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줌마·아지매 본디 집안에서 쓰던 말이 일반화한 게 적잖다. ‘씨’(氏)가 어울리지 않아 ‘○○○ 할아버지, ○○○ 할머니’로 쓰기도 하고, 아버지·어머니는 비유로도 흔히 쓰인다. 아주머니·아저씨는 어버이와 같은 항렬인 사람을 일컫는데, 정답게는 ‘아지매·아재’로 부른다. 잘 모르는 어른을 ‘아주머니/아줌마·아저씨’로 부를 때도 많다. ‘아저씨’도 그렇지만, 실제로 나이 든 여성을 편하게 일컫는 말로 ‘아줌마’ 만한 말이 있을까? 문제는 부르는 사람은 편한데, 듣는 이가 불편해하는 경우가 있다는 점이다. 아기·처자·아가씨에서 아내 또는 부인으로, 아주머니를 넘어 할머니가 되는 과정은 무척 자연스럽다. 그런데, 막상 마음 준비가 되지 않은 까닭에 늘 거슬리고 낯설어한다. 이런 생각이 그런 말 듣기를 꺼리게 하고, 마침내는 애먼 토박이 부름말 하나를 상스럽고 낮은말·낮춤말로 여기게 하며, 국어사전에까지 그런 식으로 풀이하고 규정하게 하는 지경에 이른다. ‘아주미’(<앚+어미)를 아주머니의, 아재·아재비(<아자비·앚+아비)를 ‘아저씨·아주버니’의, ‘아주비’를 ‘아주버니’의, 심지어 ‘아줌마’를 ‘아주머니’의 낮춤말로 풀기도 하는데, 이는 도가 지나치다. 요즘 위아래(계급)가 어디 있으며, 더구나 귀하고 손아픈 사람을 낮추어 부를 이가 누군가? 아줌마·아재·아지매들은 아빠·엄마·할배·할매처럼 아이말 또는 다정히 부르는 말, 아주미·아주비·아재비 …들은 어미·아비·할미·할아비 …처럼 듣는이 앞에서 자신을 지칭하는 말로 봐야겠다. 최인호/한겨레말글연구소장
구미와 곶 <표준국어대사전>에, ‘곶’은 ‘바다로 뻗어나온 모양을 한 곳’이라고 풀이돼 있다. 그렇다면 ‘곶’은 해안에만 있는 땅이름처럼 보이는데,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갈곶·갈고지·돌곶·돌고지’ 등은 바닷가가 아닌 곳에서도 흔히 보이는데, 두루 ‘곶’이 들어 있다. 우리말에서 ‘곶’은 ‘구무[굼]’와 마찬가지로 ‘움푹 파인 곳’을 뜻하는 말로 쓰였다. 이는 바닷가뿐만 아니라 내륙에서 움푹 파여 배를 대기 편한 곳에 ‘곶’을 붙인 데서도 알 수 있다. ‘곶’은 ‘고시’(古尸), ‘고자’(古自), ‘고차’(古次), ‘홀차’(忽次) 등으로 쓰였다. 백제 때 전남 장성군은 ‘고시리’(古尸伊)였으며, 신라 때 경남 고성군은 ‘고자미동국’(古資彌東國), 경기 안산은 ‘고사야홀차’(古斯也忽次)였다. ‘홀차’가 ‘구’(口)로 바뀌기도 하는데, ‘고사야홀차’는 ‘장항구’(獐項口)로, ‘요은홀차’(要隱忽次)는 ‘양구’(楊口)로 바뀌었다. ‘곶’은 다른 꼴로 나타나기도 한다. ‘고지’와 ‘구지’는 ‘곶’에 ‘이’가 붙어 된 말이며, 첫소리를 된소리로 내면 ‘꾸지’가 된다. 여수 지역의 ‘송고지·숫구지·일중구지·문꾸지’ 등은 ‘곶’의 이형태가 붙은 땅이름이다. 여기선 ‘곶’ 대신 ‘구미’가 붙은 곳도 제법 발견된다. ‘망구미·온구미’의 ‘구미’도 ‘곶’의 이형태들이다. <난중일기>에 보이는 ‘군영구미·이진구미’ 등도 마찬가지다. 이 말은 ‘굽다’의 이름꼴인 ‘구비’가 ‘구지’에 이어져 생긴 꼴이다. 이 또한 ‘곶’이 ‘구무’와 관련이 있을 가능성을 높여준다. 허재영/건국대 강의교수
