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물 속에 떠 있는 도토리묵처럼' - 이성복(1952~ )
어느 여름 매미가 남겨놓은
껍질 같은 육체가
새로 들여온 삼백육십만 원짜리
통가죽 소파에 몸 가누고 있다
하루 종일 토하고 밤에는
잠 못 이루는 어머니,
찬물 속에 떠 있는 도토리묵처럼
말씀 없으시다가,
인제 겁 안 난다, 살 만큼 살았으니…
살얼음 낀 우물을 들여다보듯
한 고통이 다른 고통을 들여다본다
우리가 신앙하는 종교는 부처와 예수가 깨끗하고 더운 물로 병자의 몸을 목욕시킨다고 말한다. 그러나 한 보시기의 미음도 못 삼키는 늙고 병든 이를 돌보노라면 그에게는 그런 구원이 없는 것만 같다. 그 '고통의 바다'를 우리는 어떻게 간호하고 위무할까. 무엇을 축원(祝願)하라고 일러줄 수 있을까. 무연히 바라볼 수밖에 없다. 침묵은 움직이지 않는 슬픔이다.
<문태준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