뚱딴지 ‘뚱딴지 같은 소리’라는 말은 일상에서 자주 쓰는 관용어다. 이때의 뚱딴지는 엉뚱하고 미련하고 뜬금없는 짓을 하는 사람을 일컫는다. 그런데 본디 ‘뚱딴지’는 식물 ‘돼지감자’의 다른 이름이다. ‘뚱-’은 ‘뚱하다’나 ‘뚱뚱하다’의 말뿌리일 것이며, ‘-딴지’는 ‘장딴지’에서와 마찬가지로, ‘불룩한’ 부분을 가리키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곧, ‘뚱하면서도 울룩불룩한’ 모습을 나타내거나, ‘뚱뚱이(돼지)가 먹는 울룩불룩한’ 식물임을 나타낸 이름이다. 실제로 뚱딴지는 모양이 울퉁불퉁하여 매우 다양하고, 크기와 무게도 갖가지여서 사람이 먹기보다는 주로 돼지사료나 알코올 원료로 쓴다. 이 말은 처음에는 울퉁불퉁 못생기고 뚱한 사람을 비유해서 쓰였을 테지만, 그 뜻이 점점 세어져 지금은 행동이나 사고방식이 느닷없거나 엉뚱한 사람을 가리킨다. 어린이들이 즐겨 읽는 만화 주인공 ‘명탐정 뚱딴지’는 엉뚱한 짓을 곧잘 하지만 그 엉뚱함으로 사건을 풀어나가기도 한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전기 절연체인 애자를 우리말로 순화했을 때 ‘뚱딴지’라고 했다는 점이다. 아마 전봇대에서 전기가 다른 물체로 통하지 않게 ‘엉뚱하게’ 끊기 때문인가 보다. 하지만 이름과는 달리 뚱딴지 꽃은 아주 예쁘다. 국화나 해바라기처럼 생겼으며, 한방에서는 뿌리를 국우(菊芋)라는 약재로 쓰는데, 열을 내리고 피를 멎게 하는 작용이 있다고 한다. 북녘말로는 ‘뚝감자’라고 한다. 임소영/한성대 언어교육원 책임연구원 [뚱딴지 꽃] [돼지감자]
괴다와 사랑하다 ‘사랑하다’는 말보다 더 좋은 낱말은 없다. 사랑한다는 말을 자주 들으면 사람이나 짐승이나 벌레나 푸나무까지도 힘이 솟아나고 삶이 바로잡힌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사랑하는 것이 그만큼 목숨의 바탕이기에 참으로 사랑하면 죽어도 죽음을 뛰어넘어 길이 살아남을 수 있다는 사실 또한 여러 사람들이 삶으로 보여주었다. 세상 모든 사람의 말꽃이나 삶꽃이 예나 이제나 사랑에서 맴돌고, 뛰어난 스승들의 가르침이 하나같이 서로 사랑하라고 부채질하는 까닭이 거기 있다. ‘사랑하다’와 비슷한 말에 ‘괴다’와 ‘귀여워하다’와 ‘좋아하다’가 있다. ‘귀여워하다’는 높은 데서 낮은 데로만 내려주는 마음이고, 내려주는 것으로 끝나기에 주는 쪽이나 받는 쪽이나 아무 거리낌이 없다. ‘좋아하다’는 높낮이 없는 자리에서 서로 주고받는 마음인데, 맞장구치며 주고받을 수 없으면 마음을 다칠 수도 있다. ‘사랑하다’는 본디 높낮이 없는 자리에서 서로 주고받으며 맞장구치지 못하면 마음을 다치는 것에서 좋아하다와 다를 바가 없으나, 좋아하는 것이 마음의 가장자리인 느낌과 생각에 머무는 것과는 달리 사랑하는 것은 몸과 마음과 얼까지 송두리째 주고받는 것이라 그 깊이에서 아주 다르다. ‘괴다’는 높낮이가 서로 다른 자리에서 귀여워하듯이 내려주기만 하는 마음이 아니라 사랑하듯이 주고받는 것이다. 어버이와 아들딸, 스승과 제자, 서낭과 사람 사이에서 서로 마음을 온전히 주고받는 것이지만 요즘에는 ‘사랑하다’에 모두 빼앗기고 쫓겨나는 신세가 되었다. 김수업/우리말교육대학원장