쐐기풀 ‘쐐기’는 풀, 벌레, 물건 이름으로 두루 쓰인다. ‘쐐기풀’은 주로 숲 가장자리에 많이 자라서 시골에서 자란 사람이면 흔히 따끔하게 스쳐본 경험이 있을 것이다. 잎이 톱니 모양에다 포기 전체에 가시털이 나 있다. 가시에는 개미산(포름산)이 들어 있어 찔리면 쐐기한테 쏘인 것처럼 아프다. 그런데 독은 독을 이기는 법인지, 쐐기풀은 뱀독 해독제로도 쓰였다. ‘쐐기풀’은 모양과 감각이 두루 반영된 이름이다. ‘쐐기벌레’는 쐐기나방 애벌레로, 몸에 뾰족한 독침이 있어 따갑게 쏘기에 붙여진 이름일 터이다. ‘쐐기’는 물건을 고정시키거나 쪼갤 때 쓰는 쐐기(V)꼴 물건이다. 세계 글자 역사에서는 대체로 현존하는 최고의 문자로 기원전 4000년께 썼다는 메소포타미아의 쐐기문자를 든다. 진흙판에 글자를 새기기 때문에 쐐기같이 뾰족한 도구로, 진흙이 일어나지 않게 쐐기 모양으로 쓸 수밖에 없었는데, 당시 제일 훌륭한 신랑감은 의사도 판사도 아닌 ‘필경사’였다고 한다. 글자를 쓸 수 있는 사람이 지식과 권력의 최상층부인 시대도 있었는데, 최근 20년 사이 없어진 직업이 ‘필경사’와 ‘타자수’라는 얘기는 흥미롭다. ‘서예’는 말 그대로 미술 영역이 되었다. 임소영/한성대 언어교육원 책임연구원
수표 현금 대신 쓰는 수표(手票)의 기원은 13세기 유럽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1932년께 일본 수표법이 준용된 ‘조선민사령’에 처음으로 등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실제로는 그 이전부터 거래할 때 수표와 비슷한 ‘어음’이 널리 쓰였다. 조선 때 상평통보가 널리 쓰였는데, 무겁고 부피가 크다는 불편함이 있었다. 그래서 개성 상인들은 종이에 금액, 날짜, 채무자 이름 등을 적고, 엽전 대신 사용했다. 이것이 지금의 어음으로 발전했다고 한다. 북녘에서도 ‘수표’를 사용할까? 북녘에서도 ‘수표’를 쓰는데 그 뜻이 다르다. 북녘말 ‘수표’(手票)는 ‘서명’ 또는 ‘사인’(sign)을 말한다. “금컵 수상자에게서 기념으로 수표를 요구하다.”(우리말글쓰기 연관어대사전) 북녘에서는 수표를 서명·사인의 뜻으로만 쓰기에 보기로 든 글은 오해의 소지가 없다. 하지만 남녘말 ‘수표’로 해석하면 완전히 다른 뜻이 된다. 북녘말 ‘수표’는〈조선말사전〉(1961)에서도 확인되므로 그 이전부터 쓰이던 말로 보이는데, 남녘 사전에서는 확인되지 않는다. ‘서명’은 북녘에서도 쓰이고, ‘사인’은 ‘싸인’으로 적는다. 한편, 예전에 쓰던 서명 방식으로 ‘수결’(手決)이 있다. ‘수결’은 ‘서명·사인·수표’와 달리 이름이 드러나는 방식이 아닌 기호처럼 쓰였다. 이는 조선 말 개항 이후 도장에 그 자리를 내줬다가 요즘의 서명(사인)으로 이어진다. 남북 두루 수표(돈)와 어음을 어음으로 통합하고, ‘사인·싸인, 수표’ 대신으로 ‘서명’으로 통일해 쓰는 건 어떨까? 김태훈/겨레말큰사전 자료관리부장
임·님 임·님은 예부터 썩 높은 이나 귀한 이를 이를 때 쓴 말이다. 임금의 ‘임’이나 사랑하는 ‘임’이 그렇고, 뒷가지로 쓰는 ‘님’도 그렇다. 임금님이라면 맏높은 말에 다시 ‘님’을 붙여 지극히 높인다. 하느님·선생님·각시님·아드님·따님·서방님·손님·도련님·마님·샌님…들은 ‘님’이 아예 들러붙어 쓰이는 말들이다. 이 밖에도 ‘님’은 인격이 있는 지칭어에 붙어 높여 부르는 말을 만든다. 어버이를 높여 부르는 말은 무엇인가? 흔히 말하는 가친·부친·춘부장·선친·선대인, 모친·자당·자친·선대부인·선비 …처럼 살아 계시거나 돌아가신 어버이를 자신 또는 남이 가려가며 일컫는 높임말이 있는데, 이런 말들은 구별하기도 쉽잖고, 또 부르는 말이 아니라 모두 일컫는 말일 뿐이다. 옛시조나 글을 보면 아버님·어머님이 보이는데, 이 역시 글말이어서 실제로 어버이를 부를 때 썼는지는 알 수 없다. 대체로 자신의 아버지·어머니는 달리 높여 부르지는 않고, 남의 어버이를 높여 아버님·어머님이라 부른다. 