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국수 가게'- 정진규(1939~)
햇볕 좋은 가을날 한 골목길에서 옛날 국수 가게를 만났다 남아 있는 것들은 언제나 정겹다 왜 간판도 없느냐 했더니 빨래널듯 국숫발 하얗게 널어놓은 게 그게 간판이라고 했다 백합꽃 꽃밭 같다고 했다 주인은 편하게 웃었다 꽃 피우고 있었다 꽃밭은 공짜라고 했다
국수를 삶는 집이 드물어졌다. 펄펄 물 끓는 가마솥에 면발을 삶은 다음 찬물로 막 헹궈 건져올리는 그 손이 보고 싶다. 손으로 한 번 아니 두 번 넉넉하게 건져올린 게 한 그릇 한 사람의 몫이다. 한 그릇 몫의 고운 국숫발을 건져올려 놓은 싸리 채반이 보고 싶다. 오늘은 무던한 사람들과 엉덩이를 붙이고 앉아 잔치국수 한 그릇 비우고 싶다.
<문태준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