일한다. 홈페이지도 제작해주고 페이스북이나 사무실 네트워크 등 컴퓨터 관련 일을 도맡아 하고 있다. 물론 자원봉사다. 이 조합은 병원도 운영하지만 많은 일을 하고 있다. 그중 하나가 간병인 활동이다. 저소득층과 독거노인을 위한 방문진료나 가사간병을 시청 등과 협의로 활동하고 있다. 다니다 보면 대부분 노인은 수십 종의 알약을 보관하고 먹고 있다. 마치 낫기라도 하듯이. 가슴이 아프다. 그 나이에 약이 흡수되어 효능을 낼 수도 없고 극복은 불가하다. 생로병사 아니던가. 그러나 하느님 믿듯이 약을 신봉하고 기를 쓰고 먹는다. 당뇨나 혈압 같은 불가피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필요 없는 약이다. 내가 퇴원할 때 혈압이 90을 넘기기 힘들었다. 서재 옆에 붙어있는 화장실도 비틀거리거나 네발로 기어 다녔다. 그러나 지금은 120에서 140을 오간다. 약을 먹고 나았다고 보는가? 그건 그렇고 오래전부터 방송과 언론을 매우 싫어했는데 지금도 마찬가지로 TV를 보지 않는다. 인터넷으로 태풍이나 날씨를 보도하는 뉴스는 가끔 본다. 나는 아직 코로나 예방 접종을 하지 않았다. 그러다 올 초에 코로나에 걸렸는데 잘 먹고 편히 지내다 나았다. 약도 먹지 않았고 그저 잘 먹었다. 그런데 방송을 보면 당장이라도 목숨을 잃는 것처럼 공포 분위기를 조성하고 사회적으로 미접종자에 대해 차별하는 태도를 보면 성질이 난다. 가뜩이나 성질 더러운 놈이 오죽하겠나. 사망자에 대해 노인이라는 둥 기저질환자라는 둥 떠들어 대지만 아니올시다다. 개별진료를 하지 않고 일괄적으로 같은 약품을 주입 하는 데서 오는 불상사다. 허무하지 않나? 양파만 먹어도 두드러기가 나는 사람이 있잖은가. 왜 개개인의 특성을 고려하지 않는가. 그것은 일본인이 심은 단체주의 때문이다. 너도 맞았으니 나도 맞아야 별난 놈 취급받지 않으니까. 특정 업체가 치료제를 개발하는 데 들어가는 비용은 막대하다. 그러니 보상은 해줘야 하지 않을까? 기업이라는 것이 이윤 없이 돈을 쏟아부어 선하고 순수한 마음으로 약을 개발하나? 언론은 그대로 받아적고 주사 맞으라고 홍보에 열을 올린다. TV에 나오는 사망자 통계 수치따위를 신봉하는가? 짜고 치는 고스톱임을 이미 아는 사람은 안다. 그건 그렇고 우리의 주변을 둘러보자. 아니 방안을 둘러보자. 먹고 있는 약에서 기능성 약품까지 한번 세어보자. 약이 많아 마음 놓이나? 이젠 약을 버리자. 인체는 자신의 치유 능력이 있고 약은 미미한 도우미일 뿐이다. 몸은 우주이며 이미 경험 풍부한 선조들이 말한 바른 삶에 역행할 때 틀어진다. 약 먹다 헤롱 거리고 그도 못 하면 강제로 주삿바늘 꽂고 있다가 하늘로 가지 말자. 행복을 위해 준비하는 시간은 오래 걸리지만 틈새를 노리는 약품에 의존하지 않는 건강한 먹거리와 숨쉬기를 즐기기를 바란다. 2022.09.12. 22:49 風文
風文  Sep 12 2022
그건 그렇고 46호 : 병실에서 끼적임 여섯 번째다. 여섯 번째 쓰러졌다. 원인도 모른다. 간경화나 투석 문제로 혈액과 CT 검사를 해도 원인이 나오질 않는다. 한가지 짚이는 데가 있으니 바로 오징어다. 젓갈이기보다는 무와 섞여 있는 생채다. 익히지 않은 게 문제였다. 무생채와 섞여 구분이 안 갔고 게다가 참기름을 넣으니 더욱 모를 수밖에…. 의사가 그리도 날것을 먹지 말라고 했는데 너무나 먹고 싶었나 보다. 채소까지 익혀 먹으라 했는데 아예 회를 먹은 셈이니 쓰러지는 건 당연지사. 