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방황은 큰 사람을 낳는다 - 마 데바 와두다 31. 받아들이기 <삶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라. 까닭 없이 누려라> 대단히 유명한 선승이 살고 있는 어느 마을에서 한 처녀가 임신을 하여 부모에게 발각 되었다. 아버지는 딸에게 사내가 누구냐고 윽박질렀고, 결국 딸은 아버지의 무서운 매를 피하기 위해 마을의 그 유명한 선승이 바로 애아버지라 말하였다. 아버지는 딸을 더는 윽박지르지 않았다. 때가 되어 마침내 아기가 태어났다. 아버지는 곧장 아기를 싸안고 선승을 찾아갔다. <스님의 아이요> 아버지는 다짜고짜 아기를 내놓으며 비웃었다. 듣고만 있던 선승이 간단히, <호, 그런가?> 하면서 아기를 받아 안았다. 그날부터 선승은 누더기 도포자락에 아기를 감싸 안고 정성껏 돌보았다. 비가 오나 바람이 부나 하루도 거르지 않고 이웃집들을 돌며 아기에게 젖을 얻어 먹였다. 그러자 제자들은 난리였다. 대부분의 제자들이 스승을 욕하며 그곳을 떠나버렸다. 선승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한편 아기와 떨어져 있던 애어머니는 괴로워서 더는 참을 수 가 없게 되었다. 그녀는 마침내 진짜 애아버지 이름을 실토해야겠다고 결심하였다. 진실을 알게 된 그녀의 아버지는 곧장 선승을 찾아가 무릎을 끓고 크게 용서를 구하였다. 듣고만 있던 선승이 간단히, <호, 그런가?> 하면서 아기를 돌려 주었다. 받아들이기. 무조건 받아들이기. 삶은 거울과 같은 것. 좋고 나쁜 게 따로 없다. 삶은 모두가 거룩한 것.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라. 그럴 때 욕망이, 긴장이, 불만이 사라진다.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때 까닭 없이 즐겁고 삶을 통째로 누리게 된다. 거기에 영원이 있다.
Board 추천글 2020.07.07 風文 R 1959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참 가슴 찡한 이야기 - 황지니 제1권 주머니 속의 어머니 얼굴 제2차세계대전이 일어났을 때의 이야기입니다. 미국 해군은 필리핀을 점령하고 있는 일본군에 대한 마지막 대공격을 눈앞에 두고 있었습니다. 필리핀의 수도인 마닐라의 바다에는 해병대를 태운 미국 군함이 꾸역꾸역 모여들었습니다. 이윽고 마닐라 해안을 향해 지구가 흔들릴지도 모를 엄청난 규모의 함포 사격이 시작될 찰나였습니다. 문득 한 해병의 윗도리가 바다로 떨어졌습니다. "앗, 내 군복!" 이렇게 외치며 그 해병이 물로 뛰어들려 하자 소대장이 말렸습니다. "안 돼! 곧 함포 사격이 시작된단 말얏!" 그러나 그 해병은 아랑곳하지 않고 바다 속으로 풍덩 뛰어들어 기어이 군복 윗도리를 건지려 했습니다. 이 하찮은 소동 때문에 함포 사격은 잠깐 중지됐습니다. 그리고 그 해병은 명령 볼복종 죄로 군법 회의에 넘겨져 재판을 받게 되었습니다. 재판관인 듀이 장군이 물었습니다. "함포 사격이 막 시작되려는 그 위험한 순간에 상관의 명령을 어기고 바다로 뛰어든 까닭은 무엇인가?" 그 해병은 제 군복 윗도리를 매만지며 대답했습니다. "이 옷을 건지기 위해 그랬습니다." "그 따위 군복 하나를 건지기 위해 군의 작전을 망치게 했단 말인가?" 