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조하다 “선장의 사업을 방조하며 배의 항행 보장을 맡아 수행하는 기술자격을 가진 일군.”(조선말대사전) 여기서 설명하는 사람은 누구일까? ‘항해사’다. “항해사가 선장의 사업을 방조한다”고 하면, ‘선장이 나쁜 일을 한다’고 생각하기 쉽다. 방조(幇助)는 ‘도울 방’, ‘도울 조’이므로 ‘돕는다’는 뜻이지만, 남녘에서는 ‘나쁜 일을 돕는 상황’에 ‘방조하다’를 쓴다. 북녘에서는 부정적인 뜻 없이 한자 뜻 그대로 쓴다. ‘방조하다’에서 차이가 생긴 것은 남녘의 쓰임 변화 때문인데, 그 시기는 1950년대로 보인다. 50년에 나온 <큰사전>(한글학회) 풀이와 61년에 나온 <국어대사전>(민중서관)의 풀이에 차이가 난다. <국어대사전>에서는 ‘방조’를 ‘어떠한 일을 거들어서 도와줌. 흔히 나쁜 일의 뒤를 돕는 경우에 씀’이라고 풀이하였다. 이후 남녘의 각종 국어사전에서 ‘나쁜 일과 관련이 있다’는 풀이는 하지 않았지만, 그 예문에서 부정적인 쓰임을 보여주고 있다. <표준국어대사전>에서는 한걸음 더 나아가 긍정적인 쓰임이 없다고 보았다. ‘방조하다’가 부정적인 일에 쓰이게 된 연유는 무엇일까? 법률 영향으로 보인다. ‘남의 범죄 수행에 편의를 주는 모든 행위’(형법)란 뜻이 국어사전 풀이에 적용됨으로써 널리 쓰이게 되고, 낱말 쓰임이 바뀌게 된 것으로 보인다. 한편, ‘방조’(傍助)는 ‘곁에서 도와줌’의 뜻이다. 북녘에서는 ‘방조’(傍助)를 쓰지 않는데, ‘방조’(幇助)가 본디 뜻을 유지하면서 이를 대신하는 것 같다. 김태훈/겨레말큰사전 자료관리부장
도라산역 도라산은 경기도 장단군에 있는 산이다. 장단군은 고구려 때 장천성현(長淺城縣)이었고, 조선 예종조에 이르러 도호부로 승격되었다. 도라산에는 고려 태조의 딸인 낙랑공주와 마지막 신라 임금 경순왕에 얽힌 설화가 있다. 나라를 잃은 경순왕이 늘 도라산에 올라가 경주 쪽을 바라보며 눈물짓는 모습을 보고 낙랑공주가 영수암이라는 암자를 짓고 그를 곁에서 지켰다는 이야기다. <신증동국여지승람>을 보면, 도라산은 임진 남쪽 25리에 있는 산이며, 북쪽 천수산과 동쪽 파주 대산을 잇는 봉수가 있었다고 한다. 임진을 중심으로 동으로 화장산, 서로 오관산, 남으로 도라산, 북으로 망해산이 둘렀으며, 그 산세는 둥그렇고 원만하게 생겼다고 기록한다. 둥그스럼한 산에 ‘도라’라는 말이 붙은 사례는 함경남도 단천의 ‘도라화산’도 있다. ‘도라’는 ‘돌다’에서 나온 말이다. 이 말과 비슷한 형태로는 ‘두루’, ‘두리’가 있다. 지리산의 다른 이름으로 ‘두류산’이 있으며, 단천의 ‘도라화산’이 ‘두류산’이라 불리기도 한다. ‘두류’의 이형태인 ‘두로’와 ‘두륜’도 산이름으로 널리 쓰인다. 이는 ‘돌다’와 ‘둥글다’가 관련이 깊은 까닭인데, 동사 ‘두르다’나 형용사 ‘두렷하다’도 둥근 모습과 관련이 있다. ‘도라’와 ‘두루’는 둥글고 원만한 모습의 땅이름으로 널리 쓰인 말들이다. 남북 철도 왕래가 시도되면서 경의선과 도라산역이 자주 입에 오르내린다. 남북 열차의 도라산역 통과는 겨레의 둥글고 원만한 통일꿈을 상징하는 사건으로 남을 것이다. 허재영/건국대 강의교수
짝벗 일컫기 다른 언어에서도 짝벗(배필) 사이에서 부르는 안정되고 특별한 말은 드물다. 방향 정도나 애칭처럼 쓰이는 말뿐이다.(다링·디어·하니/영어, 아이건·롱롱/중국, 오마에·아나타/일본 …) 본디 부르는 말이 없는 게 자연스럽다고 할지라도, 서로 불러야 할 필요는 많다. 그 대안이 ‘애칭’이다. 실제 애칭을 만들어 쓰는 이도 적잖은 줄 안다. 우선은 자기들끼리 써서 편하게 통하면 된다. 