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버님, 처남댁 한가위가 며칠 앞으로 다가왔다. 명절이 가까워오면 국립국어원에는 가족 간의 호칭에 대한 문의가 급증한다. 호칭 문제는 지역뿐만 아니라 집안에 따라서도 다른 경우가 많아 표준안을 정하기가 쉽지 않다. 국립국어원에서는 여러 차례에 걸친 실태 조사와 전문가 자문을 통해 마련한 ‘표준언어예절’에 따라 안내를 하고 있다. 가장 흔한 질문은 한 집안의 며느리나 사위들 간에 형제간 서열과 나이순서가 뒤바뀐 상황에 관한 것이다. 손윗동서이지만 나이가 더 어린 경우 어떻게 불러야 할까? 일반적인 경우와 마찬가지로 손윗동서는 ‘형님’으로, 손아랫동서는 ‘동서’라고 부르면 된다. 다만 서로 존댓말을 쓸 것을 권한다. 손아랫동서에게는 동생에게 하듯 자연스러운 반말이 가능하지만 나이가 많은 경우에는 존댓말을 쓰면서 조심스럽게 대해야 한다는 것이다. 며느리들과 달리 나이가 뒤바뀐 사위들 사이에서는 손윗동서에게도 ‘형님’ 대신 ‘동서’라고 하는 것이 허용된다. 며느리들 사이의 위계는 중시하면서 사위들 간의 서열은 중요하지 않게 여긴다는 비판도 있지만, 전통과 관습의 영향이 큰 우리 사회의 현실을 반영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러면 한 집안의 며느리와 사위들끼리는 서로를 어떻게 불러야 할까? 전통적으로 시누이의 남편과 처남의 아내 사이에는 호칭어가 따로 없었다. 서로를 부르기는커녕 만날 일도 거의 없는 사이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요즘에는 결혼한 후에도 오누이가 가족과 함께 만나는 일이 잦아 서로를 부르는 말이 꼭 필요하게 되었다. 남편 누나의 남편에게는 남편의 형님을 부르는 말인 ‘아주버님’을, 남편 여동생의 남편에게는 결혼한 시동생을 부르는 말인 ‘서방님’을 쓴다. 처남의 아내를 부를 때는 손위인 경우 ‘아주머니’, 손아래인 경우는 ‘처남의 댁’이나 ‘처남댁’으로 부르는 것이 표준이다. 정희원 국립국어원 어문연구실장
Board 말글 2024.01.02 風文 R 2612
한 두름, 한 손 받고 싶은 추석 선물 1위로 한우가 꼽혔다고 한다. 부동의 1위였던 현금은 2위로 밀렸다. 한우 값 폭등이 원인이라는 분석 기사를 보면서 주머니 사정 생각하니 머릿속이 복잡해진다. 한우에 밀리긴 했지만 굴비도 예나 지금이나 최고급 선물에 속한다. 굴비는 아직도 새끼로 엮어 파는 전통이 남아 있다. 조기 같은 생선을 한 줄에 열 마리씩 두 줄로 엮은 것, 즉 20마리를 한 두름이라고 한다. 오징어도 20마리를 묶어 파는데 이를 ‘축’이라고 한다. 북어 스무 마리를 묶은 것은 ‘쾌’이다. 유독 스물을 나타내는 단위가 많다. 한약 스무 첩은 한 제이다. ‘고등어 한 손’하면 고등어 두 마리를 말한다. ‘손’은 한 손에 잡을만한 분량을 나타내는 말로 조기, 고등어, 배추 등의 한 손은 큰 것 하나와 작은 것 하나를 합한 것을 이른다. 미나리나 파 등의 한 손은 한 줌 분량을 말한다. 참 정겨운 표현이다. 그릇 열 개는 한 죽이다. 