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의 참된 가치 / 권재일 말겨레 우리는 하루를 말로 시작하고 닫는다. 대화나 혼잣말이 있고, 글을 소리 내어 읽어도 말이 된다. 표정이나 손짓으로 생각과 느낌을 나타낼 수는 있지만, 온전히 하지는 못한다. 그래서 우리는 생각·느낌을 거의 말로써 표현한다. 언어는 사람만이 부려쓰는, 무척 중요한 가치를 지닌 사물이다. 의사 전달의 기본 수단인 까닭이다. 이것이 바로 언어의 기능이다. 그러나 그 기능은 단순히 의사 전달 연모에 그치는 것이 아니다. 언어를 통하여 인류 사회는 서로 관계를 맺고 협동하여 문화를 발전시킨다. 언어는 사회 구성원들의 사고 방식과 사물을 파악하는 방법을 형성한다. 생각을 언어로 나타내자면 생각 그 자체를, 언어 조직에 맞도록 조정한다. 그러지 않고서는 생각을 언어로 나타낼 수 없다. 그러므로 언어 구조는, 이를 쓰는 사람들의 정신 세계를 형성하는 주된 구실을 한다. 한 나라나 겨레는 이런 공통된 언어 구조에 이끌려 공통된 정신·생각과 문화를 형성한다. 언어는 이를 쓰는 나라·겨레·문화와 밀접한 관계를 가진다. 한국어는 한국 사람다운 정신을 기르면서 그 문화를 형성하는 데 가장 중요한 구실을 맡아 왔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태어나서 우리말을 배움으로써 그 문화적 전통을 습득하고 민족적 유대감을 쌓고, 나아가 이를 바탕으로 다시 새로운 문화를 만들어 나간다. 우리말의 참된 가치는 바로 여기 있다. 권재일/서울대 교수·언어학
고장말은 일상어다 / 이태영 전체적인 개념을 가진 ‘한국 문화’는 고장(지역) 문화와 보완적이다. 고장 문화가 모여서 한국 문화가 된다. 우리에겐 막연히 서울 문화를 한국 문화의 중심에 두고 지역 문화와 대비시키는 경향이 있다. 또 표준어와 대응되는 언어를 사투리(방언)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방언은 고장말, 표준어는 서울말인 까닭에 지역과 중심의 대립적인 개념에서 오는 것이다. 실제로 표준어에 대응되는 말은 ‘일상어’다. 표준어는 인위적이며 ‘특별한’ 언어이고, 일상어는 고장말·비속어, 관용 표현처럼 일상생활에서 자연스레 사용하는 언어를 말하기에 ‘일상’과 ‘비일상’(격식)이라는 점에서 대응된다. 여러 고장에서 쓰는 방언들이 모여서 공통어인 한국어가 되므로 ‘공통어’와 지역어가 대응되는 말이다. 표준어는 한 나라를 대표하는 인공 언어로, 지역과 쓰는 계층이 ‘교양 있는 사람들이 쓰는 현대 서울말’로 한정된다. 북쪽의 ‘문화어’와는 달리, 남쪽의 표준어에는 일상어나 고장말이 아주 일부만 들어 있으며, 대체로 문어적인 성격을 띤다. 시·소설이나 논문·실용문 따위 공식문에 많이 쓴다. 방언과 같은 ‘일상적’ 언어는 일상 대화에서 쓰는 입말체 성격을 띠며, 어린이부터 노인까지 쓰는 계층이 다양하다. 그 사용이 매우 자연스러워 비어나 속어, 관용 표현 등이 활발하게 구사된다. 소설의 대화체, 설화, 민요와 같이 생활에서 이루어지는 구비문학에 많이 쓰인다. 이태영/전북대 교수·국어학 ***** 윤영환님에 의해서 게시물 카테고리변경되었습니다 (2008-10-14 00:05)
