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라’와 마을 1988년 4월 중순에 발견된 울진군 봉평리의 비문은 한자를 빌려서 우리말을 적은(차자 표기) 사례를 연구하는 학자들에게 큰 흥분을 가져다준 비문이다. 이 빗글에 대해서는 남풍현 교수가 비교적 자세히 연구를 한 적이 있는데, 땅이름을 공부하는 사람들에게도 매우 흥미로운 자료가 담겨 있다. 왜냐하면 비를 세운 사람으로 ‘거벌모라’의 ‘이지파 하간지’와 ‘신일지 일척’이라는 기록이 나오기 때문이다. ‘모라’는 마을의 어원에 해당한다. <양서> 신라전에 “신라인들은 성을 건모라라고 한다”라는 기록이나, <삼국사기>의 ‘모루성’(충남 서천이나 예산으로 추정)에 들어 있는 ‘모라’와 ‘모루’는 모두 큰 마을인 성을 뜻한다. 그런데 ‘모라’를 ‘산’으로 보는 견해도 있다. 왜냐하면 ‘모라’ 또한 ‘의 변이형인 ‘마루’, ‘머리’와 같은 계통의 낱말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양주동은 <고가연구>에서 ‘‘’가 ‘산’과 ‘머리’를 뜻하는 동음이의어였다고 한 바 있다. 이 견해를 따르면 ‘검은모루’는 ‘검은산’이란 뜻이 된다. 그러나 전국 곳곳에서 발견되는 ‘돌모루’는 ‘산’보다는 ‘모퉁이’나 ‘벼랑’을 뜻하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땅이름은 대체로 한자말 ‘석우’(石隅)로 바뀐다. 이를 고려한다면, ‘‘’와 ‘모루’, ‘모라’는 별개의 낱말로 보인다. 이처럼 비문에서도 땅이름의 어원을 밝히는 말을 찾아낼 수 있음은 기쁜 일이다. 허재영/건국대 강의교수·국어학
부처손 늘푸른 식물이라도 겨울에는 비실비실하다가 봄이 되고 물이 올라야 비로소 진정으로 푸르게 된다. 마른 바위에 붙어서 사는 ‘부처손’은 겨울에는 잎이 둥글게 오그라들어 죽은 것처럼 보이지만, 봄이 되면 새파랗게 살아난다. 그래서 만년초, 불사초, 장생불사초, 회양초(回陽草) 등으로 부르기도 하고, 잎이 붙은 모양이 주먹을 쥔 것 같고 잣나무잎 같다고 ‘권백’(卷柏)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부처손’은 생김새로 말미암아 붙은 이름인데, 사람 손바닥 모양이 아니라 여러 갈래로 펼쳐져 있다. 부처의 손은 천이나 되어서 사람의 마음을 어루만진다고 한 것에서 이름을 딴 듯한데, 잎을 살짝 들어 오무린 모습은 우리 손을 다정하게 잡아줄 듯하다. 아닌 게 아니라 부처손에는 정신 안정제 성분인 히스피드린이 들어 있고, 힘이 없을 때 달여 먹으면 기운이 나고, 암을 다스리는 효험도 뛰어나다고 한다. 가만히 들여다보면 우리의 풀꽃이름인 ‘불상화/ 승두화/ 탑꽃’들에는 불교문화가, 서양의 풀꽃이름인 ‘요셉의 코트(Joseph's coat)/ 부활절 백합(easter lily)’들에는 기독교 문화가 깃들어 있다. 같은 식물이라도 ‘염주나무’의 영어이름은 구약성경에 나오는 인물 ‘욥의 눈물’(Job's tear)이다. 꽃받침통이 골무를 닮은 ‘골무꽃’은 영어로는 ‘스컬캡’(skullcap)인데, 이는 천주교 신부들이 쓰는 모자의 모양과 비슷하여 붙은 이름이다. 임소영/한성대 언어교육원 책임연구원 [부처손]
