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백기념관' - 황병승(1970~ )
총을 버려
눈을 감고
비를 약속해
셋 둘 하나
셋 둘 하나
계단을 거꾸로 세며
이름을 지워
마른 가지를 들고
나무를 고백해
새를 질투하며
나무는 하늘을 고백해
숲을 고백해
방아쇠는 옳고
손가락은 추하다
덜 마른 도화지처럼
축축한 하늘
나비는 오락가락 붓질을 하며
그림을 망치고…
비가 내리면
치마 속에서
셋 둘 하나
셋 둘 하나
총알이 지나간 혓바닥으로
연애편지를 쓸테야
피는 아름답지만
키스는 얼얼하지요
달력의 숫자는
아-유리컵처럼 입을 벌리고
붉은 꽃을 기다려
고백을 해야 하는데 고백을
나무를 고백하고
하늘을 타는 숲을
고백하는 나의
우물쭈물하는 입술은
꼭 잡채같겠지
고백이란 무엇일까
나는 이제껏 고백하지 못했다
고백함으로써 단 한 번만이라도
고백해볼까
그때, 가뭄 속에서
나무는 새를 쏘았지
새 날아가고 숲만 쓰러졌지
나의 이름은 구멍난 혓바닥
검은 꽃에 앉아
나비는 검은 글자를 썼지.
고백하는 나의 두 눈은
죽음의 콧구멍, 닮았겠지만.
눈을 감고
총을 들어
비가 내리면
셋 둘 하나
셋 둘 하나
빗소리를 거꾸로 세며
손가락은 옳고
방아쇠는 추하다.
스산한 겨울날. 처음으로 미장원에 가 머리를 잘랐다는 남자후배. 미용사가 머리 감겨 주는데 울컥 눈물이 솟았단다. 따뜻한 사랑이 너무 그리웠단다. 그 날로 5년여 짝사랑만 해온 직장동료한테 마음을 고백하기로 결심했다는데, 5년 만의 고백, 어떻게 됐을까?
김경미<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