中原逐鹿(중원축록) 中(가운데 중) 原(근원 원) 逐(쫓을 축) 鹿(사슴 록) 한서(漢書) 괴오강식부( 伍江息夫)전과 사기(史記) 회음후(淮陰侯)열전의 이야기. 한나라 유방(劉邦)은 한신(韓信)의 도움으로 많은 승리를 거두게 되자, 한신을 제왕(齊王)으로 봉하였다. 당시 한신의 모사(謀士)로 있던 괴통은 한신에게 제위(帝位)를 차지하도록 종용하였다. 훗날, 모반죄로 처형되기 전, 한신은 내가 괴통의 말을 듣지 않아 오늘 이런 꼴을 당하게 되었도다. 라며 탄식하였다. 이 말에 유방은 즉시 괴통을 붙잡아 사형에 처하려 했다. 괴통은 일이 이미 이렇게 된 것을 보고 침착하게 말했다. 개는 그 주인을 따르는 법입니다. 당시 저는 한신만을 알았지, 폐하를 알지 못했습니다. 진나라가 중원에서 사슴을 놓치자 천하 사람들은 모두 이를 잡으려 하였는데, 능력이 뛰어난 사람이 먼저 천하를 차지하였던 것입니다(秦失其鹿, 天下共逐之. 高材者先得). 폐하와 다투던 자들이 모두 실패한 이 마당에 어찌 한신을 두려워 하십니까? 이합집산이 진행중인 정치권. 각종 비밀병기로 무장한 각 문파(門派)의 고수들이 한 마리의 사슴을 놓고 중원의 결전을 준비하고 있다. 이렇듯 中原逐鹿 이란 치열한 정권쟁탈을 비유한 말이다. ………………………………………………………………………………………………………………………………… [준말] 축록(逐鹿). [동의어] 각축(角逐). [유사어] 중원장리(中原場裡), 중원석록(中原射鹿). [출전]《史記》〈淮陰侯列傳〉 중원[天下]의 사슴[帝位]을 쫓는다는 뜻. 곧 ① 제위(帝位)를 다툼. ② 정권을 다툼. ③ 어떤 지위를 얻기 위해 서로 경쟁함. 한(漢)나라 고조(高祖) 11년(B.C. 196), 조(趙)나라 재상이었던 진희가 대(代:산서성) 땅에서 반란을 일으키자 고조는 군사를 이끌고 토벌에 나섰다. 그 틈에 진희와 내통하고 있던 회음후(淮陰侯) 한신(韓信)이 도읍 장안(長安)에서 군사를 일으키려 했으나 사전에 누설되어 여후(呂后:고조의 황후)와 재상 소하(蕭何)에게 모살 당하고 말았다. 이윽고 난을 평정하고 돌아온 고조는 여후에게 물었다. “한신이 죽기 전에 무슨 말을 하지 않았소?” “괴통의 말을 듣지 않은 것이 분하다고 하더이다.” 괴통은 제(齊)나라의 언변가로서 고조 유방이 항우와 천하를 다투고 있을 때 제왕(齊王)이었던 한신에게 독립을 권했던 사람이다. 그 후 고조 앞에 끌려 나온 괴통은 조금도 겁내는 기색 없이 당당히 말했다. “그때 한신이 신의 말을 들었더라면 오늘날 폐하의 힘으로도 어쩌지 못했을 것이옵니다.” 고조는 크게 노했다. “저놈을 당장 삶아 죽여라!” 그러자 괴통은 이렇게 항변했다. “폐하, 신은 전혀 삶겨 죽을 만한 죄를 진 적이 없나이다. 진(秦)나라의 기강이 무너지고 천하가 어지러워지자 각지에 영웅 호걸들이 일어 났사옵고, 진나라가 사슴[鹿:帝位]을 잃음으로 해서 천하는 모두 이것을 쫓았던[逐] 것이오며, 그중 키 크고 발빠른 걸물(傑物:고조 유방을 가리킴)이 이것을 잡았던 것이옵니다. 그 옛날 대악당인 ‘도척의 개가 요(堯) 임금을 보고 짖었다’고 해서 요 임금이 악인이라 짖은 것은 아니옵니다. 개란 원래 주인이 아니면 짖는 법이온데 당시 신은 오직 한신만 알고 폐하를 몰랐기 때문에 짖었던 것이옵니다. 그런데 천하가 평정된 지금 난세에 폐하와 마찬가지로 천하를 노렸다 해서 삶아 죽이려 하신다면 이는 도리에 어긋나는 일이옵니다. 통촉하시옵기를…‥.” 빈틈없는 항변에 할 말을 잃은 고조는 괴통을 그냥 놓아주지 않을 수 없었다. [주] 요 : 중국 고대의 이상적 성군(聖君). 도척 : 춘추 시대, 성인(聖人) 공자(孔子)와 같은 시대를 살다 간 같은 노(魯)나라 사람으로 큰 도둑. 도당 9000여 명과 늘 전국을 휩쓸며 같은 악행(惡行)을 일삼음으로 해서 대악당(大惡黨)의 대명사가 되었다고 함.