이랑과 고랑 농사짓는 솜씨가 달라지고 농사마저 사라질 지경이 되니까 농사에 딸린 말도 더불어 달라지고 사라진다. 경운기·이앙기·트랙터·콤바인이 나오니까 극젱이(훌칭이)·쟁기·써레·곰배 …가 모두 꼬리를 감추고, 따라서 따비와 보습도 사라진 지 오래다. 아무리 그렇대도 사람 목숨의 바탕인 농사가 사라질 수 없는 노릇이라면 ‘이랑’과 ‘고랑’은 끝까지 남을 말이다. 하지만 이들마저 뜻이 헷갈려 국어사전까지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다. 밭농사는 반드시 고랑과 이랑을 만들어야 한다. 흙을 깊이 갈아엎어서 흙덩이를 잘게 부수고 고른 다음 고랑에서 파 올린 흙으로 이랑을 만들어 씨앗을 넣거나 모종을 옮겨서 가꾼다. 이랑은 높아서 물기가 차이지 않아 남새나 곡식을 키우는 터전이 되지만, 고랑은 제 흙을 이랑에 넘겨주고 스스로 낮아져 이랑의 남새와 곡식을 돌보는 사람의 발에 밟히기나 한다. 그러나 세상 이치는 “이랑이 고랑 되고, 고랑이 이랑 된다”는 속담처럼 때가 차면 뒤집혀 공평해지기 마련이고, 이랑과 고랑은 언제나 정답게 짝을 이루어 ‘사래’라 불리며 살아남았다. 그런데 왕조가 무너지고 일제 침략으로 농사까지 바뀌면서 ‘두둑’이 판을 치며 이랑을 밀어냈다. 두둑은 고랑과 가지런히 짝하지 않고 제 홀로 몸집을 불려 자리를 널찍이 차지하고 남새나 곡식을 여러 줄씩 키우도록 탈바꿈한 이랑이다. 이렇게 두둑이 이랑을 밀어내고 고랑과 짝을 지으니까 국어사전들이 두둑과 고랑을 싸잡은 것이 이랑이라면서 어처구니없는 망발까지 하기에 이르렀다. 김수업/우리말교육대학원장
돌서덕 ‘돌서덕’은 ‘돌이 많은 강이나 내의 바닥’을 말한다. “맑은 물이 은은한 진폭을 울리며 흐르다가도 어느 한 곳에 와서 꿀룩꿀룩 돌서덕에 숨어 버린다.”(리병수, 〈붉은 지평선〉) 돌서덕과 비슷한 말로 남녘에서는 ‘서덜’을 쓴다. 서덜은 ‘냇가나 강가에 돌이 많은 곳’을 말하므로 강바닥을 뜻하는 돌서덕과 약간 위치가 다르다. 북녘에서도 서덜을 쓰는데, 강이나 내의 바닥을 포함한 ‘돌이 많이 깔린 곳’을 모두 가리키므로 돌서덕보다 넓은 뜻이다. “전날에는 흔히 큰물이 밀려내려 여기의 모래논은 서덜로 변했다.”(조선말대사전) 여름에 홍수가 난 논에서 물이 빠지면 논에는 돌·자갈이 많이 남는다. 이런 곳을 서덜이라고 한다. 또 남북에서는 각각의 서덜과 같은 뜻으로 ‘돌서덜’을 쓴다. 남북이 모두 서덜·돌서덜을 쓰는데 그 뜻이 조금 다른 까닭은 무엇일까? 1950년 발행된 〈큰사전〉을 보면, 남녘에서 쓰는 뜻으로 서덜이 있고, 돌서덜과 돌서덕은 없다. 그렇다면 아마도 남북에서 두 낱말을 같은 뜻으로 쓰다가, 북녘에서는 돌서덕이 쓰이게 되면서 기존 서덜의 뜻을 돌서덕이 맡고, 서덜은 그 뜻이 원래보다 좀 확장된 듯하다. 북녘말 서덜은 그 뜻이 넓어지면서 ‘돌바닥’과 비슷한 말이 되었다. 돌이 많은 산비탈을 너덜·너덜겅·돌너덜이라고 하는데, 그러고 보면 서덜·너덜은 곳에 따라 차이가 날 뿐 돌과 관계가 있는 것은 한가지라 하겠다. 김태훈/겨레말큰사전 자료관리부장