나아가 숱하게 쓰긴 하지만, ‘여보’가 ‘여보시오’를 줄인 말이어서 재미 없다면 다른 말을 찾아 볼 수도 있다. “저(나) 좀 보아요”를 줄인 ‘저보’나 ‘나보’가 더 말맛이 난다면 ‘여보’를 제치고 애용될 수도 있을 터이다. 이쪽은 짝벗 사이 거리만큼 새말 깃발을 꽂을 여지가 많은 셈이다. 부르는 말이 안정되지 않은 만큼 짝벗을 일컫는 말도 다양하다. 남편이 아내를 제삼자 앞에서 “집사람·안사람·내자·마누라·아내·처 …”들로 일컫는다. 어버이나 동격 이상의 어른 앞에서는 ‘어미/에미·어멈, 그이, 그사람, ○○씨 …’들로 듣는이의 격에 따라 일컬음이 달라진다. 아내는 남편을 ‘바깥사람, 바깥양반, 밭사람, 그이 …’로 이른다. 어른 앞에서 ‘아비·애비/아범, ○ 서방 …’들을 써 왔고, 밖에서는 ‘우리 신랑, 저희 남편, 그이, 그사람, ○○씨 …’ 등 듣는이의 격에 맞춘 일컬음이 있다. 이 밖에 “철수야, 어머니는 어디 계시느냐” “자네 오라버니도 올 때가 됐네”처럼 듣는 상대 기준의 호칭이나 걸림말을 받아 쓰는 방식이 제일 흔하고 편하며 무난한 것으로 친다. 최인호/한겨레말글연구소장
바쁘다 “배우가 먼저 웃으면서 관중에게 웃음을 강요하면 웃기도 바쁘거니와 웃는 경우에도 그것은 면구한 웃음으로밖에 될수 없다.”(조선말대사전) ‘바쁘다’는 남북이 같이 쓰는 말로 ‘겨를이 없다’ 혹은 ‘매우 급하다’, ‘어떤 일이 끝나자마자 곧’의 뜻이다. 보기에서 ‘바쁘다’는 ‘웃을 겨를이 없거나 웃기에는 급한 상황’이 아니라, ‘웃기에 그 상황이 매우 딱하다’는 뜻이다. 북녘에서는 ‘바쁘다’를 ‘힘에 부치거나 참기가 어렵다’는 뜻과 ‘매우 딱하다’란 뜻으로도 쓴다. “우리 아이는 공부를 안 해서 대학 가기 바쁩니다”라고 하면, ‘대학 가기 어렵다’는 뜻이다. “사흘 동안에는 좀 바쁘겠는데”라고 하면, ‘사흘 동안에는 좀 어렵다’는 뜻이다. ‘겨를이 없다’와 ‘어렵다’는 의미적 관련이 있다. ‘겨를’은 ‘시간적인 여유’를 뜻하고, ‘힘에 부치거나 참기가 어렵다’는 ‘능력의 여유나 인내심의 여유가 없음’을 뜻하기 때문이다. 두 가지 뜻은 ‘여유가 없음’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어떤 일을 며칠 내에 하기 바쁘다’라고 하면 ‘며칠 내에 할 시간 여유나 능력의 여유가 없다’는 뜻도 되고, 그래서 ‘하기 어렵다’는 뜻도 된다. ‘대학 가기 바쁜 것’은 ‘대학 갈 시간의 여유가 없는 것’은 아니고 ‘대학 갈 실력의 여유가 없는 것’이다. ‘바쁘다’는 ‘여유가 없다’는 기본적인 뜻을 지니고, ‘-기(가) 바쁘게’의 꼴로 쓰여서 ‘곧’의 뜻을 나타내며, 북녘말에서 ‘매우 딱하다’의 뜻을 가진다고 하겠다. 김태훈/겨레말큰사전 자료관리부장
짝벗 사이 “남편과 아내 사이는 서로 짝벗이 되어서 공경말·삼가말을 쓰지 않는다. 소곤소곤 반쯤말로 하므로 서로 부름말이 없다.”(려증동·가정언어) “여보·여봐요·○○씨(신혼), 여보·○○ 아버지/○○ 어머니, ○○ 아빠/○○ 엄마(자녀 둔 뒤), 여보·영감/임자·○○ 할아버지/○○ 할머니, ○○ 아버지/○○ 어머니(장노년)”(국어연구원 화법표준화자문위·1992) 예부터 짝벗(배필) 사이에 그럴듯한 부름말이 없기는 하지만, 불러야 할 때가 많고 실제 쓰는 말도 숱한데, ‘여보’도 그 중 하나다. “거기요·보소·보이소·봅시다·아요·아여·어요·어이·여기요·여보·여봐요·이보오·저기요·저보 ….” 대체로 이름을 모르는 불특정인을 가까이서 부를 때도 쓰는 말들이다. 화법표준화자문위에서는 부름말로 ‘여보’를 대표로 골랐고, 지칭어로 ‘당신·○○씨’(신혼) ‘영감/임자’(장노년)를 표준으로 삼았다. 려증동님은 ‘여보·당신’은 싸움판에서 쓰는 말이어서 적절하지 않다며, 부르고 일컫는 말로 ‘어요·이녘’(아내에게), ‘아요·자기’(남편에게)를 내세운다. “거기·당신·이녘·임자·자기/재개·자네·영감·마누라·지·니 …” 부름말이 마땅찮으면 이런 말에 ‘아·야·요’ 같은 호격조사를 붙여 불러도 된다. 짝벗은 무람한 사이여서 그렇다. 적절하고 많이 쓰는 말을 표준으로 삼아 그 쓰기를 권할 수는 있을 터이다. 그러나 본디부터 명토박아 쓰지 않는 까닭에 다양해진 말을 ‘이거야!’라고 한둘만 내세우는 것은, 말을 가난하게 하는 폐단이 따른다. 최인호/한겨레말글연구소장
