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호승(1950~ ), '여수역'
봄날에 기차를 타고
종착역 여수역에 내리면
기차가 동백꽃 속으로 들어가 버린다
가을에 기차를 타고
종착역 여수역에 내리면
기차는 오동도 바다 위를 계속 달린다
다시 봄날에 기차를 타고
여수역에 내리면
동백꽃이 기차가 되어버린다
기차가 그럴 수 있을까. 그런 봄날을 가진 이는 누구일까.
어떤 날일까. 여수에 가면 우리도 바다 위로 달릴 수 있을까.
순간 기차는 꽃 속으로 들어가 버린다.
반대편에서 우리가 느리고 쓸쓸하게 걷고 있는 동안
나무는 지루한 모든 것을 온몸으로 흡수하여 찬란한 꽃잎으로 바꾼다.
한순간에 핀다. 그런 순간을 포착하는 자만이 봄의, 사랑의,
환희의 탄성을 지를 수 있다. 지금 이 순간, 그대의 얼굴엔 목련이 핀다.
박상순<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