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여자 연예인이 TV 프로그램에 나와 울먹이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평소 별로 좋아하지 않던 연예인이라 채널을 돌리려다가 멈칫했지요. 결혼을 앞두고 부모님께 미안함을 털어놓는 자리였어요. 그녀는 연예인이 되려고 준비하던 어느 날, 다른 부모들은 잘만 밀어주는데 왜 엄마 아빠는 이것밖에 못 해주냐며 철없는 소리를 한 게 너무 후회된다면서 뚝뚝 굵은 눈물을 떨어뜨렸습니다. 그 모습을 보는데 제 눈에도 따라 눈물이 고이더니, 방금 전까지 그녀에게 품었던 비호감이 눈 녹듯 사라져 버리는 겁니다. '아, 저런 면이 있구나. 당돌해 보였는데 알고 보니 마음이 무척 여린가봐.' 마음은 어느새 그녀의 편에 서 있었습니다. 그러고 보면 제 맘이 참 간사합니다. 사실 그녀를 싫어했던 이유도 참 보잘것없었거든요. 눈이 너무 커서 싫었고, 웃을 때 유독 큰 입이 괜히 싫었습니다. 말할 때 또랑또랑 크게 울리는 목소리도 싫었고, 예쁜 얼굴로 털털하게 구는 모습도 인기를 얻기 위한 이미지 전략으로 보였습니다. 이렇게 어이없는 이유로 싫어한 사람들이 한둘이 아닙니다. '알면 사랑한다'는 말이 있지요? 상대에 대해 조금이라도 알게 되면 우리는 쉽게 남을 비난하기 어려워집니다. 사랑까지는 아니더라도, 알면 이해하려 노력하게 된다는 말은 사실인 것 같습니다. 이해하면 미워할 수 없습니다. 글 《행복한동행》 김혜경 기자 출처 : 인터넷 좋은생각 사람들
도시락과 소풍 '짠지' '겉절이' '무말랭이' '콩장' 이름만 들어도 예스러운 반찬이지만 내겐 친구들의 별명이기도 합니다. 어릴 적 도시락 같이 먹던 멤버들이 주로 싸오던 반찬이 별명이 된 것이지요. 삼삼오오 무리지어 밥을 먹다 보면 어느새 같이 먹는 멤버가 생기게 되고, 그러다 보면 일주일만 지나도 서로 무슨 반찬을 싸올지 대충 짐작이 갑니다. 그러다 소시지라도 싸오는 날에는 소풍가는 날로 여겨질 만큼 특별했습니다. 도시락의 장점은 어디서든 먹을 수 있다는 거죠. 하지만 학교 밖을 벗어난 도시락은 단체 소풍 말고는 별다른 기억이 없습니다. 사회생활 신입 시절, 어머니가 싸주신 도시락을 갖고 다니기도 했지만 그 역시 학교와 다를 바 없지요. 그런데 문득 봄의 기운이 완연하던 어느 토요일 오후가 생각납니다. 윗집 누나가 도시락 싸서 소풍 가자는 말에 냉큼 부엌에 들어가 가마솥을 열어 노오란 양은 도시락에 밥을 퍼 담고 눈에 띄는 반찬을 마구 담았습니다. 헐레벌떡 집 밖을 나서니 몇 명이 더 모였습니다. 나무가 하나도 없어 '빡빡산'이라 부르던 작은 앞동산을 향해 콧노래를 부르며 오르던 그 길은 분명 학교 소풍과는 다른 느낌이었습니다. 늘 보고 걷던 길도 달리 보였습니다. 산언덕에 올라 먼 산을 바라보며 먹던 도시락 맛도 달랐습니다. 반찬이라곤 달랑 김치뿐이었는데…. 밥을 먹는 환경이 달라지고 풍경이 달라지고 마음이 달라진 것이겠지요. 세월이 흘러 돌아보니 학교에 소시지를 싸간 날은 기억나지 않는데, 유독 그 김치를 맛있게 먹던 그날이 생각납니다. 일상을 조금 바꾸었을 뿐인데 말입니다. 글 《행복한동행》 김익겸 기자 출처 : 인터넷 좋은생각 사람들
