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바루기] 무색케, 도입케 / 무색게, 도입게 "요즘 극장가에서 화제가 되고 있는 영화 '디 워(D-WAR)'의 흥행은 평단의 시각을 '무색케' 할 만큼 전혀 다른 양상을 보이고 있다." "중앙선관위는 각 당이 대선 경선에서부터 정책선거를 '도입케' 하고자 매니페스토 운동을 적극 지원할 것이라고 말했다." 두 예문에 나오는 '무색케' '도입케'라는 단어의 표기 방식은 널리 쓰이고는 있지만 우리말 어문 규정상 올바른 형태가 아니다. 어문 규정에 따라 쓰려면 어색하기는 하지만 '무색게' '도입게'라고 써야 옳다. 한글 맞춤법에 "어간의 끝음절 '하'의 'ㅏ'가 줄고 'ㅎ'이 다음 음절의 첫소리와 어울려 거센소리로 될 적에는 거센소리로 적는다(실망하게→실망케, 무심하지→무심치, 실천하도록→실천토록). 그런데 어간의 끝음절 '하'가 아주 줄 적에는 준 대로 적는다. '하' 전체가 떨어져나가는 경우는 '하' 앞의 말이 안울림소리(ㄱ, ㅂ, ㅅ 등)로 끝나는 받침이 있는 경우(넉넉하지→넉넉지, 섭섭하지→섭섭지, 깨끗하지→깨끗지)"라고 돼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인터넷이나 신문, 잡지 등을 살펴봐도 '무색게' '도입게'라고 표기하는 모습은 거의 찾아보기 어렵다. 이처럼 언중이 생소하고 어색하다고 느낀다면 이 또한 올바른 형태라고 하기 어렵다. 이럴 경우 '무색하게' '도입하게'처럼 쓰는 것이 대안이 될 수 있다.
Board 말글 2012.07.03 바람의종 R 9307
[우리말바루기] 나까채다, 나꿔채다, 낚아채다 매서운 눈을 가리켜 '독수리눈'이라고 한다. 실제 독수리는 사람보다 다섯 배 이상 시력이 발달돼 아주 멀리서도 사냥감을 찾아낸다. 게다가 상공에서 단숨에 하강해 먹이를 낚아챈다. 초점거리를 먼 곳의 사물에서 코앞의 사물로 재빠르게 바꿀 수 있는 줌렌즈 같은 눈을 갖고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동물들의 사냥술을 얘기할 때 '낚아채다'란 표현을 많이 쓴다. 그런데 "소리 없이 먹잇감을 나꿔채 기류를 타고 날아오르던 모습이 일품이던 솔개는 수십 년 전만 해도 흔한 새였다" "수달은 물속의 사냥꾼답게 물고기 한 마리를 나까채 순식간에 먹어 치운다"와 같이 표기 방법이 제각각이다. 남의 물건을 가로채거나 다른 사람의 말이 끝나자마자 받아 말하는 경우를 일컬을 때도 마찬가지다. "경찰은 현금이 든 가방을 나꿔채 달아나는 소매치기를 쫓았다" "그는 버릇처럼 말꼬리를 나까챘다"처럼 사용하고 있지만 '나꿔채다' '나까채다'는 바른 표현이 아니다. '낚아채다'라고 해야 맞다. '낚아채다'는 무엇을 갑자기 붙들거나 추켜올리는 '낚다'와 갑자기 세게 잡아당기는 '채다'가 합쳐진 말로 가로채다.잡아채다는 뜻으로 주로 쓰인다. "송종국이 문전으로 날린 프리킥을 그는 마치 독수리가 먹이를 낚아채듯 달려들며 골로 연결했다" "우악스러운 손이 소년의 팔을 낚아챘다" "여자는 남자의 말을 낚아채듯 되받았다"와 같이 사용해야 한다.
