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남아 언어 우리와 지리적으로 가까운 동남아시아에서 쓰이는 말을 살펴보자. 중국말과 함께 티베트말, 미얀마말은 중국-티베트 말겨레에 든다. 그리고 인도네시아와 말레이시아에서 쓰는 말레이말은 오스트로네시아 말겨레에 든다. 타이에서 쓰이는 타이말은 중국-티베트 말겨레와 비슷하지만 분명하게 밝혀지지 않고 있어 독자적인 말겨레를 이루는 것으로 보기도 한다. 타이말은 중국말처럼 한 낱말이 한 음절로 돼 있으며, 그래서 말소리의 높낮이가 낱말의 뜻을 구별해 준다. 한 음절에 다섯 가지 성조가 놓일 수 있다. [khaa]라는 소리를 보기로 들어 보자. 보통 높이로 발음하면 ‘들어있다’라는 낱말이 되고, 낮은 소리로 발음하면 ‘아로마뿌리’라는 낱말이 되고, 높은 소리로 발음하면 ‘사업하다’라는 낱말이 된다. 또한 높다가 내려오는 소리로 발음하면 ‘종, 노예’라는 말이, 반대로 낮다가 올라가는 소리로 발음하면 ‘다리’라는 낱말이 된다. 말차례도 ‘주어+서술어+목적어’로 놓여 중국말과 비슷하다. 토씨나 씨끝으로 문법 관계를 나타내는 우리말과는 달리 말차례로써 문법 관계를 표현한다. 베트남에서 쓰이는 베트남말과 캄보디아에서 쓰이는 크메르말은 흔히 오스트로아시아 말겨레에 든다고 한다. 두 말 역시 성조를 가졌다. 그리고 베트남말은 우리말처럼 ‘ㄱ-ㄲ-ㅋ, ㄷ-ㄸ-ㅌ, ㅂ-ㅃ-ㅍ’와 같이 세 쌍이 대립하는 닿소리 체계를 이루고 있다. da는 ‘많이’, ta는 ‘일인칭대명사’, tha는 ‘용서하다’라는 뜻으로 구별된다. 권재일/서울대 교수·언어학
빛깔말 언어학자 밸린과 케이는 빛깔말 또는 색채어를 연구한 사람들로 유명하다. 이 두 사람은 90여 가지 세계 언어에서 빛깔말을 수집하였으며, 이렇게 수집한 자료를 바탕으로 300여 가지 빛깔을 제시하고 이를 분류하는 실험을 하였다. 그들은 이 실험의 결과에 따라 11가지 기본 빛깔을 설정하였으며, 사람들의 색깔에 대한 반응도 일정한 순서가 있음을 발견하였다. 이들의 연구 결과 사람들은 ‘흰색’과 ‘검은색’에 대한 반응이 가장 빠르며, 그 다음으로는 ‘붉은색’, ‘푸른색과 노란색’, ‘갈색’ 등의 차례로 이어진다. 이런 경향은 땅이름을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땅이름에서 ‘흰색’과 ‘검은색’을 포함하는 말을 가장 많이 찾아낼 수 있으며, 그 다음이 ‘붉은색’이다. ‘흰색’을 포함한 땅이름은 한자어 ‘백’(白)이 들어 있는 산이름에서 쉽게 볼 수 있다. 또한 ‘거문리’나 ‘어둔리’라는 땅이름도 흔히 쓰이는 땅이름이다. ‘붉은색’을 포함하는 땅이름도 비교적 쉽게 찾을 수 있다. 용비어천가의 ‘적도’(赤島)(제5장)는 경흥부 남쪽 70리에 있는 섬인데, 그 모양이 거북이가 엎드린 것과 같으며, 사방 바위가 모두 붉은색이어서 붙은 이름이다. 이처럼 빛깔을 포함한 땅이름은 그 지역의 토양이나 산수의 모습과 밀접한 관련을 맺는다. ‘붉은뱅이’는 홍천군 속초리의 작은 마을 이름이다. 토질이 붉고 언덕진 곳이어서 붙은 이름인데, ‘봉’의 음이 변해서 ‘뱅이’가 됨으로써 낯선 이름처럼 들린다. 허재영/건국대 강의교수
