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와 저희 ‘우리’라는 낱말은 ‘나’를 싸잡아 여러 사람을 뜻하는 대이름씨다. 거기 여러 사람에는 ‘듣는 사람’이 싸잡힐 수도 있고 빠질 수도 있다. 이런 대이름씨는 다른 겨레들이 두루 쓰는 것과 다를 것이 없다. ‘우리’의 쓰임새가 남다른 것은 매김씨로 쓰일 때다. 매김씨라도 우리 마을, 우리 회사, 우리 어머니, 우리 아기 … 이런 것이면 남다를 것이 없다. 외동도 서슴없이 ‘우리 아버지’ ‘우리 어머니’라 하고, 마침내 ‘우리 아내’ ‘우리 남편’에 이르면 이것이야말로 남다르다. 그래서 그건 잘못 쓴 것이고 틀린 말이라고 하는 사람까지 있다. 그러나 매김씨 ‘우리’는 ‘나’를 싸잡은 여러 사람을 뜻하지도 않고, 듣는 사람을 싸잡지도 않고, 다만 나와 대상이 서로 떨어질 수 없이 하나를 이루는 깊은 사이임을 드러낼 뿐이다. 이것은 이 땅에서 뿌리 깊게 얽혀 살아온 우리 겨레의 자랑스러운 삶에서 빚어진 남다른 쓰임새다. 이런 ‘우리’의 낮춤말이 ‘저희’다. 그런데 ‘저희’를 쓰려면 마음을 써야 한다. 나를 낮추면 저절로 나와 함께 싸잡힌 ‘우리’ 모두가 낮추어지기 때문이다. 일테면, ‘저희 회사’라고 하려면 우선 말하는 사람이 회사에서 가장 손윗사람이라야 한다. 게다가 듣는 사람도 말하는 사람보다 더 손윗사람이라야 한다. 그러니 ‘저희 회사’ 같은 말도 쓸 사람과 쓸 자리가 아주 적다. 요즘 배웠다는 이들이 더러 ‘저희 나라’라고 하는데, 어처구니없는 소리다. 이런 말은 그 누구도, 그 누구에게도 쓸 자리가 없다. 김수업/우리말교육대학원장
다방구 요즘 아이들은 컴퓨터 게임을 하면서 놀지만, 1970년대까지만 하더라도 마당이나 운동장에서 땅따먹기, 비석치기(비사치기), 자치기 등을 하면서 놀았다. 요즘은 상황이 많이 달라지긴 했으나, 방안에서 하는 컴퓨터 게임보다는 운동장에서 여럿이 하는 놀이들이 갈수록 절실해진다. 전날 하던 아이들 놀이 가운데 ‘다방구’라는 게 있다. “어린 시절, 동네 공터에서 같은 또래의 어깨동무들과 어울려서 딱지치기, 다방구, 팽이치기, 구슬치기, 땅뺏기 등을 하며 놀던 추억이 아련하다.”(한국일보) “공기놀이에서도, 술래잡기에서도, 다방구에서도 서로 편을 갈라 아이들은 정해진 규칙에 따라 놀이를 하고 ….”(류승호 〈파라독스의 문화〉) 다방구는 술래잡기 놀이의 한가지다. 나무나 전봇대 같은 기둥을 중심으로 술래가 찾아낸 사람(포로)이 손을 잡고 길게 줄지어 서 있으면 술래가 찾아내지 못한 사람이 술래 몰래 ‘다방구’라고 소리치면서 잡은 손을 손으로 끊는 놀이다. 이때 잡고 있던 손이 끊긴 다음 사람부터 풀려나게 되는데, 손이 아닌 기둥을 치면서 ‘다방구!’ 하고 소리치면 기둥에 줄지어 서 있던 사람들이 모두 풀려나게 된다. ‘다방구’를 외치기 전에 술래가 모든 사람을 찾아내면 술래가 바뀌게 된다. 말이란 언중, 곧 사람들이 쓰지 않으면 소멸하게 된다. ‘다방구’라는 말의 어원은 좀더 짚어볼 필요가 있겠으나, 그 놀이 자체는 이어졌으면 한다. 한용운/겨레말큰사전 편찬부실장