이참에 외래를 가서 심정지를 물어봤는데 의사의 답변은 간단했다. 그냥 심장이 멈추는 현상이라 한다. 그런 소리는 초딩도 한다. 대학병원도 답답할 것이다. 또 119에 실려 올까 봐, 그러다 어느 순간 갈까 봐 우려되겠지. 이제 응급실 의사가 아는 척을 한다. 나도 낯이 익다. “이분 또 왔네!”하는 식이다. 툭하면 쓰러져 오니 언제 세상을 뜰지 누구도 모르는 상황이다. 사회복지사가 밤새도록 무슨 고생인가. 하지만 묘하게 불안함은 없다. 투석하는 병원에선 창피하니까 오징어 먹고 실려 간 말은 하지 않았다. 그게 말이 되나? 오징어가? 먹고 싶어 먹었다. 냉장고를 열고 손에 그냥 잡히는 게 그것이었다. 무생채와 똑같은데다 씹다 보니 물컹했지만, 맛은 있었다. 아마 어려서부터 다리 많은 애들과 친하지 않았나 싶다. 돈만 생기면 엄마한테 꼴뚜기젓을 사달라 조르던 때가 생생하다. 밥상엔 늘 꼴뚜기젓이 올라왔고 그 좋다던 산해진미는 쳐다도 안 봤다. 그건 그렇고 응급실 광경은 언제나 흥미롭다. 욕설이 난무하기도 하고, 엉엉 우는 사람도 있고 다양하다. 나이가 있으신 분들은 좀 젊잖은 편이지만 젊은이들은 무엇이 그리 급한지 안절부절 의사만 찾아다닌다. 그렇지. 나도 처음엔 그랬지. 시간은 사람을 다독일 줄 안다. 시간은 묘약이며 인내심을 길러준다. 하지만 응급실이라는 건 아주 가끔 또는 인생에 한 번 정도 오가는 곳이지 나처럼 포장마차 드나들 듯 오가면 곤란하지 않나? 그래도 요양병원에서 본 것처럼 조용히 장례식장으로 가는 환자는 아직 못 봤다. 하루가 지나고 의사는 귀가해도 좋다는 반가운 소리를 한다. 백날 검사해봐야 모르겠고 교도소도 아니고 응급실에 계속 방치할 필요 없지 않은가. 집에 와 누우니 늘어진다. 모든 걸 놓고 누워 천장만 바라본다. 빙글빙글 돌던 천장이 조용하다. 그건 그렇고 묘한 게 하나 있는데 노래 한 곡이 질릴 때면 새로운 노래가 나와 내 가슴을 울리거나 흥분의 도가니로 몰아넣는다. 지겨울 때가 없다. 신기하다. 새롭게 흥얼거릴 노래는 어디선가 훅 튀어나온다. 지금 투석 중이지만 이어폰을 끼고 이 글을 쓰고 앉았다. 잠을 자는 시간, 특히 투석한다고 억지로 자는 저 순간이 내가 죽어있는 시체처럼 느껴진다. 그래서 난 올빼미 생활을 접고 아침에 심하게 일찍 일어난다. 그리곤 잠들지 않는다. 아깝기 때문이다. 투석실에 99% 이상은 시작과 동시에 잠을 청하며 눕는다. 난 싫다. 잠들면 다시 못 돌아올 것 같아서? 아니다 의외로 할 일이 많아 되도록 깨어있으려 애를 쓴다. 다시 한번 죽음에 관하여 심도 있게 생각해 본다. 가까워지는 죽음의 경계선. 특히나 툭하면 쓰러지는 요즘 많은 것들이 다르게 느껴진다. 의미 없이 지나쳐버리던 것들과의 관계가 더욱 돈독해졌다나 할까. 어떻게 죽을 것인가. 어떻게 잘 죽을 것인가를 생각하게 만든다. 그건 그렇고 집에 귀신이 사는 것 같다. 몸이 허하면 귀신을 느낀다고 했나? 아무도 없는데 새벽에 소리가 난다든지 현관에 불 들어오는 것도 고쳤는데 계속 제 혼자 깜박인다. 그렇다고 귀신과 연관시킨다는 건 우습지 않나? 어떤 사람은 귀신을 만나면 고스톱도 친다는데 난 상상만 해도 잠이 안 온다. 언젠가 누군가가 나를 쳐다보는 느낌이 있어 베란다 문을 열었는데 문득 뇌리를 스치며 기가 찬 건 내가 6층에 산다는 것이다. 공중에 뜨지 않는 이상 가능한가? 예전에 학교 다닐 때 귀신 이야기 많이 했던 기억이 있다. 극장에서 쪽 찐 머리의 한복을 입고 영화를 보는 여자에게 몇 시냐고 물어보니 뒤를 사~악 돌아다 보는데 앞에도 쪽 찐 머리에 비녀를 꽂고 있다든지 등등. 