게르만 말겨레 유럽 쪽 말겨레 가운데 역사가 오래고 그 분포가 넓은 것에 게르만 말겨레가 있다. 독일말이 게르만 말겨레에 드는 대표적인 말이다. 이 게르만 말겨레는 다시 몇 갈래로 나뉜다. 발트해 북쪽에서 게르만 말겨레에 드는 말에는 고대 아이슬란드말에서 내려온 스칸디나비아반도의 스웨덴말·노르웨이말·덴마크말이 있다. 이들은 저마다 자기 말을 해도 서로 의사소통이 될 정도로 비슷하다. 다만 이웃한 핀란드말은 이들과는 전혀 다른 우랄 말겨레에 속한다. 발트해 남쪽에 있는 게르만 말겨레는 역사적으로 다시 두 갈래로 나뉘는데, 하나는 독일말로 발전한 높은 지대 게르만말이고, 다른 하나는 낮은 지대 게르만말로 그 일부가 영어와 네덜란드말로 발전하였다. 영어를 기준으로 게르만 말겨레의 친족 관계를 비유해서 살펴보자. 우선 영어는 네덜란드말과는 형제쯤으로 생각할 수 있다. 그리고 독일말과는 사촌 정도로 볼 수 있다. 더 나아가 이들과 스칸디나비아반도의 스웨덴말·노르웨이말·덴마크말과는 재종쯤으로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삼종(팔촌)도 생각해 본다면, 라틴 말겨레에 드는 프랑스말과 스페인말, 슬라브 말겨레에 드는 러시아말, 그리고 그리스말 따위가 될 것이다. 영어는 프랑스말에서 수많은 낱말을 가져왔기에 겉으로는 프랑스말과 같은 말겨레처럼 보이지만, 역사적으로나 문법적으로는 독일말과 같이 게르만 말겨레에 든다. 권재일/서울대 교수·언어학
노루귀 입춘에 우수까지 지나니 방송이나 잡지에서 봄을 알리는 들꽃 사진을 많이 보여준다. 산과 들에 사진 찍으러 가도 실제로는 찾기 어렵다고 하는데, 눈속에서도 피어 있는 풀꽃을 찾아내고는 강한 생명력을 느끼고서 그 새롭고 소중함을 전하는 듯하다. 산수유·매화·개나리·진달래·벚꽃이 차례로 온 나라를 덮기 전에 봄의 전령으로 수줍게 피는 바람꽃·복수초·현호색·노루귀·제비꽃 …. 이 가운데 노루귀는 신문·방송에서도 여러 번 보았다. 노루가 예전에는 아주 친근한 동물이어서 그런지, 땅이름·연장이름·속담들에도 자주 등장한다. 풀꽃이름에는 더 흔하다. ‘노루귀’는 노루귀 모양의 잎 뒷면에 털이 보송보송 길게 덮은 모습이 노루귀와 같다고 하여 붙은 이름이다. 남쪽지방에서 자라는 조금 작은 노루귀는 ‘새끼노루귀’라 부른다. ‘노루발’은 잎맥 모양이나 하얀 눈 위에 나 있는 모습이 노루 발자국처럼 보인다 하여 붙은 이름인데, 작은 품종은 ‘새끼노루발’이다. ‘노루삼’은 홍갈색 수염뿌리가 나고 약효가 많은 까닭에, ‘노루오줌’은 노루가 물 마시고 오줌 누는 물가에 많고, 노루오줌 냄새가 난대서 붙은 이름이다. ‘노루참나물’은 참나물과 비슷하나 전체에 털이 나서, ‘노루궁뎅이버섯’(노루꼬댕이버섯)은 노루꼬리 모양의 털이 있어서 붙은 이름이다. 노루귀든 노루궁뎅이든 지금은 잘 볼 수 없으니, 노루가 뛰놀고 노루귀가 피었던 산골의 봄을 머릿속으로나 상상해 본다. 임소영/한성대 언어교육원 책임연구원 [노루귀]