아프리카의 언어들 아프리카 대륙 북부에 있는 이집트·수단·리비아·알제리·모로코 등에서는 아랍말을 공용어로 쓴다. 본디 아프리카 중부와 남부에는 무수히 많은 토박이 언어들이 쓰였고 아직도 쓰이고 있으나, 식민 지배를 받으면서 이러한 토박이 언어가 점차 사라지고 프랑스어·독일어·영어가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어 아쉽다. 아프리카 토박이 언어는 몇 가지 말겨레로 분류한다. 차리-나일 말겨레, 나이저-콩고 말겨레, 코이산 말겨레가 큰 줄기다. 이 가운데 나이저-콩고 말겨레에 드는 스와힐리말·줄루말·요르바말, 그리고 코이산 말겨레에 드는 부시맨말·호텐토트말이 대표적이다. 스와힐리말은 동부 아프리카 토박이 언어의 대표적인 말로서 탄자니아와 케냐의 공식언어이며, 이 지역 여러 나라의 제2인어로서도 쓰여 분포가 넓은 편이다. 줄루말은 스와힐리말과 함께 반투어파에 드는데,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쓰인다. 요르바말은 주로 나이지리아에서 쓰인다. 코이산 말겨레에 드는 부시맨말과 호텐토트말은 남부 아프리카에 분포되어 있다. 이 말에는 ‘흡착음’이라는 말소리가 있어 유명하다. 숨을 들이쉬면서 소리를 내는 독특한 닿소리다. 한편,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쓰이는 아프리칸이라는 말이 있다. 이것은 영어와 함께 남아프리카공화국의 공용어다. 네덜란드말이 아프리카에서 사용되다가 조금씩 바뀌어 이제는 네덜란드말과는 완전히 다른 말이 되어 새로이 탄생한 말이다. 권재일/서울대 교수·언어학
‘돌미’와 ‘살미’ 서울 금천구 독산동이나 김포시 양촌면의 석산은 모두 ‘돌미’라 불리던 지역이었다. ‘돌미’에 들어 있는 ‘미’는 ‘산’을 뜻하는 ‘뫼’가 변한 말이다. 이처럼 산을 나타내는 말이 ‘미’로 변화한 땅이름은 매우 많다. 달이 뜨는 산을 뜻하는 ‘월출산’이나 ‘월악산’은 ‘달나미’, 또는 ‘달미’로 불린다. 그런데 ‘미’가 붙은 땅이름이라고 하여 모두 산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충북 중원(충주)의 ‘살미’는 산과는 관련이 없다. 여기에 붙은 ‘미’는 ‘들판’을 뜻하는 ‘가 변화한 말이다. ‘ 는 〈훈몽자회〉에도 나오는데, 한자 ‘야’(野)를 ‘ 야’로 풀이하였다. 또한 〈두시언해〉에도 ‘누른 흙 두듥엔 하늘 닭이 춤추놋다’라는 구절이 나온다. ‘뫼’와 ‘는 소리가 비슷해서 모두 ‘미’로 바뀔 수 있다. 이처럼 소리는 같으나 뜻이 다른 말을 동음이의어라 부른다. 흥미로운 사실은 일상의 언어생활에서는 동음이의어가 생겨날 경우, 뜻을 변별하기 위해 어느 한 낱말은 다른 말로 대체되어 쓰이는 경우가 많다는 점이다. 예컨대 ‘계절’을 뜻하는 ‘녀름’이 머릿소리규칙에 따라 ‘여름’으로 변화하면, 본디 있던 ‘여름’은 ‘열매’로 바뀐다. 그런데 땅이름에 나타나는 동음이의어는 이처럼 자유로운 변화를 보이지 못한다. 충북 제천에서는 ‘살미’를 ‘미산’이라 부르는데, 이 땅이름은 ‘쌀이 산처럼 쌓였다’는 전설보다는 ‘미’의 동음이의어를 구분하지 않고 사용한 데서 비롯된 것으로 볼 수 있다. 허재영/건국대 강의교수·국어학