듀이 장군의 성난 질문에 그 해병은 군복 주머니에서 사진 한 장을 꺼내 보이며 대답했습니다. "이건 제 어머니의 사진입니다. 저는 이 사진을 제 목숨보다 소중하게 여기고 있습니다." "뭐라고? 어머니 사진?" 놀란 듯 한동안 멍하니 앉아 있던 듀이 장군은 크게 감동받은 표정으로 해병에게 악수를 청하며, "어머니의 사진 때문에 제 목숨을 바칠 수 있는 군인이라면 나라를 위해서도 마땅히 목숨을 바칠 수 있을 것이다" 하고는 죄를 묻지 않기로 했습니다. 다시 말해 특별 사면을 내린 것입니다. 어머니의 사랑은 위대합니다. 그래서 아들은 목숨을 걸고 어머니의 사진을 건져냈던 것이며, 역시 어머니의 사랑은 위대하기 때문에 아들이 무죄로 석방되도록 하늘에서 도와주었던 것입니다. 로멘스는 우리를 실망시키고 우정도 실망시키지만 부모자식 관계는 다른 모든 관계보다 덜 시끄러우면서도 세상에서 여전히 잊을 수 없고 끊을 수 없는 가장 강력한 관계이다. (T. 라이크)
Board 추천글 2020.07.07 風文 R 2125
작은 이야기 1 - 정채봉, 류시화 엮음 2. 평범한 행복 아버지의 유언 - 르네 과암 임종을 앞둔 늙은 아버지가 평생을 두고 속을 썩혀 온 아들 때문에 괴로워하고 있었다. 그의 아들 마하는 불행히도 세 가지의 나쁜 버릇을 가지고 있었다. 노름으로 세월을 보내고, 술로 건강을 해치며, 하루도 춤을 추지 않고는 못 사는 아들이었다. 아버지는 그의 아들을 한때는 내쫓기까지 했고, 어는 때는 눈물로 호소하기도 했지만 아들의 못된 버릇은 고쳐지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그렇게 많던 재산은 거의 탕진되고 집안 살림은 말할 수 없이 궁해지고 말았다. 그러나 임종을 눈앞에 둔 아버지의 마음은 재산의 탕진보다 아들의 참회만을 바랄 뿐이었다. 아버지는 남은 숨을 몰아 쉬면서 아들을 침대 옆으로 불렀다. "이제 무슨 말로 널 타일러야 할지 모르겠구나! 세상에서 정말 미친 사람은 자신 있다고 믿는 사람이다. 너의 그 자신감이 얼마나 큰 것인지 모르겠지만, 이제 마지막으로 너에게 오직 한 가지만 부탁하겠다. 네가 노름을 계속해야 한다면 말리진 않겠다. 그 대신 최고의 노름꾼과 노름할 것을 약속해 다오. 그 다음, 술을 마시고 싶거든 반드시 자정이 넘은 후에 술집에 들어가거라. 그리고 댄서들과 춤을 추고 싶거든 이른 새벽에 춤을 추러 가거라. 네가 이 말만 들어준다면 나는 편안히 죽을 수 있을 것 같다. 약속해 다오. 내 아들아, 이 정도의 부탁은 어렵지 않겠지." 아들 마하는 아버지의 이해심에 감동되어 그 정도의 말씀이라면 하나도 어려울 것이 없다고 생각하고 아버지의 두 손을 잡으며 엄숙하게 약속했다. "걱정 마십시오, 아버지. 그 정도의 약속만큼은 반드시 지키겠습니다." 늙은 아버지는 안도의 숨을 쉬면서 눈을 감았다. 아버지를 잃은 그는 슬픔을 가누지 못한 채 석 달 동안은 근신하면서 조용히 지냈다. 그러나 슬픔은 그리 오래 가지 않았다. 얼마 안 가서 그는 아버지가 마지막으로 남겨 준 묵직한 돈주머니를 만지면서 노름집을 찾아갔다. 이상한 흥분마저 느끼면서 그는 가장 노름을 잘하는 사람을 찾았다. 마침 그때 누군가 세상에서 가장 노름을 잘한다는 사람을 소개해 주었다. 순간 그는 깜짝 놀랐다. 노름왕의 행색이 말이 아니었다. 발가락이 나오는 다 떨어진 구두에 옷이라고는 누더기를 걸쳤으며, 퀭한 눈에 등은 굽어 폐병 환자처럼 기침을 하고 있었다. 그를 둘러싸고 한창 노름에 열중하고 있는 얼굴들을 하나하나 둘러본 마하는 더욱 놀랐다. 