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의 빨래 내가 어릴 적에는 지금 같이 세탁기가 없었다. 작은 빨래는 대충 우물을 길어서 했지만 이불이나 한복 빨래는 멀리 시냇가에 가서 방망이로 두드려야 했다. 빨래 비누도 귀한 때여서 잿물에 빨래를 담그었다가 몽근 겨로 만든 새까만 빨래 비누를 발라 가면서 손으로 문지르고 발로 밟아야만 때가 빠졌다. 이렇게 힘든 빨래를 구정 가까운 겨울에는 얼음을 깨고 해야 했다. 한 번은 나도 닭표 성냥 한갑과 짚 한 다발을 묶어 들고 어머니를 따라 빨래터에 간 적이 있었다. 어머니가 솥에 뜨겁게 삶은 빨래를 이고 간 빨래터에는 아무도 없었고 빨래판 주변에는 얼음이 얼어 있었다. 어머니는 빨래 방망이로 얼음을 깨뜨려 구멍을 내고 그 차가운 물속에 빨래를 헹구었다. 맨손으로 빨래를 하는 어머니의 모습을 나는 약간 언덕진 곳에서 추위에 벌벌 떨며 바라보았다. 한참 일을 하시던 어머니가 나를 올려다 보았다. "추우면 짚불을 피워라." 짚불을 피우자 어머니가 빨래를 멈추고 다가왔다. "너무 춥구나. 내 손이 내 손 같지가 않다." 어머니는 이렇게 말하고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정 추우면 빨래 끝날 때쯤 다시 오너라. 들고 갈 것 도 있으니..." 어머니는 바가지로 물를 끼얹어 짚불을 끄더니 다시 빨래를 시작했다. 나는 좋아라 하고 집에 왔으나 따뜻한 아랫목에 누워 있다가 그만 잠이 들고 말았다. "상기야, 상기야, 이것 좀 받아라." 나는 깜짝 놀라 방문을 차고 나왔는데 어머니는 어느새 토방까지 올라와 서 있었다. 머리에는 빨래가 담긴 큰 널판지를 이고 한 손에는 수대를 들고 있었다. 나는 송구해 어쩔 줄을 몰랐다. 어머니는 아무 말도 없이 마당을 가로 질러 긴 철사줄에 이불빨래를 걸쳤다. 하얀 무명 빨래가 바람에 펄럭펄럭 성화난 듯 나부꼈다. 빗속에는 햇빛이 숨어 있다 / 귤나무
어떤 모녀 섣달 그믐도 며칠 남지 않은 어느 추운 날, '맑은물 목욕탕'의 유리문을 열고 80살쯤 된 할머니를 업은 중년의 아주머니가 들어왔다. "저런 착한 며느리가 없지. 아니, 며느리가 아니고 딸인가?" 벌써 여러번 보아 온 광경이지만 주인은 그때마다 고개를 갸웃거렸다. 숱이 없는 엉성한 은빛 머리칼, 앙상하게 드러난 갈비뼈, 할머니는 몹시 쇠잔해 보였다. 구석진 곳에 자리를 잡은 중년 여인은 샤워기를 틀어 노인의 몸을 구석구석 깨끗이 씻겼다. 조심조심 머리를 감기고 입안에 손가락을 넣어 양치질까지 해주더니 밖으로 나와 옷을 입히고 편안히 바닥에 눕혀 주었다. 그리고 다시 욕탕안으로 들어와 샤워를 하자 옆에 있던 여자가 아는 체를 했다. 여인이 목욕을 하는둥 마는 둥 금새 밖으로 나가자 몇몇 여자들이 인사를 건네던 여인에게 물었다. "잘 아시는 분인가 보죠?" "그럼요. 이웃인걸요. 할머니는 꼭대기 무허가 판자집에 혼자 사시는 분이구요. 할머니 아들이 십년전 교통사고로 죽자 며느리가 집을 나갔대요. 아까 그 아주머니도 식당일을 다니면서 어렵게 사는데 수시로 할머니를 보살펴 드린다더군요. 아무리 그래도 목욕탕까지 업고 오다니, 딸이라도 하기 어려운 일을..." 여자들은 놀라서벌린 입을 다물지 못했다. 탈의실로 나온 중년 여인은 노인의 스웨터 단추를 꼼꼼히 채우더니 다시 등에 업고 돌아갈 채비를 했다.카운터 앞을 지나는데 주인 남자가 등뒤에서 불렀다. "아주머니,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그리고 어머니께서도 오래오래 사십시오." "고맙습니다." 중년 여인이 총총히 문을 나서자 주인 남자는 기분이 좋아졌다. 뽀얀 유리문 너머로 어느샌가 하얀 눈발이 날리기 시작했다. "저런, 두 모녀가 눈을 맞겠는걸. 하지만 즐거운 새해를 맞으라는 축복일거야." 빈터를 보면 꽃씨를 심고 싶다 中
