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K'- 이시영(1949~ )
어머님 돌아가셨을 때 보니 내가 끼워드린 14K 가락지를 가슴 위에 꼬옥 품고 누워 계셨습니다. 그 반지는 1972년 2월 바람 부는 졸업식장에서 내가 상으로 받은, 받자마자 그 자리에서 어머님의 다 닳은 손가락에 끼워드린 것으로, 여동생 말에 의하면 어머님은 그 후로 그것을 단 하루도 손에서 놓아본 적이 없다고 합니다.
새벽에 조리로 쌀을 일 때나 추운 눈길을 걸어갈 때, 혹은 어둑어둑해져 군불을 지필 때 내 어머니 손가락에 '꼬옥' 끼고 있었을 가락지여. 들일 마치고 부뚜막에서 찬밥을 데워 먹을 때 찬 손에 끼워져 있었을 가락지여. 내 어머니 고단한 마음을 너럭바위인 양 받아주었을 둥근 가락지여. 손가락 마디가 굵어져 빼지도 못하고 손가락에 굳은살처럼 달고 살았을 가락지여. 빛 바래고 닳은, 내 어머니 얼굴 같은 가락지여.
<문태준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