아내와 어머니, 누나와 형이 하늘에 오르지 못하고 내 주변에 있나? 하는 생각도 들고 여하간 부스럭 소리만 나면 예민해진다. 맞는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고 믿거나 말거나. 그건 그렇고 월수금 오전에 4시간씩 투석한다. 정말 감옥 같다. 명절도 휴일도 없는 월수금의 노예다. 내가 이 지경까지 오리라 상상도 못 했다. 건강했고 거구에 근육을 단련하던 사람이었는데 하루아침에 100세 노인네가 됐다. 아내가 하늘로 가고 나는 희망을 잃었으며 술에 밥까지 말아 먹는 지경까지 갔다. 알코올중독센터에서도 오고 시청, 읍사무소, 복지관 등 줄줄이 집에 다녀갔다. 처음엔 문도 열어주지 않았지만 한겨울에 문밖에서 오랜 시간 기다리는 걸 보곤 마음을 열었다. 그들 덕에 대학병원에 입원하게 됐고 1년간의 결과는 회복 불가라는 판정이었다. 어차피 어느 날 갑자기 갈 거면 준비를 하는 편이 평화롭다. 대학병원에서도 복지사가 근무하는데 그녀를 통해 연명치료거부서를 쓰고 담담히 모든 것을 받아들이고 살고 있다. 그 뒤로 건강도 좋아짐을 느끼니 좋지 아니한가. 수천 년간 인간은 선택을 해왔고 그 인류 중 나는 술을 선택했다. 지금의 모습은 100% 내 선택이 만들어낸 내 모습이다. 무언가를 선택할 때 주변에 아무도 없다면, 쌓아 온 내공이 약하다면 대부분 나쁜 선택을 한다. 선택에 대한 후회는 의미 없다. 그건 그렇고 몇 년 전 어머니가 떠나고, 누나가 하늘로 가고, 아내도 가고, 올 초엔 소식 끊겼던 하나 남은 형마저 갔고 난 자식도 두질 않았다. 자식이 있다면 이지경이 됐겠는가. 몇 년간 나는 모든 지인을 끊었고 그로 인해 마음 나눌 사람이 내겐 없다. 그나마 간병인과 복지사들이 보호자를 자처하고 병원에 데려간다. 하기야 그들이 없었으면 내가 이리 끼적일 일도 없었겠지. 독거노인들의 고독사 원인이 외로움이라는데 난 별로 외롭지 않다. 그럭저럭 잘살고 있고 그렇게 믿고 있다. “성질이 더럽다.”라고 느끼시는 분들은 아파서 그러려니 하시길…. 그건 그렇고 휠체어에서 일어나 목발을 사고 그다음 지팡이를 선물 받았다. 지금은 지팡이를 놓고 편의점을 홀로 다녀올 수도 있다. 많이 넘어졌고 지금 나의 대퇴부에 나사들이 뼈를 이어 고정시키고 있다. 멀리는 못 가도 성당까지만 가도 성공 아닌가 한다. 신부님도 수녀님도 보고 싶고 대화를 나누고 싶다. 언제쯤 가능할지 모르지만, 목표가 생겼으니 좋다. 얼마나 즐거운가. 성당까지 가는 길은 지금은 정글처럼 울창한 둘레길로 변해있다. 반드시 걸어보리라 희망을 품는다. 그리고 자동차도 되찾고 싶다. 모든 일에 초점은 행복에 맞추어져 있다. 그건 그렇고 추석이 다가온다고 복지사들이 먹거리를 가져와 줬다. 혼자 사는 사람이 얼마나 먹겠냐마는 어쨌든 추석 기분은 난다. 다들 선물 세트를 준비하는 듯한데 나도 저 때가 있었지, 하며 픽 웃고 넘긴다. 기분을 전할 사람도 만날 친구도 없다. 요즘 마음의 문을 열고 친구를 받아들이려 노력한다. 휴일 없이 반복되는 일상은 나를 지치게 할 줄 알았지만, 홈페이지도 관리하기 시작했고 독서도 하며 먹거리도 찾아다니며 즐겁게 삶이 변해가고 있다. 이럴 땐 참으로 주변인들에게 또 하늘에 고맙게 생각하고 살아야 하는데, 나만 편하면 됐지 하고 시나브로 지난다. 신앙을 떠난 지 꽤 됐지만 생각난 김에 모든 이에게 진심으로 감사를 드린다. 2022.09.12. 10:15 風文 윤영환.