올림과 드림 요즘은 전화와 문자메시지 같은 전자말에 밀려서 글말 편지가 나날이 자리를 빼앗기는 판세다. 하지만 알뜰한 사실이나 간절한 마음이나 깊은 사연을 주고받으려면 아직도 글말 편지를 쓰지 않을 수가 없다. 글말 편지라 했으나 종이에 쓰고 봉투에 넣어서 우체국 신세까지 져야 하는 진짜 글말 편지는 갈수록 밀려나고, 컴퓨터로 써서 누리그물(인터넷)에 올리면 곧장 받을 수 있는 전자말 편지가 나날이 자리를 넓히고 있다. 이들 진짜 글말 편지든 전자말 편지든 이제 편지를 쓰면 너나없이 ‘올림’과 ‘드림’을 자주 쓴다. 올림은 받는 사람이 높은 자리에 있다는 뜻으로 쓰는 말이고, 드림은 주는 것이 보잘것없어서 낮은 곳에 아무렇게나 슬쩍 들여놓는다는 뜻으로 쓰는 말이다. 받는 사람을 높이고 주는 이를 낮추는 뜻은 다를 바가 없지만 마음을 두는 곳이 서로 조금씩은 다른 셈이다. 글말 편지의 봉투 겉에 보내는 사람을 흔히 ‘아무개 올림’ 또는 ‘아무개 드림’이라 쓰고 봉투 속에 담긴 편지글 끝에도 마찬가지로 그렇게 쓴다. 봉투 겉에 쓰는 것은 봉투 속에 든 글을 하나의 물품으로 보고 그것을 올리거나 드리거나 한다는 뜻으로 쓰는 것이라 좋지만, 봉투 속에 든 글은 바로 말씀을 올리거나 드리는 것이므로 사정이 다르다. 말씀을 올리거나 드릴 적에 쓰는 우리말이라면 ‘사룀’과 ‘아룀’이 따로 있기 때문이다. 사뢰는 것은 속살과 속내를 풀어서 말씀드리는 것이고, 아뢰는 것은 모르시는 것을 알려 드리려고 말씀드리는 것이다. 김수업/우리말교육대학원장
무릎노리 남북의 표기가 다른 낱말 가운데 ‘관자놀이/관자노리’, ‘가슴놀이/가슴노리’가 있다. ‘놀이’와 ‘노리’로 표기가 다른 것은 낱말 짜임의 해석 차이에서 비롯되었다. 남녘말 ‘관자놀이’는 ‘맥박이 뛰는 곳, 맥박이 노는 곳’, 곧 ‘놀다’로 본 것이다. 북녘말 ‘관자노리’는 ‘관자의 언저리 부위’로 보아서 ‘복판의 언저리’를 뜻하는 접미사 ‘-노리’로 본 것이다. ‘가슴놀이/가슴노리’도 마찬가지다. 남북의 견해는 둘 다 나름대로 설득력이 있다. ‘무릎노리’는 <조선말대사전>에서 ‘다리에서 무릎 마디가 있는 자리’로 풀이했는데, ‘무릎의 언저리’로 이해할 수 있다. ‘마디’가 ‘길쭉한 물체에서 잘록하게 들어가거나 불룩하게 도드라진 곳’을 뜻하므로 ‘무릎노리’는 무릎과 무릎 뒷부분을 아울러 가리키게 된다. 북녘말 ‘어깨노리’는 ‘어깨의 언저리’, ‘허리노리’는 ‘허리의 언저리’다. 남북에서 같이 쓰는 ‘배꼽노리’는 ‘배꼽의 언저리’다. “무릎노리까지 눈이 쌓이다.”(조선말대사전) “최덕삼은 견장을 뗀 군복외투 어깨노리를 서운한 눈길로 더듬어보더니 …”(중편소설 <호수에 노을 비낀다>) “강물은 얕아져서 허리노리까지밖에 오지 않았다.”(조선말대사전) 어깨·허리·배꼽은 맥박이 뛰는 부위가 아니므로 ‘어깨놀이, 허리놀이, 배꼽놀이’로 쓸 수는 없겠다. ‘무릎놀이’라는 말은 없지만, 무릎의 뒷부분만을 가리킬 수도 있겠다. 무릎 뒷부분에서도 맥박이 뛰기 때문이다. 김태훈/겨레말큰사전 자료관리부장
