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스듬히' - 정현종(1939~ )
생명은 그래요.
어디 기대지 않으면 살아갈 수 있나요?
공기에 기대고 서 있는 나무들 좀 보세요.
우리는 기대는 데가 많은데
기대는 게 맑기도 하고 흐리기도 하니
우리 또한 맑기도 흐리기도 하지요.
비스듬히 다른 비스듬히를 받치고 있는 이여.
세상은 탁류의 물굽이요, 곳곳에 수렁이요, 비탈이다. 마음은 휩쓸리고 빠지고 데굴데굴 구른다. 마음속에는 들불이 번지고 뇌우가 몰아친다. 그나마 술이 거나해지면 어깨가 어깨에 기대어 글썽이고 들썩인다. 해가 어둠을 없애듯이 우리는 서로에게 선우(善友)가 되자. 등을 잔뜩 구부린, 고단한 사내를 떠받치는 고향집 문기둥이 되자. 지게 작대기가 지게를 '비스듬히' 오래 받치고 있듯이.
<문태준.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