마개와 뚜껑 ‘마개’는 ‘막다’는 움직씨의 줄기 ‘막’에 ‘애’가 붙고, ‘덮개’는 ‘덮다’는 움직씨의 줄기 ‘덮’에 ‘애’가 붙어 이름씨 낱말이 되었다. 이때 ‘애’는 “~에 쓰는 무엇”이라는 이름꼴 씨끝이다. 그래서 마개는 “막는 데에 쓰는 무엇”이고, 덮개는 “덮는 데에 쓰는 무엇”이다. 막는 것은 무엇이며 덮는 것은 무엇인가? 병이나 항아리 따위 아가리가 구멍인 것에다 안으로 끼워서 안에 든 것이 밖으로 나오지 못하도록 지키는 노릇이 막는 것이고, 바깥으로 감싸서 밖에 있는 것이 안으로 들어가지 못하도록 지키는 노릇이 덮는 것이다. 그러므로 마개는 막았다가 뽑아야 하고, 덮개는 덮었다가 벗겨야 한다. 그리고 덮개는 병이나 항아리 같이 아가리가 구멍인 것보다는 아가리가 큰 통이나 독이나 도가지 같은 것에 더욱 잘 어울리고, 나아가 밖에서 오는 벌레나 짐승, 빛이나 볕, 눈이나 비, 심지어 바람 따위를 막으려는 것이면 무엇에나 두루 쓰인다. ‘뚜껑’은 아가리를 바깥으로 감싸는 모습에서나 밖에 있는 것이 안으로 들어가지 못하도록 지키려는 구실에서나 덮개와 비슷하다. 덮개나 뚜껑이나 모두 본디 하나의 움직씨 ‘둪다’에서 나온 아재비조카 사이기 때문이다. ‘둪다’의 줄기 ‘둪’에 이름꼴 씨끝 ‘엉’이 붙어 뚜벙(뚜껑)이 되고, ‘둪다’가 ‘덮다’로 바뀐 다음 거기서 덮개가 나왔다. 뚜껑은 덮개처럼 무엇에나 두루 쓰이지는 않고 살림살이에서 훨씬 긴요한 솥이나 그릇이나 상자 같은 가구에만 가려서 쓰인다. 그리고 뚜껑은 닫았다가 열어야 한다. 김수업/우리말교육대학원장
가닥덕대 지하철의 좌석 위쪽에는 물건을 얹을 수 있도록 쇠기둥 여럿으로 ‘가닥덕대’를 만들어 놓았다. 가닥덕대는 ‘여러 가닥의 막대기로 만든 덕대’를 말한다. 지하철의 가닥덕대를 보통 ‘지하철 선반’이라 이르는데, 이는 선반과 덕대를 구별하지 못한 데서 하는 말이다. 물건을 얹어 두고자 만든 구조물을 이르는 말로 ‘선반·시렁·덕대’가 있다. 남북에서 두루 쓰는 말이다. 선반과 시렁은 만든 재료로 구별된다. 널빤지처럼 면을 가진 재료로 만들면 선반이고, 막대기처럼 길쭉한 것 두 개를 재료로 만들면 시렁이다. 덕대는 ‘덕’으로도 쓰이는데 선반과 시렁을 아우르는 말이다. 예전 시골집 방이나 마루, 부엌에서는 시렁을 쉽게 볼 수 있었다. 집이 서양식으로 바뀜에 따라 시렁은 점차 익숙하지 않게 되었다. 지하철에 있는 덕대는 쇠기둥 여러 개로 되어 있어 시렁은 적절치 않다. ‘지하철 덕대’나 ‘지하철 가닥덕대’가 ‘지하철 선반’보다 정확한 표현이다. “로인은 아래방 가닥덕대우에서 보자기에 싼 물건을 정하게 들어내리더니 밖에 나가 먼지를 깨끗이 털어가지고 품에 안고 들어섰다.”(장편소설 <그리운 조국산천>) 북녘말 ‘덩굴덕대’는 ‘덩굴 식물을 키우기 위해 만든 덕대’, ‘고기덕’은 ‘물고기를 말리기 위한 덕대’, ‘말림덕대’는 ‘물건을 말리기 위해 설치한 덕대’를 말한다. 아파트 베란다에 설치된 ‘빨래 건조대’를 말림덕대라고 불러 보면 어떨까? 김태훈/겨레말큰사전 자료관리부장