텔레비전의 커다란 볼륨이 낯설지 않도록 “엄마, 텔레비전 볼륨 좀 줄여요. 소리가 대문 밖까지 들리네!” 친정집 현관문을 열고 들어서며, 텔레비전 볼륨보다 더 큰 목소리로 소리를 치며 말했습니다. 그런데 뒤이은 엄마의 한마디에 코끝이 찡해집니다. “작게 하면 잘 안 들려. 너도 나이 들어 봐….” 엄마도 나이를 먹는다는 걸 깨달은 건, 바로 그때였습니다. 참 철없는 딸이었죠. 늘 “사람들이 아빠보다 열 살은 어린 줄 안다.”며 딸들에게 자랑 삼아 이야기하던 엄마였기에, 무거운 장롱과 침대도 번쩍번쩍 옮겨 가구 배치를 바꾸곤 하시던 엄마였기에, “허리 아프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면서도 새벽부터 온 집안을 반짝반짝 쓸고 닦던 엄마였기에 몰랐습니다. 철없는 딸은 또 엄마에게 묻습니다. “그럼, 엄마도 이제 금방 환갑 되겠네?” “내년이 환갑이잖아….” 그리고 며칠 뒤 해외에 사는 남동생과 통화를 하는데, 동생이 묻습니다. “요즘 아빠 건강 안 좋으셔?” “아니, 좋으신데. 왜?” 뒤이은 동생의 한마디에 가슴 한구석이 싸해집니다. “교회 후배 소진이 알지? 걔가 그러더라. 요즘 목사님 어깨가 유난히 쓸쓸해 보인다고.” 잊고 살았습니다. 아니 내 삶이 정신없이 바쁘다는 이유로, 지나치게 무관심했습니다. 부모님도 나이를 먹는다는 사실을…. 내 머릿속 엄마의 모습은 학창시절 내 교복을 정갈하게 다려주던 그 시절에 멈추어 있고, 내 가슴속 아빠의 모습은 열 살 때 로봇박람회에 손잡고 갔던 그 시절에 멈추어 있었으니까요. 이제는 추억 속의 부모님의 모습을 붙잡기보다, 한 달이 멀다 하고 머리를 염색하시는 부모님의 현재 모습을 지켜드리는 데 충실해야겠습니다. 거스를 수 없는 세월의 흔적을 부모님이 굵은 나무의 나이테처럼 행복하게 받아들일 수 있도록 돕는 동무가 되어드리렵니다. 축 처진 부모님의 어깨가 쓸쓸해 보이지 않도록, 텔레비전의 커다란 볼륨이 낯설지 않도록…. 글 《행복한동행》 박헤나 기자 출처 : 인터넷 좋은생각 사람들
약이 되는 경험 한 동행님이 편집실로 편지를 보내주셨습니다. 꿈을 이루기 위해 직장을 그만두고 다시 공부를 시작한다고요. 하지만 단단히 마음먹고 사직서를 냈는데 주변사람들이 이렇게 어려운 때에 무슨 공부냐고 질책을 하자 많이 상심이 되셨나 봅니다. 동행님은 끝까지 포기하지 않도록 응원을 해 달라며 저희 편집실의 문을 두드리셨습니다. 편지를 읽고 동행님의 마음이 전해져서 또 막내 동생 같은 생각에 괜히 찡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벌써 10년이 가까워지네요. 저 역시 적성에 맞지 않는 공부를 하고 사회에 나갔다가 안 되겠다 싶어 다시 학교를 가겠다고 결심한 적이 있습니다. 첫 번째 공부야 부모님의 도움으로 했지만, 두 번째 공부는 스스로 하겠다며 경제적인 독립을 선언했지요. 이제와 생각해보면 당시엔 제게도 동행님처럼 차가운 눈빛과 걱정의 말들이 많았는데요. 누구의 도움 없이도 잘할 수 있다는 각오를 그렇게 표현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결국 그 때부터 제 고생스러운 아르바이트 인생은 시작되었지요. 손발이 꽁꽁 얼 정도로 추운 겨울날, 길에서 전단지 돌리는 아르바이트를 하다가 점심 값을 아끼자고 컵라면을 먹는데 울컥 서러움이 몰려오던 날이 있었습니다, 레스토랑에서 서빙을 할 때는 쟁반이 너무 무거워 넘어졌는데 어찌나 창피하던지 화장실에서 눈물짓던 날도 있었고요. 통신사에서 하루에 300~400통의 전화문의를 받다가 한동안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던 적도 있고, 공장에서 하루 종일 라벨만 붙이다가 어깨가 결려 잠을 못 이룬 날도 여럿 됐습니다. 그리고 가장 기억에 남는 아르바이트는 말 안 듣는 고3 학생들만 모아놓고 공부를 시켰던 일입니다. 그 때의 진한 우정이 그리운 날이면, 지금은 모두 성인인 된 학생들이 가끔씩 제게 전화를 걸어 안부를 묻곤 합니다. 아르바이트의 달인이라 불릴 당시에는 학업에 필요한 돈을 마련하면 그 뿐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이게 웬일입니까? 