風文  Aug 21 2022
그건 그렇고 45호 : 치과 타이레놀에 의지하다가 하도 이가 아파서 얼마 전 이를 뽑으러 치과에 갔다. 난생 처음 가보는 치과라 얼마나 공포에 질렸겠는가. 의사가 독 잔을 든 계모로 보이고 간호사들이 마녀로 보였다. 의료용 의자에 앉아 치과 도구들을 보는데 모조리 고문 도구로 보이고 마취 주사를 놓는다는데 독극물 주사로 보이는 게 아닌가. '이대로 격동의 내 삶은 끝나는 것인가. 아~ 아름다웠던 내 인생이여. 하느님, 부처님 제가 잘못했습니다요. 착하게 살게요.’하고 기도하는데 “가도 좋습니다. 물고 있는 솜은 5분 뒤에 버리세요.”하는 게 아닌가. 그래서 내가 “뭘. 하기는 했수?” “진료 끝났습니다.” 기가 막히지 않나? 뭘 한 건지 아프지도 않더란 말이다. 평소에 하지도 않던 기도를 지레 겁먹고 그땐 왜 그리 열심히 했는지. 뭘 만지작만지작하던데 기가 막히게 잘 뽑더란 말이요. 허허. 그건 그렇고, 우린 때때로 벌어지지 않는 일 가지고 고민부터 시작한다. 실제 벌어질지 예상은 하지만 아직 벌어진 건 아니잖나? 왜 지레 걱정을 할인까지 받아 가며 사서 하는지 답답하다. 저런 걱정의 결론은 대부분 나쁜 결론에 다가서기 마련이다. 좋게 결론 짓는 경우는 드물다. 엄마한테 가져가면 줘 터질까 봐 성적표 들고 벌벌 떠는 인간부터 전쟁 난다고 라면을 어마어마하게 쟁여 놓는 사람도 있다. 유비무환이라는 좋은 말도 있지만 지나친 건 문제가 있다. 그건 그렇고, 인간은 어떤 한계점에 도달하면 멈추는 경우가 종종 있다. 더 해박해지고 나아질 생각을 하지 않고 현실에 만족하며 그저 그런 인간으로 살아가는 게 대부분이다. 멈추면 고정화되고 그 고정관념에 쌓여 모든 걸 결정한다. 살면서 외부로부터 받아들인 지식 따위를 지혜로 착각하고 결정한다. 특정한 사건이 발생하면 스스로 세운 기준에 빗대 나이를 무기 삼기도 하며 빠른 판단을 한다. 올바른 판단도 있지만 남들이 볼 때 세상은 급변하는데 나는 제자리인 경우를 보게 된다. 인생은 보험회사에 제출하는 결정된 서류가 꾸미지 않는다. 판단의 기준은 변해야 하고 특히, 나이가 들면 들수록 세계와 나의 관계에 있어서 유연할 필요가 있다. 그저 고정된 지식과 경험으로 바로바로 결정하면 할수록 더욱 굳어지어 가는 동상에 지나지 않는다. 그건 그렇고, 몇 년 전만 해도 외상이 됐었다. 술 한잔하고 손가락으로 신호를 보내면 장부에 주인장이 적어 놓는다. 그런데 요새는 돼지털인지 디지털인지 때문에 외상에 어려움이 있다. 고단해지는 삶이 이어지고 있다. 정나미 떨어진다. 돼지털@@@ 그건 그렇고, 얼마 전만 해도 사람들이 지하철이나 횡단보도, 버스정류장 등 길거리에서 스마트폰들 보느라 자라목을 뽐냈었는데, 책을 읽는 인구가 늘어난다는 뉴스가 나오자 유심히 봤더니 종이책이 다시 등장하기 시작했다. 좋은 현상이다. 구세대는 아닌 것 같은데 나도 화면보다는 종이책이 더 좋다. 냄새도 좋고 책장 넘기는 재미도 있고 돈이나 은행잎이 나오면 더 좋다. 나는 이사하면 제일 먼저 성당을 살피고, 술집을 하나 찍고, 도서관을 찾는다. 워낙 외출에 어려움도 있지만 한번 앉으면 잘 일어서질 않는다. 그래도 책을 빌리고 반납하려면 도서관까지 가야 하니 운동도 되고 좋다. 나선 김에 그간 못 갔던 곳도 두루 거쳐 집에 온다. 천상 범생이다. 그건 그렇고, 가끔 술 생각이 나는데 먹지는 못하고 남이 마시는 거 쳐다본다. 참 주접도 주접이지 뭘 보겠다고 남 술 마시는 걸 보고 앉았나. 어쨌든 식당보다는 술집에서 나오는 안주가 기가 막힌다. 