저마다 원한과 복수에 차 있고, 범죄와 절망, 탐욕과 자살 직전의 비통스런 얼굴들이었다. 모두가 마치 죽음의 쇠사슬을 잡아당기고 있는 것 같았다. 더 이상 그곳에 머물 용기를 잃고 마하는 말없이 노름집을 빠져 나왔다. 그러나 술은 자기를 즐겁게 해주리라 믿고 자정이 가까워지도록 기다리다가 어느 술집 문을 두드렸다. 술집에 들어서자 우선 그는 숨을 쉴 수가 없었다. 앞이 안 보이는 담배 연기 속에서 정신을 잃은 사람들이 여기저기 굴러 다니고, 빈 병을 가슴에 안고 소리지르는 부랑자, 술을 내놓으라고 칼을 들이대는 알코올 중독자들... 도무지 사람의 형상이 아니었다. 카운터에는 아무도 없었다. 주인을 소리쳐 부르니 창문으로 머리만 내밀고 귀찮은 표정으로 뭘 원하느냐고 물었다. 마하는 구토증을 느끼면서, 여기 이 사람들 뭣하는 사람들이냐고 물었다. 술집 주인이 소리쳤다. "그 사람들 죽을 때까지 우리 집에 술 마시러 오는 환자들이오." 그리고는 문을 닫아 버렸다. 마하는 방금 본 알코올 중독자들이 쫓아올 것 같아 숨이 차도록 그곳을 뛰어나왔다. 술이 인생을 그렇게 망칠 수 있을까 생각하면서... 어두운 밤거리를 헤매다가 마하는 자신을 기쁘게 맞이해 줄 댄서를 만나기 위해 새벽이 오기를 기다렸다. 카페 문이 열리자마자 그는 평소에 잘 아는 아름다운 댄서, 하바바의 방문을 두드렸다. 자정이 넘어 피곤하게 잠들었다 깬 여인의 모습은 거짓말같이 딴 사람처럼 보였다. 주름투성이, 진한 화장을 지우지 않은 채 잠이 들었는지 기름이 흐르는 얼굴에 머리카락은 마귀 할머니 같고 핏기가 하나 없는 해골 같은 몸은 금방 쓰러질 듯했다. 그러면서도 하바바는 이른 아침 찾아온 손님을 반기면서 무얼 원하느냐고 물었다. 술잔을 통해서 그녀를 아름답게만 보던 청년의 마음은 차갑게 식어 버렸다. 잘 있으라는 인사도 못하고 마하는 하바바의 집을 나왔다. 천천히 집으로 오면서 그는 처음으로 어떤 해방과 자유를 찾은 심정이었다. (성옥련 옮김)
Board 삶 속 글 2020.07.07 風文 R 1723
퇴화되는 표현들 많고 적음을 알게 하는 ‘양의 세계’는 숫자나 수관형사 그리고 수량단위의 결합으로 나타낸다. 수량단위는 보통사람들이 설명을 들어도 잘 모를 전문적인 단위들도 있지만 반대로 일상생활에서 긴요하게 쓰이는 단위들도 퍽 많다. 가장 흔한 것이 아마 개수를 일컫는 ‘개’일 것이다. 그리고 사람을 세는 ‘명’과 ‘사람’, 동물을 세는 ‘마리’, 장소를 세는 ‘군데’, 책을 세는 ‘권’ 등 헤아릴 수 없이 많다. 언제부터인지 이 수량단위가 점점 단순해지고 있다. 책을 ‘한 개, 두 개’ 하며 세는 것도 퍽 흔해졌고, 식당에서 “맥주 다섯 개요?” 하고 되묻는데 아무도 이상해하는 것 같지가 않다. “쟤네 집에는 차가 세 개나 있대”라는 말도 퍽 흔히 듣는다. 그러다 보니 “잠시만요, 담배 한 개 사올게요”에서의 ‘개’와 “하루에 담배를 스무 개나 피워요?”에서의 ‘개’가 서로 다른 것을 가리키고 있다. 수량과 관련된 정보 교환이 점점 성글어지고 있는 셈이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못 알아듣는 것은 아니다. 이와 함께 수량단위와 함께 쓰이는 수관형사 ‘한, 두, 서(석), 너(넉) …’에서도 ‘서(석)’와 ‘너(넉)’를 들어보기가 점점 어려워진다. 이미 장년층에서조차 ‘종이 석 장’과 ‘볼펜 넉 자루’를 각각 ‘세 장’과 ‘네 자루’라고 말한다. 볼펜은 아예 ‘네 개’라고 하는 표현이 더 많다. 