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만강과 여진어 언어 접촉은 땅이름에도 그 흔적을 남긴다. 일본의 ‘고마현’이 백제의 ‘웅진’과 관련이 있듯이, ‘두만강’도 여진어의 잔재임은 널리 알려져 있다.〈용비어천가〉에는 ‘두만강’을 풀이하면서, “여진의 속어로 만(萬)을 두만(豆漫)이라 부른다”는 설명을 덧붙이고 있다. 여진어 모습을 담고 있는 땅이름은 꽤 여러 가지다. 이기문 교수는 〈세종실록지리지〉를 고찰하면서, 함북 종성의 유래를 살핀 바 있다. 지리지 기록에 “호인(여진)들은 종을 일컬어 동건(童巾)이라 했는데, 부내에 동건산이 있어 그로부터 종성이라는 이름이 생겼다”고 했다. 또한 “동건산은 종성부 북쪽에 있는데, 종을 엎어놓은 형상으로 그 위에는 돌로 쌓은 성이 있고, 성안에는 연못이 있다”고 풀이했다. ‘동건’은 때로 ‘동관’(潼關)으로 적을 때도 있는데, 여진어로는 ‘퉁건’이다. 그런데 ‘퉁건’은 본디 ‘북’을 뜻하는 말이었다. 이에 해당하는 우리말은 ‘쇠붑’이다. 곧 ‘북’을 뜻하는 ‘동건’이 ‘종’으로 옮겨지면서 ‘종성’이라는 땅이름을 남겼는데, 이는 ‘북’과 ‘종’을 뒤섞어 쓰는 풍습이 있었기 때문으로 보인다. 이 밖에 여진어의 땅이름으로 경성의 다른 이름인 ‘우롱이’ 또는 ‘목랑고’, 마천령의 옛날 이름인 ‘이판대령’ 등도 있다. 야인이 ‘소’를 ‘이판’이라 불렀다는 기록이나 여진어에서 ‘거울’을 뜻하는 ‘무러구’란 말이 있었던 것을 보면, 비록 겨레는 흩어지고 문화는 흐려졌을지라도 언어의 흔적은 끊임없이 남아 있음을 알 수 있다. 허재영/건국대 강의교수·국어학
광대수염 탈놀이·줄타기·땅재주·판소리 등 연예를 하는 예능인을 통틀어 이르던 우리말에 ‘광대’가 있다. 요즘은 재주가 많은 연예인들이 대접받는 시대지만, 직업에서 귀천의식이 드셌던 옛날에 광대는 천한 존재로 여겼다. 동식물에 광대라는 말이 붙으면서도 이런 의식이 작용해서 그 실체도 대체로 울긋불긋하거나 우스꽝스런 모습을 보인다. 동물에는 ‘광대노린재/ 광대박쥐/ 광대파리/ 광대하늘소 …’들이 있고, 식물이름에서는 ‘광대나물/ 광대싸리/ 광대버섯 …’들이 있다. ‘광대수염’은 꽃잎의 알록달록한 점이 광대를, 꽃받침의 가장자리에 뾰족한 가시가 수염을 연상시켜서 붙은 이름이다. 그런데 점도 아름답거나 우아하지 않고, 수염이라고 떠올린 부분도 삐죽삐죽하여 점잖은 모습이 아니다. 북녘말로는 ‘꽃수염풀’이다. 사람 모습이나 신분에서 따온 풀꽃이름으로는 이 밖에도 ‘양반풀/ 각시꽃/ 기생초/ 할미꽃/ 처녀치마/ 선녀고사리/ 미치광이풀/ 바보여뀌 …’들이 있다. 우리는 어린순을 나물로 먹기도 하는데, 영국 방송 〈비비시〉(BBC)가 만든 ‘식물의 사생활’을 보면, 광대수염은 가시에 침과 독물이 있는 유럽쐐기풀과 비슷한데, 동물들은 먹지 않는다고 하니 그 생존본능도 신기하다. 영화 ‘왕의 남자’에서 광대의 삶을 새롭게 보고, 진심으로 예인으로 인정하는 시각을 갖게 되었다. 얼룩덜룩하고 우스우면서도 가끔씩 슬프기도 한 삶에서 누군들 광대 아닌 사람이 있으랴! 임소영/한성대 언어교육원 책임연구원 [광대수염]