아랍말과 히브리말 아시아 서쪽 아라비아반도와 아프리카 북부지역에 걸쳐 널리 퍼진 말겨레가 셈말겨레라 한다. 셈말겨레는 다시 북서부와 중남부로 나뉘는데 북서부의 대표적인 말이 히브리말이며, 중남부의 대표적인 말이 아랍말이다. 히브리말은 본디 팔레스타인을 중심으로 사용된 성경 언어로서 오랫동안 유대교의 문자언어로 유지해 오다가 19세기 말에 일상언어로 부활했으며, 1948년 이스라엘이 서면서 이스라엘의 공용어가 되었다. 아랍말은 이슬람의 성전 코란 언어로 확립된 7세기부터 종교적 발전과 더불어 분포지역을 크게 확대하였으며, 현재는 사우디아라비아를 비롯한 아라비아반도의 여러 나라와 이집트·수단·리비아·알제리·모로코 등 북아프리카 여러 나라에서 공용어로 쓰인다. 같은 말겨레에 딸린 까닭에 아랍말과 히브리말은 공통점이 많다. 이들 말은 대체로 세 자음이 한 형태소를 이루고, 그 안에 들어 가는 모음에 따라 여러 낱말로 파생되기도 하며 문법 기능을 수행한다. 예를 들어 아랍말에 ‘k-t-b’라는 어근이 있는데, 여기에 ‘-i-a-’가 들어간 ‘kitab’는 책이고, ‘a-i-’가 들어간 ‘katib’는 서기라는 뜻이다. 그리고 글자를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가로로 쓰는 특징도 두 언어가 같다. 종교적으로 또 정치적으로 대립과 싸움이 끊이지 않는, 물과 기름 같은 사이인 이스라엘과 아라비아권의 언어가 같은 계통인 셈말겨레에 든다는 것은 흥미로운 일이다. 권재일/서울대 교수·언어학
별내와 비달홀 뜻이 같은 한자말과 토박이말이 합친 말이 많다. ‘역전앞’이나 ‘처가집’이 대표적인 경우다. 언어학자들은 같은 뜻을 합쳐 이룬 낱말은 말의 경제적인 차원에서 불합리한 것으로 생각되므로 적절한 말이 아니라고 한다. 따라서 ‘역전’이나 ‘처가’로 써야 바른 표현이라고 한다. 그런데 한자말과 토박이말의 합성어가 전혀 새로운 말을 만들어낼 때도 있다. 예를 들어 ‘족발’은 ‘족’(足)이나 ‘발’만으로는 뜻을 전할 수 없다. 왜 그럴까? 그것은 비록 ‘족’과 ‘발’이 같은 뜻일지라도 두 말이 합치어 새로운 대상을 가리키는 말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옛말 가운데는 ‘별’과 ‘낭’이 그런 보기에 해당한다. 전남 승주군에 있었던 ‘별량(별애)부곡’이나 <삼국사기>에 보이는 ‘압록수 이북의 미수복 지역’ 땅이름인 ‘비달홀’(비탈골)에 들어 있는 ‘별애’와 ‘비탈’은 비스듬한 모양의 지형을 나타내는 말이었다. 우리 옛말에는 ‘별’과 ‘낭’은 비슷하지만 다른 뜻의 말이었다. <동국신속 삼강행실도>의 “ㅈ.식을 업고 낭의 떨어져 죽으니라”라는 구절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낭’은 ‘절벽’을 뜻하며, <동동>의 “6월 보름에 별헤 ㅂ.룐 빗 다호라”에 나오는 ‘별’은 절벽보다는 덜 가파른 비스듬한 지역을 나타낸다. 이 두 말이 합쳐서 ‘벼랑’이라는 말이 된 것이다. 특히 ‘별’은 물을 뜻하는 ‘내’나 ‘고개’를 뜻하는 ‘재’와 어울려 땅이름으로 쓰이는 경우가 많다. 깅기 남양주의 ‘별내’나 강원 통천의 ‘별재’는 이런 땅이름이다. 허재영/건국대 강의교수·국어학