몽골말과 몽골어파 어느 나라말이든 들온말(차용어)이 있다. 우리말에서도 고려 때 몽골 쪽에서 적잖은 말들이 들어왔다. 이는 시대상황을 반영하는데, 말·매와 같은 동물을 일컫는 말, 그리고 군사·음식에 관련된 말들이 주로 차용되었다. ‘가라말’(검은말), ‘간자말’(흰말), ‘고라말’(누런말), ‘구렁말’(밤색말), ‘서라말’(점박이말) 따위가 몽골말 차용어다. ‘송골매, 보라매’도, 임금의 밥을 뜻하는 ‘수라’도 몽골에서 들온말이다. 이렇게 우리말에 영향을 끼친 몽골말은 현재 몽골공화국에서 200만 남짓, 중국의 네이멍구자치구에서 500만 남짓이 쓰고 있다. 특히 몽골공화국에서 쓰는 말을 할하몽골말이라 한다. 몽골말은 위구르글자를 빌려 자기 말을 적었는데, 이것이 바로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세로쓰기를 하는 고유의 몽골글자다. 계통 분류로 보면, 몽골어는 알타이어족 몽골어파에 든다. 10세기 초 요나라를 세운 거란족의 말이 몽골어파의 옛말로 추정된다. 몽골어파는 현재 러시아와 중국 땅에 널리 분포하고 있다. 러시아 땅에는 부리야트말, 칼미크말이, 중국 땅에 다고르어, 몽구오르어, 보난어, 캉자어, 둥샹어, 동부유고어가 쓰이는데, 이 가운데는 사용 인구가 급격히 줄어들고 있는 말도 여럿 있다. 나이 든 사람들은 중국말이나 러시아말과 자기 말을 함께 쓰면서 살고, 젊은이들은 중국말이나 러시아말에 훨씬 더 친숙하여 모국어를 점차 잊어 가면서 살고 있다. 말이 사라지는 안타까움을 눈앞에서 보고 산다. 권재일/서울대 교수·언어학
훈훈하다 “아! 훈훈해. 대한민국 만세!” 감동적인 미담을 듣고 난 반응일까? 이는 최근에 장동건과 비가 함께 찍혀 화제가 된 소위 ‘직찍’(직접 찍어 올린 사진)을 보고 여성 누리꾼이 단 댓글이다. ‘미담’ 들은 뒤의 반응이 아니라 잘생긴 ‘미남’을 본 뒤의 반응인 셈이다. 풀이하면 ‘아! 멋있다. 우리나라에 이렇게 매력 있는 남자들이 있어서 참 좋아!’ 정도가 될 것이다. 본디 ‘훈훈하다’는 “방이 훈훈하다”처럼 날씨가 덥거나 온도가 높을 때, “인간적인 훈훈한 매력”처럼 마음을 부드럽게 녹여주는 따뜻함이 느껴질 때, “음식 냄새가 훈훈하게 풍기다”와 같이 향내가 감돌아 흐뭇할 때 쓴다. 처음에 ‘훈훈하다’와 ‘남자’를 합쳐 줄인 ‘훈남’이라는 말이 나왔을 때는 ‘훈훈하다’의 본뜻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따뜻한 인간적 매력을 풍기는 남자들을 가리켜 ‘훈남’이라 불렀고, 얼굴이 곱상한 ‘꽃미남’과 대립되는 말로 쓰였다. 매력 있는 남성의 기준이 외모에서 성품으로 바뀐다는 분석까지 나왔다. 마음이 따뜻한 이가 남자뿐인 것은 아니기에 ‘훈녀’도 생겼고, 본디말이 좀더 잘 드러나는 ‘훈훈남, 훈훈녀’도 함께 유행했다. 그런데 이제 ‘훈훈하다’라는 말은 ‘어떤 면에서 뛰어나다, 어떤 면에서 매력이 있다’라는 뜻의 새말이 되었다. “얼굴이 훈훈하다” “몸매가 훈훈하다”와 같이 쓰인다. 마음이 따뜻한 사람은 물론 다른 사람의 마음을 따뜻하게, 기분 좋게 해 주는 사람도 훈훈한 시대가 되었다. 김한샘/국립국어원 연구사