이팝나무 요즘 길가나 학교 정원에서 하얀 이팝나무 꽃을 흔히 본다. ‘이팝나무’는 하얀 꽃더미가 마치 사발에 소복이 담긴 쌀밥 같다고 하여 붙은 이름이다. 니밥>이밥>이팝이 된 것이다. ‘니팝나무/ 니암나무/ 뻣나무’라고도 하고, 꽃은 ‘쌀밥꽃’이라고도 부른다. 이름이 이름이니만큼, 꽃 피는 모습으로 그 해 벼농사를 짐작했다. 비가 적당히 온 봄이면 꽃이 활짝 피고, 날이 가물면 잘 피지 않는데, 이팝나무 꽃이 활짝 피면 풍년이 든다고 했다. 벼농사는 물이 많아야 하므로 근거가 있는 이야기인 성싶다. 심지어 정월 앞뒤로 큰 샘과 이팝나무에 ‘용왕 먹인다’ 하여 치성을 드리고 풍년을 기원하기도 하였다. 영어로는 옷감의 장식 술을 뜻하는 ‘프린지 트리’(Fringe tree)인데, 우리말은 밥과 쌀을 바로 이름에 썼다. 전라도에서는 ‘밥태기’, 경기도에서는 ‘쌀나무’라고 부르기도 한다. 밥이 우리에게 얼마나 일상적인지는 조팝나무/ 까치밥/ 밥티꽃/ 며느리밥풀 같은 이름들에서도 볼 수 있다. 그런데, 이팝나무라는 이름의 유래를 두고 다른 의견도 있다. 꽃이 입하(立夏) 머리에 피는 까닭에 입하목이라고 불렀고, 이 입하가 연음되어 ‘이파>이팝’으로 되었다는 주장이다. 실제로 일부 지역에서는 입하목이라도 부르기도 한다. 이팝나무는 요새 가로수로도 많이 심어서 청계천에서도 볼 수 있다. 가난했던 시절 이팝에 고깃국 실컷 먹는 것이 소원인 적도 있었으나, 지금은 이팝나무 풍성한 길을 지나며 밥 안 먹어도 배부른 5월이다. 임소영/한성대 언어교육원 책임연구원 [이팝나무] 그림을 클릭하시면 원본크기로 보실 수 있습니다.
맑다와 밝다 ‘맑다’는 ‘흐리다’와 서로 짝을 이루어 맞서고, ‘밝다’는 ‘어둡다’와 서로 짝을 이루어 맞선다. 그러면서 ‘맑다’와 ‘흐리다’는 하늘이 만든 사물과 사람이 만든 사실에 쓰는 그림씨 낱말이고, ‘밝다’와 ‘어둡다’는 하늘이 만들었거나 사람이 만들었거나 따질 것 없이 빛살에 말미암아 쓰는 그림씨 낱말이다. 샘물이 맑거나 흐리고, 하늘이 맑거나 흐리고, 단풍 빛깔이 맑거나 흐리고, 공기가 맑거나 흐리거나 하는 것은 하늘이 만든 사물을 두고 쓰는 보기다. 그리고 마음이 맑거나 흐리고, 목소리가 맑거나 흐리고, 생각이 맑거나 흐리고, 살림살이가 맑거나 흐리다고 하는 것은 사람이 만든 사실을 두고 쓰는 보기다. 한편, 새벽이 되면 동녘이 밝아오고 저녁이 되면 산그늘이 내리면서 세상이 어두워진다고 하는 것은 하늘이 만든 해의 빛살에 말미암아 쓰는 보기이며, 보름에 가까워지면 밤이 휘영청 밝아지고 그믐에 가까워지면 밤이 깜깜하게 어두워진다고 하는 것은 하늘이 만든 달의 빛살에 따라 쓰는 보기다. 그리고 등불이 밝거나 어둡고, 횃불이 밝거나 어둡고, 옷감의 빛깔이 밝거나 어둡고, 그림의 물감이 밝거나 어두운 것은 사람이 만든 빛살에 따라 쓰는 보기다. 거기서부터 ‘밝다’와 ‘어둡다’는 빛살로 말미암아 빚어지는 사람살이에까지 쓰임새가 널리 퍼져 나왔다. 눈이 밝거나 어둡고, 귀가 밝거나 어둡고, 사리가 밝거나 어둡고, 예의가 밝거나 어둡고, 물정에 밝거나 어두운 것들이 모두 그런 보기들이다. 김수업/우리말교육대학원장