으악새 오래된 유행가 가운데 가을이 되면 애절하게 가슴을 적시는 “아 아~ 으악새 슬피 우니 가을인가요 …”(‘짝사랑’) 하는 노랫말에서 ‘으악새’가 나온다. 이를 ‘새’(鳥)로 아는 이들이 많은 듯하다. 2절에서 ‘뜸북새’도 슬피 운다 하니 더욱 그럴싸하다. 실제로 정재도님은 그것이 물과 관계가 있으며, 봄에 우리나라에 와 논·강·호숫가에서 살다가 가을에 돌아가며 슬피 우는 ‘왜가리’를 일컫는다고 밝힌 바 있다. ‘짝사랑’에 나오는 ‘으악새’와 상관없이 풀이름 ‘억새’의 경기 사투리로 ‘으악새’가 있고, 억새의 옛말에 ‘어웍새’가 있는 것을 보면, 풀이름과 ‘으악새’의 인연도 깊은 듯하다. ‘새’는 우리가 흔히 동물 이름 ‘○○새’를 떠올리지만, 식물 이름 ‘○○새’도 꽤 있다. 그냥 ‘새’라는 풀도 있고, ‘억새’의 준말이 ‘새’이기도 하다. 또한 볏과식물을 통틀어 이르는 말이기도 한데, ‘기름새/ 나래새/ 드렁새/ 들묵새/ 물뚝새/ 쌀새/ 솔새/ 수수새/ 장고새 …들이 있다. ‘방울새’는 새이름이기도 하지만 풀이름이기도 하고, ‘오리새/ 꼬리새/ 호오리새’ 역시 새이름 아닌 풀이름이다. 주변에 19세기 프랑스 폴 베를렌의 시 〈가을의 노래〉 중 “가을날 비올롱의 긴 흐느낌은 ~”에서 ‘비올롱’을 바이올린이 아닌, 세상에서 가장 슬피 우는 새로 잘못 알고 그 감정에 푹 빠져서 불문학을 전공해 교수가 되셨다는 분이 있다. 착각에 힘입은 감동이라도 가끔씩은 개입하는 게 삶의 모습이란 생각이 든다. 임소영/한성대 언어교육원 책임연구원
까닭과 때문 요즘 ‘까닭’과 ‘때문’은 뜻이나 쓰임새가 한결같다. 국어사전을 보면 ‘까닭’은 “일이 생기게 된 원인이나 조건”이라 하고, ‘때문’은 “어떤 일의 원인이나 까닭”이라 한다. 뜻이 같다는 풀이다. 쓰임새도 마찬가지다. “소 살 돈을 노름해서 잃은 까닭으로 벼를 찧어 팔아서 ….”(이기영 <서화>) “장수 한 명이 갈린 때문으로 해서 이렇게 참패가 될 줄은 ….”(박종화 <임진왜란>) 예시한 ‘까닭’과 ‘때문’은 쓰임새에서도 아주 같다. 그러나 ‘까닭’은 이름씨고, ‘때문’은 매인이름씨(의존명사)다. 매인이름씨 ‘때문’은 이름씨 ‘까닭’처럼 아무데나 쓰지 못하고 이름씨·대이름씨·이름꼴 ‘~기’ 뒤에만 매어서 쓴다. ‘감기 때문에’는 이름씨 뒤, ‘너 때문에’는 대이름씨 뒤, ‘어둡기 때문에’는 이름꼴 ‘~기’ 뒤에 썼다. 이름씨·대이름씨·이름꼴 ‘~기’ 뒤에만 매어서 쓴다는 것은 ‘때문’이 본디 토씨였다는 뜻이다. 토씨가 뒤에다 토씨를 붙이며 이름씨 노릇까지 해서 매인이름씨가 되었는데, 육이오 즈음부터는 아예 이름씨 노릇을 하려고 나섰다. 일테면 앞에 보인 ‘갈린 때문으로’는 ‘ㄴ’ 뒤, ‘먹은 때문에’는 ‘~은’ 뒤, ‘아는 때문에’는 ‘~는’ 뒤, ‘가던 때문에’는 ‘~던’ 뒤에 썼다. 이처럼 ‘ㄴ’, ‘~은’, ‘~는’, ‘~던’ 같은 매김꼴 뒤에 쓰면 매어서 쓴 것이 아니라 아예 이름씨로 쓴 것이다. 하지만 ‘때문’을 매김꼴 뒤에 이름씨로 써보면 아직도 어설프고, 이름씨·대이름씨·이름꼴 ‘~기’ 뒤에 매인이름씨로 써야 제격이다. 김수업/우리말교육대학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