예전에는 안주 따윈 거들떠보지도 않았는데 술은 못 먹고 분위기를 맞추다 보니 안주에 관심을 두고 신중하게 시킨다. 오늘 알탕에 꼬치 몇 가지를 먹었는데 참... 거... 기가 막히게 맛있더란 거다. 안주세계의 드넓은 인자함에 고개를 숙인다. 안주의 세계는 드넓고 아름답다. 아구 좋아라. 그건 그렇고, 책을 고른다고 모조리 다 재미있는 것도 아니고 노래를 모조리 듣는다고 다 재밌지는 않다. 가끔 얻어걸리는 책 한 권과 노래 하나가 요즘 나를 즐겁게 한다. 그 설레는 낚시질에 재미 들였다. 책도 논문이나 그거 비스름한 거 읽다가 고루해져 이젠 재미 위주로 책을 고르고 노래도 심각성이 태풍급 먹구름에서 밝은 노래로 바뀌어 가고 있다. 한 곡 얻어걸리면 일주일이고 한 달이고 그 노래만 듣는다. 많이 읽어 볼수록 많이 들어볼수록 얻어걸리는 횟수가 는다. 당연하지 않나? 천상 범생이다. 그건 그렇고, 지인이 며칠 전에 우리 동네로 이사를 왔는데 오늘 낮에 찾아가 봤다. 방 세 칸에 화장실이 두 개다. 대통령이 사냐고 물어보려다 참았다. PC를 하나 세팅해야 한다고 부탁이 들어왔다. 아마 이 동네에서는 최고의 PC가 되지 않을까 설렌다. 잘 설치해주고 미소 짓는 하루가 오기를 기다린다. 내가 세팅한 PC를 두드리는 모습을 보면 얼마나 좋을까. 괜히 기분이 좋다. 누구에겐가 작은 도움이라도 주는 나를 보며 자신을 스스로 토닥인다. 아주 미미한 도움은 아주 큰 기쁨이 되기도 한다. 기다린다고, 오지 않는다고 울지 말자. 내가 가자. 그건 그렇고, 요즘 하루가 일 초다. 노래도 흥얼거리며 아주 빠르게 지난다. 방금 일어나 하품 한 것 같은데 어느샌가 노을이 하늘을 수놓고 있다. 저 붉은 색은 하루를 잘 보냈다는 의미겠지. 하루하루 누군가에게 도움도 되고 도움도 받고 울고 웃고 서서히 정돈되면서 빠르게 지나는 요즘이다. 직업도 없는 놈이 뭐 그리 바쁜지. 시간이 아깝다는 생각에 살았는데 이젠 그렇지도 않다. 가면 가는 거고 오면 오는 거지. 발버둥 칠 시간에 웃고 살자. 그건 그렇고, 오늘은 꽃집에 들르는 날이 아닌데 나간 참에 다녀왔다. 내일 가려고 했는데 아무래도 새로 온 꽃이 있나 궁금해서, 그리고 부탁한 약재도 좀 구하러 다녀왔다. 이리저리 매만지며 꽃병에 꽃을 꽂았다. 어찌 저리 예쁜가. 한참을 바라본다. 꽃보다가 날 새것다. 2022.08.21. 02:02 風文
風文  Aug 14 2022
그건 그렇고 44호 : 오늘의 일기 의료용으로 쓰고 남은 육신을 태운 아내를 받고, 일주일 정도 후에 납골당 꾸미기가 끝났다. 작지만 성탄절이라 램프라도 달까? 좋아하는 장미로 화원처럼 만들까? 했으나 조잡스러운 것이 아내나 내 취향은 아니라 고민하던 차, 한 시간 만에 용인에 있는 참사랑 묘역 바로 앞에 도착했다. 장모님도 시신 기증을 해서 매년 임마누엘 꽃집은 늘 내 단골이었다. 그런데 입구 문을 열자마자 꽃집 아주머니가 미리 주문한 쇠로 된 사진을 내밀며 “다니면서 꾸미세요.” 한마디에 나는 그 아주머니에게 개인적으로 석사학위를 주며 고마움을 표했다. 석판에 붙일 수 있는 조화까지 주시면서 얇아진 내 알통을 토닥였다. 한 자리 수십 년이면 석박사 따위 부럽지도 않잖은가. 왜 첫날에 납골당을 어찌 꾸밀지 고민하는가? 꽃집 아주머니 같은 전문가를 찾아라! 많은 도움을 받는다. 아내의 납골당은 생각조차 상상조차 못 하고 살아왔다. 남들은 100년도 산다는데 50년이면 너무 짧지 않나? 운전을 시작하자 눈물이 턱으로 몰리며 못 떨어지겠다고 시위해댔지만 이젠 아내가 어디에 있는지 알고, 언제나 와서 볼 수 있으려니 하며 나를 토닥였다. 