어느 사랑이야기 만년설을 이고 선 히말라야의 깊은 산골 마을에 어느날 낯선 프랑스 처녀가 찾아왔다. 그녀는 다음날부터 마을에 머물면서 날마다 마을 앞 강가에 나가 앉아 하염없이 누군가를 기다렸다. 달이 가고 해가 가고, 몇해 몇십년이 흘러갔다. 고왔던 그년의 얼굴엔 어느덧 하나둘 주름이 늘어갔고 까맣던 머리카락도 세월속에 희어져 갔지만 속절없는 여인의 기다림은 한결같았다. 그러던 어느날 이제는 하얗게 할머니가 되어 강가에 앉아 있는 그녀 앞으로 상류로부터 무언가 둥둥 떠내려 왔다. 그것은 한 청년의 시체였다. 바로 여인이 일생을 바쳐 기다리고 기다린 그 사람이었던것이다. 그 청년은 히말라야 등반을 떠났다가 행방불명이 된 여인의 약혼자였다. 그녀는 어느날인가는 꼭 눈 속에 묻힌 약혼자가 조금씩 녹아 흐르는 물줄기를 따라 떠내려오리라는걸 믿고 그 산골 마을 강가에서 기다렸던 것이다. 할머니가 되어버린 그녀는 몇 십년전 히말라야로 떠날 때의 청년 모습 그대로인 약혼자를 껴안고 한없이 입을 맞추며 울었다. 평생을 바쳐 마침내 이룩한 사랑, 어디 사랑뿐인가, 쉽사리 이루기를 바라고 가볍게 단념하기를 잘하는 오늘의 우리에게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해주는 아름다운 슬픈 이야기다. - 사랑은 당신이 받고자 하는 것과는 아무관계가 없다. 사랑은 오직 당신이 주고자 하는 것과 관계가 있다. -
약속의 유효기간 톨스토이가 여행길에 올랐을 때의 일이다. 한적한 어느 시골길을 지나가는데 7살 정도의 귀여운 소녀가 사진을 뚫어지게 쳐다보더니 엄마의 옷깃을 잡아끌었다. 아이는 엄마에게 무어라 말하며 한참 때를 쓰더니 급기야 울음을 터트렸다. 슬쩍 엿들어보니 소녀는 그가 허리에 둘러맨 백합꽃 수가 놓여진 가방을 갖고 싶다는 거였다. 톨스토이는 가만히 소녀에게 다가갔다. "애야, 힘들겠지만 내일까지 기다리렴. 내일이 되면 나에게 이 가방은 소용없어질 것 같구나. 그땐 틀림없이 네게 이 가방을 선물하마. 자. 그만 울고..." 톨스토이의 상냥함에 소녀는 금방 울음을 그쳤고 약속에 대한 기대감으로 빰이 발갛게 물들었다. 사실 톨스토이에게 그 가방은 매우 소중한 친지의 유품이었다. 또 가방에는 그의 책과 기타 여행에 필요한 것들이 가득 담겨 있었다. 아음날 저녁,톨스토이는 약속을 지키기 위해 다시 시골길로 돌아와 일부러 그 소녀의 집을 찾아 갔다. 그런데 소녀의 집에 도착해 보니 방금 장례식을마치고 돌아온 듯한 사람들의 모습이 여기저기 보였다. 소녀의 어머니에게 물어보니 어제 톨스토이와 헤어지고 집에 돌아온 후 아이가 갑자기 이름모를 병으로 죽었다고 말했다. 톨스토이는 소녀의 어머니에게 묘지까지 안내를 해달라고 부탁했다. 묘지에 도착한 그는 자신이 가지고 온 소중한 가방을 무덤 앞에 바치고 엄숙히 기도했다. "이젠 그 애가 죽었으니 가방은 필요 없어요. 고맙지만 가지고 가세요." 옆에서 지켜보던 소녀의 어머니가 미안한 표정으로 이렇게 말해따. "아뇨,따님은 죽었지만 나의 약속은 아직 죽지 않았습니다." 톨스토이를 바라보던 어머니의 눈에서 뜨거운 눈물이 흘러내렸다.