옷 열 벌도 ‘죽’이라고 한다. 버선 한 죽(열 켤레), 접시 한 죽과 같이 쓴다. 흔히 서로 뜻이 잘 맞을 때 ‘죽이 잘 맞다’ 고 하는데 여기에서 비롯된 말이다. 한 접은 채소나 과일 100개를 묶어 세는 단위이다. 예전에 우리 어머니는 배추 두 접씩 김장을 하곤 하셨는데 요즘 배추 200포기 김장하는 집이 얼마나 될까 싶다. 마늘, 곶감 등도 접을 쓴다. 오이, 가지 등을 셀 때에는 ‘거리’를 쓰기도 한다. 한 거리는 50개이다. 김을 묶어 세는 단위는 ‘톳’이다. 김 한 톳은 백 장이다. 선물도 시대에 따라 달라지는 것처럼 이제는 사라져 가는 우리말도 많다. 단위를 나타내는 말들이 특히 그렇다. 추석을 앞두니 이런 말들이 멀어져 가는 게 더 아쉽다. 임수민 KBS 아나운서실 한국어연구부장
Board 말글 2024.01.02 風文 R 2993
조명시리(朝名市利) 朝:아침/조정 조. 名:이름/이름날 명. 市:저자 시. 利:이로울 리. [유사어] 적시적지(適時適地). [참조] 일거양득(一擧兩得). [출전]《戰國策》〈秦策〉 명성은 조정에서 다투고 이익은 저자[市場]에서 다투라는 뜻으로, 무슨 일이든 적당한 장소에서 행하라는 말. 진(秦)나라 혜문왕(惠文王) 때(B.C. 317)의 일이다. 중신 사마조(司馬錯)는 어전에서 ‘촉(蜀)의 오랑캐를 정벌하면 국토도 넓어지고 백성들의 재물도 쌓일 것이므로, 이야말로 일거양득(一擧兩得)’이라며 촉으로의 출병을 주장했다. 그러나 종횡가(縱橫家) 출신의 재상 장의(張儀)는 그와는 달리 혜문왕에게 이렇게 진언했다. “진나라는 우선 위(魏),초(楚) 두 나라와 우호 관계를 맺고, 한(韓)나라의 삼천(三川) 지방으로 출병한 후 천하의 종실인 주(周)나라의 외곽을 위협하면, 주나라는 스스로 구정[九鼎:천자(天子)를 상징하는 보물]을 지키기 어렵다는 것을 알고 반드시 그 보물을 내놓을 것이옵니다. 그때 천자를 끼고 천하에 호령하면 누가 감히 복종하지 않겠나이까? 이것이 패업이라는 것이옵니다. 그까짓 변경의 촉을 정벌해 봤자 군사와 백성을 피폐(疲弊)케 할 뿐 무슨 명리(名利)가 있겠나이까? 신(臣)이 듣기로는 ‘명성은 조정에서 다투고 이익은 저자에서 다툰다[朝名市利]’고 하옵니다. 지금 삼천 지방은 천하의 저자이옵고 주나라 황실(皇室)은 천하의 조정이옵니다. 그런데도 전하께서는 이것을 다투려 하지 않고 하찮은 오랑캐의 촉을 다투려 하시옵니다. 혹, 패업을 멀리하시려는 것은 아니옵나이까?” 그러나 혜문왕은 사마조의 진언에 따라 촉의 오랑캐를 정벌하고 국토를 넓히는 데 주력했다. * 장의 : 전국 시대 말엽의 종횡가. 위(魏)나라 사람. 합종책(合縱策)으로 6국의 재상을 겸임했던 소진(蘇秦)과 함께 수수께끼의 종횡가인 귀곡 선생(鬼谷先生)에게 종횡의 술책을 배움. 위나라의 재상으로 있다가 진(秦)나라 혜문왕(惠文王)의 신임을 받아 진나라의 재상이 됨. 소진이 제(齊)나라에서 살해되자(B.C. 317) 6국을 순방, 유세(遊說)하여 소진의 합종책을 깨고 연횡책(連◈策)을 성사시켜 6국으로 하여금 개별적으로 진나라를 섬기게 함. 혜문왕이 죽은 후 참소(讒訴)를 당하여 위나라에서 객사(客死)함. (?~B.C. 309).