鶴立鷄群 (학립계군) 鶴(학 학) 立(설 립) 鷄(닭 계) 群(무리 군) 세설신어(世說新語) 용지(容止)편의 이야기다. 서진(西晉) 초기, 죽림칠현(竹林七賢)의 한 사람이었던 혜강의 아들 혜연조(延祖)는 인물이 준수하고 차림이 의젓하였다. 그가 진나라 혜제(惠帝)인 마충(馬衷)의 시중(侍中)으로 있을 때, 도성(都城)에 변란이 발생하였다. 당시 혜연조는 상황이 매우 심각하다고 판단하여, 위험을 무릅쓰고 궁으로 달려갔다. 궁문을 지키던 시위(侍衛)가 그를 향해 활을 쏘려고 하였다. 그때 시위관은 혜연조의 늠름하고 준수한 모습을 보고 활을 거두라고 명령하였다. 혜강의 친구이자 죽림칠현의 한 사람으로서 사도(司徒)의 직을 지냈던 왕융(王戎)은 사태가 수습된 뒤에 한 부하로부터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그날 혼란스러운 사람들 속에서, 혜연조의 크고 늠름한 모습은 마치 닭들의 무리속에 서 있는 학처럼 위풍이 있어서, 실로 사람으로 하여금 존경심을 갖게 하였습니다( 延祖卓卓如野鶴之在鷄 ). 鶴立鷄群은 군계일학(群鷄一鶴) 이라고도 하며, 재능이나 풍채가 출중한 인물 을 비유한 말이다. 정신없는 정치판과 경제판을 장악할 인물이 나타난다면, 바로 그는 한 마리의 학이 되는 것이다. ………………………………………………………………………………………………………………………………… . 군계일학(群鷄一鶴) 죽림칠현(竹林七賢) 중 위(魏)의 혜강의 아들로 혜소가 있었는데 10살 때 아버지를 여의고 홀어머니와 살고 있었다. 당시 죽림칠현의 한 사람으로 이부(吏部)에서 벼슬하던 산도(山濤)가 무제(武帝)에게 상주(常住)하였다. "《서경(書經)》에 아비의 죄는 아들에게 미치지 않으며 아들의 죄는 그 아비에게 미치지 않는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혜강은 도륙당했음) 비록 혜소는 혜강의 아들이나 그 슬기나 지혜는 뛰어납니다. 그에게 비서랑(秘書郞) 벼슬을 시켜 주십시오." "그대가 추천할 만한 사람이라면 승(丞)을 시켜도 좋을 듯하오." 이렇게 말하면서 무제는 비서랑보다 한 단계 높은 벼슬인 비서승(秘書丞)으로 혜소를 등용했다. 혜소가 처음으로 낙양(洛陽)에 들어갔을 때 어떤 사람이 칠현의 한 사람인 왕융(王戎)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다. "그저께 많은 혼잡한 군중 속에서 혜소를 처음 보았습니다. 그의 드높은 혈기와 기개는 마치 '닭의 무리 속에 있는 한 마리의 학[群鷄一鶴]'과 같더군요." 이 말을 듣고 왕융은 대답했다. "그것은 자네가 그의 부친을 애초부터 본 적이 없기 때문일 것이네." 【동의어】계군일학(鷄群一鶴) 《出典》'晉書(진서)' 혜소전
守株待兎 (수주대토) 守(지킬 수) 株(그루 주) 待(기다릴 대) (토끼 토) 한비자(韓非子) 오두편의 이야기다. 춘추시기, 송나라에 한 농부가 있었다. 하루는 밭에서 일을 하는데, 갑자기 토끼 한 마리가 급히 달려 오더니 나무 그루터기에 부딪혀 목이 부러져 죽는게 아닌가. 이 농부는 토끼를 거저 줍게 되자 기분이 매우 좋았다. 이날 이후, 농부는 쟁기를 풀어 놓고 하루종일 나무 그루터기 옆에서 다시 토끼가 달려와 나무에 부딪혀 죽기만을 기다렸다(因釋其 而守株, 冀復得 ). 하지만 몇날이 지나도록 나무에 부딪혀 죽는 토끼는 한 마리도 없었다. 그가 농사를 지었던 땅은 황폐해졌고, 나라 안의 사람들은 그의 어리석음을 비웃었다. 株란 본시 나무의 그루터기 를 뜻하지만, 지금은 증권시장의 핵심이 되었다. 홍콩, 동경, 뉴욕 할 것 없이 전세계의 주가(株價)가 폭락하고 있다. 나무와 기업의 밑둥인 株(?)가 흔들리고 있는 것이다. 이런 판국이라면 횡재를 꿈꾸었던 일부 투자가들은 토끼를 기다리는 농부처럼 그저 수주(守株) 하는 수밖에 없을 것 같다. 守株待 (trust to chance and windfalls) 란 변통을 모르거나 노력없이 요행만을 기대함 을 비유한 말이다. ………………………………………………………………………………………………………………………………… 송(宋)나라에 어떤 농부가 밭을 갈고 있었다. 갑자기 토끼 한 마리가 뛰어오다가 밭 가운데 있는 그루터기에 부딪쳐 목이 부러져 죽는 것을 보았다. 덕분에 토끼 한 마리를 공짜로 얻은 농부는 농사일보다 토끼를 잡으면 더 수지가 맞겠다고 생각하고는 농사일은 집어치우고 매일 밭두둑에 앉아 그루터기를 지키며 토끼가 오기만 기다렸다.[守株待兎] 그러나 토끼는 그곳에 두 번 다시 나타나지 않았으며 농부 자신은 송(宋)나라의 웃음거리가 되었다. 밭은 잡초만 무성하게 자라 농사를 망친 것은 물론이다. 宋人 有耕田者 田中 有株 ?走觸株 折頸而死 因釋其? 而守株 冀復得? ?不可不得 而 身爲宋國笑. 한비자(韓非子)는 요순(堯舜)을 이상으로 하는 왕도(王道) 정치는 시대에 뒤떨어진 생각이라고 주장하면서 이 수주대토(守株待兎)의 비유를 들었다. 그는 시대의 변천은 돌고 도는 것이 아니라 진화하는 것이라고 보고 복고주의(復古主義)는 진화에 역행하는 어리석은 착각이라고 주장하면서 낡은 관습을 지키며 새로운 시대에 순응할 줄 모르는 사상 또는 사람에게 이 수주대토(守株待兎)의 비유를 적용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