아버지의 교훈 아버지는 조그만 도시에서 '우리 마을 만물상'이라는 가게를 운영했는데 우리 일곱형제들은 먼지를 털거나, 물건을 진열하는 작은 일부터 시작해 그 일이 익숙해지면 손님을 상대했다. 그러던 중 중학교 2학년때 나는 아버지에게 장사가 단순히 물건을 파는 행위가 아니라는 사실을 배우게 되었다. 크리스마스가 얼마 남지 않은 어느 날 저녁, 나는 가게에 들러 장난감 선반을 정리하고 있었다. 그 때 여섯 살쯤 된 꼬마아이가 가게문을 열고 들어왔다. 아이의 코트는 낡아서 소매끝이 너덜너덜했고 제멋대로 헝클어진 머리는 위로 삐죽삐죽 뻗쳐 있었다. 얼핏 보기에도 아이는 무척 가난해 아무것도 사지 못할 것 같았다. 아이는 장난감 선반을 둘러보며 이것저것 집어들었다가 조심스럽게 도로 올려놓곤 했다. 얼마 후 이층에 있던 아버지가 내려와 아이에게 다가갔다. 아버지는 다정한 미소를 띄우며 무얼 찾느냐고 물었다. 아이는 동생에게 줄 크리스마스 선물을 찾는다고 했다. 아버지는 그 꼬마아이를 어른 손님과 다름없이 대하면서 선물을 천천히 골라보라고 말했다. 20분쯤 지나자 아이는 장난감 비행기를 집어 들고 아버지에게 다가갔다. "이거 얼마예요, 아저씨?" "얼마나 있니?" 손바닥을 펼치자 아이의 샊가만 손엔 100원짜리 동전 두 개에 50원짜리 동전 하나가 놓여 있었다. 하지만 아이가 고른 장난감은 4천원 짜리였다. "그거면 됐구나." 장난감 비행기를 포장하며 나는 방금 일어난 일을 곰곰이 되새겨보았다. 아이가 장난감을 들고 가게를 나갈 때 아이의 헝클어진 머리, 낡은 코트와 신발은 더 이상 내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단지 보물을 손에 들고 기쁨에 넘쳐서 환하게 웃던 꼬마아이의 얼굴만이 커다랗게 다가왔다. 일이 있는 곳에 행복이 있다 中 / 이레
敵軍 장교와 60년 '못다한 사랑' 유럽이 울었다 사랑이 아름다울수록 운명은 혹독한가. 60년 가까운 기다림 끝에 다가온 짧은 만남. 그리고 영원한 이별. 지난달 80세로 세상을 떠난 한 그리스 할머니가 온 유럽인의 가슴을 적시고 있다. 안젤리키 스트라티고우. 이 할머니는 '아모레 셈프레(영원한 사랑)'라는 이탈리아어로 끝나는 두 통의 엽서를 가슴에 끌어안고 숨을 거뒀다. 할머니가 숨지기 직전 몇 분동안 한 말은 "티 아스페토 콘 그란데 아모레(난 위대한 사랑을 안고 그대를 기다렸어요)." 시간은 1941년 8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20세의 이탈리아군 소위 루이지 수라체는 그리스 펠로폰네소스 반도 서북부의 아름다운 항구도시 파트라이로 파견된다. 행군을 하던 루이지는 집 앞에 앉아 있던 안겔리키 스트라티고우에게 길을 묻는다. 처녀는 크고 검은 눈이 매력적이었다. 청년은 의젓하며 정이 많은 장교. 둘은 서로에게 마음이 끌리지 않을 수 없었다. 그는 길을 가르쳐준 처져가 굶주림에 지쳐 있음을 눈치채고 갖고 있던 전투식량을 나눠줬다. 루이지는 사흘이 멀다 하고 먹을 것을 들고 그녀의 집을 찾았다. 루이지는 그리스 말을, 안겔리키는 이탈리아 말을 배웠다. 