Board 고사성어 2023.12.30 風文 R 672
‘이고세’와 ‘푸르지오’ 우리 집 근처엔 ‘이고세’라는 음식점과 ‘푸르지오’라는 아파트가 있다. 이들은 각각 상호와 상품명에 우리말을 활용한 것으로서 아주 특기할 만하다. 그러나 둘 다 약간의 문제를 안고 있다. 먼저 ‘이고세’는 ‘이 곳에’를 그냥 소리 나는 대로 적은 것을 상호로 쓴 것이다. 최근 인터넷 공간에서 우리말을 한글 맞춤법에 따르지 않고 그냥 소리 나는 대로 적는 것과 유사하다. 그런데 그 둘 간에는 출발 지점이 완전히 다르다. 인터넷 공간에서는 빠르게 적기 위해서 그런 데 반해, ‘이고세’는 외국어처럼 보이도록 하기 위해 그런 것이기 때문이다. 견과류 관련 상품을 제조, 판매하는 ‘머거본’이라는 상호도 마찬가지이다. 외국어처럼 보이도록 하기 위해 ‘먹어 본’을 그냥 소리 나는 대로 적은 ‘머거본’을 그 상호로 쓴 것이다. 다음으로 ‘푸르지오’는 한글 표기상으론 별 문제가 없다. 그러나 ‘푸르지오’의 영문 표기가 ‘Prugio’라는 사실을 고려할 때 이 또한 얼마간 문제가 있다. ‘푸르지오’가 우리말의 형용사 ‘푸르-’를 활용한 것이라면 그 영문 표기는 ‘Pureujio’가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Pureujio’라 하지 않고 ‘Prugio’라 한 것은 군말할 필요도 없이 외국어처럼 보이도록 하기 위해서이다. 상호, 상품명 등에 우리말을 활용하는 것은 크게 환영 받을 만한 일이다. 현재보다 훨씬 더 우리말을 활용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현재 상호, 상품명 등의 대부분이 외국어로 도배돼 있다시피 하기 때문이다. ‘이고세’, ‘푸르지오’ 등은 아주 고무적인 현상이라 할 수 있다. 다만, 이들 또한 외국어로 가장되어야만 하는 현실이 씁쓸하다. 박용찬 대구대 국어교육과 부교수
Board 말글 2023.12.30 風文 R 2878
“이 와중에 참석해 주신 내외빈께” “바쁘신 와중에도 참석해 주신 내외빈 여러분께 깊이 감사를 드립니다.” 며칠 전 참석한 행사에서 사회자가 한 말이다. 흠 잡을 데 없는 인사말 같지만 두 군데나 잘못이 있다. 단어의 정확한 의미를 모른 채 다른 사람들이 사용하는 말을 무작정 따라 하다 보니 잘못된 표현이 점점 널리 퍼지고 있다. ‘와중’의 ‘와(渦)’는 ‘소용돌이’를 뜻한다. 소용돌이는 물이 빙빙 돌면서 흐르는 현상을 가리키는데, 비유적으로는 힘이나 사상, 감정 따위가 요란스럽게 뒤엉킨 상황을 나타낸다. 여기서 나온 ‘와중에’라는 말은 일이나 사건 따위가 복잡하게 벌어지는 상황을 묘사할 때 쓴다. 국어사전에는 ‘많은 사람이 전란의 와중에 가족을 잃었다.’는 문장이 전형적인 용례로 제시되어 있다. 그러니까 ‘와중에’라는 말은 전란이나 산불, 홍수 같이 큰일이 나서 정신을 차리기 어려울 정도로 복잡하게 뒤엉킨 상황에 적합한 말이다. 일상생활을 하는 가운데 조금 분주한 상황에서는 ‘와중에’라는 말이 어울리지 않는다. 위의 인사말은 그냥 ‘바쁘신 중에’라고만 해도 충분하다. ‘내외빈’도 한자를 잘못 유추해서 만들어 낸 말이다. 안팎에서 오신 손님들을 아울러 이르는 ‘내외빈’이란 단어는 우리말에 없다. ‘내빈’은 ‘모임에 공식적으로 초대 받아 온 손님’을 뜻하는 말로, 한자로는 ‘올 래(來)’ 자를 쓴다. 이것을 ‘안 내(內)’ 자로 오해해서 ‘내외빈’이란 말을 쓰는 것이다. ‘외빈’이란 말은 있지만 이것은 외부에서 온 손님, 특히 외국에서 온 손님을 특별히 이르는 말이다. 손님은 대개 외부에서 오게 마련이므로 내부 손님만을 따로 가리키는 ‘내빈’이라는 말은 없다. 오신 손님들을 모두 아우르는 ‘내빈(來賓)’을 사용해서 ‘내빈 여러분께 감사드린다’라고 말하면 된다. 정희원 국립국어원 어문연구실장