Board 말글 2012.07.03 바람의종 R 11950
[우리말바루기] 복구 / 복원 올여름은 휴가철에 유난히도 비가 많이 내렸다. 휴가를 제대로 즐기지 못해 울상인 사람도 있겠지만, 수해로 시름에 잠긴 사람도 많다. 지반이 내려앉기도 하고, 집에 물이 차 가재도구와 전자제품이 망가지기도 했으며, 인명 피해도 적지 않았다고 한다.'복구'와 '복원'. 이 두 단어는 '되돌리다'는 의미를 품고 있다는 점에서 서로 비슷해 보이지만 미묘한 차이가 있어 어울리는 곳이 다르다. 각각 어떤 경우와 어울려 쓰이는지 수해 현장을 따라가 보자. 수해로 국보급 문화재가 훼손됐다면 어떤 낱말이 어울릴까. 복구는 '손실 이전의 상태로 회복하다', '복원'은 '원래대로 회복하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거의 같은 뜻으로 사용되고 있지만 '복구'는 손실 이전의 상태와 되도록 비슷하게 돌이킬 수 있을 때, '복원'은 손실 이전의 상태, 즉 원래의 상태로 돌이킬 수 있을 때 쓰인다. 문화재는 망가지면 그 전과 똑같이 고쳐 놓아야 하므로 '복구'보다는 '문화재 복원'이 더 잘 어울린다. 그렇다면 무너진 집을 수리하는 일에는 어떤 단어가 어울릴까. 모든 가재도구, 문짝 하나까지 전과 똑같이 되돌려 놓기는 힘들기 때문에 '수해 복원'보다는 '수해 복구'가 적절하다. 그렇다면 수해로 부상당한 사람에게는 어떤 단어가 어울릴까. "건강 복원/복구(하세요)"는 어색하다는 걸 알 수 있다. 이럴 때는 "건강 회복(을 빕니다)"이 잘 어울린다.
Board 말글 2012.07.02 바람의종 R 8170
[우리말바루기] 대비, 대처 #1. 모기는 열과 이산화탄소, 냄새에 끌린다. 모기에게 물리지 않으려면 땀.발 냄새를 풍기지 않도록 청결히 하고 짙은 향의 화장품 사용을 피해야 한다. #2. 모기에게 물렸는데 약이 없을 때 침부터 바르고 보는 사람이 많다. 잠시 가려움증은 덜어 주지만 침 속의 각종 세균이 상처를 덧나게 할 수도 있다. 물린 부위를 비누와 물로 깨끗이 씻은 뒤 얼음찜질을 하는 게 좋다. 피서지에서 모기에게 물리지 않도록 대비하는 요령과 모기에게 물렸을 때 적절하게 대처하는 방법을 각각 설명하고 있다. '대비'와 '대처'는 이처럼 어떤 일에 대응한다는 뜻이지만 그 쓰임엔 다소 차이가 있다. '대비'는 "북상하는 태풍에 대비해 합판으로 창문을 막았다"처럼 향후 일어날지도 모를 어떠한 일에 대응하기 위해 준비하는 것을 말한다. '대처'는 "대규모 지진이 발생했음에도 주민들이 신속히 대처해 피해를 최소화했다" "전 세계가 적극적으로 대처하지 않으면 지구 온난화를 막지 못한다"와 같이 어떤 사건이나 정세에 대해 알맞은 조치를 취하는 것을 이른다. '대비'는 꼭 일어난다고는 할 수 없지만 그럴 가능성이 매우 높은 일에 대해 준비하는 경우에, '대처'는 앞으로 생길 일도 가능하지만 주로 일어났거나 진행 중인 일에 대해 대응하는 경우에 사용한다는 점에서 차이가 난다. "산사태에 대처해 주민들은 안전한 곳으로 대피했다" "갑작스럽게 당한 일이라 어떻게 대비해야 할지 모르겠군"처럼 쓰면 어색한 문장이 된다. 두 문장의 '대피'와 '대처'를 바꿔 써야 자연스럽다.
Board 말글 2012.06.26 바람의종 R 7750
[우리말바루기] 엘레지, 사리 음력 6, 7월. 우리 조상들은 절기상으로 가장 무더우며, 삼복(三伏)이 들어 있는 이 무렵 나쁜 일을 떨어 버리기 위해 동쪽으로 흐르는 물에 머리를 감고 자양분이 많은 음식으로 몸을 보했다. 지금도 복날이 되면 보신탕.삼계탕 집들엔 장사진을 이룬다. 여기서 우리말에 관한 문제 하나. "그 친구는 보신탕을 먹을 땐 꼭 엘레지를 찾는다" "이렇게 더운 날엔 살얼음이 둥둥 떠 있는 냉면 사리가 생각난다"에서 쓰인 '엘레지, 사리'는 외래어일까. 슬픔을 노래한 악곡이나 가곡을 뜻하는 프랑스어 엘레지(lgie)도 있지만 여기서 쓰인 엘레지는 순 우리말이며 구신(狗腎), 즉 개의 음경을 한방에서 이르는 말이다. 구신을 '심'이라고 하는 사람도 많지만 '구신'과 관련해선 아직 표준어로 인정받지 못했다. 심은 '소의 힘줄, 죽에 곡식 가루를 잘게 뭉치어 넣은 덩이, 나무의 고갱이, 무 따위의 뿌리 속에 섞인 질긴 줄기' 등을 의미한다. 사리는 '국수, 새끼, 실 등을 포개어 감다'라는 뜻의 동사 '사리다'에서 온 말이다. '냉면 사리, 새끼 사리, 국수 사리' 등으로 쓰인다. 또한 뱀 따위가 몸을 똬리처럼 동그랗게 감거나, 다른 짐승이 겁을 먹고 꼬리를 내리는 모양새를 나타내기도 한다. 음식과 관련해 쓰이는 '엘레지.사리' 등이 순 우리말임을 알아 두자.