아내의 유언은 언니에게 전해졌는데 내 글방 하나 만들어 주는 것이 유언이었단다. 글방이 뭐라고…. 그건 그렇고…. 아내의 일로 막살이하다가 지금은 장애인으로 살고 있다. 월수금 투석이다. 잘 걷지도 못해 활동지원사가 오면 외출해 조금씩 걷고 있다. 휠체어를 벗어날 때 기뻤고 목발 대신 지팡이를 집어 들 때 기뻤다. 지금은 지팡이도 가끔 놓고 외출한다. 가봐야 편의점 정도지만 걷는 내내 들꽃과 나무들을 바라보고 좋아라한다. 이럴 땐 빨리 못 걷는 것이 이리도 좋을 줄이야. 세심히 풀들도 보고 하늘도 본다. 우리나라는 참으로 아름다운 나라! 예쁜 꽃들과 나무들을 보듬는 이 땅이 나는 좋다. 주말엔 항상 차를 얻어타고 꽃집에 간다. 일주일간 볼 꽃을 사러 가지만 가끔 화분을 살 때도 있다. 죽는다면 어쩔 수 없지만 되도록 살려 보려 애를 쓴다. 예쁘니까. 그건 그렇고…. 엘리베이터를 타면 다들 거울을 본다. 거울에 뭔 꿀 발라 놨나? 인사 좀 하고 살면 어디 덧나나? 난 아기나 강아지에게도 웃으며 인사한다. 인사는 원만한 대인 관계를 만드는 참 간단한 행위다. 처음 보면서 서먹하지도 않고, 농담도 하고 또 보면 반갑고…. 이 좋은 세상 즐겁게 살 일이다. 그건 그렇고…. 지금은 새벽 4시 26분이다. 왜 잠을 안 자고 이 지랄인가. 인간이 지랄 맞아서 그런가? 생각난 김에 지랄을 찾아봤는데 ‘마구 법석을 떨며 분별없이 하는 행동을 속되게 이르는 말.’이라고 나와 있다. 또 하나는 간질을 지랄이라고 속되게 이른다고도 쓰여있다. 나는 선린상고를 나왔는데 친구 중에 포지션이 투수인 아이가 있었다. 그런데 이 아이가 거품을 물고 쓰러져 양호실로 업어간 적이 있는데 병명이 간질이란다. 숨기고 있다가 약을 안 먹어 쓰러졌다고 했다. 얼마나 놀랐던지…. 그나저나 그 녀석은 잘 살고는 있는지 궁금하다. 그 후로 꽤 친해졌었는데. 이름이 명관이었던가? 그건 그렇고…. 지금 ‘That's What Friends Are For’라는 노래를 듣고 있다. 어릴 적부터 참으로 많이 듣던 노래다. 나오는 가수들도 좋고 기분이 편해지고 차분해진다. DJ 하던 시절이 생각나기도 하고 길거리 리어카에서 팔던 테이프들도 생각난다. ‘길거리 챠트’라고 했나? 길거리에서 자주 나오는 노래들이 요즘 잘 팔리는 노래 테이프라 했었고, 돈만 생기면 사서 모으는 것이 취미였다. 그때는 가수들의 사생활이나 약력들이 있는 잡지도 있었는데 요즘도 있나 모르겄다. 하기야 인터넷에서 검색하면 되는 세상이지. 뭣 하러 책을 사나. 좋은 세상이여~ 그건 그렇고…. 최근에 ‘불편한 편의점’이라는 책과 이해인 시집들을 샀다. 오래간만에 사니 기분이 째진다. 아직 읽지는 않았지만 기대하고 있다. 책을 사면 참 설레고 좋다. 어떤 명장면을 써놓았는지도 궁금하고 상상의 나래에 미소가 절로 지어진다. 이해인 시집은 있기는 하지만 오래되기도 했고 검색하다가 사게 되었는데 읽는 것이 미안할 정도로 맑고 좋은 시집이다. 노자가 울고 갈 지경이다. 그건 그렇고…. 어둡게 살면 어둡고 밝게 살면 밝은 것이 이치다. 짧은 삶, 어두울 필요 있겠는가. 웃고 살자. 행복하고 좋은 꿈 꾸게 해달라 기도했다. 해가 뜨려 한다. 자야것다. 세상이 일어날 때 자는 놈은 대체 뭔가. 2022.08.14. 04:58 風文
風文  Aug 11 2022