소태와 소도 <삼국지> ‘위지 동이전’은 진(晉)의 진수가 우리 옛역사를 기록한 책이다. 마한과 관련된 기록에는 “나라마다 별도의 고을(읍)이 있어 이름하여 소도(蘇塗)라 했으며, 큰 나무를 세우고 큰 북을 매달아 신에게 제사 지냈다. 그 안으로 도망한 자는 모두 잡아가지 못하였다”는 기사가 있다. 민속학자들은 ‘솟대’의 어원이 이 ‘소도’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말한다. 양주동은 <국사 고어휘고>에서 ‘솟대’가 ‘소도’에서 왔다는 견해는 한문 해석을 잘못한 것뿐만 아니라 ‘솟대’의 ‘솟다’와 ‘소도’의 음을 유추한 결과라고 짚었다. ‘소도’는 마한 각 고을의 별읍 명칭일 뿐 ‘나무를 세우고 북을 매단 것’과는 무관하다. 그는 ‘소도’의 ‘소’를 ‘수컷’의 ‘수’, ‘도’를 ‘터’로 보아 ‘수터’ 곧 ‘남성신을 제사하는 곳’으로 풀이한다. 민속학자들의 풀이보다는 훨씬 과학적이다. 그런데 ‘소도’와 유사한 땅이름은 아직도 남아 있다. 충주 소태면은 ‘소탱이골’이었다. 솔탱이골·소태양면으로 불리기도 했는데, 소나무가 많이 자라는 지역이다. 소태면 구룡리에서 원주 귀래면으로 넘어가는 고개가 ‘소탱이고개’이며, 그 아랫마을은 솔밭말 또는 송전(松田)이라 한다. <삼국사기> ‘지리지’에도 ‘소태현’이 나타나는데, 지금의 태안 지역을 가리킨다. 태안의 상징이 소나무이듯, 소태현과 소나무는 깊은 관계가 있었을 것이다. 솔잎혹파리에다 재선충 피해가 전국을 휩쓰는 지금 벌레가 들지 못하도록 ‘소도’를 만들어 소나무를 보호해야 할 때가 아닌가 싶다. 허재영/건국대 강의교수
꽝포쟁이 ‘꽝포쟁이’는 ‘허풍이 많거나 거짓말을 잘하는 사람’을 일컫는다. 비슷한 말로 남북이 같이 쓰는 ‘허풍선이·허풍쟁이·대포쟁이·거짓말쟁이’가 있고, 북녘말 ‘풍쟁이’가 있다. ‘-쟁이’가 붙으면 ‘앞말의 속성을 많이 가진 사람’이 된다. ‘허풍’은 ‘쓸데없는 바람’이므로 ‘쓸데없고 실속이 없는 말, 부풀려진 말’이 되고, ‘허풍선’은 ‘허풍을 일으키는 부채’이므로 ‘허풍이 많은 사람’이 된다. ‘대포’는 원래 ‘포탄을 쏘는 무기’인데, ‘허풍·거짓말’의 뜻으로 쓰인다. 남북 모두 두 가지 뜻으로 쓴다. ‘꽝포’는 ‘꽝! 소리만 요란한 대포’로 ‘거짓말’을 뜻한다. 무기인 대포는 쏘지만, 거짓말인 대포는 놓는다. ‘대포를 놓다, 꽝포를 놓다’는 ‘거짓말하다’의 뜻이다. “이 애가 글쎄 배가 깨졌다구 꽝포놓지 않니?” 문기는 영수를 흘겨보았다.(장편소설, 열다섯 소년에 대한 이야기) ‘대포’나 ‘꽝포’처럼 군사용어가 일반화한 것은 남녘에도 꽤 있다. ‘사령탑’(司令塔)은 ‘군함을 지휘하는 장소나 사람’인데, ‘한국 축구 사령탑, 새 경제팀의 사령탑’처럼 ‘경기나 일상생활에서 일을 지휘하는 중추부’를 이르기도 한다. ‘교두보’(橋頭堡)는 ‘다리를 지키려 쌓은 보루’인데, ‘어떤 일의 발판, 거점’의 뜻으로 쓰인다. ‘에프엠’은 ‘야전교범’(Field Manual)의 영어 약자인데, “누구는 에프엠이야”라고 하면 ‘누구는 원칙적인 사람이야’라는 뜻이 된다. ‘사령탑, 에프엠’은 북녘에서 일반 용어로 쓰이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김태훈/겨레말큰사전 자료관리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