Board 말글 2012.06.26 바람의종 R 9425
[우리말바루기] 집중호우 -> 장대비 집중호우가 기승을 부리고 있다. 장마가 끝난 뒤 오히려 더 많은 비가 내리는 기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7월 장마가 끝난 뒤 8월 10일까지 내린 비가 장마 기간에 내린 비의 두 배를 넘는다고 한다. 이렇게 많은 비가 내리는 경우 기상청은 '호우' '집중호우' '호우주의보' '호우경보' 등의 특보를 발령한다. 호우(豪雨)는 줄기차게 내리는 크고 많은 비를 뜻한다. 12시간 80㎜ 이상일 때 호우주의보가, 150㎜ 이상일 때 호우경보가 내려진다. 집중호우(集中豪雨)는 시간당 30㎜ 이상 되는 비를 말한다. 그러나 이들 용어는 의미가 쉽게 다가오지 않는다는 데 문제가 있다. '호우'에는 좋은 벗을 뜻하는 '호우(好友)', 때를 맞추어 알맞게 오는 비를 뜻하는 '호우(好雨)' 등 한글로는 발음이 같은 단어가 많아 혼란스럽다. '경보' 역시 가벼운 걸음으로 빨리 걷는 '경보(輕步)' 등 여러 가지가 있다. 특히 '호우' '집중호우'는 우리가 원래 쓰지 않던 일본식 한자어다. 일본식 한자어다 보니 쉽게 다가오지 않을 수밖에 없다. '호우'는 '큰비', '집중호우'는 '장대비' 또는 '작달비'라는 순 우리말이 있다. 국립국어원도 '큰비'와 '장대비(작달비)'로 바꾸어 쓰는 것이 좋다고 사전에 올려 놓았다. 오래도록 써 온 용어를 바꾸기가 쉽지는 않지만 우선 일본식 한자어인 '호우'는 '큰비'로, '집중호우'는 '장대비'로 공식 용어를 바꾸는 작업이 있어야 한다. '주의보'와 '경보'도 다른 용어로 바꾸어 구분이 쉽도록 해야 한다.
Board 말글 2012.06.22 바람의종 R 9922
[우리말바루기] 주워섬기다 "워낙 빠른 속도로 주워삼키는 그의 말을 쫓아가느라 나 역시 점심을 먹는 둥 마는 둥 했다." "자기도 잘 이해하지 못하는 철학자나 이론가의 이름을 주워삼기 일쑤인 사람들과 달리 유쾌하고 경쾌한 언어에 슬쩍슬쩍 자기가 얘기하고자 하는 이론을 스며 넣는 솜씨는 내게 그저 한없는 열등감을 안겨줄 뿐이다." 예문에서 보듯이 들은 대로 본 대로 이러저러한 말을 아무렇게나 늘어놓는다는 뜻으로 흔히 쓰는 '주워삼키다' '주워삼다'는 바른 말이 아니다. 이런 뜻을 가진 올바른 단어는 '주워섬기다'이다. "그는 묻지도 않은 이야기까지 수다스럽게 주워섬겼다" "그녀는 '신문.요구르트 배달, 접시 닦기, 쓰레기 수거, 건물 청소원, 웨이트리스, 심야다방 DJ…'로 한참 주워섬기다가 '당신이 생각해 낼 수 있는 모든 일, 다만 호스티스만 빼고'라며 씁쓸하게 웃었다"처럼 사용된다. '주워삼키다'를 '주워 삼키다'로 띄어 쓰면 말이 된다. 바닥에 떨어져 있거나 흩어져 있는 것을 집는다는 의미의 '줍다'와 무엇을 입에 넣어 목구멍으로 넘긴다는 뜻의 '삼키다'를 함께 이를 때, 즉 "손님 중에는 감자튀김을 주워 삼키는 사람도 있었다" "모래알을 주워 삼키는 수탉들"처럼 쓰이기 때문이다. '주워섬기다'와 '주워대다'는 비슷한 말 같지만 조금 다르다. '주워섬기다'는 들은 대로 본 대로 자기가 체험한 사실들을 죽 들어 늘어놓는 것이고, '주워대다'는 생각이나 논리가 없이 제멋대로 이 말 저 말을 한다는 뜻이다.