재개비 ‘재개비’는 재의 티끌이다. “반반히 불타버린 동네쪽에서는 아직도 재개비가 흩날리고 매캐한 파벽토냄새가 풍겨왔다.” (피바다) “비방울이 후둑후둑 떨어졌다. 벌겋게 널린 숯불바닥에 구름처럼 김이 피여오르고 재개비가 흩날렸다.”(시대의 탄생 1) ‘재’라고 해도 될 것을 왜 ‘재개비’라 했을까? ‘재가 흩날린다’면 ‘많은 재가 날리거나 재가 조금 날리는 것’을 두루 나타내는데, ‘재개비가 흩날린다’면, ‘많은 재가 날리는 것’은 아니다. 재개비의 ‘개비’는 일상적으로 많이 쓰인다. ‘성냥개비, 장작개비’ 등이 그렇다. 심지어 ‘팔랑개비, 바람개비’도 같은 것이라 생각된다. ‘개비’가 본디‘가늘고 길쭉한 토막의 낱개’를 뜻하는데, 풍차처럼 바람에 돌아갈 수 있도록 ‘개비’를 붙여서 만들었기에 그렇게 이름 짓지 않았을까. '깨비’도 마찬가지다. 북녘말 ‘동이깨비’와 남북이 같이 쓰는 ‘지저깨비’가 있다. ‘개비’가 ‘깨비’로 쓰이는 것은 발음에 이끌려 굳어진 탓이다. ‘재개비, 성냥개비, 장작개비’도 두루 ‘깨비’로 소리난다. ‘동이깨비’는 말 그대로 질그릇인 ‘동이’가 깨진 조각을 말한다. 지저깨비는 ‘지저분하다’와 ‘개비’의 결합으로 보이는데 ‘지저분한 조각’이다. 남북 모두 나무를 패거나 깎을 때 나오는 나뭇조각을 이르고, 북녘에서는 나무 이외의 대상에도 쓰인다. “곡괭이는 비척거리며 튕겨오를뿐 콩크리트에서는 작은 지저깨비도 일지 않았다.”(평양시간) 김태훈/겨레말큰사전 자료관리부장
중국의 언어 중국은 한족과 쉰다섯 소수민족으로 이루어진 다민족 국가다. 다민족 국가인 만큼 언어 사용도 복잡하다. 한족들은 흔히 한어라 일컫는 중국말을 쓴다. 중국말은 중국-티베트 말겨레에 든다. 이 말겨레에 드는 말에는 중국말, 티베트말, 미얀마말이 있다. 중국의 소수민족들은 모두 그들의 토박이말을 지니고 있지만, 중국말 세력에 밀려 대부분 이중 언어생활을 한다. 그러나 젊은이일수록 그들 자신의 말보다는 중국말에 더 익숙해 있다. 이들 토박이말은 대부분 알타이 말겨레에 든다. 중국말은 방언이 많기로 유명하다. 그리고 같은 한어라 하지만, 사실은 방언이라기보다는 서로 다른 언어라 할 정도로 그 차이가 크다. 서로 다른 방언을 쓰는 사람들끼리 만나 대화를 하면 의사소통이 안 될 정도다. 그래서 베이징말을 바탕으로 하며 보통화라는 표준말을 만들어 온 국민에게 교육하여 이 말을 통해 전국 어디서나 누구와도 다 의사소통된다. 상하이는 ‘오’방언을 쓰는 지역이고, 홍콩 지역은 ‘월’방언이 쓰인다. 이러한 중국말의 가장 큰 특성은 원래 하나의 낱말이 하나의 음절로 되어 있다는 점이다. 그래서 이론적으로 말하자면 음절수만큼만 낱말이 있게 된다. 따라서 낱말을 늘이려면 한정된 음절을 여러번 활용해야 한다. 그래서 한 음절을 여러번 쓰려고 높낮이를 달리하여 네 가지의 서로 다른 소리를 내어 쓰고 있다. 이를 성조라 한다. 같은 연유로 중국에서 한 개념을 한 글자로 표기하는 뜻글자를 만들게 된 것이다. 권재일/서울대 교수·언어학