운율 고장말들이 서로 차이를 보이는 게 여럿 있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요소가 바로 ‘울림과 높낮이, 그리고 길고 짧음’이다. 이 요소가 지역마다 달라서 경상 방언에는 음의 높낮이가 뚜렷하고, 전라와 충청 방언에는 길고 짧음(장단)이 두드러진다. 시인이나 작가들은 지역 언어에서 익힌 이 고유한 운율로 저마다 고향의 정서를 표현한다. 시인 박목월은 〈사투리〉란 작품에서 “우리 고장에서는 오빠를 오라베라고 했다. 그 무뚝뚝하고 왁살스러운 악센트로 오오라베 부르면 나는 앞이 칵 막히도록 좋았다”라며 자신의 고장말을 통해 경상도 사람들의 정감과 심성, 그리고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형상화하고 있다. 미당 서정주는 시 〈화사〉에서 “사향 박하의 뒤안길이다. 아름다운 베암…을마나 크다란 슬픔으로 태여났기에, 저리도 징그라운 몸둥아리냐”라고 표현하면서 장음을 많이 사용하고 있다. 이는 정서적 현장감과 사실성을 나타내고자 쓰이고, 또한 운율과 관련되어 부드럽고 유연함을 더하고 있다. 김영랑의 시 〈누이의 마음아 나를 보아라〉에서는 “오매 단풍들것네”라는 전라 방언을 반복적으로 사용하면서 운율적인 효과를 잘 살리고 있다. 감탄사 ‘오매’를 ‘오오매, 오오오매’와 같이 음절을 늘리면서 자신의 감정을 전달하고 있다. 이처럼 시인들은 갖가지 비유뿐만 아니라 ‘오오라베, 베암, 오오오매’와 같은 고장말의 독특한 운율을 잘 활용하는 선수들이기도 하다. 이태영/전북대 교수·국어학 ***** 윤영환님에 의해서 게시물 카테고리변경되었습니다 (2008-10-14 00:05)
싸우다와 다투다 국어사전은 ‘싸우다’를 물으면 ‘다투다’라 하고, ‘다투다’를 찾으면 ‘싸우다’라 한다. 이들과 비슷한 ‘겨루다’도 있는데 그것도 ‘다투다’라고 한다. 참으로 국어사전대로 ‘싸우다’와 ‘다투다’가 서로 같고, ‘겨루다’는 ‘다투다’와 같다면 셋은 모두 같은 셈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세 낱말이 저마다 다른 모습으로 생겨나서 오늘까지 쓰이고 있겠는가? 본디 다른 뜻을 지니고 다른 모습으로 태어나 서로 달리 쓰였으나, 걷잡을 수 없는 세상 소용돌이를 살아오느라고 우리가 본디 뜻을 잊어버리고 헷갈리는 것일 뿐이다. ‘겨루다’는 일정한 가늠과 잣대를 세워놓고 힘과 슬기를 다하여 서로 이기려고 갋으며 맞서는 노릇이다. 맞서는 두 쪽이 혼자씩일 수도 있고 여럿씩일 수도 있지만 가늠과 잣대는 두 쪽을 저울같이 지켜준다. 한 쪽으로 기울지 않도록 바르고 반듯한 처지를 만들어주고 오직 힘과 슬기에 따라서만 이기고 지는 판가름이 나도록 하는 노릇이다. 놀이와 놀음의 바탕은 본디 겨루기에 있고, 그것을 가장 두드러지게 내세우는 것이 이른바 운동경기다. ‘싸우다’와 ‘다투다’는 둘 다 공평하도록 지켜주는 가늠과 잣대란 본디 없고 어떻게든 서로 이기려고만 하면서 맞서는 노릇이다. 그런데 ‘다투다’는 목숨을 걸지도 않고 몸을 다치게 하지도 않아서 거의 삿대질이나 말로써만 맞선다. ‘싸우다’는 다투는 것을 싸잡고 몸을 다치게도 할 뿐 아니라 마침내 목숨마저 떼어놓고 맞서는 이른바 전쟁까지도 싸잡는다. 김수업/우리말교육대학원장