그 고단한 시절의 경험은 사는 내내 참 많은 도움을 줍니다. 사무직 아르바이트를 할 때 컴퓨터 다루는 방법을 배운 것은 지금도 유용하고요. 독자들에게 책을 보내려고 라벨을 붙일 때도 빠르게 할 수 있는 방법을 알지요^^ 예전에는 모르는 사람과 말하는 게 어려운 성격이었는데 다양한 아르바이트의 경험을 통해 낯선 사람을 만나는 인터뷰나 어려운 섭외에도 좀처럼 얼지 않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가장 큰 소득은 동행님들이 보내주시는 고단한 삶의 이야기에 대해 진심으로 공감하고 눈물지을 수 있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살면서 겪는 아주 작은 경험도 그 어느 것 하나 버릴 것이 없다는 것을 배운 것 같습니다.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는 동행님! 지금은 눈물나게 힘들지만 아마도 몇 년 후에는 참 잘한 일이라고 스스로를 따뜻하게 안아 줄 날이 올 것입니다. 그리고 용기 있는 결정에 저도 마음을 다해 응원을 보냅니다. 힘내세요! 글 《행복한동행》 김승희 기자 출처 : 인터넷 좋은생각 사람들
당연한 것들의 소중함 오래 사귄 연인의 무던함인지 익숙함인지, 저와 제 남자친구는 특별한 데이트를 하지 않습니다. 공기놀이해서 지는 사람이 안마 10분 해 주기, 몸으로 영화 이름 설명해서 맞히기, 아이스크림 하나 물고 공원 산책하기 등 어떻게 보면 참 시시한 연애를 하고 있답니다. 자취 생활을 하는 남자 친구를 위해 주말에는 제가 가끔 팔 벗고 요리에 나섭니다. 할 줄 아는 게 별로 없으니 미역국, 계란부침처럼 쉽고 간단한 것들이죠. “맛있다, 고맙다”는 말은 안 해도 밥 한 공기 뚝딱 해치워 주는 게 저에 대한 배려라는 걸 알고 있죠. 그러던 어느 날, 남자 친구가 불쑥 그러더군요. “이번 주말에는 남자들이 요리해 볼까? 남자들의 날. 어때? 뭐 먹고 싶은지 생각해 봐.” 듣고 있던 저와 엄마의 입엔 미소가, TV를 보시던 아빠의 눈엔 당혹감이 일었지요. 드디어 결전의 그날. 메뉴는 크림소스 스파게티와 치킨 샐러드로 정했습니다. 주방에서 분주하게 움직이던 아빠와 남자 친구는 한 시간 여 만에 스파게티 한 접시와 샐러드를 제 앞에 내려놓았습니다. 일단 색깔과 냄새는 그럴 듯하네요. 한 입 넣었더니 이건 스파게티가 아니라 딱 콩국수 맛이네요. 엄마와 전 쿡쿡 터지는 웃음을 막고 “음~맛있네”를 연발했죠. 옆에서 초조하게 지켜보던 남자 친구가 털썩 자리에 앉더니 말하더군요. “별로 안 어려울 거 같았는데 막상 해 보니 쉽지 않네. 그동안 너도 힘들었겠다.” “당신도 정말 고생 많았어요.” 옆에서 아빠도 한 마디 거드시더군요. 그걸 이제야 알았느냐고 타박을 주고 한바탕 웃었습니다. 맞아요. 옆에서 보기엔 별것 아니지만 막상 해 보면 만만찮은 일이 많죠. 이른 아침 도시락을 싸 주는 엄마, 30년 동안 한 번도 쉬지 않고 회사를 다닌 아빠처럼요. 누군가 당연히 하고 있다고, 내가 할 일이 아니라고 넘겨버렸던 일들을 직접 해 보세요. 동료의 책상에 걸레질을 하고, 사무실에서 쓰는 컵도 씻어 보고요. 그 일을 대신해 주었던 누군가의 소중함이 절실하게 다가올 겁니다. 글 《행복한동행》 임나리 기자 출처 : 인터넷 좋은생각 사람들