난친이 바위 땅이름을 연구하는 사람들은 사람들이 사는 지역뿐만 아니라 산이나 강·골짜기·바위 등의 이름에도 많은 관심을 기울인다. 이런 이름 가운데는 사전에서 찾을 수 없는 말들이 다수 발견된다. 강원도 홍천군 동면 좌운리의 ‘난친이 바위’도 이런 이름 가운데 하나다. 이 바위는 마을 앞 산에 절벽처럼 서 있는데 마을 사람들은 이 바위에 난친이가 산다고 믿고 있다. 그런데 ‘난친이’가 어떤 새인지는 구체적으로 밝혀진 바 없다. 우리말 사전이나 동물도감에서도 이 새를 찾을 방법은 없다. 왜냐하면 ‘난친이’는 부엉이나 올빼미처럼 큰 새를 뜻하는 말로만 쓰이기 때문이다. 마을 사람들은 난친이는 낮에 활동하지 않고 밤에 활동한다고 믿는다. 그뿐만 아니라 난친이가 날면 마을에 좋은 일이 생긴다는 믿음도 갖고 있다. 그러면서도 막상 난친이가 나는 모습을 보았다는 이는 없다. 그렇다면 ‘난친이’는 어떤 새일까? 사실 이 말은 ‘나친’ 또는 ‘라친’이라는 몽골어에서 온 말이다. <훈몽자회>에는 ‘나친 왈 아골(鴉?)’이라는 풀이가 나타나며, <역어유해>에서도 ‘아골(큰새)’을 ‘나친이’라고 적고 있다. 또한 이기문 교수는 이 단어의 기원을 토이기어 ‘라진’에서 찾고 있다. 이를 고려할 때 ‘라진’, ‘나친’, ‘난친이’는 모두 ‘큰 새’를 뜻하는 몽골어 기원의 어휘로 고려시대 이후에 들어온 말이라고 할 수 있다. 수백 년 전에 생성된 이름이 오늘날까지도 쓰이는 건 땅이름이 강한 생명력을 지닌 까닭이다. 허재영/건국대 강의교수
꽃다지 요즘 가수이름은 어렵기도 하다. 그리고 에쵸티(H.O.T)를 ‘핫’으로 말했다거나, SS501을 ‘에스에스오백일’로 읽었다는 것은 얘깃거리가 될 지경이다. SG워너비는 ‘사이먼과 가펑클처럼 되고 싶어!’라는 것을 아는 정도가 요즘의 상식이라니 알만하지 않은가. 우리말 가수이름으로 노동가요나 민중가요를 주로 부르는 ‘꽃다지’라는 노래패가 있는데, 이 꽃다지의 뜻을 아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꽃다지’는 3월에서 6월 사이에 양지바른 들이나 산에 피는 노란색 작은 풀꽃의 이름이다. 꽃대마다 작은 꽃들이 정말 ‘닥지닥지’ 붙어서 피는데, 이 때문에 꽃다지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역시 다닥다닥 피는 흰색 냉이꽃하고 비슷하게 생겼는데, 잎과 열매 모양이 다르다. 냉이와 함께 무쳐먹기도 하고 향긋한 맛이 나 국을 끓여먹기도 하는데, 꽃다지와 소리가 비슷하고 오밀조밀 작은 꽃모양으로 말미암아 ‘코딱지나물’이라는 별명도 있다. 풀꽃이름이 아닌 ‘꽃다지’는 오이·가지·참외·호박 따위에서 맨 처음에 열린 열매를 뜻하는 말이기도 하다. 이때는 꽃을 닫는다는 뜻의 ‘꽃+닫+이’(〉다지)로 볼 수도 있지 않을까 싶다. 어렸을 때 신기해서 꽃다지를 따 보다가 혼난 기억이 있다는 이들도 있다. 이렇게 예쁜 우리말 꽃이름으로는 코스모스의 우리말 이름 ‘살살이꽃’, 라일락의 일종인 ‘수수꽃다리’, 소리만 들어도 예쁜 ‘구슬댕댕이’들이 있는데, 널리 살려 쓰고 싶은 이름들이다. 임소영/한성대 언어교육원 책임연구원 [꽃다지]