춥다와 덥다 ‘덥다’와 ‘춥다’는 살갗으로 바깥세상을 받아들이면서 느끼는 바를 드러내는 그림씨 낱말이다. ‘덥다’는 여름 하지를 꼭짓점 삼아 봄과 가을 쪽으로 쓰이는 여러 낱말을 거느리고, ‘춥다’는 겨울 동지를 꼭짓점 삼아 봄과 가을 쪽으로 쓰이는 여러 낱말을 거느린다. 덥다 쪽에는 다스하다, 다습다, 드스하다, 드습다, 따갑다, 따끈하다, 따끈따끈하다, 따뜻하다, 따사롭다, 따스하다, 따습다, 뜨겁다, 뜨끈하다, 뜨끈뜨끈하다, 뜨듯하다, 뜨뜻하다, 뜨뜻미지근하다, 뜨스하다, 뜨습다, 매작지근하다, 매지근하다, 맹근하다, 무덥다, 미지근하다, 밍근하다, 웅신하다, 후덥지근하다, 훗훗하다 같은 낱말이 줄을 지어 있다. 춥다 쪽에는 사느랗다, 사늘하다, 살랑하다, 서느렇다, 서늘하다, 선선하다, 설렁하다, 시원하다, 실미지근하다, 싱겅싱겅하다, 싸느랗다, 싸늘하다, 쌀랑하다, 써느렇다, 써늘하다, 썰렁하다, 차다, 차갑다, 차끈하다, 차디차다 같은 낱말이 줄을 지어 있다. 이들 ‘덥다’와 ‘춥다’ 무리 낱말은 저마다 두 갈래로 나뉜다. 덥다 무리는 ‘덥다’에서 자라난 낱말과 ‘뜨겁다’에서 자라난 낱말의 두 갈래로 나뉘고, 춥다 무리는 ‘춥다’에서 자라난 낱말과 ‘차갑다’에서 자라난 낱말의 두 갈래로 나뉜다. 앞쪽의 ‘덥다’와 ‘춥다’는 저마다 받아들이는 사람의 느낌에 뿌리를 두는 낱말이고, 뒤쪽의 ‘뜨겁다’와 ‘차갑다’는 저마다 바깥세상의 온도에 뿌리를 두는 낱말이다. 그러므로 앞에서 보인 여러 낱말을 사람의 느낌에 뿌리를 내린 무리와 바깥세상의 온도에 뿌리를 내린 무리로 다시 간추려 줄을 세워볼 수도 있다. 김수업/우리말교육대학원장
물어름 ‘물어름’은 ‘갈라져 흐르던 강과 강, 내와 내가 합쳐지는 곳’을 말한다. “만경대초가집 앞으로는 순화강이 대동강과 합치는 물어름이 보이고 뒤로는 청청한 소나무숲이 우거졌다.” 〈조선말대사전〉 물어름은 남북이 모두 쓰는 ‘어름’과 물이 결합하여 물과 관련된 말로 뜻이 한정된 것이다. 어름은 ‘무엇이 맞닿은 자리’를 말하는데 정확한 어느 지점이라기보다는 맞닿은 자리 근처를 대강 일컫는다. 어름이 시간과 쓰이면 ‘무렵’의 뜻으로 쓰이고, 무엇이 맞닿은 곳이 아닌 장소에 쓰이면 ‘근처’의 뜻으로도 쓰인다. 남녘말 ‘장터어름’은 ‘장이 서는 넓은 터 부근’을 말한다. “눈두덩이와 광대뼈 어름에 시커먼 멍이 들었다.” 〈표준국어대사전〉 “한길에서 공장 신축장으로 들어가는 어름에 생긴 포장마차가 둘 있었다.” 〈황순원·신들의 주사위〉 “등교 때나 퇴교 때 같으면 규율부가 나와 있어 연락이 가능했지만 목요일의 오후 세 시 어름은 그러기에도 어중간한 시간이었다.” 〈이문열·변경〉 강과 강이 합쳐지는 곳이라면 경기도 양평군에 있는 양수리(兩水里)를 떠올릴 수 있다. 이곳은 남한강과 북한강이 합쳐지는 곳이다. 그런데 ‘양수’는 물어름의 뜻으로 쓰이지 않고, ‘합수’(合水)를 쓴다. 남부 지역에 ‘합수’로 불리는 골짜기·마을·내 등이 여러 곳 있는데, 모두 물어름에 해당하는 곳이다. 김태훈/겨레말큰사전 자료관리부장