흥미로운 것은 이렇게 해도 그 불편함이나 어색함을 호소하는 사람이 거의 없다는 것이다. 어느새 대세가 되어 버린 느낌이다. 오래된 언어는 장구한 세월 유지해온 정교한 틀이 있다. 거추장스러워 보이면서도 언어의 완결성과 자기다움을 보여주던 장치였다. 삶의 속도와 효율성 추구는 이러한 불필요한 듯하면서도 자기답게 만들어주던 장치와 장식을 용서 없이 팽개치고 있다. 의미와 용법의 차이가 발생하지 않는 한, 편리함과 간결함을 기준으로 언어의 모습을 거침없이 탈바꿈시키고 있다. 언어도 일회용 소모품이 되어 가는 느낌이다. ……………………………………………………………………………………………………………… 존댓말과 갑질 존댓말은 서로 예절을 지키며 용건을 해결해 나가는 사회적 도구이다. 옛날에는 서로의 지위, 계층, 연배의 차이를 구별하던 말이었지만 지금은 그보다는 서로 사적이 아닌 공적인 관계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표현하는 데 쓰이는 매우 유용한 언어 용법이 되었다. 그래서 나이나 지위가 낮은 사람한테도 존댓말을 씀으로써 오히려 품격을 지키게 되고 공공의 소통을 더욱 객관화하는 훌륭한 언어 교양이라고 할 수 있다. 메르스라는 질병으로 온통 정신이 없는 요즘 어떤 방송에서 다시 한번 언어와 교양 문제를 돌이켜보게 하는 보도가 있었다. 어느 공기업의 직원이 메르스에 대한 걱정 때문에 마스크를 쓰고 근무하는 아르바이트생에게 마스크를 벗으라고 요구했고 이에 불응하자 해고했다는 내용이었다. 해고당한 사람은 강력히 항의했지만, 담당 직원은 마스크가 (외국 손님들에게) 위화감을 줄 수 있다며 “마스크를 착용하면 통역을 하고 도와드려야 하는데 의사소통이 잘 안되니까 혹시 마스크 착용을 안 해도 (되겠냐) 정중하게 부탁을 드렸거든요”라고 했다고 한다. 이 보도가 정확한 사실에 근거했다면, 여기서 ‘정중하게 부탁’을 드린 말은 분명 존댓말의 형식일 것이다. 권력의 우위를 차지한 사람이 권력이 없는 사람에게 존댓말로 정중하게 ‘부탁’을 한다는 것은 사실 ‘명령’을 내렸다는 말이나 다름없다. 그리고 그 명령은 함부로 내뱉은 지시보다 더욱더 강력하다. 논리적으로나 감성적으로 저항을 할 수 있는 여지가 전혀 없어지기 때문이다. 존댓말이나 언어의 정중함이 권력의 비대칭과 이에 따른 권력의 일방적 관철을 드러내는 ‘갑질’과 연관될 때는 그 말의 우아함과 품위는 도리어 칼날 같은 흉기가 될 수도 있다. 말을 곱게 가다듬는 일보다 모두의 사회적 관계를 품위 있게 발전시키는 일이 더욱 중요한 까닭이 여기에 있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필요한 정당성은 모든 개인을 보호해줄 수 있는 언어적 민주주의에 바탕을 두어야 한다. 김하수 한겨레말글연구소 연구위원
큰 방황은 큰 사람을 낳는다 - 마 데바 와두다 30. 죽음 <자기 속 안에서, 결코 죽지 않는 불멸의 것을 찾으라. 이제는 죽어 사라지는 것일랑 놓아 보낼 때> 붓다의 기적은 예수의 것과는 아주 다르다. 한 여인이 붓다를 찾았다. 아들이 죽어 비통함에 젖은 여인이었다. 그녀는 과부였으므로 자식을 또 가질 수도 없는 처지였다. 온통 사랑과 헌신으로 돌보던 외아들을 잃은 것이었다. 그런데 붓다는 뭐라 했는가? 붓다는 미소를 지으며 말하기를, <여인아, 마을로 내려가 단 한 사람도 사람이 죽은 일 없는 집의 씨알 한 줌 얻어오라> 여인은 쏜살같이 마을로 달려가 온 마을을 뒤졌다. 