뜰과 마당 지난 세기 동안 우리 집의 모습과 쓰임새가 크게 달라져 말들 또한 뜻과 쓰임새 모두 많이 달라졌다. 지난날 우리네 집은 울이나 담으로 둘러싸인 집터 위에 저마다 몫이 다른 쓰임새로 여러 자리가 나누어졌다. 방과 마루와 부엌을 중심으로 하는 집채를 비롯하여 마당, 뜰, 남새밭이 집터를 채웠다. 집의 노른자위는 물론 위채, 아래채, 사랑채로 나누어지는 삶의 보금자리인 집채다. 남새밭은 대문과 집채에서 가장 멀리 떨어져 구석진 곳에 자리잡고 철따라 반찬거리 남새를 길러냈다. ‘마당’은 집에서 집채나 남새밭에 못지않게 종요로운 자리다. 남새밭이 없는 집은 있을 수 있지만 마당이 없는 집은 거의 없었다. 살림이 넉넉하고 집터가 넓으면 앞마당, 뒷마당, 바깥마당까지 갖춘 집들도 적지 않았다. 마당은 일터다. 타작을 하고, 우케를 널고, 길쌈을 하고, 명절이 닥치거나 혼례나 장례나 환갑 같은 큰일이 생기면 잔치판도 벌이고 놀이판도 벌이고, 여름철 밤이면 모깃불을 피워놓고 이야기판도 벌였다. ‘뜰’은 집에서 가장 뒷전으로 밀리는 자리다. 집채처럼 보금자리도 아니고, 마당처럼 일터도 아니고, 남새밭처럼 먹거리를 내놓지도 않는다. 뜰은 삶을 기름지게 하는 쉼터다. 그래서 살림살이가 넉넉해지면 곧장 뜰이 넓어진다. 울이나 담 아래 몇 포기 꽃을 심는 것에서 비롯하여 앵두에서 살구나 감과 같은 과일 나무를 심고, 천리향이나 매화 같은 꽃나무를 심고, 마침내 연꽃이 피고 수양버들이 드리워지는 연못까지 갖추기도 한다. 김수업/우리말교육대학원장
누겁다/ 서겁다 ‘누겁다’는 ‘눅눅한 느낌이 있다’는 뜻이고, ‘서겁다’는 ‘섭섭한 느낌이 있다’는 뜻이다. “장마철이여서인지 방안이 누거웠다.”(조선말대사전) “오뉴월 겨불도 쬐다나면 서겁다, 짚불도 쬐다나면 서겁다.(우리말글쓰기 연관어대사전) ‘누겁다’와 ‘서겁다’는 ‘눅눅하다’와 ‘섭섭하다’에서 왔다. ‘눅눅하다’에서 ‘눅-’을 취하고, ‘어떤 느낌이 있다’는 뜻을 더하는 ‘-겁’을 결합한 것이다. ‘섭섭하다’도 마찬가지다. ‘눅겁다’에서 ‘누겁다’로, ‘섭겁다’에서 ‘서겁다’로 변한 것은 소리를 쉽게 내고자 함인 것으로 보인다. 남북이 같이 쓰는 ‘차갑다/ 헐겁다’를 보면 보통 ‘차다/ 헐다’처럼 한 음절의 형용사에 ‘-겁’이 결합되는 것으로 보이는데, ‘누겁다/ 서겁다’는 두 음절 형용사의 음절 하나만 취했다. 또 ‘누겁다/ 서겁다’는 남녘의 사전은 물론, 방언에서도 확인되지 않는다. 이런 측면에서 ‘누겁다/ 서겁다’는 북녘에서 만든 말이 아닐까 싶다. 그렇다면 ‘-겁’이 형용사 어간에 결합되고, 하나의 음절에만 결합된다는 규칙을 찾을 수 있고, 그 규칙에 맞게 말을 만들었다는 점과 이 말의 뜻을 직관적으로 이해하기 쉽다는 점에서 볼 때 잘 만든 말로 여겨진다. 같은 방식으로 ‘~겁다’붙이 형용사를 만들어 볼 수도 있겠다. ‘분분하다’에서 ‘분겁하다’를 만들고 ‘(의견이) 분분한 듯하다’는 뜻으로 쓰고, ‘딱딱하다’에서 ‘딱갑다’를 만들고 ‘딱딱한 느낌이 있다’의 뜻으로 쓸 수도 있겠다. 김태훈/겨레말큰사전 자료관리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