요즘 사는 이야기 얼마나 길렀는지 기억엔 없다. 허리띠까지 내려오는 긴 머리를 잘랐다. 거울을 보니 훈련소 들어가기 전 부대 앞 이발소에서 깎았던 짧은 머리모양이 생각났다. 노래 가사처럼 어색해진 짧은 머리를 앞뒤로 손을 대어 비벼보니 벌거벗은 느낌과 시원하다는 느낌이 함께 느껴졌다. 이발소 주인은 한 번에 자른 나의 긴 머리카락을 고무줄로 세 곳을 묶어 미용기구들이 있는 한편에 조심스레 내려놓았다. 저 긴 머리카락을 아마 어디에 팔아버릴 모양이다. 구겨진 천 원짜리 몇 장으로 값을 치르고 가방을 메고 이발소를 나섰다. 2월의 첫날은 그렇게 춥게 시작됐다. 가방 속 수북한 이력서들을 전단지 돌리듯 오늘 모조리 돌릴 것이다. 회사라는 조직을 떠난 지 10년이 지난 지금 이력서 뭉치를 들고 걷는 마음은 날씨보다 추웠다. 10년간의 골방생활을 접은 이유를 핑계 대자면 결혼을 했기 때문이다. 열 명이 채 되지 않는 하객을 모시고 성당을 찾았고 20분 만에 혼인성사는 끝났다. 촛불 하나 두고 홀로 이불을 싸매며 겨울을 날 수는 없다. 홀로 굶을 수도 없다. 혼자가 아닌 둘이었다. 나는 일거리가 필요해졌다. 누런 책들을 뒤져가며 문사철을 씹어대는 재미는 사치에 불과했고 밤을 새워가며 몇 자 끼적인다고 돈이 되지도 않았다. 나는 소설은 돈이 될 것이다 믿었다. 그러나 돈을 향한 소설을 시작하기보단 쌀통을 채우는 것이 급했다. 나는 내 짝지에게 예쁜 액세서리도, 꽃도, 결이 좋은 옷도 사주고 싶었다. 내 너 하나만은 굶기지 않을 것이다 마음먹고 원고들 인쇄할 잉크로 이력서를 뽑아냈다. 체계도 잡혀있지 않고 동네 구멍가게만도 못한 행정력, 무엇하나 믿음 가지 않는 새로 생긴 건설회사에 들어가 회사의 꼴을 갖추기 시작했다. 그들이 필요한 허가증, 주주정리, 4대보험, 직원 채용 등 발 빠르게 일했다. 한 달쯤 지나니 회사의 윤곽이 나오고 홈페이지만 만들면 얼추 기초는 끝나는 듯 보였다. 호스팅업체를 알아보던 어느 날 점심을 먹고 올라오니 부회장이라는 사람이 나를 따로 불렀다. “윤 과장. 그동안 수고했네. 이런 말을 어떻게 해야 할지 미안한 마음부터 드네.” 문득 이용당했다는 생각이 스쳤다. 중대사들이 끝났으니 그만 두라는 말 아닌가. 그러고 보니 그 사람 말고는 출근한 남자 직원이 없었다. “미리 말씀해주시지 갑자기 이렇게 말씀하시면 곤란하지요.” “미안하네. 그렇게 됐네.” “뭐가 그렇게 됐는데요? 이젠 쓸모가 없어졌나 보군요.” 내게 뭐라 말은 하고 있었지만 나는 그 자리에 일어나 짐을 쌌다. 내 자리까지 와서 뭐라 떠들고 있었지만 들리지 않았다. 세상이 많이 변했다는 생각도 일었고 내가 너무 순진했나 하는 후회도 일었다. 여직원들이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2인의 단막극을 보고 있었다. 부회장은 한 달 치 봉급이 들어있는 봉투를 내게 건넸다. 어쩌면 몸을 쓰는 일이 더 나을 거다. 땀을 흘리는 일을 알아보자. 땀은 그만큼의 대가를 주지 않겠나. 그날 집으로 오는 길 내내 아내에게 할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또다시 일거리를 구해야한다는 강박증이 머리를 흔들고 있는데 눈앞에 흉가가 하나 보였다. 내가 사는 연립이 흉가로 변해있었다. 3층과 4층을 제외하고 모두 철거 직전이었다. 집주인에게 무슨 일인지 전화를 걸었다. 집주인이 바뀌었다며 새로운 집주인과 통화해보라 말하기에 새로운 집주인에게 다시 전화를 걸어보니 구조 변경을 하는 중이니 집을 비워달라 했다. 아직 날씨는 풀리지 않았다. 이력서를 들고 다니며 부동산 사무실도 돌아다녔다. 쉽게 방을 구할 수 없었다. 높은 월세를 원했고 월세가 괜찮다 싶으면 보증금이 높았다. 