짧았던 행복. 그러나 이 행복은 43년 이탈리아가 항복하면서 끝난다. 급거 귀국해야 했던 루이지는 안겔리키를 찾아 손을 한 번 잡게 해달라고 간청했다. 하지만 적군 장교와 사귀는 것을 다른 사람이 볼까 두려워한 그녀는 끝내 거절했다. 대신 떨리는 목소리는 "전쟁이 끝나면 결혼해 달라" 는 루이지의 청혼에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전쟁이 끝난 후 루이지는 고향인 이탈리아 남부 렉지오 칼라브리아로 돌아갔다. 그곳에서 루이지는 안겔리키에게 계속 편지를 띄웠다. 당시 그녀는 고모집에 살고 있었다. 하지만 조카가 적군과 연애하는 것을 인정하지 않았던 고모는 편지를 중간에 가로채 없애버렸다. 메아리 없는 편지를 계속 보내던 루이지는 천일째 되던 날 드디어 그녀를 잊기로 결심했다. 루이지는 곧 결혼을 했다. 아들 하나를 둔 평범한 삶이 계속 됐다. 그러나 부인이 96년 세상을 떠나자 희미한 옛사랑의 그림자가 그의 가슴 속에서 되살아났다. 그는 파트라이의 시장에게 사연을 담은 편지를 냈고, 시장은 현지 스카이 방송사 기자들의 도움을 얻어 아직도 그 도시에 살고 있던 안겔리키를 찾아냈다. "언젠가는 이런 날이 올 줄 알았어요." 소식을 들은 안겔리키의 첫 마디였다. 안겔리키의 연락을 받은 루이지는 얼굴을 가리고 한없이 울었다. 그녀가 60년 가까운 옛날의 결혼 약속을 여전히 믿으며 평생을 독신으로 살아 왔음을 알았기 때문이다. 지난해 2월의 성밸런타인데이에 둘의 감격어린 재회가 이뤄졌다. 파트라이를 방문한 루이지는 또다시 떨리는 목소리로 청혼했고 안겔리키는 벅찬 가슴으로 받아들였다. 루이지는 77세, 안겔리키는 79세였다. 1년의 절반씩을 각각 그리스와 이탈리아에서 지내기로 한 루이지와 안겔리키의 달콤한 계획은 안겔리키가 앓아누운 끝에 훌쩍 하늘나라로 떠나면서 꿈이 돼버렸다. 사망일은 1월 23일로 예정됐던 결혼식을 2주일 앞둔 9일이었다. 루이지는 아직도 그녀의 죽음을 모르고 있다. 그 자신이 몸이 아파 병원에 입원했고, 주변에서 비밀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결혼식도 연기된 것으로 안다. 지금도 그는 매주 토요일 아침이면 펜을 들어 '영원한 사랑'으로 끝나는 엽서를 쓴다. 엽서는 그녀의 무덤앞에 쌓이고 있다. ─ 중앙일보 99년 2월 5일자 10(국제)면, 채인택 기자
효자와 상황버섯 지난 6월 15일 새벽, 화천 평화의 댐에서 배를 타고 물어 물어 "비수구미"란 호수변 마을에 산다는 장윤일씨를 찾아가면서 마음이 무거웠다. 엊그제 신문에서 그가 암에 좋다는 상황버섯을 캤다는 기사를 보고 무작정 나선 길이었다. 살 수 있을까? 그 비싼 걸 돈 없이. "신문 보고 왔습니다. 상황버섯 좀 얻으려고..." 물안개 속에 어리둥절해 있는 그에게 덥석 큰절부터 했다. "아버지가 위암입니다. 병 고치느라 집 팔고 차도 팔아 빈털터리입니다. 지금도 친구분 병원에 거저 누워 계십니다. 가진 건 이것뿐입니다." 부르는 게 값이라는 상황버섯. 