과대포장 ‘지나침은 미치지 못함과 같다’는 뜻의 ‘과유불급’(過猶不及·논어)이란 ‘중용’(中庸)이 중요함을 일깨우는 말이다. ‘지나침’과 관련한 한자말에 ‘과대·과소’가 있다. 이는 ‘지나치게 크다’는 뜻과 ‘아주 작다’는 뜻으로 맞서는 듯하지만 ‘지나치다’를 큰 데도 작은 데도 적용한다는 점에서 조어상 문제가 있음을 알 수 있다. 말하자면 ‘과’(過)는 더하는 쪽에 어울리지 빼고 모자라는 쪽에는 어울리지 않는데, 이런 데서도 ‘말의 한계’를 본다. “어느 때부터인가 별 볼 것 없는 내용에 책표지만 화려한, 과대포장하고 인공 성형한 책이 늘어났다.”(〈한겨레21〉431호) “연극은 인간 심성의 과대포장의 산물이란 게 한결같은 내 주장이야.”(김원우, 〈짐승의 시간〉) 이처럼 한 낱말처럼 굳어져 쓰이는 말에 ‘과대평가’ ‘과대포장’이 있다. 과대평가는 사전에 오른 말이나 과대포장은 아직 오르지 않았다. 내용물에 견줘 포장재를 지나치게 써 부피를 늘리거나 필요 이상으로 화려한 장식을 덧붙인 것을 가리키는 말이다. 실제로는 이런 뜻에서 의미가 확대돼 “업적을 과대포장하다”, “선거 공약을 과대포장하다”, “인물이 과대포장되다”처럼 사실보다 과장하고 지나치게 부풀린 것을 일컫는 데 많이 쓰인다. 공산품이 늘어나고 경쟁 상품이 생기면서 상품을 필요 이상으로 포장하는 일이 많아진 1970년대 이후 생긴 말로서, 그런 현상과 함께 좀체 사라지지 않는 말이 되었다. 한용운/겨레말큰사전 편찬부실장
터키말과 튀르크어파 우리말에서 과거를 나타낼 때 용언이 양성모음이면 ‘았’을 쓰고 음성모음이면 ‘었’을 쓴다. ‘길을 막았다’에서 ‘막’의 ‘ㅏ’가 양성이어서 ‘았’이, ‘밥을 먹었다’에서 ‘먹’의 ‘ㅓ’가 음성이어서 ‘었’이 쓰였다. ‘아라/어라’도 마찬가지다. 이런 말소리 현상을 모음조화라 한다. 우리말에서는 소리흉내말에서 두드러진다. ‘촐랑촐랑, 출렁출렁’처럼 양성모음은 양성모음끼리, 음성모음은 음성모음끼리 서로 어울린다. 이런 모음조화 현상이 잘 지켜지는 말이 터키말이다. 터키말에서 복수는 ‘-lar, -ler’로 표현하는데, 이들은 명사에 어떤 모음이 있느냐에 따라 같은 소리를 가진 형태가 선택된다. araba-lar(자동차), ekmek-ler(빵)가 그렇다. 터키말은 우리말보다 더 철저하게 모음조화가 지켜지는 말이다. 이 터키말이 알타이어족 튀르크어파에 든다. 튀르크어파는 역사책에 돌궐로 적혀 있으며, 오래된 비석글이 남아 있을 정도로 역사가 깊다. 그 대표적인 언어가 터키말이고, 거기에서 동북쪽으로 시베리아 동쪽까지 올라가면서, 중앙아시아의 카자흐말·우즈베크말·키르기스말·투르크멘말을 비롯하여, 중국땅에 있는 위구르말·살라르말, 러시아 쪽 알타이말·추바시말·야쿠트말 등 모두 서른 남짓 말이 분포하고 있다. 정도 차이는 있지만, 서로 의사소통이 되기도 한다. 이들 언어를 쓰는 민족들은 대부분 터키언어권에 든다는 유대감이 강하다. 말을 통해 겨레의 유대감을 굳건히 하는 좋은 보기다. 권재일/서울대 교수·언어학