라틴말의 후예 서양의 대표적인 고전어는 그리스말과 라틴말이다. 이 둘은 서양 문화의 중심이었던 그리스와 로마시대 말이어서 세계 문화에 끼친 영향이 매우 깊고 넓다. 로마제국은 이탈리아 반도 중부의 라티움이라는 작은 나라에서 일어나서 이탈리아 반도는 물론이고 남쪽으로는 아프리카 북부, 서쪽으로는 이베리아 반도, 동쪽으로는 아시아 서부까지 드넓은 영토를 차지한 큰 제국이 되었다. 기원전 3·4세기 이탈리아에는 여러 말들이 쓰였지만, 점차 작은 나라 라티움의 말이었던 라틴말이 로마제국의 언어로 통일되었다. 로마제국의 번창과 더불어 라틴말은 점점 확산되어 로마제국 영토 안의 모든 지역 사람들이 라틴말을 쓰게 되었다. 그러나 기원후 4세기쯤부터 로마제국이 무너지기 시작하면서 이른바 세계의 도시, 영원한 도시 로마는 그 중심 위치를 잃게 되었다. 그러자 각 지역은 지리적 조건으로 또는 정치적 상황에 따라 독립하게 되고, 쓰고 있던 라틴말은 이미 동일성을 유지할 수 없게 되어 각기 특유한 변화과정을 밟게 되었다. 이런 변화가 계속되자 10세기쯤에는 드디어 서로 다른 여러 말들로 갈라지게 되었다. 여기서 오늘날의 이탈리아말, 프랑스말, 스페인말, 포르투갈말, 루마니아말 등이 탄생하였다. 이 가운데 프랑스말은 오늘날 세계적인 외교언어로 발전하였으며, 스페인말은 숱한 중남미 나라의 공용어로, 포르투갈말은 브라질 등의 공용어가 되어 위세를 떨치고 있다. 권재일/서울대 교수·언어학
물과 땅이름 물은 어느 시대 어느 곳이나 생명과 다름이 없다. 땅을 기름지게 하고, 곡식을 자라게 하며, 늘 새로운 생명을 싹틔우는 바탕이 물이다. 흔히 종교 행사로 치르는 ‘세례’ 또한 인간의 죄를 씻어주는 것을 의미하지 않겠는가. 그렇기에 <균여전>의 ‘항순중생가’에도 ‘대비 물로 적시어 이울지(시들지) 아니하겠더라’라는 시구가 나온다. 땅이름에 물과 관련된 것은 매우 많다. ‘물’의 옛말은 였다. <삼국사기> 지리지에 ‘수성군’(매홀군), ‘매소홀현’(미추홀), ‘수곡성현’(매탄홀), ‘이천현’(이진매현)에 포함된 ‘매’(買)는 모두 ‘물’을 표기한 보기들이다. 그런데 이 낱말의 음은 산을 나타내는 ‘뫼’와 유사하며, 들을 나타내는 와 같다. 여기에서 우리는 ‘물’을 뜻하는 가, 산이나 들의 ‘뫼’와 처럼 ‘미’로 변화할 가능성을 점칠 수 있다. 그런데 이 낱말은 ‘미’로 변화하지 않고, ‘믈’을 거쳐 ‘물’로 변화한다. 왜 그럴까? 이에 대한 해답은 언어 변화의 기능 부담과 관련지어 풀이할 수 있다. 달리 말해, 하나의 낱말 형태가 지나치게 많은 의미를 담당할 경우, 서로 다른 꼴로 나타내는 것이 효율적이므로, ‘산’과 ‘들’, 그리고 ‘물’을 모두 ‘미’로 일컫지는 않는다는 뜻이다. 이와는 달리 ‘나리’에서 온 ‘내’는 오랫동안 땅이름에 남는다. 예를 들어 ‘모래내’, ‘연신내’, ‘오목내’처럼, 물줄기를 뜻하는 ‘내’는 오늘날에도 자주 들을 수 있는 땅이름이다. 허재영/건국대 강의교수·국어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