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고 온 소반'- 이홍섭(1965~ )
절간 외진 방에는 소반 하나가 전부였다
늙고 병든 자들의 얼굴이 다녀간 개다리소반 앞에서
나는 불을 끄고 반딧불처럼 앉아 있었다
뭘 가지고 왔냐고 묻지만
나는 단지 낡은 소반 하나를 거기 두고 왔을 뿐이다
짧은 발이 달린 작은 상. 소반은 아주 낮은 데 앉는다. 아무렇게나 만든 막치 소반일수록 성품이 고아하다. 세간 살림이 없이 텅 빈 방에 소반처럼 낮게 앉아 영혼의 새벽을 맞는 사람이 여기 있다. 그가 부럽다. 마음의 병에는 명의도 묘약도 없다. 마음속 어혈을 푸는 방법은 쓸데없는 생각을 쉬게 하는 일. 곡기를 끊는 일. 우리는 생각이 너무 많다. 발 딛고 설, 빈 곳이 없다.
<문태준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