Board 말글 2023.12.30 風文 R 2945
조강지처(糟糠之妻) 糟:술재강 조. 糠:겨 강. 之:갈 지(…의). 妻:아내 처. [원말] 조강지처 불하당(糟糠之妻不下堂). [출전]《後漢書》〈宋弘專〉 술재강과 겨로 끼니를 이을 만큼 구차할 때 함께 고생하던 아내. 전한(前漢)을 찬탈한 왕망(王莽)을 멸하고 유씨(劉氏) 천하를 재흥한 후한(後漢) 광무제(光武帝) 때의 일이다. 건원(建元) 2년(26), 당시 감찰(監察)을 맡아보던 대사공(大司空:御史大夫) 송홍(宋弘)은 온후한 사람이었으나 간할 정도로 강직한 인물이기도 했다. 어느 날, 광무제는 미망인이 된 누나인 호양공주(湖陽公主)를 불러 신하 중 누구를 마음에 두고 있는지 그 의중을 떠보았다. 그 결과 호양공주는 당당한 풍채와 덕성을 지닌 송홍에게 호감을 갖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 후 광무제는 호양공주를 병풍 뒤에 앉혀 놓고 송홍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던 끝에 이런 질문을 했다. “흔히들 고귀해지면 (천할 때의) 친구를 바꾸고, 부유해지면 (가난할 때의) 아내를 버린다고 하던데 인지상정(人之常情) 아니겠소?” 그러자 송홍은 이렇게 대답했다. “폐하, 황공하오나 신은 ‘가난하고 천할 때의 친구는 잊지 말아야 하며[貧賤之交 不可忘], 술재강과 겨로 끼니를 이을 만큼 구차할 때 함께 고생하던 아내는 버리지 말아야 한다[糟糠之妻 不下堂]’고 들었사온데 이것은 사람의 도리라고 생각되나이다.” 이 말을 들은 광무제와 호양 공주는 크게 실망했다고 한다.
Board 고사성어 2023.12.29 風文 R 776
뒤치다꺼리 대학수시모집 원서접수가 막바지다. 작년 이맘때 고3엄마로 초조하고 정신 없이 보내던 날들이 떠오른다. 수험생을 둔 부모의 마음은 한결같을 것이다. 부모의 자식 뒤치다꺼리는 도대체 언제까지일까? 유독 우리나라 부모들의 자식에 대한 헌신은 끝이 없어 보인다. 뒤에서 일을 보살펴 도와주는 일을 ‘뒤치다꺼리’라고 한다. 그런데 ‘뒷치닥거리’ 혹은 ‘뒤치닥거리’로 잘못 알고 있는 사람이 많다. ‘뒤치다꺼리’는 명사 ‘뒤’와 ‘치다꺼리’가 합하여 생긴 말로 ‘치다꺼리’는 어떤 일을 치러 내는 것, 혹은 남의 자잘한 일을 보살펴 주는 일을 말한다. ‘치다꺼리’가 거센소리로 시작하기 때문에 ‘뒤’에 사이시옷을 붙이지 않고 ‘뒤치다꺼리’가 되는 것이다. ‘뒤치닥’과 ‘거리’가 합하여 ‘뒤치닥거리’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있는데 ‘뒤치닥’이란 단어는 사전에 없다. ‘-거리’와 ‘-꺼리’는 헷갈리기 쉽다. 하지만 ‘꺼리’는 한 낱말이 아니다. ‘거리’는 의존명사로 국거리, 반찬거리, 자랑거리, 얘깃거리, 고민거리, 마실 거리 등 ‘어떤 내용이 될 만한 재료’라는 뜻으로 다양하게 쓰인다. 또한 ‘한나절 거리(한나절 동안 해낼만한 일)’ ‘한 시간 거리(한 시간 동안 해낼만한 일)’처럼 시간 뒤에 쓰이거나 ‘한입 거리(한입에 처리할만한 것)’ ‘한주먹 거리(한주먹에 처리할만한 것)’처럼 수를 나타내는 말 뒤에 쓰이기도 한다. 이 경우 모두 ‘꺼리’로 발음되기 때문에 혼동이 오기 쉽다. 굿을 뜻하는 ‘푸닥거리’라는 말이 있다. 여기서 ‘푸닥거리’는 ‘푸닥+거리’가 아니다. ‘푸닥’이란 말은 없다. ‘치다꺼리’와 마찬가지로 ‘푸닥거리’ 자체가 한 단어이다. 단어의 형태가 비슷하지만 하나는 ‘꺼리’이고 하나는 ‘거리’이다. 임수민 KBS 아나운서실 한국어연구부장
Board 말글 2023.12.29 風文 R 275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