바스크말 친족 관계에 있는 말이 전혀 없어 어떤 말겨레에도 들지 않는 말을 언어학에서는 흔히 소속불명어 또는 고립어라 한다. 처음부터 고립어인 경우도 있고, 친족 관계에 있던 말들이 모두 사라지고 홀로 남아 고립어가 되기도 한다. 처음부터 고립어인 대표적인 소속불명어가 바로 바스크말이다. 바스크말은 프랑스와 스페인의 국경인 피레네산맥 서부 끝자락과 대서양 연안의 비스케이만 해안지방에서 사용된다. 라틴 말겨레에 드는 프랑스말과 스페인말 틈에 끼여 있지만, 이들과는 전혀 계통이 다르다. 그간 바스크말의 뿌리가 무엇인지 연구가 꾸준히 이어졌지만, 아직 분명하게 밝혀지지 않고 있다. 바스크말로 된 책은 16세기에 처음 출판되었으며 19세기 말부터 바스크어로 된 문학작품들도 활발히 나왔다. 현재 바스크말을 쓰는 인구는 수십만 명이 되지만 방언 차가 매우 크다. 최근에는 표준말을 제정하려는 움직임이 활발하다. 그리고 바스크말은 바스크 자치지역 안에서는 공식 언어로 사용되지만, 사회 전반적으로 교육·출판·방송에서 스페인말이나 프랑스말 지식이 요구되는 현실이어서 바스크말을 지키고자 무척 힘쓰고 있다. 바스크말의 모음은 ‘이·에·우·오·아’ 다섯이며, 형용사는 꾸미는말 뒤에 놓이고, 명사의 단수·복수 구분은 있으나 남성·여성 구분이 없다. 문장은 우리말처럼 주어-목적어-서술어 차례로 놓이지만, 이동이 자유로운 편이다. 권재일/서울대 교수·언어학
백두산 땅이름이나 사람 이름 가운데는 서로 다른 이름처럼 보이나 실제로는 같은 뜻을 갖고 있는 이름이 많다. 백제를 건국한 온조는 아버지 주몽왕이 북부여에서 낳은 유리를 태자로 삼자 형인 비류와 함께 남으로 내려와 나라를 세웠는데, 그 이름이 ‘십제’(十濟)였다. 〈삼국사기〉 백제본기에 나오는 이 기록에서 우리는 ‘온조’(溫祚), ‘십제’, ‘백제’(百濟)라는 사람 이름과 나라 이름을 확인할 수 있다. 그런데 이 세 이름은 같은 대상을 뜻한 것으로 볼 수 있다. 한자어 ‘백’(百)에 해당하는 우리말로 ‘온’이 있으며, ‘십’(十)에 해당하는 말은 ‘열’이기 때문이다. 곧 ‘백제’와 ‘십제’는 ‘온제’와 ‘열제’에 해당하는 한자말이다. 다만 ‘온’과 ‘열’이 어떤 관계에 있을지에서는 확실한 답을 구하기 어렵다. 그러나 삼국시대의 국어 모음에서는 ‘오’와 ‘여’가 비슷한 음으로 소리 났을 수도 있다. 백두산의 다른 이름인 ‘개마산’(蓋馬山)이나 ‘불함산’(不咸山)도 마찬가지로 볼 수 있다. 최남선은 ‘불함’이 ‘밝음’을 뜻하는 우리말이라고 풀이한 바 있는데, ‘밝음’이나 ‘흰색’은 의미상 밀접한 관련을 맺는다. 황윤석의 〈화동방언자의해〉에서 ‘개’는 ‘희’의 음이 변화한 것이며, ‘마’는 ‘마리’, 곧 한자어 두(頭)와 같은 뜻이라는 해석은 ‘개마산’과 ‘백두산’이 같은 뜻의 말임을 증명한다. 고려 때까지의 문헌에서는 보이지 않던 ‘장백산’이라는 이름이 후대에 나타난 것을 보더라도 백두산은 우리의 고유 명산이었음이 틀림없다. 허재영/건국대 강의교수·국어학