스스로도 턱없는 짓이라 여기며 회사 홍보용 기념품을 내밀었다. "배짱 참 좋수. 십원 한 푼 안 가지고 오셨네." 그는 한동안 나를 물끄러미 쳐다보기만 했다. 먼 길을 밤새 왔는데 역시 허사인가. 곁에 앉은 아주머니도 말이 없었다. 그래도 매달려야지 생각하는 순간. 장씨가 아들을 불렀다. "조금 남은 것 있지? 죄 가져 오너라." 한쪽은 까맣고 한쪽은 황금색으로 빛나는 자연산 상황버섯 2백g. 너무기쁜 나머지 인사도 하는 둥 마는 둥 돌아섰다. 등 뒤에서 그가 아들에게 "저런 사람 빈 손으로 보내면 평생 가슴에 비수꽂고 산다"고 하는 소리가 들렸다. 아버지는 보름만에 돌아가셨다. 그래도 버섯 덕인지. 큰고통은 없이 떠나셨다. 우리가 잃어버린 것들 우리가 찾아야 할 것들 中
행복한 만물박사 도우미 "연탄 보일러는 이 연통이 중요해요, 할머니, 잘 묶어 고정 시키지 않으면 낭패보기 십상이라니까요," "그려, 그려, 어서하고 들어와서 이 단감이나 한 조각 드시구랴." 감을 깎던 박숙자 할머니는 비록 한평 반이 채 못 되는 집이지만 '이제야 사람 사는 모양이 갖춰진 것 같다'며 입가에 웃음을 며금는다. 유순녀(50세)씨가 가정도우미로 활동한 지 어느새 2년이 넘어서고 있다. 그간 돌봐 온 독거노인만 해도 스무 명 가까이 되고 친척이 없어 자신이 직접 장례를 치러낸 적도 세 번이나 있다. 그가 날마다 찾아가 돌보는 관내 독거노인은 대부분이 관절염, 신경통, 내과질환 등을 앓고 있는데 이틀에 한 번 꼴로 병원에 모시는 일이 유씨의 주된 임무 중 하나다. 하지만 유씨는 병원에 가는 일 말고도 부피가 큰 빨래를 집에 가져와 하거나 김치를 담가다 주는 일, 집안 청소 등 필요한 일을 스스로 알아서 한다. 보통 여자들이 할 수 없는 일까지 너끈히 해 내니 할머니, 할어버지들은 유씨를 척척박사, 만물박사로 부른다. 이밖에도 유씨는 할머니에게 뜻밖의 사고가 생길 것을 대비해 집집마다 알림장을 만들었다. 이 알림장에는 할머니의 평소 습관이나 지병, 주의사항이 세세히 적혀 있고 유씨의 연락처를 비롯해 먼 친척의 전화번호도 적혀 있다. 유씨의 마음엔 늘 한 가지 계획이 있다. 바로 혼자 사는 할머니, 할아버니들이 편안히 여생을 즐길 수 있는 다세대 주택을 짓는 것이다. "언젠가는 그런 집을 지어 이들과 함께 사록 싶은데 그러자면 제가 복권에라도 당첨돼야겠지요?" 라고 말하는 그녀의 마음은 어느새 다 함께 잘 사는 세상, 아프거나 불편한 사람이 없는 좋은 세상을 꿈꾸며 한껏 부풀어 오른다. 행동하는 사람은 아름답다 中
참기름 장사와 명궁 송나라에 진요자라는 명궁이 있었다. 그는 활을 어찌나 잘 쏘는지 나라안팎에 그와 겨룰 만한 궁사가 없었다. 어느 날 그는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사람들을 모아 놓고 활을 쏘고 있었다. 마침 근처를 지나가던 기름 파는 노인이 그 모습을 지켜 보았다. 노인은 진요자가 화살 열 개 가운데 아홉개를 명중시키자 희미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진요자는 어깨를 으쓱거리며 노인에게 물었다. "노인장, 제 궁술의 비결이 뭔지 궁금하십니까?" 