예컨대 시집 온 며느리가 시가 부모를, 또 사위가 장인·장모를 부를 때는 ‘님’자를 붙여 불러야 자연스럽다. 할머님·할아버님·아주버님·아재뱀들도 주로 시집 온 며느리 쪽에서 쓰는 말이다. “핏줄로 계산되는 친당·척당 사람에게는 ‘님’을 붙여서 부름말로 사용할 수 없다”(려증동)는 해석도 있고, 표준화법 쪽에서도 자기 어버이를 비롯한 친척을 부를 때 ‘님’을 붙여 부르지 않는 것을 자연스런 화법으로 여긴다. 다만 편지글 등 간접적으로 격식을 차리는 글말에서 ‘어버이’에 ‘님’을 붙여 쓰는 정도다. 최인호/한겨레말글연구소장
오랫도리 옛날 서적을 읽다 보면 오늘날 쓰지 않는 말들이 나타날 때가 적잖다.〈열녀춘향수절가〉에서 이도령이 천자문을 읽자, 방자가 한 마디 던진다. “여보 도련님, 점잖은 사람이 천자는 또 웬일이오?”, “소인놈도 천자 속은 아옵네다.” 그러고는 “높고 높은 하늘 천, 깊고 깊은 따 지, 홰홰 칭칭 가물 현, 불타것다 누루 황”이라고 읽는 모습은 가히 웃음을 유발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실은 한문 공부의 첫걸음이라고 할 ‘천자문’ 풀이조차도 이해하기가 쉽지는 않다. 그 가운데 하나가 ‘오라 문’이다. 홍양호의 〈북색기략〉에는 함북 방언에 문(門)을 뜻하는 ‘오라’가 있고, 덕(德)을 뜻하는 ‘고부’(高阜)가 있다고 한다. 함북 방언은 조선 초기 육진을 개척할 때 경상도 사람을 이주시켰으므로 신라 고어라고 할 수 있다. 황윤석은 영남 인본 천자문을 바탕으로 ‘오라’가 영남 고어라고 하였고, 객사에서 아이들이 대문을 가리킬 때 쓰는 말이라고도 풀이하였다. 이처럼 ‘문’을 ‘오라’로 풀이한 예는 더 발견되는데,〈석봉 천자문〉의 ‘오라 문’이나,〈소학언해〉의 ‘문 오래며 과실 남글’[門巷果木]이 이에 해당한다. 그런데 고 김윤학 교수 연구에서, 강화 화도면에 ‘오랫도리’라는 밭이름이 있었다고 한다. 마을 사람들은 한 동네 들머리에 놓인 이 밭을 ‘출입문에 해당하는 밭’이라고 생각하며 ‘오랫도리’라 불렀다는 것이다. ‘도리’는 ‘둘레’란 뜻이므로, ‘동리로 드는 문의 주위에 놓인 밭’이다. 땅이름에 우리말이 화석처럼 깃든 경우라고 할 수 있다. 허재영/건국대 강의교수
단고기 초복·중복·말복이 되면 삼계탕이나 개장국을 먹는다. 삼계탕은 대표적인 여름 보양식으로 자리잡았으나 개장국은 아직 공인되지 않은 음식이다. 북녘에서는 개고기를 ‘단고기’, 개장국을 ‘단고기국’이라 한다. 단고기라는 말은 ‘고기 맛이 달다’는 데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평양시 낙랑구역 통일거리에는 ‘평양단고기집’이 있는데 1992년에 개장했다. 남녘에서 단고기는 공인된 식재료가 아니어서 규모가 큰 개장국 식당이 드문데, ‘평양단고기집’은 630석의 식사홀과 80석의 연회장, 7개의 방을 갖추고 있다니 무척 큰 규모다. ‘평양단고기집’에서는 다양한 단고기 요리를 코스요리로 맛볼 수 있다. 등뼈찜·갈비찜·가죽볶음·뒷다리토막찜·황구신이 차례로 나오고, 마지막으로 밥과 단고기국이 나온다. 밑반찬으로는 양배추말이김치와 우엉김치가 나온다. 남녘에서는 개장국을 보신탕·영양탕·사철탕이라고도 하는데, 재료 종류를 드러내지 않고 쓰는 말이다. 몸보신이 되고, 영양이 많고, 사철 먹어도 좋을 음식이 ‘단고기국’만은 아닐텐데도 이들 말은 ‘단고기국’을 가리킨다. 최근 중국에 평양단고기집 지점이 생겼다고 한다. 우리가 아직 마음대로 평양에 갈 수 없는 형편이지만 한편으로는 남녘 단고기 애호가들에게 희소식이겠다. 다른 한편으로는 공인되지 않은 개고기를 먹고자 밀도살, 밀수, 식당 편법 운영 등이 동원되는 남녘 현실과 단고기를 관광 상품으로 만들고 외국 지점까지 개설한 ‘평양단고기집’의 상황이 대조적으로 보인다. 김태훈/겨레말큰사전 자료관리부장