패랭이꽃 ‘패랭이꽃’은 길가 풀밭이나 냇가 모래땅, 묏자리 근처 등에서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는데, 꽃을 뒤집으면 옛날에 역졸, 부보상들이 쓰던 패랭이처럼 생겼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다. 한자어로는 석죽(石竹)이라고 하는데, 이는 바위틈 같은 메마른 곳에서도 잘 자라고, 대나무처럼 줄기에 마디가 있어서 붙은 이름이다. 패랭이꽃은 우리나라가 원산지여서 자라는 곳이나 모양에 따라 이름도 많다. 바닷가에 자라는 ‘갯패랭이꽃’, 구름이 떠 있는 높은 산에서 자라는 ‘구름패랭이꽃’, 백두산에서 자라는 키가 작은 ‘난장이패랭이꽃’, 울릉도에서 자라는 ‘섬패랭이꽃’, 꽃잎이 붉은 ‘각시패랭이꽃’, 꽃잎이 술처럼 잘게 갈라진 ‘술패랭이꽃’, 꽃받침을 둘러싼 부분이 수염처럼 생긴 ‘수염패랭이꽃’ 들이 있다. ‘패랭이꽃’ 이름에서는 거추장스럽거나 거들먹거리지 않는 실용적인 모자를 쓰고, 바지런하게 생활하던 옛사람의 일상을 느낄 수 있다. 이처럼 옛날 우리의 생활 모습을 찾아볼 수 있는 풀꽃이름으로는 ‘달구지풀/ 작두콩/ 병풍나물/ 삿갓나물/ 요강나물/ 족두리풀/ 비녀골풀/ 투구꽃/ 갈퀴나물 …’ 들이 있다. 화려하지 않고 평범하며, 귀하지 않고 뽐내지 않아 친근함을 느껴서 그런지 소박한 삶과 마음을 패랭이꽃과 함께 쓴 글이 많다. ‘삶이란 것은/ 자꾸만 눈에 밟히는 패랭이꽃’이라는 류시화의 최근 시(패랭이꽃)를 되뇌어본다. 임소영/한성대 언어교육원 책임연구원 [패랭이꽃]
돕다와 거들다 ‘돕다’와 ‘거들다’ 같은 말도 요즘은 거의 뜻 가림을 하지 않고 뒤죽박죽으로 쓰인다. 국어사전들이 ‘돕다’를 찾으면 거드는 것이라 하고 ‘거들다’를 찾으면 돕는 것이라고 하니까 이런 뒤죽박죽이 바로잡힐 길조차 없다. 이들 두 낱말은 서로 비슷한 뜻을 지녀서 얼마쯤 겹치는 구석이 있지만 여러 가지 잣대에서 쓰임새와 뜻이 사뭇 다르다. 우선 ‘돕다’는 사람에 쓰이는 낱말이고 ‘거들다’는 일에 쓰이는 낱말이다. 사람을 돕고 일을 거든다고 하면 쓰임새가 옳지만 일을 돕고 사람을 거든다고 하면 쓰임새가 틀렸다. 또 ‘돕다’는 몸과 마음으로 주는데, ‘거들다’는 몸으로만 주는 것이다. 돕는 것은 지니고 가진 것을 모두 다해서 주지만 거드는 것은 몸에서 나오는 힘으로만 주는 것이다. 그래서 ‘돕다’는 주고받는 것이지만 ‘거들다’는 주기만 하는 것이기도 하다. 돕는 것은 두고 보면 주는 쪽이나 받는 쪽이나 서로 도움이 되기 마련이지만 거드는 것은 주는 쪽에서는 주기만 하고 받는 쪽에서는 받기만 하면 그만이다. 넷째로 ‘돕다’는 주는 쪽에서 열쇠를 쥐고 있지만 ‘거들다’는 받는 쪽에서 열쇠를 쥐고 있다. 돕는 것은 받는 쪽에서 달라니까 주는 것이 아니라 주는 쪽에서 주려고 해서 주는 것이고, 거드는 것은 주는 쪽에서 주려고 해서 주는 것이 아니라 받는 쪽에서 달라니까 주는 것이다. 그래서 ‘돕다’는 언제나 어디서나 주고받을 수 있도록 열려 있지만 ‘거들다’는 지금 벌어진 일에 갇혀서 주고 나면 끝난다. 김수업/우리말교육대학원장