그러자 노인은 별 것 아니라는 듯 대답했다. "뭐 무슨 특별한 비결이 있겠습니까? 활이 당신 손에 푹 익은 것 같군요." 노인의 말에 진요자는 기분이 나빠졌다. "아니 제 솜씨를 어찌 그렇게 가볍게 평가하십니까? 이건 하루 이틀에 배울 수 있는 궁술이 아닙니다." 노인은 웃으며 말했다. "아, 화내지 마시오. 내가 참기름 장사를 오래 하다보니 조금 이치를 아는 것 뿐이라오." "그게 무슨 말입니까?" 진요자가 묻자 노인은 호리박처럼 생긴 참기름 병을 꺼내 땅 위에 놓더니 엽전으로 그 주둥이를 막았다. 그리고 참기름을 국자로 떠서 병 속에 흘려 넣었다. 그런데 노인의 키높이에서 흘려보낸 참기름이 엽전의 조그만 구멍 속으로 정확하게 들어가는 것이 아닌가. 진요자가 살펴보니 엽전에는 참기름이 한 방울도 묻지 않았다. 진요자는 노인의 솜씨에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했다. 노인이 말했다. "아아, 놀라지 마시오. 나도 뭐 별다른 비결이 있는게 아니니까. 다만 손에 푹 익었을 뿐이라오." 그 말을 들은 진요자는 노인에게 깊이 머리 숙여 절을 했다. 이후 진요자는 활을 쏘는데 있어 결코 자만하지 않았다. 인간관계를 열어주는 108가지 따뜻한 이야기 中
죄와 벌 늦은 밤, 외과인 존슨 박사에게 존슨 박사는 할 수 없이 뛰다가 전화가 걸려왔다. 지치면 걷고, 조금 걷다가 다시 한 소년이 총을 가지고 장난을 뛰어 가까스로 병원에 도착했다. 하다가 그만 오발을 하여 생명 "어떻게 됐습니까?" 이 위태롭다는 내용이었다. 가쁜 숨을 쉬며 담당 의사에게 소년이 입원한 병원은 50Km나 물었다. "5분전에 죽었습니다. 떨어져 최고 속력으로 차를 몰 5분만 일찍 오셨더라면 살 수 아도 족히 30분은 걸렸다. 있었을텐데." 이때 죽은 소년의 "소년은 살릴 수 있는 의사는 가슴에 얼굴을 파묻고 울던 소년 박사님밖에 없습니다. 의 아버지가 존슨박사를 무섭게 제발 빨리 와주십시오!" 전화상 노려보았다. "아니, 당신은?" 의 다급한 목소리를 떠올리며 "당신이 의사였단 말이오!" 존슨 박사는 차의속력을 최고로 "아들은 당신이 죽였습니다." 냈다. 그런데 20Km쯤 갔을 때 박사가 혀를 차며 질책하자 사나이 웬 사나이가 갑자기 길을 막으며 는 실성한 사람처럼 울부짖었지만 차를 세워달라고 손짓했다. 아무 소용이 없었다. 사나이가 몹시 급하게 보여 그냥 지나칠수가 없었다. "어디까지 가십니까?" 존슨 박사가 차를 세우고 묻자 가슴을 활짝열고 세상을 보아라 中 사나이는 대뜸 권총을 들이댔다. "잔말 말고 어서 내려!" 존슨 박사는 뜻밖의 상황에 어찌 할 바를 몰랐다. 소년의 생명이 초를 다투는데 정말 큰일이었다. "여보시오. 나는 의사요. 지금 생명이 위태로운 환자를 치료하 러 가는 길이니 제발 보내 주시 오!" 애원을 했지만 사나이는 싸늘한 표정으로 박사를 차에서 강제로 끌어 내고 거칠게 시동을 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