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눈' - 정양(1942~ )
한번 빚진 도깨비는
갚아도 갚아도 갚은 것을
금방 잊어버리고
한평생 그걸 갚는다고 한다
먹어도 먹어도 허천나던
흉년의 허기도 그 비슷했던가
보고 싶어도 보고 싶어도
소용없는 사람아
내려도 내려도 다 녹아버리는
저 첫눈 보아라
몇 평생 갚아도 모자랄
폭폭한 빚더미처럼
먼 산마루에만
희끗거리며 눈이 쌓인다
'저만치'와 '빚'이라는 말은 몸속 피와 같은 말. 두 붉은 말이 심장을 뛰게 한다. 우리는 서로 섭섭하고 미안하고 딱하다. 나는 그대와 만나 헤어질 때면 곧바로 허천나는 사랑이다. 사랑은 첫눈처럼 금방 사라지는 것. 산마루처럼 멀어 안달케 하는 것. 사랑은 기갈증 환자. 그러므로 연거푸 사랑의 빚을 갚는 건망증의 도깨비가 되자.
문태준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