노박비 ‘노박비’는 ‘순간도 끊어지지 않고 줄곧 내리는 비’를 말한다. ‘노박’은 무슨 말일까? 남북이 같이 쓰는 말로 ‘노박이로’가 있는데, ‘줄곧 계속적으로’란 뜻이다. 북녘에서는 ‘노박’을 ‘노박이로’와 같은 뜻으로 쓴다. “노박비를 맞다.”(조선말대사전) “아사녀도 팽개와 싹불이가 인제 노박이로 와 있다는 말에 마음이 얼마나 든든한지 몰랐다.”(현진건·무영탑) “아무리 젖은 몸이지만 비를 노박 맞는다는것은 기분 좋은 일이 못된다.”(조선말대사전) ‘노박’은 남녘에서 쓰이지 않을까? 그렇지 않다. 21세기 세종계획 ‘방언 검색 프로그램’을 보면, 강원도에서 쓰이고 있고, <우리말큰사전>에도 북녘말과 같은 뜻으로 실렸다. <표준국어대사전>에 ‘노박’은 없지만 충청도 방언 ‘노박이’가 있다. ‘한곳에 붙박이로 있는 사람’의 뜻이다. ‘노박이’는 ‘노박-이’나 ‘노-박-이’로 볼 수 있다. ‘노’는 ‘노상’의 줄임말, ‘박’은 ‘박히다’의 어간, ‘-이’는 사람을 나타내는 뒷가지다. ‘노-박이’로 볼 수도 있는데, ‘-박이’는 ‘점박이’와 같이 ‘무엇(앞의 명사)이 박혀 있는 사람’의 뜻으로 쓰이기에 적절치 않다. ‘노박이’가 ‘노상이라는 것이 박힌 사람’으로 해석되지 않기 때문이다. ‘퍼붓듯이 많이 내리는 비’를 나타내는 말로 남북이 같이 쓰는 ‘장대비·억수·작달비’, 북녘에서 쓰는 ‘뚝비·무더기비·억수비·줄비·채찍비’ 등이 있다. 김태훈/겨레말큰사전 자료관리부장
우랄 말겨레 알타이 말겨레만큼이나 우리에게 익숙한 말겨레가 바로 우랄 말겨레다. 전날 우리말 계통을 말할 때 흔히 우랄-알타이 말겨레라고 한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랄 말겨레와 알타이 말겨레는 문법 구조가 비슷하기는 하지만 계통적으로는 서로 다른 말겨레다. 우랄 말겨레에 드는 대표적인 말은 핀란드말과 헝가리말이다. 핀란드 겨레는 먼 옛날 남부 우랄 지역에서 서북쪽으로 이동하여 발트해를 건너 지금의 핀란드에 정착한 것으로 본다. 핀란드말을 스스로는 ‘수오미말’이라 한다. 스웨덴말이나 러시아말에서 문화어를 빌려쓰기도 하였지만, 비교적 순수한 우랄말의 특징을 지키고 있다. 19세기 초까지 핀란드에서는 스웨덴어가 공식어로 쓰이다가, 1835년 민족 서사시 ‘칼레발라’ 출간을 계기로 핀란드말이 널리 쓰여 1863년 공식어로 인정되었다. 핀라드말은 격체계가 열다섯이나 되며, 단수-복수 구별은 있으나 남성-여성 구별은 없다. 문장의 기본 어순은 주어+목적어+서술어지만 자유롭게 찰례가 바뀔 수 있다. 헝가리말은 ‘마자르말’이라고도 하는데, 우랄 말겨레 가운데 가장 널리 쓰이는 말이다. 대략 일천육백만이 쓴다. 헝가리 겨레가 헝가리에 들어온 것은 9세기 말로 알려졌다. 헝가리말은 주변 다른 말의 영향을 많이 받으면서 변해 왔지만, 핀란드말처럼 다양한 격체계를 지니고 있다. 한편, 북부 시베리아 지역에도 우랄 말겨레에 드는 언어가 쓰이는데 ‘사모예드말’이다. 사용 인구가 매우 적은 편이다. 권재일/서울대 교수·언어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