어버이 자신을 ‘아버지!’ ‘어머니!’라고 부르는 아들딸을 둔 ‘어미·아비’가 얼마나 될까? 글말로는 흔히 쓰지만, 현실에서는 아이들 말로 ‘엄마!’ ‘아빠!’로 불리고, 그 아들딸들이 어른이 되고서야 ‘아버지·어머니’ 하는 호칭을 이따금 듣는 형편이다. 요즘 들어 아이들 앞에서 자신을, 어른들끼리 이야기할 때도 자신과 상대를 ‘아빠·엄마’로 일컫거나 부르기까지 하는데, 이는 아이말을 따르는 꼴인데다 제 어미·아비를 욕먹이는 셈이 된다. 할아버지·할머니도 ‘할배·할매’가 아이 말, 친근한 말로 쓰인다. 손주 앞에서는 자신을 ‘할아비·할미’라고 하는데, 할아버지·할머니, 할배·할매는 부르는 쪽의 말인 까닭이다. 아비/애비·아범, 어미/에미·어멈, 할아비/할애비·할아범, 할미·할멈을 보면 사람 따라 경우 따라 마땅한 말을 골라 쓰도록 우리말이 갖추어져 있음을 알 수 있다. 아버지·어머니를 ‘아바쌔·아바씨·아바이·아배·아버니·아버이·아베·아부니·아부씨·아부이·아부재·아부제·아부지·아브이 …/ 어마·어마니·어마씨·어마에·어마이·어매·어머이·어메·어메이·어멤·어무니·어무이·오만·오매·오메·옴마 …’들로 부르는데, 고장이나 집안·사람 따라 조금씩 다른 게 재미있다. ‘아버지·어머니’는 인류 공통어에 가깝기도 해서, 부탄·몽골·중국·스리랑카 등에서도 아빠를 ‘아빠/아버/아바’처럼 말한다. 아람말(옛히브리어)로도 아버지를 ‘아바’로 불렀다는데, 이는 하느님을 일컫기도 한다. 그러고 보면 ‘하느님 아버지’나 ‘어버이 수령’이 그렇게 낯선 표현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최인호/한겨레말글연구소장
진고개와 긴고개 얼마 전 독자 한 분이 전화를 주셨다. 그분의 말씀은 서울 중구의 ‘이현’(泥峴)이 ‘진고개’인데, 이 고개 이름은 ‘길다’에서 온 말 아니냐는 말씀이었다. 땅이름 변화 과정에서 우리말의 특성이 반영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박형상 변호사님 말처럼 ‘진고개’는 질척질척한 ‘진흙’(泥) 고개가 아니라 ‘기다랗다’는 ‘긴 고개’에서 온 말이다. 우리말에서 ‘ㄱ’이 ‘ㅈ’으로 변화하는 현상은 전국적으로 나타난다. ‘기름’이 ‘지름’으로, ‘길’이 ‘질’로, ‘깁다’가 ‘집다’ 따위로 소리난다. 전남 장흥의 ‘이동’(泥洞)이 ‘진골, 진골목’으로 불리는 것이나 강원도의 여러 ‘진부령’이 구불구불한 긴 고개를 뜻하는 것은 ‘길다’가 ‘질다’로 바뀌는 과정을 보여준다. 이처럼 사람이 지나는 길이나 고개·섬 등에 ‘길다’가 붙어 형성된 땅이름은 숱하다. 전남 영암의 ‘진섬’은 ‘긴섬’이다. 이 섬은 ‘지네섬’이라고 불린 적도 있는데, ‘길다’의 다른 형태일 뿐이지 동물인 ‘지네’와는 상관이 없다. 작은 마을을 뜻하는 ‘지단말’이나 ‘지뎀말’ 등도 ‘길다’의 고장말인 ‘지다랗다’, ‘지뎀하다’가 붙어 형성된 이름들이다. ‘지다랗다’는 전국적인 분포를 보이는 말이며, ‘지뎀하다’ 또는 ‘지덴하다’는 최학근의 <전라남도방언연구>(1962)에 나타나듯이 전라 방언이다. 이처럼 땅이름의 이형태를 살피면 우리말 땅이름이 한자말로 옮겨지는 과정에서 의미가 엉뚱한 말로 변한 것들이 많다. 허재영/건국대 강의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