Board 말글 2012.06.20 바람의종 R 9968
[우리말바루기] 불쾌한 반응 "내가 그의 잘못된 행동에 대해 충고하자 그는 얼굴을 찌푸리며 화를 냈다." 이 상황을 글로 표현할 때 "그는 나의 충고에 불쾌한 반응을 보였다" "그는 나의 충고에 불쾌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중 어느 쪽이 적절할까? 전자의 경우는 '타당한 충고를 했는데 그가 얼굴을 찌푸려 내가 불쾌했다'는 의미로 읽힐 가능성이 크다. 그에 비해 후자는 '내가 충고한 것에 대해 그가 불쾌하게 생각했다'는 뜻이 된다. 불쾌함을 느끼는 주체가 달라지는 것이다. 이런 예는 언론 매체에서 자주 듣고 볼 수 있다. "최 의원이 '김 통상교섭본부장은 미국에서 학교를 마쳤는데 친미파가 아닌가'라고 공격하자 김 본부장은 '친미파라니요'라며 불쾌한 반응을 보였다" "버지니아공대 총격 사건이 그가 출연한 영화 '올드보이'에 영향을 받았다는 보도에 최민식은 불쾌한 반응을 보였다" 등이 그런 예다. 이 경우는 모두 '불쾌한 반응'보다는 '불쾌하다는 반응'이라고 쓰는 게 정확하다. '실망스러운 반응/실망스럽다는 반응' '재미있는 반응/재미있다는 반응' 등도 이와 유사한 경우다. 비교하면 다음과 같다. 그는 내 제의에 실망스러운 반응을 보였다(그가 내 제의를 탐탁하게 여기지 않아 나는 마음이 상했다)/그는 내 제의에 실망스럽다는 반응을 보였다(그는 내 제의가 만족스럽지 못하다고 생각했다). 그는 내 말에 재미있는 반응을 보였다(깜짝 놀라는 등 평범하지 않은 반응을 보였다)/ 그는 내 말에 재미있다는 반응을 보였다(내 말이 흥미가 있다는 반응을 보였다).
Board 말글 2012.06.20 바람의종 R 9886
Board 말글 2012.06.19 바람의종 R 14825
[우리말바루기] 영어식 회사명 표기 며칠 전 연세가 지긋한 독자분께서 전화를 해 오셨다. 외국어 발음을 우리말로 잘못 표기한 회사 이름이 많은데 이를 바로잡아야 한다는 말씀이었다. '팔래스호텔'을 예로 들면서 '팰리스(palace)'이지 어떻게 '팔래스'가 되느냐며, 직접 그 호텔을 찾아가 이름을 변경해 줄 것을 요구하기도 했다고 말씀하셨다. 이분의 지적처럼 외국어를 우리말로 적을 때는 표기 원칙을 따라야 한다. 세세한 부분까지 규정을 따르긴 쉽지 않지만, 문제는 기업들이 상식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 수준의 발음마저 따르지 않고 있어 혼란을 준다는 점이다. 비씨카드(←비시카드), 씨티은행(←시티은행), 스탠다드차타드은행(←스탠더드차터드은행), 한국후지쯔(←한국후지쓰), 푸르덴셜(←프루덴셜), 한국썬마이크로시스템즈(한국선마이크로시스템스), 리나리찌(←리나리치), ○○캐피탈(←○○캐피털), 푸쳐비젼(←푸처비전), 휘트니스센터(←피트니스센터) 등 표기 원칙에서 벗어난 회사 이름이 수없이 많다. 일종의 고유명사이기 때문에 신문에서도 그대로 표기해 줄 수밖에 없는 것들이다. '한국리크루트'의 경우 과거에 '한국리쿠르트'로 표기하다 영어 발음에 맞춰 바로잡은 적이 있다. 비용을 고려하면 쉽지 않은 결정이다. 영어식 이름을 쓰고 있는 회사가 상장기업의 3분의 2나 된다고 한다. 기업체가 공익을 생각한다면 외래어로 이름을 짓는 것을 자제해야 하고, 굳이 영어식으로 하려면 표기법에 맞게 적어야 한다.
Board 말글 2012.06.19 바람의종 R 1029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