줄여 쓰는 말 ‘급한 질문’을 ‘급질’, ‘즐거운 감상’을 ‘즐감’ 등으로 줄여 만든 말이 젊은이들 사이에 유행하고 있다. ‘미자’는 중고등학생들이 미성년자인 자신들을 가리키는 말이고, ‘취뽀하다’는 ‘취직하다’와 같은 뜻이다. ‘취업 뽀개기’라는 인터넷 동아리 이름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줄임말을 젊은이들만 쓰는 것은 아니다. ‘줌마렐라’처럼 삼사십대 기혼 여성 직장인을 이르는 말도 있고, ‘황빠’처럼 특정인을 적극적으로 지지하는 이들을 가리키는 말도 있다. 부동산 거래와 관련한 비리를 신고해 보상금을 타는 ‘부파라치’나 신문 불공정 판매 행위를 신고해 보상금을 받는 ‘신파라치’와 같이 제도에서 비롯된 말들도 있다. 쓰던 말을 줄여서 새말을 만드는 방법에는 크게 세 가지가 있다. 유비쿼터스와 리포터가 합쳐진 ‘유포터’처럼 두 말이 녹아드는 융합형과 ‘미자’처럼 한 낱말이 줄여지는 축약형, 경제 활동 참가율에서 각 낱말의 첫글자만 살려쓰고 나머지는 버리는, ‘경활률’과 같은 탈락형이 있다. 아이엠에프 구제금융 이후 꼬리를 물고 생겨나는 ‘이태백’(20대 태반이 백수), ‘사오정’(사십오세 정년), ‘십장생’(10대도 장차 백수가 되는 것을 생각해야) 같은 말은 줄여 만든 말과 낯익은 말을 일치시켜 세태를 풍자한 유행어들이다. 말을 줄여서 쓰는 데는 언론도 한몫을 한다. 실제로 신문 제목이나 방송 자막 같은 데서 말수나 글자 수를 줄여 달 때가 잦은 까닭이다. 문제는 알아볼 수 있을 정도로 줄여야 한다는 점이다. 김한샘/국립국어원 연구사
복수 표준어 사투리이던 ‘멍게’를 ‘우렁쉥이’와 함께 표준어로 선정한 것은 “방언이던 단어가 표준어보다 더 널리 쓰이게 된 것은, 그것을 표준어로 삼는다”(표준어규정 23항)는 규정에 말미암는다. 또 “방언이던 단어가 널리 쓰이게 됨에 따라 표준어이던 단어가 안 쓰이게 된 것은, 방언이던 단어를 표준어로 삼는다”(24항)는 규정에 따라 ‘귀밑머리’를 표준말로 삼고 ‘귓머리’를 버렸다. 이처럼 표준어 규정은 많이 쓰이는 말을 표준어로 삼는 규정을 두고 있다. 표준어 규정에는 ‘복수 표준어’를 둘 수 있게 했다. 비슷한 형태를 모두 다 표준말로 인정하는 경우인데 이 경우에도 방언이 복수 표준어로 올라가는 경우가 있다. 부사 ‘얼렁뚱땅’과 ‘엄벙뗑’, 그 동사인 ‘얼렁뚱땅하다’와 ‘엄벙뗑하다’도 복수 표준어다. 문학 작품에 많이 쓰이는 ‘엄벙뗑하다’를 표준말로 삼은 것이다. ‘옥수수’도 사투리로 쓰이던 ‘강냉이’를 함께 표준어로 삼았다. 그런가 하면 ‘단수 표준어’ 규정에서는 방언을 버리고 하나만을 표준어로 삼고 있다. ‘국물’을 표준어로 삼고 전국적으로 많이 쓰이는 ‘멀국, 말국’은 버렸다. 그 규정이 들쭉날쭉이다. 표준어 규정을 개정할 때, 복수 표준어를 확대하여 지역에서 많이 쓰이는 고장말을 표준어로 인정하고 국민이 다양한 어휘를 골라 쓸 수 있도록 선택할 여지를 열어줘야 한다. 1988년에 제정된 표준어 규정을 정보화 시대에 걸맞으면서 지역 문화를 존중하는 방향으로 하루빨리 손질하기 바란다. 이태영/전북대 교수·국어학 ***** 윤영환님에 의해서 게시물 카테고리변경되었습니다 (2008-10-14 00: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