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자민 뿌리가 쓴 소설 - 박라연
사람 고픈 냄새가 낭자해서 알았다
나무 벤자민
오래 전에 아파트 쓰레기실에
버려졌다는 것
손톱도 못 들어갈 만큼 굳어버린
흙을 뚫고
미처 못 산 시간을 찾아 나선 뿌리들이
시골 장독만한 화분 밖을 칭칭 동여
매며 버팅긴 것
화분의 배수구 그 작은 통로를 통해
여윈
목마른, 해진 여생을 온몸으로 주워
다시 삯바느질한 것
화분 안은 실존 밖은 죽음이
뻔한데 저를 던져 또 다른 저를
살려내려고 생사의 경계 뚫고 나온
뿌리들의 참혹한 생존 전략
휘청, 내 다리가 굽었다
칼을 들었다
공기 속 수분을 혀로 핥아
2미터가 넘는 벤자민을 먹여 살린
화분 바깥 뿌리들을 베고 또 베어냈다
심장 하나가 함께 잘려
칼을 쥔 손에 들려 있다 소설처럼
아장아장 무수한 잎이 되어
벤자민 씨(氏)네 초록 지붕 올라가고 있다
죽을 목숨 몇쯤은 살려낼 운세
잎잎이 물고서