예쁜 말, 재치 있는 말 “돈가스 드실 시간입니다~!!” 사무실 문이 열리며 음식 배달부의 경쾌한 목소리가 울립니다. 근처 식당에 점심 메뉴로 돈가스를 주문한지 한참이 지났을 때입니다. 왜 이리 늦었느냐고 짧은 타박을 줄 작정이었는데, 아저씨의 재치 있는 등장 멘트에 담아 두었던 불만이 그만 쏙 들어가 버렸습니다. 슬쩍 올라가는 입꼬리에 웃음을 머금고 순순히 음식값을 치렀지요. 왜 이리 늦느냐는 배달 독촉에 이력이 난 아저씨는 사람 마음을 움직이는 법을 진즉에 터득하신 모양입니다. 예기치 못한 순간 미소를 불러오는 경우는 또 있습니다. 한가한 오후 나절의 지하철 안이었어요. 가방 한 가득 칫솔 세트를 담은 행상꾼이 통로 중앙에 섰습니다. 무심한 승객들은 눈길조차 주지 않는데 한창 칫솔 광고에 매진하던 아저씨가 슬쩍 개그를 섞습니다. “이만 깨끗이 닦이느냐, 그렇지 않습니다. 철수 운동화, 영희 빤스도 이걸로 문지르면 새 것 같이 하얘져요~” 여전히 신문에서 머리를 들지 않아도, 승객들 얼굴에 설핏한 웃음이 머물다 지나가는 것을 보았습니다. 좀 전까지 살 맘일랑 없어 보이던 아주머니 한 분은 지갑을 열어 천 원 한 장을 꺼냈습니다. 어느 날은 택시를 탔는데, 도로 한복판에서 우물쭈물 기어가는 차 뒤에 이런 팻말이 붙어 있습니다. 「늙은 부모의 철없는 막내딸이자 한 남자의 애물단지 아내, 두 아이를 둔 억척 엄마 되는 사람이 안간힘을 쓰고 있습니다! 내 가족이라 생각하시어 너른 아량 바랍니다.」 “아이구야~ 참 길기도 길다.” 그러면서 기사 아저씨는 경적을 울리려던 손을 멈칫 합니다. 구구절절 역지사지의 인정을 호소하는 문구가, 갈길 바쁜 기사분의 마음에 와 닿았나 봅니다. 같은 말도 참 예쁘게, 재밌게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내려던 화도 웃음으로 바꾸고, 후히 지갑을 열어 계획에 없던 지출을 하게 만드는, 주변에 활력을 불어넣는 숨은 재주꾼들이요. 한 수 배우고 싶은, 참 바람직한 삶의 기술입니다. 글 《행복한동행》 김혜경 기자 출처 : 인터넷 좋은생각 사람들
초콜릿 하나로 손가락 열 개로만 세기엔 턱 없이 모자라는 세월이 흘렀네요. 결혼한 지. 아닌 분도 있겠지만 이쯤 되면 결혼할 때의 설렜던 느낌은 유아기 적 기억마냥 가물가물합니다. 이제 부모와 자식으로서의 의무를 함께하며 다져진 동지애, 허물없이 편안해진 형제애 같은 연대감만 남았다고 할까요. 그저 무덤덤합니다. 그런데 며칠 전 한 모임에 빠진 선배가 부부동반 여행을 갔다는 얘길 듣고 한없이 부러웠습니다. 전에는 누가 아이 떼놓고 여행 갔다는 얘길 들으면 속으로 욕했거든요. 참 유난떤다고. 지금까지 모든 걸 아이들 위주로 했기에 둘만의 여행은 절대불가 항목이었습니다. 그런 제 마음에 '우리도 둘이서 여행 가고 싶다'는 소망이 생겼으니 무뎌진 관계에 봄날이 오는 신호인가 봅니다. 살면서 참 많은 사람을 만나고 그만큼의 다양한 관계를 맺습니다. 그리고 그 관계를 잘 유지하기 위해 나름 노력을 합니다. 그것이 마음에서 우러나와서든 아니든 좋은 관계가 주는 기쁨과 평화를 위해서 말이죠. 그런데 정작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는 그러지 못합니다. 마음 놓고 편하게 지낼 수 있는 사람이니까, 어떻게 해도 다 이해해 줄 사람이니까, 하는 과도한 믿음 때문일까요? 저 역시 남편과의 관계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지도 노력하지도 않았습니다. 모든 대화의 화제가 아이들, 집안일이었지 남편의 마음을 챙기고 다독인 기억이 없네요. 가족과 사회에 비치는 남편으로만 바라봤지 사랑하는 사람으로 봐 주지 못했습니다. 그 어떤 것보다 부부 사이가 가장 중요한 인간관계이고, 참 많은 노력이 필요한데 그걸 깨닫지 못했습니다. 이제라도 늦지 않았으니 애써야겠습니다. 마침 내일이 발렌타인데이네요. 아침 식탁에 초콜릿 하나 놓는 것으로 시작해야겠습니다. 한 번도 준 적 없는 초콜릿을. 글 《행복한동행》 김정아 편집장 출처 : 인터넷 좋은생각 사람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