무직자 꼴에 누울 방마저 사라질 판이었다. 면접은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모두 거절당했다. 2~30대를 원한다는 말이 대부분이었다. 그러다 전화 한통이 걸려왔다. “거래처 납품을 해야 하는 데 제가 다리를 다쳐서 운전을 못하고 있습니다. 조수석에 제가 타고 안내를 해드릴 테니 대신 운전 좀 해주실 수 있나요?” 4일을 일하고 그만 두었다. 개만도 못한 취급에 버티기 힘들었다. 일당도 주지 않겠다고 엄포를 놓는다. 사람이 당하지 말아야 할 것을 4일간 모조리 겪었다. 내가 운이 이리도 없는 놈이었나 자괴감이 들었다. 와중에 이사를 했다. 집이 부서지기 전에 나와야 했기 때문이다. 빛은 들어오지 않아도 조용한 방이다. 묵묵히 짐을 내리다 끝없이 트럭에서 내려오는 물건이 눈에 들어왔다. 책들이 미웠다. 책들이 혐오스러웠다. 저것들이 내게 뭔가. 이삿짐의 반이 책이다. 나는 불살라버리고 싶었다. 울화가 치밀었고 휘발유를 사오고 싶었다. 모조리 태워버리고 싶었다. 책보단 돈이 내 철학을 지배하기 시작했다. 내게 지금 필요한 건 돈이지 저런 종이쓰레기가 아니다. 대낮에 소주가 끝없이 들어갔다. 내 30대를 저 책들이 가져갔다. 푼돈만 생겨도 책을 샀다. 라면과 책을 바꾸던 날도 기억난다. 헌책방에서 눌러앉아 졸던 생각도 난다. 생각할수록 화가 치밀었다. 책이 들어있는 박스는 풀지 않았다. 며칠 전 성당으로 가는 길에 얼굴에 화상을 입은 어르신이 보였다. 선글라스로 가리고 있었지만 충분히 얼굴을 볼 수 있었다. 리어카를 끌며 폐지를 줍고 계셨다. 어르신을 불러 나와 같이 가자고 했다. 버릴까 말까 갈등이 이는 책은 모조리 버렸다. 차마 버릴 수 없는 책들도 있었다. 나를 기억해주고 내 이름 석 자를 적어 선물로 보내준 책은 차마 버릴 수 없었다. 어르신은 연거푸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있었고 나는 한참을 멍하니 서있었다. 고물상에서 책의 가치는 Kg이다. 묘한 감정이 일었다. 손때 묻은 情들이 세시간만에 모두 사라졌다. 방이 넓어졌다. 빈 소주병들을 버리러 가는 길에 새 순이 돋은 나뭇가지를 봤다. ‘넌 순리대로 사는 구나. 푸른 잎들로 그간 앙상했던 가지위에 옷을 입겠지. 올 한 해도 조금 더 커지겠구나. 꽃도 피울 생각이니? 손대지 않을 테니 예쁘게 너를 꾸며보렴.’ 구름 한 점 없다. 봄바람은 선하고 양기가 대기를 채우고 있다. 구인광고를 기웃거리는 거 보면 살고는 싶은 모양인데 답답하다. 언제나 할 말이 많다. 하고 싶은 이야기가 늘 꾸물거린다. 버리지 않던 꿈이 사그라진다. 공허하다. 뜨겁게 달궈진 다리미판이 가슴을 꾸욱 누르는 것만 같다. 하지만 언제까지 이러고 있을 수만은 없다. 싱글싱글 웃는 아내의 얼굴이 떠오른다. 내가 할 일이 아니다 싶어도 집안의 해를 보면 힘이 솟는다. 별 볼일 없는 가난한 사람 찾아 온 안해 아니던가. 세상 팍팍하게 변했음을 체험했다면 내가 들어가 조금이나마 풀어내면 되지 않겠나. 수많은 사람 사는 세상이 어찌 모두 한통속이겠나. 좋은 인연도 있겠지. 주먹 따위 불끈 쥘 필요 없다. 저 새순 틔우는 나뭇가지처럼 순리대로 살면 되지 않겠나하며 허허댄다. 프린터가 가래 섞인 소리로 이력서를 뱉어내고 있던 어느 날, 오랜만에 사는 이야기 몇 자 적어 본다. 오늘문득 - 2012.03.21. 14:47 윤영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