그러나 집집마다 말하는 것이었다. <씨알이라면 얼마든지 줄 순 있소만, 원 그런 집이 어데 있단 말요. 우리집만 해도 벌써 여러 사람이 죽었으니> 어느 집 하나 사람 안 죽은 집이 없었다. 하지만 여인은 단념 할 수 없었다. <꼭 있을 거야... 누가 알까? 어딘가에 분명 사람 죽은 일 없는 집이 있을 거야> 여인은 온종일 마을을 샅샅이 뒤지며 돌아다녔다. 그러나 그런 집이 있을 리없었다. 날은 어두워졌고, 지칠대로 지쳐 있을 때 돌연 큰 깨침이 번쩍 하고 여인의머리를 때렸다. "아, 죽임이란 삶의 짝이로다. 죽음은 받드시 있는 것. 그건 나만의 일이 아니로다" 여인은 붓다에게로 달려갔다. 붓다가 물었다. <여인아, 씨알이 있더냐?> 여인은 살포시 웃으며 무릎을 접었다. <가르침을 주십시오. 죽지 않는 것을 알고 싶습니다. 이젠 아들을 찾지 않을 것입니다. 설혹 아들을 다시 갖는다 하더라도 또다시 죽겠지요. 가르침을 주십시오. 결코 죽지 않는 것이 무엇인지>
Board 추천글 2020.07.06 風文 R 1698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참 가슴 찡한 이야기 - 황지니 제1권 내가 바로 시어러예요. 제2차세계대전 전, 남편과 나는 펜실베니아 주 필라델피아 외곽에 있는 월세 50 달러짜리 아파트에서 살았습니다. 집세는 남편 월급의 반 정도 수준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라디오도 살 수 없었으나 놀라우리만치 행복했습니다. 우리가 처음 만나던 날 밤에 남편은 내가 노마 시어러와 닮았다고 말했습니다. 그녀는 당시 인기 있는 영화배우였는데 나하고 시어러하고 닮은 점은 사실상 머리모양뿐이었습니다. 어느 날 저녁 남편은 동네 옷가게 진열장에서 본 드레스 이야기를 나에게 했습니다. "그것을 당신한테 사줄 수 있으면 참 좋을 텐데. 그 옷은 당신에게 잘 어울릴 거야. 노마 시어러에게 맞는 스타일이거든." 나는 남편의 말에 이렇게 답했습니다. "내가 그것을 입고 어딜 가겠어요. 그 옷은 우리에겐 너무 사치예요." 그러나 그 이후로 나는 아이들을 데리고 산책할 때마다 그 드레스를 훔쳐봤습니다. 파스텔 색조의 얇은 실크 드레스, 그것은 모든 여자가 꿈꾸는 아름답고 고전적인 완벽한 스타일의 드레스였습니다. 그것의 가격은 20 달러였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나는 분필을 찾다가 20 달러를 발견했습니다. 그것은 한 해 전에 남편이 받아왔던 예상치 않은 보너스였습니다. 그때 우리는 이 돈을 잘 보관하기 위해 옷장 속의 분필통에 넣었던 것입니다. 그러고 나서 우리는 보너스에 관해 까맣게 잊어버렸습니다. 남편이 퇴근하여 집에 왔을 때 우리는 번갈아 빠닥빠닥한 지폐를 만지면서 웃고 또 웃었습니다. 다음날 밤 남편이 큰 상자를 안고 돌아왔습니다. 남편은 그 상자를 침실에 갖다 놓았습니다. 이윽고 둘만의 시간이 되자 남편이 흥분된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여보, 드레스 한번 입어 봐." 나는 침실에 들어가서 새 드레스를 입었습니다. 그리고 거울을 들여다봤습니다. 나한테 꼭 맞았습니다. 정말 완벽했습니다. 내가 바로 노마 시어러였습니다. 행복이란 습성이다. 그것을 몸에 지니라. (허버트)
Board 추천글 2020.07.06 風文 R 136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